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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너무 고대적입니다.
이 문서 또는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은 너무 고대적이라 현대의 우리가 이해할 수 없거나 너무 미개한 것들 천지입니다. 고대에 사는 그들도 이 줫같은 삶이 끝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개요

기원전 6세기는 기원전 600년부터 기원전 501년까지이다.

고대사의 판도가 크게 바뀐 세기 중 하나다.

기원전 2천년기 말부터 확산된 철기 문화가 각지에 완전히 자리잡았고, 도시국가와 소왕국들을 넘어 넓은 지역을 하나의 체제로 묶는 거대 제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세기의 주인공은 단연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다.

원래 이란 남서부의 한 세력에 불과했던 페르시아가 키루스 2세 때 메디아, 리디아, 신바빌로니아 제국을 집어삼켰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까지 정복했다. 이후 다리우스 1세는 중앙아시아, 인더스강 유역과 발칸반도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 결과 기원전 6세기 말에는 아케메네스 제국이 아시아·아프리카·유럽에 걸친 인류 최초의 본격적인 초대형 제국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그리스에서는 아테네 민주정의 기틀이 만들어졌고, 이탈리아에서는 전승상 로마 왕국이 무너지고 로마 공화국이 등장했다. 인도에서는 십육대국이 성장하고 불교·자이나교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중국은 여전히 춘추시대 한가운데였다.

후대에 축의 시대라고 불리는 거대한 사상적 변화의 한복판이기도 하다.

세계의 상황

로마

기원전 6세기 대부분의 로마는 아직 로마 왕국 시대였다.

로마 전승에 따르면 마지막 왕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가 폭정을 벌이다 기원전 509년 추방되면서 왕정이 무너지고 로마 공화국이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왕 한 명 대신 두 명의 집정관이 국가를 이끄는 공화정 체제가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다만 기원전 509년이라는 연도와 초기 공화정의 구체적인 제도는 대부분 후대 로마인들이 남긴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대로 역사적 사실이라고 보기에는 논란이 있다.

어쨌든 이 시기 로마는 아직 지중해 패권국은커녕 이탈리아 중부의 도시국가 수준이었다.

몇백 년 뒤 지중해를 다 처먹는 놈들이 이때는 주변 에트루리아인과 라틴인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다.

기원전 594년경 솔론은 부채 노예제를 폐지하고 재산에 따라 시민의 정치 참여 자격을 나누는 개혁을 시행했다. 흔히 금권정이라고 부르지만 귀족 가문만 정치에 참여하던 기존 체제를 크게 흔들어놓았다는 의미가 더 크다.

이후 페이시스트라토스가 기원전 561년부터 여러 차례 정권을 장악해 참주정치를 펼쳤다. 그의 아들 히피아스가 기원전 510년 축출된 뒤 귀족 세력끼리 다시 싸우다가 클레이스테네스가 등장했다.

클레이스테네스는 기원전 508~507년경 기존 혈연 중심 부족제를 지역 중심의 10개 부족으로 재편하고 500인 평의회를 설치하면서 아테네 민주정의 기본 틀을 만들었다.

도편 추방제도 전통적으로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과 연결되지만 실제 최초 시행은 이후 기원전 5세기 초였다.

즉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갑자기 짠 하고 생긴 게 아니라 솔론 → 참주정 → 클레이스테네스라는 시행착오를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한편 소아시아의 그리스계 도시들은 리디아의 지배를 받다가 키루스 2세가 리디아를 정복하면서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기원전 6세기 말 다리우스 1세는 보스포루스를 건너 트라키아와 흑해 일대로 진출했고 마케도니아까지 페르시아에 복속했다.

그러면서 그리스 세계와 페르시아 사이의 긴장이 점점 커졌다.

조금만 지나면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시즌 시작이다.

이집트

이집트 제26왕조가 통치하고 있었다.

제26왕조는 기원전 664년에 시작된 왕조이지 이때 멸망한 게 아니다.

기원전 6세기에는 사이스를 수도로 삼아 이집트를 통일하고 경제와 대외무역을 발전시키면서 한동안 고대 이집트의 마지막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동쪽에서 페르시아라는 미친놈이 커지고 있었다.

기원전 525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캄비세스 2세가 이집트를 침공해 펠루시움 전투에서 파라오 프삼티크 3세를 격파했다.

그 결과 제26왕조가 멸망하고 이집트는 페르시아 제국의 영토가 됐다.

이 시기를 이집트 제27왕조라고 부르는데, 사실 이집트인 왕조라기보다는 페르시아 황제가 파라오까지 겸직하던 시기다.

그러니까 페르시아 황제가 자기 이력서에

“

현직: 샤한샤
겸직: 이집트 파라오

”

를 추가한 셈이다.

페니키아

페니키아는 하나의 통일국가라기보다는 티레, 시돈 등을 중심으로 한 여러 도시국가들의 집합이었다.

기원전 6세기 초에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영향 아래 들어갔고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티레를 오랫동안 포위하기도 했다.

이후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가 키루스 2세에게 멸망하면서 페니키아 도시들도 자연스럽게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페르시아 입장에서 페니키아인들은 상당히 중요했다.

육군은 페르시아가 존나 세지만 해군은 땅에서 솟아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뛰어난 항해술을 가진 페니키아 도시들이 제국 해군의 핵심 역할을 맡았다.

몇십 년 뒤 그리스랑 싸울 때도 페르시아 해군 상당수가 사실상 페니키아 배였다.

이스라엘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한참 전인 기원전 8세기에 신아시리아 제국에게 멸망한 상태였다.

남아 있던 유다 왕국도 기원전 586년경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네부카드네자르 2세에게 멸망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솔로몬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유다 주민 상당수가 바빌로니아로 끌려갔다.

이게 유명한 바빌론 유수다.

그런데 기원전 539년 키루스 2세가 바빌론을 먹어버리면서 상황이 뒤집혔다.

키루스는 신바빌로니아가 강제로 이주시킨 여러 민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종교시설을 복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고, 유대인들도 기원전 538년경부터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예루살렘 성전도 다시 건설되어 기원전 516년경 제2성전이 완성됐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

바빌론: 니네 나라 없음 ㅅㄱ
페르시아: 집에 가셈

”

수준의 정권교체였다.

그래서 키루스 2세는 유대교 전통에서 이교도 외국 왕 치고는 굉장히 평가가 좋은 인물이다.

메소포타미아

기원전 6세기 초 메소포타미아의 패자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이었다.

특히 네부카드네자르 2세 치세에 바빌론은 서아시아 최대 도시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고 유다 왕국을 포함한 시리아·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떠올리는 화려한 바빌론 이미지도 대부분 이 시기의 것이다.

네부카드네자르가 기원전 562년 죽은 뒤에는 왕위가 계속 바뀌면서 정치가 불안정해졌고 마지막 왕 나보니두스 시기에는 종교정책을 둘러싸고 바빌론의 전통적인 마르두크 사제층과도 갈등을 빚었다.

그 틈을 키루스 2세가 놓칠 리가 없었다.

기원전 539년 페르시아군이 바빌로니아군을 격파했고 바빌론까지 비교적 큰 저항 없이 점령했다.

그렇게 수천 년 동안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등 수많은 제국의 중심지였던 메소포타미아가 이제 페르시아 대제국의 핵심 지역 중 하나로 들어갔다.

페르시아

이 세기의 최종보스.

기원전 6세기 초 페르시아인들은 오늘날 이란 남서부의 안샨과 파르스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메디아가 이란 고원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과거에는 페르시아를 단순히 "메디아의 속국"이라고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두 세력의 정확한 정치적 관계에는 논란이 있다.

어쨌든 키루스 2세가 등장하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기원전 550년경 키루스가 메디아 왕 아스티아게스를 무너뜨리고 메디아를 흡수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이란 통일 정도였는데 이 새끼가 멈추질 않았다.

기원전 546년경에는 소아시아의 강국 리디아를 멸망시켰고, 기원전 539년에는 신바빌로니아 제국까지 집어삼켰다.

중앙아시아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북서부 일대까지도 키루스 시기에 페르시아 세력권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집트를 정복한 것은 키루스가 아니다.

키루스는 기원전 530년 죽었고 그의 아들 캄비세스 2세가 기원전 525년 이집트를 정복했다.

이후 왕위 혼란을 정리하고 등장한 다리우스 1세는 제국을 행정적으로 재정비하고 도로·조세·속주 체제를 정비했다.

다리우스는 동쪽으로 인더스강 유역까지 세력을 확장했고 기원전 513년경 보스포루스를 건너 스키타이 원정을 벌였다.

스키타이를 완전히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이후 페르시아군이 트라키아와 에게해 북부의 여러 그리스 도시를 장악했고 마케도니아까지 페르시아에 복속했다.

이로써 기원전 6세기 말 아케메네스 제국은 중앙아시아와 인더스에서 이집트·리비아, 발칸반도까지 뻗은 초대형 제국이 됐다.

알렉산드로스 3세가 나오기 전까지는 고대 세계에서 얘네가 진짜 최종보스였다.

인도

원문의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완전히 장악했다"는 설명은 너무 단순하다.

기원전 6세기 북인도에서는 후기 베다 시대의 여러 부족사회가 점차 영토국가로 발전하면서 십육대국으로 불리는 여러 국가들이 경쟁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마가다, 코살라, 바트사, 아반티 등이 있었고 일부 국가는 왕이 통치했지만 밧지 같은 곳에는 여러 유력자들이 공동으로 정치를 하는 공화정 비슷한 체제도 존재했다.

도시가 성장하고 상업과 화폐 사용이 확산되는 등 이른바 제2차 도시화가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다.

그리고 인도 사상사에서 존나 중요한 변화가 일어난다.

기존 베다 종교와 브라만 중심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는 여러 사상가와 수행자들이 등장했고 여기서 불교와 자이나교가 성장했다.

전통적인 연대에 따르면 석가모니는 기원전 6세기경 활동했다고 알려져 왔지만 정확한 생몰연대는 지금도 논쟁거리다.

과거에는 기원전 563~483년경을 많이 사용했지만 현대 연구에서는 석가모니의 활동과 사망 시점을 기원전 5세기 쪽으로 더 늦게 보는 견해도 강하다.

따라서 "기원전 6세기에 석가모니가 불교를 만들었다"고 딱 잘라 쓰기보다는 이 무렵 북인도에서 불교와 자이나교로 이어지는 새로운 종교·사상운동이 성장하기 시작했다고 보는 편이 안전하다.

한편 기원전 6세기 말에는 다리우스 1세의 아케메네스 제국이 인더스강 유역까지 진출하면서 북서인도 일부가 페르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갔다.

중국

춘추시대였다.

주나라 왕실은 명목상 천자였지만 이미 실권을 거의 잃었고 각 제후국들이 서로 패권을 놓고 싸우고 있었다.

흔히 말하는 춘추오패의 시대인데, 누가 정확히 오패에 포함되는지는 기록마다 다르다.

기원전 7세기에는 제나라 환공과 진나라 문공 등이 패권을 잡았고, 기원전 6세기 초에는 초나라 장왕이 강력한 세력을 구축했다.

다만 기원전 6세기 중후반이 되면 기존의 진(晉)·초 양강 구도 외에 동남쪽의 오나라가 급성장한다.

오나라는 초나라와 끊임없이 충돌하면서 세력을 키웠고 세기 말에는 합려가 즉위해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훗날 유명해지는 손무도 오나라에서 활동했다.

한편 각 나라 내부에서는 기존 귀족 질서가 조금씩 흔들리고 신흥 세력과 관료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 세기에 진나라가 조·위·한으로 갈라지고 전국시대로 넘어가는 밑바탕이 된다.

사상 쪽에서는 전통적으로 공자가 기원전 551년에 태어난 것으로 전해진다.

즉 기원전 6세기 후반에는 동쪽에서 공자가 돌아다니기 시작하고, 서쪽에서는 페르시아가 세 대륙을 먹고, 인도에서는 새로운 종교사상이 등장하고, 그리스에서는 민주주의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고대사 이벤트가 한꺼번에 존나 많이 터진 세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