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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4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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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구·비례대표 병행 비례대표 미실시 양원제·의원내각제 지역구 직선 +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 의원 병존

5대 1960년 · 민의원·참의원

※ 배경색은 각 선거의 선거제도상 특징을 간략히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제9·10대 국회는 지역구 의원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동시에 일부 의원을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별도로 선출했다.

개요

1958년 5월 2일에 치뤄진 총선이다.

상세

미국의 원조 축소로 경제가 망한 상태에서 진행된 선거. 이때부터 무소속의 비율이 급감하고 두 정당이 의석을 처먹는 국회 양분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사오입 개헌을 저지르면서 이미 자유당의 지지율은 급락했지만 이기기는 또 이겼다. 직전 총선 꼴을 보면 무슨 짓을 했을지는 상상에 맡기는 게 바람직할 듯하다.

그나마 똘똘했던 서울은 자유당을 버리고 민주당을 품었지만 시골은 전북을 제외하고 또 자유당 찍었다.

닭죽 사건이 여기서 나온다. 사실 자유당 새끼들은 이때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행정 구역 마개조까지 단행했다.

형사양반이 이때 자유당 국K-1으로서 국회 입성을 시도했지만 서울이 자유당을 버린 탓에 당선될 가능성이 매우 낮았던 이기붕에게 자리를 뺏겼다.

결과

투표율은 87.8%로 90퍼대가 무너졌다.

정원은 233석이고 여전히 지역의원 뿐이다.

자윾당이 3,607,092표(42.1%)를 얻고 126석을 차지하여 제1당이 되었다.

민주당이 2,934,036표(34.2%)를 얻고 80석을 차지해 제2당이 되었다.

야인시대에서

야인시대! 그렇다. 그것은 그가 몸 바쳐 살아온 이 나라 격동기의 또 다른 역사의 한 장이었다!
이 문서에서는 국민적인 필수요소이자 한 시대를 풍미했던 드라마인 야인시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이 문서를 보다가 김두한 일당에게 단죄를 당해도 디시위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심영: 이보시오! 이보시오! 김두한 대장!!


김두한: 공산당 할 거야 안 할 거야!?

118회에서 나온다. 이기붕과 형사양반이 동시에 출마하려고 하는데 이기북딱 놈이 자리가 없어서 형사양반의 이천 지역구를 뺏어먹으려고 했지만 하필 형사양반의 고향이 이천이라 엄청난 공을 들였는데 이제 와서 자유당이 의석을 뺏으려 하니 형사양반이 극머노를 하게 된다.

그런데 이기붕이 계속 눈치없이 의석을 뺏으려 하고 결국 화랑동지회와 형사양반은 자유당에게 버려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이정재 사단 전체가 자유당과 척을 지게 된다.

결국에는 이기붕에게 선거구를 뺏기고 만다. 그리고 이기붕의 상대후보가 실종되어서 무투표 당선.

이 선거로 동대문사단의 본격적인 몰락이 시작된다.

김두한도 선거운동을 머국적으로 하지 못해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