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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릉원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에 있는 신라 시대의 대규모 고분공원이다. 경주 시내 한복판에 거대한 봉분들이 줄줄이 솟아 있는 곳으로, 천마총, 황남대총, 미추왕릉 등을 포함해 23기의 크고 작은 고분이 모여 있다.

면적은 약 126,500㎡이며, 1973년 고분공원으로 정비되면서 현재의 대릉원이라는 이름이 정착했다. 주변의 황남동·황오동·노동동·노서동 고분군까지 넓게 보면 경주 도심 전체가 거대한 신라 왕족·귀족 묘역이라고 봐도 될 정도다.

대릉원은 경주 역사유적지구대릉원지구에 포함되어 있으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겉으로 보면 잔디 예쁘게 깔린 언덕들이 모여 있는 공원 같지만 저 언덕 하나하나가 1,500년 전 사람을 묻은 무덤이다. 그중 몇 곳을 발굴했더니 금관, 금제 허리띠, 유리잔, 무기, 말갖춤, 천마도 같은 물건이 수만 점씩 쏟아져 나왔다.

역사

경주 일대에는 신라 초기부터 왕과 왕족, 귀족들의 무덤이 집중적으로 만들어졌다.

특히 4~6세기 마립간 시기에는 거대한 돌무지덧널무덤이 대량으로 조성됐다. 당시 신라는 왕권이 성장하고 있었고 왕실과 귀족들은 무덤의 크기와 부장품을 통해 권력을 과시했다.

오늘날 대릉원 일대에 남아 있는 거대한 봉분 상당수가 이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부 고분은 파괴되거나 도굴되기도 했지만, 경주 시가지 안에 워낙 많은 고분이 남아 있어 대규모 묘역 자체는 유지됐다.

20세기 들어 근대적인 고고학 발굴이 본격화되면서 이 무덤들이 신라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라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경주관광개발계획과 함께 대규모 고분 정비와 발굴이 진행됐다. 1973년에는 황남동 일대의 고분 23기를 중심으로 공원을 조성하고 대릉원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대릉원'이라는 명칭은 삼국사기에서 신라 미추 이사금의 무덤을 대릉이라고 기록한 데서 가져왔다.

당시 정부는 경주를 국제적인 역사관광도시로 개발하려 했고 대릉원 역시 그 과정에서 지금과 같은 고분공원 형태를 갖추게 됐다.

그런데 이 정비사업 과정에서 한국 고고학사에 남을 대박이 터졌다.

원래 고고학계가 가장 먼저 본격 발굴하려던 대상은 당시 경주 최대 규모의 고분이었던 황남대총이었다. 그런데 워낙 거대한 무덤이라 바로 들어갔다가 실패하면 곤란하니, 발굴 경험을 쌓기 위해 옆의 비교적 작은 155호분을 먼저 파보기로 했다.

그게 바로 천마총이다.

연습 삼아 파본 무덤에서 금관을 비롯한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오히려 이쪽이 먼저 전국적으로 유명해졌다.

주요 고분

천마총

천마총은 대릉원 내 155호분이다.

1973년 발굴됐으며, 피장자의 이름은 아직 확실하지 않다. 다만 금관과 각종 금제 장신구, 무기, 마구 등이 함께 출토된 점을 볼 때 신라 왕족 또는 최고위 귀족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무덤은 전형적인 신라식 돌무지덧널무덤 구조다.

발굴 과정에서 금관, 금제 허리띠, 금제 관모, 장신구, 무기, 말갖춤 등 1만 1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가장 유명한 유물은 당연히 천마도다.

말을 탄 사람이 아니라 말 자체가 하늘을 나는 듯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붙여 만든 말다래에 채색한 그림이다.

고대 신라 회화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미술사적으로도 매우 귀중한 자료다.

이 천마도가 발견되면서 원래 번호로만 불리던 155호분은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현재 대릉원에서 실제 내부 구조를 관람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고분이기도 하다.

다만 지금 관람객이 들어가는 내부는 발굴된 무덤을 그대로 방치한 것이 아니라 무덤 구조를 보존·전시하기 위해 정비한 공간이다. 안에는 돌무지덧널무덤의 구조와 출토 유물을 재현한 전시물이 있다.

황남대총

황남대총은 대릉원에서 가장 거대한 고분이며 경주 일대에서도 최대급 신라 고분이다.

높이 약 23m, 남북 길이 약 120m, 동서 너비 약 80m에 달한다.

두 개의 봉분이 남북으로 붙어 있는 표형분이다. 위에서 보면 표주박이나 쌍봉낙타처럼 생겼다.

1970년대 발굴 결과 남쪽 무덤과 북쪽 무덤에 각각 한 명씩 매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분에서는 남성의 유해와 무기, 금동관 등이 발견됐고 북분에서는 금관과 각종 여성 장신구, 그리고 夫人帶라는 글자가 새겨진 허리띠 부속품이 발견됐다.

이를 근거로 남분은 남성, 북분은 여성의 무덤이며 두 사람이 부부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다만 정확히 어느 왕과 왕비인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황남대총에서는 5만 7천여 점에 달하는 유물이 출토됐다.

금관과 금제 허리띠, 귀걸이, 목걸이, 팔찌뿐 아니라 유리잔과 로마계 또는 서역계 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각종 유리제품도 발견됐다.

이런 외래계 유물은 당시 신라가 한반도 안에서만 고립되어 있던 사회가 아니라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를 통해 이어진 장거리 교류망의 영향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로 자주 언급된다.

무덤 크기와 부장품 규모를 보면 피장자가 당시 신라 최상위 지배층이었다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미추왕릉

대릉원 안에는 신라 제13대 왕인 미추 이사금의 무덤으로 전해지는 미추왕릉이 있다.

미추왕은 신라 김씨 가운데 처음으로 왕위에 오른 인물로 전해진다.

다만 현재의 무덤이 실제 미추왕의 묘인지 고고학적으로 완전히 증명된 것은 아니다.

삼국사기에는 미추왕을 대릉에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기록 때문에 대릉원이라는 이름도 생겼다.

미추왕릉에는 유명한 죽엽군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가 이서국의 공격을 받았을 때 귀에 대나무 잎을 꽂은 정체불명의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군을 도와 적을 물리쳤고, 전투가 끝난 뒤 미추왕릉 앞에 대나무 잎이 잔뜩 쌓여 있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죽은 미추왕이 신라를 지키기 위해 군사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후 미추왕릉을 죽장릉이라고도 불렀다.

왕이 죽은 뒤에도 나라 지키러 군대 보내는 신라판 사후 출근 전설이다.

그 밖의 고분

대릉원 내부에는 이외에도 검총, 90호분 등 여러 고분이 있다.

현재 땅 위로 봉분이 뚜렷하게 남아 있는 것은 20여 기지만 지하에는 훨씬 많은 소형 무덤과 유구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경주 도심에서 도로나 건물을 정비하다가 고분이 새로 발견되는 일이 아직도 있다.

인근 쪽샘지구에서도 대규모 신라 고분군 발굴이 장기간 진행 중이다.

무덤 구조와 출토 유물

대릉원의 대표적인 고분은 대부분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이다.

한자로는 적석목곽분이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대략 다음과 같다.

먼저 땅을 파고 나무로 만든 널과 덧널을 설치한다. 그 안에 시신과 각종 부장품을 넣은 뒤 주변과 위를 엄청난 양의 돌로 덮고, 다시 그 위에 흙을 쌓아 거대한 봉분을 만든다.

구조만 보면 단순해 보이지만 도굴하는 놈 입장에서는 상당히 악랄하다.

고구려백제의 돌방무덤처럼 입구와 통로가 있는 구조가 아니라 돌무더기 전체를 뜯어내야 내부에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구멍을 파고 들어가려고 하면 위의 돌이 쏟아져 내려 통로가 막힌다.

덕분에 신라 고분은 다른 지역의 왕릉보다 비교적 도굴 피해를 덜 받은 경우가 많았고, 천마총이나 황남대총처럼 엄청난 양의 부장품이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었다.

대표적인 출토품은 다음과 같다.

  • 금관
  • 금제 허리띠
  • 금귀걸이
  • 목걸이와 팔찌
  • 금제 관모
  • 칼과 창 등 무기
  • 말갖춤
  • 토기
  • 유리그릇
  • 각종 생활용품

특히 신라 금관은 나뭇가지나 사슴뿔처럼 솟은 장식 때문에 매우 독특하다.

금 자체의 양도 상당하지만 얇은 금판과 곡옥, 금구슬 등을 이용한 제작기술도 뛰어나다.

신라가 흔히 황금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데에는 대릉원을 비롯한 경주 고분 출토품의 영향이 크다.

경주 역사유적지구

대릉원은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역사유적지구 가운데 대릉원지구의 핵심 유적이다.

대릉원지구는 대릉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주 시내에 분포한 여러 신라 고분군을 함께 포함한다.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서리 고분군, 황오리 고분군 등이 연결되어 있다.

이 지역에는 신라 왕과 왕족, 귀족의 대형 고분이 집중적으로 존재한다.

경주 역사유적지구의 다른 구역이 왕궁, 사찰, 불교유적, 산성 등을 보여준다면 대릉원지구는 신라 지배층의 장례문화와 권력구조를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왕궁이었던 경주 월성과도 상당히 가까워 신라 왕실이 생활하던 공간과 죽은 뒤 묻힌 공간의 관계를 직접 볼 수 있다.

관람

대릉원은 경주시 황남동에 있다.

현재 대릉원 자체의 입장은 무료이며, 내부의 천마총 관람은 별도 유료다.

관람시간은 일반적으로 09:00~22:00이고 입장 마감은 오후 9시 30분이다.

야간에도 개방하기 때문에 조명이 들어온 고분을 볼 수 있다.

공원 내부에는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황남대총과 미추왕릉, 천마총 등을 걸어서 둘러볼 수 있다.

대릉원 자체도 상당히 넓지만 바로 옆에 황리단길이 있고, 후문 쪽으로 나가면 첨성대, 계림, 경주 월성, 동궁과 월지 방향으로 계속 걸어갈 수 있다.

경주 도보여행에서는 보통

황리단길 → 대릉원 → 첨성대 → 계림 → 월성 → 동궁과 월지

정도로 이어가는 경우가 많다.

대릉원 돌담을 따라 약 550m 정도 이어지는 대릉원 돌담길도 유명하다. 봄에는 벚꽃이 피면서 경주의 대표적인 산책 코스가 된다.

고분 사이에 있는 목련나무 포토존도 매우 유명하다. SNS에서 대릉원 검색하면 높은 확률로 나오는 고분 두 개 사이의 나무가 그곳이다.

여담

  • 대릉원의 봉분 위에는 올라가면 안 된다. 그냥 잔디언덕처럼 보여도 국가유산인 신라 고분이다.
  • 경주에서는 대릉원 밖에서도 고분을 쉽게 볼 수 있다. 시내 주택가나 도로 옆에 갑자기 거대한 봉분이 튀어나오는 풍경이 흔하다.
  • 대릉원 주변 황리단길이 관광지로 크게 성장하면서 최근에는 유적 보러 갔다가 카페 가는 코스가 거의 한 세트가 됐다.
  • 천마총 발굴은 원래 황남대총을 발굴하기 전 연습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연습용 무덤에서 금관과 천마도가 튀어나오면서 한국 고고학사에서 가장 유명한 발굴 중 하나가 됐다.
  • 황남대총은 봉분 두 개가 붙어 있어서 멀리서도 다른 무덤과 구분하기 쉽다.
  • 미추왕릉은 전승상 신라 왕릉이지만 실제 피장자가 미추왕이라는 것을 직접 증명하는 묘지명 같은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 현재 천마총 내부에 전시된 유물 가운데 상당수는 복제품이며 주요 진품은 국립경주박물관 등에 보관되어 있다.
  • 신라 금관은 왕관이라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 착용 방식이나 용도에 대해서는 여러 연구가 있다. 생전에 착용한 관인지, 장례를 위한 부장용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 대릉원은 묘지인데 분위기가 상당히 평화롭다. 잔디와 나무, 산책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역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그냥 공원처럼 돌아다니는 경우가 많다.
  •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완전히 정비된 관광공원 모습은 아니었다. 경주관광개발사업을 거치면서 고분 주변 민가와 시설을 정리하고 현재의 대릉원 경관을 만들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