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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圭完 1862.11.15. - 1946.12.15.
소개
조선 말기의 무신, 갑신정변 참가자,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관료, 농업인.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나 집안은 이미 몰락한 상태였고, 젊은 시절 박영효의 문하에 들어가 김옥균, 서재필 등과 함께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이후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망명 생활을 했고, 훗날 귀국하여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의 고위 관료가 되었다.
일반적으로는 친일파로 분류된다. 실제로 강원도관찰사, 강원도장관, 함경남도장관, 함경남도지사 등을 지냈고, 동양척식주식회사 고문까지 맡았으니 친일 경력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냥 "나라 팔아먹고 꿀 빤 새끼" 식으로 정리하기에는 상당히 복잡하다.
조선이 망한 이유를 조선 내부의 부패, 나태, 무능에서 찾았고, 일본 제국의 지배를 현실로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조선인 자체를 버리지는 않았던 인물로 보인다.
요약하면 독립운동가는 아니었고, 친일 관료였지만, 제국 안에서 조선인의 생존과 권익을 찾으려 했던 회색지대형 인물이다.
역사 문서 쓰는 입장에서 제일 귀찮은 타입이다. 욕하면 단순화고, 미화하면 세탁이다. 그러니까 그냥 복잡하게 봐야 한다.
박중양과는 다르다
박중양과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조선 말기의 현실을 극도로 냉소적으로 봤고, 일본식 근대화에 강하게 끌렸으며, 해방 뒤에도 자기 선택을 구질구질하게 변명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결은 다르다.
박중양은 조선과 조선인 자체에 대한 환멸이 훨씬 강한 편이었다. 반면 이규완은 조선을 한심하게 봤지만, 조선인을 완전히 버린 것 같지는 않다.
박중양이 "조선은 답 없다. 일본화나 해라" 쪽에 가까웠다면, 이규완은 "조선이 답 없는 건 맞는데, 그래도 조선인도 제국 안에서 먹고살 길과 권리는 있어야 한다" 쪽에 가까웠다.
둘 다 민족주의자 입장에서는 빡치는 포지션이다.
하지만 이규완은 욕하기가 좀 애매하다. 아니, 욕할 수는 있는데 욕만 하면 설명이 부족하다.
시대의 선택지
이규완을 볼 때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살던 시대의 선택지가 지금처럼 깔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한제국은 이미 힘이 없었다. 러시아도 믿을 수 없고, 청나라도 망가졌고, 일본은 이미 조선을 손아귀에 넣고 있었다. 독립운동은 숭고했지만 성공 가능성은 낮았다. 현실 정치의 판은 좆같이 기울어져 있었다.
이 상황에서 이규완은 독립전쟁이나 망명정부가 아니라, 일본 제국 내부에서 조선인이 살아남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그게 옳았냐? 그건 별개의 문제다.
하지만 그걸 단순히 "일본이 좋아서 나라 팔았다"로만 보면 이규완이라는 인물은 잘 안 보인다.
이규완은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라기보다, 이미 일본 제국에 먹힌 조선 안에서 조선인이 어느 정도의 지위와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본 사람에 가까웠다.
이게 바로 골때리는 지점이다.
친일파인가
친일파는 맞다.
강원도장관, 함경남도지사, 동양척식주식회사 고문까지 했는데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면, 친일파라는 단어 자체가 의미를 잃는다.
다만 친일파에도 종류가 있다.
- 돈과 작위 때문에 붙은 사람
- 권력 유지 때문에 붙은 사람
- 진심으로 일본인이 되고 싶었던 사람
- 조선이 망했다고 보고 제국 안에서 현실적 생존을 택한 사람
- 조선인 권익을 제국 내부에서라도 확보하려 했던 사람
이규완은 마지막 둘에 가까워 보인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매국노라기보다는 식민지 현실론자에 가깝다.
문제는 그 현실론이 결국 식민지 체제에 협력하는 방식으로 굴러갔다는 것이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과 현실에 항복하는 것은 다르다. 이규완은 그 경계에서 일본 제국 쪽으로 너무 깊이 들어갔다.
조선인 정체성
이규완이 오히려 조선인 정체성을 지키는 데 일조한 면이 있었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는 완전한 일본인화를 주장한 인물이라기보다는, 제국 안의 조선인이라는 정체성을 인정받으려 한 쪽에 가까웠다.
이게 독립운동가들이 말한 민족 정체성과는 다르다.
독립운동가의 정체성은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다. 독립된 민족이다"였다. 이규완식 정체성은 "이미 일본 제국 안에 들어갔더라도, 조선인은 조선인으로서 권리와 지위를 가져야 한다"에 가까웠다.
물론 이건 매우 위험한 노선이다.
왜냐면 제국 안의 권리를 요구하는 순간, 제국 자체는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조선인들이 완전히 일본인으로 녹아 없어지지 않도록, 조선인이라는 별도 집단의 이해관계를 말한 사람 중 하나로 볼 수는 있다.
이건 미화가 아니라 분류다.
동양척식주식회사 문제
동양척식주식회사 고문 경력은 이규완 평가에서 가장 찝찝한 부분이다.
동척은 결과적으로 조선 토지와 경제를 장악하고, 일본인의 이민과 식민지 개발을 추진한 기관이었다. 조선 농민 입장에서는 수탈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 제국의 논리 안에서 보면, 동척은 단순한 약탈 조직만은 아니었다. 조선을 제국의 외지로 편입하고, 농업과 토지, 금융, 이민, 개발을 관리하는 국책회사였다.
그러니까 동척은 "조선을 발전시키는 기관"이라는 명분을 갖고 있었다.
문제는 식민지 개발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는 것이다.
도로를 깐다. 철도를 놓는다. 수리시설을 만든다. 금융을 공급한다. 산업을 키운다.
겉으로 보면 발전이다.
그런데 그 발전의 주도권, 이익, 소유권, 최종 결정권이 누구에게 있느냐가 문제다.
조선인이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는 것과, 일본 제국이 자기 외지를 개발하는 것은 다르다. 후자는 조선인을 위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다. 제국의 안정, 군수, 이민, 지배, 세수, 식량 공급이 같이 따라온다.
즉 동척은 개발 기관이면서 동시에 식민지 지배 기관이었다.
개발과 수탈은 반대말이 아니다. 식민지에서는 개발이 수탈의 인프라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욕하기 어려운 이유
이규완은 인성 면에서는 꽤 괜찮았던 사람으로 보인다.
검소했고, 근면했고, 직접 일하는 것을 중시했고, 농업과 산업을 중요하게 봤다. 권력 잡고 호의호식만 한 관료형 인간과는 결이 다르다.
또 해방 뒤에도 자기 과거를 독립운동으로 세탁하거나, "사실 나는 민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같은 구질구질한 변명을 크게 늘어놓은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점은 인정할 만하다.
사람은 괜찮았을 수 있다. 선택은 틀렸을 수 있다. 이 두 문장은 동시에 성립한다.
이규완은 딱 그 케이스다.
조선인 병사 지원
일제 말기 이규완은 일본군에 들어간 조선인 병사들에게 물자와 위문품을 보냈다고 한다.
이것도 평가가 복잡하다.
겉으로 보면 일본군 지원이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조선인 병사들을 챙기는 행위였다.
당시 조선 청년들이 일본군으로 끌려가거나 지원해서 전쟁터에 나갔다. 그들을 그냥 일본군이라고만 볼 것인가, 아니면 전쟁터에 놓인 조선 청년이라고 볼 것인가?
이규완은 후자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이건 독립운동가의 관점에서는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 제국의 전쟁 체제에 결과적으로 협력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이해는 된다.
"일본을 위해 싸워라"가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간 조선인 애들 굶기지는 말자"였을 가능성이 있으니 말이다.
참 더러운 시대다. 정답지가 찢어진 시험지를 강제로 풀어야 했던 세대다.
신간회와 물산장려회
이규완은 퇴임 후 조선물산장려회와 신간회에도 관여했다.
이것도 이규완이라는 인간을 단순하게 분류하기 어렵게 만든다.
조선물산장려회는 조선인이 조선 물산을 쓰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자는 성격이 강했다. 신간회 역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세력이 함께 만든 항일 성격의 단체였다.
그런데 이규완은 일제 고위 관료 출신이고 동척 고문이었다.
이 조합은 좀 이상하다.
하지만 바로 그 이상함이 이규완의 본질일 수 있다.
그는 일본 제국의 지배를 인정하면서도, 조선인의 경제적 실력과 별도 이해관계는 필요하다고 본 사람이다.
독립운동가는 아니다. 그렇다고 조선인 문제에 무관심한 일제 앞잡이도 아니다. 그 중간 어딘가에 있었다.
그래서 문서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귀찮다. 분리수거가 안 된다.
홍사익과 비슷한 점
이규완은 어떤 면에서 홍사익과도 비슷하다.
홍사익은 일본군 장성이었고, 제국의 군인으로 살았지만, 조선인 출신이라는 정체성과 조선인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버린 인물로만 보기는 어렵다.
이규완도 마찬가지다.
독립운동가가 아니라 제국 내부자였다. 하지만 제국 내부자로서 조선인의 처지를 어느 정도 의식한 인물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후대에 평가하기 어렵다.
독립운동가처럼 기릴 수도 없고, 단순 악인처럼 욕하고 끝낼 수도 없다.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만들어낸 회색 인간들이다.
평가
이규완은 친일파로 분류된다.
이건 피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규완을 단순한 매국노, 일뽕, 쓰레기로만 쓰면 문서가 오히려 거짓말에 가까워진다.
그는 조선을 무능하다고 봤다. 일본 제국을 현실로 받아들였다. 식민지 행정에 참여했다. 동척 고문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검소하고 근면했고, 조선인의 권익과 경제적 자립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완전한 일본인화보다는 제국 안의 조선인이라는 위치를 고민한 인물로 보인다.
즉 이규완은 나쁜 사람이라기보다는 나쁜 체제 안에서 현실적 선택을 한 사람에 가깝다.
그 선택이 결과적으로 친일이 되었고, 식민지 체제에 협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를 욕하기 전에, 그가 본 조선 말기의 절망과 일제강점기의 막힌 선택지를 같이 봐야 한다.
그 시대에 독립을 택한 사람들은 위대했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 길을 갈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이규완은 독립을 택하지 않았다. 대신 제국 안에서 조선인의 생존을 택했다.
그게 한계였고, 동시에 그 사람 나름의 진심이었을 수 있다.
한줄요약
친일파로 분류되지만, 조선인을 버린 일본인 코스프레라기보다는 일본 제국 안에서 조선인의 생존과 권익을 찾으려 한 회색지대형 현실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