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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가톨릭대학교(光州가톨릭大學校, Gwangju Catholic University)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남평읍에 위치한 사립대학교이자 가톨릭 사제 양성을 위한 대신학교다. 학교법인 대건학당이 운영하며 천주교 광주대교구를 중심으로 광주관구 등의 신학생들이 이곳에서 사제 양성을 받는다.
이름만 보면 광주에 있는 평범한 가톨릭계 종합대학처럼 보이지만 둘 다 아니다. 현재 학교는 광주가 아니라 나주에 있고, 학부는 신학과 하나뿐이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러 전공을 운영하는 대구가톨릭대학교나 부산가톨릭대학교 같은 형태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신부가 되려는 사람들을 교육하는 신학교라고 보면 된다.
2027학년도 입학정원도 신학과 정원내 40명, 정원외 5명뿐이며, 지원자는 원칙적으로 가톨릭 사제직을 지망하면서 교구장 또는 수도원장의 추천을 받아야 한다.[1]
개요
| 항목 | 내용 |
|---|---|
| 교명 | 광주가톨릭대학교 |
| 영문명 | Gwangju Catholic University |
| 전신 | 대건신학교 |
| 설립 | 1962년 3월 7일 |
| 개교 | 1962년 4월 1일 |
| 유형 | 사립대학교·대신학교 |
| 종교 | 가톨릭 |
| 학교법인 | 학교법인 대건학당 |
| 이사장 | 옥현진 시몬 대주교 |
| 총장 | 김상용 요셉 신부 |
| 학부 | 신학과 |
| 주소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남평읍 중남길 12-25 |
| 홈페이지 | 공식 홈페이지 |
현재 학교는 한국 천주교에서 광주관구 대신학교로 불린다.[2]
역사
설립
광주가톨릭대학교의 전신은 대건신학교다.
1950~1960년대 한국 천주교의 신자와 교구는 빠르게 증가했지만 당시 국내에서 사제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수 있는 고등교육기관은 서울의 가톨릭대학, 당시 성신대학 등에 집중돼 있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의 현 하롤드 대주교는 남부지역 교구들의 사제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별도의 신학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1962년 3월 7일 대건신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1일 정식 개교했다.[3]
초기에는 예수회가 학교 운영을 맡았다. 첫해 학생은 철학과 21명, 라틴어반 22명이었으며 광주·전주뿐 아니라 대구·부산·청주교구 및 예수회·살레시오회·프란치스코회 등 수도회 신학생들도 입학했다.[4]
1964년 학교법인 대건학당이 설립됐으며 1965년 1월 학교 이름을 대건신학대학으로 변경했다. 1969년 처음으로 사제 6명을 배출했고 같은 해 학교 운영권도 예수회에서 교구 주교단으로 넘어갔다.[5]
관할지역 변화
처음에는 지금보다 훨씬 많은 지역의 신학생들이 이곳에서 공부했다.
광주관구뿐 아니라 대구관구 소속 교구와 여러 수도회 신학생도 광주에서 교육받았으나 1982년 대구에 선목신학대학이 설립되고, 1991년 부산가톨릭대학이 설립되면서 담당 지역이 점차 줄었다.[6]
현재는 일반적으로 광주관구를 중심으로 한 대신학교 역할을 한다.
교명 변경
학교 이름이 은근히 많이 바뀌었다.
| 시기 | 교명 |
|---|---|
| 1962년 | 대건신학교 |
| 1965년 | 대건신학대학 |
| 1985년 | 광주가톨릭대학 |
| 1994년 | 광주가톨릭대학교 |
1985년 3월 1일 현재 이름의 전신인 광주가톨릭대학으로 변경했고 1994년 교육부의 대학 명칭 변경 방침에 따라 지금의 광주가톨릭대학교가 됐다.[7]
광주에서 나주로
이름은 아직도 광주가톨릭대학교인데 현재 캠퍼스는 광주에 없다.
원래 캠퍼스는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에 있었다. 1995년 나주시 남평읍에 새로운 캠퍼스 건설을 시작했고 1998년 1월 학교 전체가 남평캠퍼스로 이전했다.[8]
그래서 현재 주소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남평읍 중남길 12-25
다.
옛 쌍촌동 캠퍼스는 이후 광주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과 광주대교구 관련 시설로 활용됐다. 현재 광주대교구청 역시 이 일대에 있으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했던 옛 신학교 자리도 이곳이다.[9]
즉 학교 이름의 광주는 지금 캠퍼스 소재지보다는 학교가 광주대교구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광주에 있었던 역사를 나타내는 이름이 됐다.
사제 양성
광주가톨릭대학교는 일반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학교와 구조가 상당히 다르다.
목적 자체가 가톨릭 사제 양성이다.
학문으로서 신학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제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지적 양성, 영성 양성, 인성 양성, 공동체 생활, 사목실습 등을 한꺼번에 진행한다.
2001년 한국 천주교회의 사제 양성 지침에 따라 교육과정을 다시 7년제로 개편했다.[10]
일반 대학처럼 4년만 다니고 졸업했다고 바로 신부가 되는 게 아니다. 학사과정과 이후 신학·사목 양성기간을 거쳐야 하며 그 과정 중에도 계속 사제성소에 대한 심사를 받는다.
2026년 직수여식에서는 다음과 같은 단계가 확인된다.[11]
| 학년 | 과정 |
|---|---|
| 4학년 | 착의식 |
| 5학년 | 독서직 |
| 6학년 | 시종직 |
착의식에서는 성직자의 삶을 준비한다는 의미로 수단을 입고, 독서직은 전례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 시종직은 미사 전례를 돕는 직무다.
이후 부제품과 사제품을 거쳐야 비로소 신부가 된다.
신학교에 들어왔다고 해서 자동으로 신부가 되는 것도 아니다. 본인이 성소를 포기하거나 교구와 신학교가 사제직이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중간에 나갈 수도 있다.
입학
이 학교가 일반 가톨릭계 대학과 가장 다른 부분이다.
2027학년도 모집단위는 그냥
신학과
하나다.
정원내 40명, 정원외 5명을 모집한다.[12]
전형은 학생부A·B, 대학수료자, 교구장 또는 수도회장 추천, 장애인전형 등으로 나뉜다.
하지만 일반 수험생이 성적만 들고 지원하는 대학은 아니다.
대부분의 전형에서 다음 조건이 붙는다.
- 가톨릭 사제직을 지망할 것
- 소속 본당 주임신부를 거쳐 교구장의 추천을 받을 것
- 수도자의 경우 수도원장의 추천을 받을 것
- 응시연도 1월 1일 기준 세례받은 지 3년 이상일 것
수도회장 특별추천전형의 경우 사제가 되려는 남성 교구신학생뿐 아니라 신학을 전공하려는 수사·수녀도 지원할 수 있다.
입시에는 학생부와 면접뿐 아니라 교리문답 지필시험도 들어간다.
2027학년도에는 교리문답이 별도 전형자료로 20% 반영된다.[14]
학교 홈페이지에는 아예
2027학년도 정시입시 - 실시하지 않음
이라고 적혀 있다.
일반 대학처럼 "수능 망했으니 정시로 여기 써볼까" 할 수 있는 구조가 애초에 아니다.
신학과
학부에는 사실상 신학과 하나만 존재한다.
초기 대건신학교 시절에는 철학과와 신학과가 분리되어 있었지만 이후 신학과 중심으로 정비됐다.
신학과에서는 철학, 성경, 교의신학, 윤리신학, 전례학, 교회사, 교회법, 사목신학 등을 공부한다.
사제가 성경이나 교리만 알면 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철학·역사·윤리·사회·인간학 등 기초적인 인문학 교육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대학원도 설치돼 있으며 신학 석사과정을 운영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기준 대학원 입학정원은 20명이다.[15]
신학교 생활
학생 대부분이 일반 대학생처럼 통학하면서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생활을 한다.
교구별 생활관과 영성관을 두고 기도, 미사, 공동체생활, 학업과 사목훈련을 함께 한다.
2007년 이후 학교는 지적 양성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적 양성 + 소공동체 생활 + 사도직 실습
을 사제 양성의 세 축으로 삼고 교육과정을 개편했다.[16]
당연히 일반 대학보다 생활 규율도 훨씬 강한 편이다. 애초에 대학생을 만드는 곳이라기보다는 향후 교구에서 사제로 살아갈 사람을 몇 년에 걸쳐 함께 생활시키며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민주화 운동과 신학교
광주에 있었던 신학교답게 현대사의 정치적 격변과도 꽤 직접적으로 얽혔다.
1973년 박정희 정부의 유신체제 당시 신학생들이 유신정권에 항의하는 시국기도회를 열었고 이튿날 신학생 164명이 시내로 진출해 부정부패와 사회의 불의를 비판하는 행동에 참여했다.[17]
가톨릭신문이 학교 50년사를 정리하면서 공개한 사진에도 1973년 유신정권 타파 신학교 첫 시가 진출이라고 기록돼 있다.
1987년 6월 민주 항쟁 시기에도 교수신부와 신학생들이 함께 성명서를 발표하며 군부독재에 반대했다.[18]
가톨릭 사제 양성기관이지만 사회문제와 정치권력에 대해 입 닫고 기도만 하던 학교는 아니었던 셈이다.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1984년 5월 4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방문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당시 대건신학대학을 직접 방문했다.[19]
당시 학교는 지금의 나주가 아니라 광주 쌍촌동에 있었다.
교황이 방문했던 옛 신학교 터는 현재까지 광주대교구의 중요한 장소로 남아 있다. 2026년 세계청년대회 상징물인 십자가와 성모 성화가 광주대교구를 순례할 때도 바로 이 역사 때문에 옛 신학교 자리에서 환영예식이 열렸다.[20]
배출 인물
당연히 졸업생 대부분은 가톨릭 사제다.
2012년 개교 50주년 당시 학교 집계로 이미 903명의 사제를 배출했다.[21]
주교도 상당히 많이 배출했다. 2012년까지 학교 출신으로 집계된 주요 고위 성직자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인물들이 있다.
- 장인남 대주교
- 김희중 대주교
- 조환길 대주교
- 장봉훈 주교
- 안명옥 주교
- 권혁주 주교
- 이한택 주교
- 황철수 주교
- 손삼석 주교
- 옥현진 대주교
현재 전주교구장인 김선태 주교 등도 광주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총장
2026년 9월 1일 김상용 요셉 신부가 제10대 총장으로 취임했다.[23]
김상용 신부는 전주교구 소속으로 2000년 사제품을 받았고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와 요한 바오로 2세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다. 2012년부터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교학처장과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전임 제9대 총장은 광주대교구의 김정용 베드로 신부였다.
신학교답게 총장도 당연히 사제다.
캠퍼스
1998년 이전한 남평캠퍼스는 나주시 남평읍에 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대학교라기보다는 외부와 어느 정도 떨어진 녹지형 신학교 캠퍼스에 가깝다. 수년 동안 한 공동체에서 기도와 생활을 병행해야 하는 신학교의 특성상 일반 대학과 캠퍼스 구성이 다르다.
강의시설뿐 아니라 대성당, 영성관, 교구별 생활관, 도서관, 운동시설 등이 있다.
광주대교구는 교구 전체 행사를 이곳에서 열기도 한다. 매년 성소주일 행사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열리며 2026년 제63차 성소주일 역시 이곳에서 개최됐다.[24]
2026년 8월에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광주대교구 청년대회도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개최됐다.[25]
신학전망
대학 신학연구소에서 학술지 《신학전망》을 발간한다.
가톨릭 신학과 철학, 성경, 윤리, 교회사 등의 연구논문을 싣는 전문 학술지로 오랜 기간 발행돼 왔다.
학교가 신학생 몇십 명 가르리는 소규모 대학이라고 해서 학술기능까지 없는 것은 아니며, 신학연구소를 통해 학술대회와 연구활동도 계속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신학·사회학적으로 다룬 학술대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26]
여담
- 광주가톨릭대학교인데 광주에 없다. 1998년 나주시 남평읍으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다만 1962년부터 36년 동안 실제로 광주에 있었기 때문에 교명을 유지하는 게 딱히 이상한 것은 아니다.
- 2026년 광주광역시와 전라남도가 합쳐져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출범하면서 행정구역 명칭에 다시 광주가 들어가게 됐다. 결과적으로 광주가톨릭대학교가 있는 나주도 이제 광주가 들어간 광역자치단체 소속이다.
- 일반대학으로 법적 인가를 받은 학교이기 때문에 대입정보포털에도 일반대학으로 나온다. 하지만 학교생활의 실질은 신학교다.[27]
- 학과가 신학과 하나뿐이다.
- 2027학년도 정원내 입학정원은 40명이다. 이 정도면 일부 일반대학교의 한 학과보다 학교 전체 신입생이 적다.
- 수시만 모집하고 2027학년도 정시는 실시하지 않는다.
- 입시에서 교리문답 시험을 본다. 학교 특성 생각하면 오히려 이게 없는 게 더 이상하다.
- 지원자격 자체에 교구장이나 수도원장 추천이 들어간다. 수능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가톨릭 신자가 아니고 사제·수도성소가 없다면 갈 학교가 아니다.
- 일반 전형은 응시연도 1월 1일 기준 세례받은 지 3년 이상이어야 한다.
- 4학년이면 수단을 입는 착의식을 하고 5학년 독서직, 6학년 시종직 등 사제품을 향한 단계가 계속된다.
- 대학에 입학했다고 신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몇 년을 다니다 성소를 포기하는 경우도 있으며 서품 여부는 학위 취득과 별개의 문제다.
- 학교법인 이름인 대건학당은 한국 최초의 가톨릭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에서 따왔다.
- 옛 교명 역시 대건신학교와 대건신학대학이었다.
-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직접 학교를 방문했다.
- 1973년에는 유신정권에 반대해 신학생들이 집단으로 거리 시위에 나갔고 1987년에도 교수와 신학생들이 군부독재 반대 성명서를 냈다. 역사적으로 의외로 행동력이 센 신학교였다.
- 일반 대학처럼 MT 가서 놀고 공강시간에 학교 앞 술집 가는 형태를 상상하면 많이 다르다. 생활 자체가 사제 양성과정의 일부다.
- 2026년 3월 직수여식에서는 4~6학년 신학생 34명이 착의식·독서직·시종직을 받았다.[28]
- 광주관구 신학교이기 때문에 교수진도 광주대교구 사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주교구 등 다른 교구 사제들이 교수로 재직한다.
- 제10대 김상용 총장도 전주교구 소속이다.
- 2027학년도 모집요강에는 장애인전형도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사제 또는 수도자의 역할 수행에 교회법적 결격사유가 없어야 하고 교구장·수도원장 추천 등 신학교 지원요건을 충족해야 한다.[29]
같이 보기
외부 링크
각주
- ↑ 광주가톨릭대학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
-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주소록
- ↑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육기관」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주가톨릭대학교」
- ↑ 천주교 광주대교구, 「교육기관」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주가톨릭대학교」
- ↑ 가톨릭평화신문, 「성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성당에 간 WYD 십자가」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주가톨릭대학교」
- ↑ 천주교 광주대교구, 「광주가톨릭대학교 직수여식 미사」, 2026년 3월 1일
- ↑ 광주가톨릭대학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
- ↑ 광주가톨릭대학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
- ↑ 광주가톨릭대학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주가톨릭대학교」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광주가톨릭대학교」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가톨릭평화신문, 2026년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가톨릭신문, 「광주가톨릭대학 50년사」
- ↑ 가톨릭신문, 「김상용 신부, 제10대 광주가톨릭대학교 총장 취임」, 2026년 9월 3일
- ↑ 천주교 광주대교구, 「성소주일 미사」, 2026년 4월 26일
- ↑ 천주교 광주대교구, 「2026 광주대교구 청년대회 알림」
- ↑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연구소, 「5·18민중항쟁 38주년 기념 학술발표회」
- ↑ 대입정보포털, 「광주가톨릭대학교」
- ↑ 천주교 광주대교구, 2026년 3월 1일
- ↑ 광주가톨릭대학교, 「2027학년도 대학입학전형 기본계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