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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김종필 | 김용순 | 김재춘 | 김형욱 | 김계원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직무대행 | 제9대 |
| 이후락 | 신직수 | 김재규 | 윤일균 | 이희성 |
| 직무대행 | 제10대 | 제11대 | ||
| 윤일균 | 전두환 | 유학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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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유학성 | 노신영 | 장세동 | 안무혁 | 배명인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박세직 | 서동권 | 이상연 | 이현우 | 김덕 |
| 제21대 | 제22대 | |||
| 권영해 |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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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제26대 |
| 이종찬 | 천용택 | 임동원 | 신건 | 고영구 |
| 제27대 |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 김승규 | 김만복 | 김성호 | 원세훈 | 남재준 |
| 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 이병기 | 이병호 | 서훈 | 박지원 | 김규현 |
| 제37대 | 제38대 | |||
| 조태용 | 이종석 | |||
윤일균(尹鎰均, 1926년 ~ 2017년 6월 17일)은 대한민국의 공군 군인·정보기관 인사·항공행정가로, 중앙정보부 제1차장과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을 지냈다.
정식 부장으로 임명된 적은 없고, 김재규의 10.26 사태 직후와 12.12 군사반란 직후 두 차례에 걸쳐 중앙정보부장 직무를 대신했다.
특히 두 번째 직무대행 기간은 1979년 12월 13일부터 1980년 4월 13일까지 약 4개월로,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서리까지 겸임하면서 권력 장악에 들어가기 직전의 과도기를 책임졌다.
공군 출신으로는 드물게 중앙정보부 핵심에 오래 근무한 인물이며, 해외정보 업무에 강점을 가진 정보통이었다.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미국에서 박정희 정권 폭로를 준비하자 이를 막기 위한 협상에도 직접 투입됐다. citeturn273687search0turn273687search6
생애
| 윤일균 尹鎰均 | |
| 생년월일 | 1926년 |
|---|---|
| 사망일 | 2017년 6월 17일 |
| 국적 | 대한민국 |
| 출생지 | 황해도 |
| 직업 | 군인, 정보기관 인사, 항공행정가 |
| 소속 | 대한민국 공군 중앙정보부 |
| 경력 | 공군본부 정보국장 공군특무부대장 중앙정보부 정보차장보 중앙정보부 제1차장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 서울신문 전무 국제공항관리공단 이사장 |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1949년 육군 항공소위로 임관했고, 이후 공군이 독립하면서 공군 장교가 됐다.
공군본부 정보국장을 여러 차례 지냈고 공군특무부대장도 맡았다.
미 공군 정보학교 고급과정을 수료하고 국방대학원, 단국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법학·행정학·정치학을 공부했다.
한마디로 그냥 비행기 타는 공군 장교라기보다 처음부터 정보장교 쪽으로 커리어를 탄 사람이었다.
중앙정보부에서도 제2국·제3국장, 정보학교장, 정보차장보 등을 거치며 해외정보와 정보교육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공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윤일균 본인의 저서 소개에는 공군본부 정보국장, 공군특무부대장, 중앙정보부 정보차장보·국장·정보학교장 경력이 상세히 남아 있다. citeturn273687search1
공군 정보통
윤일균은 중앙정보부 출신이라는 이미지보다 사실 공군 정보 분야의 원로에 가까운 인물이다.
공군본부 정보국장을 여러 차례 지냈고, 한국전쟁과 한미 연합 정보활동에도 관여했다.
본인은 훗날 《한미합동 첩보 비화 6006부대》라는 책까지 썼다.
6006부대는 한국전쟁기 한미 정보협력과 관련된 비밀 첩보활동으로 알려져 있으며 윤일균은 이런 초기 군사정보 업무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 경력 때문에 중앙정보부에서도 국내정치 공작보다는 상대적으로 해외정보 쪽에서 오래 활동했다.
당시 중앙정보부는 육군 출신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래서 공군 출신 윤일균은 조직 내부에서 약간 특이한 존재였다.
실제로 윤일균 본인도 훗날 10.26 당시를 회고하면서 중정 내부가 육군 출신 중심이라 자신이 공군 출신으로서 내부 문제를 상부에 적극적으로 보고하기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citeturn273687search7
중앙정보부 경력
윤일균은 중앙정보부 창설 초기부터 정보부와 인연을 맺었다.
중앙정보부 제2국장·제3국장, 정보차장보 등을 지냈고, 이후 한동안 서울신문 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다시 중앙정보부로 복귀해 제1차장을 맡았다.
당시 제1차장은 주로 해외정보를 담당했다.
반면 국내 정치와 대공수사는 제2차장 계통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윤일균은 해외정보 분야 경험이 길었기 때문에 이 역할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경력이 그를 김형욱 문제에 투입시키게 된다.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
- 1979년 10월 27일 ~ 10월 30일
- 1979년 12월 13일 ~ 1980년 4월 13일
첫 번째 직무대행 당시 전임은 김재규, 후임은 이희성이었으며, 두 번째 직무대행 당시에는 이희성의 뒤를 이어 직무를 맡아 전두환에게 넘겼다.
김형욱 회고록 저지 협상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은 1973년 미국으로 망명한 뒤 박정희 정권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 시작했다.
미국 의회 코리아게이트 관련 청문회에도 출석해 박정희 정권과 중앙정보부의 각종 비밀을 폭로했다.
더 큰 문제는 김형욱이 수천 장 분량의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 입장에서는 그냥 전직 공무원의 자서전이 아니라
전직 중정부장이 중정 내부비밀 들고 미국에서 책 내겠다는 상황
이었다.
당연히 난리가 났다.
1977~1979년 박정희 정권은 김형욱의 회고록 출간을 막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다.
그 가운데 핵심 인물이 윤일균이었다.
윤일균은 당시 중앙정보부 해외담당 차장이었고 김형욱과 같은 황해도 출신이라는 개인적 인연도 있었다.
그는 이용운 전 해군제독 등과 함께 김형욱을 직접 만나 협상했다.
당시 협상안에는 약 150만 달러 제공과 여권 보장 등 구체적인 조건까지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citeturn273687search0turn273687search2
결국 협상은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고 김형욱은 1979년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됐다.
다만 윤일균이 김형욱 실종 또는 살해에 직접 관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윤일균의 역할은 확인된 범위에서는 회고록 출간을 막기 위한 회유·협상 쪽이다.
김형욱 실종 자체는 지금까지도 여러 설이 존재하는 미제사건에 가깝다.
10.26 사태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을 총으로 살해했다.
그 순간 중앙정보부는 그냥 수장이 없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현직 중앙정보부장이 대통령을 죽인 조직이 되어버렸다.
조직 전체가 사실상 마비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건 직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으면서 중앙정보부까지 통제하기 시작했다.
전두환은 중앙정보부 간부들에게 예산 집행과 정보보고를 합수본부 통제 아래 두라고 지시했다. citeturn273687search4
김재규가 제거된 뒤 선임 차장이던 윤일균이 부장직무를 대신했다.
첫 번째 직무대행 기간은
1979년 10월 27일 ~ 10월 30일
이다.
불과 며칠 뒤 이희성 육군참모차장이 중앙정보부장서리에 임명되면서 윤일균은 다시 제1차장으로 돌아갔다.
국가기록원 공식 기관연혁에는 김재규 이후 이희성이 부장으로 기록되어 있고, 윤일균은 별도로 직무대행으로 정리되어 있다. citeturn332137search0
12.12 군사반란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고 군권을 장악했다.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였던 이희성은 육군참모총장으로 이동했다.
그래서 중앙정보부장 자리가 또 비었다.
그리고 다시 윤일균이 등장했다.
1979년 12월 13일부터 윤일균이 두 번째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이번에는 며칠짜리가 아니었다.
1980년 4월 13일까지 약 4개월 동안 직무대행을 맡았다. citeturn332137search0turn273687search4
문제는 이 시기의 중앙정보부가 예전의 중앙정보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10.26 이후 이미 보안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가 중앙정보부를 강하게 통제하고 있었고, 12.12 이후에는 전두환이 사실상 군과 정보기관 위에 올라섰다.
즉 윤일균은 명목상 중앙정보부 최고책임자였지만, 실질적인 권력의 중심은 이미 전두환과 보안사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름뿐인 부장 직무대행
윤일균의 두 번째 부장 직무대행 시기는 중앙정보부 역사에서 가장 힘 빠진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
과거 김형욱, 이후락, 신직수, 김재규 시절만 해도 중앙정보부장은 대통령 다음가는 권력자로 불릴 만큼 막강했다.
그런데 윤일균 시절에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다.
10.26 직후 전두환 합수본부장은 중앙정보부에
- 예산집행 통제
- 정보보고 제출
- 수사활동 제한
등을 지시했다.
중앙정보부가 보안사의 지시를 받는 구조가 된 것이다.
특히 12.12 이후 전두환 측은 중앙정보부 내부에도 직접 영향력을 확대했다.
전두환은 자신의 측근들을 중정에 투입하고 정보보고를 직접 받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윤일균이 부장직무대행이긴 했는데 실제로는
중정부장실에 윤일균
진짜 권력은 보안사 전두환
이라는 이상한 구조였다. citeturn273687search4turn273687search8
중앙정보부 입장에서는 창설 이래 가장 굴욕적인 시기 중 하나였다.
전두환에게 자리 넘김
1980년 4월 14일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했다.
보안사령관 + 합수본부장 + 중앙정보부장서리.
정보와 군 수사를 한 사람이 사실상 다 먹은 것이다.
윤일균은 이때 부장직무대행에서 물러났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전두환의 권력 장악은 더욱 노골적으로 진행됐다.
몇 달 뒤 5.17 내란과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거쳐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했고, 중앙정보부 역시 결국 국가안전기획부로 개편됐다.
그래서 윤일균은 실질적으로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와 전두환 시대 안기부 사이를 연결하는 과도기의 마지막 고참 정보관료
라고 볼 수 있다.
김재규에 대한 회고
윤일균은 훗날 10.26 사태에 대해서도 여러 차례 증언했다.
1999년 서울신문 인터뷰에서는 박정희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였다면 비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김재규의 10.26 행동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윤일균은 김재규가 사전에 치밀하게 민주혁명을 계획했다기보다 돌출적이고 감정적인 행동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citeturn332137search7
또 과거 김재규가 회의 중 갑자기 권총을 꺼내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 적이 있었다고도 주장했다.
윤일균에 따르면 자신이 김재규의 손목을 쳐 총을 떨어뜨리고 진정시킨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citeturn273687search7
다만 이런 회고는 사건 발생 20년 뒤 당사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증언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김재규의 행동 동기 자체는 지금도 역사적으로 논쟁이 계속되는 부분이다.
항공행정가
중앙정보부를 떠난 이후 윤일균은 다시 자신의 원래 전문분야인 항공 쪽으로 돌아갔다.
한국국제공항관리공단 초대 이사장을 맡아 약 6년 넘게 재직했다.
한국국제공항관리공단은 현재 한국공항공사의 전신이다.
이후 대한항공협회 회장, 국제항공 관련 단체 임원 등을 맡으며 민간 항공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다.
정보기관에서 퇴직한 전직 중정 고위간부가 항공행정 전문가로 다시 커리어를 이어간 꽤 독특한 사례다.
또 서울신문 전무, 동국대학교 강사, 한무개발 대표이사 등도 지냈다. citeturn273687search1
저술
윤일균은 자신의 군 정보경험을 바탕으로 《한미합동 첩보 비화 6006부대》를 썼다.
책에는 한국전쟁 당시 공군 정보활동, 한미 합동 첩보작전, 북한 공군 정보, 한국 공군 초기 역사 등이 담겼다.
본인이 초기 공군 정보조직과 중앙정보부를 모두 경험한 인물이기 때문에 한국 군사정보사 연구에서는 꽤 특이한 1차 증언자료로 볼 수 있다.
물론 회고록이라는 특성상 본인의 기억과 해석이 들어가 있으므로 다른 자료와 교차검증할 필요는 있다.
말년과 사망
윤일균은 이후 대한항공협회와 각종 항공·안보단체에서 활동했다.
2017년 6월 17일 사망했다.
향년 91세.
사망 당시 언론에서도 그를 12.12 직후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인물이자 한국국제공항관리공단 초대 이사장으로 소개했다. citeturn273687search6
평가
윤일균은 역대 중앙정보부 수장 가운데 상당히 특이한 인물이다.
김형욱, 이후락, 신직수, 김재규, 전두환처럼 이름만 들어도 특정 정치사건이 바로 떠오르는 강력한 정치형 중정부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평생 경력을 보면
공군 정보장교 → 해외정보 전문가 → 중정 고위간부 → 부장 직무대행 → 항공행정가
에 가깝다.
이 때문에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을 두 차례나 했음에도 대중적 인지도는 낮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10.26 직후 한 번, 12.12 직후 다시 한 번 중앙정보부를 맡았다는 것은 그냥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권이 무너지고 조직이 혼란에 빠졌을 때 임시로 조직을 붙잡아 둘 수 있을 만큼 경력이 길고 정치색은 상대적으로 약한 고참 정보관료였기 때문이다.
반대로 바로 그 점 때문에 실질적인 권력자가 되지는 못했다.
특히 12.12 이후에는 중앙정보부가 보안사에 밀리면서 윤일균의 역할도 제한적이었다.
중앙정보부장 직무대행인데 중앙정보부보다 보안사령관이 더 센 시기
를 겪은 사람이다.
여담
- 역대 중앙정보부 수장 목록에서는 정식 부장이 아니라 직무대행으로 분류된다.
- 두 차례 직무대행을 했다. 첫 번째는 10.26 직후 며칠, 두 번째는 12.12 직후 약 4개월이다.
- 국가기록원 공식 기관연혁에는 두 번째 직무대행 기간이 1979년 12월 13일 ~ 1980년 4월 13일로 기록되어 있다. citeturn332137search0
- 공군 출신이라는 점이 상당히 특이하다. 중앙정보부와 군 정보기관 상층부는 당시 육군 출신이 압도적이었다.
- 공군 준장으로 예편했다.
- 김형욱과 같은 황해도 출신이라는 개인적 인연 때문에 김형욱 회고록 출간 저지 협상에 투입됐다.
- 김형욱에게 약 150만 달러와 여권보장 등을 제시하며 귀국 또는 회고록 중단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citeturn273687search0
- 김형욱이 이후 파리에서 실종됐지만 윤일균이 실종공작에 직접 참여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이 둘을 구분해야 한다.
- 김재규와는 같은 중앙정보부 고위간부였지만 10.26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달랐다. 윤일균은 김재규의 행동을 계획된 민주혁명이라기보다 돌출행동에 가깝게 봤다.
- 중앙정보부를 떠난 뒤 한국국제공항관리공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지금의 한국공항공사 계통이다.
- 군사정보와 항공 분야에서 활동한 기간이 길어 단순히 "전직 중정부장 대행"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커리어가 꽤 길다.
- 2017년까지 생존해서 10.26, 12.12 등 당시 상황을 직접 증언한 몇 안 되는 중정 최고위급 인사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