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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역사유적지구경상북도 경주시 일대에 분포한 신라 시대의 궁궐, 왕릉, 사찰터, 불교 조각, 산성 등을 묶어 지정한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영어 명칭은 Gyeongju Historic Areas이며,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하나의 유적만 지정된 것이 아니라 경주 도심과 남산 일대에 흩어진 여러 유적을 남산지구, 월성지구, 대릉원지구, 황룡사지구, 산성지구의 5개 구역으로 묶은 연속유산이다.

불국사석굴암처럼 경주에 있다고 해서 전부 이 세계유산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이미 1995년에 별도의 세계유산으로 먼저 등재됐고,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신라 수도였던 경주 시내와 주변 지역의 유적을 하나의 역사도시 체계로 묶은 것이다.

경주는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유적지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왕궁터 옆에 천문대가 있고, 조금만 걸어가면 왕릉이 나오며, 다시 산에 올라가면 바위에 부처가 새겨져 있다. 현대 도로와 상점 사이에 고분이 툭툭 튀어나오는 것도 다른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다.

구성

유네스코에 등재된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총 5개 구역으로 구성된다.

지구 주요 유적
남산지구 경주 남산 일대 불상·석탑·절터, 포석정지, 서출지 등
월성지구 경주 월성, 동궁과 월지, 첨성대, 계림
대릉원지구 대릉원, 천마총, 황남대총 등 신라 왕릉·고분군
황룡사지구 황룡사지, 분황사
산성지구 명활산성

전체 세계유산 등재면적은 약 2,880ha이고 완충구역은 약 350ha다.

남산지구

남산지구는 경주 남쪽의 경주 남산 일대에 퍼진 불교유적과 왕릉, 절터 등을 포함한다.

경주 남산은 그냥 산 하나가 아니라 신라 불교유적이 산 전체에 박혀 있는 곳에 가깝다. 유네스코 등재 당시 조사된 것만 해도 절터 122곳, 석불 53구, 석탑 64기, 석등 16기 등이 확인됐다.

산길을 걷다 보면 바위에 새긴 마애불이 나오고, 조금 더 가면 무너진 절터와 석탑이 나오며, 다시 다른 능선을 타면 왕릉이나 불상이 나온다.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배리 석불입상, 각종 마애불과 절터 등이 있다.

남산지구에는 불교유적뿐 아니라 포석정지, 서출지, 남산산성 등도 포함되어 있어 신라의 종교·생활·왕실문화를 함께 보여준다.

포석정은 신라 왕실의 연회장으로 유명한 곳이다. 물길을 따라 술잔을 띄우며 시를 짓고 놀았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지만, 단순한 유흥시설이 아니라 제의공간과 연관됐을 가능성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남산 전체가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는 표현이 괜히 나오는 것이 아니다.

월성지구

월성지구는 신라 왕궁과 왕실 관련 시설이 집중되어 있던 경주의 정치 중심지다.

핵심은 경주 월성이다. 성의 형태가 초승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월성이라 부르며, 신라 왕궁이 있던 곳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파사 이사금 때 성을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후 오랫동안 왕궁으로 사용됐다.

현재 지상에는 당시 궁궐 건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장기간 발굴조사를 통해 건물터, 도로, 생활유물, 목간 등이 계속 발견되고 있다.

바로 옆에는 첨성대가 있다. 선덕여왕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천문 관측시설로, 현존하는 동아시아 천문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축에 들어간다.

계림도 월성지구에 포함된다. 신라 김씨 왕실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숲이다.

동궁과 월지 역시 이 지구에 있다. 예전에는 안압지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했으나 발굴된 신라 문헌 자료 등을 바탕으로 현재는 동궁과 월지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신라 왕실의 별궁과 연못이 있었던 곳이며, 발굴 과정에서 기와, 목간, 생활용품, 불교 관련 유물 등 엄청난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

지금 관광객이 보는 건물 대부분은 복원 건물이지만 연못 자체와 발굴유적은 신라 왕실 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대릉원지구

대릉원지구는 신라 왕과 귀족들의 대형 무덤이 집중되어 있는 지역이다.

경주 시내에서 가장 눈에 띄는 풍경 중 하나가 바로 잔디가 덮인 거대한 봉분들인데, 이게 대부분 신라 고분이다.

대표적인 곳은 대릉원이며 내부에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 있다.

신라 고분 상당수는 돌무지덧널무덤 구조를 사용했다. 나무로 널과 덧널을 만들고 그 위를 엄청난 양의 돌과 흙으로 덮었기 때문에 도굴이 쉽지 않았다.

덕분에 발굴된 무덤에서는 금관, 금제 허리띠, 유리제품, 토기 등 상당히 화려한 부장품이 발견됐다.

천마총에서는 천마도가 발견됐고, 황남대총에서는 금관을 비롯한 수많은 금속공예품이 출토됐다.

신라를 흔히 '황금의 나라'라고 부르는 이미지도 이런 고분에서 나온 금관과 장신구 때문에 생겼다고 보면 된다.

무덤군의 규모가 워낙 커서 현대 경주 시가지 한복판에서 고분 사이로 길과 주택가가 이어지는 풍경이 만들어졌다.

황룡사지구

황룡사지구황룡사지분황사를 중심으로 한다.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때 창건된 국가적 규모의 사찰이었다. 신라 불교와 왕권을 상징하는 핵심 사찰이었으며 부지 규모만 약 72,500㎡에 달했다.

선덕여왕 때에는 자장의 건의로 거대한 황룡사 구층목탑이 세워졌다. 기록상 높이가 약 80m에 달했다고 전해지며 당시 동아시아에서도 엄청난 규모의 목조건축물이었다.

하지만 1238년 몽골 제국의 침입 과정에서 불타 없어졌다.

현재는 건물이 남아 있지 않고 거대한 초석과 절터만 남아 있지만, 오히려 그 초석의 크기와 배치만 봐도 당시 규모가 얼마나 컸는지 감이 온다.

옆의 분황사는 선덕여왕 때 창건되었으며, 현재 남아 있는 분황사 모전석탑으로 유명하다.

분황사 모전석탑은 벽돌처럼 다듬은 돌을 쌓아 만든 독특한 형태다. 원래 몇 층이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현재는 3층만 남아 있다.

황룡사와 분황사는 신라 왕실이 불교를 국가 통치와 연결해 사용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이다.

산성지구

산성지구명활산성을 중심으로 한다.

명활산성은 경주 동쪽 명활산에 쌓은 산성으로, 신라 수도를 방어하는 중요한 군사시설이었다.

신라는 경주분지 주변의 산과 고개에 여러 방어시설을 설치했는데 명활산성은 동쪽 방어를 담당했다.

5세기에는 한때 신라 왕이 월성을 떠나 명활산성에 머물렀다는 기록도 있을 정도로 중요한 시설이었다.

이후에도 수도 방어와 군사적 거점으로 사용됐다.

경주 역사유적지구의 다른 네 구역이 왕궁, 무덤, 불교시설 중심이라면 산성지구는 신라 수도가 실제로 어떻게 방어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구역이다.

세계유산 등재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2000년 제2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유네스코는 경주 일대가 신라의 불교미술과 건축, 왕궁, 무덤, 도시구조 등을 매우 높은 밀도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특히 7세기부터 10세기 사이 발전한 신라문화의 불상, 마애불, 석탑, 사찰터, 왕궁터 등이 한국 불교미술과 건축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 인정됐다.

등재기준은 (ii)와 (iii)이다.

  • 기준 (ii) - 건축과 불교미술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문화적 교류와 발전을 보여준다.
  • 기준 (iii) - 거의 천 년 동안 이어진 신라문명을 보여주는 뛰어난 역사적 증거다.

경주는 기원전 57년부터 935년까지 약 천 년 동안 신라의 수도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삼국통일 이후에는 한반도의 정치·문화 중심도시 중 하나로 크게 성장했다.

이 때문에 특정 시대의 유적 하나만 남은 것이 아니라 왕궁, 무덤, 사찰, 천문시설, 산성, 생활유적이 한 도시 안에 같이 남아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다만 세계유산 구역이 현재 경주시 한복판에 걸쳐 있기 때문에 보존과 도시개발 사이의 충돌도 계속되는 문제다. 건물 높이, 도로, 차량, 관광시설 등이 역사경관을 훼손하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유네스코 역시 도심에 위치한 월성·대릉원·황룡사지구의 경우 주변 개발과 교통량이 유산의 경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주의 역사도시 구조

경주 역사유적지구가 재미있는 이유는 각각의 유적을 따로 보는 것보다 서로의 위치 관계를 보면 훨씬 이해하기 쉽다는 데 있다.

월성에는 왕이 살고, 그 주변에는 국가 사찰인 황룡사와 분황사가 있었으며, 왕과 귀족이 죽으면 대릉원 일대의 거대한 무덤에 묻혔다.

남쪽 남산에는 수많은 사찰과 불상, 제의공간이 들어섰고 도시 외곽의 산성은 수도를 방어했다.

즉 유적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신라 수도의 정치·종교·장례·군사 시스템을 함께 보여준다.

현대 도시로 치면 대통령궁, 종교시설, 공동묘지, 군사시설, 공원이 수백 년 뒤 모두 유적으로 남아 한꺼번에 세계유산이 된 셈이다.

이런 이유로 유네스코에서도 경주 역사유적지구 전체가 신라 수도의 도시구조와 사회생활을 보여준다고 평가한다.

관람

경주 역사유적지구는 하나의 입구에서 표를 끊고 들어가는 관광지가 아니다.

5개 지구가 경주 시내와 주변 산악지역에 넓게 분산되어 있어 각각 따로 방문해야 한다.

가장 접근하기 쉬운 곳은 대릉원과 월성지구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경주 월성, 동궁과 월지가 비교적 가까이 몰려 있어 걸어서 연결할 수 있다. 황리단길도 바로 옆이라 경주 관광에서 가장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구역이다.

대략

대릉원 → 첨성대 → 계림 → 월성 → 동궁과 월지

정도로 이어서 걸으면 경주 핵심 유적 상당수를 한 번에 볼 수 있다.

황룡사지와 분황사도 월성지구에서 멀지 않지만 도보로 전부 연결하면 걷는 거리가 꽤 길어진다.

반면 남산지구는 사실상 별도의 등산 일정으로 생각하는 편이 낫다. 남산 전체에 유적이 흩어져 있어서 제대로 보려면 등산로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명활산성 역시 일반적인 경주 시내 관광 동선에서는 약간 떨어져 있다.

각 유적의 입장료와 관람시간도 서로 다르다. 대릉원처럼 유료 또는 운영시간이 있는 시설이 있는 반면 첨성대 주변처럼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곳도 있으므로 방문 전에 각 시설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여담

  • 불국사석굴암은 경주에 있지만 경주 역사유적지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둘은 1995년에 석굴암과 불국사라는 별도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세계유산 구역 안과 밖을 별 의식 없이 계속 넘나들게 된다. 유적들이 현대 도시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대릉원 일대의 거대한 고분들은 경주의 대표적인 도시경관이 됐다. 다른 도시였다면 재개발한다고 밀렸을 법한 위치에 왕릉이 떡하니 남아 있다.
  • 황룡사 구층목탑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복원 모형이나 CG를 실제 복원된 건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현재 황룡사지는 말 그대로 절터다.
  • 경주 남산에는 불교유적이 너무 많아서 한 번 방문해서 전부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등산코스별로 여러 차례 나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 신라 천 년 수도라는 이미지 때문에 경주 전체가 세계유산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등재지역은 지정된 5개 지구에 한정된다.
  • 대릉원, 월성, 황룡사지구는 서로 상당히 가까워서 신라 왕궁과 국가 사찰, 왕릉이 어떤 거리 관계에 있었는지 직접 걸으면서 볼 수 있다.
  • 유네스코 공식 등록명은 Gyeongju Historic Areas다. 한국어로는 일반적으로 경주 역사유적지구라고 부른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