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그러므로 인성드립이나 비방은 삼가도록 합시다.
영웅을 향해 무례한 말은 삼가도록 합시다.
ㄴ제5공화국 드라마에서 등장했다.
어깨, 쇄골, 등빨, 복근, 말벅지, 엉덩이가 하나같이 멋지고 탄탄하기 때문에♂
그와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어 미칠 지경입니다!
다만 절대로 그에게 너무 몰입하지 마세요! Deep♂Dark한 Fantasy에 푹 빠진 나머지 다른 남자들이 잉여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ㄴ 나이 70이 넘어서도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했다고 한다.
이 사람을 깐다면 다음 생에서 전생에 나라를 팔아먹은 새끼가 되어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절대 이분을 까지 맙시다.
爲國獻身軍人本分!
고마워요 강한육군!
통쾌한 대첩을 이끌었거나, 그에 준하는 쾌거를 이룬 세계 각국의 명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인물은 의로움과 지혜, 문무까지도 겸비하여 진정한 군인, 무인(武人)이라 할 만한 인물이기에
가히 본받을 만한 행적은 본받는 게 좋습니다.
지사니뮤ㅠㅠㅠ

ㄴ 가장 널리 알려진 모습이나 본인이 아니라 제5공화국의 재연 장면이다. 연기한 배우는 김기현.
| “ |
야아이 반란군노무새끼야, 늬들 거기 꼼짝 말고 있어!! |
” |
장태완(張泰玩, 1931년 9월 13일~2010년 7월 26일)은 대한민국의 군인·정치인이다.
반도의 군대 역사상 유일한 참된 군인이자 애국자이다. 장포스라 불리며 위세를 떨쳤다.
경상북도 칠곡군 출생으로, 한국전쟁 때 장교로 임관해 군 생활을 시작했고 1979년 12.12 군사반란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신군부에 맞섰다.
반란군노무새끼들의 머가리를 전차로 날려버리려고 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다만 이 인간의 진짜 가치가 단순히 전화로 욕을 잘했다는 데 있는 건 아니다.
12·12 당시 군 지휘계통 상당 부분이 이미 하나회 세력에게 잠식된 상황에서, 실제로 병력을 동원해 반란군을 진압하려 했던 몇 안 되는 현역 장성 중 하나였다.
군 경력과 12·12
장태완은 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갑종간부후보생 11기로 임관했다.[1]
이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을 거치며 군 경력을 쌓았고, 육군본부 군사연구실장, 교육참모부 차장 등을 거쳐 1979년 11월 수도경비사령관에 올랐다.[2]
문제는 부임하고 한 달도 안 돼서 12·12가 터졌다.
12.12사태 당시 수도경비사령부 예하에는 장세동이 지휘하는 제30경비단도 있었다.
즉 장세동은 명백히 장태완의 직속 지휘계통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쿠데타가 터지자 이 부하가 자기 사령관 말을 씹고 전두환 편에 붙었다.
대한민국의 참 된 군인 장태완 소장을 배신한 배신자.
신군부는 30경비단장실을 사실상 반란 지휘부로 사용했고,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최세창·장세동 등 신군부 핵심 인물들이 이곳에 모였다.[3]
더군다나 29만원의 12.12때는 5.16때처럼 사회적 분위기가 개판오분전인 것도 아니었다. 순전히 하나회 친목 모임의 이익 증대를 위한 쿠데타.
자세한 것은 12.12 군사반란 참조.
장태완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불법 연행됐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제30경비단에 모인 신군부 세력을 진압하려 했다.
유학성·황영시 등에게 직접 전화해 정승화를 풀어놓으라고 요구했고, 거부당하자 육군참모차장 윤성민에게 제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 출동을 요청했다.
수경사 포병단에는 경복궁 30경비단을 향한 야포 발사 준비까지 지시했다.[4]
진짜로 대포 쏘려고 했다.
다만 실제 발사는 하지 않았다.
30경비단 일대가 서울 도심 한복판이어서 야포를 쐈다가는 민간인과 주변 건물 피해가 클 수 있었고, 포병단 측의 건의를 받아들여 야포 발사 준비를 철회했다.
대신 포병부대원들을 일반 소총수로 편성해 수경사로 집결시키려 했지만 이것도 신군부 병력이 이동로를 선점하면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5]
그래도 장태완은 남은 병력으로 직접 공격하려 했다.
당시 장태완이 실제로 모은 병력은 약 100명에 불과했고, 전차 4대와 토우미사일, 무반동총 등이 전부였다.
반면 신군부가 장악한 30경비단 쪽은 약 1,500명, 전차 12대, 장갑차 18대에 토우미사일까지 갖고 있었다.[6]
100 대 1,500.
전차 4대 대 12대.
거기에 자기 부하 일부가 반란군 편.
이런 상태였다.
위의 대사로 유명한 드라마에선 장병들의 희생을 염려한 부하들의 만류로 마지못해 포기한 것으로 왜곡했지만, 실제로는 전차부대를 갖고 있는 자기 부하 장세동이 자기 직속상관 장태완 장군의 명령을 씹어버리고 전대갈 반란군노무새끼들에게 붙고 말았기 때문이다.
다만 정확히 말하면 장세동 하나 때문에 모든 전차를 잃어서 공격을 못한 것은 아니다.
이미 신군부가 수경사 예하 병력과 수도권 주요 부대를 상당 부분 장악하고 있었고, 장태완에게 남은 병력 자체가 압도적으로 열세였다.
결국 장태완은 공격을 포기했다가 노재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공격중지 명령까지 받으면서 완전히 손발이 묶였다.
사실 박정희 정권 당시 육군에는 여기저기 전두환 패거리들이 많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장태완과 정병주가 육군 소장이라고 해봤자 자기 부하가 자기 부하가 아니라 전두환의 부하인 셈이라서 완전히 이도저도 못하는 상태였다.
심지어 전두환은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등 전두환 본인이 소장인데도 불구하고 저렇게 중장 3명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 움직이고 있었다.
하나회를 비롯한 사조직이 군 내부 인사와 지휘체계를 잠식해버린 결과였다.
결국 장태완은 12월 13일 새벽 반란군에 체포됐다.
12·12 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도 장태완이 반란군 진압을 위해 한 병력 동원과 공격 준비는 수도경비사령관으로서 적법한 지휘권 행사였다고 명확하게 판단했다.[7]
그러니까 법적으로도
장태완 = 반란진압
전두환 패거리 = 반란군
이었다.
강제예편 이후
12.12사태 이후 그는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조사받았다.
1980년 3월께 풀려났지만 이후 약 6개월 동안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로 지냈고 군에서도 강제예편됐다.[8]
원문에는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제대했다고 되어 있는데, 이 부분은 자료마다 표현이 엇갈린다.
일부 자료와 당시 병역제도 설명에서는 강제예편 과정에서 이등병으로 강등됐다고 서술하지만, 장태완의 공식적인 최종 군 경력은 일반적으로 예비역 육군 소장으로 기록된다.
따라서 문서에서는 강제예편됐으며 이후 소장 계급으로 복권·기록된다 정도로 쓰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집안에 미친 비극이 이어졌다.
장태완의 부친은 아들이 반란군에게 끌려가 고초를 겪는 모습을 지켜본 뒤 곡기를 끊고 세상을 떠났다.[9]
아무튼 막 대학생이 된 외동아들도 가슴으로 묻어야 했다.
장태완이 가택연금 상태에서도 공부를 도왔던 외아들 장성호는 서울대학교 자연대에 입학했다.
그런데 1982년 1월 갑자기 실종됐다.
그리고 한 달 뒤 고향과 가까운 낙동강 부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10]
당시 경찰은 자살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했지만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여러 의문이 남았다.
서울대 자연대 수석 입학이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확인 가능한 언론자료에서는 서울대 자연대 입학까지는 확인되지만 수석 여부는 자료마다 다르므로 단정하지 않는 편이 낫다.
장태완은 이후 12·12 진상규명에 남은 인생 상당 부분을 쏟았다.
1993년 민주당의 12·12 쿠데타 진상조사 과정에서 공개증언에 나섰고, 같은 해 전두환 등 34명을 반란·내란 혐의로 고소했다.[11]
후에 12·12가 법원에서 군사반란으로 최종 확인되면서 장태완이 당시 했던 대응 역시 뒤늦게 역사적으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훌륭한 참군인이고 영웅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서 역사적인 패자로 수모를 겪다가 재평가 받은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1994년에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에 당선됐다.
그것도 최초로 자유경선을 통해 선출된 회장이었다.
이후 6년 동안 재향군인회를 이끌었다.[12]
2000년 3월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했고 같은 해 제16대 총선에서 전국구 3번으로 국회의원이 됐다.[13]
새천년민주당에서 구케으원도 했었다.
민주당 최고위원을 맡았고 2002년 대선 때는 노무현 후보의 보훈특보로 활동했다.[14]
당시 같이 국회에 입성한 386 의원들에게 자신이 전두환을 막지 못해서 미안하고 그간 고생 많았다며 오히려 위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이 북뽕을 빠는 것은 가만히 두지않고 아주 가루가 되도록 극딜을 넣으셨다.
장태완은 기본적으로 민주당 정치인이었지만 군인 출신답게 안보 문제에서는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당내 운동권 출신 의원들과 대북관이나 안보 문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었다.
정치색보다 군인정신이 먼저였던 인간이다.
2010년 7월 26일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8세, 한국식 나이로 80세였다.[15]
이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돌아가신 뒤로는 반란군노무새끼들과 같이 현충원에 묻히는 굴욕 아닌 굴욕과 함께 당시 반란군 편이었던 애들이 자기를 디스하는 이중 굴욕을 당했다.
다만 장태완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고, 전두환은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않았으므로 단순히 "전두환과 같이 현충원에 묻혔다"는 식으로 이해하면 틀린다.
2012년에는 부인 이병호도 자택에서 투신해 숨졌다.
장태완 사망 이후 우울증을 앓았고 유서도 남긴 것으로 경찰은 파악했다.[16]
남편은 쿠데타 막으려다 군복 벗음.
시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세상을 떠남.
아들은 대학 들어가고 얼마 안 돼 숨진 채 발견됨.
남편까지 먼저 떠난 뒤 결국 부인도 세상을 떠났다.
12·12가 한 군인의 인생만 박살낸 게 아니었다.
그럼 부하들에겐 어떤 지휘관이었는가?
참지휘관.
뼛속까지 군인 정신으로 중무장 되어있는 지휘관이었고 참군인 중 참군인이었다.
공과 사를 그 어느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구분했는데 공적인 측면에서는 훈련 강도가 어마어마했다.
가끔 우리 부대 훈련 ㅈ도 안 함 우리 지휘관 개좋음 ㅎㅎ 이러는 병신들 있는데 군대는 전시 대비해서 전투력을 기르는 곳이지 탱자탱자 노는 곳이 아니다.
근데 개나소나 병신들까지 탱자탱자 노는곳이 아닌곳으로 보내다보니깐 그런 소리가 나오는건 어쩔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깐 존나 화나네? 국방부가 노예짓을 정당화하는거네?
물론 헬조선 지휘관들은 채찍질만 존나 잘하고 쌀알만한 실수라도 보이면 당근이고 ㅈ도 없는 지 좆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병신이 더 많고 훈련 빡세게 시킨다는 지휘관들도 이분만큼 사람 못 굴릴 듯 ㅇㅇ
장태완은 자기 회고록과 부하들의 증언에서 체력과 훈련을 상당히 중시한 지휘관으로 묘사된다.
체력 단련을 제 아무리 약골이라 하더라도 될 때까지 악착같이 매달려서 시켰고 체력 우수자에게 포상은 전혀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병력들의 식단을 아예 확 갈아엎었는데 매일같이 특식이 나오게 했으며 멀건 된장국이었던 기존의 국도 쇠고기 덩어리가 무식하게 들어간 고깃국으로 바꿨다고 전해진다.
바꿔서 말하면 요새도 문제가 일어나는 비리 횡령 같은 일을 최대한 멀리하며 장병 복지에 최대한 제대로 전달되게 했다고 볼 수 있다.
증식 재료까지 빼가고 2번 나올 거 1번 주는 새끼들 반성해라.
게다가 병력들을 사적으로 대면할 때는 엄청나게 자애로웠고 병력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려고 무지하게 노력한 참지휘관이다.
이런 스타일은 요즘 기준으로 보면 장단점이 분명하다.
훈련은 존나 빡세게 시키는데 최소한 자기도 같이 하고, 보급 빼먹지 않고, 잘한 병사는 포상하고, 사적인 갑질은 최대한 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장병에게 고생시키면서 자기는 골프치러 가는 유형은 아니었다.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해서 이런 사람이 되어야 된다.
장태완 장군님처럼 이 나라가 등을 돌려도 굴하지 말아야 된다.
이 분이 대단한 이유
원래 대한민국 건국 초기의 장교임관과정은 갑종장교와 사관학교가 양대산맥이었고 ROTC 따위 아직 소위도 배출하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장태완 장군님의 임관구분인 갑종장교는 한국전쟁을 전후해 대량의 장교를 배출한 핵심 임관제도였다.
갑종간부후보생은 육사처럼 4년 동안 교육하는 정규 사관학교 과정이 아니라 비교적 짧은 교육 뒤 바로 장교로 임관시키는 제도였다.
전쟁 중에는 사람을 빨리 전선에 보내야 했으니 이런 방식으로 장교를 대량 양성할 수밖에 없었다.
장태완은 그 갑종 출신으로 한국전쟁에 직접 참전했다.
이후 장태완 같은 갑종 출신 장교들은 실제 전투 경험을 바탕으로 군에서 상당수 장성까지 진급했다.[17]
그런데 1960~70년대 들어 상황이 달라졌다.
육사 11기를 비롯한 정규 4년제 육사 출신 세대가 본격적으로 진급하기 시작했고, 전두환, 노태우 등이 포함된 하나회 세력이 인사권을 통해 자기 사람들을 밀어주면서 육사 출신의 영향력이 급격히 커졌다.
원문처럼 "박정희가 하나회를 직접 만들어줬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하나회는 전두환·노태우 등 육사 11기 중심의 사조직에서 발전했고 박정희 정권이 이를 제대로 해체하지 않고 사실상 묵인·활용하면서 세력을 키운 쪽에 가깝다.
또한
| “ | 각하, 군대에서도 각하를 지지해 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 |
라는 전두환 발언과 박정희의 하나회 지원을 직접 연결하는 이야기는 여러 회고와 2차 자료에서 등장하지만, 하나회의 형성과 육사 편중 인사를 이 한 문장 하나로 설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실제로 1970년대까지도 갑종 출신 장성은 적지 않았다.[18]
그럼에도 장태완의 진급이 대단한 것은 맞다.
육사 출신 엘리트가 군 핵심보직을 장악해가던 상황에서 갑종 출신으로 소장까지 올라가 수도경비사령관에 임명됐기 때문이다.
특히 수도경비사령부는 서울과 대통령 핵심시설 방어를 맡는 매우 중요한 부대였다.
현재의 수도방위사령관과 조직·계급 구조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당시에도 수도 방위를 책임지는 핵심 보직이었다.
그 정도까지 올라갔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 버텼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근데 그렇게 올라가서 받은 첫 번째 초대형 임무가 취임 한 달 만에 쿠데타 막기였다.
그리고 자기 부하들이 쿠데타 편에 붙어 있었다.
게임이 너무 어려웠다.
재평가와 대중문화
한때 합필갤의 필수요소이기도 했다.
특히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김기현이 장태완을 연기하면서
야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로 시작하는 전화 대사가 인터넷 필수요소가 됐다.
실제 장태완도 당시 전화통화에서 매우 격한 욕설을 사용하며 반란군을 진압하겠다고 위협했지만, 현재 인터넷에 퍼진 정확한 문장과 억양은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그래서 맨 위의 `장포스.JPG`도 실존 장태완 사진이 아니라 김기현의 연기 장면이다.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이 장태완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 속 이태신이 한강 다리에서 직접 반란군과 맞서거나 광화문에서 전두광과 대치하는 장면은 창작이다.
실제 장태완은 수경사 병력을 모아 30경비단 공격을 준비했지만 수경사 자체에서 출발하지 못하고 체포됐다.[19]
그렇다고 영화가 장태완을 실제보다 과장해서 영웅으로 만든 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는 병력 출동을 요구했고, 야포 준비를 지시했고, 마지막 남은 병력을 모아 반란 지휘부를 공격하려 했다.
오히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좆같았다.
영화에서는 적이 바깥에 있는데 실제로는 자기 부하까지 적이었다.
12·12가 반란으로 사법적으로 확정되고, 2023년 서울의 봄이 흥행하면서 장태완은 다시 크게 재조명됐다.
과거에는 장포스라는 인터넷 밈으로 기억되던 사람이 욕 존나 찰지게 하는 아저씨에서 당시 공식 지휘계통을 지키며 실제로 군사반란을 진압하려 했던 장군으로 다시 평가받기 시작했다.
훌륭한 참군인이고 영웅이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서 역사적인 패자로 수모를 겪다가 재평가 받은 군인이라고 볼 수 있겠다.
12·12 당시 승자는 전두환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지나고 보니 어느 쪽이 반란군이고 어느 쪽이 군인이었는지는 법원 판결까지 끝났다.
장태완이 그날 전화로 한 말 가운데 제일 중요한 건 욕설이 아니다.
반란군을 진압하겠다고 한 것이다.
각주
- ↑ 「일촉즉발 바리케이드 대치는 FAKE…육사 vs 갑종 대립구도 FACT」, 세계일보, 2023-12-12.
- ↑ 「장태완 전 국회의원 별세」, 연합뉴스, 2010-07-27.
- ↑ 「12·12, 5·18사건 대법원 판결문 요지」, 연합뉴스, 1997-04-17.
- ↑ 「12·12, 5·18 판결문」, 연합뉴스, 1996-08-26.
- ↑ 「12·12, 5·18 판결문」, 연합뉴스, 1996-08-26.
- ↑ 「12·12, 5·18 판결문」, 연합뉴스, 1996-08-26.
- ↑ 「12·12, 5·18 판결문」, 연합뉴스, 1996-08-26.
- ↑ 「반란군에 맞선 군인과 가족의 고통…'서울의 봄' 뒷이야기들」, 연합뉴스, 2023-11-30.
- ↑ 「반란군에 맞선 군인과 가족의 고통」, 연합뉴스, 2023-11-30.
- ↑ 「반란군에 맞선 군인과 가족의 고통」, 연합뉴스, 2023-11-30.
- ↑ 「'12·12 신군부'에 반기든 故 장태완」, 연합뉴스, 2010-07-27.
- ↑ 「장태완 전 국회의원 별세」, 연합뉴스, 2010-07-27.
- ↑ 「민주당 전국구 후보 발표」, 연합뉴스, 2000-03-28.
- ↑ 「장태완 전 국회의원 별세」, 연합뉴스, 2010-07-27.
- ↑ 「장태완 전 국회의원 별세」, 연합뉴스, 2010-07-27.
- ↑ 「장태완 前수경사령관 부인 투신자살」, 연합뉴스, 2012-01-17.
- ↑ 「육사 vs 갑종 대립구도 FACT」, 세계일보, 2023-12-12.
- ↑ 「육사 vs 갑종 대립구도 FACT」, 세계일보, 2023-12-12.
- ↑ 「반란군에 맞선 군인과 가족의 고통…'서울의 봄' 뒷이야기들」, 연합뉴스, 2023-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