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국사편찬위원회(國史編纂委員會,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는 대한민국 교육부 소속의 국가 역사연구기관으로, 한국사에 관한 사료의 조사와 수집, 보존과 편찬, 역사연구와 교육자료의 보급 등을 담당한다. 약칭은 국편이며,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에 위치하고 있다.
1946년 3월 23일 국사관(國史館)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49년 국사편찬위원회로 개편되었다. 8·15 광복 이후 한국의 역사를 독자적으로 연구하고 역사자료의 소실을 방지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부터 활동한 역사연구기관이라는 특징이 있다.
주요 업무는 한국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역사자료를 확보하고 이를 일반 국민과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고문서와 고서, 신문과 사진, 구술자료 및 해외에 보관된 한국 관련 기록 등을 조사하고 수집하며, 수집한 자료를 편찬하거나 디지털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한다.
일반인들에게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시행하는 기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여러 업무 가운데 하나일 뿐이며, 역사학계에서는 방대한 사료를 제공하는 기관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대표적인 서비스로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왕조실록 전산화 서비스, 승정원일기 데이터베이스, 우리역사넷, 전자사료관과 역사지리정보 데이터베이스 등이 있다. 이러한 서비스는 전문 연구자뿐 아니라 학생과 교사, 일반 국민들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조선 시대의 인물이나 사건을 조사할 때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검색하면 당시 작성된 기록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근현대사를 연구할 때에는 신문과 정부문서, 독립운동 관련 자료 등을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검색할 수 있다.
한국사의 수많은 1차 사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일반인들도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관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모든 자료가 기관에서 직접 작성한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와 같은 기록은 수백 년 전에 작성된 역사자료이며,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를 정리하고 번역하거나 디지털 서비스로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국사편찬위원회가 역사와 관련된 모든 사실을 최종적으로 판정하는 기관인 것도 아니다. 역사학은 여러 사료의 비교와 비판, 학자들 사이의 연구와 논쟁을 통해 발전하는 학문이므로, 국가기관이 어떤 내용을 발표했다고 해서 모든 학문적 논쟁이 종결되는 것은 아니다.
2026년 10월 현재 국사편찬위원장은 허동현이다. 그는 2024년 5월 7일 제16대 위원장으로 취임했다.[1]
기본 정보
| 국사편찬위원회 | |
|---|---|
| 한자 | 國史編纂委員會 |
| 영문 |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 |
| 약칭 | 국편, NIKH |
| 설립일 | 1946년 3월 23일 |
| 설립 당시 명칭 | 국사관(國史館) |
| 현재 명칭 사용 | 1949년 |
| 국가 | 대한민국 |
| 소속 | 교육부 |
| 기관 성격 | 국가 역사연구기관, 행정위원회 |
| 위원장 | 허동현 (제16대, 2024년 5월 7일 취임) |
| 위원장 직급 | 차관급 정무직 |
| 주요 업무 | 한국사 사료의 조사·수집·보존·편찬, 역사연구, 역사교육 및 한국사 보급 |
| 대표적인 사업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 전산화, 우리역사넷,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 소재지 |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 |
| 공식 홈페이지 | www.history.go.kr |
명칭
국사편찬위원회는 한자로 國史編纂委員會라고 표기한다.
여기서 국사(國史)는 나라의 역사를 의미하며, 편찬(編纂)은 여러 기록과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여 책이나 문헌을 만든다는 뜻이다. 따라서 국사편찬위원회라는 명칭은 국가의 역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고 편찬하는 기관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영문 명칭은 National Institute of Korean History다. 이를 직역하면 한국사 연구기관 또는 국립 한국사연구소에 가까운 의미지만, 공식적인 한국어 명칭은 국사편찬위원회다.
일반적으로는 국편이라는 약칭을 사용한다. 역사학과 역사교육 분야에서는 이 약칭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흔히 사용된다.
기관명에 위원회라는 표현이 포함되어 있지만 단순히 여러 전문가들이 가끔 회의를 진행하는 자문위원회는 아니다. 상근 공무원과 역사연구 인력이 근무하면서 사료 수집과 편찬, 연구자료의 전산화 및 시험 운영 등 실질적인 행정업무와 연구사업을 수행한다.
역사
일제강점기의 조선사편수회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를 이해하려면 일제강점기의 조선사편수회와의 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부가 설치한 역사편찬기관이다. 1922년 조선사편찬위원회로 출발했으며, 1925년 6월 조선사편수회로 개편되었다.
일제는 한국을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한국의 역사와 사회, 제도와 관습을 조사했다. 이러한 작업에는 식민지배에 필요한 행정적인 정보의 확보뿐 아니라 일본의 식민통치를 역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목적도 존재했다.
조선사편수회는 한국과 일본, 중국 등 여러 지역에서 한국사 관련 문헌과 고문서를 수집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사》와 《조선사료총간》, 《조선사료집진》 등의 자료집을 편찬했다.
그러나 조선사편수회의 연구와 편찬사업은 조선총독부의 식민지배 아래에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기관의 연구방향과 역사해석에 식민통치의 정치적 목적이 반영되었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우리역사넷 역시 조선사편수회가 관 주도의 역사연구를 통해 식민통치에 필요한 역사서술을 주도했다고 설명한다.[2]
광복 이후 사료 인수
1945년 8·15 광복 이후 조선총독부의 여러 기관은 폐지되거나 개편되었다.
조선사편수회 역시 해체되었지만, 그동안 수집한 역사자료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한국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필요한 고문서와 자료들이 분산되거나 소실될 위험이 존재했다.
조선사편수회에서 근무했던 역사학자 신석호 등은 이러한 자료를 보존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했다.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의 전신인 국사관이 조선사편수회의 소장자료를 인수했다.
이 사실은 오늘날 국사편찬위원회가 식민지 시기의 역사자료와 일정한 연결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료를 인수했다는 사실과 조선사편수회의 정치적 목적이나 역사관을 그대로 계승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수집된 역사자료 가운데에는 실제 연구에 중요한 원문과 고문서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한 자료를 보존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하는 일은 식민사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는 다르다.
1946년 국사관 설립
1946년 3월 23일 국사관(國史館)이 설립되었다.
초대 국사관장은 신석호였다.
당시는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되기 전으로, 한반도 남부에서는 미군정이 실시되고 있었다.
국사관은 한국사 연구에 필요한 자료를 보존하고 역사편찬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광복 이전에 조선총독부와 관련 기관들이 관리했던 자료를 확보하고, 새로운 한국사 연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국사관의 설립은 광복 이후 한국인이 자신의 역사를 연구하고 편찬하는 국가적 체계를 새롭게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다만 설립 초기의 연구인력과 보유자료 가운데 일부는 일제강점기의 역사연구기관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러한 인적·자료적 연속성은 국사편찬위원회의 초기 역사와 관련하여 연구되는 주제 가운데 하나다.
1949년 국사편찬위원회 개편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으며, 1949년 국사관은 국사편찬위원회로 개편되었다.
당시에는 문교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임하는 체제가 운영되었다.
이러한 조직체계는 1965년 전임 위원장제도가 실시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 연구의 기초가 되는 사료를 정리하고 편찬하는 국가기관으로 발전했다.
이후 고대사와 고려사, 조선사와 근현대사 등 여러 시대의 사료를 수집하고 관련 연구자료를 발간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국사편찬위원회가 1946년 국사관으로 출범하여 1949년 개편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과 《비변사등록》, 《승정원일기》 등 여러 역사자료의 편찬에 관여했다고 설명한다.[3]
조선왕조실록 간행
1950년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간행하는 사업이 진행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1955년부터 1958년까지 《조선왕조실록》 48책의 영인본을 간행했다.
영인본은 기존 문헌의 원본을 사진 등의 방식으로 복제하여 출판한 책이다.
당시에는 인터넷이나 디지털 검색서비스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역사자료를 이용하려면 실제 문헌이나 영인본을 열람해야 했다.
따라서 방대한 역사기록을 영인하여 연구기관과 도서관에 보급하는 것은 한국사 연구를 위한 중요한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의 국역과 전산화가 진행되면서 일반인들도 온라인에서 내용을 검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1965년 전임 위원장제
1965년에는 전임 위원장제도가 실시되었다.
이전에는 문교부 장관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했지만, 이후에는 별도의 전임 위원장이 기관을 운영하게 되었다.
초대 전임 위원장은 김성균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편찬과 연구사업을 보다 독립적이고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조직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별도의 위원장을 두었다는 사실이 정부의 행정적 영향력이나 역사정책과의 관계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여전히 국가기관으로서 법률과 정부의 예산 및 행정체계에 따라 운영되었다.
1987년 법률 제정과 과천 이전
1987년에는 「사료의 수집 및 보존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 법률은 한국사의 연구에 필요한 사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며 보존하는 국가적 사업의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같은 해 국사편찬위원회는 경기도 과천시의 청사로 이전했다.
이후 한국사 연구와 사료관리, 편찬사업을 담당하는 기관으로서 활동을 이어갔다.
법률의 명칭은 이후 개정되어 현재는 「사료의 수집·편찬 및 한국사의 보급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이 법률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설치와 업무, 위원회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1999년 한국사데이터베이스
1999년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의 웹서비스를 시작했다.
이는 방대한 역사자료를 인터넷을 통해 일반 국민과 연구자들에게 제공하는 사업이었다.
과거에는 문헌을 직접 열람하거나 책으로 출판된 자료집을 찾아야 했지만, 인터넷을 이용하면 특정 인물이나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검색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근현대 신문과 각종 사료의 전산화가 확대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역사자료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00년대 이후
2001년에는 해외에 소재한 한국사 자료의 수집사업과 북한 지역의 역사자료 관련 협력사업 등이 추진되었다.
또한 역사자료를 전산화하고 연구자와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정보서비스가 점차 확대되었다.
2006년에는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시행되기 시작했다.
이후 국사편찬위원회는 사료의 수집과 편찬뿐 아니라 역사교육과 한국사 대중화 사업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주요 업무
국사편찬위원회의 주요 업무는 사료의 조사와 수집, 보존과 편찬, 역사연구와 자료정보화, 한국사 교육과 보급으로 나눌 수 있다.
사료의 조사와 수집
사료(史料)는 과거의 사건과 사회를 연구하는 데 활용되는 기록과 유물 등의 자료를 의미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국내외에 보관된 한국사 관련 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한다.
대표적인 대상으로는 고문서와 고서, 편지와 일기, 공문서와 신문, 사진과 구술자료 등이 있다.
또한 개인과 가문, 학교와 단체 등에 보관된 역사자료를 조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자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거나 소실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소재를 확인하고 목록을 작성하며 필요한 경우 복제하거나 보존조치를 진행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정 자료를 원래의 소장처에서 반드시 가져와야만 연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유자와 협의하여 사진이나 디지털 복제본을 확보하고 연구에 활용하는 방법도 존재한다.
해외 소재 한국사 자료
한국사와 관련된 자료가 모두 대한민국 영토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 미국과 러시아 등 여러 국가의 도서관과 기록관에도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문서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구한말의 외교문서와 외국인의 여행기록, 일제강점기 관련 자료, 6·25 전쟁 당시의 군사·외교문서 등은 해외에서 보관되는 경우가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러한 자료를 조사하고 복제하여 국내 연구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사업을 진행한다.
그러나 해외에서 수집한 자료가 모두 원본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 원본은 외국의 기록관에 남아 있고 국사편찬위원회에서는 사진이나 마이크로필름, 디지털 복제본을 보유하는 경우도 있다.
사료의 편찬
수집한 역사자료는 원문을 정리하고 해제와 주석을 작성하거나 주제별로 분류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 편찬된다.
오래된 한문 문헌은 글자와 문장의 해석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며, 근현대 문서에서도 옛 표기법과 전문용어를 해석해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이러한 자료의 내용을 확인하고 연구자들이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정리한다.
그러나 사료를 편찬하는 과정에서 자료의 일부를 선별하거나 분류하는 행위에는 연구자의 판단이 개입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연구에서는 가능하면 편찬된 자료집뿐 아니라 실제 원문과 원본의 성격, 자료가 작성된 배경 등을 함께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연구
국사편찬위원회는 여러 시대의 한국사를 연구하고 관련 자료를 발간한다.
고대사와 고려사, 조선사와 근현대사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이루어지며, 연구성과는 학술서와 자료집, 데이터베이스 등의 형태로 제공된다.
다만 국사편찬위원회가 모든 한국사 연구를 독점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과 학회, 박물관과 연구소 및 개인 연구자들도 독립적으로 역사연구를 수행한다.
또한 학술적인 논쟁에서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연구결과 역시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검토되고 비판될 수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 of Korean History)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 자료 검색서비스다.
조선시대의 기록과 근현대 문서, 신문과 독립운동 관련 자료 등 여러 종류의 역사자료를 제공한다.
공식 주소는 db.history.go.kr이다.
주요 자료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는 다음과 같은 다양한 역사자료가 구축되어 있다.
- 고대사와 고려사, 조선사 관련 문헌
- 개항기와 대한제국 시기의 외교·행정자료
- 일제강점기의 신문과 독립운동 관련 문서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의 역사자료
- 해외에서 수집한 한국 관련 공문서
- 주제별 역사자료집과 각종 사료의 해제
이러한 자료를 검색하면 연구자가 실제 사료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일반 국민도 대학도서관이나 기록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 역사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료가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자료에 따라 한문이나 일본어, 영어 등의 원문만 제공될 수 있으며, 일부 자료는 이미지나 목록 중심으로 제공되기도 한다.
역사연구에서의 활용
예를 들어 대한제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하려면 당시의 외교문서와 외국 정부의 기록을 비교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사회운동을 연구할 때에는 당시 신문기사와 경찰 및 행정기관의 문서를 참고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자료에 기록된 내용이 언제나 객관적인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신문기사는 당시의 정치적 입장과 편집방향을 반영할 수 있으며, 정부문서 역시 작성기관의 이해관계와 목적에 따라 사실을 선택하거나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사데이터베이스는 역사적인 주장의 근거를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이지만, 특정한 기록이 검색된다는 사실만으로 그 기록의 모든 내용이 사실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대표적인 역사자료 가운데 하나는 《조선왕조실록》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의 역대 국왕들의 재위기간 동안 발생한 정치와 사회, 경제와 외교 등에 관한 사실을 편년체로 기록한 역사서다.
태조부터 철종까지의 실록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왕조의 정치와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로 활용된다.
《조선왕조실록》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조선왕조실록 온라인 서비스를 통해 한문 원문과 한국어 번역문, 원본 이미지 등을 제공한다.
검색 기능
온라인 서비스에서는 국왕과 날짜, 인물과 사건 등을 기준으로 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특정한 국왕의 재위기간에 어떤 사건이 발생했는지 살펴보거나 특정한 인물이 실록에 몇 차례 등장하는지 검색할 수 있다.
과거에는 수십 권에 이르는 자료를 직접 확인해야 했지만 전산화 이후에는 검색어를 활용해 관련 기록을 비교적 빠르게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검색어를 입력했을 때 원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실제로 해당 사건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동일한 인물의 이름이 한자나 관직명으로 기록되었거나 오늘날 사용하는 사건명과 당시의 표현이 서로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료를 검색할 때에는 현대적인 명칭뿐 아니라 당시 사용된 표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록 기록의 한계
《조선왕조실록》은 중요한 역사자료지만 모든 기록이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실록은 국가적인 기록을 바탕으로 편찬되었으며, 편찬과정에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사관의 판단이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한 후대에 편찬된 실록에서는 이전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평가가 반영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실록에 어떤 인물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가 등장했다고 해서 그 인물이 실제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별도의 검토 없이 확정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이유로 역사학에서는 실록의 기록을 승정원일기와 개인 문집, 외국의 기록 등 다른 사료와 비교하는 방법을 활용한다.
승정원일기
《승정원일기》는 조선시대 승정원에서 작성한 일기 형식의 기록이다.
승정원은 국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여러 행정업무를 처리하던 기관이었다.
승정원일기에는 국왕의 일상적인 정치활동과 신하들과의 대화, 행정명령과 보고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현존하는 기록은 3,243책에 달하며 약 2억 4천만 자 이상의 한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단일 역사기록물로서 상당한 규모이며,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승정원일기 데이터베이스를 운영하며 한문 원문과 표점, 색인 등을 제공한다.
조선왕조실록과의 차이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모두 조선시대의 정치와 사회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그러나 작성목적과 기록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 구분 | 조선왕조실록 | 승정원일기 |
|---|---|---|
| 기록 성격 | 국왕의 재위기간을 중심으로 편찬한 역사서 | 승정원에서 작성한 일상적인 업무기록 |
| 작성방식 | 사후 편찬을 거쳐 실록으로 완성 | 당시의 업무와 발언 등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 |
| 주요 내용 | 정치·외교·사회 등 국가적인 사건과 평가 | 국왕과 신하들의 대화, 보고와 행정업무 |
| 주요 활용 | 시대별 역사적 사건과 국왕의 통치 연구 |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과 구체적인 발언·업무 연구 |
승정원일기는 실록보다 구체적인 대화와 행정처리 과정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승정원일기도 원래 작성된 기록의 일부가 소실되었으며, 현존하는 모든 시기의 기록이 동일한 수준으로 완전하게 보존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료를 이용할 때에는 기록이 남아 있는 시기와 결락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역사넷
우리역사넷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 교육·교양 서비스다.
공식 주소는 contents.history.go.kr이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데이터베이스가 역사자료의 원문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다면, 우리역사넷은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 시대적 배경 등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설명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학생과 교사,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다양한 자료를 제공한다.
한국사 연대기
우리역사넷의 한국사 연대기는 한국사의 주요 사건과 인물을 시대별로 정리한 서비스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는 사건들을 설명하고, 관련된 역사적 배경과 사료 등을 함께 제공한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하거나 특정한 사건의 개요를 알아볼 때에도 활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연대기의 해설은 연구자가 작성한 2차적인 설명이라는 점에서 원문 사료와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문서에 제시된 역사적 해석이 논쟁적인 경우에는 관련된 1차 사료와 다른 연구결과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교과서와 역사교육 자료
우리역사넷에는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에 활용할 수 있는 자료도 제공된다.
역사적인 사건의 배경과 전개, 여러 사료에 대한 해설 등을 통해 한국사를 학습하는 데 도움을 준다.
교사는 수업자료를 준비할 때 이를 참고할 수 있으며, 학생은 교과서에 등장한 사건을 보다 자세히 공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일반인들도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에 관한 설명을 무료로 읽을 수 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한국사에 관한 지식과 이해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으로, 국사편찬위원회가 시행한다.
2006년 처음 시행되었으며, 현재는 공무원 시험과 교원 임용시험, 여러 공공기관의 채용 및 자격요건 등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무원 시험이나 공공기관 채용에서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성적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시험의 활용 여부와 인정등급, 성적 인정기간 등은 각 기관의 규정에 따라 달라진다.
시험 등급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심화와 기본으로 구분된다.
2026년 기준으로 심화시험은 1~3급, 기본시험은 4~6급으로 인증한다.
| 시험 종류 | 인증 등급 | 점수 |
|---|---|---|
| 심화 | 1급 | 80점 이상 |
| 2급 | 70~79점 | |
| 3급 | 60~69점 | |
| 기본 | 4급 | 80점 이상 |
| 5급 | 70~79점 | |
| 6급 | 60~69점 |
심화시험은 객관식 5지선다형 50문항이며, 기본시험은 객관식 4지선다형 50문항이다.
모두 100점 만점으로 평가하지만 문제의 구성과 난도가 다르기 때문에 심화와 기본의 점수를 직접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시험을 통해 역사적 사건과 개념에 관한 이해뿐 아니라 사료의 분석과 시대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도 평가한다고 설명한다.[4]
2026년 시험 일정
2026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총 5회 시행하도록 계획되었다.
이는 기존의 시행횟수에 심화시험 1회를 추가한 것으로, 2027년부터 적용할 예정인 국가직 9급 공채 한국사 과목 대체에 따른 응시수요 증가에 대비한 조치였다.
| 회차 | 시험일 | 종류 |
|---|---|---|
| 제77회 | 2026년 2월 7일 | 심화·기본 |
| 제78회 | 2026년 5월 23일 | 심화 |
| 제79회 | 2026년 8월 9일 | 심화·기본 |
| 제80회 | 2026년 10월 17일 | 심화 |
| 제81회 | 2026년 11월 28일 | 심화 |
※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고한 2026년도 시행계획 기준이며, 이후 변경사항은 공식 홈페이지에서 확인해야 한다.[5]
국가시험과의 관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일부 국가시험에서 한국사 과목을 대체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일정한 등급을 취득하면 별도의 한국사 필기시험을 치르지 않고 관련 응시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모든 국가시험에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다.
각 시험의 시행기관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인정등급과 인정기간, 제출방법 등에 관하여 별도의 규정을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국사 영역과 별도의 시험이다.
대학수학능력시험 한국사 영역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시험체계의 일부이며,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능력검정시험과는 운영목적과 응시대상이 다르다.
역사교과서와의 관계
국사편찬위원회는 한국사 교육과 관련된 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역사교과서의 편찬과 검정제도에도 관여해 왔다.
그러나 모든 시대의 역사교과서를 국사편찬위원회가 직접 집필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교과서 발행제도에는 국정과 검정, 인정 등 여러 형태가 존재하며, 발행주체와 심사절차가 서로 다르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정부의 역사교육 정책과 교과서 제도에 따라 편찬기준과 관련 연구, 심사 또는 편찬사업 등에 참여할 수 있다.
따라서 기관의 역할을 이해할 때에는 어떤 시기의 어떤 교과서 사업에 관여했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
국사편찬위원회가 정치적인 논쟁의 중심에 섰던 대표적인 사례는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진행된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가가 직접 발행하는 국정체제로 전환하려 했다.
정부는 기존의 검정교과서에 역사적인 편향성과 오류가 존재한다고 주장했으며, 국가가 책임지고 통일된 기준에 따라 역사교과서를 편찬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반면 역사학계와 교육계의 상당수에서는 국가가 하나의 역사서술을 정해 학교에 보급하는 방식이 학문적 다양성과 역사교육의 자율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논쟁은 역사학의 객관성과 정부의 역사교육 권한, 교과서 집필의 자율성 등을 둘러싼 문제로 확대되었다.
2015년 편찬 책임기관 지정
2015년 11월 3일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국정화 방침을 확정하여 고시했다.
이에 따라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 역사교과서의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위원장이었던 김정배는 11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교과서의 개발방향과 집필진 구성, 편찬기준 등을 발표했다.
그는 헌법정신과 객관적인 사실에 입각한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집필과 검토, 감수 등 여러 단계의 검증절차를 마련하고 다양한 연구자와 교사들을 집필진에 참여시키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당시 국사편찬위원회가 국정교과서 사업의 실제 편찬 책임을 맡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6]
역사학계의 반발
국정교과서 정책은 발표 이후 상당한 반발에 직면했다.
비판적인 연구자들은 정부가 역사교과서를 단일한 형태로 편찬하면 특정한 정치적 관점이 역사서술에 반영될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역사학에서는 같은 사건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거나 연구방법이 변화하면서 해석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다양한 교과서를 통해 서로 다른 연구성과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면 국정화를 지지한 측에서는 역사교육의 기본적인 내용과 국가적인 정체성을 일관되게 가르치기 위해 국가의 책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논쟁은 단순히 교과서를 누가 발행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넘어 역사해석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육제도에 대한 국가의 권한이라는 문제로 이어졌다.
국정교과서 개발
국사편찬위원회는 정부의 국정화 방침에 따라 집필진을 구성하고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에 참여했다.
그러나 개발과정에서도 집필진의 구성과 공개 범위, 교과서 내용의 역사적 정확성 및 정치적 편향성 등에 관한 논란이 계속되었다.
정부는 교과서의 서술이 객관적이며 기존 교과서의 문제점을 개선한다고 설명했다.
반면 반대 측에서는 근현대사의 일부 서술이 특정한 정치적 관점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따라서 국사편찬위원회가 이 사업에 참여했다는 사실과 실제 교과서의 모든 내용에 대해 학계의 동의가 존재했다는 주장은 구분해야 한다.
2017년 국정화 폐지
2017년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은 폐지되었다.
5월 31일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발행체제를 검정체제로 전환하는 고시를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또한 국정교과서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교육부의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도 해체되었다.
교육부는 이후 검정 역사교과서의 제작과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한 후속조치를 진행했다.[7]
국사편찬위원회의 책임과 한계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국사편찬위원회가 국가기관으로서 가지는 성격과 역사연구기관으로서 요구되는 학문적인 독립성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국사편찬위원회는 정부의 법령과 예산에 따라 운영되는 기관이므로 정부의 역사교육 정책에 참여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연구에서는 정치적 권력의 요구와 관계없이 사료의 정확성과 학문적인 연구결과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한 정부가 역사교육의 방향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학문적인 논쟁을 국가가 일방적으로 종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정부가 역사교과서 정책을 수립했다는 사실만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모든 사료 편찬사업과 연구성과가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단정하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
실제 평가는 각 사업의 내용과 진행과정, 자료의 정확성과 학문적 자율성 등을 구분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조선사편수회와의 연속성 논쟁
국사편찬위원회의 역사에서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사편수회와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가 논의된다.
두 기관은 서로 다른 국가체제와 정치적 상황에서 설립되었다.
조선사편수회는 조선총독부의 역사편찬기관으로, 일본의 식민통치에 필요한 역사서술과 자료의 수집에 관여했다.
반면 국사관과 국사편찬위원회는 광복 이후 한국사의 연구와 자료보존을 위해 설립되었다.
그러나 인적·자료적인 연결관계가 완전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조선사편수회와 관련된 연구경력을 가진 신석호가 국사관의 설립과 초기 운영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에서 수집한 자료들이 국사관으로 이전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식민지 시기의 역사연구 체계가 해방 이후의 학계와 국가기관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보는 중요한 사례다.
사료의 보존 문제
조선사편수회가 수집했던 자료에는 원래 조선시대에 작성된 고문서와 문집, 지도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러한 자료는 수집기관의 정치적 성격과 관계없이 역사연구에 중요한 자료일 수 있다.
따라서 일제강점기의 기관이 수집했다는 이유만으로 자료 자체가 역사적 가치를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해당 자료가 어떤 목적으로 수집되었으며, 편찬과정에서 어떤 기록이 선택되거나 제외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당시의 편찬자가 특정한 역사적 해석을 제시했다면 그 근거와 정치적인 배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역사관의 연속성 문제
조선사편수회가 남긴 편찬물에는 식민주의적인 역사해석이 반영되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그러나 해방 이후 국사편찬위원회가 조선사편수회의 소장자료를 인수했다는 이유만으로 현재까지 동일한 역사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역사연구기관의 실제 성격은 연구자와 편찬방침, 발간한 연구성과 및 학문적인 검증과정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또한 시대에 따라 새로운 사료가 수집되고 연구방법이 변화하면서 기존의 역사해석도 수정될 수 있다.
따라서 두 기관의 관계를 설명할 때에는 조직의 설립 목적, 자료의 계승, 연구인력의 연속성, 역사관의 변화를 각각 구분하는 것이 적절하다.
다른 역사기관과의 차이
국사편찬위원회는 역사와 관련된 여러 국가기관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국가기록원과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다른 기관들과는 업무의 중점이 다르다.
| 기관 | 주요 업무 |
|---|---|
|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사 사료의 조사·수집·편찬, 역사연구·보급,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 국가기록원 | 공공기록물의 관리와 보존, 국가기록정보의 제공 |
| 국립중앙박물관 | 문화유산과 유물의 수집·보존·전시·연구 |
| 한국학중앙연구원 | 한국학 연구, 한국문화와 역사 관련 지식의 편찬·교육 |
| 동북아역사재단 | 동북아시아의 역사문제와 영토 관련 연구, 역사갈등 대응 |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 교육과정·평가 연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 교육평가 업무 |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왕이 어떤 명령을 내렸는지 확인하려면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이용할 수 있다.
정부기관이 최근 생산한 공식적인 행정기록을 확인하려면 국가기록원의 서비스가 더 적절한 경우도 있다.
고려청자와 불상, 고대의 유물 등을 실제로 관찰하려면 국립중앙박물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기관별 업무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자료의 수집과 연구, 디지털화와 전시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국가기록원과의 협력
2026년 9월 18일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기록원과 기록정보 및 역사자료의 연계·공동 활용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두 기관은 역사자료와 국가기록을 연계하고 인공지능을 활용하여 자료를 검색하고 이용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사업에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서로 다른 기관에 보관된 역사자료를 연구자와 일반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다.
국사편찬위원회는 2026년 9월 22일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근대 다문자 자료의 인식·검색·번역과 인공지능 기반 기록정보 검색·요약·추천 서비스 등을 시범적으로 검증한다고 설명했다.[8]
그러나 인공지능을 사용하여 역사자료를 검색하거나 번역할 경우 잘못된 글자 인식과 번역 오류, 부정확한 요약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술을 활용하더라도 최종적인 역사적 판단에서는 원문과 자료의 출처를 확인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조직과 운영
국사편찬위원회는 교육부 소속 국가기관으로, 위원장과 위원회 및 상근 연구·행정조직을 통해 운영된다.
위원장은 차관급 정무직이며, 기관의 역사자료 수집과 편찬, 연구 및 대외협력 등의 업무를 총괄한다.
실제 사료의 조사와 수집, 편찬과 정보화, 역사교육과 시험운영 등의 업무는 여러 연구·행정 부서가 담당한다.
2026년에는 편사부를 중심으로 사료조사실과 연구편찬정보화실, 역사진흥실 등의 조직이 운영되고 있다.
사료조사실
사료조사실은 국내외에 존재하는 역사자료를 조사하고 수집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개인과 가문 등에 보관된 고문서와 기록을 조사하고, 국내 지역의 사료조사위원들과 협력하여 자료를 확보한다.
2026년에도 국사편찬위원회는 국내 지역의 사료조사위원을 위촉하여 지역에 남아 있는 역사자료를 발굴하고 조사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연구편찬정보화실
연구편찬정보화실은 역사자료의 편찬과 정보화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여러 문헌을 정리하고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형태로 가공하며, 데이터베이스와 온라인 서비스의 구축 및 개선사업에 참여한다.
역사자료의 전산화는 단순히 오래된 책을 사진으로 촬영하는 작업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문서의 글자를 입력하거나 인식하고, 검색할 수 있도록 색인과 분류체계를 마련하며, 자료의 출처와 작성시기 등을 확인하는 과정도 필요하다.
역사진흥실
역사진흥실은 한국사 교육과 보급,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한국사의 대중적인 이해를 돕는 사업과 역사교육 관련 자료를 제공하며,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의 시행과 관리에도 관여한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국사편찬위원회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업무 가운데 상당수가 역사진흥실의 활동과 연결되어 있다.
역대 위원장
국사편찬위원회는 1946년 국사관으로 출범한 뒤 여러 역사학자들이 기관을 이끌었다.
1949년부터 1965년까지는 문교부 장관이 위원장을 겸임했으며, 이후 전임 위원장제가 시행되었다.
| 구분 | 인물 | 재임기간 |
|---|---|---|
| 초대 국사관장 | 신석호 | 1946년 3월 ~ 1949년 3월 |
| 문교부 장관 겸임 | 역대 문교부 장관 | 1949년 3월 ~ 1965년 1월 |
| 제1·2대 | 김성균 | 1965~1969년, 1970~1972년 |
| 제3대 | 최영희 | 1972~1982년 |
| 제4대 | 이현종 | 1982~1984년 |
| 제5대 | 박영석 | 1984~1994년 |
| 제6대 | 이원순 | 1994~1999년 |
| 제7대 | 이성무 | 1999~2003년 |
| 제8대 | 이만열 | 2003~2006년 |
| 제9대 | 유영렬 | 2006~2008년 |
| 제10대 | 정옥자 | 2008~2010년 |
| 제11대 | 이태진 | 2010~2013년 |
| 제12대 | 유영익 | 2013~2015년 |
| 제13대 | 김정배 | 2015~2017년 |
| 제14대 | 조광 | 2017~2021년 |
| 제15대 | 김인걸 | 2021~2024년 |
| 제16대 | 허동현 | 2024년 5월 7일 ~ 현재 |
※ 2026년 10월 기준. 국사편찬위원회의 공식 연혁 및 위원장 취임자료를 참고했다.[1]
경기도 과천시 청사
국사편찬위원회는 경기도 과천시 교육원로 86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 현재의 과천청사로 이전했으며, 본관과 국사관, 사료관 등의 시설을 운영한다.
이곳에는 연구자들이 사료를 조사하고 편찬작업을 진행하는 공간뿐 아니라 역사자료를 보관하는 서고와 열람시설 등이 있다.
사료관
국사편찬위원회의 사료관은 역사자료의 보존과 열람을 위한 시설이다.
고서와 고문서, 사진과 신문, 마이크로필름과 해외수집자료 등 다양한 역사자료를 보관한다.
또한 연구자들이 필요한 자료를 열람할 수 있도록 자료실과 열람시설 등을 운영한다.
그러나 모든 소장자료를 누구나 제한 없이 직접 열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료의 보존상태와 소장기관의 규정, 개인정보 및 저작권 문제 등에 따라 열람과 복제에 제한이 존재할 수 있다.
따라서 방문하기 전에는 자료의 소장 여부와 열람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전자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는 전자도서관도 운영하고 있다.
전자도서관에서는 소장도서와 역사자료의 목록을 검색할 수 있으며, 일부 자료는 전자적인 형태로 제공된다.
이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와 연결되지만 동일한 서비스는 아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는 역사자료의 원문과 내용 검색에 중점을 두는 반면, 전자도서관은 도서와 소장자료의 검색 및 이용에 중점을 둔다.
역사연구의 객관성과 정치적 중립성
국사편찬위원회는 국가기관인 동시에 역사연구와 자료편찬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역사적 사실에 관한 연구와 국가의 정책적 요구 사이에서 학문적 독립성을 유지하는 문제가 중요하다.
역사학에서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의 정책이 성공적이었는지에 대한 평가는 당시의 경제상황과 사회적 영향, 장기적인 결과 및 연구자의 평가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사건이 발생한 날짜나 법률의 제정 여부, 특정한 인물이 공식적인 직책을 맡았는지 등의 문제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을 통해 비교적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실관계와 역사적 평가를 구분하는 것은 중요한 연구 원칙이다.
국가기관의 역사해석
국사편찬위원회가 제공하는 역사자료는 정부기관이 관리한다는 점에서 일정한 공신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제공한 자료라고 해서 모든 역사적 해석이 언제나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역사학에서는 새로운 사료가 발견되거나 기존 자료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경우 연구결과를 수정할 수 있다.
따라서 국가기관의 역사서술도 지속적인 연구와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원문과 해설의 구분
국사편찬위원회의 서비스를 이용할 때에는 역사자료의 원문과 현대 연구자가 작성한 해설을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의 한문 원문은 당시의 역사기록이지만, 현대 한국어 번역문은 번역자의 해석을 거친 자료다.
우리역사넷에 수록된 역사적인 사건의 설명은 여러 사료와 연구성과를 참고하여 작성된 해설이다.
따라서 사건의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가능할 경우 원문과 해설, 관련된 다른 자료를 함께 검토하는 것이 좋다.
노바위키에서의 활용
국사편찬위원회의 서비스는 노바위키와 같은 역사문서 중심의 위키에서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시대의 인물을 작성할 때에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통해 실제 관직과 활동시기, 정치적 사건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근현대사와 관련된 문서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신문과 공문서, 역사자료집 등을 통해 사실관계를 검토할 수 있다.
우리역사넷은 사건의 전체적인 배경과 시대적 흐름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위키문서를 작성할 때에는 우리역사넷의 설명을 무조건 복사하기보다 필요한 사실을 확인하고 다른 자료와 비교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료 인용
역사문서에 국사편찬위원회의 자료를 인용할 때에는 가능한 한 해당 기록의 제목과 날짜, 관련 인물 등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인용한다면 단순히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를 출처로 제시하는 것보다 해당 실록의 구체적인 기록을 연결하는 편이 유용하다.
이는 독자가 원문을 직접 확인하고 문서의 내용을 검증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또한 검색결과에 등장하는 특정한 문장만을 발췌하면 전체적인 맥락과 다른 의미로 이해될 수 있으므로 앞뒤의 기록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주요 서비스
| 서비스 | 주요 내용 | 주소 |
|---|---|---|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한국사 관련 주요 사료와 자료집 | 바로가기 |
| 조선왕조실록 | 실록의 원문·번역문·원본 이미지 | 바로가기 |
| 승정원일기 | 승정원일기의 한문 원문과 색인 | 바로가기 |
| 우리역사넷 | 한국사 사건·인물의 해설과 교육자료 | 바로가기 |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시험일정·원서접수·성적·인증 | 바로가기 |
| 전자도서관 | 소장도서와 자료 목록, 전자자료 | 바로가기 |
| 국사편찬위원회 | 기관 소개와 연구사업, 보도자료 | 바로가기 |
주요 연혁
| 연도 | 사건 |
|---|---|
| 1922년 |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찬위원회 설치 |
| 1925년 | 조선사편수회로 개편 |
| 1938년 |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찬 완료 |
| 1945년 | 8·15 광복 |
| 1946년 3월 23일 | 국사관 설립, 초대 관장 신석호 |
| 1949년 | 국사편찬위원회로 개편 |
| 1955~1958년 | 《조선왕조실록》 48책 영인본 간행 |
| 1965년 | 전임 위원장제 실시 |
| 1987년 | 사료의 수집·보존 관련 법률 제정, 과천청사 이전 |
| 1999년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웹서비스 개시 |
| 2001년 | 해외 소재 한국사 자료 수집사업 확대 |
| 2006년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시행 시작 |
| 2015년 |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따라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 |
| 2017년 | 국정 역사교과서 사업 폐지 |
| 2024년 | 제16대 위원장 허동현 취임 |
| 2026년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연간 5회 시행계획 수립 |
| 2026년 9월 | 국가기록원과 역사자료·기록정보 연계 업무협약 체결 |
여담
- 1946년 3월 23일 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설립되었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 1948년보다 역사가 오래된 기관이다.
- 1949년 국사편찬위원회로 개편되었다.
- 국사편찬위원회의 약칭은 국편이다. 한국사 연구자나 수험생들 사이에서도 널리 사용된다.
- 이름만 보면 역사교과서를 편찬하는 위원회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방대한 역사자료를 수집하고 전산화하는 업무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 일제강점기 조선사편수회가 수집했던 역사자료를 인수했다는 점에서 두 기관 사이에는 자료상의 연결관계가 존재한다.
- 그러나 조선사편수회의 식민통치 목적과 광복 이후 국사관의 설립 목적은 구분해야 한다.
- 초대 국사관장이었던 신석호는 조선사편수회와 관련된 연구경력을 가진 역사학자였다.
- 1949년부터 1965년까지는 문교부 장관이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겸임했다.
- 1965년부터 전임 위원장제도가 시행되었다.
- 1987년에는 과천청사로 이전했다.
- 대표적인 사업 가운데 하나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 등의 디지털 서비스다.
- 조선왕조실록은 한문 원문과 번역문, 원본 이미지를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다.
- 승정원일기는 3,243책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으로, 조선시대 국왕과 신하들의 대화 및 행정업무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다.
-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는 고대사부터 근현대사에 이르는 다양한 문헌과 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
- 우리역사넷은 역사자료의 원문보다 일반인들을 위한 역사해설과 교육자료에 중점을 둔다.
- 국사편찬위원회에 등록된 자료라고 해서 그 기록에 등장하는 모든 주장이 실제로 사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역사연구에서는 자료의 작성배경과 신뢰성을 검토해야 한다.
-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시행하는 기관으로도 유명하다.
- 2026년에는 총 5회의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예정되었다.
-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심화와 기본으로 나뉘며, 각각 1~3급과 4~6급을 인증한다.
-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한국사 영역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은 서로 다른 시험이다.
- 2015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당시에는 실제로 국정 역사교과서 편찬 책임기관으로 지정되었다.
- 이 때문에 역사교과서의 정치적 중립성과 학문적 자율성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렸다.
- 국정교과서 사업은 2017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 2026년 10월 현재 위원장은 허동현이다.
- 2026년에는 국가기록원과 역사자료 및 국가기록의 연계에 관한 협력사업을 추진했다.
- 국사편찬위원회는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일반 국민이 역사자료를 무료로 검색할 수 있는 여러 서비스를 제공한다.
- 따라서 역사적인 사건과 인물을 조사할 때 참고하기 좋은 국가기관 가운데 하나다.
- 다만 국사편찬위원회가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모든 연구결과를 결정하거나 특정한 역사적 해석을 최종적으로 확정하는 기관은 아니다.
- 역사학에서는 새로운 사료와 연구성과에 따라 기존의 해석이 변경될 수 있다.
- 옛날에는 역사학자들이 두꺼운 실록과 자료집을 직접 뒤져야 했지만, 이제는 일반인도 국사편찬위원회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수백 년 전의 기록을 검색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문서
- 대한민국
- 대한민국 교육부
- 중앙행정기관
- 국사관
- 조선사편수회
- 조선총독부
- 조선사
- 신석호
- 김성균
- 최영희(역사학자)
- 이현종(역사학자)
- 박영석(역사학자)
- 이원순(역사학자)
- 이성무
- 이만열
- 유영렬
- 정옥자
- 이태진
- 유영익
- 김정배
- 조광(역사학자)
- 김인걸
- 허동현
- 한국사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조선왕조실록
- 승정원일기
- 우리역사넷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사료
- 사료 편찬
- 고문서
- 고서
- 한문
- 역사학
- 한국사 연구
-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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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1.0 1.1 국사편찬위원회 - 제16대 허동현 위원장 취임식
- ↑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 - 조선사편수회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국사편찬위원회
-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시험 요강
- ↑ 국사편찬위원회 - 2026년도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시행 일정
-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국정 역사교과서 개발과 관련한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브리핑, 2015년 11월 4일
-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 교육부, 국정 역사교과서 폐지 절차 마무리, 2017년 5월 31일
- ↑ 국사편찬위원회 - 국가기록원과 기록정보·역사자료 연계 업무협약 체결, 2026년 9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