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박스(PDBox)는 나우콤이 2002년 5월 시작한 웹하드·파일 공유 서비스다. 당시 나우누리로 유명했던 나우콤이 PC통신 이후 인터넷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내놓은 서비스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후 클럽박스로 이어지는 나우콤 파일 공유 서비스의 원형에 해당한다.
2000년대 초반 한국 인터넷에서 파일구리, 프루나, 당나귀, 소리바다 같은 P2P 서비스와 함께 각종 영상, 음악, 프로그램을 구하던 인간들이 자주 들락거리던 곳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클라우드 스토리지 비슷한 물건인데, 당시 이용자들이 실제로 뭘 올리고 받았는지를 생각하면 그냥 2000년대 한국 인터넷 자료창고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역사
피디박스는 2002년 5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운영사 나우콤은 원래 PC통신 나우누리를 운영하던 회사였지만 인터넷 보급으로 PC통신 시장이 박살나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등장한 서비스가 피디박스였다.
사용자가 인터넷상에 저장 공간인 '박스'를 만들고 파일을 업로드하면 다른 사람들이 해당 파일을 다운로드하는 방식이었다. 지금 보면 별것 없어 보이지만 집 인터넷 속도가 지금과 비교하면 처참하던 시절에 서버에 대용량 파일을 올려놓고 다른 사람들이 내려받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꽤 유용했다.
특히 개인 홈페이지나 카페의 첨부파일 용량 제한을 씹어먹는 대용량 자료실 역할을 하면서 빠르게 이용자가 늘었다.
서비스 방식
피디박스에서는 이용자가 자신의 저장공간에 파일을 올리고 다른 이용자가 다운로드할 수 있었다.
무료 이용자는 다운로드 속도가 제한됐고, 돈을 내거나 각종 포인트를 사용하면 더 빠른 속도로 받을 수 있는 식이었다. 훗날 한국 웹하드 사이트들이 질리도록 써먹은
무료는 존나 느리게, 돈 내면 정상 속도
비즈니스 모델의 전형적인 형태다.
당시에는 인터넷 회선 자체도 지금보다 느렸기 때문에 무료 다운로드로 영화 같은 대용량 파일 하나 받으려면 컴퓨터를 켜놓고 자는 경우도 흔했다.
다운로드 눌러놓고 자고 일어나서 확인했는데 80%에서 오류 나 있으면 그날 하루의 시작부터 좆같아졌다.
파일 공유
명목상으로는 대용량 파일 저장 및 공유 서비스였지만 실제로는 각종 동영상, 애니메이션, 게임, 프로그램, 음악 등이 대량으로 공유됐다.
2000년대 초반에는 지금처럼 넷플릭스, 유튜브, 스팀 같은 합법적인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이 잘 갖춰져 있지 않았고, 해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은 돈을 내고 싶어도 국내에서 정상적으로 구하기 힘든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용자들은 파일구리, 프루나, 당나귀 같은 P2P나 피디박스 같은 웹하드로 몰렸다.
그래서 당시 중고딩들에게 인터넷은
보고 싶은 게 있다 → 검색한다 → 안 나온다 → 피디박스나 파일구리 뒤진다
라는 매우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저작권이고 뭐고 개판이었다.
클럽박스
2004년 나우콤은 피디박스의 구조를 발전시켜 클럽박스를 내놓았다.
클럽박스는 특정 주제나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료를 모아놓은 '박스'를 운영하는 방식이었으며, 피디박스보다 커뮤니티 기능이 강화되어 있었다.
특히 애니메이션, 드라마, 예능, 게임 등 특정 분야 자료를 전문적으로 올리는 박스들이 생겨나면서 이용자가 급격히 늘었다.
결국 피디박스가 개인 자료실에 가까웠다면 클럽박스는
자료실 + 카페 + 웹하드
를 합쳐놓은 형태였다.
클럽박스가 커지면서 피디박스의 존재감은 빠르게 줄어들었고 사실상 클럽박스 쪽으로 중심이 넘어갔다.
그래서 2000년대 중후반 인터넷을 쓴 사람들은 피디박스보다 클럽박스를 더 잘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파일구리와의 차이
파일구리와 같은 시대에 파일 공유 용도로 많이 사용됐지만 구조는 달랐다.
파일구리는 이용자끼리 직접 파일을 주고받는 P2P 서비스에 가까웠고, 피디박스는 서버에 파일을 저장한 뒤 다른 이용자가 내려받는 웹하드 방식이었다.
덕분에 파일구리에서는 해당 파일을 가진 이용자가 접속해 있어야 다운로드가 제대로 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피디박스는 서버에 파일이 살아 있는 한 받을 수 있었다.
반대로 웹하드는 서버 운영비가 들어가니 속도 제한과 유료 다운로드 상품이 따라붙었다.
P2P는 사람이 없으면 못 받고, 웹하드는 돈이 없으면 존나 느렸다.
2000년대 한국 파일 공유 시장의 차이를 대충 이 한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
저작권 문제
피디박스와 클럽박스가 커지면서 저작권 문제도 당연히 따라왔다.
영화, 방송 프로그램, 애니메이션 등 저작권이 있는 파일들이 서비스에서 대량으로 공유됐고 웹하드 사업자가 이를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를 두고 논란이 계속됐다.
2008년에는 나우콤 대표가 웹하드 서비스를 통한 불법 콘텐츠 유통 방조 혐의로 구속되는 일까지 있었다.
나우콤 측에서는 서비스 자체는 합법적인 저장공간이며 불법 파일은 이용자들이 올리는 것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저작권 업계에서는 웹하드 업체가 불법 콘텐츠 유통으로 수익을 얻고 있다며 책임을 요구했다.
당시 한국 웹하드 업계 전체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었고 이후 저작권 감시 강화, 콘텐츠 필터링, 제휴 콘텐츠 제도 등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계기가 됐다.
쇠퇴
피디박스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자체 후속 서비스인 클럽박스가 훨씬 크게 성장했고, 이후 위디스크, 파일노리 등 수많은 웹하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경쟁도 심해졌다.
여기에 토렌트가 널리 퍼지고 인터넷 속도가 빨라진 데다, 2010년대 이후에는 합법적인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서비스가 급속히 성장하면서 예전식 웹하드의 입지는 계속 줄어들었다.
피디박스라는 이름은 결국 사라졌지만 클럽박스는 훨씬 오래 살아남아 2019년까지 운영됐다.
결과적으로 피디박스 자체보다 피디박스에서 발전한 클럽박스가 한국 인터넷 문화에 더 큰 흔적을 남긴 셈이다.
2000년대 인터넷에서의 위치
피디박스가 활동하던 시절은 인터넷에서 콘텐츠를 구하는 방식이 지금과 완전히 달랐다.
유튜브도 없었고 넷플릭스도 없었으며 방송사가 지난 방송을 전부 스트리밍으로 제공해주는 시대도 아니었다.
검색해서 못 찾으면 P2P 프로그램을 켜거나 웹하드 자료실을 뒤져야 했다.
당시 주요 선택지는 대충 다음과 같았다.
- 소리바다 - 음악
- 당나귀 - 없는 게 없는데 다운로드가 언제 끝날지 모름
- 프루나 - 당나귀 계열의 한국 대표 선수
- 파일구리 - 한국식 P2P
- 피디박스 - 웹하드
- 클럽박스 - 피디박스의 진화형
지금 기준으로 보면 온갖 저작권 침해의 향연이지만, 동시에 국내에서 정식으로 제공되지 않던 해외 콘텐츠와 오래된 방송 자료가 퍼지는 통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몇 개 거대 플랫폼으로 정리되기 전 야생의 시대를 상징하는 서비스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여담
- 이름의 PD는 방송국의 프로듀서를 뜻하는 PD라는 설명이 일반적이지만, 서비스 자체는 방송 제작자 전용 서비스가 아니라 일반 이용자용 파일 공유 서비스였다.
- 당시 웹하드는 다운로드용 ActiveX 프로그램을 설치하는 경우가 많았고 피디박스도 예외가 아니었다. 2000년대 한국 인터넷답게 뭘 하나 받으려면 브라우저에 이상한 프로그램부터 깔아야 했다.
- 다운로드 프로그램 설치 과정에서 각종 제휴 프로그램이 같이 설치되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무료 프로그램들의 유구한 전통이다.
- 나우콤은 이후 인터넷 방송 서비스 아프리카TV로 대박을 내면서 회사의 주력 사업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
- 2000년대 초반 이용자에게는 유명한 서비스였지만 클럽박스가 워낙 크게 성공해서 현재는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 파일구리와 함께 2000년대 한국 파일 공유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지기 힘든 서비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