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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형무소역사관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는 역사박물관이자 옛 감옥 유적이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었던 서대문형무소의 옥사와 사형장, 보안과 청사 등을 보존·복원해 1998년 11월 5일 역사관으로 개관했다.

흔히 유관순이 수감되었던 감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 역사는 그것보다 훨씬 길다. 1908년 경성감옥으로 문을 연 뒤 서대문감옥, 서대문형무소를 거쳐 해방 이후에도 서울형무소, 서울교도소, 서울구치소라는 이름으로 1987년까지 약 80년 동안 계속 감옥으로 사용됐다. 일제가 독립운동가를 잡아넣던 공간이 해방 뒤에는 정치범과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가두는 공간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한국 근현대사의 감옥 역사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워낙 유명한 역사교육 코스라서 이름만 들으면 초중고 현장학습 단골 관광지 정도로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 가 보면 일반적인 박물관과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전시품 몇 개 유리장 안에 넣어놓은 곳이 아니라 사람이 실제로 갇혔던 옥사와 감방, 감시시설, 노역장, 사형장을 직접 걸어다니는 구조라 공간 자체가 전시물이다.

역사

서대문형무소의 시작은 대한제국 말기까지 올라간다. 1907년 한일신협약 이후 한국의 사법권을 장악해가던 일본 제국 통감부는 일본식 감옥제도를 도입하면서 현저동에 대규모 근대식 감옥을 건설했다. 1908년 경성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으며,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으로 설명되는 시설이다. 처음부터 수용 규모가 약 500명에 달했는데 당시 기준으로는 상당히 큰 감옥이었다.

처음에는 의병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을 대거 수감했고, 국권을 빼앗긴 이후에는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는 대표적인 시설로 자리잡았다. 수감자가 계속 늘어나자 1912년 지금의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경성감옥이 만들어졌고, 기존 현저동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이름을 바꿨다. 1923년에는 다시 서대문형무소로 개칭되었다.

시기 명칭
1908년 경성감옥
1912년 서대문감옥
1923년 서대문형무소
1945년 서울형무소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
1987년 서울구치소 이전, 감옥 기능 종료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개관

일제강점기

일제강점기에는 사실상 조선의 대표적인 정치범 수용소 역할을 했다. 105인 사건, 3.1 운동, 6.10 만세 운동, 광주학생항일운동, 의열투쟁,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 등 굵직한 항일운동에 관련된 사람들이 줄줄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특히 3.1 운동 이후에는 감옥이 문자 그대로 터져나갈 지경이 되었다. 1919년 말 서대문감옥 전체 수감자가 3,000명을 넘었는데 당시 시설의 정상적인 수용능력은 500명 안팎이었다. 관련 수형기록을 연구한 결과 1919~1920년 3.1 운동 때문에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것으로 확인되는 사람만 1,000명이 넘는다. 감방에 사람이 몇 명 들어가는 수준이 아니라 수십 명이 함께 갇혀 제대로 눕기도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늘어난 수감자를 처리하기 위해 1920년대에는 옥사와 중앙사, 공장 등이 대규모로 증축되었다. 현재 서대문형무소를 상징하는 붉은 벽돌 건물 상당수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감방을 방사형으로 배치하고 가운데 중앙사에서 여러 옥사를 동시에 감시하는 구조를 사용했는데, 적은 수의 간수로 많은 수감자를 통제하기 위한 전형적인 근대 감옥 방식이다.

독립운동가라고 해서 그냥 가둬놓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취조 과정에서 각종 고문이 이루어졌고, 수감 뒤에는 강제노역과 열악한 위생·급식 환경에 시달렸다. 수감자들은 의류와 각종 생활용품 등을 생산하는 작업에 동원되었으며 전쟁이 확대된 뒤에는 군수물자 생산에도 노동력이 이용되었다.

대표적인 수감자로는 김구, 안창호, 손병희, 한용운, 여운형, 강우규, 이회영, 유관순 등이 있다. 이 정도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본 이름들이 한 감옥에 거의 다 모여 있었다고 해도 될 정도다.

유관순은 1919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한 뒤 이곳 여옥사 8호 감방에 수감되었다. 같은 방에는 유관순뿐 아니라 여러 여성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갇혀 있었다. 여옥사는 한때 철거되었으나 옛 도면과 발굴조사를 바탕으로 복원되었고 현재 8호 감방을 볼 수 있다.

독립운동가 강우규 등에게 사형이 집행된 사형장도 남아 있다. 사형장에는 교수형을 집행하던 시설과 시신을 수습하는 지하공간이 있었으며, 역사관 설명에 따르면 처형된 사람의 시신을 외부로 옮기기 위해 사용한 통로인 시구문도 존재한다.

해방 이후

여기서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부분이 있는데, 1945년 광복됐다고 서대문형무소가 문을 닫은 게 아니다.

해방 직후 서울형무소로 이름만 바뀌어 계속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1961년 서울교도소, 1967년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고 1987년까지 현역 교정시설이었다. 즉 일제강점기보다 해방 이후 사용된 기간도 40년이 넘는다.

이 시기에는 일반 형사범뿐만 아니라 좌우익 정치사건 관련자와 반정부 인사, 민주화운동 인사 등이 수감되었다. 이승만 정부 시절 진보당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조봉암도 이곳에서 처형됐고, 박정희 정부 때인 1975년에는 인민혁명당 사건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이 확정된 8명이 판결 확정 다음 날 이곳에서 처형되었다. 이후 재심에서 이들에게 무죄가 선고되면서 한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법살인 사건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리영희를 비롯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도 이곳을 거쳐갔다. 그래서 현재 역사관 전시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만 다루지 않고 해방 이후 권위주의 정권 시기의 정치적 탄압과 민주화운동까지 함께 다룬다.

1987년 11월 서울구치소가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하면서 약 80년에 걸친 감옥의 역사가 끝났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시설 상당수가 철거되었다. 당시 남아 있던 건물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높은 일부를 보존하기로 했고, 현재 남은 원형 시설은 옛 형무소 전체의 일부에 해당한다. 따라서 지금 역사관에 보이는 시설이 전부 1908년 당시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며, 원래 건물과 이후 복원된 시설이 함께 존재한다.

1988년 옥사와 사형장 등을 포함한 시설이 사적 제324호 '서울 구 서대문형무소'로 지정되었다. 현재 국가유산 지정 면적은 약 4만 1천㎡이다. 주변 지역은 정비를 거쳐 1992년 서대문독립공원으로 문을 열었고, 1998년 11월 5일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이 정식 개관했다.

주요 시설

역사관의 중심 건물은 옛 보안과 청사다. 과거 형무소 행정과 수감자 취조 업무를 담당하던 곳으로 현재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와 독립운동, 수감자 기록 등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사용된다. 지하에는 실제 취조 공간을 활용한 고문 관련 전시가 있다.

민족저항실에는 의병운동부터 광복까지의 독립운동과 일제의 탄압을 다룬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수감자들의 사진과 신상정보가 적힌 수형기록카드 약 4,800장이 벽면에 전시되어 있는데, 유명 독립운동가 몇 명만 보여주는 방식이 아니라 당시 감옥에 갇혔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인상이 강하다.

중앙사는 여러 옥사를 감시하고 통제하던 간수들의 근무공간이다. 중앙에서 복도가 뻗어나가고 양옆에 감방이 이어지는 구조라 간수가 한 자리에서 여러 옥사의 상황을 감시할 수 있었다.

11옥사와 12옥사 등에는 실제 수감자들이 생활했던 감방이 남아 있다. 감방 내부도 일부 들어가 볼 수 있는데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좁다. 3.1 운동처럼 체포자가 폭증했을 때에는 이런 공간에 정원을 훨씬 넘는 사람들이 수감됐다.

공작사는 수감자들이 강제노역을 하던 공간이다. 일제가 수감자 노동력을 이용해 각종 물품을 생산했던 기록과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격벽장은 수감자들이 운동할 때 서로 대화하지 못하도록 벽으로 공간을 잘게 나눈 시설이다. 부채꼴 모양으로 여러 칸을 만들고 각 칸에 사람을 따로 넣어 운동시켰다. 운동을 시켜주면서도 서로 말 한마디 못하게 만든 것을 보면 감옥 운영이 얼마나 철저하게 감시와 격리를 중심으로 설계됐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시설은 옛 자료를 바탕으로 복원된 것이다.

여옥사는 여성 수감자를 가두던 공간으로,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기록을 전시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곳은 유관순이 갇혔던 8호 감방이다. 기존 여옥사는 1970년대에 철거되었으나 이후 발굴조사와 설계도면을 토대로 복원되었다.

사형장은 일제강점기부터 서울구치소 시절까지 실제 사형 집행에 사용된 목조건물이다.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내부를 볼 수 없게 되어 있으며, 건물 내부에 교수형 시설과 시신을 수습하던 공간이 남아 있다. 단순히 모형을 갖다놓은 전시관이 아니라 실제 사형장이었던 건물이라 역사관에서 가장 분위기가 무거운 장소 중 하나다.

사형장 주변에는 시구문이라 불리는 통로가 있다. 역사관에서는 사형자의 시신을 외부로 반출하기 위해 사용했던 통로로 설명하고 있다.

담장과 망루도 일부 남아 있다. 원래 형무소 전체를 높은 벽돌담이 둘러싸고 있었으며 곳곳의 망루에서 감옥 안팎을 감시했다. 현재 남아 있는 담장과 망루 덕분에 외부에서 봐도 이곳이 원래 감옥이었다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특징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의 가장 큰 특징은 독립운동 관련 유물보다도 공간 자체에 있다. 독립운동 관련 전시만 보려면 독립기념관이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처럼 자료가 훨씬 많은 시설도 있지만, 실제 독립운동가들이 갇혔던 감방과 취조실, 노역장, 사형장을 그대로 걸어볼 수 있는 곳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또한 이곳을 단순히 '일본이 조선인을 고문한 감옥'으로만 이해하면 역사의 절반 정도만 보게 된다. 1945년 이후에도 이곳은 국가가 사람을 수감하고 때로는 정치범을 처벌하거나 사형시키던 공간이었다. 역사관에서도 이 부분을 별도로 다루고 있으며, 덕분에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 이후 권위주의 시대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를 하나의 장소를 통해 볼 수 있다.

보존 과정 자체도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1987년 서울구치소가 이전할 당시 기존 시설의 상당 부분이 이미 철거됐고, 이후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건물을 중심으로 보존과 복원이 진행되었다. 현재의 서대문형무소는 원형 건축물, 복원 건축물, 철거된 건물의 터가 섞여 있는 형태다.

서대문독립공원 안에 있기 때문에 독립문, 독립관, 순국선열추념탑 등을 같이 볼 수 있으며, 바로 인근에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도 있다. 한국 근현대사 관련 장소들이 상당히 좁은 지역에 몰려 있어서 제대로 보면 반나절 정도는 그냥 지나간다.

관람

주소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이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에서 내리면 바로 갈 수 있어 접근성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2026년 기준 관람시간은 3월부터 10월까지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11월부터 2월까지 오전 9시 30분~오후 5시다.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에는 휴관하며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다음 날 휴관한다.

입장료는 일반 성인 3,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이다. 6세 이하, 65세 이상, 장애인과 국가유공자 등은 조건에 따라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실내 전시관만 대충 훑으면 금방 볼 수도 있지만 이곳은 옥사와 공작사, 여옥사, 격벽장, 사형장 등 야외에 흩어진 시설을 직접 돌아다녀야 해서 실제 관람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역사 설명까지 천천히 읽는다면 최소 1시간 30분에서 2시간 정도 잡는 것이 낫다.

여담

  • 이름 때문에 서대문역 근처에 있을 것 같지만 실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독립문역이다. 서대문역에서 걸어가려고 하면 생각보다 멀다.
  • 바로 옆의 독립문 때문에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문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독립문은 1897년 건립된 것으로 당시 의미는 주로 청나라와의 전통적인 사대관계에서 벗어난 자주독립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서대문형무소보다 먼저 생겼다.
  • 붉은 벽돌 건물과 높은 담장이 워낙 인상적이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일제강점기 감옥을 다룰 때 떠올리기 쉬운 장소다. 다만 현재 남아 있는 시설 중에는 원형 건물뿐 아니라 철거 후 복원된 건물도 있으므로 모든 공간이 일제강점기부터 그대로 남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 광복절과 3.1절 무렵에는 각종 기념행사와 특별 프로그램이 열리는 경우가 많아 평소보다 관람객이 크게 늘어난다.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