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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
본명심민경
생년월일1955년 7월 11일
국적대한민국
출생지충청남도 서산시
학력명지대학교 경영학과
추가 정보
직업가수, 싱어송라이터
데뷔1978년 MBC 대학가요제 《그때 그 사람》
활동기간1978년 ~ 현재
장르트로트, 성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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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이 악법의 철폐는 요원해 보이니, 당신이 외국 거주자라도 놀라게 하면 밤길을 조심하세요!

반인반신이 생전에 총애하던 싱어송라이터.

엔카부르려다 반인반신이 왜년은 왜 대려왔냐고 역성을 내길래 한국 노랠 불렀더니 그재서야 만족했다는 풍문이 있다. 씹꼬장새끼 ㅡㅡ

또한 반인반신의 성관념이 매우 순수했다는걸 증명해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궁정동 룸싸롱에서 국가 최상위 권력자가 여대생보고 술따르고 노래만 부르게 하고 집에 돌려보내게 했다는건 육영수 여사밖에 모르는 마사오쿤의 순정을 알 수 있다.

띵곡 존나 많다. 백만송이 백만송이 ㅎ

여대생이었다고 되도않는 섹드립치다 70먹은 할머니한테 모욕죄로 고소당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개요

심수봉은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다. 1978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 《그때 그 사람》을 부르며 이름을 알렸다. 대회에서는 입상하지 못했는데 노래는 존나게 떠버려서 결과적으로 상 받은 놈들보다 더 유명해졌다. 이후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엔 난 몰라》, 《비나리》, 《백만송이 장미》 등 한국 성인가요계에 남은 곡을 줄줄이 만들어냈다.

특히 작사·작곡을 직접 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지금보다 훨씬 드물던 시절부터 자기 노래를 직접 만들었다. 그냥 옛날 트로트 가수 1명이 아니라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사람이다.

가수가 되기 전에는 호텔 등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나훈아가 노래를 듣고 가수를 해보라고 적극적으로 권유했다고 한다. 심수봉 본인도 1975년 호텔에서 노래하던 시절 나훈아를 만난 것이 가수의 길에 들어서는 계기가 됐다고 회고했다. 관련 기사

10.26 사건

그리고 이 사람의 인생을 음악보다 더 기괴하게 꼬아버린 사건이 바로 10.26 사건이다.

심수봉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피살된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 만찬에 직접 참석해 사건을 목격했다. 당시 심수봉과 신재순이 만찬 자리에 있었으며, 심수봉은 노래와 반주를 위해 불려간 상태였다. 2025년 열린 김재규 재심에서도 당시 현장 목격자라는 이유로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했다. 관련 기사

위에서 말한 엔카 이야기도 완전히 인터넷발 구라는 아니다. 심수봉은 2006년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 내용 일부가 잘못 전달됐다면서, 박정희를 처음 만났을 때 일본 가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를 불렀더니 박정희가 "어디서 왜년을 데려왔느냐"는 취지로 화를 냈고, 이후 《눈물 젖은 두만강》과 《황성옛터》를 부르자 한국 가수라는 것을 알고 좋아했다고 직접 설명했다. 관련 기사

그러니까 원문의 "엔카 부르다 욕먹고 한국 노래 불렀더니 만족했다"는 이야기는 대충 뇌피셜로 만들어진 드립이 아니라 심수봉 본인이 공개적으로 밝힌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다만 박정희와 엄청나게 자주 만난 전속 가수였던 것처럼 생각하면 곤란한데, 심수봉 본인은 박정희를 직접 본 것이 10·26을 포함해 총 세 차례였다고 회고했다. KBS 관련 인터뷰

문제는 그 세 번째가 하필 대통령이 눈앞에서 총 맞아 죽는 날이었다.

사건 이후 심수봉은 계엄사령부의 조사를 받았고 한동안 정상적인 방송활동을 하지 못했다. 본인은 이후 10·26 사건의 충격 때문에 수십 년 동안 기타를 잡지 못했다고 밝혔으며, 2026년 들어서야 다시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가수 하러 갔다가 현대사 시험문제 한가운데로 강제 전송된 셈이다.

음악

심수봉 노래의 특징은 트로트에만 딱 박혀 있지 않고 당시 가요, 재즈, 일본 엔카 등 여러 음악의 영향을 꽤 자연스럽게 섞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자기가 부를 노래를 직접 쓰는 능력이 있어서 가수와 작곡가가 따로 놀지 않는다.

대표곡으로는 다음과 같은 노래들이 있다.

  • 《그때 그 사람》
  •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 《사랑밖엔 난 몰라》
  • 《비나리》
  • 《미워요》
  • 《여자이니까》
  • 《무궁화》
  • 《백만송이 장미》

특히 《백만송이 장미》는 심수봉을 잘 모르는 세대도 후렴은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봤을 가능성이 높은 곡이다.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때 그 사람》은 1978년 대학가요제에서 입상에는 실패했지만 음반으로 나오면서 크게 히트했다. 대회 성적표는 광탈인데 노래는 수십 년 뒤에도 살아남았으니 가요제 심사위원들의 의문의 1패.

2026년 김다현 공개 비판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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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20일 전북 진안군에서 열린 진안고원 트로트페스티벌에서 갑자기 대형사고를 하나 쳤다.

심수봉 바로 앞 순서에 당시 17세였던 트로트 가수 김다현이 공연했는데, 무대에 오른 심수봉이 앞 순서 가수를 두고 "노래가 뭔지, 삶이 뭔지도 모르는 아가씨인 것 같다"는 취지로 공개 비판했다. 이어 앞으로 자기 앞 순서에는 해당 가수를 내보내지 말아 달라는 말까지 했다. 연합뉴스

54살 어린 후배가 공연하고 내려갔는데 다음 가수가 관객들 앞에서 공개 품평회를 열어버린 것이다.

당연히 인터넷에서 바로 불이 났다. 음악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 것 자체야 가수 마음이라 쳐도, 이제 막 무대를 마친 10대 후배를 이름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많은 관객 앞에 대놓고 저격한 것은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다현을 '여자애', '아가씨', '선수' 등으로 표현한 것도 함께 지적됐다.

논란이 커지자 심수봉은 다음 날인 9월 21일 공식 사과문을 내고 자신의 발언을 "실언"이라고 인정했다. 행사장 소음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축제 현장에서 상식을 벗어난 말을 한 것은 자신의 잘못이라고 밝혔으며, 앞 순서 가수가 정확히 김다현인지도 몰랐고 특정인을 망신주기 위한 의도는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또한 후배 가수의 마음에 상처를 준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며 김다현과 가족, 팬, 행사 관계자들에게 사과했다. 연합뉴스

소속사 측도 김다현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사과했으며 심수봉이 직접 만나서 사과할 의사도 있다고 밝혔다. 뉴스1

이후 김다현 역시 심수봉과 직접 통화했고 사과와 위로를 받았다고 밝히면서 일단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수습 국면으로 들어갔다.

평생 노래로 사람들 위로하다가 후배한테 한마디 잘못해서 본인이 전국민에게 훈계 듣게 된 상황.

여담

심수봉은 본명이 심민경이다. 예명인 심수봉으로 워낙 오래 활동해서 본명을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10·26 사건 때문에 인생사의 절반이 한국 현대사 문서랑 링크되는 기묘한 가수이기도 하다. 그냥 음악만 했어도 전설인데 대통령 피살사건 현장 목격자 타이틀까지 붙어버렸다.

2026년에도 전국 콘서트와 방송 출연을 이어가고 있다. 칠순을 넘겼는데도 현역이다.

그리고 위에도 적혀 있지만 섹드립은 적당히 하자. 당사자가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