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사동 선사 유적지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한강변에 있는 신석기 시대의 대규모 취락 유적이다. 국가유산으로서의 공식 명칭은 서울 암사동 유적이며, 1979년 7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한국사 좀 배웠다 하면 빗살무늬토기 사진과 함께 한 번쯤은 봤을 곳이다. 서울 한복판, 그것도 아파트와 도로가 빼곡한 강동구에 약 6,000년 전 사람들이 살던 집터가 그대로 묻혀 있었다. 여러 차례 발굴 결과 40기 이상의 집터와 화덕자리, 돌무지시설 등이 확인되었으며 빗살무늬토기, 돌도끼, 그물추, 불에 탄 도토리 같은 생활유물도 대량으로 나왔다.
특히 한강을 끼고 어로와 채집을 하며 집단생활을 했던 신석기인들의 생활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대한민국에서 확인된 신석기시대 유적 가운데서도 규모가 매우 큰 마을 유적으로 평가된다.
현재는 유적 보호구역 안에 복원 움집과 야외전시장,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 등이 조성되어 있으며 학교 현장학습 단골 코스이기도 하다.
발견과 발굴
암사동 유적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발굴조사도, 공사도 아니고 홍수였다.
1925년 한반도를 강타한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변 일대가 크게 침수되고 모래층이 무너지면서 땅속에 묻혀 있던 토기 조각들이 대량으로 노출됐다. 이 과정에서 암사동 일대에 선사시대 유적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당시 일본인 연구자들이 유물을 수습하고 조사했지만 체계적인 대규모 발굴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광복과 6.25 전쟁, 서울의 급격한 도시화까지 겹치면서 한동안 제대로 된 연구가 어려웠다.
본격적인 발굴은 1960년대 이후 진행됐다. 1967년 대학 조사단이 발굴을 실시했고, 이후 1970년대에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이 반복적으로 조사하면서 대규모 신석기 취락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조사 결과 유적에는 하나의 시대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여러 문화층이 겹쳐 있었다. 중심이 되는 것은 신석기시대 문화층이며 그 위로 청동기시대와 이후 시기의 흔적도 일부 확인됐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주요 신석기 유적은 대략 기원전 4000~3000년 무렵에 형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로부터 약 5,000~6,000년 전이다.
유적의 중요성이 인정되면서 1979년 7월 26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현재 지정면적은 98,354㎡에 이른다.
서울이 워낙 조선시대 수도 이미지가 강해서 그렇지, 암사동까지 올라가면 이 도시에서 사람이 집단으로 정착해 살아온 역사를 문자 그대로 수천 년 더 뒤로 밀어버릴 수 있다.
신석기 마을
암사동 유적의 핵심은 움집터다.
발굴조사를 통해 지금까지 40기 이상의 집터가 확인되었다. 집의 바닥은 원형 또는 모서리가 둥근 네모꼴로 땅을 파서 만들었으며, 일반적으로 한 변 또는 지름이 약 5~6m 정도였다.
깊이는 대략 70~100cm 정도로 땅을 파고 들어간 반지하식 구조였다. 내부에는 네 개 정도의 기둥구멍이 확인되는 경우가 많아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와 풀 등을 덮어 지붕을 만들었던 것으로 추정한다.
집 가운데에는 돌을 둘러 만든 화덕자리가 확인된다. 이곳에서 불을 피워 음식을 조리하거나 난방에 사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출입구는 대체로 남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햇빛을 받기 쉽고 북쪽에서 부는 찬바람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유적지에 보이는 초가 비슷한 원뿔형 움집들은 발굴 당시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발굴된 집터와 조사자료를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다. 원래 유적을 보호하기 위해 발굴된 유구 위에는 다시 흙을 덮고 그 위에 복원 움집을 세운 곳도 있다.
일부 복원 움집은 내부까지 들어가 볼 수 있어 신석기시대 주거공간의 크기와 구조를 직접 체감할 수 있다.
생각보다 안이 넓은 편이다. 신석기인이라고 하루 종일 조그만 텐트 같은 데 웅크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가족 또는 소규모 집단이 생활하면서 잠을 자고 음식을 만들고 도구를 손질할 정도의 공간은 확보되어 있었다.
출토 유물
암사동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물은 당연히 빗살무늬토기다.
교과서에서 신석기 시대 나오면 거의 자동으로 등장하는 그 뾰족한 항아리다. 암사동에서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대량으로 발견되었으며 일부는 형태를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
토기 표면에는 선을 긋거나 눌러 만든 기하학적인 무늬가 들어가 있다. 몸통 위쪽과 중간, 아래쪽에 서로 다른 방향의 무늬를 넣기도 했다.
바닥이 평평하지 않고 뾰족하거나 둥근 형태가 많은데, 당시 한강변의 모래땅이나 움집 바닥에 토기를 꽂거나 받침을 이용해 세웠을 것으로 본다.
그 외에도 다양한 석기가 발견됐다.
- 돌도끼
- 돌화살촉
- 갈돌과 갈판
- 돌칼
- 긁개
- 그물추
특히 그물추가 많이 발견됐다는 것은 한강에서 물고기를 잡는 어로 활동이 중요한 생업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돌에 홈을 파거나 끈을 묶어 그물 아래쪽에 달아 물속으로 가라앉히는 데 사용했다.
불에 탄 도토리와 식물 흔적도 발견됐다. 신석기인들이 물고기만 잡아먹고 산 것이 아니라 주변 산과 들에서 견과류와 식물을 채집해 먹었다는 증거다.
농경의 흔적도 일부 논의되지만 암사동 주민의 주요 생활방식은 한강을 이용한 어로와 수렵·채집이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왜 이곳에 살았나
지도만 봐도 이유가 상당히 명확하다. 바로 옆이 한강이다.
신석기시대에는 농사가 시작되고 정착생활이 확대됐지만 오늘날처럼 농업만으로 먹고사는 단계는 아니었다. 강과 바다에서 물고기와 조개를 잡고 주변에서 식물을 채집하며 사냥도 병행했다.
한강은 식량과 물을 동시에 제공했다. 물고기와 각종 수생생물을 잡을 수 있고 식수를 구하기도 쉬웠으며 주변 평지와 구릉에서는 도토리나 열매 같은 식물을 채집할 수 있었다.
강을 이용한 이동도 가능했다.
그래서 한반도의 신석기 유적은 강가나 바닷가에서 많이 발견된다. 부산 동삼동 패총 같은 해안 유적과 함께 암사동은 강변에 형성된 대표적인 신석기 취락이다.
암사동 일대는 한강이 굽어 흐르는 곳에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어 집을 짓고 생활하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지금은 강동구 아파트촌 한가운데라 상상이 잘 안 되지만 6,000년 전 기준으로 보면 물 있고 물고기 많고 평지까지 있는 상당히 괜찮은 입지였다.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
유적지 안에는 암사동선사유적박물관이 있다.
발굴 과정과 신석기시대 생활상,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와 각종 석기 등을 전시한다.
단순히 출토품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어떤 환경에서 살았는지, 어떤 도구로 물고기를 잡고 음식을 만들었는지 등을 모형과 영상자료를 이용해 설명한다.
실제 암사동에서 출토된 빗살무늬토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교과서에 있는 흑백사진이나 작은 사진으로 보다가 실제 크기의 토기를 보면 생각보다 크고 무늬도 상당히 정교하다.
야외에는 여러 채의 복원 움집이 조성되어 있고 일부 내부에는 신석기인의 생활모습을 재현한 모형도 있다.
사냥과 어로, 토기 제작 등을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운영되며 어린이와 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래서 고고학 유적이라는 딱딱한 이름과 달리 실제 분위기는 박물관 + 야외공원 + 체험학습장에 가깝다.

보존과 정비
암사동 유적은 서울의 급격한 도시개발 속에서 상당 부분 보존된 사례이기도 하다.
강동구 일대가 본격적으로 개발되면서 유적 주변에는 아파트와 도로가 들어섰지만 핵심 유적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어 개발에서 제외됐다.
이후 추가 발굴조사도 꾸준히 이루어졌다. 특히 과거 조사기술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던 유구와 문화층을 다시 분석하기 위해 정밀발굴이 진행됐다.
2025년은 암사동 유적이 처음 알려진 지 100년이 되는 해였다. 강동구는 이를 맞아 유적지 내부에 약 1,900m 길이의 탐방로를 새롭게 정비하고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확대했다.
현재 유적지는 발굴 유구 자체를 보호하는 구역과 복원 움집, 박물관, 녹지공간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유적지가 대규모 공원처럼 보인다고 아무 땅이나 파면 안 된다. 아래에 진짜 수천 년 전 문화층이 남아 있을 가능성이 있는 국가 사적이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
암사동 유적은 서울시와 강동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가능성을 꾸준히 검토해온 유적이기도 하다.
다만 세계유산은 단순히 "오래됐고 중요한 유적입니다"라고 신청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지역의 유사한 신석기 유적과 비교했을 때 어떤 보편적인 가치가 있는지 입증하고, 유적의 원형과 보존상태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계획도 제시해야 한다.
암사동은 한강유역의 대규모 신석기 취락이라는 중요성은 분명하지만 서울의 도시개발 속에서 유적 주변 환경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현재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신석기 유적으로서 보존·연구가 계속되는 단계라고 보는 것이 맞다.

관람
주소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올림픽로 875 일대다.
서울 지하철 8호선 암사역에서 도보로 접근할 수 있으며, 역에서 약 10~15분 정도 걸린다. 주변에 버스 노선도 있다.
유적지 내부에는 야외 복원 움집과 박물관, 산책로가 함께 있어 박물관만 보고 바로 나오는 것보다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는 편이 낫다.
2025년에는 약 1.9km 길이의 탐방로가 새롭게 정비되어 유적과 녹지를 따라 걸을 수 있게 됐다.
학교 단체관람과 체험학습이 많은 곳이라 평일 낮에는 학생들이 몰리는 경우가 있다. 각종 선사문화 체험 프로그램은 일정과 예약방식이 따로 정해져 있으므로 참여하려면 공식 홈페이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여담
- 한국사 교과서의 신석기시대 부분에서 빗살무늬토기와 함께 정말 지겹도록 등장한다. 암사동이라는 동네 이름은 몰라도 "암사동 유적"은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 정식 국가유산 명칭은 서울 암사동 유적이다. 암사동 선사 유적지, 암사동 선사주거지, 암사동 선사유적 같은 표현도 널리 쓰인다.
- 1925년 대홍수가 아니었다면 발견 시점이 훨씬 늦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강물이 유적을 망가뜨리는 동시에 유적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준 셈이다.
- 유적에서 발견된 움집이 40기가 넘는다는 점 때문에 잠깐 머물다 간 야영지가 아니라 상당한 규모의 정착마을이었던 것으로 본다.
- 오늘날 한강변 집값을 생각하면 신석기인들도 어쨌든 한강 생활권을 먼저 선점한 사람들이긴 하다.
- 서울의 역사를 흔히 백제의 한성시대나 조선의 한양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암사동 유적을 기준으로 보면 서울 지역의 정착생활 역사는 최소 신석기시대까지 올라간다.
- 바로 주변이 현대적인 아파트와 도로로 둘러싸여 있어서 유적지 안의 움집과 바깥 도시 풍경의 대비가 상당히 크다. 움집에서 몇 분만 걸어나오면 지하철 타고 잠실 가는 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