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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은 육영재단을 두고 박근혜-박지만과 박근령의 다툼에서 생겨난 참사이다. 그 과정에서 박용철과 박용수가 암살당했다. 헌정사상 가장 미스테리한 사건으로, 그 누구도 언급하길 피할 정도이다. 관계자가 거의 다 죽임 당했다.
ㄴ 정확히는 2011년 9월 6일 박근혜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살해되고, 다른 5촌 조카 박용수가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따라서 두 사람 모두가 암살당했다거나 박근혜 일가의 재산 다툼 때문에 살해됐다고 확정된 사건은 아니긴 하다.
ㄴ 다만 박용철이 당시 박근령·신동욱 측과 박지만 측 사이의 갈등 및 관련 재판에 얽혀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유족과 언론에서는 제3자가 개입한 청부살인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ㄴ '관계자가 거의 다 죽임 당했다'는 주장도 확인된 사실은 아니다. 신동욱 등이 사건 주변 인물들의 여러 사망을 하나의 사건과 연결해 의혹을 제기한 적은 있지만 수사기관이 이들을 연쇄적인 타살사건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다.
지금은 어용언론인으로 욕을 뒤지게 처먹는 김어준 - 주진우지만 이 사건을 수사할 때만큼은 참언론인이었다. 수없이 살해 협박을 받아가면서도 끝끝내 이 사건을 놓지 않았다.
ㄴ 두 사람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언론인으로 사건의 의혹을 취재·보도했다. 주진우는 《시사IN》과 《나는 꼼수다》 등을 통해 사건 배후에 제3자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김어준 역시 이를 방송에서 다뤘다. 이후 두 사람은 관련 보도를 이유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지만 2017년 대법원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ㄴ 다만 이 무죄 판결이 '박지만이나 제3자가 실제 살인을 지시했다'고 법원이 인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은 문제된 보도를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두 사람이 허위임을 알면서 보도했다고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사건
2011년 9월 6일 오전 5시 30분경 서울 강북구 우이동 북한산 탐방안내센터 인근 주차장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의 5촌 조카 박용철이 숨진 채 발견됐다.
박용철은 흉기에 찔리고 둔기로 머리를 맞은 상태였다.
같은 날 오전 9시 20분경 사건 현장에서 약 3km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인근 등산로에서는 박용철의 사촌형이자 역시 박근혜의 5촌 조카인 박용수가 나무에 목을 맨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1]
경찰 조사 결과 두 사람은 사건 전날 저녁 함께 술을 마셨으며 대리운전으로 4·19기념탑 인근까지 이동한 뒤 대리기사를 돌려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박용수의 소지품에서는 박용철의 차량 열쇠와 유서가 발견됐다.
당시 경찰의 결론
경찰은 박용수와 박용철 사이의 금전 문제와 갈등을 범행 동기로 판단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계획적으로 살해한 뒤 북한산으로 이동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 당시 공식 수사결론이었다.
피의자로 지목된 박용수 본인이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검찰은 사건을 공소권 없음으로 마무리했다.
즉 사법기관에 의해 유죄판결을 받은 범인이 존재하는 사건은 아니며, 당시 경찰수사 결과가 박용수를 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왜 의혹이 생겼나
문제는 유족과 취재진이 당시 수사결론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 정황이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범행도구의 지문
박용철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지목된 칼과 망치 등에서 박용수의 지문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이 의혹 가운데 하나였다.
2019년 경찰은 해당 범행도구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다시 보내 지문 재감식까지 실시했다.[2]
다만 경찰은 재감식의 구체적인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체격 차이
박용철은 유도 선수 출신으로 체격이 건장했던 반면 박용수는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았기 때문에 박용수 혼자 박용철을 제압해 살해하는 것이 가능했겠느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ㄴ 체격 차이 자체만으로 범행 가능성 또는 불가능성을 입증할 수는 없다.
약물 관련 의혹
부검 과정에서 두 사람의 체내에서 수면제 계열 약물이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제3자가 두 사람에게 약물을 먹였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 박용수의 위에서 소화되지 않은 정장제 한 알이 발견된 점을 두고 "자살 직전 굳이 약을 복용했겠느냐"는 주장도 있었다.
ㄴ 2017년 이후 재수사 과정에서 경찰은 이 부분도 재검토했으며 해당 약물이 최장 24시간 정도 체내에서 녹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장에 제3자가 있었나
주진우와 SBS 등의 취재에서는 사건 당시 현장 주변에서 박용철·박용수 외에 여러 사람이 탄 차량을 봤다는 목격자 진술이 소개됐다.
SBS는 2017년 사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목격자가 "차에 서너 명의 건장한 남성이 타고 있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보도했다.[3]
주진우 역시 2017년 경찰 참고인 조사에서 사건 현장에 제3자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ㄴ 이것은 목격자와 취재진의 주장이지 수사기관이 확인한 결론은 아니다.
육영재단 분쟁과의 관계
이 사건이 단순한 사촌간 살인사건을 넘어 정치적 의혹 사건이 된 가장 큰 이유이다.
당시 박근혜의 동생 박근령과 그 남편 신동욱은 육영재단 운영권 등을 놓고 박근혜의 남동생 박지만 측과 심각하게 대립하고 있었다.
신동욱은 중국에서 자신을 납치 또는 살해하려는 계획이 있었다고 주장하며 박지만 측을 의심했고, 이 과정에서 박용철의 이름도 등장했다.
박용철은 관련 형사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다.
유족의 주장에 따르면 박용철은 2011년 9월 26일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할 예정이었으나 20일 전인 9월 6일 살해됐다.[4]
이 때문에 유족과 주진우 등은 단순한 채무 다툼이 아니라 육영재단을 둘러싼 집안 분쟁과 연결된 살인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박근혜·박지만 또는 박근령 등 가족 구성원이 살인을 지시하거나 개입했다는 사실은 수사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것이 알고 싶다》
2016년 12월 1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건을 다룬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 대통령 5촌간 살인사건 미스터리〉를 방송하면서 사건이 다시 크게 알려졌다.
방송은 박용수 단독범행이라는 기존 수사결론에 여러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범행도구에서 박용수의 지문이 확인되지 않은 점, 약물 문제, 박용철의 휴대전화, 제3자의 존재 가능성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
방송 이후 재수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당시 경찰청장은 방송에서 제기된 의혹만으로 즉시 재수사할 수는 없다면서도 새로운 증거나 고소가 있으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주진우·김어준 재판
주진우는 사건을 취재하면서 박지만이 사건에 관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고 김어준도 《나는 꼼수다》에서 이를 다뤘다.
두 사람은 이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가 선고됐고 2심에서도 무죄가 유지됐다.
2017년 12월 7일 대법원 역시 무죄를 확정했다.[5]
재판부는 문제가 된 보도에 과장된 부분이 있더라도 전체적으로 허위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두 사람이 허위라고 인식하면서 보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ㄴ 다시 말하지만 무죄 판결 = 보도에서 제기된 살인 배후설이 사실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2017년 재수사
2017년 9월 박용철의 유족이 "진범을 찾아달라"며 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이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사건을 배당받아 사실상 원점에서 재수사에 들어갔다.[6]
경찰은 2011년 당시 수사기록 3,000여 쪽을 다시 검토하고 유족과 주진우, 신동욱 등 사건 관계자를 참고인으로 조사했다.
살인청부 가능성까지 열어두고 관련자들의 금융계좌를 압수수색해 자금 흐름도 조사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기존 부검 결과에 대한 재검토도 요청했다.
재수사 결과
그런데 1년 가까이 재수사했음에도 기존 수사결론을 뒤집을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2018년 경찰은 박용수의 타살을 입증할 만한 흔적을 찾지 못했고 제3자로부터 흘러들어간 청부살인 대금이나 특이한 금융거래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7]
경찰은 유족 등이 제기한 약 40개 쟁점을 다시 검토했지만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기존 결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다만 사건 자체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었다.
2019년에도 경찰이 흉기에 남은 지문을 국과수에 다시 감식시키고 추가 참고인을 찾는 등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재감식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실은?
2011년 수사기관이 내린 공식 결론은
| “ |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자살했다. |
” |
이다.
2017년 이후 대규모 재수사에서도 이를 뒤집을 객관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반면 박용철 유족과 일부 취재진은 범행도구의 지문, 현장 목격담, 육영재단 분쟁과 증인 출석 예정일 등 여러 정황을 근거로 여전히 제3자 개입 가능성을 주장했다.
따라서 현재 공개된 자료만 놓고 보면
공식 수사결론과 이를 의심하게 만든 여러 미해결 의혹이 동시에 남아 있는 사건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박근혜나 박지만 등이 살인을 지시했다는 것은 확인되지 않았고, 반대로 모든 의혹이 완전히 해소됐다고 평가하기도 어려워 오랫동안 음모론과 탐사보도의 소재가 됐다.
관련 문서
각주
- ↑ "박근혜 前대표 5촌 조카 흉기 피살", 《연합뉴스》, 2011년 9월 7일 작성.
- ↑ "경찰, '박근혜 5촌 피살사건' 흉기 지문 재감식 의뢰", 《연합뉴스》, 2019년 9월 26일 작성.
- ↑ "변사체로 발견된 두 남자…의문의 '박근혜 5촌 살인사건'", 《SBS》, 2017년 11월 8일 작성.
- ↑ ""박근혜 5촌 피살사건 재수사하라"…유족, 청와대에 탄원", 《연합뉴스》, 2017년 8월 24일 작성.
- ↑ "'박정희·박지만 명예훼손' 주진우·김어준 무죄 확정", 《연합뉴스》, 2017년 12월 7일 작성.
- ↑ "경찰 "박근혜 5촌 피살사건 재수사, 서울경찰 광역수사대 배당"", 《연합뉴스》, 2017년 9월 18일 작성.
- ↑ "'박근혜 5촌 살인사건' 1년 재수사…"제3자 개입 못 찾아"", 《뉴시스》, 2018년 8월 25일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