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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곳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께서 만들었다고 한다.

다보탑과 스까탑이 유명하다. 다보탑은 10원짜리에도 나온다. 지금도 주괴 되팔렘들에 의해 용광로에서 녹아가고있을 다보탑들에게 묵념.

16년 9월 경주 지진으로 일부분이 손상당했다.

수학여행으로 드럽게 많이가는 장소중 하나다.

워낙에 유명한 장소라 많이들 가기는 하는데 실상 볼건 별로 없다.

다보탑 석가탑 한번 쓱 돌아보며 보면 끝.

애초에 절 자체도 작아서 돌아보며 시간 보내기도 뭣하고.

리즈시절에는 존나 화려하고 컸지만 임진왜란때 불교신자인 가토 기요마사때문에 통구이되었다. 사실 가토는 불국사를 반달리즘 목적으로 불태운게 아니라 불국사 승병들의 저항이 너무 거세고 불국사 안에 무기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어서 이것들을 처리하면서 같이 불태워졌다고

이후 조선후기 영조때 짭으로 복원되긴 했는데 이때 조선시대 단청의 특징인 상록하단 단청으로 떡칠됐다. 역시나 숭유억불 이데올로기때문에 버려졌다가 완전히 폐허 수준이 되었는데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보다못해서 임시로 복원시켰다가 반인반신치세인 1970년대에 지금의 건물이 완성되었다.

사찰정보
위치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
건축시기 528년 창건설 / 8세기 대규모 중창
창건자 영제부인 설 / 김대성 중창
홈페이지 불국사 홈페이지

역사

위에 적힌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이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완전히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불국사 기록인 《불국사고금창기》에는 528년 신라 법흥왕의 어머니인 영제부인과 기윤부인이 절을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가 이차돈 순교 직후 불교를 공인하던 바로 그 시기다.

다만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국사를 사실상 만든 인물로는 김대성이 훨씬 중요하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10년인 751년 김대성이 불국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나온다. 김대성은 현세의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전생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지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석가탑에서 발견된 중수문서 판독을 통해 공사 시점을 742년 무렵까지 올려 보는 연구도 있다. 즉 528년 창건설, 742년 공사 기록, 751년 김대성 창건 기록이 각각 존재해서 불국사의 시작을 정확히 어느 한 해로 못박기는 생각보다 복잡하다.[1]

어쨌든 지금의 불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석조물들은 대부분 통일신라시대 대규모 중창 때 만들어졌다.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백운교, 연화교·칠보교, 각종 석축이 대표적이다.

불국사 자체가 그냥 건물 몇 채 예쁘게 놓은 절이 아니라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의 나라, 즉 불국토를 현실에 구현하려고 만든 공간이다.

대웅전 영역은 석가모니의 세계, 극락전은 아미타불의 극락세계, 비로전은 비로자나불의 세계를 상징하는 식으로 공간이 나뉜다.

그래서 돌계단과 석축도 그냥 산이라 높낮이 맞추려고 만든 게 아니라 인간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올라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1995년에는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2]

임진왜란 이후

리즈시절에는 존나 화려하고 컸지만 임진왜란때 불교신자인 가토 기요마사때문에 통구이되었다. 사실 가토는 불국사를 반달리즘 목적으로 불태운게 아니라 불국사 승병들의 저항이 너무 거세고 불국사 안에 무기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어서 이것들을 처리하면서 같이 불태워졌다고

이 부분은 조금 조심해서 볼 필요가 있다.

불국사가 1593년 일본군의 침입으로 큰 화재를 입어 주요 목조건축 대부분이 소실된 것은 맞다. 국가유산 자료에도 이때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다고 기록돼 있다.[3]

하지만 가토 기요마사가 직접 불국사에 불을 질렀다, 또는 불국사에서 무기가 발견되어 불태웠다는 세부 이야기는 인터넷에서 널리 퍼진 것에 비해 이를 명확히 뒷받침하는 1차 사료는 찾기 어렵다.

당시 승려들이 승병으로 대규모 참전한 것은 사실이고 사찰들이 군사적 거점 역할을 하기도 했기 때문에 아주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토가 직접 명령했다는 식으로 확정해서 말하기는 곤란하다.

임진왜란 이전의 불국사는 기록상 2,000여 칸에 달하는 상당히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전쟁으로 목조건물 대부분이 날아가고 돌로 만든 다보탑, 석가탑, 석축과 계단 같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살아남았다.

이후 조선 후기에 조금씩 다시 지었다.

영조 때인 18세기에 대웅전 등이 중건됐으며 극락전, 자하문, 범영루 등 여러 건물이 수차례 중수됐다.

그렇다고 숭유억불 때문에 완전히 내버려두기만 한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에도 꾸준히 중창과 보수가 이루어졌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다만 신라시대의 엄청난 규모를 다시 복원할 정도의 지원은 당연히 없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전체적으로 크게 쇠락했다.[1]

일제강점기인 1918~1925년에는 대대적인 보수공사가 진행됐다.

무너지고 기울어진 석축과 계단을 보수하고 여러 건물을 수리했다. 그래서 "일본이 보다못해서 복원시켰다"는 원문의 표현도 아주 틀린 건 아닌데, 당시 수리 방식에 대한 평가는 별개로 볼 필요가 있다.

해방 이후에는 박정희 정부 시기인 1969~1973년 대규모 발굴조사와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무설전, 관음전, 비로전, 범영루 등 여러 건물이 복원되거나 중건됐고 현재 관광객이 보는 불국사의 전체적인 모습이 이때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현재 불국사는

통일신라시대 석조물 + 조선시대 중건 건물 + 일제강점기 수리 + 1970년대 복원 건물

이 섞여 있는 곳이다.

모든 건물이 신라시대 오리지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반대로 "1970년대에 새로 지은 짭 절"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틀리다.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백운교와 각종 석축 등 핵심적인 석조구조물은 통일신라시대 원형이 상당 부분 남아 있다.

다보탑과 석가탑

다보탑과 스까탑이 유명하다. 다보탑은 10원짜리에도 나온다. 지금도 주괴 되팔렘들에 의해 용광로에서 녹아가고있을 다보탑들에게 묵념.

파일:불국사 다보탑.jpg
다보탑

불국사에서 제일 유명한 것은 역시 다보탑과 석가탑이다.

둘 다 8세기 통일신라를 대표하는 석탑이지만 생김새는 극단적으로 다르다.

다보탑은 존나 복잡하다.

사각형, 팔각형, 원형 석재를 조립해 만든 구조라 돌로 이런 걸 어떻게 만들었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화려하다.

반면 바로 옆의 석가탑은 전형적인 삼층석탑 형태로 매우 단순하다.

그래서 두 탑은 각각 화려함과 절제를 보여주는 신라 석조미술의 대표작으로 자주 비교된다.

다보탑은 대한민국 10원 동전에 들어가 있다.

10원짜리 동전의 금속가치가 액면가보다 비싸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동전을 녹이면 돈이 된다는 드립이 옛날부터 있었지만, 실제 대한민국 화폐를 영리 목적으로 훼손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지금도 주괴 되팔렘들에 의해 용광로에서 녹아가고있을 다보탑들에게 묵념.

석가탑은 정식 명칭이 불국사 삼층석탑이다.

1966년 석가탑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내부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됐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유명했던 그 물건이다.

또 석가탑에는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이 붙어 있어 무영탑이라는 별명도 있다.

그 유명한 "탑 그림자가 연못에 비치지 않아 아사녀가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청운교·백운교와 연화교·칠보교 역시 국보다.

교(橋)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오늘날 보면 사실상 거대한 돌계단처럼 보인다. 불국사 아래 인간세계와 위쪽 부처의 세계를 연결하는 상징적인 다리다.

경주 지진

16년 9월 경주 지진으로 일부분이 손상당했다.

2016년 9월 12일 규모 5.8의 경주 지진 당시 불국사 역시 피해를 봤다.

다보탑 상층부의 난간석 일부가 내려앉았고 불국사 대웅전 지붕과 담장의 기와 일부가 파손됐다.[4]

반면 석가탑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석가탑은 지진 직전인 2016년까지 약 4년에 걸친 해체수리를 마친 상태였다.

나중에 연구진이 조사해 보니 내부에 자갈층과 적심석을 이용해 충격을 분산하는 전통적인 구조가 있어 지진에 상당히 잘 버틴 것으로 분석됐다.

천 년 넘은 신라놈들의 내진설계.

다만 이걸 현대식 내진설계와 완전히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곤란하고 결과적으로 지진력을 분산시키는 구조가 있었다고 이해하면 된다.

관광

수학여행으로 드럽게 많이가는 장소중 하나다.

한국에서 경주 수학여행을 가본 세대라면 첨성대, 석굴암, 천마총과 함께 거의 세트메뉴처럼 기억나는 곳이다.

특히 1980~2000년대 경주 수학여행의 필수코스 수준이라 한국인에게는 실제 방문 여부와 관계없이 사진이 존나 익숙하다.

워낙에 유명한 장소라 많이들 가기는 하는데 실상 볼건 별로 없다.

다보탑 석가탑 한번 쓱 돌아보며 보면 끝.

애초에 절 자체도 작아서 돌아보며 시간 보내기도 뭣하고.

ㄴ 다만 이것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좀 다르다.

그냥 유명한 탑 두 개 보러 온 사람이면 실제로 30분~1시간 정도 돌아보고 "응 불국사 봤다" 하고 나갈 수도 있다.

반대로 청운교·백운교, 연화교·칠보교, 대웅전, 극락전, 무설전, 비로전, 관음전까지 올라가면서 건축구조와 불교 세계관을 알고 보면 의외로 볼 게 많다.

특히 불국사의 진짜 가치 중 하나는 목조건물보다 석축이다.

경사진 토함산 지형에 거대한 돌을 짜 맞춰 평평한 공간을 만들었는데 돌 사이를 모르타르 같은 것으로 떡칠하지 않고 가구식으로 쌓아 올렸다.

절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돌기단 자체가 통일신라 건축기술의 유산이다.

하지만 어린 급식충에게

"이 석축은 통일신라의 뛰어난 가구식 축조기법을..."

이라고 설명해봤자

다보탑 봤다. 밥 언제 먹음?

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석굴암과 같이 묶어서 보는 경우가 많은데 바로 옆은 아니다. 불국사에서 토함산 쪽으로 더 올라가야 한다.

1995년 불국사와 석굴암은 하나의 유산으로 묶여 대한민국 최초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가운데 하나로 등재됐다.[2]

여담

  • 이름 그대로 佛國寺, 즉 부처의 나라를 구현한 절이라는 뜻이다.
  •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다.
  • 불국사 자체는 사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경내에 국보와 보물이 존나게 많다.
  • 대표적인 국보로 다보탑, 석가탑, 청운교·백운교, 연화교·칠보교, 금동비로자나불좌상,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 다보탑과 석가탑이 워낙 유명해서 정작 불국사의 돌계단과 석축이 얼마나 중요한 문화재인지는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 김대성은 불국사와 석굴암을 동시에 건립한 인물로 전해진다.
  • 《삼국유사》에서는 불국사를 현세의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전생의 부모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 528년 영제부인 창건설은 후대 기록인 《불국사고금창기》에 나온 것이며 현재 불국사의 핵심 구조는 8세기 김대성의 대규모 중창과 연결된다.
  • 현재 남아 있는 목조건축물을 보고 "이게 전부 신라시대 건물"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번 재건됐으며 1970년대 대대적인 복원이 있었다.
  • 반대로 돌로 된 석탑·석축·계단 상당수는 통일신라시대 유구다.
  • 2016년 경주 지진 당시 다보탑 난간석과 대웅전 기와 등이 피해를 입었다.
  • 봄에는 불국사 주변 겹벚꽃도 유명하다.
  • 가을 단풍철에는 수학여행 급식충들 말고도 관광객이 존나 많다.
  1. ↑ 1.0 1.1 경주 불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2.0 2.1 Seokguram Grotto and Bulguksa Temple,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3. ↑ 경주 불국사, 국가유산청.
  4. ↑ 규모 5.8 지진 문화재 피해 속출…다보탑 난간석 이탈, 연합뉴스, 201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