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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크라운제과의 창업자다. 호는 백포.

전라남도 해남군 출신으로, 1947년 서울 중림동에서 영일당제과를 창업했다. 이 영일당제과가 훗날 크라운제과가 된다.

한국 과자판에서 꽤 중요한 인물이다. 크라운산도, 죠리퐁, 쿠크다스, 콘칩, 빅파이, 하임, 마이쮸 같은 크라운 계열 과자들의 뿌리를 만든 사람이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이 양반이 없었으면 할머니 집 찬장에 산도랑 쿠크다스가 놓여있는 그 익숙한 풍경도 없었을 수 있다.

자료에 따라 출생연도는 1910년으로 적힌 경우도 있고, 1919년으로 적힌 경우도 있다. 다만 1999년 별세 당시 향년 80세로 보도된 기사들과 탄생 100주년 평전 기사들을 보면 1919년생 쪽이 더 자연스럽다. 옛날 인물 자료는 이런 식으로 은근히 엇갈린다. 편집전쟁할 거면 일단 과자 하나 먹고 하자.

생애

윤태현은 전라남도 해남 출신이다. 목포 영흥중학교를 졸업한 뒤 제과업에 뛰어들었다.

1947년 서울역 뒤편 중림동에서 영일당제과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대형 공장, 전국 유통망, 편의점, 마트 이런 게 있던 시대가 아니었다. 해방 직후라 나라 자체가 정신없었고, 먹을 것도 부족했다. 그런 시절에 과자를 만든다는 건 지금 감각으로 보면 꽤 무모한 일이었다.

당시 영일당은 작은 규모의 제과점에 가까웠다. 직원 몇 명을 두고 빵과 과자를 만들던 수준이었다고 한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스타트업인데, 사무실도 없고 VC도 없고 피치덱도 없고 그냥 밀가루와 설탕과 오븐만 있는 스타트업이다. 근데 그게 나중에 크라운제과가 된다.

윤태현은 좋은 과자를 만들어야 한다는 철학이 강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후대에 나온 평전 제목도 《식은 생이다》인데, 먹는 것이 곧 생명이라는 식의 철학을 강조한 것이다. 과자회사 창업자라고 해서 그냥 설탕 팔아 돈 번 사람으로만 보면 좀 얕다. 이 사람에게 제과업은 장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먹거리 산업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영일당제과

1947년 창업한 영일당제과는 크라운제과의 전신이다.

처음에는 말 그대로 작은 제과업체였다. 해방 직후 시장에는 질 낮은 과자와 조악한 식품이 많았고, 윤태현은 그 속에서 제대로 된 과자를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물론 말은 멋있지만 현실은 빡셌을 것이다. 원료 수급도 어렵고, 설비도 부족하고, 돈도 부족하고, 소비자들의 구매력도 낮았다. 지금처럼 신제품 내고 인스타 바이럴 태우는 시대가 아니었다.

6.25 전쟁도 겪었다. 회사 입장에서는 창업하자마자 나라가 전쟁으로 터진 셈이다. 정상적인 사업 환경이 아니었다. 그런데 영일당은 이런 혼란기를 버티면서 성장했다. 이게 중요하다. 한국의 오래된 식품회사들은 대체로 이런 전쟁·가난·복구의 시기를 뚫고 올라왔다. 그냥 과자 하나에도 나라 재건기 냄새가 묻어 있다.

1956년 영일당제과는 크라운제과로 이름을 바꿨다. 이때부터 우리가 아는 크라운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크라운산도

윤태현을 이야기할 때 크라운산도는 절대 빼놓을 수 없다.

1960년 크라운산도가 등장했다. 비스킷 사이에 크림을 넣은 샌드형 과자로, 한국 샌드 비스킷의 원조급 제품이다. 지금 보면 굉장히 단순한 구조다. 비스킷, 크림, 끝. 그런데 원래 오래 가는 제품은 구조가 단순하다. 괜히 복잡하게 이것저것 넣은 신제품보다 이런 기본형 과자가 훨씬 오래 산다.

크라운산도는 윤태현과 크라운제과의 상징 같은 제품이 되었다. 회사 이름과 제품 이름이 거의 붙어 다닌다. 롯데제과빼빼로가 있고, 해태제과연양갱이 있고, 오리온초코파이가 있다면, 크라운에는 산도가 있다.

옛날에는 산도가 꽤 세련된 과자였다. 요즘 세대에게는 할머니 집 찬장템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출시 당시에는 고급 비스킷에 가까웠다. 세월이 지나면 모든 혁신은 추억이 된다. 산도도 그렇게 된 거다.

크라운제과 성장

1968년에는 주식회사 크라운제과가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이후 크라운제과는 본격적인 제과회사로 성장했다.

1969년 묵동공장이 준공되었고, 1972년에는 죠리퐁이 등장했다. 1976년에는 기업공개도 했다. 작은 영일당제과가 상장회사로 커진 것이다.

죠리퐁은 크라운제과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그냥 먹어도 되고 우유에 말아먹어도 되는 괴상한 정체성의 과자다. 과자인데 시리얼인 척하고, 시리얼인데 간식인 척한다. 이 애매함이 오히려 장점이었다. 한국인들은 결국 죠리퐁을 과자로도 먹고 밥 대용인 척도 하면서 먹었다. 인간은 자기합리화의 동물이다.

윤태현은 과자 개발에도 꽤 직접적으로 관여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단순히 회장실에 앉아서 결재만 한 사람이 아니라, 제품과 공정에 관심이 많았던 창업자형 경영자였다. 후대에 "한국 제과계의 에디슨" 같은 별칭이 붙은 것도 이런 이미지 때문이다. 물론 진짜 에디슨처럼 전구를 만든 건 아니고, 대신 사람들의 이빨 사이에 과자를 남겼다.

위기와 복귀

크라운제과도 항상 잘나간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식중독 사건과 제품 관련 문제로 회사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윤태현은 경영 일선에 다시 나서 회사를 수습했다. 이후 유럽의 제과회사들을 둘러보며 설비와 기술을 도입했고, 대량생산 체제를 강화하는 데 힘썼다.

이 부분이 윤태현의 기업가적 면모를 보여준다. 위기 때 그냥 움츠러든 게 아니라 오히려 설비와 기술에 투자했다. 물론 결과가 좋았으니까 미화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식품회사가 위기 이후 품질과 생산 시스템을 다시 잡으려 했다는 점은 꽤 중요하다.

식품회사는 신뢰가 한번 무너지면 복구가 어렵다. 소비자는 과자를 먹고 싶지, 과자 먹고 병원 가고 싶지는 않다. 윤태현은 이걸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크라운제과는 품질과 기술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끌고 갔다.

백포문화재단

1982년에는 백포문화재단이 설립되었다. 백포는 윤태현의 호다.

백포문화재단은 장학 및 사회문화사업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식품회사 창업자가 돈을 벌고 나서 장학재단을 만드는 건 한국 기업사에서 자주 보이는 흐름이다. 물론 이런 재단이 항상 순수한 자선만은 아니고 기업 이미지 관리도 겸하지만, 그래도 장학사업 자체는 의미가 있다.

윤태현은 전남향우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고향인 전남과의 인연을 오래 유지한 셈이다. 옛날 기업인들은 이런 향우회, 장학회, 지역 네트워크 활동을 꽤 중요하게 했다. 지금으로 치면 ESG니 사회공헌이니 하는 말로 포장될 부분인데, 옛날에는 그냥 고향 사람 챙기기와 장학사업이었다. 말은 바뀌어도 구조는 비슷하다.

가족과 후계

윤태현의 장남은 윤영달이다. 윤영달은 훗날 크라운제과를 이끌었고,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하면서 크라운해태 체제를 만들었다.

이 부분이 묘하다. 윤태현이 영일당제과를 세워 크라운제과를 만들었고, 그 아들 윤영달이 해태제과를 인수했다. 아버지가 작은 제과점을 큰 과자회사로 키웠다면, 아들은 그 회사를 바탕으로 한국 제과업계 판을 다시 흔든 셈이다.

물론 해태제과 인수는 윤태현 사후의 일이다. 그러니 윤태현 문서에 "해태를 인수했다"고 쓰면 틀린다. 윤태현은 크라운제과를 만든 사람이고, 해태 인수는 그의 아들 윤영달 시대의 사건이다. 이거 헷갈리면 안 된다. 위키에서 이런 거 틀리면 과자 먹다가 목 막힌다.

사망

윤태현은 1999년 9월 24일 사망했다.

죽을 때까지 크라운제과와 깊이 연결되어 있던 인물이었다. 1947년 영일당제과 창업부터 1999년 사망까지, 사실상 반세기 넘게 제과업 한 분야를 붙잡고 산 사람이다. 기업인으로 보면 꽤 전형적인 1세대 창업자다. 전쟁과 가난 속에서 시작해, 공장을 만들고, 제품을 만들고, 회사를 키우고, 자식 세대에게 넘겨주는 구조다.

그가 세운 크라운제과는 이후 IMF 외환위기 때 큰 위기를 겪었지만 살아남았고, 해태제과를 품으며 크라운해태로 이어졌다. 윤태현이 직접 그 모든 과정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만든 회사의 뿌리가 후대까지 이어진 것이다.

평가

윤태현은 한국 제과산업의 1세대 창업자 중 한 명이다.

해태제과의 창업자들이 광복 직후 한국 제과산업의 초석을 놓았다면, 윤태현은 영일당제과와 크라운제과를 통해 또 다른 축을 세운 인물이다. 롯데제과가 재벌그룹식 확장과 광고 마케팅의 이미지가 강하고, 오리온이 초코파이를 앞세운 식품회사 이미지가 강하다면, 크라운제과는 산도와 죠리퐁 같은 장수제품으로 버티는 회사다. 그 출발점에 윤태현이 있다.

그의 장점은 한 분야를 오래 판 것이다. 이것저것 문어발로 벌리기보다 제과업을 중심으로 회사를 키웠다. 물론 크라운제과도 나중에 여러 사업을 하긴 했지만, 윤태현의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과자 만드는 사람"에 가깝다.

요즘식 창업자처럼 화려한 발표를 하거나, 혁신 드립을 치거나, 전 세계를 바꾸겠다고 떠든 타입은 아니다. 그냥 먹을 만한 과자를 만들고, 오래 팔릴 제품을 만들고, 회사를 버티게 만든 사람이다. 솔직히 이런 타입이 진짜 무섭다. 말은 덜 하는데 결과물이 찬장에 남는다.

한 줄로 정리하면, 영일당이라는 작은 제과점에서 출발해 크라운제과를 만든 한국 과자판의 장인형 창업자다.

관련 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