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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벽남 양성소

해안 경계를 주로하며 그리 빡세지않다는 평이 많음.

ㄴ 현재 기준으로는 23사단 자체가 없어졌다. 국방개혁 2.0에 따라 2021년 9월부터 임무를 넘기기 시작했고 같은 해 11월 사단 편제가 완전히 해체됐다. 대신 기존 23사단의 일부 병력과 해안경계 임무를 이어받은 제23경비여단이 창설돼 철벽부대라는 이름과 부대마크를 계승했다. 2026년 현재 23경비여단은 제3군단 예하에서 강릉·동해·삼척 일대 해안경계를 담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6년 7월 2일 기사

따라서 이 문서 아래에 있는 군생활 경험담은 대부분 23사단이 실제 사단으로 존재하던 시절의 이야기라고 보면 된다. 해안경계라는 큰 임무 자체는 후신인 23경비여단으로 넘어갔지만 편제, 병력규모, 소초 운영방식, 감시장비 등은 상당히 바뀌었다.

매년 9월 18일에는 리멤버918이라는 훈련을 한다.

ㄴ 이건 진짜다. 정확한 명칭은 Remember 9·18 국지도발대비훈련 등으로 불렸고 1996년 9월 18일 발생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실시됐다. 당시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강릉 안인진 해안에 침투했다가 좌초됐고 무장공비들이 내륙으로 들어오면서 무려 49일간 소탕작전이 이어졌다. 당시 해당 해안 책임부대는 23사단의 전신인 68사단이었다. 연합뉴스 2017년 9월 19일 기사

이 사건 이후 해안경계 문제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치면서 1998년 제68보병사단을 상비사단으로 확대개편한 것이 바로 23사단이다. 그러니까 23사단이라는 부대가 생긴 배경 자체에 9·18 사건의 영향이 상당히 크게 깔려 있었다.

위대하신 사단장님이 쓰리스타가 되어 특전사 사령관으로 재직하던중, 23사단에 있었던 여 하사와의 부적절한일로 자발적으로 그만두셨다.

ㄴ 최익봉 중장 얘기다. 육사 36기로 2009년 23사단장을 지냈고 이후 한미연합사 기획처장을 거쳐 2011년 중장으로 진급해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됐다. 그런데 2012년 23사단장 시절 예하부대의 당시 20대 후반 여군 하사와 여러 차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사실이 드러났다. 육군이 여군 고충상담 과정에서 진술을 확보하고 내사에 들어가자 최익봉이 전역 의사를 밝혔고 결국 특전사령관에서 보직해임됐다. 연합뉴스 2012년 3월 9일 기사

이후 정직 3개월 중징계까지 받았다. 당시 성군기 위반 문제로 중징계를 받은 군인 가운데 계급이 가장 높은 사례로 보도됐다. 서울신문 2012년 4월 13일 기사

그리고 한화에 취업하셨지ㅋㅋ

ㄴ 전역 뒤 한화건설 전무로 들어가 이라크 사업에서 치안 관련 업무를 맡았다. 자이툰부대 파병 경험과 군 경력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졌고 2015년 한화건설 이라크 현장을 다룬 KBS 다큐에도 등장했다. 이후에는 한화건설을 떠났으며 2026년 기준으로는 별도 법인 대표와 재향군인회 이사 등의 경력이 확인된다.

사단마크를 옆으로 돌리면 개콘마크가 된다

북한 배를 대낮에 못 보고 패스시켜주는 허벌 부대이다.

ㄴ 이 드립이 생긴 결정적 사건은 2019년 삼척항 북한 목선 입항 사건이다. 2019년 6월 15일 북한 주민 4명이 탄 목선이 동해 북방한계선을 넘어 남하한 뒤 삼척항 방파제까지 사실상 자력으로 들어왔다. 주민이 먼저 발견해 신고할 때까지 군 감시체계가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면서 해안경계 책임부대였던 23사단이 존나게 까였다.

당시 군은 처음에는 배가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됐다는 식으로 발표했는데 실제로는 목선이 삼척항 부두에 이미 접안한 상태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은폐·축소 논란까지 생겼다. 주민 신고는 오전 6시 50분 전후였고 군의 현장 출동도 늦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채널A 2019년 6월 20일 보도

다만 23사단 해체가 이 사건 때문에 결정된 것은 아니다. 23사단 해체와 여단급 감편은 이미 국방개혁 2.0 계획에 들어가 있던 사안이었다. 목선 사건이 터진 뒤 "이 상황에서 부대를 해체해도 되냐"는 반발이 커졌지만 국방부는 기존 해체 계획을 유지했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9일 기사

부대 역사

23사단의 뿌리는 1975년 창설된 제68훈련단이다. 1987년에는 제68보병사단으로 확대됐고 당시에는 동원사단 성격이 강했다.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해안경계 책임지역에 68사단이 있었는데, 북한 잠수함과 공비의 침투를 초기에 제대로 막지 못하면서 경계체계가 존나게 털렸다. 사건 뒤 동해안 경계전력 강화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1998년 12월 1일 68사단을 상비사단으로 확대개편해 제23보병사단이 창설됐다.

상징명칭은 철벽부대였고 제8군단 예하였다. 사단본부는 강원도 삼척에 있었다.

예하에는 57·58·59보병연대와 포병연대, 수색대대, 정보통신대대, 군수지원부대 등 일반 보병사단에 있을 만한 부대가 대충 다 있었다. 다만 다른 사단과 달리 핵심 임무가 동해안 해안경계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보병연대가 장기간 해안경계에 투입되는 구조였다.

2020년에는 육군 연대가 여단으로 개편되면서 57·58·59연대 역시 보병여단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23사단 자체가 바로 다음 해 없어질 예정이라 이 체제는 오래 가지 못했다.

국방개혁 2.0에 따라 병력자원이 줄어들면서 23사단도 감편 대상이 됐고 2021년 9월 임무해제에 들어갔다. 이후 23사단의 해안경계 기능 일부를 가져온 제23경비여단이 창설됐으며 같은 해 11월 기존 사단 편제는 사라졌다.

상급부대였던 8군단도 2023년 5월 임무해제된 뒤 해체됐고 23경비여단은 제3군단으로 넘어갔다. 한국경제·연합뉴스 2023년 5월 1일 기사

현재의 23경비여단

2026년 현재 철벽부대라는 이름은 제23경비여단이 이어받고 있다.

사단에서 여단으로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보병 3개 연대에 포병연대까지 끼고 있는 대형 편제는 아니다. 현재는 여러 해안경비대대와 직할부대 중심으로 구성돼 강릉·동해·삼척 해안의 감시와 경계, 침투대응 등을 맡는다.

실제 2026년 7월에도 23경비여단이 강릉·동해·삼척시, 해군 1함대, 해경, 어선안전조업국, 어촌계 등과 항·포구 협조회의를 진행했다. 어선과 미상선박을 빨리 식별하고 민·관·군·경이 상황정보를 공유하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연합뉴스 2026년 7월 2일 기사

해안경계 역시 예전처럼 초병 둘 세워놓고 쌍안경으로 바다만 존나게 쳐다보는 방식에서 많이 바뀌었다. TOD, 레이더, 원거리 CCTV 등 감시장비 비중이 커졌고 감시병이 장비를 통해 탐지하면 별도 기동병력이 현장으로 출동하는 식으로 바뀌었다.

2024년 3군단 합동훈련에서도 23경비여단 해안경계부대가 적 특수작전부대의 해상침투를 탐지하는 역할을 맡고 K1E1 전차, 아파치 공격헬기, 수리온, 500MD, 해·공군 전력이 뒤이어 투입되는 훈련을 실시했다. 국방일보 2024년 4월 4일 기사

2025년부터는 일부 해안경비대대의 소초와 지휘통제시설을 한곳으로 묶어 감시-결심-기동·타격을 한 번에 처리하는 방식으로 시설 개편도 진행되고 있다. 생활관 불침번을 CCTV로 대체하는 등 예전 소초 생활과 비교하면 병사 생활환경도 꽤 달라졌다. 국방일보 2025년 12월 17일 기사

2026년에는 드론 운용 교육을 위한 철벽 드론센터도 만들었다. 이제 철벽부대라는 이름은 그대로인데 사단 시절 해안초소에 앉아 TOD만 쳐다보던 것에서 드론까지 굴리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국방일보 2026년 6월 16일 기사

해안생활

책임구역이 정말 정말 광활하다. 양양 부터 삼척까지 동해안 대부분을 이 사단이 담당하고 있다.

ㄴ 당시 23사단은 양양·강릉·동해·삼척 등 강원 동해안의 긴 구간을 맡았다. 부대 개편 뒤에는 담당구역이 조정됐고 2026년 현재 23경비여단이 공식적으로 자주 언급하는 주요 해안 책임지역은 강릉·동해·삼척이다.

때문에 해안 투입 시 체감 난이도가 극명하게 차이가 난다.

어떤 곳은 해수욕장이라 평지를 걸어 근무 나가는 반면 어떤 곳은 매일같이 동해안의 험준한 절벽지형으로 등산하게 되는 수가 있다.

또 겨울에 투입하게 되면 바다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을 온몸으로 버텨가며 체감온도 15도 18도 찍는 곳에서 하루 8시간 넘도록 서있어야 한다.

투입 기간이 GOP의 두배인 8~9개월 가량 되기 때문에 잘못 걸리면 정말 매일 자살충동 느끼게 된다.

근데 이건 너무 심각하다는걸 인지하고 있었는지 요즘은 초소마다 방풍아크릴을 설치하는 중이라고 하니 여기 걸려서 이거 읽고 있는 놈들 좀 안심해도 될거 같다.

근데 익숙해지면 내륙생활 보다 괜찮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이 어제 같은 나날의 연속이라 벌써 휴가 타이밍이고 진급하고 어느새 철수 하거나 전역준비 하고 있다.

계급에 상관 없이 워낙 피곤에 찌들어 살기 때문에 경우와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간부나 선임들 터치가 거의 없다.

소초(소대) 단위 생활이라 소규모 취사로 식사가 정말 맛있어진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취사병 재량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철수할 때 해안에 남기로 결정할 수도 있다.

만일 꼴도 보기 싫은 선임새끼들 있으면 신청해라 작별인사하는 척 불러서 그동안의 회포를 풀어보자.

여담으로 갯깡구라는 개꿀 밥도둑이 있다. 라면에 넣어 먹으면 한끼 뚝딱

ㄴ 위 내용은 대체로 2010년대까지 23사단 해안소초에 병력을 직접 장기간 집어넣던 시절의 경험담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 CCTV, TOD, IVS, 레이더 등 과학화 장비가 대폭 늘면서 일부 지역은 사람이 해안선을 직접 돌아다니는 경계보다 상황실 감시와 기동타격 형태로 바뀌었다. 원문 아래쪽 2018년 전역자의 경험담에서도 이미 이 변화가 나오는데 이후 23경비여단으로 개편되면서 이런 방향이 더 강해졌다.

그렇다고 지금은 해안에서 앉아서 CCTV만 보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해안이라는 지형 자체가 길고 관광지·항구·어촌·절벽·도로가 다 섞여 있고 여름 피서철에는 민간인이 미친 듯이 늘어나며 겨울에는 강풍과 폭설이 동시에 와서 경계부대 특유의 좆같음은 여전히 남아 있다.

내륙생활

의외로 내륙생활이 더 헬이다.

해안투입 기간이 워낙 길어 투입 동안 간부, 병사들 물갈이가 이루어져 철수 후 내륙으로 돌아온 부대원 대분은 훈련 경험이 전무한 상태가 된다.

한마디로 소위 '훈련짬' 이라는게 없는 상태라 무슨 훈련을 나가든 간부와 선임들이 요령이 없어 생고생을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해안경계만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FEBA B에 해당하는 상비사단이기 때문에 훈련 스케쥴과 강도가 상당하다.

해안투입 기간 만큼 손해보는 내륙 체류 기간에 맞추어 다른 상비사단과 동일한 훈련량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들과 헬조센이라는 자랑스러운 정체성이 맞물려 부조리가 쉽게 발생하게 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내륙은 헬이고 해안은 상대적으로 크-린한 편이다.

ㄴ 이것도 사단 시절 이야기다. 23경비여단으로 감편된 뒤에는 일반 상비보병사단처럼 내륙에서 연대급 야외기동훈련을 돌리고 다시 해안으로 장기간 들어가는 구조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 현재 부대의 존재목적부터 해안경계 쪽으로 더 좁혀진 상태다.

--59.17.114.111 2017년 5월 6일 (토) 20:01 (KST)

둘 다 경험자로서

요즘 군머를 잘 모르지만 일단 2004년에 군단장 바뀌고 해안경계 시스템 다 갈아 엎는 덕에 해안이랑 내륙생활 유격 혹한기 호국까지 다 경험해 본 앰창인생으로서 내륙이 더 헬인건 솔직히 개소리다.

해안소초가 간부들이 병사들한테 터치가 없다는건 사실 케바케다. 걍 간부가 찐따새끼면 피곤해서 잠만 쳐자거나 게임하지, 진짜 좆지잡 양아치새끼 만나거나 보급관이 개꼰대면 낮에 잠도 못자고 노가다뛰러 다니고 급식들처럼 때리기도 함.

이게 좆같은게 소대장 혹은 중대장보다 높은 계급이 없고 오랜기간 소초안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신안처럼 갇힌 사회가 된다. 그래서 부조리도 존나 심해짐.

간부야 순찰 쌩까고 드르렁해도 중대장한테 안걸리면 장땡이지만 병사들은 매일매일 토막잠 자면서 근무서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존나 예민해진다.

사람이 예민해지고 부조리가 만연한데서 생활하다보면 사람이 그냥 반쯤 넋이 나가고 별 미친짓을 하게 된다. 그래서 똥군기가 존나 심함.

내륙이야 한두시간 불침번 서고 장땡이지 한겨울 해 짧을때 6시간동안 또라이 사수랑 근무서면서 갈굼당해봐라. 두어달지나면 사람 멘탈도 박살나고 몸도 망가진다.

근무나가면 실탄이랑 수류탄 다 탄박스에 넣어가지고 자물쇠 두개 채워서 사수 부사수 하나씩 걸고 다니지?

옛날엔 그냥 각자 탄입대에 넣고 다녔다. 근데 툭하면 부사수가 사수 쏴죽이고 수류탄까서 동반자살하고 하다못해 민간인한테 습격당해서 칼빵맞고 총이랑 탄 뺏기는 병신짓이 빈번하게 생기다 보니까 아예 방침을 바꿔버림.

심지어 사수가 부사수 갈군다고 면상 앞에서 실탄 넣고 총구로 위협하다 진짜로 발사되서 좆된적도 있음. 그 부사수는 그 사건 이후로 멘탈 터져서 취사병함. 총알은 사격연습용 탄으로 매꿨다.

전화기처럼 생긴 무전기 뭐냐 T 뭐시기 그거 버튼 누르면 전기 나오는거 나 근무할때 그걸로 사수가 부사수 졸때마다 전기고문했는데 부사수새끼 한쪽 팔이 시퍼렇게 멍들때까지 몇 달동안 그렇게 괴롭힘 당하다가 목매달고 죽은 놈도 있다.

2005년에 민간인한테 총 뺏긴건 인터넷에 찾아봐도 기사 한 줄 없더라? 나름 강원kbs에도 나온 사건인데.

누가 감시하는 사람이 없고 상급부대가 따로 없으니까 내륙부대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펼쳐짐.

특히 소대장이 귀찮아서 근무일정표 안짜고 상황병한테 짬때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일병급은 하루에 세시간도 못잔다. 병장은 눈치껏 일주일에 두세번 근무 나가고 그 밑에 짬지들만 주간 야간 풀로 근무 돌려버리고 온갖 작업까지 시킴.

그에 반해 내륙은 시발 내가 내륙가서 살쪘다. PX있어 정해진 시간에 잠 잘자 근무시간 끽해야 1시간 반밖에 안돼 외박도 보내줘 면회도 가능해 주말에 개인돈으로 사제목욕탕도 데려가 노래방도 있어 시발 그냥 천국이다 천국

소초밥이 맛있다고? 지랄이고 취사병이 잘 만들어야 맛있지 얨병. 근무 제대로 못서서 낙오된 개찐따 관심병사새끼들한테 취사병 시키는데 밥이 맛있을리가? 밥이 맛있으면 그 소초는 복 받은거다.

소초의 유일한 장점은 비빔밥에 들어가는 계란이 삶은 계란이 아니라 후라이로 나온다는 거야.

나는 11년 9월군번인데 11월 자대배치이후 12년 7월까지 훈련 혹한기랑 mcsof 행군 40km짜리 세개밖에안했다.

나머지자잘한 ftx 전시준비태세같은것만 많이하고 내륙이라고해도 훈련별로없음. 나처럼 타고난군번이면 유격도 빗겨감

12년 7월부터 13년 4월까지 해안투입하고 철수후 한달간 놀다가 휴가몰아쓰고 전역

물론 다 저러진 않음. 해안경계 특징이 극과극임. 망상해수욕장같이 사람많은데 있는 새끼들은 개꿀빨면서 군생활하다가고 모래사장없고 바다랑 산이랑 붙어있는 새끼들은 하루하루 사는게 생존임. 걔네는 태풍오면 초소고 뭐고 다 박살남.

아무튼 육군은 어딜가나 좆같은건 매한가지겠지만 위 설명 처럼 그리 널널한 곳은 결코 아니다.

보병밖에 없는 것 같아서 사단본부에서 근무하던 13년 군번 예비역이 몇 줄 써본다.

사단본부라고 해도 신교대부터 수색대대, 방공중대, 화학대, 의무대, 통신대대, 본부대, 정비대대 등등 암튼 짬통이라서 부대마다 케바케다.

우선 휴가 나갈 땐 동해에 위치한 보병연대가 부럽더라. 삼척에서 버스타면 무조건 동해 거침.

통신대대이기에 출동을 많이 나간지라 삼척 가장 밑부터 고성까지 정말 다양한 곳을 가봤는데 느낀 점은 23사단 지역은 ㄹㅇ 천혜의 관광지다.

물론 그걸 느낄 놈은 많지 않을 수 있지만 어쨌건 정말 아름다운 곳이 많다. 민간인 출입금지인 곳이 이쁜 곳이 많음 개꿀 ㅋ

훈련량은 솔직 다른 데서 하는만큼은 하는 것 같다. 내가 해본것만 해도 화랑 호국 918 625 군지검 등등 안 해 본 것 없는 것 같음.

최근 23사단 들어간 사람은 모르겠지만 13년도 여름까진 사단본부 근무병들은 바로 옆 삼척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길 수 있었다.

근데 그 해변을 대명리조트에 팔아치웠는지 몰라도 14년부터 공사 들어가서 지금은 쏠비치 리조트 들어섰더라.

전반적으로 개꿀사단은 아니지만 졸라 힘든 사단도 아니고 그냥 ㅍㅌㅊ 사단 + 대 자 연 조합인 사단이다.

그리고 운 없으면 미터 단위로 쏟아지는 눈을 볼 수 있는 사단이기도 함. ㅆㅂ

2018년 10월에 전역했다.

23사단 경험담 알려준다.

59연대 출신이긴 한데 다른 연대까지는 모르겠고 우리 연대는 9~10월부터 과학화소초 뭐시기 지랄하면서 경계소초 싸그리 다 없애고 전부 cctv나 tod,ivs로 돌리면서 감시병을 대폭 뽑고있다.

그 덕에 예전마냥 추위+더위에 죽어가며 경계할 일은 없고, 경계병은 그냥 기동타격대 유지하면서 열심히 좆뺑이까며 소초정비나 하면 된다.

난 경계병 출신이라 감시병에 대해서 아는건 없어서 패스하고, 이제 내륙이 해안보다 더 빡세진게 맞다.

해안 감시병은 이제 거의 최전방수호병으로 18개월 전부 넣을테니 경계병 20명가량만 소초 이동 뺑뺑이 치거나 할텐데 그 외 인원은 전부 내륙 잔류할테니 열심히 훈련 받으면서 고통받으면 된다.

그래도 23사단 현 사단장은 그다지 뭐 튈려고 훈련같은거 딱히 더 안하고 일반적으로 하는 훈련만 진행하니 편한 마음으로 입대하도록.

내가 군생활 개꿀이었던 것도 있는데 2017년 한정으로 눈이 안와서 제설 1번도 안해봤다.

갓삼척 만만세다.

삼척항 북한 목선 사건

23사단 역사에서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다음으로 유명한 경계사건이 2019년 삼척항 목선 귀순 사건이다.

2019년 6월 15일 북한 주민 4명이 탄 소형 목선이 동해상에서 남하해 삼척항까지 들어왔다. 문제는 해군 레이더나 육군 해안감시장비가 이를 침투·귀순 선박으로 제대로 식별하지 못했고 결국 민간인이 삼척항에 들어와 있던 배를 발견해 신고했다는 점이다.

당시 목선은 항구 밖에서 구조된 것도 아니고 삼척항 방파제에 스스로 들어와 정박한 상태였다.

군 발표도 처음에는 실제 상황과 달라 논란을 더 키웠다. 합참은 초기에 북한 목선을 "삼척항 인근"에서 발견했다고 발표했지만 이후 실제로는 삼척항 내부에 정박해 있었고 북한 주민들이 육지에 있던 주민들과 대화까지 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3사단 입장에서는 부대 별칭이 철벽부대인데 북한 목선 하나가 철벽을 뚫고 항구까지 들어와버린 꼴이라 인터넷에서 존나게 조리돌림당했다.

국방부 합동조사 결과 여러 감시장비가 목선을 포착하지 못했거나 포착한 영상을 제대로 분석하지 못한 문제가 드러났고 경계작전 관련 지휘관들에 대한 징계도 진행됐다.

사건 직후에는 "23사단을 해체하면 동해안은 누가 지키냐"는 여론까지 나왔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부대 해체는 목선 사건 전에 이미 국방개혁 계획에 들어가 있었고 국방부는 예정된 개편을 계속 진행했다.

소속 병사 사망 사건

목선 사건 뒤인 2019년 7월 8일에는 23사단 해안소초 상황병으로 근무하던 병사가 서울 원효대교에서 투신해 숨지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처음에는 해당 병사가 북한 목선 사건에 대한 조사와 질책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병사는 목선이 삼척항에 들어온 6월 15일 같은 소초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군은 해당 병사가 북한 목선이 처음 발견된 오전 시간대에는 근무하지 않았고 합동조사 대상도 아니었다고 밝혔다. 휴대전화에서 발견된 유서에도 목선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내용은 없었다. 대신 군생활 적응과 업무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정황이 조사됐다. 연합뉴스 2019년 7월 9일 기사

따라서 이 병사의 사망을 북한 목선 경계실패에 대한 책임추궁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현재 확인된 사실과 다르다.

23사단 해체

2019년 목선 사건 당시 이미 군에서는 저출산과 병력자원 감소를 이유로 23사단을 없애고 동해안 경계부대를 여단 규모로 줄이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었다.

23사단은 2021년 9월 1일 임무해제되면서 제23경비여단으로 전환 작업에 들어갔고 11월 기존 사단 편제가 없어졌다.

58여단을 비롯한 일부 부대는 해체됐고 일부 대대와 직할부대는 23경비여단 또는 다른 부대로 넘어갔다. 사단의 포병전력이나 일반적인 전투지원부대들도 상당수 정리됐다.

23경비여단은 기존 23사단의 부대마크와 철벽부대라는 상징명칭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서 지금 삼척에서 철벽부대라고 하면 23사단이 아니라 23경비여단을 뜻한다.

이후 2023년에는 상급부대인 8군단까지 임무해제되고 해체되면서 23경비여단은 3군단 예하로 이동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과 23사단

23사단 창설 이유를 설명하려면 1996년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1996년 9월 18일 강릉 안인진 해안에 북한 상어급 잠수함이 좌초됐다. 잠수함에 타고 있던 북한 공작원과 승조원들은 배에서 빠져나와 산악지역으로 도주했고 대규모 소탕작전이 시작됐다.

당시 군은 공비 1명을 생포하고 나머지 침투인원 대부분을 사살했지만 작전이 49일이나 계속됐고 군인, 경찰, 예비군, 민간인 등 여러 명이 숨졌다.

특히 동해안 해안경계가 제대로 작동했느냐는 비판이 거셌고 당시 책임부대였던 68사단의 경계체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결국 1998년 68사단을 상비사단으로 확대하면서 23사단이 만들어졌다.

23사단에서 매년 진행한 Remember 9·18 훈련도 이런 역사 때문에 생겼다. 2017년 훈련에서는 실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이 벌어진 날짜와 지역을 기준으로 적이 해상으로 침투하는 상황을 만들고 23사단뿐 아니라 해군, 해경, 항공전력 등이 같이 참가했다.

23사단 해체 뒤에도 강원 동해안의 대침투훈련 자체는 계속되고 있다.

해안경계 과학화

원문 마지막의 2018년 전역자 경험담에서 이미 CCTV, TOD, IVS로 돌린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게 이후 해안경계 방식의 중심이 됐다.

예전 23사단 해안경계는 말 그대로 병사들을 해안초소에 뿌려놓고 육안과 쌍안경으로 감시하는 비중이 컸다. 이러다 보니 병력도 존나게 많이 필요했고 밤낮으로 교대근무를 돌리는 병사들의 피로도도 심각했다.

병력자원이 감소하면서 이런 방식으로 수백 km에 달하는 해안선을 계속 지키는 게 불가능해졌고 군은 열상감시장비 TOD, 해안감시레이더, CCTV, 지능형 영상감시체계 등 장비 중심으로 바꿨다.

감시장비운용병이 상황실에서 해상을 보다가 미상물체를 발견하면 실제 현장에는 경계소대나 기동타격대가 출동하는 식이다.

다만 2019년 북한 목선 사건처럼 장비가 있어도 사람이 제대로 못 보면 아무 소용없다는 문제가 실제로 터진 적이 있어서 단순히 CCTV 많이 달아놨다고 해안경계가 자동화되는 건 아니다.

현재 23경비여단도 해군 1함대와 해경, 지방자치단체, 어민들과 정보를 공유하는 방식으로 해안경계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2024년부터는 항·포구 관계기관 회의를 매년 개최하고 어선을 빨리 구별할 수 있도록 태극기 표식을 보급하는 방식까지 쓰고 있다.

자연환경

군생활 얘기만 나오면 좆같다는 이야기밖에 없지만 부대가 있던 지역 자체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게 경치 좋은 곳이다.

강릉·동해·삼척 해안선을 담당하다 보니 초소 바로 앞이 유명 관광지인 경우도 있었고 반대로 민간인이 거의 들어갈 수 없는 절벽과 해안가가 담당구역인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같은 23사단이어도 어디 걸렸느냐에 따라 풍경부터 근무난이도까지 완전히 달랐다. 망상해수욕장이나 삼척해수욕장 같은 평지 해안과 산이 바다까지 그대로 내려오는 동해안 절벽지역은 같은 해안경계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겨울 역시 케바케가 심했다. 동해안은 해안 자체는 상대적으로 눈이 적을 때도 있지만 한번 동풍을 타고 폭설이 오면 강릉·동해·삼척 일대가 그대로 파묻히기도 한다. 2011년 동해안 폭설과 2014년 영동 폭설 때는 군 장병들이 민간지역 제설 지원까지 대규모로 나갔다.

여름에는 해수욕장 개장 때문에 또 다른 헬이 열린다. 피서객과 낚시꾼, 어선, 레저보트가 경계지역에 잔뜩 생기니까 감시해야 할 물체가 몇 배로 늘어나고 해안철책 주변 민간인 통제 문제도 생긴다.

여담

23사단의 경례구호는 한동안 충성! 사랑합니다!였던 것으로 유명했고 이후 충성! 찾고 잡자!로 바뀌었다.

부대 별칭은 철벽부대였는데 2019년 삼척항 목선 사건 이후 부대명과 현실의 괴리 때문에 인터넷에서 철벽 가지고 별 드립이 다 나왔다.

부대마크는 23경비여단에서도 거의 그대로 계승하고 있어서 23사단 출신 예비역이 현재 철벽부대 마크를 보면 낯설지는 않다.

과거 사단본부가 있던 삼척 일대는 현재도 23경비여단의 주요 주둔지역이다.

2026년 삼척정월대보름제에서도 23경비여단 장병들이 대기줄다리기에 참가할 정도로 지역사회와의 관계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23사단은 없어졌지만 철벽부대라는 이름과 동해안 경계 임무 자체는 23경비여단이 그대로 이어받고 있기 때문에 23사단 출신들이 자기 부대가 완전히 흔적도 없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