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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국가산업단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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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산업단지 · 한국산업단지공단 |
부평국가산업단지는 인천광역시 부평구 청천동 일대에 조성된 국가산업단지다. 과거에는 부평수출공업단지, 부평수출산업공단, 수출4공단, 그냥 4공단이라고도 불렸다.
1960년대 대한민국의 수출주도형 공업화 정책에 따라 조성된 초기 수출산업단지 가운데 하나로, 구로수출산업공단에 이어 인천 지역의 수출산업 거점 역할을 맡았다.
현재 면적은 약 609,361㎡이며, 2024년 1분기 기준 입주업체는 약 1,800개사, 고용인원은 약 1만 명 수준이다. 규모 자체는 남동국가산업단지보다 훨씬 작지만, 인천 산업화 초창기를 대표하는 공단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크다.
특히 부평공단은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부평의 공업기반, 해방 이후 미군기지와 철도, 인천항, 경인고속도로 같은 교통망을 바탕으로 성장했다.
역사
부평 일대는 원래부터 공업과 인연이 깊었다.
일제강점기에는 부평에 조선총독부 산하 군수공장과 조선육군조병창 같은 대규모 군수시설이 들어섰다. 해방 이후 조병창 부지에는 미군이 주둔했고, 주변에는 군수물자와 철도·도로를 기반으로 공업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들어 정부가 수출 중심의 경제개발정책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인 산업단지 조성이 시작됐다.
1963년 한국경제인협회가 수출산업촉진위원회를 설치했고, 서울 구로와 인천 부평이 유력 후보지로 거론됐다.
부평은 입지 조건이 꽤 좋았다.
딱 봐도 수출공장 박기 좋은 자리였다.
하지만 정부는 우선 구로 쪽에 수출산업공단을 먼저 조성했다.
이에 인천 지역 상공인과 정치인들은 별도로 부평에 공단을 유치하려고 움직였다.
1965년 부평지구가 제4단지로 지정됐고, 같은 해 인천수출산업공단이 설립됐다. 이후 1966년부터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다.
1968년까지 약 50개 업체가 입주했고, 1969년경 주요 조성사업이 마무리됐다.
왜 4공단인가
부평공단이 왜 4공단이라고 불리는지 모르면 숫자가 갑자기 튀어나와 좀 뜬금없다.
원래 서울 구로에 만들어진 한국수출산업공단이
- 제1단지
- 제2단지
- 제3단지
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뒤 인천 부평에 수출산업공단이 만들어졌다.
1971년 정부가 인천수출산업공단을 한국수출산업공단에 통합하면서 부평공단은 자연스럽게 제4단지가 됐다.
그래서 지금도 나이 좀 있는 인천 사람들에게 4공단 = 부평공단으로 통한다.
이후 주안 지역에 조성된 공단은 5·6공단으로 불렸다.
즉 구로 1·2·3공단 → 부평 4공단 → 주안 5·6공단 이런 계보다.
수출공단 시절
부평공단의 원래 목적은 이름 그대로 수출이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외화가 부족했고 정부는 수출 확대에 사활을 걸고 있었다.
그래서 공단 입주기업도 아무 업체나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수출실적이나 고용효과 등을 따져 선정했다.
재일교포 자본 유치도 중요한 목표였다.
당시 자료를 보면 입주업체 선정과정에서
- 수출 가능성이 높을 것
- 고용효과가 클 것
- 경쟁 시 재일교포 기업을 우대할 것
등의 조건이 고려됐다.
1971년 기준으로는 수십 개의 업체가 입주했고, 상당수는 섬유·전자·기계 같은 수출 제조업체였다.
1970년 당시 부평수출공업단지는 인천 전체 수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지금처럼 작은 중소공장이 촘촘히 들어찬 모습과 달리 초창기에는 대규모 수출공장 중심의 성격이 더 강했다.
입주기업과 업종
현재 부평국가산업단지는 과거처럼 몇몇 대형 수출기업 중심의 공단은 아니다.
공장 부지가 여러 차례 분할되고 지식산업센터가 늘어나면서 입주기업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2024년 1분기 기준으로 인천시 자료에서는 입주업체 약 1,822개사, 고용인원 약 10,505명으로 집계됐다.
주요 업종은 다음과 같다.
- 전기·전자
- 기계
- 금속가공
- 자동차부품
- 화학
- 식품
- 정보통신
- 물류·창고
- 지식산업
과거에는 단순 조립·가공형 제조업 비중이 높았지만, 현재는 전자·기계와 각종 중소 제조업, 지식산업이 섞여 있다.
2012년 자료만 봐도 전기·전자 업종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기계·철강·금속·운송장비 업종도 상당했다.
동서식품
부평공단을 이야기하면서 빼놓기 어려운 회사가 동서식품이다.
동서식품 부평공장이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1970년대 이후 커피 생산시설이 들어섰고, 1980년 출시된 맥심 역시 부평공단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천시립박물관에서도 부평 4공단과 동서식품의 역사를 별도로 소개하고 있다.
공단 근처에서 커피 냄새가 난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풍향과 생산시간이 맞으면 진짜로 커피 볶는 냄새가 주변까지 퍼지는 경우가 있다.
공장지대에서 쇳가루 냄새가 아니라 커피향 나는 몇 안 되는 장소다.
도시 속 공단
부평공단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완전히 도시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처음 조성될 당시에는 부평 외곽의 공업지역에 가까웠지만 이후 부평구의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변에 청천동·산곡동·갈산동 주거지역이 대규모로 형성됐고 아파트와 상가가 공단 경계 바로 옆까지 들어왔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서울 인구가 수도권으로 분산되면서 부평역과 경인전철 주변의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됐고, 부평공단 역시 더 이상 외곽 공단이 아니게 됐다.
그래서 지금 부평공단을 보면 공장 → 길 하나 건너 아파트 → 또 공장 → 지식산업센터 → 상가 이런 식으로 도시와 산업단지가 거의 붙어 있다.
이 점은 남동국가산업단지와 꽤 다르다.
남동산단은 아직도 넓은 면적이 확실한 공업지역 분위기인데, 부평공단은 도시 속에 파묻힌 오래된 산업단지 느낌이 강하다.
교통
교통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산업단지 동쪽으로 부평대로가 지나며, 가까운 곳에 경인고속도로 부평IC가 있다.
철도 접근성도 좋다.
가까운 역으로는
등이 있다.
특히 갈산역은 공단과 거의 붙어 있어 통근수요를 직접 담당한다.
인천 도시철도 1호선과 서울 지하철 7호선을 이용할 수 있어 서울과 인천 양쪽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다.
과거 수출공단 입지 선정 때부터 철도·항만·도로 접근성이 강점이었는데, 도시가 커지면서 오히려 지금은 대중교통 접근성까지 좋아졌다.
노후화와 변화
문제는 오래됐다는 것이다.
1960년대에 조성된 산업단지라 공장과 도로, 기반시설 상당수가 노후화됐다.
좁은 도로와 부족한 주차공간, 오래된 공장건물, 화물차 통행 문제 등이 계속 지적되어 왔다.
게다가 주변이 주거지역으로 변하면서 공장 소음과 교통, 환경 문제도 예전보다 민감해졌다.
이에 따라 공장 부지를 재개발하거나 지식산업센터로 바꾸는 사례가 계속 늘고 있다.
과거에는 한 필지에 공장 하나가 들어가던 구조였다면 지금은 고층 지식산업센터 하나 안에 수십~수백 개 기업이 입주하는 식으로 바뀌고 있다.
덕분에 산업단지 전체 면적은 거의 그대로인데 입주기업 수는 오히려 크게 늘었다.
2012년 인천시 자료에서는 입주업체가 약 820개였지만 2024년에는 1,800개를 넘었다.
공단이 커진 게 아니라 공장 한 덩어리를 잘게 쪼개서 업체를 더 많이 넣은 셈이다.
주안국가산업단지와의 관계
행정자료에서는 부평국가산업단지와 주안국가산업단지를 묶어 부평·주안국가산업단지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역사적으로도 둘은 같은 한국수출산업공단 계열이다.
부평이 4단지였고 주안이 5·6단지였다.
현재 인천시는 산업단지 현황에서도 두 지역을 한 항목으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위치는 서로 떨어져 있다.
부평공단은 부평구 청천동 일대에 있고, 주안공단은 미추홀구 주안동·서구 가좌동·부평구 십정동 일대에 분포한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그냥 별개의 공단처럼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남동국가산업단지와의 차이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비교하면 성격 차이가 상당하다.
| 구분 | 부평국가산업단지 | 남동국가산업단지 |
|---|---|---|
| 조성 시기 | 1960년대 | 1980년대 |
| 면적 | 약 61만㎡ | 약 957만㎡ |
| 특징 | 초기 수출공단, 도심형 산업단지 | 대규모 중소 제조업 밀집지역 |
| 대표 별칭 | 4공단 | 남동공단 |
| 주변 환경 | 주거지역과 밀착 | 대규모 공업지역 |
남동산단이 규모 면에서 압도적으로 크다.
부평산단은 남동산단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규모다.
하지만 역사적으로는 부평산단이 훨씬 먼저 만들어졌다.
부평공단이 1960년대 수출산업 중심의 1세대 산업단지라면 남동공단은 1980년대 수도권 공장 이전과 중소 제조업 집적을 위해 만들어진 후발 대형 산업단지라고 보면 된다.
여담
- 지금도 현지에서 4공단이라는 이름이 꽤 잘 통한다.
- 4공단이라는 이름은 단지가 네 구역으로 나뉘어서 붙은 게 아니다. 구로 1·2·3단지 다음이라 4단지다.
- 부평공단과 주안공단은 공식적으로 묶여 관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거리가 꽤 떨어져 있다.
- 면적은 약 61만㎡로 국가산업단지 치고는 상당히 작은 편이다. 남동국가산업단지와 비교하면 진짜 조그맣다.
- 대신 입주기업 숫자는 1,800개가 넘는다. 좁은 곳에 업체가 존나 많다.
- 지식산업센터가 계속 들어서면서 예전의 단층·저층 공장지대 이미지는 점점 줄어드는 중이다.
- 부평공단이 있는 청천동 주변은 산업단지보다 아파트가 더 눈에 띄는 구간도 많다. 처음 방문하면 여기가 국가산단 맞나 싶을 수 있다.
- 동서식품 공장 때문에 주변에서 커피향이 난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인천시립박물관도 아예 4공단에 가면 커피 향기가 난다는 제목으로 관련 자료를 소개했다.
- 1960년대 초에는 인천 지역에서 부평공단 유치를 위해 상공인과 정치인들이 상당히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정부가 처음에는 구로공단만 추진했기 때문에 인천 쪽에서 사실상 별도의 유치운동을 벌인 셈이다.
- 부평공단이 자리잡으면서 주변 청천동·산곡동 일대 도시화에도 큰 영향을 줬다.
- 인천의 산업사를 보면 부평·주안공단이 1세대, 남동국가산업단지가 2세대 정도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