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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제주박물관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으로, 제주도의 선사문화부터 탐라국, 고려·조선시대,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와 문화를 다룬다.[1]

2001년 6월 15일 개관한 고고·역사박물관으로, 특히 탐라와 해양문화를 전문분야로 삼고 있다.[2] 제주가 한반도 남쪽에 붙은 그냥 큰 섬이 아니라 오랫동안 독자적인 정치체와 문화를 형성하고 중국·한반도·일본열도를 오가는 해양교류의 거점이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곳이다.

제주 하면 흔히 한라산, 성산일출봉, 제주 흑돼지 같은 관광지부터 떠올리지만 역사 쪽으로 들어가면 이야기가 존나 길어진다. 독립적인 탐라국이 있었고, 고려 때 본격적으로 중앙정부에 편입됐으며 삼별초와 몽골의 전쟁도 겪었다. 조선시대에는 말 생산기지이자 유배지, 표류와 해양교통의 섬이라는 독특한 사회가 만들어졌다.

역사

국립제주박물관 건립은 199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1992년 첫 삽을 뜬 뒤 약 3,090일에 걸친 건립과 준비과정을 거쳐 2001년 6월 15일 개관했다.[3]

제주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육지와 다른 문화가 많이 발달했지만, 과거에는 제주지역 문화유산을 종합적으로 보여줄 국립박물관이 없었다. 국립제주박물관은 개관 이후 제주에서 발굴된 고고자료와 역사자료를 수집·보존하고 탐라문화와 해양교류를 연구하는 중심기관 역할을 맡고 있다.[2]

박물관은 이후 상설전시 개편과 실감영상실, 어린이박물관 등 시설을 꾸준히 확대했다. 현재는 단순히 시대별 유물을 늘어놓기보다는 섬이라는 환경이 제주 사람들의 역사와 생활을 어떻게 만들었는가를 전시 전체의 큰 흐름으로 보여준다.

전시

2026년 현재 상설전시는 섬, 제주, 선사시대 제주, 섬마을의 발전과 변화, 섬나라 탐라국, 고려시대 제주, 조선시대 제주, 제주섬 사람들, 기증문화유산 등의 흐름으로 구성돼 있다.[4]

제주의 시작은 당연히 화산섬이다. 제주도의 지형과 자연환경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먼저 설명한 뒤, 선사시대 사람들이 섬에 들어와 사냥과 채집을 하고 토기를 만들며 정착하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제주 선사문화에서는 육지와 비슷한 유물도 나오지만 바다 건너 교류를 보여주는 물건들도 계속 등장한다. 섬이라고 완전히 고립돼 있던 곳이 아니라 오히려 배를 타고 주변지역과 꾸준히 왕래했다.

이후 여러 마을과 지역세력이 성장하면서 제주 전역에 공통된 토기문화가 나타나고, 2세기 무렵부터는 하나의 정치체인 탐라국이 등장한다.[5]

탐라는 한반도의 고구려·백제·신라와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발전했다. 섬 전체가 하나의 문화권을 형성하면서 백제·신라·왜·당 등 주변지역과 교류했고, 신라에서는 탐라의 지배자에게 성주라는 칭호를 주기도 했다.[5]

국립제주박물관은 이런 제주사를 단순히 육지 왕조의 변방 역사로 설명하지 않고, 탐라라는 독자적인 정치체와 해양문화의 시선에서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탐라와 해양교류

탐라국은 제주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 가운데 하나다.

문헌기록은 많지 않지만 고고학적으로는 제주 전역에서 비슷한 형태의 토기가 사용되고 지배층 무덤이 등장하는 등 하나의 정치·문화권이 형성된 흔적이 확인된다.[5]

탐라는 바다를 통해 백제·신라뿐 아니라 일본열도와 중국까지 교류했다. 제주가 육지와 떨어져 있다는 점은 고립의 원인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해상교통을 이용하면 동아시아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중간기지가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국립제주박물관이 스스로를 탐라 및 해양문화 전문박물관으로 특화하려는 이유도 명확하다.[2]

제주 역사를 육지 중심으로 보면 탐라는 백제나 신라에 조공하던 작은 섬나라 정도로 지나가기 쉽다. 하지만 제주 자체를 중심에 놓고 보면 수백 년 동안 독자적인 정치체를 유지하면서 주변 강국 사이에서 외교와 교역을 이어간 해양국가였다.

고려와 조선의 제주

고려 건국 초기에도 탐라는 독립적인 정치체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1105년 고려가 탐라를 지방행정구역인 탐라군으로 편입하면서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는 사실상 끝났다.[6]

고려시대 제주에서는 불교가 확산되고 육지에서 고려청자 등 여러 물품이 들어왔다.

13세기에는 삼별초가 제주로 들어오면서 상황이 급변한다. 진도에서 패배한 삼별초 세력은 제주에 들어와 항파두리성을 중심으로 항전을 이어갔지만 1273년 고려·몽골 연합군에게 패배했다.[6]

이후 몽골은 제주에 탐라총관부를 설치하고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특히 제주 중산간지역에 대규모 목장을 만들고 말을 사육하면서 제주 목축문화에 큰 영향을 남겼다.[6]

그리고 1295년에는 탐라 대신 제주라는 이름이 사용되기 시작했다.[6]

조선시대에는 제주목을 중심으로 중앙정부의 행정체계가 더욱 강하게 자리잡았다. 동시에 바다와 멀리 떨어진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제주에는 육지와 다른 생활문화와 풍습이 상당부분 유지됐다.

제주는 조선왕조의 주요 말 생산지이기도 했다. 국가가 운영하는 목장이 넓게 설치됐고 제주마가 군사용·운송용으로 육지에 공급됐다.

또한 제주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유배다.

육지에서 존나 멀고 바다까지 건너야 했기 때문에 중앙정치에서 제거하고 싶은 사람을 보내기에 아주 훌륭한 장소였다. 광해군, 김정희를 비롯한 수많은 인물이 제주에서 유배생활을 했다.

육지 정치인에게는 끝장난 커리어의 상징이었지만, 그들이 가져온 학문과 문화가 제주사회에 새로운 영향을 주는 아이러니도 있었다.

탐라순력도와 제주 사람들

조선시대 제주를 이해하는 대표적인 자료가 탐라순력도다.

1702년 제주목사 이형상이 제주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거행한 행사와 제주 풍경을 화공 김남길에게 그리게 한 화첩이다.[7]

43면으로 구성돼 있으며 제주성, 각 지역의 관아와 목장, 군사훈련, 사냥, 해안방어, 풍경 등을 세밀하게 보여준다.[7]

300년 전 제주도의 행정·군사·생활상을 거의 그림 다큐멘터리처럼 남겨놓은 셈이라 역사자료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탐라순력도의 원 소장처는 제주특별자치도 세계유산본부이며 국립제주박물관에서 관련 전시와 연구를 꾸준히 진행해왔다.[7]

박물관의 제주섬 사람들 전시에서는 화산섬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제주 고유의 생활문화를 다룬다.[8]

제주 사람들은 돌이 많고 물이 잘 빠지는 화산섬 환경에서 농사를 지어야 했고, 바다에서는 어업과 해녀문화가 발달했다. 강한 바람을 견디기 위한 돌담과 초가, 목축문화 역시 제주 자연환경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제주 문화가 육지와 확실히 다르게 보이는 이유가 단순히 섬 주민들이 특이해서가 아니다. 환경 자체가 존나 달랐다.

관람

2026년 현재 국립제주박물관 관람시간은 09:00~18:00이며 입장은 17:30까지 가능하다.[9]

휴관일은

  •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날
  • 추석

이다.[9]

상설전시는 무료다.

어린이박물관은 09:30~18:00, 실감영상실은 10:00~17:30 운영한다.[9]

주소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일주동로 17이다.[1]

박물관은 제주시 사라봉 인근에 있어 제주공항이나 제주시내에서 접근하기 어렵지 않다. 제주 여행에서 유적지 하나하나를 찾아다니기 전에 들르면 제주 역사 전체의 흐름을 잡기에 좋다.

2026년에는 고 김영갑 작가 기증 사진전 《찰나의 영원, 제주를 담다》도 2026년 6월 16일부터 2027년 3월 1일까지 진행하고 있다.[10]

평가

국립제주박물관의 가장 큰 장점은 제주를 단순한 대한민국의 한 지방이 아니라 하나의 섬 문화권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제주 여행을 관광지만 따라다니면 제주가 왜 육지와 이렇게 다른지 잘 이해하기 어렵다. 박물관을 보면 화산섬이라는 자연환경에서 시작해 독자적인 탐라국이 형성되고, 해양교류와 고려·몽골 지배, 조선의 목장과 유배문화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특히 탐라국 전시는 한국 고대사를 고구려·백제·신라 세 나라만으로 외우던 사람에게 꽤 신선할 수 있다. 제주에도 별도의 국가가 있었고 수백 년 동안 독자적인 외교와 문화를 유지했다.

또 제주 역사를 설명하면서 바다를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사람과 물건과 문화를 연결하는 길로 다룬다는 점도 중요하다.

국립경주박물관처럼 금관이 쏟아지거나 국립부여박물관처럼 백제금동대향로 하나가 압도적인 곳은 아니다. 대신 제주라는 지역 자체의 서사가 존나 강하다.

제주에서 관광지 몇 군데 돌고 흑돼지 먹는 것만으로 여행을 끝내기 아쉽다면 한 번쯤 갈 만하다. 박물관을 보고 나면 제주 돌담이나 목장, 해녀, 옛 관아 같은 것도 이전보다 조금 다르게 보인다.

여담

  • 2001년 6월 15일 개관했다.[3]
  • 건립공사를 시작한 뒤 개관까지 약 3,090일이 걸렸다.[3]
  • 제주지역의 고고·역사를 전문으로 하는 국립박물관이다.[2]
  • 공식적인 특성화 분야는 탐라와 해양문화다.[2]
  • 상설전시는 제주 자연환경부터 선사시대·탐라국·고려·조선·제주 생활문화까지 이어진다.[4]
  • 탐라국을 독립된 주요 전시주제로 다룬다.
  • 탐라는 백제·신라·일본·중국 등과 해상교류를 했다.[5]
  • 고려는 1105년 탐라를 탐라군으로 편입했다.[6]
  • 삼별초는 1273년 제주에서 고려·몽골 연합군에게 최종적으로 진압됐다.[6]
  • 몽골의 제주 지배는 제주 말 목축문화에 큰 영향을 남겼다.
  • '제주'라는 이름은 고려시대인 1295년부터 사용됐다.[6]
  • 탐라순력도 관련 전시와 연구가 유명하다.
  • 탐라순력도는 총 43면으로 구성돼 있다.[7]
  • 조선시대 제주는 대표적인 유배지였다.
  • 제주 특유의 해녀·목축·돌담문화도 상설전시에서 다룬다.[8]
  • 어린이박물관과 실감영상실도 운영한다.[9]
  • 상설전시는 무료다.
  • 월요일은 쉰다.[9]
  • 제주시 사라봉 인근에 있다.
  • 제주 역사에 관심 없더라도 여행 초반에 들르면 이후 관광지들이 왜 생겼는지 이해하는 데 은근히 도움이 된다.
  • 제주가 그냥 육지에서 떨어진 시골섬이었던 게 아니라 오래전부터 독립적인 정치체와 국제교류망을 가진 지역이었다는 점을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곳이다.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