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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겁한 팩트말고 정정당당하게 날조와 선동으로 승부하자 이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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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가타 하루코(小保方晴子, おぼかた はるこ, 1983년 9월 25일~)는 일본의 전 생명과학 연구자다.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어 표기에 따라 오보카타 하루코라고 쓰는 경우도 많다.

2014년 이화학연구소(RIKEN) 소속 연구자로서 체세포에 약산성 등의 강한 자극만 가하면 배아줄기세포처럼 여러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만능성을 얻는다는 이른바 STAP 세포 연구를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연구는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 가운데 하나인 《네이처》에 두 편의 논문으로 실렸고, 기존 유도만능줄기세포(iPS 세포)보다 훨씬 간단하게 체세포를 초기화할 수 있다는 내용 때문에 발표 직후에는 줄기세포 연구의 판도를 바꿀 발견으로 평가됐다.[1][2]

당시 일본 언론은 30세의 젊은 여성 연구자가 생명과학의 상식을 뒤집었다며 오보가타를 거의 국민적 스타처럼 띄웠다. 연구성과뿐 아니라 실험실에서 입었던 일본식 앞치마인 갓포기, 연구실 인테리어와 사생활까지 기사화되면서 '과학계의 신데렐라'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고, 일본에서 또 하나의 노벨상급 줄기세포 연구가 나왔다는 기대도 커졌다.[3]

그러나 논문이 공개된 지 몇 주도 지나지 않아 이미지 중복과 조작 의혹, 다른 연구에서 사용된 이미지의 재사용, 박사논문의 표절 의혹, 연구방법 문장의 부적절한 복사 등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더 치명적인 문제는 전 세계 연구자들이 논문에 적힌 방법을 따라 했는데 STAP 현상이 재현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화학연구소 조사위원회는 오보가타의 일부 데이터 처리행위를 연구부정으로 인정했고, 결국 2014년 7월 《네이처》의 STAP 논문 두 편은 모두 철회됐다.[4][5]

오보가타는 자신이 실수는 했지만 STAP 세포 자체는 실제로 존재한다고 끝까지 주장했고, 기자회견에서는 자신이 STAP 세포 제작에 200회 이상 성공했다는 취지의 발언까지 했다. 그러나 이후 이화학연구소가 감독 아래 직접 재현실험을 할 기회를 줬음에도 결과를 재현하지 못했고, 2015년 《네이처》에 발표된 여러 국제 연구팀의 후속 연구에서도 STAP 현상은 재현되지 않았다.[6]

후속 유전학적 분석에서는 STAP 세포라고 제시됐던 시료들이 기존 배아줄기세포(ES 세포)의 혼입으로 설명된다는 증거까지 제시됐다. 오보가타는 2014년 말 이화학연구소에서 퇴직했고, 별도로 문제가 된 박사논문 때문에 2015년 와세다대학교에서 취득했던 박사학위까지 취소됐다. 한때 일본 언론이 노벨상 후보급 신진 연구자라고 띄웠던 사람이 2년도 지나지 않아 학계에서 사실상 퇴출된 셈이다.

한국에서는 사건의 성격 때문에 황우석과 자주 비교됐으며, 해외에서는 젊은 여성 바이오 혁신가라는 이미지와 검증되지 않은 혁명적 기술이 권위와 홍보를 등에 업고 성장했다는 점에서 엘리자베스 홈즈가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다만 오보가타 사건의 중심은 학술논문의 연구부정과 재현성 문제인 반면 홈즈는 테라노스를 운영하면서 투자자와 환자 등을 속인 혐의로 미국에서 형사 유죄판결과 실형까지 받은 기업사기 사건이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생애와 연구 경력

생애

오보가타 하루코는 1983년 일본 치바현 마쓰도시에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교 이공학부 응용화학과에서 공부한 뒤 대학원에 진학했으며, 연구과정에서 도쿄여자의과대학교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계열 연구실에서도 연구했다. 특히 하버드 의대 계열의 찰스 바칸티 연구팀에서 세포에 물리적 스트레스를 가하면 세포의 분화상태를 되돌릴 수 있다는 가설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했고, 이 아이디어가 훗날 STAP 세포 연구로 발전했다.

2011년 와세다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일본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 분야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이후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포 리프로그래밍 연구 유닛의 책임자가 됐는데, 2014년 당시 불과 30세 전후의 연구자가 일본 최상위급 국가연구기관에서 독립 연구조직을 이끄는 위치까지 올라갔다는 점도 언론이 그녀를 천재 연구자로 포장하는 데 크게 작용했다.[7]

이화학연구소

이화학연구소는 일본어로 理化学研究所, 영어로는 RIKEN이라고 부르는 일본 최대급 기초과학 연구기관이다. 물리학·화학·생명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연구를 수행해왔고 일본 과학계에서 갖는 권위도 상당하다.

오보가타가 STAP 연구를 발표할 당시 소속됐던 곳은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종합연구센터였으며, 논문에는 오보가타 외에도 사사이 요시키, 니와 히토시, 와카야마 데루히코 등 이미 줄기세포 연구에서 상당한 경력을 가진 학자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1] 따라서 STAP은 무명 연구자 한 명이 개인 블로그에 올린 주장 같은 것이 아니라 세계적인 연구기관과 유명 연구자들의 이름을 달고 《네이처》의 동료평가까지 통과한 연구였다. 이 때문에 문제가 드러난 뒤에는 오보가타 개인뿐 아니라 이화학연구소의 관리체계와 공동저자들의 검증책임까지 크게 비판받았다.

STAP 세포와 발표

STAP 세포

STAP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의 약자로, 한국어로는 자극야기성 다능성 획득 정도로 번역된다. 당시 논문의 주장은 이미 혈액세포처럼 특정 기능을 갖도록 분화된 체세포에 강한 외부 스트레스를 가하면 세포가 초기화돼 여러 종류의 조직으로 다시 분화할 수 있는 다능성을 얻는다는 것이었다.[1]

대표적으로 쥐의 세포를 낮은 pH의 약산성 환경에 짧은 시간 노출시킨 뒤 배양하면 세포가 만능성을 획득한다고 주장했다. 기존의 iPS 세포 제작은 특정 유전자나 전사인자를 세포에 도입하는 비교적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에, 만약 약산성 자극만으로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재생의학에서는 엄청난 기술적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쉽게 말하면 기존 기술이 세포를 각종 유전자 조작과 복잡한 공정을 거쳐 초기화하는 방식이었다면, STAP은 세포를 좀 존나 괴롭혀놨더니 갑자기 만능세포가 됐다는 수준으로 간단했다. 바로 그 단순함 때문에 세계가 열광했고, 동시에 너무 간단했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이 빠르게 따라 해볼 수도 있었다.

왜 그렇게 대단했나

줄기세포 연구에서 배아줄기세포는 매우 높은 다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인간 배아 사용과 관련된 윤리문제가 있고, 야마나카 신야가 개발한 iPS 세포는 성체세포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세포 초기화를 위해 특정 유전자를 도입해야 하는 등의 과정이 필요했다.

STAP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약산성 등의 스트레스만으로 성체세포를 초기상태에 가깝게 되돌릴 수 있으므로 기존 방법보다 훨씬 단순하고 값싼 줄기세포 제작법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2012년 야마나카 신야가 iPS 세포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라 일본에서는 또 하나의 세계적인 줄기세포 발견이 등장했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2014년 《네이처》 논문

2014년 1월 29일 《네이처》에는 STAP 세포를 다룬 두 연구가 동시에 발표됐다. 하나는 체세포를 외부자극으로 다능성 상태로 변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다뤘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세포의 발달능력을 설명했다.[1][2]

오보가타가 연구의 핵심 저자였고 사사이 요시키, 니와 히토시, 와카야마 데루히코, 찰스 바칸티 등 여러 연구자가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네이처》도 당시 논문의 의미를 매우 높게 평가해 기존의 핵이식이나 유전자 조작 없이 체세포를 다능성 상태로 되돌리는 새로운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보가타는 일본 과학계에서 거의 하루아침에 슈퍼스타가 됐다.

과학계의 신데렐라

논문 발표 뒤 일본 언론은 연구 자체 못지않게 오보가타라는 사람에게 관심을 쏟았다. 젊은 여성이라는 점, 하버드 연구경력, 30세에 연구팀 책임자가 됐다는 점 등이 집중적으로 소개됐고, 평범한 실험복 대신 일본식 흰 앞치마인 갓포기를 입고 연구하던 모습까지 유명해졌다.[3]

연구실 벽의 캐릭터 장식이나 화장, 패션, 취미 같은 것들이 과학기사에 등장하면서 사실상 연구자가 아니라 연예인을 키우는 수준의 보도가 이어졌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이공계 여성인 이른바 '리케조'(理系女子)의 상징으로 오보가타를 소비하려는 분위기도 강했다.

과학적 발견은 이제 막 발표돼 다른 연구자의 독립적인 검증을 받아야 할 단계였는데, 언론은 이미 노벨상 후보와 일본의 새로운 여성 영웅을 완성해놓은 상태였다. 나중에 논문이 무너지면서 일본 언론 역시 검증도 끝나기 전에 스타를 존나 만들어놓고 사고가 터지자 다시 사람 하나를 죽어라 패기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STAP 연구부정 사태

논문과 박사학위 문제

연구부정 의혹

문제가 터지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세계의 연구자들이 논문에 실린 이미지와 데이터를 검토하면서 서로 다른 실험결과여야 할 사진이 지나치게 비슷하거나, 이미 다른 논문과 학위논문 등에 사용된 이미지가 STAP 논문에도 등장한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화학연구소는 2014년 2월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3월 중간조사에서는 여러 데이터 처리의 부적절성을 확인했다.[7] 이후 최종조사에서는 오보가타가 논문에 사용한 일부 이미지와 전기영동 데이터를 부적절하게 편집하거나 서로 다른 데이터를 사용한 행위를 연구부정으로 판단했다.

오보가타는 자료처리에 실수가 있었던 것은 인정하면서도 의도적으로 결과를 날조한 것은 아니라며 조사결과에 반발했고 재조사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화학연구소는 2014년 5월 재조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기존 연구부정 판단을 유지했다.[4]

박사논문까지 터지다

STAP 논문 의혹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오보가타가 2011년 와세다대학교에 제출한 박사논문까지 다시 검증대상이 됐다. 논문 일부가 미국 국립보건원 등 기존 자료의 문장을 제대로 된 인용표시 없이 대량으로 가져왔다는 의혹과 이미지 문제가 발견됐다.[8]

특히 박사논문의 줄기세포 개론 부분 상당량이 기존 인터넷 자료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STAP 논문에서만 갑자기 연구윤리가 무너진 게 맞느냐"는 의문까지 생겼다. 와세다대학교는 별도의 조사에 들어갔고 이후 학위논문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했다.

처음에는 일정 기간 동안 논문을 수정할 기회를 주는 다소 이례적인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요구되는 수준의 수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보고 2015년 박사학위를 취소했다. 따라서 현재 오보가타를 현역 박사 연구자라고 부르는 것은 부정확하다.

와세다대학교 박사학위 취소

STAP 사건으로 박사학위 논문까지 다시 들여다보게 된 와세다대학교는 오보가타의 논문에서 대량의 부적절한 인용과 이미지 문제 등을 확인했다. 대학은 처음에는 학위취소 사유가 존재한다고 보면서도 일정 기간 논문을 다시 수정할 기회를 부여했다.

그러나 결국 논문을 박사학위에 적합한 수준으로 수정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면서 2015년 11월 박사학위를 취소했다. 박사논문의 문제가 STAP 연구와 별도의 자료였다는 점도 중요하다. STAP 한 번의 실수 때문에 과거 학위까지 억울하게 날아간 것이 아니라, 과거 학위논문 자체를 다시 조사했더니 거기서도 별도의 문제가 나온 것이다.

2011년 논문도 철회

STAP 이전 오보가타가 공동저자로 참여했던 연구 일부도 사건 이후 재검증됐다. 그중 2011년 《Nature Protocols》에 실렸던 논문은 원자료 문제 등으로 신뢰성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2016년 철회됐다.

연구부정 사건이 무서운 이유가 이거다. 최신 논문 하나가 문제되면 과학계는 자연스럽게 "그럼 이 사람이 전에 한 연구는 괜찮냐?"라고 묻는다.

한 번 신뢰가 깨지면 연구자의 과거 논문들이 전부 다시 현미경 밑으로 들어간다.

재현 실패와 논문 철회

재현 실패

연구부정만큼이나 STAP을 박살낸 것이 재현성 문제다. 과학에서 새로운 현상을 발견했다고 주장하려면 다른 연구자가 같은 방법으로 실험해도 비슷한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런데 STAP 논문이 공개되자 세계 여러 연구실이 실험을 반복했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이 문제는 STAP에게 특히 치명적이었다. 연구의 가장 큰 장점이 방법이 쉽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특수한 기계나 수십 년 노하우가 필요한 실험도 아니고 "세포를 특정 산성 환경에 노출시키면 된다"는 주장인데 세계적인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아무리 따라 해도 안 됐다.

오보가타는 2014년 4월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STAP 세포 제작에 200회 이상 성공했다는 취지로 주장했지만, 결국 이화학연구소는 아예 감독이 붙은 환경에서 오보가타 자신이 실험을 다시 하도록 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이후 2015년 《네이처》에 게재된 국제 공동연구에서도 여러 연구진이 STAP 현상을 재현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6]

"STAP 세포는 있습니다"

오보가타 사건을 상징하는 발언이

STAP細胞はありまぁす!

이다. 한국어로는 흔히 "STAP 세포는 있습니다!" 정도로 번역된다.

2014년 기자회견에서 오보가타가 STAP 세포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강하게 주장하며 나온 발언으로, 자신은 제작에 여러 차례 성공했다는 취지의 설명도 함께 했다.[9]

그런데 다른 연구자들은 못 만들고, 나중에는 본인이 통제된 조건에서 다시 실험했을 때도 못 만들면서 이 문장은 일본 인터넷에서 과학적 주장이 아니라 밈으로 살아남았다. 뭔가 존재한다고 억지로 우길 때 "○○는 있습니다!"라고 패러디하는 식이다.

과학자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는데 연구결과보다 유행어가 오래 살아남게 됐다.

논문 철회

2014년 7월 2일 《네이처》는 STAP 관련 논문 두 편을 모두 공식 철회했다.[5][10]

철회문에서는 여러 오류 때문에 연구 전체의 신뢰성이 훼손됐으며 STAP 현상이 실제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밝혔다. 《네이처》 편집부 역시 별도의 사설을 통해 이번 사건이 연구기관과 학술지의 품질관리 및 연구 데이터 관리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줬다고 인정했다.[11]

세계 최고 과학지라고 논문조작 탐지기까지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논문심사는 기본적으로 연구자가 제출한 데이터가 진짜라는 신뢰를 어느 정도 전제로 한다. 심사위원이 모든 원본 이미지와 실험노트를 압수해 디지털 포렌식하는 과정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STAP 사건은 오보가타 개인의 연구부정뿐 아니라 과학출판 시스템이 연구자의 기본적인 정직성에 얼마나 크게 의존하고 있는지도 보여줬다.

ES 세포 혼입

STAP 관련 시료에 대한 후속 유전자 분석에서는 문제의 세포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어진 만능세포가 아니라 기존에 존재하던 배아줄기세포에서 유래한 것으로 설명되는 결과가 나왔다. 즉 실험과정 어딘가에서 ES 세포가 혼입됐다는 것이다.

2015년 《네이처》에 게재된 후속 연구들도 STAP 현상을 재현하지 못했고 기존 STAP 세포주들이 ES 세포와 관련돼 있음을 보여줬다.[6]

다만 ES 세포가 정확히 어떤 경로로 들어갔는지, 누가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는지까지 모든 세부사항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보가타가 몰래 ES 세포를 집어넣다가 걸렸다"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확실한 건 STAP 세포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됐던 세포들이 결국 STAP 현상의 증거로 인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화학연구소와 공동연구자 후폭풍

이화학연구소 퇴직

직접 재현실험까지 실패한 뒤 오보가타는 2014년 12월 이화학연구소를 떠났다. 이후 이화학연구소는 오보가타가 계속 재직하고 있었다면 징계대상이 됐을 것이라는 판단도 내렸다.

세계적인 연구기관에서 독립 연구팀을 맡던 30대 초반 과학자가 논문 발표 1년도 지나지 않아 소속기관을 떠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과학계에서 연구부정이 치명적인 이유는 단순히 논문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은 "이 사람이 낸 데이터는 믿을 수 있다"는 신뢰인데, 그 신뢰가 무너지면 이전 연구까지 전부 다시 검증대상이 된다.

사사이 요시키

사사이 요시키는 STAP 사건에서 가장 비극적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던 발생·줄기세포 연구자였고 당시 이화학연구소 발생·재생과학연구센터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STAP 논문의 공동저자이자 오보가타의 연구발표와 논문작성에 깊게 관여했다.

이화학연구소 조사에서 사사이 자신이 오보가타처럼 데이터의 날조·변조를 직접 수행한 인물로 인정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계적 연구자이자 공동저자로서 논문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고 발표에 참여한 책임이 크다는 비판을 받았다.[7]

2014년 8월 5일 사사이는 사망했으며 경찰은 자살로 판단했다. 당시 그는 STAP 사건 이후 심각한 정신적 압박을 받고 치료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3] 사건이 이미 일본 과학계를 뒤흔들고 있던 상황에서 주요 공동저자의 사망까지 발생하면서 STAP 파문은 단순한 논문철회 사건을 넘어 일본 사회 전체에 큰 충격을 준 사건으로 확대됐다.

사사이의 죽음까지 전부 오보가타 한 사람의 책임으로 단순하게 귀결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는 공동저자로서 검증책임을 비판받았고 STAP 사건의 압박을 겪었지만 개인의 사망에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STAP 사태가 관련 연구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줬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사건임은 분명하다.

비교

황우석과 비교

한국에서는 STAP 사건이 터지자 거의 즉시 황우석 사건과 비교됐다. 둘 다 줄기세포 분야의 엄청난 발견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고, 저명 학술지에 논문이 실렸으며, 언론과 국가적 기대가 과학적 검증보다 먼저 폭발했다가 데이터 문제와 재현성 논란으로 무너졌다는 공통점이 있다.[12]

다만 구체적인 사건구조는 다르다. 황우석 사건은 인간 배아줄기세포 연구와 난자 확보의 연구윤리 문제, 정부의 대규모 연구지원, 연구비 문제 등이 함께 얽혔다. 반면 STAP 연구는 주로 쥐의 체세포를 대상으로 했고 핵심 문제는 논문의 데이터 부정과 실제 현상의 재현 실패였다.

그래도 국가가 사랑한 천재 과학자 → 세계적 발견 → 검증 시작 → 논문 박살이라는 전개가 너무 비슷해 한국 언론에서 '일본판 황우석'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온 것은 이해할 만하다.

엘리자베스 홈즈와 비교

엘리자베스 홈즈와도 묘하게 비교할 수 있다. 홈즈는 미국 바이오기업 테라노스를 창업해 손가락 끝에서 얻은 아주 적은 양의 혈액만으로 수많은 검사를 수행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오보가타는 세포에 간단한 외부자극을 가하는 것만으로 만능성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둘 다 기존의 복잡한 생명과학 기술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였고, 젊은 여성 혁신가라는 이미지가 언론에서 강하게 소비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명하고 권위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모였다는 것도 비슷하다. 홈즈 주변에는 정치인과 기업인이 있었고 오보가타 주변에는 일본 최고급 연구기관과 세계적인 과학자들이 있었다.

또 일반인은 생명과학의 세부 실험을 직접 검증할 수 없으니 결국 "저 유명한 사람들이 인정했으니까 맞겠지"라는 권위가 강력한 신뢰장치가 됐다.

하지만 둘을 완전히 같은 종류의 사건이라고 하면 안 된다. 홈즈는 투자자와 환자를 상대로 한 기업사기로 미국 법원에서 형사 유죄와 장기 실형을 선고받았다. 오보가타의 핵심 문제는 학술적 연구부정과 논문 신뢰성, 박사논문의 연구윤리 문제였으며 테라노스 사건과 같은 거액의 투자사기로 형사처벌을 받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보가타를 일본판 엘리자베스 홈즈라고 부르면 캐릭터와 사건의 분위기는 이해하기 쉽지만 법적 성격까지 같다고 이해하면 틀린다.

황우석 + 엘리자베스 홈즈

오보가타를 아주 거칠게 요약하면 연구부정이라는 점에서는 황우석, 스타 여성 바이오 혁신가라는 미디어 이미지에서는 엘리자베스 홈즈와 닮았다고 할 수 있다.

황우석은 세계적인 줄기세포 발견을 주장했다가 논문조작이 드러났고, 홈즈는 기존 혈액검사를 혁명적으로 간소화한다는 기술을 내세워 기업가치 수십억 달러의 회사를 만들었다가 기술과 투자자 기만 문제가 드러났다. 오보가타는 간단한 자극만으로 만능세포를 만든다는 연구를 발표해 스타가 됐다가 논문의 연구부정과 재현실패가 드러났다.

세 사건은 법적·과학적 내용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의 공통점을 보여준다.

스토리가 검증보다 먼저 달리기 시작하면 존나 위험하다.

사건이 남긴 것

미디어와 스타 과학자

미디어의 책임

STAP 사건은 일본 언론의 과학보도 방식에도 상당한 숙제를 남겼다. 논문이 발표되자 언론은 실험조건이나 재현가능성보다 오보가타가 몇 살인지, 여자인지, 어떤 앞치마를 입는지, 연구실을 어떻게 꾸며놓았는지를 더 흥미로운 이야기로 소비했다.[3]

그렇게 과학자를 국민적 스타로 만들어놓고 연구부정 의혹이 터지자 이번에는 정반대로 개인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과학자의 발견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영웅서사를 먼저 만든 뒤, 그 서사가 무너지면 몰락서사로 갈아타는 전형적인 미디어 패턴이었다.

이 사건에서 과학적 검증은 실제로 다른 연구자들이 수행했다. 언론이 할 일은 그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었는데, 사람들은 정작 "갓포기를 입은 예쁜 여성과학자"부터 기억하게 됐다.

여성과학자라는 이미지

오보가타 사건을 여성 연구자의 문제로 확대해석하는 것 역시 잘못이다. 당시 일본 언론이 젊은 여성 과학자라는 요소를 과도하게 상품화한 것은 사실이지만 연구부정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과학사에는 남성 연구자의 조작과 날조도 존나 많다. 논문 속 세포는 연구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화장을 했는지, 갓포기를 입었는지 관심이 없다. 같은 조건으로 실험했을 때 결과가 나오느냐만 본다.

오히려 STAP 사건은 여성과학자를 특별한 구경거리처럼 소비하는 미디어 문화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보여줬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과를 과도하게 미화했다가 문제가 발생하니 여성과학자라는 정체성까지 같이 공격하는 식이면 과학과 아무 상관없는 결론만 남는다.

연구윤리와 재현성

연구노트

STAP 사건에서는 연구데이터와 실험노트 관리 문제도 크게 드러났다. 연구자가 특정 실험에 200번 성공했다고 주장하려면 언제 어떤 시료를 사용했고, 어떤 조건에서 실험했고,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원자료가 남아 있어야 한다.

과학에서 연구노트는 단순한 개인 메모장이 아니다. 나중에 결과를 검증하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실험이 실제로 어떻게 수행됐는지 보여주는 핵심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분명 많이 성공했다"는 연구자의 기억보다 실험기록이 훨씬 중요하다. 연구자가 아무리 진심으로 자신의 결과를 믿어도 데이터가 없다면 다른 과학자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재현성이 중요한 이유

STAP 사건에서 결국 가장 강력했던 반박은 인터넷 악플도, 기자회견도, 조사위원회 문서도 아니었다.

다시 해봤는데 안 됐다.

과학에서는 이 한마디가 존나 세다.

오보가타의 명성도, 이화학연구소의 권위도, 《네이처》의 이름도, 사사이 요시키의 경력도 재현 실패를 덮을 수 없었다. 실제로 2015년 후속 국제연구는 독립적인 실험에서 STAP 현상을 재현하지 못했다고 보고했다.[6]

과학이 권위주의와 다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노벨상 수상자가 말해도 실험이 틀리면 틀린 것이고, 대학원생이 말해도 실험이 반복해서 맞으면 검토할 가치가 있다.

사기꾼인가

인터넷에서는 오보가타를 그냥 "과학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의미에서는 없는 연구결과를 있는 것처럼 발표했다는 비판에서 그렇게 부를 수 있겠지만 법적으로 엘리자베스 홈즈처럼 대규모 투자사기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람은 아니다.

오보가타에게 공식적으로 확인된 것은 연구부정, 논문철회, 박사학위 취소와 연구자로서의 신뢰 상실이다. 과학윤리상으로는 존나 심각하지만 형법상의 사기죄와는 구분해야 한다.

학자에게는 박사학위와 논문, 연구실적, 소속기관이 사실상 직업의 기반이다. 이게 전부 무너진 이상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연구자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신뢰를 사실상 잃었다.

과학 시스템의 문제와 자기수정

과학의 자기수정

역설적으로 STAP 사건은 과학 시스템이 실패한 사건인 동시에 과학이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는 과정을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네이처》라는 최고권위 학술지가 논문을 실었고, RIKEN이라는 최고급 연구기관이 연구성과를 홍보했으며, 유명 과학자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했다. 그런데 외부 연구자들이 데이터 문제를 발견했고, 다른 연구팀이 재현에 실패했고, 연구기관이 조사하고, 학술지가 논문을 철회하고, 후속연구가 기존 세포주의 정체를 다시 분석했다.

《네이처》 역시 STAP 철회 사설에서 학술지와 연구기관의 절차가 완벽하지 않았음을 인정하며 데이터 관리와 연구품질 관리의 중요성을 지적했다.[11]

처음부터 안 틀리는 시스템은 아니지만 틀렸을 때 검증 가능한 자료를 통해 뒤집을 수 있는 구조가 과학의 강점이다.

왜 이런 일이 가능했나

STAP 사건을 단순히 오보가타 한 명이 거짓말을 잘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하면 설명이 부족하다. 논문에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과학자들이 공저자로 들어갔고, 일본 최고급 연구기관이 연구를 발표했으며, 《네이처》의 동료평가까지 통과했다.

여기에 일본 언론이 '젊은 여성 천재'라는 서사를 만들어 대중에게 엄청난 확신을 심었다. 연구를 직접 이해할 수 없는 일반인은 결국 RIKEN이나 Nature 같은 기관의 권위와 유명 공동저자를 보고 신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STAP 사건은 과학에서도 권위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권위 있는 학술지와 연구기관은 신뢰할 만한 이유가 있지만 절대로 무오류기관은 아니다.

너무 좋은 이야기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STAP은 대중과 언론이 사랑하기에 완벽한 연구였다. 복잡한 유전자 조작 대신 약산성 자극만 주면 되고, 일본의 젊은 여성과학자가 발견했고, 세계적인 연구기관에서 발표했고, 노벨상급 기술이라는 이야기까지 붙었다.

엘리자베스 홈즈의 테라노스도 비슷했다. 기존 혈액검사보다 훨씬 간단하고 싸고 빠른 기술을 젊은 천재 여성 창업자가 만들었다는 이야기였다.

과학과 기술에서 기존보다 엄청나게 간단하고, 싸고, 빠르고, 혁명적인데 단점은 거의 없다는 주장이 나오면 그것만으로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지만 검증은 더 철저하게 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진짜 혁신도 존재한다. 문제는 사기와 연구부정 역시 바로 그 모습을 존나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후 행보

자서전 《그날》

2016년 오보가타는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 수기 《그날》(あの日)을 출간했다. 책에서는 STAP 연구가 시작된 과정과 공동연구자들과의 관계, 논문 작성과 철회, 이화학연구소 조사, 언론취재, ES 세포 혼입 문제 등을 자신의 시각에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오보가타는 이 책에서도 자신이 의도적으로 ES 세포를 섞어 연구를 조작했다는 식의 해석에 강하게 반발했다. 즉 사건 이후에도 "내가 모든 것을 날조했다"는 형태로 사건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인의 해명과 과학계의 결론은 별개의 문제다. 오보가타가 어떤 의도를 가졌는지에 관한 모든 세부사항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도 STAP 현상이 독립적으로 재현되지 않았고 최초 논문의 핵심 증거가 신뢰성을 잃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현재

오보가타는 이화학연구소 퇴직과 와세다대학교 박사학위 취소 이후 공식적인 학계 연구경력에서는 사실상 물러났다. 이후 자서전 출간이나 잡지 기고 등을 통해 일본 언론에 간헐적으로 등장했지만, 2026년 현재 STAP 세포를 재현해 학계에서 인정받았다는 새로운 연구성과는 없다.

따라서 현재의 오보가타를 "STAP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줄기세포 박사"라고 설명하는 것은 틀리며, 보다 정확하게는 STAP 세포 연구부정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전 생명과학 연구자라고 보는 편이 맞다.

평가

오보가타 하루코는 21세기 일본 과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부정 사건의 중심인물이다. 2014년 1월만 해도 STAP 세포는 줄기세포 연구의 새로운 혁명처럼 보였고, 약산성 자극만으로 체세포를 만능세포로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었다면 iPS 세포 이후 재생의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가운데 하나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논문 발표 직후 데이터와 이미지에 여러 문제가 발견됐고 이화학연구소는 오보가타의 일부 행위를 연구부정으로 공식 판단했다. 《네이처》 논문 두 편은 철회됐으며, 오보가타 본인이 감독 아래 참여한 재현실험에서도 STAP 현상을 입증하지 못했다. 이후 국제 연구진의 독립 재현실험 역시 실패했고, 기존 STAP 관련 세포들은 ES 세포 혼입으로 설명됐다.[5][6]

여기에 박사논문까지 문제가 발견되면서 와세다대학교의 박사학위도 취소됐고 연구자로서의 경력은 사실상 끝났다.

그렇다고 STAP 사건을 단순히 "거짓말 잘하는 여자 연구자 한 명이 세계를 속였다"는 이야기로 끝내는 것도 부족하다. 유명 과학자들이 공동저자로 참여했고 RIKEN이 연구를 대대적으로 홍보했으며 《네이처》가 논문을 받아들였고 언론은 제대로 된 재현검증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오보가타를 국민적 스타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STAP 사건은 연구자의 부정뿐 아니라 공동저자 검증, 연구기관 관리, 학술지 심사, 미디어의 스타 만들기가 동시에 실패한 사례였다.

그리고 과학적으로 가장 중요한 결론은 의외로 간단하다.

STAP 세포가 있다고 말한 사람이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연구자가 똑같이 해봤는데 안 됐다.

과학에서 이보다 강한 반박은 별로 없다.

여담

  • 1983년 9월 25일생이다.
  • 일본 치바현 마쓰도시 출신이다.
  • 와세다대학교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했다.
  • 미국 하버드 계열 연구실에서 연구한 경력이 있다.
  • 이화학연구소에서 세포 리프로그래밍 연구 유닛을 이끌었다.[7]
  • 2014년 1월 《네이처》에 STAP 관련 논문 두 편을 발표했다.[1][2]
  • STAP은 Stimulus-Triggered Acquisition of Pluripotency의 약자다.
  • 체세포에 약산성 등의 자극을 가해 다능성을 획득시킨다는 주장이었다.
  • 논문 발표 직후 일본 언론에서 '과학계의 신데렐라'로 불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3]
  • 흰색 갓포기를 실험실에서 입는 모습이 유명해졌다.
  • 논문 발표 직후 여러 이미지와 데이터 문제에 대한 의혹이 제기됐다.
  • 박사논문에서도 별도의 표절·자료 문제가 발견됐다.[8]
  • 이화학연구소는 오보가타의 일부 행위를 연구부정으로 판단했다.
  • 오보가타는 이에 불복해 재조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4]
  • 기자회견에서 자신은 STAP 세포 제작에 여러 차례 성공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9]
  • 이후 이화학연구소 감독 아래 직접 재현실험을 했으나 STAP 현상을 입증하지 못했다.
  • 2014년 7월 《네이처》의 STAP 논문 두 편은 모두 철회됐다.[5][10]
  • 2015년 국제 공동연구에서도 STAP 세포 재현에 실패했다.[6]
  • 이화학연구소에서 2014년 말 퇴직했다.
  • 와세다대학교 박사학위는 2015년 취소됐다.
  • STAP 이전에 공동저자로 참여한 일부 다른 연구도 사건 뒤 철회됐다.
  • 공동저자였던 사사이 요시키는 2014년 사망했다.[3]
  • 한국에서는 황우석과 매우 자주 비교됐다.[12]
  • 젊은 여성 바이오기술 스타라는 이미지 때문에 엘리자베스 홈즈와도 비교된다.
  • 다만 홈즈처럼 투자사기로 형사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아니다.
  • 2016년 자신의 입장을 담은 수기 《그날》(あの日)을 출간했다.
  • 2026년 현재 STAP 현상은 독립적으로 재현돼 인정받은 과학적 현상이 아니다.
  • "STAP 세포는 있습니다"라는 발언은 정작 STAP 세포보다 일본 인터넷에서 훨씬 오래 살아남았다.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