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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이 강림한 원인이기도 하며, 아직까지도 금수저의 대부분을 대대손손 차지하고 이쓰무니다.
다행히 이들도 죽창과 발터에는 한방이무니다. 죽창...죽창을 가져와라데스...
박근령 Park Geun-ryeong | |
| 생년월일 | 1954년 6월 30일 |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
| 학력 | 경기여자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 |
| 직업 | 前 육영재단 이사장, 정치 활동가 |
박근령(1954년 6월 30일 ~ )은 대한민국의 전직 육영재단 이사장이자 정치 활동가다. 제5~9대 대한민국 대통령 박정희와 육영수의 차녀로, 제18대 대통령 박근혜의 여동생이자 박지만의 누나다. 본래 이름은 박근영이었으며, 이후 박근령으로 개명했다.
1990년 언니 박근혜에 이어 육영재단 이사장을 맡았으나 재단 운영과 관련한 법적 분쟁 끝에 2008년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이후에도 재단 운영권과 관련한 소송을 이어갔으며, 2015년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해 발언해 논란이 됐다.
2018년에는 공공기관 납품 알선을 명목으로 1억 원을 받은 사건에서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다. 이후에도 정치적 발언과 활동을 이어갔으며, 2021년에는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 “ |
-그동안 왜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나? “마음의 준비가 잘 안됐다. 과거에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께서 대통령 재임 시 한겨레신문이 워낙 비판을 많이 해서 마음에 부담이 됐다.” -한겨레는 1988년 창간한 신문이다. “그런가.” |
” |
—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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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일화는 2015년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내용이다. 박정희는 1979년 사망했지만 한겨레신문은 1988년에 창간됐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한겨레신문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는 설명은 시간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이 씨발년이 TV좆선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진행자들도 어이가 없는지 콧바람 뿜는 소리가 들린다. 언니가 억울하네 뭐네 영혼까지 빨아주는데 ㄹ혜와 가위치기라도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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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모 방송사에서 닭ㄹ혜 탄핵을 을사늑약에 비유하던 희대의 쓰레기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듯한데 정희구현이 필요하다.
닭의 여동생이다. 갑자기 관심병이 돌았는지 이상한 소리를 싸지르며 어그로 탱킹을 했다.
정신이 멀쩡하지 않은 듯하다. ㅈㅁ이도 그렇고 얘도 그렇고 ㄹ혜도 그렇고 원조 각하의 자식 교육은 빵점이다.
여기에 들어가면 8월 5일 인터뷰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노망난 할매가 높은 자리에서 아무말이나 싸지르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지 제대로 볼 수 있다. 아오 암살하고 시퍼 ㅆㅂ
남편 신동욱 역시 만만치 않은 꼴통력을 자랑하며 국민들의 혈압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분명 국민들을 고혈압으로 암살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견 보낸 자객일 것이다.
박근령은 박정희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에서 성장했으며,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했다. 1974년 어머니 육영수가 사망하고 1979년 아버지 박정희가 피살된 이후 언니 박근혜, 남동생 박지만과 함께 박정희 일가의 주요 인물로 언론에 등장했다.
특히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언니 박근혜와 달리 박근령은 육영재단 운영과 관련한 활동에 오랫동안 관여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형제자매 간 갈등과 소송이 발생하면서 지속적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8년에는 자신보다 14세 어린 신동욱과 결혼했다. 신동욱은 이후 공화당이라는 이름의 정당 활동 등으로 언론에 등장했으며, 박근령 역시 정치적 발언과 선거 출마 등을 통해 활동을 이어갔다.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
육영재단 이사장 취임
육영재단은 1969년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 복지 및 교육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한 재단이다. 어린이회관 등을 운영하면서 어린이 교육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해 왔다.
육영수가 사망한 이후 재단 운영에는 박정희 일가가 관여했다. 1982년에는 박근혜가 이사장을 맡았으며, 1990년 12월에는 박근령이 이사장직을 이어받았다.
당시 박근혜의 육영재단 운영과 관련해 측근 인사 문제와 경영 논란이 발생했고, 결국 박근혜가 물러나면서 박근령이 재단 운영을 맡게 됐다.
그러나 박근령의 재임 기간에도 재단 운영 방식을 둘러싼 논란이 이어졌다. 교육청의 승인 없이 수익사업을 추진하거나 관련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제기됐으며, 감독기관과의 행정소송으로 확대됐다.
이사장직 상실
2004년 12월 서울 성동교육청은 박근령에 대한 육영재단 이사장 연임 승인을 취소했다. 주요 사유로는 승인받지 않은 수익사업과 과다한 경비 지출, 감독기관의 시정 지시 불이행 등이 제시됐다.
박근령은 이러한 처분에 불복해 법적 대응에 나섰지만, 2007년 서울고등법원은 이사장 승인 취소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이후 2008년 대법원에서도 관련 판단이 확정되면서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따라서 박근령은 2026년 현재 육영재단 이사장이 아니라 전 육영재단 이사장으로 표기하는 것이 정확하다.
박지만과의 갈등
박근령이 이사장직을 상실한 뒤 육영재단의 임시이사 선임을 둘러싸고 남동생 박지만과의 갈등도 발생했다.
2008년 11월 법원이 임시이사 9명을 선임했는데, 이들이 박지만이 추천한 인물들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단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됐다.
2009년에는 재단 사무실 출입과 운영권을 둘러싸고 양측의 대립이 발생했으며, 관련 상황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박근령은 이후 이사장직 복귀를 위한 소송을 제기했지만, 2015년 9월에도 관련 소송에서 패소했다. 따라서 과거의 재단 운영권 분쟁이 있었다는 사실과 현재 재단을 소유하거나 운영한다는 주장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본래 육영재단은 공익 목적의 재단법인이므로 특정 가족 구성원의 개인 재산처럼 단순하게 소유권을 설명하기도 어렵다.
일본 관련 발언 논란
2015년 니코니코 인터뷰
본인을 우주가 도와주는 분의 대변인이라면서 니코니코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 내용은 요약하면 "우리가 위안부 가지고 시비터는 거에 대해서 사과를 하며, 앞으로도 우리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국 국민을 대표해서 사과하겠다. 그리고 일본의 무궁한 영광을...이다.
2015년 8월 4일 일본의 동영상 플랫폼 니코니코에서 공개된 인터뷰에서 박근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에 관해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박근령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한국 사회가 더 책임 있게 지원해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하는 한편, 일본을 비판하는 뉴스가 반복되는 데 대해 일본인들에게 미안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또한 한국 정부가 일본 정치인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문제 삼는 것은 일본의 국내 문제에 간섭하는 행위라는 견해를 밝혔다.
일본 천황을 지칭하면서 극존칭을 사용했으며, 일본이 과거 한국에 제공한 경제적·사회적 지원을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자신의 견해가 한국 국민 다수의 생각과 일치한다는 취지로 발언하면서, 실제로 그러한 대표성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받았다.
이 인터뷰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 공개됐으며, 당시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과거사 문제가 중요한 외교 현안으로 논의되던 시기에 발생한 논란이었다.
역사적 사실관계 문제
박근령은 인터뷰 과정에서 일본 천황의 과거사 관련 발언을 설명하면서 실제 발언자와 시점을 혼동하기도 했다.
일본의 아키히토 천황이 1990년 노태우 대통령에게 사용했던 '통석의 염'이라는 표현을 히로히토 천황이 전두환 대통령에게 한 발언으로 소개한 것이다.
또한 1993년 고노 담화를 잘못된 명칭으로 지칭하는 등 일본의 역사적 발언과 외교 관계에 대한 일부 설명에서도 사실관계가 부정확한 부분이 있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외교적 견해가 다른 문제와 별개로, 역사적 사실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정확한 정보를 전달했다는 비판의 근거가 됐다.
논란에 대한 평가
해당 발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의 역사적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으로 이어졌다.
박근령은 과거사 갈등을 줄이고 한일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로 자신의 견해를 설명했지만, 비판하는 측에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범죄 책임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야스쿠니 신사에는 태평양 전쟁의 A급 전범으로 판결된 인물들이 합사돼 있기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의 공식 참배는 일본 국내의 종교적 행위를 넘어 주변국과의 역사·외교 문제로 이어져 왔다.
따라서 이 논란은 단순히 일본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문제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관계와 피해자에 대한 책임을 어떻게 설명했는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 활동
공화당 비례대표 출마
공화당 비례대표 1번으로 출마한 적 있으며 그 많은 표는 역갤러들이 주었다.[1]
박근령은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비례대표 후보 1번으로 출마했으나 당선되지 못했다.
해당 공화당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민주공화당과는 별개의 정당으로, 박정희의 정치적 유산을 강조하는 성향을 보였다.
박근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가족적 배경을 바탕으로 정치 활동을 이어갔으나, 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경력은 없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반응
그리고 TV조선에 나와서 ㄹ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나왔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고 것보다도 이유는 알 수 없지만 ㄹ혜체를 충실히 구사하고 계신다. 억지로 참고 듣는 것도 한계가 있지.
언니가 탄핵된 후 세종대왕 드립을 치면서 그는 32년 동안 집권했다며 탄핵 판결이 부당하다고 했다. 역시 그 언니에 그 동생이다.[2]
ㄴ 시발 네이버 댓글에서 박정희 빠는 새끼들 레퍼토리를 보게 될 줄이야.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박근령은 언니 박근혜와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음에도 탄핵 이후에는 박근혜를 옹호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특히 역사적 인물의 장기 집권 사례를 언급하며 탄핵의 부당함을 주장했으나, 조선시대 군주의 재위 기간과 현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헌법상 책임 및 탄핵 제도는 서로 다른 법적·정치적 체계에 속한다.
대통령 탄핵은 단순히 재임 기간이 길거나 짧다는 이유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과 법률 위반의 중대성 등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에 따라 이루어진다.
2021년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2021년 12월 21일 박근령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20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당시 소속 정당은 신한반도당이었으며, 주요 정책으로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이원집정부제 형태의 개헌과 국민통합, 남북관계 개선 등을 제시했다.
경제·사회 분야에서는 농어촌 기본소득과 공공성이 큰 분야의 공영화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출마 선언은 박근혜의 여동생이라는 가족적 배경뿐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독자적인 정치 활동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다만 출마 선언 자체가 대통령 선거에서 실제로 후보 등록을 완료하거나 최종 투표에 참여했다는 의미는 아니므로 이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사건
최근 육영재단 협약 관련 사기 친 게 들통나서 기사까지 났다. 역시 부부가 9년 간 아무 일도 안 하고 놀고 먹는 금수저 집안다운 사기꾼 마인드다 ㅉㅉ [3] 하긴 지들이 알바를 해봤겠어 일을 해봤겠어? 아무것도 안 ㅎ...
위 내용과 관련해 박근령은 실제로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사건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사건 경위
2014년 박근령은 수행비서 역할을 하던 인물과 함께 공공기관 납품계약을 성사시켜 주겠다는 명목으로 사회복지법인 관계자로부터 1억 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거론된 납품계약의 규모는 약 160억 원이었다. 검찰은 박근령 측이 해당 계약을 성사시키거나 도와줄 능력과 의사가 없으면서도 금전을 받았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 친인척 등의 비위 의혹을 조사하는 특별감찰관 제도와 관련해서도 주목받았다. 특별감찰관이 고발한 첫 사건으로 알려졌다.
재판 결과
2017년 11월 1심 재판부는 박근령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박근령이 직접 납품계약을 도와주겠다고 말했다는 증거나 관련 진술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2018년 5월 항소심에서는 판단이 뒤집혔다. 재판부는 박근령이 사건에 실질적으로 관여했으며, 청탁 명목으로 금전이 교부됐다고 인정했다.
2018년 11월 23일 대법원은 항소심의 유죄 판단을 확정했다.
최종 확정된 형은 다음과 같다.
- 징역 1년 6개월
- 집행유예 2년
- 사회봉사 160시간
- 추징금 1억 원
재판부는 피해 회복이 이루어진 점 등을 고려해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지만,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가 확정됐다.
따라서 해당 사건은 단순히 의혹이 제기되거나 기소된 단계에서 끝난 사건이 아니라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확정된 사건이다.
언니와의 관계
사실상 의절했다고 할 정도로 박근혜와는 사이가 매우 나쁘다.
ㄹ령이가 사고를 쳤다면 까이는 게, 본인보다는 대통령이라서 잘못이 없어도 까이는 그분은 지금도 억울해서 이불 속에서 눈물을 찔끔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꼴에 친자매라고 지만이와 함께 언니에게서 최태민을 떼어놓으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박근혜와 박근령의 관계가 악화된 배경으로는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과 최태민 관련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1990년 박근혜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난 뒤 박근령이 뒤를 이었으며, 재단 운영을 둘러싼 갈등은 이후 남동생 박지만에게까지 확대됐다.
특히 2008년 박근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상실한 이후에는 박지만이 추천한 인물들이 임시이사로 선임되면서 박근령과 박지만 사이에서도 분쟁이 발생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박정희 일가의 세 자녀는 육영재단 운영과 관련해 서로 다른 입장을 보여 왔다.
다만 가족 구성원 사이의 구체적인 사적 관계는 외부에서 모두 확인하기 어렵다. 공개된 갈등과 소송 기록을 바탕으로 관계가 좋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고 설명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완전히 의절한 상태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또한 박근령은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언니를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따라서 오랫동안 갈등을 겪었다는 사실과 특정 정치적 사안에서 박근혜를 옹호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
2026년 근황
다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기점으로 박근혜-박정희 일가들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는지 2017년 이후에는 망언도 않고 조용히 지내고 있다.
그러나 2017년 이후에도 정치 활동과 공개 발언이 완전히 중단된 것은 아니다. 2021년에는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으며, 2026년에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회적 논란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영화 암살자(들) 관련 인터뷰
2026년 10월 6일 박근령은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어머니 육영수의 피살 사건을 다룬 영화 암살자(들)과 관련한 입장을 밝혔다.
박근령은 영화의 제목과 표현 방식이 박정희 대통령이나 당시 경호 관계자들을 암살에 관여한 인물로 오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창작에는 표현의 자유뿐 아니라 사실관계에 대한 책임도 따른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이나 시위는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배우들은 작품을 제작하거나 역사적 해석을 결정하는 주체가 아니라 연기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 인터뷰는 2026년 10월 기준 확인되는 박근령의 최근 공개 발언 가운데 하나다.
결론
일본의 극우보다 더 질이 나쁘다. 역갤러나 일뽕의 수준을 넘어서 이 정도면 그냥 21세기의 이완용.
ㄴ 이완용만큼 머리가 좋지 않으니 비교는 실례다.
문제는 헬조선의 노땅들과 어버이연합 같은 쓰레기들이 반인반신인 그 분의 따님이라고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니코니코 인터뷰에서 매우 위험한 발언을 굉장히 많이 한 것을 봐서, 조만간 번개탄이 배송되거나 남산행 불법택배 혹은 마티즈가 찾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
모 야구심판과는 전혀 관계 없다.
박ㄹ령이 이 모양인 이유는 아마 아버지의 영향인 것으로 추측된다. 아니면 유전이거나. ㄹ혜께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협상을 한 것을 보면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것 같다.
박근령에 대한 논란은 크게 육영재단 운영권 분쟁, 2015년 일본 관련 발언, 2018년 확정된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사건, 그리고 정치 활동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사기 및 변호사법 위반 사건은 법원의 유죄 판결로 책임이 확정된 사안이다. 반면 정치적 발언에 대한 평가는 발언의 사실관계와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사회적 논쟁에 해당한다.
특히 2015년 니코니코 인터뷰는 위안부 문제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관한 견해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을 잘못 전달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다만 박근령의 발언이나 정치적 행보가 가족의 유전적 특성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확인 가능한 근거가 없으며, 가족 구성원의 정치적 견해와 개인의 법적 책임 역시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