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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서울시 중랑구에 있는 교회.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로 알려져 있다. 교회 이름인 금란은 김활란에서 따온것이다.

정확히는 1957년 당시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이었던 김활란이 교직원과 학생들을 모아 금란전도대를 조직한 것이 시초다. '금란'은 김활란(金活蘭)의 첫 글자 金과 마지막 글자 蘭을 따서 만들었다. 금란전도대가 당시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망우리에서 전도활동을 시작했고, 이듬해인 1958년 11월 금란동산에 15평짜리 천막교회를 세워 10여 명이 창립예배를 드린 것이 금란교회의 시작이다.

ㄴ 그러니까 김활란이 직접 여기서 수십년 담임목사한 건 아니고 교회 이름과 초기 전도활동의 유래가 김활란이라는 뜻이다.

1961년에는 이화여대가 기증한 망우동 부지에 예배당을 세웠고 이후 계속 교세가 커졌다. 현재 주소는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455이며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이다.

특징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로 알려져 있지만 담임목사를 오랫동안 한 사람이 그 전설의 김홍도다. 그 목사는 1971년부터 담임목사가 된 후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로 성장시켰다. 2008년 자신 아들이 담임목사가 된 후 원로목사로 있다가 2020년 9월 사망했다. 김홍도 목사는 기독교 우파 목사로도 잘 알려졌다.

ㄴ 정확히는 2020년 9월 2일 사망했다.

김홍도가 1971년 금란교회에 부임했을 당시 교인은 약 75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3개월 만에 300명, 2년쯤 뒤에는 700명대로 늘었고 1980년 전후에는 1만5000명을 넘겼다. 한때 등록교인이 10만명을 넘었다고 알려졌으며 이 때문에 언론에서도 금란교회를 세계 최대 감리교회라고 자주 불렀다.

교인수가 존나게 늘어나니 예배당도 계속 갈아엎었다. 1973년 대성전을 만들고 1984년에는 6000석 규모 예배당을 완공했으며, 1990년대 다시 새 본당을 짓기 시작해 2000년 현재의 대형 예배당을 완공했다. 지금 건물은 지하 6층, 지상 10층에 대성전만 약 1만석 규모다.

2006년에는 이곳에서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까지 열렸다.

다만 "세계 최대"라는 표현은 등록교인 수를 기준으로 과거부터 굳어진 표현이고, 전세계 감리교회의 현재 실출석 인원을 매년 한 줄 세워 공식적으로 1등 인증하는 제도가 있는 건 아니다. 적어도 한국 감리교회 가운데 압도적으로 큰 초대형교회인 건 맞다.

2008년 김홍도가 은퇴한 뒤 아들 김정민이 5대 담임목사로 취임했고 2026년 현재까지 담임을 맡고 있다.

ㄴ 당연히 이때 교회 세습 논란이 존나게 일었다. 아버지가 37년간 키운 초대형교회를 아들이 그대로 이어받은 그림이니까.

재밌는 건 김홍도의 형 김선도는 광림교회, 동생 김국도는 임마누엘교회 목사였고 이쪽도 모두 대형 감리교회로 성장했다는 것. 그래서 이 집안을 감리교 3형제라고 부르기도 했다. 더 재밌는 건 세 형제 모두 결국 자기 아들에게 교회를 물려줬다.

ㄴ 불륜6걸이라는 이유땜에, 그게 아니라고 해도 금란이라는 단어만 보면 음란이 떠올라서 금란교회를 음란교회라고 부르는놈도 있는것 같다....

김홍도

금란교회 얘기하면서 김홍도를 빼기는 어렵다.

교회를 세계 최대급 감리교회로 키운 공은 엄청나지만 사고도 존나게 많이 쳤다.

1995년부터 2003년까지 교회 공금을 감독회장 선거자금, 부동산 구입, 별장 건축, 개인적인 문제 처리 등에 사용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고 결국 2006년 대법원에서 교회 공금 32억여원을 횡령·배임한 혐의 등이 유죄로 확정됐다.

형량은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벌금 750만원.

당시 판결에서는 아들 명의 부동산을 사는 데 8억원, 별장을 짓는 데 3억원을 쓴 것 등이 인정됐다. 감독회장 선거자금으로 교회 돈 2억3000여만원을 쓴 것도 문제가 됐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00년 미국 선교단체로부터 북한에 교회를 짓겠다며 후원금을 받은 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국제소송까지 갔고, 이후 국내 소송 과정에서 또 형사사건이 터졌다. 2014년 1심에서는 징역 2년을 받고 법정구속됐지만 2015년 항소심에서는 사기미수·위조사문서행사 등 대부분의 혐의가 무죄로 뒤집혔고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만 유죄로 인정돼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ㄴ 그러니까 "2014년에 사기로 징역 2년 확정"이라고 쓰면 틀린다. 1심에서 그렇게 나왔는데 항소심에서 대부분 뒤집혔다.

서남아시아 쓰나미 피해자들을 두고 "예수를 믿지 않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이라는 취지로 설교해 욕을 존나게 먹은 전적도 있다.

전광훈이 지금처럼 전국구 네임드가 되기 전부터 금란교회에 불러 설교시키고 자기가 총재를 맡던 청교도영성훈련원에서 같이 활동해서 전광훈을 교계에서 키워준 목사 중 하나로도 꼽힌다.

애국보수 성향의 교회

주의. 이 문서는 헬조선 엑윽보수들이 좋아하는 것을 다루고 있읍니다.
보수 정부에 대해 무조건 옹호만 하고 역돌격, 반인반신, 탱크보이, 물, 땡삼, 쥐, 닭을 신격화하면서 항상 자기 주장에 따르지 않으면 고향을 전라도로 바꿔버리는 행패가 사실상 더듬어공산당이 하는 짓이랑 다를 게 없기 때문에 헬조선 노예들이 이 문서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엉덩이 탐정이 잘 알고 있읍니다.
자유민주주의 지켜내겍윽보수.

김홍도 시절에는 그냥 보수 정도가 아니라 반공 기독교 우파 색채를 대놓고 드러냈다.

2005년에는

“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면 이 나라는 자연히 공산화된다

”

며 당시 정치권의 국보법 폐지 움직임을 존나게 깠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때는 예배 중에

“

이 장로님이 꼭 대통령이 되게 기도해달라

”

며 사실상 이명박을 찍으라고 설교했다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항소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촛불집회 때도

“

촛불시위는 친북좌파의 선동

”

이라는 식으로 설교했고, 경찰·검찰·국정원 등의 대공분야를 강화해 "좌파 빨갱이 간첩"을 잡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명박을 그렇게 빨았는데 나중에는 이명박 정부마저 좌파라고 깠다.

2011년에는

“

반공사상과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을 국회의원으로, 장관으로, 대통령으로 만들어야 한다

”

면서 아예 반공보수당을 만들자고 주장했다.

이쯤되면 정치성향 하나만큼은 애매하지 않다.

김홍도가 은퇴하고 김정민 체제로 넘어온 뒤에는 과거처럼 담임목사가 매주 정치발언으로 신문에 나오는 정도는 많이 줄었다. 김정민은 아버지보다 외부 정치활동을 덜 하고 목회와 선교 쪽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렇다고 교회 전체의 보수 개신교 색채가 싹 사라진 것도 아니다. 202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금란교회에서는 '거룩한 나라, 북한구원 통일한국, 선교한국을 이룰 대통령 선출'을 내건 국가 3일 연합금식성회가 열렸고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복음통일 등을 놓고 기도했다.

2026년에도 금란교회에서 국가와 북한구원·통일 등을 주제로 한 대규모 금식기도성회가 열렸다.

그러니까 예전 김홍도처럼 담임목사가 직접 빨갱이 잡아라 이명박 찍어라하고 지르는 스타일은 많이 줄었는데 교회가 보수적인 국가관과 반공·북한선교 성향을 가진 건 여전히 어느 정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외

교회가 있는 망우동 일대에서 존재감이 존나 크다. 건물 자체가 지하 6층·지상 10층 규모고 대성전만 1만석이라 근처 지나가면 그냥 보인다.

교회 역사가 오래되다보니 망우동 지역사와도 꽤 엮여있다. 애초에 시작 자체가 이화여대 금란전도대가 당시 망우리에서 전도활동을 하면서 만들어진 교회이고, 현재의 망우로 부지 역시 1961년 이화여대가 기증한 땅에서 출발했다.

김활란이라는 이름 때문에 친일파 관련해서 교회 이름을 바꾸자는 소리가 가끔 나올 법도 하지만 2026년까지 이름은 그대로 금란교회다.

교회 자체에서 김활란을 무슨 종교적 성인처럼 떠받드는 건 아니고 그냥 설립 역사와 이름의 유래에 해당한다.

정보

금란교회
정식 명칭 금란교회
설립 1958년 11월
위치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로 455
교단 기독교대한감리회
담임목사 김정민
담임목사 취임 2008년
전임 담임목사 김홍도 (1971~2008)
홈페이지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