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만약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 같이 떠들 사람? 노바위키 디스코드

해당 인물은 나름대로 저명성이 있지만 TV에 나오는 연예인, 운동선수 같은 사람은 아닙니다.

이 문서는 예쁘고 매력적인, 남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여자에 대해 다룹니다.
사랑합시다.
이 문서는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체격이 큰 여자에 대해 다룹니다.
사랑합시다. ......만약 너가 부담하실 수 있다면.
강한 여성...지배...왜곡된 성욕......
신재순
생년월일1957년 10월 15일(1957-10-15) (68세)
국적대한민국
학력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직업前 광고모델
자녀2녀
추가 정보
한자 이름申才順

ㄴ 키가 저 당시 여성인데도 꽤나 컸다. 심수봉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75cm나 되는 윤영실보다는 작았지만...

ㄴ 이 사진 오른쪽에 있는 여성이 신재순씨다. 왼쪽에 모자를 눌러쓴 사람은 심수봉

ㄴ 위 사진과 똑같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의 뒷모습. 신재순이 심수봉보다 키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수봉이 단신이 아니라 신재순이 거의 170cm 정도 되는 장신이었다.

개요

申才順

관련 기사

1957년생.

정확히는 1957년 10월 15일생으로 10.26 사건 당시 만 22세였다. 당시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으며 훤칠한 키와 외모 덕분에 광고모델로도 활동하고 있었다.[1]

웃기게도 1917년 생인 박정희보다 무려 40살이나 연하였고 1952년 생인 박근혜보다 5살 연하, 1958년 생인 박지만보다 1살 연상이었다.

1979년 10.26 사건당시 반인반신이 곁에서 같이 술을 마신 여자.

이 때문에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국 현대사에서 이름이 남게 되었다. 사건 당시 그 자리에 있던 사람 가운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직접 목격자였기 때문에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도 증언했다.

10.26 사건

본래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다니고 결혼해 딸까지 두었던 미녀 여대생이었지만 궁정동 안전가옥에서 시바스 리갈과 동동주를 스까만든 폭탄주를 즐겨마신 우리의 반인반신이 여대생끼고 놀아야지 하면서 안전가옥으로 불렀다. 이당시엔 당대의 인기가수 심수봉도 같이 있었다.

좀 더 정확한 경위는 신재순이 친구를 따라 한 지인의 집을 방문했다가 중앙정보부 의전과장 박선호를 알게 되었고, 박선호가 다음 날 좋은 자리를 소개해주겠다며 불러낸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박선호를 만난 뒤 내자호텔에서 기다리던 심수봉까지 태우고 함께 궁정동 안전가옥으로 이동했다.[2]

정작 신재순은 처음에는 무슨 자리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궁정동에 도착하고 나서야 "이 나라의 높은 어른들이 참석하는 자리"라는 설명을 들었고, 실제 연회장에 들어가서야 박정희, 김재규, 차지철, 김계원 등이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됐다.

그리고 이 여대생을 끼고 GUNBANG진사람과 술을 마시던 우리의 반인반신은 재규어가 야수의 심정으로 날린 민주주의의 탄환을 맞고 벌집핏자가 되었다.

총격 직후 신재순은 총에 맞은 박정희가 자신의 쪽으로 쓰러지자 직접 상태를 살폈고 등에 피가 흐르는 것을 보고 손으로 막아 지혈하려고 했다고 한다. 사건이 정리된 뒤에는 박선호가 신재순과 심수봉을 차에 태워 내자호텔까지 데려다줬다.[3]

이후 신재순은 사건의 핵심 목격자로 조사를 받고 법정에도 나갔다. 특히 김재규가 차지철에게 총을 쏘면서 했다고 알려진 "각하, 이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니..."라는 발언을 들었다고 증언했는데, 훗날 2011년 인터뷰에서 사실 자신은 그 말을 듣지 못했고 합동수사본부가 시키는 대로 진술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계속된 조사와 세뇌 때문에 나중에는 자신조차 기억이 혼란스러웠다고 한다.[4]

개인사와 미국 이주

참고로 처음에 결혼하고 낳은 딸은 이혼할때[5] 엄마가 친가로 데려갔고 지금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머형은행 간부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중에 재혼해서 자식다시낳고 손녀셋을 가진 할머니가 되었고 식당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당시에는 그냥 미혼 여대생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신재순은 만 20세 때 이미 한 번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 첫 남편은 신재순보다 9살 많은 재력가 집안의 아들이었으며, 대학 생활 도중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그러나 약 2년 만에 이혼했고 이후 학교에 복학하여 광고모델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6]

10.26 사건이 벌어진 뒤에는 평범한 광고모델이나 직장인으로 다시 살아보려고 했지만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사건 이야기를 꺼내는 바람에 한국에서 정상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독재자새끼라도 경제를 벌크업시킨 분이라 생각하여 반인반신이 재규어한테 총맞고 죽을때까지 '나는 괜찮아'라고 말한 것을 끝까지 잊지 못했다고 한다.

실제로 신재순은 훗날 인터뷰에서도 박정희에 대해 독재를 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나라를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희가 총에 맞은 직후 신재순이 괜찮으냐고 묻자 "나는 괜찮아"라고 대답한 장면 역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고 한다.[7]

10.26 사태이후 1983년 천조국 LA로 이주하여 조용히 살고 있다고 한다.

정확히는 사건 이후 친구 소개로 재미동포를 만나 재혼했고, 1983년 미국으로 건너가 LA 북쪽의 랭커스터에서 살기 시작했다. 두 번째 남편은 한국 초기 헤비메탈 그룹 가운데 하나인 '무당'의 드러머로 활동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이 결혼에서 둘째 딸을 낳았지만 두 번째 결혼 역시 훗날 이혼으로 끝났다.[8]

첫 결혼에서 낳은 큰딸과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냈다가 훗날 다시 연락이 닿았다. 2011년 당시 큰딸은 샌프란시스코의 대형 은행 간부로 일하고 있었고, 두 딸에게서 모두 손녀를 얻어 손녀 셋을 둔 할머니가 되었다.[9]

미국에서는 평범하게 살려고 했지만 10.26 사건과 완전히 떨어져 살 수는 없었다. 1994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그곳에 그녀가 있었네》를 출간했고, 1996년에는 연극무대에도 올라 한국 활동을 다시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다시 미국 생활로 돌아왔다.

2011년 인터뷰 당시에는 LA 근교 가디나에서 구이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10.26 사건 이후 워낙 사람들의 시선에 시달렸기 때문에 한동안 언론 인터뷰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해당 인터뷰 역시 약 14년 만에 한 장문의 인터뷰였다고 한다.[10]

여담

10.26 사건 때문에 평생 박정희, 김재규, 심수봉과 함께 이름이 언급되지만 정작 본인은 애초에 정치와 아무 상관도 없는 22살 대학생이었다. 본인의 설명대로 친구 따라 사람을 만났다가 갑자기 대통령 술자리에 불려가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총에 맞는 것을 바로 옆에서 목격한 것.

1994년에 낸 자전적 소설에서도 자기는 그저 자신의 미래를 위해 움직이던 젊은 여자였고 우연히 사건 현장의 증인이 됐을 뿐이라는 취지로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심수봉과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유명한 사건 중 하나를 함께 겪은 특이한 인연이 되었다. 사건 이후 살아온 인생은 서로 크게 달라졌지만 훗날에도 인연을 이어갔다고 한다.[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