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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 | 제2대 | 제3대 | 제4대 | 제5대 |
| 김종필 | 김용순 | 김재춘 | 김형욱 | 김계원 |
| 제6대 | 제7대 | 제8대 | 직무대행 | 제9대 |
| 이후락 | 신직수 | 김재규 | 윤일균 | 이희성 |
| 직무대행 | 제10대 | 제11대 | ||
| 윤일균 | 전두환 | 유학성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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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1대 |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유학성 | 노신영 | 장세동 | 안무혁 | 배명인 |
|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제20대 |
| 박세직 | 서동권 | 이상연 | 이현우 | 김덕 |
| 제21대 | 제22대 | |||
| 권영해 | 이종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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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2대 | 제23대 | 제24대 | 제25대 | 제26대 |
| 이종찬 | 천용택 | 임동원 | 신건 | 고영구 |
| 제27대 |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 김승규 | 김만복 | 김성호 | 원세훈 | 남재준 |
| 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제36대 |
| 이병기 | 이병호 | 서훈 | 박지원 | 김규현 |
| 제37대 | 제38대 | |||
| 조태용 | 이종석 | |||
김재춘(金在春, 1927년 ~ 2014년 1월 2일)은 대한민국의 군인·정치인으로, 5.16 군사정변의 핵심 주도세력 중 한 명이자 제3대 중앙정보부장이다.
육군사관학교 5기 출신으로 5.16 당시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을 맡고 있었으며,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사정변 세력의 핵심부에 참여했다.
이후 방첩부대장,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 등을 거쳐 1963년 중앙정보부장에 올랐다.
다만 재임기간은 1963년 2월 21일부터 7월 11일까지 약 5개월로 상당히 짧았다. 김종필 계열과 정국 주도권을 놓고 갈등하다가 결국 중정부장에서 밀려났고, 이후 군에서 예편해 무임소장관과 국회의원을 지냈다. 중앙정보부 공식 기관연혁에도 김재춘은 김용순 다음, 김형욱 이전의 제3대 부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citeturn751980search4
생애
김재춘
金在春인물 정보 출생 1927년 출생지 경기도 김포 사망 2014년 1월 2일 직업 군인, 정치인 출신 육군사관학교 5기 최종계급 대한민국 육군 소장 주요 경력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
육군방첩부대장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
국가재건최고회의 위원
제3대 중앙정보부장
무임소장관
제8·9대 국회의원중앙정보부장 재임 1963년 2월 21일 ~ 1963년 7월 11일 전임 김용순 후임 김형욱
경기도 김포 출신이다.
1948년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임관했다.
1955년 육군대학을 졸업했고 1957년에는 연대장을 지냈다. 이후 수도권 지역 군 행정과 병력동원을 담당하던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에 올랐다. citeturn751980search6
그리고 여기서 인생이 완전히 바뀐다.
5.16 군사정변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군인들이 장면 정부를 무너뜨리는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다.
김재춘은 당시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이었다.
제6군관구사령부는 서울과 수도권 일대의 병력동원과 군 행정을 담당했기 때문에 쿠데타 성공 여부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였다.
김재춘은 이 조직의 참모장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변에 적극 가담했다.
당시 제6군관구사령부 정보참모는 훗날 중앙정보부장이 되는 김형욱이었다.
즉 5.16 당시 같은 사령부 안에
김재춘 → 훗날 제3대 중정부장
김형욱 → 훗날 제4대 중정부장
이 같이 있었다.
5.16 자체가 나중에 중앙정보부장 제조 공장이 되어버린 셈이다.
정변 성공 이후 김재춘은 방첩부대장과 군·검·경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방첩부대는 훗날 보안사령부, 기무사령부를 거쳐 현재 국군방첩사령부 계통으로 이어지는 조직이다.
군·검·경 합동수사본부는 이름 그대로 군과 검찰, 경찰의 수사력을 통합해 정변 이후 반대세력을 색출하고 정권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맡았다.
따라서 김재춘은 단순히 5.16 당일 탱크 따라간 장교가 아니라 정변 이후 새 군사정권을 실제로 정리하고 안정시키는 공안 실무에도 깊숙이 참여했다.
"5.16은 김종필이 다 한 게 아니다"
김재춘은 생전 5.16 관련 인터뷰에서 후대의 역사서술이 지나치게 김종필과 육사 8기 중심으로 되어 있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그의 주장은 대략 이렇다.
5.16의 실질적인 핵심은 육사 8기만이 아니라 육사 5기 선배장교들이었다는 것이다.
김재춘은 자신을 포함한 육사 5기 그룹이 이미 군 내부에서 실제 병력과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고, 김종필을 비롯한 8기생들은 상대적으로 계급이 낮았기 때문에 5.16을 김종필 개인의 작품처럼 보는 것은 과장이라고 주장했다.
2011년 5.16 50주년 인터뷰에서도 그는 "8기 김종필이 주도했다고? 5기가 핵심 세력이었다"는 취지로 말했다. citeturn751980search0turn751980search6
실제로 당시 김재춘은 준장이었고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이었다.
반면 김종필은 예비역 중령이었다.
계급과 실제 병력지휘권만 놓고 보면 김재춘의 말에도 일리는 있다.
다만 김종필은 군 내부 조직화와 정치구상, 중앙정보부 창설, 이후 정치세력 형성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단순히 계급만으로 역할을 비교하는 것도 어렵다.
결국 5.16은 박정희 한 명이나 김종필 한 명이 혼자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여러 군부 그룹의 이해관계가 결합한 정변이었다.
육사 5기와 육사 8기
5.16 이후 군사정부 내부에서는 곧 권력투쟁이 시작됐다.
대략적으로 보면 육사 5기 등 선배 장교 그룹 대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육사 8기 그룹의 갈등이었다.
정변 성공 직후에는 모두 박정희를 중심으로 뭉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군정 이후 누가 정권을 주도할 것인지 문제가 생겼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막강한 정보·공작조직을 만들었고, 나중에는 민주공화당 창당까지 주도했다.
쉽게 말해서 군인이 쿠데타해서 정부 먹은 다음
"이제 우리 계속 정치할 건데?"
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역할을 김종필이 맡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재춘을 포함한 일부 군부 인사들과 충돌이 발생했다.
특히 김종필이 중앙정보부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군정 내부에 친김종필·반김종필 구도가 만들어졌다. 관련 연구에서도 김종필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가 군사정부 내부 분열의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citeturn751980search11
김재춘은 대표적인 반김종필 계열 인사 가운데 하나였다.
중앙정보부장
1963년 2월 21일 제3대 중앙정보부장으로 임명됐다.
초대 부장은 김종필이었고, 잠시 김용순이 부장을 맡은 뒤 김재춘에게 넘어왔다.
재임기간은 1963년 7월 11일까지.
약 5개월이다.
중앙정보부 역사에서도 상당히 짧은 재임이다. citeturn751980search4
김재춘이 중정부장에 오른 배경에는 당시 군정 내부의 김종필 견제 움직임이 있었다.
김종필은 중앙정보부를 이용한 각종 정치공작과 민주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했다.
그 과정에서 4대 의혹 사건 등 각종 정치적 논란이 터졌고, 군부 내부에서도 김종필에 대한 반발이 커졌다.
결국 김종필이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나고 해외로 나가자 김재춘이 사실상 김종필 계열을 정리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김종필이 완전히 제거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박정희는 김종필을 필요로 했다.
김종필은 정치조직을 만들고 돈을 모으고 사람을 조직하는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다.
반면 김재춘을 포함한 선배 장교 그룹은 군사쿠데타에는 능했지만 정당정치와 조직정치에서는 김종필 계열에 밀렸다.
결국 박정희가 민정이양과 민주공화당 중심의 정권 운영을 선택하면서 김종필 계열이 다시 힘을 얻기 시작했다.
김재춘은 1963년 7월 중정부장에서 물러났다.
후임은 자신의 옛 제6군관구사령부 부하였던 김형욱이었다.
김종필과의 권력투쟁
김재춘과 김종필의 갈등은 5.16 이후 군사정부의 권력구도를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두 사람 모두 쿠데타 핵심세력이었지만 기반이 완전히 달랐다.
김재춘은 군 계급 + 실제 병력지휘 경험 + 육사 선배 그룹을 기반으로 했다.
김종필은 정보기관 + 정치조직 + 박정희와의 친족관계 + 육사 8기 인맥을 기반으로 했다.
초기에는 군부 선배그룹이 훨씬 강해 보였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정치조직을 가진 김종필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해졌다.
탱크 끌고 정부청사 먹는 데는 장군이 필요하지만, 그 다음 선거하고 정당 만들고 국회의원 꽂아넣는 데는 정치조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박정희도 후자를 선택했다.
김재춘은 중앙정보부장에서 물러난 뒤 무임소장관으로 이동했다.
사실상 권력 핵심에서 한 발 밀려난 것이다.
군 예편과 정치인 전환
1963년 육군 소장으로 예편했다.
군복을 벗은 뒤에는 무임소장관을 지냈다.
이후 자민당 최고위원 등을 거치며 정치권에 들어갔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김포·강화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소속은 민중당이었다.
박정희와 함께 쿠데타한 사람이 야당계 정당 후보로 국회의원이 된 셈이다.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고양·김포·강화 지역구에서 다시 당선됐고, 이번에는 민주공화당 소속이었다. citeturn751980search6
정치권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경로다.
5.16 핵심군인 → 중앙정보부장 → 반김종필 계열 → 야당 국회의원 → 다시 여당 국회의원
한국 정치판답게 소속이 꽤 다이내믹하다.
박정희·육영수 결혼
김재춘은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을 성사시키는 데 관여한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박정희와 군 시절부터 가까운 관계였고,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박정희 가족과도 상당히 오래된 개인적 인연이 있었다.
훗날 박정희 정권 내부의 권력투쟁 과정에서 밀려났지만, 애초에 박정희와 관계가 단순한 정치적 동업자 수준은 아니었다.
김재춘의 부고 기사에서도 그가 박정희와 육영수의 결혼을 성사시킨 인물로 알려졌다고 소개됐다. citeturn751980search3turn751980search5
5.16에 대한 입장
김재춘은 죽을 때까지 5.16을 부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정당화했다.
말년에는 재단법인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았다.
5.16에 참여했던 인사들의 모임과 기념사업에도 계속 관여했다. citeturn751980search3turn751980search6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는 5.16을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군사정변 또는 군사쿠데타로 평가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김재춘에게는 자신의 인생을 규정한 일종의 혁명이었다.
그래서 50년이 지나서도
"5.16에서 김종필만 너무 띄워준다. 우리 육사 5기가 진짜 핵심이었다."
라는 식으로 자기 역할을 적극적으로 증언했다.
좋게 말하면 역사적 당사자의 증언이고, 나쁘게 말하면 80대까지 쿠데타 지분싸움한 셈이다.
그래도 5.16 내부 권력구조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증언이다.
평가
김재춘의 역사적 평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5.16 군사정변의 핵심 주도자라는 점이다.
민주적으로 구성된 장면 정부를 군사력으로 전복하는 데 적극 참여했고, 정변 후에는 합동수사본부장 등을 맡아 군사정부의 권력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군사쿠데타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둘째는 군정 내부의 권력구조를 보여주는 인물이라는 점이다.
흔히 5.16 이후 권력구도를
박정희 + 김종필
정도로 단순하게 기억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김재춘을 비롯한 육사 5기와 여러 선배장교 세력이 존재했고, 이들이 김종필 계열과 상당한 권력투쟁을 벌였다.
결국 이 경쟁에서 김종필 쪽이 이겼다.
김재춘의 중앙정보부장 재임이 불과 5개월 만에 끝난 것도 이런 권력재편 과정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김재춘은
5.16을 성공시키는 데는 핵심이었지만, 정변 이후 만들어진 정치체제의 최종 승자는 아니었던 사람
이라고 볼 수 있다.
김형욱과의 관계
김형욱과의 관계도 재미있다.
5.16 당시 김재춘은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이었고 김형욱은 정보참모였다.
즉 군대에서는 김재춘이 상관이었다.
그런데 김재춘이 중앙정보부장에서 밀려난 뒤 후임으로 온 사람이 바로 김형욱이다.
김형욱은 이후 1963년부터 1969년까지 무려 6년 넘게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면서 박정희 정권의 대표적인 공작정치 인물이 된다.
김재춘은 5개월.
김형욱은 6년.
부하가 상관보다 중정부장 훨씬 오래 해먹었다.
말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축산 관련 단체와 민간단체에서 활동했다.
1974년 축산단체연합회 회장, 1975년 한·중예술연합회 회장 등을 지냈다. citeturn751980search6
말년에는 5·16민족상 이사장을 맡아 5.16 관련 기념사업을 이어갔다.
또 자신이 보관하고 있던 국가재건최고회의 관련 기록들을 대통령기록관에 기증했다.
대통령기록관의 국가재건최고회의 기록컬렉션에는 김재춘과 유족이 기증한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다. citeturn751980search1turn751980search2
이건 꽤 의미가 있다.
본인이 쿠데타 당사자이긴 하지만 적어도 관련 자료를 들고 무덤까지 들어가지는 않고 국가기록으로 남겼다.
2014년 1월 2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 citeturn751980search3turn751980search5
여담
- 육사 5기다. 김종필은 육사 8기라 군 선후배 관계로 보면 김재춘이 상당히 선배다.
- 5.16 당시 이미 준장이었고 제6군관구사령부 참모장이었다. 그래서 김재춘 본인은 육사 8기 중심의 5.16 서술을 상당히 못마땅해했다.
- 제6군관구사령부 정보참모였던 김형욱이 나중에 자기 후임 중앙정보부장이 됐다.
- 중앙정보부장 재임기간이 약 5개월로 상당히 짧다. 중앙정보부 공식 기관연혁상 1963년 2월 21일부터 7월 11일까지다. citeturn751980search4
- 중앙정보부장을 그만둔 이유는 단순한 행정적 인사이동이라기보다 김종필 계열과의 권력투쟁에서 밀린 결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 5.16에 참가한 뒤 중앙정보부장을 했는데 나중에는 야당인 민중당 소속 국회의원까지 했다. 그 다음 선거에는 다시 민주공화당으로 갔다.
- 보국훈장 통일장과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citeturn751980search3
- 말년에도 5.16을 군사쿠데타가 아니라 국가를 구한 혁명으로 보는 시각을 유지했다.
- 대통령기록관에는 김재춘과 유족이 기증한 국가재건최고회의 관련 문서와 사진이 남아 있다. 덕분에 현재도 5.16과 군정 초기 연구자료로 활용된다. citeturn751980search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