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재단(育英財團)은 육영수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복지·교육·문화사업을 목적으로 1969년 설립한 대한민국의 공익재단법인이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의 어린이회관을 운영하며 유치원, 과학교육, 전통예절교육, 어린이 문화행사와 복지지원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에는 아동잡지 《어깨동무》와 만화잡지 《보물섬》 등을 발행해 대한민국 아동·만화 출판계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설립자인 육영수보다도 그 자녀인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사이에서 오랫동안 이어진 재단 운영권 분쟁으로 더 자주 언급됐다. 박근혜가 1982~1990년 이사장, 박근령이 1990~2008년 이사장을 맡았으며 박근령 해임 전후에는 박지만 측과의 충돌이 법정싸움과 폭력사태로까지 번졌다.
2026년 현재는 조수연이 대표자로 등록돼 있으며 어린이회관을 중심으로 교육·문화·나눔사업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1]
개요
| 항목 | 내용 |
|---|---|
| 명칭 | 재단법인 육영재단 |
| 한자 | 育英財團 |
| 설립 | 1969년 4월 24일 |
| 설립자 | 육영수 |
| 유형 | 공익재단법인 |
| 대표자 | 조수연 |
| 주요시설 | 어린이회관 |
| 소재지 |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나루로 441 |
| 주요사업 | 어린이·청소년 교육, 문화, 복지, 평생교육 |
| 홈페이지 | 공식 홈페이지 |
문화체육관광부 비영리법인 현황에는 설립허가일을 1969년 4월 24일로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대표자는 조수연으로 되어 있다.[2]
재단이 밝히는 현재 주요사업은 크게
- 교육
- 나눔
- 문화
- 공간
- 연구
분야로 나뉜다.[3]
설립
육영재단은 당시 대통령 박정희의 부인이었던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 설립했다.
1969년 4월 재단을 설립해 같은 달 24일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았다.
당시 설립 목적에는 어린이·청소년에 대한 교육과 복지뿐 아니라 과학지식 보급, 문화·예술 및 체육활동, 전통예절 교육 등이 포함됐다.[4]
육영수는 영부인으로 활동하면서 특히 어린이 관련 사회사업에 많은 관심을 보였으며, 육영재단은 그 사업을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법인 역할을 했다.
어린이회관
육영재단의 가장 대표적인 사업.
1970년 7월 25일 남산에 첫 어린이회관이 문을 열었다.[5]
당시로서는 어린이를 위한 대규모 교육·문화·과학 시설 자체가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상징적인 시설이었다.
하지만 남산이라는 입지가 어린이들이 접근하기 불편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결국 기존 남산 어린이회관은 1974년 국립중앙도서관 용도로 전환됐고 1975년 10월 현재의 광진구 능동에 새 어린이회관이 준공됐다.[6]
현재 주소는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나루로 441
이다.
바로 옆에는 서울어린이대공원이 있다.
유치원
1983년 3월 5일 어린이회관 유치원이 14학급 규모로 설립인가를 받았다.[7]
현재까지 육영재단의 대표적인 교육시설 가운데 하나로 운영되고 있다.
교육시설
현재는
- 과학교육
- 천체교육
- 창의융합교육
- 전통예절교육
- 캠프
- 축구교실
등을 운영한다.[8]
전통예절교육시설은 근화원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한다.
출판사업
지금 세대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육영재단은 한때 대한민국에서 존나 유명한 아동·만화 출판사이기도 했다.
어깨동무
《어깨동무》는 1967년 육영수가 창간한 어린이 종합잡지다.
처음에는 육영수 개인 사업으로 발행됐으나 1969년 육영재단이 설립되면서 재단에 흡수돼 육영재단 발행 잡지가 됐다.[9]
전성기에는 월 발행부수가 15만 부를 넘나들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잡지에는
- 동화
- 학습
- 과학
- 역사
- 만화
등 다양한 콘텐츠가 실렸다.
1987년 5월 종간됐다.[10]
보물섬
1982년 10월 창간한 만화 전문잡지.
육영재단의 출판사업 가운데 가장 성공한 콘텐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만화방용 단행본 중심이던 대한민국 만화시장에서 서점에서 판매되는 대형 만화잡지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11]
500쪽이 넘는 잡지에 20편 이상의 만화를 한꺼번에 싣기도 했으며
등 유명 작가들이 참여했다.[12]
특히
등 유명 작품들이 연재됐다.
《보물섬》은 1996년까지 발행됐다.
육영재단 공식 홈페이지도 현재 《보물섬》을 과거 재단 발행 잡지로 소개하고 있다.[13]
기타 잡지
과거 다음과 같은 잡지도 발행했다.
- 《꿈나라》
- 《댕기》
- 《마인》
1990년대 중반 이후 육영재단은 사실상 만화·잡지 출판사업에서 철수했다.
역대 이사장
| 순서 | 이름 | 재임 |
|---|---|---|
| 초대 | 곽상훈 | 1969년 ~ 1980년 |
| 2대 | 최세경 | 1980년 ~ 1982년 |
| 3대 | 박근혜 | 1982년 ~ 1990년 |
| 4대 | 박근령 | 1990년 ~ 2008년 |
| 임시 | 이원우 | 2008년 ~ 2009년 |
| 조수연 | 2009년 ~ |
육영재단 유치원의 공식 연혁에도 1982년 10월 27일 박근혜 이사장 취임, 2009년 4월 13일 조수연 이사장 취임이 기록돼 있다.[14]
2026년 현재 정부 비영리법인 현황에도 대표자는 조수연으로 등록돼 있다.[15]
박근혜 이사장 시기
박근혜는 1982년 10월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만 30세였으며 이 시기에 《보물섬》이 창간되고 유치원이 개설되는 등 재단의 문화·교육사업이 확대됐다.
박근혜는 약 8년 동안 이사장을 맡았다.
그러나 1990년 재단 운영을 둘러싼 내부 갈등이 심해지면서 이사장직에서 물러났다.
1990년 11월 박근령의 이사장 취임을 앞두고 박근혜를 지지하는 근화봉사단원들이 어린이회관에서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예정됐던 취임식이 열리지 못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16]
박근혜는 1990년 11월 공식적으로 이사장에서 퇴임하고 동생 박근령에게 자리를 넘겼다.[17]
박근령 이사장 시기
박근령은 1990년부터 육영재단을 운영했다.
그런데 이 시기부터 재단 경영과 관련한 각종 민원과 행정소송이 장기간 이어졌다.
2001년 서울시의회 회의록에서도 당시 감독기관이 법인 및 유치원 운영, 직원 급여와 퇴직금, 예식장 운영, 주차장 사용 등 육영재단과 관련해 다수의 민원이 발생했다고 밝힌 기록이 존재한다.[18]
감독기관은 박근령의 이사장 취임승인을 취소하는 행정처분을 내렸고 박근령 측은 이에 불복하면서 오랫동안 행정소송을 벌였다.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 시기 | 내용 |
|---|---|
| 2001년 | 감독기관이 박근령 이사장 취임 승인 취소 |
| 2002년 | 박근령 측 관련 소송 패소 |
| 2004년 | 관련 법적 판단으로 이사장 복귀 |
| 2004년 | 감독기관이 다시 이사장 취임 승인 취소 |
| 2007년 | 서울고등법원이 해임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 |
| 2008년 | 대법원에서 해임 처분 확정 |
2008년 5월 대법원이 박근령 측의 상고를 기각하면서 약 18년간 이어진 박근령 이사장 체제가 사실상 끝났다.[19]
박근령·박지만 운영권 분쟁
박근령의 해임 문제와 동시에 남동생 박지만 측이 개입하면서 재단 분쟁은 사실상 집안싸움으로 확대됐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박근령 측과 박지만 측 인사들이 재단 운영권을 두고 물리적으로 충돌했다.
2008년 11월 서울동부지방법원은 박지만이 추천한 인사들을 포함한 임시이사 9명을 선임했고, 임시이사회는 이원우 안양대 석좌교수를 이사장으로 선출했다.[20]
박근령은 이에 강하게 반발하며 재단 사무실 출근과 업무 복귀를 시도했다.
양측 인력이 어린이회관에서 대치하면서 경호업체와 외부 인력까지 동원되는 물리적 충돌이 벌어졌다.
당시 언론에서는 조직폭력배와 용역인력 등이 동원됐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재단 이름은 육영인데 정작 운영권 가지고 어른들이 존나 싸웠다.
이원우 이사장 사임
임시이사회가 선출한 이원우 이사장은 갈등을 수습하지 못하고 2009년 3월 취임 약 4개월 만에 사임했다.
당시 박근령 측과 노조 등의 반발이 이어졌고, 기자회견 도중 계란을 맞는 일까지 있었다.[21]
이후 조수연이 이사장에 취임했다.
박근혜 5촌 살인 사건과의 관계
2011년 발생한 이른바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의 배경을 설명할 때 육영재단 분쟁이 자주 등장한다.
2011년 9월 박근혜의 5촌 조카 박용철이 북한산에서 살해됐고 또 다른 5촌 박용수가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 판단해 사건을 종결했다.[22]
문제는 박용철이 사망 이전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깊숙하게 관여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2007년 전후 재단의 물리적 충돌에도 관련돼 있었고 이후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이 박지만 측을 상대로 제기한 각종 주장과 관련된 재판의 증인으로 거론됐다.
박용철이 사망한 시점 역시 관련 재판에서 증언할 가능성이 거론되던 때였다.[23]
이 때문에 유족과 신동욱 등은 박용철의 죽음이 육영재단 분쟁과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2017년 유족은 경찰에 재수사를 요청하면서 박용철이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에 연루된 상태에서 살해됐다는 점을 제기했다.[24]
다만 육영재단 분쟁 때문에 박용철이 살해됐다는 것은 수사기관에 의해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사건의 공식 수사결과와 이후 제기된 배후 의혹은 구분해야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박근혜 5촌 살인 사건 참고.
재단은 박씨 일가의 개인재산인가?
아니다.
이 부분은 육영재단 분쟁을 볼 때 은근히 중요하다.
육영재단은 박정희·육영수 일가가 소유한 일반 회사가 아니라 공익재단법인이다.[25]
따라서 이사장이라고 해서 재단의 토지나 건물을 개인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팔아 자기 돈으로 만들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재단의 재산은 법인 소유이며 공익법인 관련 법률과 감독기관의 관리·감독을 받는다.
그럼에도 박근혜·박근령·박지만 일가가 운영권을 놓고 장기간 대립하면서 언론에서는 흔히 재산 싸움이나 경영권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박씨 일가가 육영재단 자체를 개인적으로 소유했다
기보다는
재단 이사회와 운영권을 누가 장악하느냐를 둘러싸고 충돌했다
고 보는 것이 맞다.
능동 어린이회관이 넓은 부지를 보유하고 있어 재단 자산가치가 상당하다는 추정도 반복적으로 보도돼 분쟁에 대한 관심을 더 키웠다. 다만 언론에 등장하는 수조 원대 등의 평가는 시기와 산정방식이 제각각이므로 공식적인 현재 감정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현재
2026년 현재 육영재단은 정상적으로 사업을 이어가고 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 어린이회관 유치원
- 과학·천체교육
- 근화원 전통예절교육
- 어린이 음악콩쿠르
- 동요합창제
- 어린이날 축제
- 소아당뇨 및 난치질환 어린이 지원
- 장학사업
- 미래세대 포럼
등이 안내돼 있다.[26]
2026년에도 제26회 육영전국어린이음악콩쿠르와 어린이날 행사를 개최하는 등 문화·교육사업을 계속하고 있다.[27]
현재 주소 역시 설립 이후 이전한 능동 어린이회관 부지인
서울특별시 광진구 광나루로 441
이다.[28]
여담
- 한자의 뜻 그대로 育英, 즉 인재와 어린이를 기른다는 의미다.
- 설립자는 육영수다. 재단 이름이 육영수의 성명에서 따온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는데, 육영(育英) 자체가 교육·인재양성을 뜻하는 일반 한자어이기도 하다. 육영수의 성씨인 陸과도 한자가 다르다.
- 육영수가 생전에 시작한 대표적인 어린이 관련 사업 가운데 하나다.
- 현재 어린이회관은 서울어린이대공원 바로 옆에 붙어 있다.
- 최초 어린이회관은 남산에 있었다.
- 남산 어린이회관 건물은 이후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사용됐고 현재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건물로 쓰인다.[29]
- 1980년대 어린이였던 사람들에게는 재단 이름보다 《어깨동무》와 《보물섬》 발행사로 더 익숙할 수도 있다.
- 《보물섬》은 대한민국 만화잡지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후 등장한 《아이큐 점프》 등의 잡지에도 큰 영향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다.[30]
- 아기공룡 둘리가 처음 연재된 곳도 육영재단의 《보물섬》이다.
- 박근혜는 정계에 입문하기 훨씬 전인 1982년부터 1990년까지 육영재단 이사장을 했다.
- 이후 동생 박근령이 무려 약 18년 동안 이사장을 맡았다.
- 박지만은 육영재단 이사장이 된 적은 없다. 2008년 박근령 해임 이후 자신이 추천한 인사들이 법원에 의해 임시이사로 선임되면서 재단 운영권 분쟁의 한쪽 당사자가 됐다.
- 2008~2009년 분쟁은 법원 소송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어린이회관 현장에서 실제 물리적 충돌까지 벌어졌다.
- 이 시기 분쟁에 관여했던 박용철이 2011년 살해되면서 육영재단 문제는 이후 박근혜 5촌 살인 사건의 배경으로까지 등장하게 됐다.
- 2009년 조수연이 이사장에 취임했으며 2026년 현재도 문화체육관광부 비영리법인 자료에 대표자로 등록돼 있다.
- 어린이회관 유치원 공식 연혁에도 조수연의 취임일이 2009년 4월 13일로 기록돼 있다.[31]
- 한동안 박정희 일가의 집안분쟁으로 뉴스에 존나 자주 나오던 곳이지만 현재 공식 홈페이지를 보면 다시 어린이 교육·공연·복지 프로그램 중심으로 조용히 운영되는 편이다.
- 2020년에는 EBS 《북채널e》에서 육영재단의 옛 만화잡지 《보물섬》을 다루자 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해당 방송을 소개했다.[32]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 ↑ 문화체육관광부, 「비영리법인현황 - 재단법인 육영재단」
- ↑ 문화체육관광부, 「재단법인 육영재단」
- ↑ 육영재단, 「미션/비전」
- ↑ 문화체육관광부, 「재단법인 육영재단」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린이회관」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린이회관」
- ↑ 어린이회관유치원, 「유치원 연혁」
- ↑ 육영재단 공식 홈페이지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깨동무」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어깨동무」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물섬」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물섬」
- ↑ 육영재단, 「EBS 북채널e 보물섬 방송 영상」
- ↑ 어린이회관유치원, 「유치원연혁」
- ↑ 문화체육관광부, 「비영리법인현황」
- ↑ MBC 뉴스데스크,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박근영 이사장 취임식 무산」, 1990년 11월 8일
- ↑ 주간경향, 「박근혜 육영재단 재임 시절 무슨 일 있었길래」
- ↑ 국회도서관 지방의회 회의록, 육영재단 관련 질의
- ↑ 주간조선,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 속사정」
- ↑ 세계일보, 「박근령·박지만, 육영재단 운영권 싸고 남매 전쟁」, 2008년 12월 17일
- ↑ 연합뉴스, 「육영재단 신임이사장 4개월 만에 사임」, 2009년 3월 20일
- ↑ MBC, 「박근혜 5촌 피살사건 재수사 고소장 제출」
- ↑ 동아일보, 「박근혜 5촌 살인사건 수사기록 곧 공개」, 2017년 7월 3일
- ↑ MBC, 2017년 9월 15일
- ↑ 문화체육관광부, 「비영리법인현황」
- ↑ 육영재단 공식 홈페이지
- ↑ 육영재단, 「2026 어린이날 특별 무료 공연 안내」
- ↑ 육영재단, 「찾아오시는 길」
- ↑ 대한경제, 「육영수 여사와 남산어린이회관」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물섬」
- ↑ 어린이회관유치원, 「유치원 연혁」
- ↑ 육영재단, 2020년 10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