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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
Yong Hye-in
한자龍慧仁
생년월일1990년 4월 12일(1990-04-12) (36세)
출생지 경기도 부천시
국적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학력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수료
추가 정보
직업정치인
정당기본소득당
의원 선수2
의원 대수제21·22대
현직제22대 국회의원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주요 경력제21·22대 국회의원
기본소득당 제1·3기 상임대표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2026. 8. 30.~9. 13., 자진 사퇴)
새진보연합 상임선거대책위원장
제21대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
SNS유튜브

용혜인(龍慧仁, 1990년 4월 12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기본소득당 소속 제21·22대 국회의원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하면서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렸고, 이후 기본소득 운동을 중심으로 정치활동을 이어왔다.

2020년 기본소득당을 창당해 초대 상임대표를 맡았으며, 같은 해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비례대표 연합정당 더불어시민당에 참여해 제21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도 민주당 주도의 더불어민주연합 비례대표 후보로 다시 출마해 재선에 성공했다.[1]

거대 양당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원내 1석짜리 정당 정치인인데, 이상하게 국회에서 존재감은 어지간한 중진보다 크다. 기본소득, 재난안전, 노동, 여성·가족, 사회적 약자 문제 같은 분야에서 메시지를 존나 선명하게 내는 편이고, 덕분에 지지자들에게는 소수정당인데 할 말은 다 하는 정치인, 반대편에서는 민주당 비례연합을 두 번 타고 국회의원이 된 사실상 범민주당 정치인이라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2026년 8월 30일 이재명 정부의 두 번째 개각에서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전격 지명됐다. 1990년생인 용혜인이 임명될 경우 대한민국 최초의 1990년대생 장관이 될 예정이었다.[2]

그러나 의원직 겸직, 배우자와 기본소득당 운영, 이른바 사당화 논란 등 여러 문제가 동시에 불거지면서 국민의힘 등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후보자 거취를 두고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2026년 9월 13일 장관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지명된 지 14일 만이며, 국회 인사청문회도 열리지 않은 상태에서 낙마했다.[3]

용혜인은 사퇴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으로부터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않은 만큼 결단해달라는 뜻을 전달받았다고 밝혔으며, 여당마저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 국무위원직을 제대로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4]

장관 후보자 지명 당시에는 90년대생 첫 장관이라는 상징성이 가장 큰 뉴스였는데 딱 2주 뒤에는 90년대생 첫 장관 → 인사청문회도 못 가고 자진 사퇴로 끝났다.

후보직 사퇴 이후에는 다시 제22대 국회의원과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활동에 전념하고 있다.

참고로 2026년 9월 기본소득당 지도부도 바뀌었다. 용혜인은 현재 당대표가 아니며, 제5기 당대표는 오준호다. 용혜인은 원내대표를 계속 맡고 있다.

생애와 정치 입문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났으며 안산에서 성장했다.

경안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공식 이력상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수학했다.[5]

대학 시절부터 사회운동에 참여했으며, 특히 2014년 세월호 참사가 정치활동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세월호 참사와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

2014년 세월호 참사 직후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제안하면서 처음 널리 알려졌다.

'가만히 있으라'는 세월호 침몰 당시 학생들에게 내려진 선내방송 지시를 역설적으로 사용한 표현이었다. 참가자들은 입을 막거나 침묵한 채 행진하면서 정부의 참사 대응을 비판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용혜인은 이 집회와 관련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고,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벌금 100만 원을 선고받았다.[1]

이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에 나선 유가족들을 지켜본 것이 정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밝혔다.

용혜인 정치경력의 출발점 자체가 세월호 참사였기 때문에 이후 국회에서도 재난·참사·안전 문제에 상당한 비중을 두게 된다.

다만 2026년 장관 후보자 지명 이후에는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실제로 처음 구상한 사람이 용혜인이 맞느냐는 문제도 새로 논란이 됐다. 과거 노동당 관계자가 자신이 최초 제안자였으며 당시 용혜인을 전면에 내세우는 과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는 당사자들의 주장이 엇갈리는 사안으로, 침묵행진에 용혜인이 참여하고 대외적으로 제안자로 알려져 정치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사실과 아이디어의 최초 제안자가 누구였는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기본소득 운동

용혜인의 이름에서 사실상 떼어놓기 힘든 게 기본소득이다.

모든 국민에게 자산이나 노동 여부와 관계없이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의 현금을 지급한다는 정책으로, 용혜인은 정치권에서도 기본소득을 가장 강하게 주장해온 인물 중 한 명이다.

2017년 기본소득정치연대 대표 등을 맡았고, 2018년에는 경기도 기본소득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5]

당시 경기도지사가 바로 이재명이었다.

2019년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했고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창당준비위 행사에 참석해 용혜인과 기본소득 정책을 놓고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1]

2020년에는 모든 국민에게 월 6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것을 장기적인 정책목표로 내걸고 기본소득당을 창당했다.

기본소득이라는 정책 하나를 거의 당명으로 박아놓은 셈이라 기본소득당이 무슨 정당인지 당 이름만 봐도 설명이 끝난다.

국회의원과 기본소득당

2020년 1월 기본소득당을 창당하고 초대 상임대표를 맡았다.

기본소득당은 경제정책으로 기본소득을 중심에 두면서 노동권, 여성·소수자 권리, 기후위기, 사회적 약자 문제 등에 진보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다만 정당 규모 자체는 매우 작다.

독자적으로 전국 선거에서 의미 있는 득표율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실제 용혜인의 두 차례 국회 입성도 모두 민주당이 주도한 비례대표 연합정당을 통해 이뤄졌다.

이 때문에 용혜인의 정치적 능력을 평가할 때도 소수정당 정치인으로 원내에서 독자적인 의제를 만들어냈다는 평가와 민주당의 비례대표 플랫폼 없이는 국회 진입 자체가 어려웠다는 비판이 함께 나온다.

제21대 국회의원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기본소득당 후보로 따로 출마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참여한 범여권 비례대표 연합정당 더불어시민당에 합류했다.

비례대표 5번을 받아 당선되면서 만 30세에 국회의원이 됐다.

더불어시민당은 선거 이후 민주당과 합당하기로 했지만 용혜인은 합당 직전 당에서 제명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당으로 돌아왔다.

일반적으로 정당 소속 비례대표 의원이 자진 탈당하면 의원직을 잃지만 당에서 제명되면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서 연합정당에 들어갔다가 선거가 끝난 뒤 원래 정당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이 제도를 활용했다.

정치적으로 보면 꽤 희한한 구조다. 기본소득당 후보인데 더불어시민당 이름으로 투표를 받아 당선되고, 당선 뒤에는 더불어시민당에서 제명된 다음 다시 기본소득당 의원이 된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당시 범여권 비례연합에 참여한 군소정당들과 민주당이 사전에 합의한 방식이었다.

21대 국회 전반기에는 기획재정위원회에서 활동했고, 후반기에는 행정안전위원회와 여성가족위원회 등에 참여했다.[5]

기본소득 관련 법안과 재난지원금, 조세개혁 등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코로나19 시기에는 전국민 재난지원금 지급과 기본소득 도입을 강하게 주장했다.

거대정당 의원보다 언론 노출이 훨씬 어려운 1석짜리 정당 의원이었지만 국정감사나 기자회견을 통해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했다.

이태원 참사

2022년 이태원 압사 사고 이후에는 국회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5]

세월호 참사 이후 정치활동을 시작한 만큼 재난안전 분야에서 상당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경찰과 행정안전부, 서울시 등의 사전 대응과 참사 이후 책임 문제를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행정안전위원회에서도 재난안전과 경찰행정 문제를 주요 의제로 다뤘으며, 이후 국회 국민생명안전포럼 대표의원을 맡았다.

제22대 총선

2024년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기본소득당은 열린민주당·사회민주당 등과 함께 새진보연합을 구성했다.

이후 새진보연합은 다시 민주당과 진보당 등이 참여한 비례대표 연합정당 더불어민주연합에 합류했다.

여기서 용혜인이 또 비례대표 후보로 추천됐다.[6]

결국 당선 가능한 순번을 받아 제22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1대도 민주당 위성정당, 22대도 민주당 주도 비례연합.

두 번 연속으로 이런 루트를 타면서 용혜인의 정치경력에서 가장 끈질기게 따라붙는 논란도 만들어졌다.

용혜인은 지역구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직접 선택받은 적 없이 두 차례 연속 민주당 계열 비례연합을 통해 당선됐다.

제3지대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군소정당이 거대정당의 비례대표 명부에 기대 정치적 생명을 연장한다는 강한 비판이 나왔다.[7]

일부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취지가 소수정당의 독자적인 지지율을 의석에 반영하는 데 있는데, 거대정당과 연합한 뒤 당선 가능 순번을 배분받는 방식은 제도의 취지를 왜곡한다고 비판했다.[8]

반대로 기본소득당 측에서는 거대 양당 중심 선거제에서 소수정당이 독자적으로 생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며, 정책연합을 통해 다양한 정치세력이 국회에 진입하는 것 자체가 연동형 비례제의 취지라는 입장을 폈다.

더불어민주연합은 선거 이후 민주당과 합당했고, 용혜인은 다른 군소정당 출신 당선자들과 함께 다시 제명되는 방식으로 원래 정당으로 돌아갔다.[9]

두 번 연속 거의 똑같은 방식이었다.

덕분에 용혜인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거대정당 비례연합을 통해 비례대표로 두 번 연속 국회에 입성한 매우 드문 정치인이 됐다.

제22대 국회와 윤석열 탄핵

22대 국회에서는 행정안전위원회에서 활동했다.

재난안전, 경찰, 집회·시위의 자유 등을 주요 의제로 삼았으며 2026년에는 소규모 집회의 신고의무를 완화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1]

기본소득 외에도 디지털 성범죄, 돌봄, 일·가정 양립, 여성·가족 정책 등에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야권의 윤석열 탄핵 추진에 적극 참여했다.

기본소득당은 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 등과 함께 탄핵과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범야권 연대의 한 축이 됐다.[1]

용혜인은 계엄 해제와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주장했으며 이후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재명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이재명과의 관계

이재명과 용혜인은 생각보다 오래 전부터 정치적 접점이 있었다.

이재명이 경기도지사 시절 기본소득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기본소득당과 정책적으로 가까워졌고, 2019년 기본소득당 창당준비위원회 행사에도 직접 참석했다.[1]

이후 이재명의 기본소득 정책이 민주당 내부에서도 논쟁거리가 될 때 용혜인은 이를 강하게 지지하는 쪽이었다.

2025년 조기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재명 후보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범여권 선거연합에 참여했다.[1]

따라서 기본소득당이 형식적으로는 민주당과 별개의 정당이지만 용혜인을 범민주당 정치권과 정치적 연대가 강한 인물로 보는 시각이 많다.

2026년에는 이 관계가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인사 논란이 확대되자 결국 민주당 지도부가 용혜인에게 사실상 결단을 요구했고, 용혜인이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범여권 연대 관계도 시험대에 올랐다.[4]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지명과 사퇴

2026년 8월 30일 이재명 대통령은 중폭 개각을 단행하면서 용혜인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2]

청와대는 용혜인을 두고 디지털 성범죄 방지와 일·가정 양립 등 사회적 약자 문제에 선명한 목소리를 내온 청년 재선 의원이라고 평가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용혜인이 세대·성별 갈등을 넘어 청년 세대와 함께 '모두의 성평등'으로 나아갈 적임자라는 취지로 인선 배경을 설명했다.

용혜인은 지명 직후 자신을 30대 워킹맘이라고 소개하며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책적 측면만 보면 아주 뜬금없는 인사는 아니었다.

용혜인은 21대 국회에서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을 지냈으며 디지털 성범죄, 돌봄, 일·가정 양립, 한부모·청년·사회적 약자 정책 등을 다뤄왔다.[5]

본인도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라는 점 때문에 성평등가족부가 담당하는 육아·돌봄 정책과 개인적 접점도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당 밖 진보정당 대표급 정치인을 내각에 참여시키는 인선이라는 점에서 범진보 진영 연대의 상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그리고 정식 임명됐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1990년대생 국무위원이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딱 14일 만에 끝났다.

국회의원직 겸직 논란

장관 지명 당일부터 가장 먼저 붙은 떡밥이다.

용혜인은 장관에 임명되더라도 국회의원직을 유지할 방침이라는 입장을 보였고, 이후 비례대표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요구가 이어졌다.

대한민국 헌법과 국회법상 국회의원이 국무위원을 겸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다. 실제로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관을 겸직한 사례도 매우 많다.

문제는 비례대표 의원이라는 점이었다.

비례대표 의원이 사퇴하면 다음 순번 후보자가 의원직을 승계할 수 있기 때문에 과거에는 장관으로 입각할 경우 의원직을 내려놓는 경우가 많았다.

기본소득당은 용혜인이 의원직을 내려놓으면 원내 유일 의원을 잃어 사실상 원외정당이 되는 특수성을 강조했다.

용혜인도 처음에는 의원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강하게 버텼다.

특히 9월 10일 기자회견에서는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원칙”이라고 주장했으며, 비례대표 의원이 장관이 됐을 때 사퇴하는 기존 관행 자체가 정치권의 자리 나눠먹기가 아니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반박했다.[10]

즉 처음에는 안 나간다. 청문회에서 설명하겠다는 쪽이었다.

배우자·당 운영 관련 의혹

9월 들어서는 배우자 박기홍 기본소득당 최고위원을 둘러싼 논란도 커졌다.

정치권에서는 용혜인과 배우자가 함께 참석한 당 회의에서 박기홍이 주요 당직에 임명된 과정 등을 두고 이른바 '셀프 인사' 또는 가족정당 의혹을 제기했다.

기본소득당 운영 자체를 두고도 용혜인의 측근들이 의원실과 당직을 오가면서 지도부를 장악한 것 아니냐는 사당화 비판이 제기됐다.

용혜인은 9월 10일 기자회견에서 배우자의 당직 임명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없었고 당직자·활동가들과 협의를 거쳐 인준받았다고 반박했다.

따라서 해당 사안들은 후보자 지명 기간 동안 정치적으로 큰 논란이 됐지만, 인사청문회를 통해 최종적인 사실관계가 검증되기 전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청문회 검증 단계까지 가지 못했다.

이른바 '언더조직' 논란

과거 노동당 내부에서 활동했던 이른바 '언더조직' 문제도 다시 끌려나왔다.

2018년 노동당 진상조사 과정에서 해당 조직이 혼전순결과 낙태 금지 등 상당히 보수적인 성규범을 담은 교양자료를 사용했다는 내용이 알려졌고, 용혜인 부부 역시 이 조직에서 활동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과거 이런 조직에 관여했다는 점 때문에 특히 논란이 커졌다.

다만 용혜인이 해당 내용의 작성이나 운영을 직접 주도했는지, 문제점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등 구체적인 책임 범위는 끝내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검증되지 못했다.

민주당의 손절

용혜인은 각종 논란에도 처음에는 사퇴 의사가 없었다.

9월 10일에는 무려 34분간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하나하나 반박하면서 정면돌파 의지를 보였다.[10]

그런데 이틀 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2026년 9월 12일 민주당 조계원 대변인은 용혜인 후보자와 관련해

“청년 세대의 여론이 들끓고 있고 이런 부분들을 마냥 좌시할 수 없다.”

며 대책이 필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11]

민주당 지도부가 당내외 의견을 비상하게 취합하고 있다는 사실도 공개됐다.

사실상

야당이 사퇴하라고 함 → 버팀

민주당까지 사퇴 얘기하기 시작함 → 게임 끝

이 된 셈이다.

자진 사퇴

2026년 9월 13일 오전 용혜인은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장관 후보직을 오늘 내려놓고자 한다.”

며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직에서 자진 사퇴했다.[3]

2026년 8월 30일 후보자로 지명된 지 14일 만이었다.

용혜인은 사퇴 배경에 대해 민주당으로부터

후보자와 기본소득당의 상황을 존중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않은 만큼 후보자가 결단해달라

는 의사를 전달받았다고 밝혔다.[4]

이어 국무위원은 국회와 정부를 연결하며 협력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인데 여당까지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는 현실적으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4]

또 지금 멈추는 것이 민주당과 기본소득당, 민주진보진영의 연대를 이어가기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 자체를 인정하며 물러난 것은 아니었다.

용혜인은 국민의힘과 일부 언론이 사실확인보다는 소수정당의 현실을 조롱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했다고 비판했으며, 자신은 떳떳하기 때문에 청문회에서 하나하나 소명하고 싶었다는 입장도 함께 밝혔다.[4]

결국 사퇴 기자회견의 논리는 대충

내가 잘못해서 나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민주당까지 부담스러워하니 더는 장관을 할 수 없다.

정도였다.

사퇴 이후에는 다시 국회의원 의정활동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청와대도 같은 날 용혜인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규정에 따라 후속 인선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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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8월 30일 - 90년대생 첫 장관 후보

↓

9월 10일 - 난 안 나간다

↓

9월 12일 - 민주당도 이건 좀...

↓

9월 13일 - 사퇴

장관 후보자 생활 14일.

인사청문회까지도 못 갔다.

사퇴 이후

후보직 사퇴로 국회의원직이나 기본소득당 원내대표직을 잃은 것은 아니다.

2026년 9월 14일 열린 기본소득당 제5기 제2차 최고위원회에도 용혜인 원내대표로 참석했고, 9월 21일 제3차 최고위원회에도 같은 직책으로 참석했다.

한편 장관 지명 직전까지 기본소득당은 지도부 교체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으며, 2026년 9월 7일 오준호가 제5기 당대표로 취임했다.

따라서 장관 후보 사퇴 이후 현재 용혜인의 정확한 당내 직책은

기본소득당 원내대표

다.

당대표가 아니다.

장관 후보 사퇴 다음 날인 9월 14일에도 최고위원회에 참석하면서 사실상 바로 당무와 의정활동으로 돌아갔다.

기본소득당 역시 후보자 사퇴를 두고 용혜인의 결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발표하면서 민주당 등 다른 진보·개혁 정당과의 연대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정치적 의미

용혜인의 낙마는 단순히 후보자 한 명이 물러난 것 이상으로 이재명 정부와 범여권의 관계를 보여준 사건이 됐다.

처음 용혜인을 지명할 때만 해도 기본소득당 등 범진보 군소정당을 정부 운영에 직접 참여시키는 정치적 연대의 상징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논란이 커지고 특히 2030세대 여론 악화에 대한 우려가 민주당 내부에서 커지자 여당이 먼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3][11]

용혜인도 사퇴 기자회견에서 민주당과 기본소득당의 연대를 깨지 않기 위해 물러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즉

기본소득당과 민주당의 연합 속에서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고

그 연합을 유지할 필요성을 언급하며 장관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용혜인의 정치경력에서 민주당과의 연대가 차지하는 비중을 다시 보여준 사건이기도 하다.

성향과 평가

페미니즘

용혜인은 대한민국 정치권에서 비교적 명확하게 페미니즘과 성평등 정책을 지지해온 정치인이다.

여성 대상 범죄와 디지털 성범죄, 성별 임금격차, 돌봄노동, 임신·출산과 경력단절 등의 문제에 지속적으로 발언해왔다.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이 때문에 진보 여성단체와 지지층에서는 비교적 일관성이 있는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는 반면, 반페미니즘 성향 정치권과 유권자에게는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2026년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과거 10여 년 동안 인터넷과 정치권에서 했던 발언들이 다시 대량으로 발굴됐다.

성평등가족부 자체가 한국 정치에서 젠더갈등의 핵폭탄 같은 부처라 후보자의 정책능력보다 옛날 페이스북 캡처 하나가 더 빨리 퍼지는 상황도 벌어졌다.

결국 장관 지명 이후 약 2주 동안 젠더정책 자체보다 의원직 겸직·당 운영·배우자 문제 등이 더 크게 부각됐고, 성평등가족부 정책을 놓고 제대로 된 국회 청문회를 해보기도 전에 후보자 자리에서 내려왔다.

워킹맘

용혜인은 결혼했으며 자녀가 있다.

현역 국회의원 활동 중 출산과 육아를 경험했고, 국회에서 자신의 육아 경험을 정책 문제와 연결해 발언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기를 국회에 데려온 모습이 언론에 보도된 적도 있다.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뒤에도 본인을 30대 워킹맘이라고 표현하며 돌봄과 일·가정 양립 문제를 직접 경험해봤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지자들은 이런 경험이 가족·돌봄 정책을 담당하는 장관에게 강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임명까지 가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 장관으로서의 행정능력을 평가할 기회는 없었다.

정치적 성향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정치지형에서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경제정책에서는 기본소득과 적극적인 복지 확대를 주장한다.

노동 분야에서는 비정규직·플랫폼 노동자 보호와 노동권 확대에 우호적이며, 사회정책에서는 페미니즘·차별금지·소수자 권리 등에 비교적 진보적인 입장이다.

다만 이재명과의 정치적 연대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단순히 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는 독립 진보정당 정치인이라고만 설명하기도 어렵다는 평가가 있다.

실제로 기본소득이라는 핵심 정책부터 이재명과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고, 두 차례 총선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했으며, 대선에서는 이재명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고, 이재명 정부 장관 후보자까지 됐다.

장관 후보직 사퇴 과정에서도 마지막 결정에 영향을 준 요인 가운데 하나로 민주당의 거취 결단 요구가 직접 언급됐다.

독립정당 소속 정치인이지만 정치경력의 중요한 순간마다 민주당과의 연대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정치 스타일

용혜인의 강점으로 지지층과 일부 정치권에서 자주 언급되는 부분은 의제 설정 능력이다.

원내 1석 정당은 국회에서 숫자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단독으로 법안을 통과시킬 수도 없고 상임위 의결도 좌우할 수 없다.

결국 언론과 대중에게 자신의 의제를 얼마나 잘 알리느냐가 중요한데, 용혜인은 국정감사·기자회견·언론 인터뷰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다.

국정감사에서 자료와 메시지를 준비하고, 기자회견에서도 복잡한 정책을 대중적인 언어로 설명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다.

장관 후보자 논란 때도 무려 34분 동안 기자회견을 열어 하나하나 직접 반박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후보직 사퇴 여론을 뒤집지는 못했다.

반대편에서는 메시지를 지나치게 선명하게 만들거나 갈등이 큰 의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정치적 존재감을 키운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로 용혜인 관련 정치 뉴스는 조용히 지나가는 경우보다 지지층과 반대층의 평가가 강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다.

긍정적 평가

지지자들이 가장 높게 평가하는 부분은 정치적 일관성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재난안전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와 행정안전위원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기본소득 역시 국회의원 되기 위해 갑자기 꺼낸 정책이 아니라 정치 입문 이전부터 오랫동안 주장해온 의제다.

1석짜리 정당의 의원임에도 전국적인 인지도를 확보했고 거대 양당 의원들과 토론할 정도의 정치적 존재감을 만들었다는 점도 지지자들이 강조한다.

30대에 재선 국회의원과 장관 후보자까지 올라갔다는 점 때문에 정치적인 생존력과 메시지 전달 능력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장관 후보자 낙마 이후에도 국회의원과 기본소득당 원내대표직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비판적 평가

가장 큰 비판은 역시 두 차례 비례대표 당선 과정이다.

독자적인 정당 지지율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적은 없고, 두 번 모두 민주당이 참여한 비례대표 연합을 이용했다.

특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 연속 같은 구조를 사용한 것은 소수정당 대표급 정치인이 거대정당의 선거 인프라를 반복적으로 이용했다는 비판을 불렀다.

기본소득당이 민주당과 분명히 다른 독립정당이라면 왜 선거 때마다 민주당의 비례명부를 이용하느냐는 질문도 계속 따라다닌다.

그리고 2026년 장관 후보자 논란에서 이 문제가 다시 터졌다.

용혜인이 의원직을 사퇴하면 기본소득당은 원내 의석을 잃게 되므로 의원직을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비판하는 측에서는 민주당 비례연합으로 받은 의석은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민주당 정부 장관까지 하겠다는 것이냐는 논리를 폈다.

결국 장관 후보직을 내려놓고 의원직을 유지했다.

성평등과 페미니즘 문제에서도 입장이 워낙 선명해 젠더갈등을 줄여야 할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 적절하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대로 성평등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정치인을 성평등가족부 장관에 앉히는 게 왜 이상하냐는 반론도 나왔다.

여기에 배우자 당직 인사, 기본소득당 사당화, 과거 조직활동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정치적 부담에 대한 우려가 공개적으로 제기됐다.

다만 중요한 점은 인사청문회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후보자 시절 제기된 여러 의혹 가운데 상당수는 국회 청문 절차에서 최종 검증되거나 결론이 난 것이 아니라 논란이 진행되는 도중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종료됐다.

여담

  • 이름의 성인 용은 龍씨다.
  • 1990년생으로 21대 국회 입성 당시에도 매우 젊은 국회의원 축에 속했다.
  • 2026년 성평등가족부 장관으로 임명됐다면 대한민국 최초의 1990년대생 장관이 될 예정이었으나 지명 14일 만에 사퇴하면서 무산됐다.[3]
  • 세월호 참사 당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을 계기로 정치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 정당 이름부터 기본소득당인데 실제 본인 정치경력도 거의 처음부터 끝까지 기본소득이다.
  • 이재명과는 그가 경기도지사였던 시절부터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으로 연결돼 있었다.
  •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지역구에 당선된 경력이 없으며 두 번 모두 비례대표다.
  • 더 특이하게도 두 번 모두 민주당 계열의 비례대표 연합정당을 통해 당선됐다.
  • 21대와 22대 모두 연합정당에서 제명되는 방식으로 원래 소속 정당에 복귀했다.
  • 원내 1석 정당 정치인이지만 언론 노출 빈도나 전국적 인지도는 의석수만 보면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편이다.
  • 지지자들은 선명한 의제를 가진 소수정당 정치인이라고 평가하고, 비판자들은 민주당과 사실상 한 몸이면서 필요할 때만 별도 정당 간판을 유지한다고 비판한다.
  • 장관 후보자 지명 직후에는 비례대표 겸직 문제가 가장 큰 논란이었는데 이후 배우자, 당 운영, 과거 조직활동 문제까지 추가되면서 청문회 떡밥이 존나게 늘어났다.
  • 하지만 정작 인사청문회는 열리지 않았다.
  • 2026년 9월 10일까지만 해도 후보직을 유지하며 정면돌파하겠다는 입장이었으나 3일 뒤인 9월 13일 사퇴했다.[10][3]
  • 사퇴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자신에게 결단을 요청했다고 직접 밝혔다.[4]
  • 청와대는 사퇴 당일 용혜인의 결정을 존중하며 후속 인선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12]
  • 현재 기본소득당 당대표는 용혜인이 아니라 오준호다.
  • 용혜인의 현재 당내 직책은 원내대표다.
  • 장관 후보 사퇴 이후에도 최고위원회에 정상적으로 참석하면서 의정·당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같이 보기

각주

  1. ↑ 1.0 1.1 1.2 1.3 1.4 1.5 1.6 「[프로필 용혜인 성평등부 장관 후보자…90년대생 첫 인선」], 연합뉴스, 2026-08-30.
  2. ↑ 2.0 2.1 「신임 법무장관 김승원·재경 이형일·국방 강신철…6개 부처 개각」, 연합뉴스, 2026-08-30.
  3. ↑ 3.0 3.1 3.2 3.3 3.4 「용혜인 성평등부 장관 후보자 자진 사퇴…지명 14일 만」, 연합뉴스, 2026-09-13.
  4. ↑ 4.0 4.1 4.2 4.3 4.4 4.5 「용혜인 성평등부 장관 후보 사퇴…민주당서 결단해달라 했다」, 한겨레, 2026-09-13.
  5. ↑ 5.0 5.1 5.2 5.3 5.4 「용혜인이 걸어온 길」, 용혜인 공식 홈페이지.
  6. ↑ 「새진보, 野위성정당 비례후보에 용혜인 추천…비례재선 가능성」, 연합뉴스, 2024-03-05.
  7. ↑ 「새진보, 野 비례후보로 용혜인 추천…제3지대 '여의도 기생충'」, 연합뉴스, 2024-03-05.
  8. ↑ 「용혜인 비례대표 재선 특혜 논란에…제3지대 '기생충·세습' 비판」, 이데일리, 2024-03-06.
  9. ↑ 「野위성정당 군소정당몫 당선인 4명, 진보당 등으로 원대복귀」, 연합뉴스, 2024-04-25.
  10. ↑ 10.0 10.1 10.2 「용혜인 '장관됐을 때 역할 못한다고 단정말라'…34분 반박 회견」, 연합뉴스, 2026-09-10.
  11. ↑ 11.0 11.1 「與 '용혜인에 들끓는 청년 여론 좌시못해'…내일 고당 논의 주목」, 연합뉴스, 2026-09-12.
  12. ↑ 12.0 12.1 「靑 '용혜인 스스로 내린 결정 존중…규정 따라 후속 절차'」, 연합뉴스, 2026-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