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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해먼스
David Hammons
국적미국
출생지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
학력슈이나드 미술학교
오티스 미술학교 수학
직업미술가, 조각가, 설치미술가, 행위예술가
활동기간1960년대 ~ 현재
추가 정보
성별남성
수상맥아더 펠로십(1991년)
주요 작품《Injustice Case》(1970)
《Bliz-aard Ball Sale》(1983)
《Higher Goals》(1986)
《How Ya Like Me Now?》(1988)
《African-American Flag》(1990)
《In the Hood》(1993)
《Day's End》(2021)
출생1943년

개요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 1943년 ~ )는 미국의 미술가, 조각가, 설치미술가이자 행위예술가다. 1960년대부터 활동하면서 미국의 인종문제와 흑인 문화, 예술의 상업화와 미술계의 권력관계 등을 다룬 작품들로 유명하다.

특히 자신의 몸을 종이에 찍어 만든 신체 판화(Body Prints), 뉴욕의 길거리에서 눈덩이를 판매한 《Bliz-aard Ball Sale》, 높은 곳에 농구 골대를 설치한 《Higher Goals》, 미국 국기의 색상을 흑인 해방운동의 상징색으로 바꾼 《African-American Flag》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해먼스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에만 머무르지 않고 도시의 거리에서 발견한 물건과 일상적인 생활용품, 인간의 신체와 행동 등을 예술의 재료로 사용했다.

대표적으로 머리카락과 닭 뼈, 빈 술병, 병뚜껑, 농구공, 눈덩이 등을 활용했다.

남들은 대리석을 깎고 청동을 주조해서 조각을 만드는데, 이 양반은 미용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과 길거리에서 주운 쓰레기로 작품을 만든 것이다.

물론 해먼스가 이러한 재료를 선택한 것은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특히 흑인 공동체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된 물건들을 사용하면서 미국 사회의 인종적 편견과 문화적 정체성, 경제적인 불평등 등을 표현하려고 했다.

또한 미술관이나 상업적인 갤러리가 예술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방식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오늘날 해먼스는 미국 현대미술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생존 작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작품을 만들 때에는 기존 미술계의 관습에 도전하고 상업적인 예술시장을 풍자했지만, 정작 그의 작품은 국제적인 미술관에 소장되고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는 것이다.

미술시장을 조롱하려고 눈덩이를 팔던 사람이 나중에는 작품 하나가 800만 달러에 팔리는 작가가 되었다.

해먼스는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센가 넨구디, 마렌 해싱어 등과 함께 비공식 예술가 공동체인 스튜디오 Z의 형성에 관여했다.

이후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실험적인 조각과 설치미술, 거리 퍼포먼스 등을 발전시켰다.

1991년에는 예술적 성과를 인정받아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또한 2021년에는 휘트니 미술관과 협력하여 허드슨강에 대규모 공공미술 작품인 《Day's End》를 완성했다.

해먼스는 개념미술, 포스트미니멀리즘, 아상블라주, 행위예술 등 여러 미술 사조와 관련하여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는다.[1][2]

생애

어린 시절

1943년 미국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어머니와 형제자매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그는 10남매 가운데 막내였으며, 가족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을 그리는 데 재능을 보였지만 처음부터 전문적인 미술가가 되겠다는 뚜렷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법률과 사회적인 관습 속에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특히 해먼스가 성장했던 1940~1950년대에는 흑인과 백인의 교육과 주거, 취업 기회 등에 상당한 차별이 존재했다.

이러한 사회적인 환경은 이후 해먼스가 인종과 정체성, 권력과 사회적 불평등 등을 다루는 데 영향을 미쳤다.

다만 그의 작품 세계를 어린 시절의 가난이나 인종차별 경험만으로 모두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는 현대미술의 여러 실험적인 표현 방식과 철학적인 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가진 예술가였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이주

1963년경 해먼스는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다.

당시 로스앤젤레스는 미국의 영화산업뿐 아니라 현대미술에서도 중요한 지역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뉴욕과는 다른 방식의 실험적인 예술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해먼스는 여러 미술교육기관에서 공부했으며, 슈이나드 미술학교(Chouinard Art Institute)와 오티스 미술학교(Otis Art Institute) 등에서 교육받았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해먼스가 1968년 슈이나드 미술학교를 졸업했다고 설명한다.[1]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인물은 미국의 화가 찰스 화이트(Charles White)였다.

찰스 화이트는 흑인들의 삶과 노동, 인권문제 등을 사실적인 회화와 드로잉으로 표현한 예술가였다.

해먼스는 오티스 미술학교에서 화이트가 진행한 야간 수업에 참여했다.

특히 화이트는 미술을 단순한 개인적인 표현 활동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와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먼스는 화이트의 사실적인 화풍을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예술이 사회적인 현실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3]

신체 판화의 개발

1960년대 후반 해먼스는 자신의 몸을 직접 이용하는 독특한 판화 제작 방식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작품들은 신체 판화(Body Prints)라고 불린다.

해먼스는 자신의 피부와 머리카락, 의복 등에 기름이나 마가린을 바른 뒤 종이에 몸을 눌러 흔적을 남겼다.

이후 기름이 묻은 부분에 안료를 뿌려 신체의 형태가 드러나도록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에서는 신체의 형태와 머리카락, 피부의 질감 등이 독특한 이미지로 나타난다.

일반적인 초상화에서 작가가 모델을 관찰한 뒤 붓이나 연필로 그리는 방식과는 상당히 다르다.

그림을 그리는 대신 아예 자기 몸에 기름을 발라 종이에 찍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제작 방식은 단순한 기교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의 몸이 어떻게 인식되고 표현되는지, 신체적인 특징이 어떻게 사회적인 정체성과 연결되는지 등을 탐구했기 때문이다.

특히 인종차별과 흑인 민권운동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였던 시기에 흑인 예술가가 자신의 신체를 직접 작품의 재료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해먼스가 미국 현대미술계에서 주목받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4]

스튜디오 Z

1970년대 해먼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던 여러 흑인 예술가들과 교류했다.

특히 센가 넨구디, 마렌 해싱어 등과 함께 비공식적인 예술 공동체인 스튜디오 Z의 형성에 관여했다.

스튜디오 Z는 로스앤젤레스의 슬로슨 애비뉴에 위치한 해먼스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작업실은 원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으며, 넓은 공간과 나무 바닥 등이 있어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작업하거나 공연을 진행하기에 적합했다.

참여자들은 엄격한 회원 명단이나 조직 구조를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 친분이 있는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작품을 실험하고 즉흥적인 공연을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조각과 무용, 음악과 영상 등 서로 다른 예술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이 이루어졌다.

해먼스는 이 과정에서 넨구디와 해싱어 등 여러 예술가들과 협력했다.

시카고 현대미술관은 스튜디오 Z가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전위예술가들에게 중요한 교류와 상호 지원의 공간이었다고 설명한다.[5]

해먼스는 1974년 뉴욕으로 거점을 옮겼지만 로스앤젤레스의 예술가들과 관계를 유지했으며, 이후에도 공동 작업에 참여했다.

대표적으로 1978년 넨구디가 기획한 《Ceremony for Freeway Fets》에 참여했다.

이 공연은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 아래에서 진행되었으며, 여러 예술가들의 음악과 춤, 의식적인 움직임 등이 결합되었다.

해먼스가 제공한 작업실에서 시작된 비공식적인 모임이 훗날 로스앤젤레스 흑인 전위예술의 중요한 공동체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뉴욕으로 이주

1974년 해먼스는 뉴욕으로 이주했다.

이후 할렘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도시의 일상생활과 거리에서 발견한 물건들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용실에서 나온 머리카락과 빈 술병, 닭 뼈, 병뚜껑 등 다양한 물건을 수집했다.

이러한 물건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쓰레기나 사용가치가 낮은 물건들일 수 있다.

그러나 해먼스는 그 물건들이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생활, 사회적인 편견 등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뉴욕의 거리와 공공장소에서 직접 퍼포먼스를 진행하면서 전통적인 미술관 중심의 활동에서 벗어나려 했다.

특히 1980년대에는 《Bliz-aard Ball Sale》과 《Higher Goals》 등 여러 대표작을 발표했다.

해먼스는 이후에도 뉴욕을 주요 활동 거점으로 삼고 있다.[6]

주요 작품

신체 판화

신체 판화(Body Prints)는 해먼스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제작한 작품들이다.

해먼스는 자신의 몸이나 의복에 기름을 바르고 종이에 눌러 신체의 흔적을 남겼다.

이후 안료를 뿌려 이미지가 드러나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작한 작품은 일반적인 드로잉이나 사진과 비슷한 인상을 줄 수 있지만, 실제로는 신체가 직접 종이에 접촉하여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특히 피부의 질감과 머리카락, 손가락 등 여러 부분이 실제 신체의 흔적을 통해 나타났다.

작품에 등장하는 몸은 단순한 인체 묘사가 아니라 흑인이라는 정체성과 사회적인 현실을 표현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또한 작품에 미국 국기와 기타 상징적인 물건들을 결합하기도 했다.

이러한 작업은 당시의 흑인 민권운동과 인종문제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Injustice Case

《Injustice Case》(1970)는 해먼스의 대표적인 신체 판화 작품이다.

작품에는 의자에 앉아 몸이 구속된 듯한 인물이 등장하며, 화면 주변에는 미국 국기가 활용되었다.

특히 몸이 결박된 듯한 인물의 형상은 흑인에 대한 억압과 사회적인 불평등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작품의 배경에는 1969년 시카고 에이트 재판 당시 흑표당 활동가 바비 실(Bobby Seale)이 법정에서 결박되고 재갈이 물렸던 사건이 있었다.

바비 실은 법정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했지만, 판사의 명령에 따라 의자에 묶이고 말을 할 수 없도록 입이 막히는 처우를 받았다.

이러한 사건은 당시 미국의 인종차별과 사법제도에 관한 논란을 불러왔다.

해먼스는 이러한 사건에서 영향을 받아 억압과 구속의 이미지를 작품에 담았다.

특히 미국 국기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미국의 국가적 이상과 현실의 인종차별 사이의 모순을 드러냈다.

작품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소장품으로, 미술관은 이를 1971년에 구입했다.[7]

자유와 평등을 상징하는 미국 국기 안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사람을 그려 넣은 것이다.

Bliz-aard Ball Sale

《Bliz-aard Ball Sale》(1983)는 해먼스의 가장 유명한 퍼포먼스 작품 가운데 하나다.

1983년 겨울 뉴욕의 쿠퍼 스퀘어(Cooper Square)에서 진행했다.

해먼스는 거리의 노점상들 옆에 작은 천을 깔고 눈을 뭉쳐 만든 눈덩이들을 진열했다.

눈덩이는 크기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뉘어 있었으며, 해먼스는 이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판매했다.

겉으로 보면 특별할 것이 없는 장면이다.

그냥 겨울에 눈이 내린 거리에서 누군가 눈덩이를 만들어 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행위는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받게 되었다.

눈덩이를 팔다

해먼스는 다양한 크기의 눈덩이를 만들어 천 위에 가지런히 배열했다.

그리고 다른 노점상들과 마찬가지로 손님을 기다렸다.

일부 사람들은 눈덩이를 구매했으며,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왜 눈덩이를 돈을 주고 사야 하는지 의문을 가졌을 수도 있다.

특히 눈덩이는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지는 물건이다.

따라서 일반적인 예술작품처럼 오랫동안 소장하거나 보관하기 어렵다.

해먼스는 이러한 특징을 통해 예술작품의 가치와 소유, 미술시장의 구조 등에 질문을 던졌다.

미술관에서 파는 비싼 조각품도 결국 사람이 가치를 부여한 물건일 뿐인데, 그렇다면 눈덩이를 팔지 못할 이유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물론 작품을 단순히 모든 예술작품은 눈덩이와 똑같이 무가치하다는 주장으로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해먼스는 일상적인 물건과 예술작품 사이의 경계, 예술가와 구매자의 관계, 상품의 가격 등이 어떤 방식으로 형성되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미술시장의 풍자

《Bliz-aard Ball Sale》는 미술시장의 상품화와 예술작품의 가치에 대한 비판으로 자주 해석된다.

특히 예술작품의 가격이 반드시 사용된 재료의 가격이나 제작에 들어간 노동시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예술가의 명성과 작품의 희소성, 미술사적인 의미, 구매자의 수요 등이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해먼스는 이러한 문제를 눈덩이라는 일시적인 물건을 통해 표현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퍼포먼스가 시간이 흐르면서 해먼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눈덩이 자체는 이미 녹아 없어졌지만, 당시의 사진과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남아 미술사에서 연구되고 있다.

즉, 물질적인 작품은 사라졌는데 오히려 예술작품으로서의 명성은 계속 높아진 것이다.

이 퍼포먼스는 사진가 다우드 베이(Dawoud Bey)가 촬영했으며, 관련 사진들은 오늘날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8]

또한 미술사가 엘레나 필리포비치는 이 작품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David Hammons: Bliz-aard Ball Sale》을 출간했다.[9]

눈덩이 몇 개를 길거리에서 팔았는데 수십 년 뒤에는 그 사건을 연구한 미술사 책까지 출판된 것이다.

Pissed Off

《Pissed Off》(1981)는 해먼스가 뉴욕에서 진행한 도발적인 퍼포먼스 작품이다.

당시 뉴욕에는 조각가 리처드 세라가 제작한 거대한 강철 구조물 《T.W.U.》가 설치되어 있었다.

해먼스는 이 구조물 근처에서 소변을 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 장면은 사진가 다우드 베이에 의해 기록되었다.[10]

이 작품은 기존 미술계의 권위와 공공공간, 예술작품의 소유와 접근성 등에 관한 도발적인 행동으로 해석된다.

특히 대형 철강 구조물로 제작된 유명 조각가의 작품에 직접적인 신체 행위를 결합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해먼스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예술작품이 놓인 공간과 그 공간을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문제 삼았다.

또한 공공장소에 설치된 예술작품을 사람들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경험하는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남들은 유명 조각가가 만든 거대한 철판을 보면서 예술적 의미를 논하는데, 이 양반은 그 철판에 오줌을 누는 것으로 자신의 작품을 만든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가 모든 상황에서 정당화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위생과 법률, 다른 사람들의 권리 등은 예술적인 의도와 별개로 고려해야 할 문제다.

Higher Goals

《Higher Goals》(1986)는 해먼스가 제작한 대규모 공공미술 작품이다.

1986년 4월부터 1987년 3월까지 뉴욕 브루클린의 캐드먼 플라자 공원(Cadman Plaza Park)에 설치되었다.

작품은 다섯 개의 높은 전신주와 그 위에 설치된 농구 골대로 구성되었다.

전신주의 높이는 약 20~30피트로, 일반적인 농구 골대보다 훨씬 높았다.

특히 전신주와 농구 백보드의 표면에는 수많은 병뚜껑이 붙어 있었다.

해먼스는 수만 개의 병뚜껑을 이용하여 기하학적인 무늬와 장식적인 패턴을 만들었다.[11]

농구 골대의 의미

미국의 흑인 문화에서 농구는 중요한 스포츠 가운데 하나다.

특히 일부 젊은이들에게는 전문적인 농구선수가 되는 것이 경제적인 성공과 사회적인 지위 상승의 기회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NBA에서 활동하는 프로 선수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일부다.

따라서 모든 젊은이가 농구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해서 성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해먼스는 이러한 현실을 작품에 반영했다.

일반적인 농구 골대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골대를 설치함으로써 누구나 프로 농구선수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동시에 작품 제목인 'Higher Goals'는 농구에서 점수를 얻기 위한 골대뿐 아니라 인생에서 더 높은 목표를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해먼스는 농구선수 외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젊은 흑인들이 스포츠만을 유일한 성공의 경로로 생각하는 상황을 경계했다.

농구를 잘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인생의 목표가 반드시 NBA 선수가 되는 것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농구 자체를 비판하거나 흑인 운동선수들의 성과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교육과 직업, 사회적인 기회 등 다양한 성공의 가능성을 함께 생각하도록 만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How Ya Like Me Now?

《How Ya Like Me Now?》는 1988년에 제작된 대형 회화 작품이다.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이자 정치인 제시 잭슨(Jesse Jackson)을 백인처럼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잭슨의 피부를 밝게 표현하고 머리카락을 금발로, 눈을 파란색으로 묘사했다.

1988년 당시 제시 잭슨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참여했던 인물이다.

해먼스는 이 작품을 통해 흑인 정치인과 인종적인 이미지, 사회적인 기대와 편견 등의 문제를 제기했다.

작품의 의도

미국 사회에서 정치인을 평가하는 기준에는 정책과 능력, 경력뿐 아니라 인종적인 편견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해먼스는 이러한 문제를 극단적인 이미지의 변형을 통해 표현했다.

흑인 정치인인 제시 잭슨을 백인처럼 묘사하면서 관객들에게 인종이 달랐다면 그의 정치적인 평가도 달라졌을 것인지 질문을 던진 것이다.

특히 제목인 'How Ya Like Me Now?'는 관객들에게 도발적으로 말을 거는 표현이다.

똑같은 사람이 피부색과 머리카락, 눈 색깔만 달라졌는데 이제는 마음에 드느냐고 묻는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현이 모든 관객에게 동일하게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일부에서는 해먼스의 작품이 인종적인 편견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흑인 정치인을 백인처럼 묘사한 행위 자체를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작품 훼손 사건

이 작품은 1989년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The Blues Aesthetic: Black Culture and Modernism》 전시와 관련하여 공공장소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설치 과정에서 작품을 본 일부 흑인 남성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작품을 흑인 정치인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으며, 결국 망치를 이용하여 작품을 훼손했다.

이 사건은 당시 미국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이후 해먼스는 작품을 완전히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는 대신 훼손된 흔적을 작품에 반영했다.

특히 훼손에 사용된 망치와 미국 국기 등을 작품의 일부로 결합했다.

따라서 관객들의 격렬한 반응 자체가 작품의 역사와 의미에 포함되는 결과가 나타났다.[12]

한편 제시 잭슨은 작품을 직접 확인한 뒤 그림 자체보다 그 그림이 드러내는 사회적인 현실이 문제라는 취지의 의견을 밝혔다.[13]

이 사건은 예술가의 의도와 관객의 해석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한 정치적·사회적인 문제를 다루는 예술작품이 예상하지 못한 반응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African-American Flag

《African-American Flag》(1990)는 해먼스의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미국의 성조기를 바탕으로 제작했지만 기존의 빨간색과 흰색, 파란색 대신 빨간색과 검은색, 초록색을 사용했다.

이 색상들은 범아프리카주의와 흑인 해방운동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다.

특히 마커스 가비가 주도한 범아프리카 운동의 깃발에서 영향을 받았다.

해먼스는 이러한 색상을 미국 국기의 형태에 결합하여 새로운 상징을 만들었다.

미국의 국가적인 정체성과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동시에 표현한 것이다.

제작 배경

1990년 해먼스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오버홀란트 미술관에서 개최된 《Black USA》 전시를 위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당시 전시는 미국의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행사였다.

해먼스는 미국 국기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색상을 변경한 새로운 깃발을 만들었다.

이 깃발은 전시장 외부에 게양되었으며, 미국 영사관과 가까운 장소에 설치되었다.[14]

특히 미국 국기의 형식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상징을 만드는 대신 기존의 국가적인 상징을 변형하여 흑인들의 역사와 정체성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의미

이 작품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들이 차지하는 위치와 미국의 국가적 이상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미국의 국기는 자유와 독립, 국가적인 통합 등을 상징한다.

그러나 미국 역사에서는 노예제도와 인종차별 등 이러한 이상과 충돌하는 현실도 존재했다.

해먼스는 흑인 해방운동의 상징색을 미국 국기에 결합함으로써 미국의 역사와 흑인 공동체의 관계를 시각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작품을 단순히 미국 국기를 다른 색상으로 바꾸어 놓은 디자인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특히 오늘날에도 흑인의 정체성과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를 다루는 작품으로 널리 소개된다.

이 작품의 여러 판본은 뉴욕 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15]

In the Hood

《In the Hood》(1993)는 해먼스의 대표적인 조각 작품 가운데 하나다.

작품은 사용하던 후드티에서 잘라낸 후드 부분을 벽에 부착한 형태로 제작되었다.

전체적인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후드가 벽에서 돌출되어 마치 사람의 머리나 얼굴이 들어갈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난다.

특히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가면을 연상시키는 방식으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의미는 단순한 형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사회에서 후드가 가진 문화적인 상징과 흑인 청소년들에 대한 편견 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특히 후드티는 일상적으로 입는 옷이지만, 특정한 사회적 환경에서는 범죄나 위험과 연결된 부정적인 이미지로 해석되기도 한다.

해먼스는 이러한 물건을 작품으로 만들면서 일상적인 의복에 사회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16]

이 작품은 이후 미국의 흑인 청소년과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는 담론에서도 다시 주목받았다.

특히 2012년 트레이번 마틴 사망 사건 이후 후드티가 흑인 인권운동의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되면서 작품의 의미가 새롭게 해석되기도 했다.

다만 《In the Hood》는 1993년에 제작된 작품이므로 2012년의 사건을 직접적으로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Concerto in Black and Blue

《Concerto in Black and Blue》는 2002~2003년에 제작된 설치미술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조각이나 회화와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전시장 내부를 어둡게 만든 뒤 관객들에게 작은 손전등을 제공하고, 관객들이 직접 빛을 비추면서 공간을 경험하도록 했다.

특히 푸른빛을 내는 손전등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작품이 전시장에 놓인 특정한 물체가 아니라 어둠과 빛, 관객의 움직임을 통해 형성되는 경험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관객들은 어두운 공간을 이동하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움직임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서로 다른 위치에서 움직이는 빛들이 하나의 시각적인 경험을 만든다.

따라서 작품의 형태는 관객이 어떻게 움직이고 행동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는 해먼스가 전통적인 조각과 회화의 형식에서 벗어나 공간과 관객의 참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5년 2월부터 5월까지 로스앤젤레스의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에서는 이 작품을 약 20여 년 만에 다시 선보였다.[17]

미술관에 들어갔더니 작품은 안 보이고 사방이 깜깜한데 손전등 하나를 쥐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 자체가 작품의 핵심적인 요소였다.

Day's End

《Day's End》(2014~2021)는 해먼스가 제작한 대규모 공공미술 작품이다.

2021년 뉴욕 맨해튼의 허드슨강에 완성되었으며, 휘트니 미술관과 허드슨 리버 파크의 협력을 통해 설치되었다.

이 작품은 허드슨강가에 있던 옛 산업시설의 형태를 금속 구조물로 재현한 것이다.

특히 1975년 예술가 고든 마타클라크(Gordon Matta-Clark)가 제작했던 동명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고든 마타클라크의 원작

1975년 고든 마타클라크는 허드슨강의 52번 부두에 있던 낡은 창고 건물을 이용하여 《Day's End》라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는 창고의 벽과 지붕, 바닥 일부를 절단하여 내부로 빛이 들어오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작업은 기존 건축물을 부분적으로 제거하면서 새로운 공간과 빛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당시 작업은 정식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었으며, 건물 역시 이후 철거되었다.

따라서 원래의 작품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해먼스의 재해석

2014년 해먼스는 휘트니 미술관 측에 마타클라크의 작품을 기념하는 새로운 공공미술 작품을 제안했다.

그는 원래 창고 건물의 윤곽을 금속 구조물로 재현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건물의 벽과 지붕을 실제로 모두 복원하는 대신 골격만 남겨 놓은 듯한 형태였다.

따라서 관객들은 구조물을 통해 과거 이곳에 건물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건물 내부와 외부를 구분하는 벽이 존재하지 않는다.

주변의 빛과 물, 하늘과 도시의 풍경이 구조물을 통해 그대로 드러난다.

작품은 2021년 6월 공개되었으며, 허드슨강에 설치된 대규모 영구 공공미술 작품으로 남아 있다.[18]

이 작품은 해먼스가 단순히 일상적인 물건을 조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도시의 역사와 기억, 건축과 공간의 관계까지 다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주요 작품 목록

연도 작품 특징
1968~1979 Body Prints 자신의 신체와 기름, 안료를 이용한 판화 연작
1970 Injustice Case 인종차별과 미국의 사법제도에 대한 비판
1981 Pissed Off 리처드 세라의 조각과 관련된 거리 퍼포먼스
1983 Bliz-aard Ball Sale 뉴욕 길거리에서 눈덩이를 판매한 퍼포먼스
1986 Higher Goals 높은 전신주에 농구 골대를 설치한 공공미술
1988 How Ya Like Me Now? 제시 잭슨을 백인처럼 묘사한 회화
1990 African-American Flag 미국 국기와 범아프리카주의 상징색의 결합
1993 In the Hood 후드티의 후드 부분을 이용한 조각
1995~1996 Out of Bounds 농구공과 흙을 이용한 드로잉
2000 Untitled 농구 골대와 샹들리에를 결합한 조각
2002~2003 Concerto in Black and Blue 어둠과 푸른빛을 활용한 참여형 설치미술
2014~2021 Day's End 허드슨강의 옛 부두 창고 윤곽을 재현한 공공미술

해먼스는 특정한 장르나 제작 방식에 오랫동안 머무르기보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형식과 재료를 활용했다.

따라서 위의 목록은 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정리한 것이며, 전체 작품활동을 모두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연출과 표현의 특징

일상적인 물건의 재해석

해먼스의 작품에서 중요한 특징은 일상적인 물건을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특히 도시의 거리와 상점, 미용실 등에서 발견할 수 있는 물건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머리카락과 닭 뼈, 병뚜껑, 빈 술병, 농구공 등이 있다.

이러한 물건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특별한 예술적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해먼스는 그 물건들이 특정한 문화와 사회적인 경험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어 미용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은 일반적으로 쓰레기로 취급된다.

그러나 해먼스의 작품에서는 흑인의 신체와 문화, 정체성을 설명하는 중요한 재료가 될 수 있다.

또한 농구공은 단순한 스포츠용품이지만, 미국 사회에서 흑인 청소년들에게 기대되는 성공의 경로와 연결될 수 있다.

해먼스는 이러한 상징을 작품에 활용하면서 기존의 의미를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해먼스의 작품이 일상적인 물건과 상징을 이용하여 사회적인 정체성과 주변부의 경험을 다룬다고 설명한다.[1]

흑인 문화와 정체성

해먼스의 작품은 미국의 흑인 문화와 사회적인 경험을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특히 인종차별과 사회적인 편견, 경제적인 불평등 등을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어 《Injustice Case》에서는 미국 국기와 결박된 인물의 모습을 결합하여 사회적인 모순을 드러냈다.

《African-American Flag》에서는 미국의 국가적인 상징을 흑인 문화의 상징색으로 변형했다.

또한 《Higher Goals》에서는 농구라는 스포츠를 통해 사회적인 성공과 기회의 문제를 다뤘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을 단순히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정치적인 선전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해먼스의 작품에는 유머와 언어유희, 미술사적인 인용, 재료와 공간에 대한 실험 등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유머와 풍자

해먼스는 작품에 유머와 풍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특히 기존의 사물이나 상징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결합하여 관객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Bliz-aard Ball Sale》는 눈덩이를 상품으로 판매하는 황당한 상황을 통해 미술시장의 구조를 풍자했다.

또한 《Higher Goals》는 일반적인 농구 골대보다 훨씬 높은 골대를 설치하여 성공과 사회적인 기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작품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장난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실제로 복잡한 사회적인 문제와 철학적인 질문이 포함되어 있다.

다른 예술가들이 어려운 이론을 써서 미술시장을 비판할 때, 해먼스는 눈덩이를 만들어 팔면서 같은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물론 유머가 있다고 해서 작품의 의미를 반드시 하나의 해석으로 고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관객의 경험과 문화적인 배경에 따라 서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거리와 공공공간

해먼스는 기존의 미술관과 갤러리 밖에서 작품을 제작하거나 공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뉴욕의 거리와 공원, 공공시설 등이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Bliz-aard Ball Sale》는 도시의 길거리에서 이루어진 퍼포먼스였으며, 《Higher Goals》는 공원에 설치된 대규모 조각이었다.

또한 《Day's End》는 허드슨강의 역사적인 부두 공간을 활용한 공공미술 작품이다.

이러한 작업들은 예술이 반드시 미술관의 내부에서만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특히 거리에서 작품을 공개하면 미술관에 방문하지 않는 사람들도 우연히 작품과 마주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이 반드시 그 행위를 예술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체가 해먼스가 관심을 가졌던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예술가와 미술시장

해먼스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또 다른 특징은 상업적인 미술시장과의 복잡한 관계다.

그는 미술관과 갤러리의 권위, 작품의 가격과 예술가의 명성 등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특히 예술가가 유명해지기 위해 반드시 전시와 언론 홍보, 상업적인 갤러리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관념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로 해먼스는 인터뷰와 공식적인 전시 활동을 상대적으로 적게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는 방식과 시기를 스스로 결정하려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가 그가 작품을 전혀 판매하지 않거나 상업적인 미술시장과 완전히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은 주요 미술관과 개인 소장가들이 구입했으며, 국제적인 경매에서 높은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따라서 해먼스의 태도는 미술시장을 완전히 거부한다기보다 그 안에서 예술가가 얼마나 자율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미술시장과의 관계

상업적인 성공

해먼스는 미술시장의 상품화를 풍자하는 작품들을 제작했지만 오늘날에는 상당히 높은 시장가치를 가진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작품의 공급과 전시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는 점도 미술시장에서 그의 작품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대표적으로 2000년 제작한 《Untitled》가 있다.

이 작품은 농구 골대의 형태에 화려한 샹들리에를 결합한 조각이다.

2013년 11월 뉴욕의 필립스 경매에서 800만 5,000달러에 낙찰되었다.[19]

이는 당시 해먼스의 작품 가운데 가장 높은 공개 경매 가격을 기록한 사례였다.

작품의 가격에는 예술사적인 평가와 희소성, 수집가들의 수요 등 여러 요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해먼스의 작품이 수백만 달러에 거래된다는 사실은 그의 초기 거리 퍼포먼스와 비교할 때 상당히 흥미롭다.

처음에는 눈덩이를 팔면서 예술의 상품화를 비판하더니 수십 년 뒤에는 농구 골대에 샹들리에를 붙여 만든 작품이 800만 달러에 팔린 것이다.

물론 경매에서 높은 가격이 나왔다는 사실이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직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낙찰금액 전체가 반드시 작가 본인에게 지급되는 것도 아니다.

미술품 경매에서는 기존 소장자가 작품을 다시 판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한적인 전시와 인터뷰

해먼스는 다른 유명 현대미술가들과 비교하면 공식적인 인터뷰와 전시 활동을 상대적으로 적게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예술가의 작품보다 유명세나 사회적인 이미지가 강조되는 상황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한 상업적인 미술관의 운영 방식과 예술가의 자유 사이의 관계에 대해 자주 문제를 제기했다.

이러한 태도 때문에 해먼스는 미술계에서 비교적 신비로운 인물로 소개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가 현대미술계와 완전히 단절되어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주요 미술관에 작품을 소장시키고 전시를 진행하며 여러 갤러리와 협력하기도 한다.

따라서 언론에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과 실제로 작품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작품의 역설

해먼스의 미술시장에 대한 태도에는 흥미로운 역설이 존재한다.

그는 예술작품이 비싼 상품으로 거래되는 상황을 비판하고 일상적인 재료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이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오히려 비싼 상품이 되기도 했다.

특히 눈덩이를 판매한 퍼포먼스처럼 물질적인 작품 자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작업도 사진과 기록을 통해 중요한 예술적 자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따라서 해먼스의 작품은 미술시장의 구조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 구조 안에서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반드시 작가의 철학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술시장이 비판적인 작품마저 상품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할 수도 있다.

관련 미술 사조

개념미술

해먼스는 개념미술과 관련하여 중요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개념미술은 작품의 물질적인 형태뿐 아니라 그 작품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술이다.

특히 《Bliz-aard Ball Sale》는 작품의 의미가 눈덩이라는 물체 자체보다 그것을 판매하는 행위와 상황에 있다는 점에서 개념미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또한 《African-American Flag》에서는 기존의 상징을 변형하여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 냈다.

해먼스는 일상적인 물건을 활용하면서도 그 물건이 가진 사회적·문화적 의미를 변화시키려고 했다.

포스트미니멀리즘

해먼스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도 관련이 있다.

특히 기존의 정밀하고 규칙적인 기하학적 형태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재료와 우연적인 변화, 제작 과정 등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스튜디오 Z의 활동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행위예술, 설치미술 등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시대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해먼스의 작품을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사조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는 다양한 미술 장르를 넘나들었으며, 인종과 문화적 정체성에 관한 문제를 중요한 주제로 다뤘기 때문이다.

아르테 포베라

아르테 포베라는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현대미술운동이다.

이탈리아어로 '가난한 예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돌과 천, 나무, 철 등 일상적인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이 유명하다.

해먼스는 이러한 아르테 포베라와 미술적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값비싼 미술재료 대신 일상적인 물건과 사용된 물건을 작품에 활용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그러나 해먼스가 아르테 포베라의 정식 구성원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미국의 흑인 예술운동과 개념미술, 아상블라주 등 다양한 흐름 속에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켰다.

2026년에는 뉴욕의 화이트 큐브 갤러리에서 아르테 포베라를 대표하는 예술가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기도 했다.[20]

흑인 예술운동

해먼스는 1960~1970년대 미국에서 발전한 흑인 예술운동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특히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에서는 흑인의 신체와 문화, 역사와 사회적인 경험 등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해먼스의 모든 작품이 직접적인 정치적인 구호를 전달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적인 사물과 유머, 상징적인 표현 등을 통해 여러 방식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탐구했다.

또한 기존의 미술사가 흑인 예술가들의 활동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았다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이러한 점에서 해먼스는 미국 흑인 현대미술의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주요 전시 및 활동

연도 전시 및 활동 특징
1970년대 스튜디오 Z 활동 로스앤젤레스 흑인 전위예술가들과 협업
1978 Ceremony for Freeway Fets 센가 넨구디가 기획한 공동 퍼포먼스에 참여
1983 Bliz-aard Ball Sale 뉴욕 거리에서 눈덩이 판매
1986~1987 Higher Goals 브루클린 캐드먼 플라자 공원에 공공미술 설치
1990~1991 David Hammons: Rousing the Rubble 주요 작품을 소개한 전시
1991 맥아더 펠로십 수상 예술적 성과 인정
2011~2012 Now Dig This! 로스앤젤레스 흑인 현대미술을 소개한 전시에 참여
2016 David Hammons: Five Decades 뉴욕의 므누신 갤러리에서 개최
2019 David Hammons 로스앤젤레스 하우저 앤 워스 전시
2021 Day's End 허드슨강 영구 공공미술 작품 완성
2025 Concerto in Black and Blue 로스앤젤레스에서 재전시
2026 David Hammons and Jannis Kounellis 뉴욕 화이트 큐브 공동 전시

2026년 5월 1일부터 6월 13일까지 뉴욕 화이트 큐브에서는 해먼스와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들을 함께 소개하는 전시가 개최되었다.

특히 두 예술가는 1990년대 초반에도 로마에서 함께 전시한 인연이 있었다.

2026년의 전시는 이러한 역사적인 관계를 다시 조명한 행사였다.[20]

수상 경력

맥아더 펠로십

1991년 해먼스는 맥아더 재단이 수여하는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을 수상했다.

맥아더 펠로십은 미국의 여러 분야에서 창의적인 성과를 보여준 사람들에게 수여되는 지원 프로그램이다.

흔히 천재상(Genius Grant)이라는 별칭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수상자가 반드시 천재라는 공식적인 자격을 얻는 것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특정한 연구나 작품 제작을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보다 수상자가 자신의 창의적인 활동을 자유롭게 이어 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해먼스는 일상적인 물건과 예술적 상징을 결합하면서 기존 미술의 관습에 도전한 성과를 인정받았다.

평가

미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작가

해먼스는 미국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예술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신체 판화와 거리 퍼포먼스, 일상적인 물건을 이용한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독창적인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인종과 정체성, 사회적인 불평등 등의 문제를 직접적인 설명보다 상징과 유머를 통해 표현했다.

특히 《Bliz-aard Ball Sale》와 《Higher Goals》, 《African-American Flag》 등은 미국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소개된다.

뉴욕 현대미술관과 휘트니 미술관,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 등 여러 주요 미술관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예술의 가치에 대한 질문

해먼스의 작품에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는 예술작품의 가치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하는 것이다.

특히 눈덩이나 머리카락, 병뚜껑처럼 일반적으로 값비싼 재료가 아닌 물건들을 작품에 사용했다.

이러한 물건들이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높은 가격에 거래되는 과정은 미술시장의 구조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예를 들어 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유명한 작품과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평범한 물건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다.

해먼스는 이러한 질문에 하나의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보다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직접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작품이 미술관 안에 있지 않더라도 예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예술과 사회적인 현실

해먼스의 작품은 미국 사회에서 흑인으로 살아가는 경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인종적인 편견과 문화적인 정체성, 경제적인 불평등 등을 중요한 문제로 다뤘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룬다고 반드시 사실적인 그림이나 직접적인 정치적인 구호를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해먼스는 일상적인 물건과 퍼포먼스, 풍자와 상징을 통해 이러한 주제를 표현했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여러 현대미술가들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판적 관점

해먼스의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모든 관객들이 반드시 그 작품에 동의하거나 감동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현대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들은 눈덩이를 판매하거나 일상적인 물건을 벽에 부착하는 행위가 왜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작품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의 의도와 시대적 배경, 사회적인 상징 등을 알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작품이 지나치게 개념적인 설명에 의존한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반면 이러한 작품들이 기존 미술의 규칙에 의문을 제기하고 관객들에게 새로운 해석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평가도 있다.

눈덩이를 길거리에서 팔면 장난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미술관의 작품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복잡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담

  • 1943년 일리노이주 스프링필드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10남매 가운데 막내로 성장했다.
  • 1963년경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하여 미술을 공부했다. 이후 슈이나드 미술학교와 오티스 미술학교 등에서 교육받았다.
  • 미국의 화가 찰스 화이트에게 영향을 받았다. 화이트는 흑인들의 삶과 인권문제를 사실적인 회화로 표현한 예술가였다.
  • 해먼스는 화이트의 화풍을 그대로 계승하지는 않았지만 예술과 사회적인 현실을 연결하는 태도에서 영향을 받았다.
  • 초기에는 자신의 몸을 종이에 직접 찍는 신체 판화를 제작했다. 마가린이나 기름을 피부에 바른 뒤 종이에 눌러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 《Injustice Case》는 1970년에 제작한 작품이다. 특히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과 사법제도, 인종차별 등의 문제를 다뤘다.
  • 1970년대에는 센가 넨구디와 마렌 해싱어 등과 함께 스튜디오 Z에서 활동했다.
  • 스튜디오 Z의 중심이 된 작업실은 원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 즉흥적인 공연과 작품 실험을 진행하기에 적합했다.
  • 스튜디오 Z는 정식 회원 명단이나 엄격한 조직 구조를 가진 단체가 아니었다. 따라서 해먼스를 정식 회장이나 대표자로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 1974년 뉴욕으로 이주한 뒤에는 할렘의 도시문화와 일상적인 물건들을 작품의 재료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 특히 미용실에서 수집한 머리카락과 빈 술병, 닭 뼈와 병뚜껑 등을 사용했다.
  • 이러한 물건들은 일반적으로 버려지는 것들이지만, 해먼스는 흑인 문화와 사회적인 편견을 설명하는 중요한 상징으로 활용했다.
  • 1981년에는 리처드 세라의 대형 조각과 관련된 《Pissed Off》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작품은 사진가 다우드 베이가 기록했다.
  • 1983년에는 뉴욕의 길거리에서 눈덩이를 만들어 판매하는 《Bliz-aard Ball Sale》를 진행했다. 이 퍼포먼스는 오늘날 해먼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다.
  • 눈덩이는 시간이 지나면 녹아 없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예술작품처럼 보관하기 어렵다. 해먼스는 이러한 특징을 미술시장의 가치와 소유에 관한 질문으로 활용했다.
  • 《Bliz-aard Ball Sale》는 당시 사진으로 기록되었다. 실제 눈덩이는 사라졌지만 사진과 관련 기록들은 오늘날까지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 1986년에는 뉴욕 브루클린에 《Higher Goals》를 설치했다. 일반적인 농구 골대보다 훨씬 높은 곳에 골대를 설치한 작품이다.
  • 《Higher Goals》는 흑인 청소년들이 농구선수가 되는 것만을 성공의 경로로 생각하는 사회적인 기대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된다.
  • 1988년에는 제시 잭슨을 백인처럼 묘사한 《How Ya Like Me Now?》를 제작했다. 이 작품은 1989년 워싱턴에서 공개 설치 도중 일부 관객들에 의해 훼손되었다.
  • 해먼스는 작품의 훼손 흔적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고 새로운 전시 방식에 반영했다. 따라서 관객들의 반응 자체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결과가 나타났다.
  • 1990년에는 미국 국기의 색상을 빨간색과 검은색, 초록색으로 바꾼 《African-American Flag》를 제작했다. 범아프리카주의의 상징색을 사용했다.
  • 《African-American Flag》는 단순한 국기 디자인 변경이 아니라 미국의 국가적인 정체성과 흑인 공동체의 역사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1991년에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흔히 천재상이라는 별칭으로 알려진 프로그램이다.
  • 1993년에는 후드티에서 후드 부분을 잘라내어 벽에 부착한 《In the Hood》를 제작했다.
  • 이 작품은 이후 미국에서 흑인 청소년과 인종적 편견, 후드티의 상징성에 관한 논쟁이 발생하면서 다시 주목받기도 했다.
  • 2000년에는 농구 골대와 화려한 샹들리에를 결합한 《Untitled》를 제작했다.
  • 해당 작품은 2013년 필립스 경매에서 800만 5,000달러에 낙찰되었다.
  • 미술시장의 상품화에 비판적인 태도를 보인 작가의 작품이 수백만 달러에 거래되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다.
  • 해먼스는 인터뷰와 대형 전시를 자주 진행하지 않는 예술가로 유명하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갤러리와 완전히 관계를 끊은 것은 아니다.
  • 그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하고 전시할 수 있는 자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 2021년에는 뉴욕 허드슨강에 《Day's End》라는 대규모 영구 공공미술 작품을 완성했다.
  • 이 작품은 1975년 고든 마타클라크가 제작했던 동명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원래 존재했던 부두 창고의 외곽 형태를 금속 구조물로 표현했다.
  • 2025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서 《Concerto in Black and Blue》를 약 20여 년 만에 재전시했다.
  • 해당 작품은 어두운 공간과 푸른빛, 관객들의 움직임을 활용하는 설치미술이다.
  • 2026년에는 뉴욕에서 야니스 쿠넬리스의 작품과 함께 전시되었다. 두 사람은 1990년대에도 함께 전시한 인연이 있었다.
  • 해먼스는 개념미술, 포스트미니멀리즘, 아르테 포베라, 행위예술 등 여러 현대미술 사조와 관련하여 논의된다.
  • 그러나 특정한 하나의 미술 사조에만 속한 작가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재료와 제작 방식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 특히 작품의 형식만큼 사회적인 상징과 문화적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 일반적으로 유명한 예술가라면 더 많은 전시와 홍보를 통해 자신의 명성을 높이려고 할 수 있지만, 해먼스는 오히려 그러한 관습에서 거리를 두려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
  • 그렇다고 상업적인 성공을 경험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작품의 가격과 미술계에서의 영향력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 예술가가 유명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미술계에서 잊혀질 것 같지만, 이 양반은 오히려 전시와 인터뷰를 적게 하면서도 유명해졌다.
  • 해먼스의 작품들은 미국의 인종문제를 다루지만 반드시 무겁고 진지한 분위기로만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유머와 풍자, 장난스러운 표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 다만 작품에 유머가 있다고 해서 작품이 다루는 사회적인 문제가 가볍다는 의미는 아니다.
  • 특히 일상적인 물건을 활용하면서도 그 물건들이 가진 역사와 문화적인 의미를 드러내는 데 관심을 가졌다.
  • 해먼스는 자신이 사용한 물건의 원래 기능과 새로운 예술적 의미 사이의 차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 예를 들어 농구공은 스포츠용품이고, 눈덩이는 눈을 뭉친 물체이며, 머리카락은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서는 모두 서로 다른 문화적·사회적 의미를 가진 상징이 된다.
  • 눈덩이를 팔아도 예술이 되고, 농구 골대를 높이 세워도 예술이 되고, 후드티를 잘라서 벽에 걸어 놓아도 예술이 되는 사람이다.
  • 물론 아무나 똑같은 행동을 한다고 반드시 같은 예술적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등장한 시대와 사회적인 배경, 작가의 의도와 예술사적인 맥락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 해먼스의 작품은 예술작품이 반드시 비싼 재료나 정교한 기술로 만들어져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 특히 물건 자체의 가격보다 그 물건이 어떤 의미를 가지며 관객들에게 무엇을 생각하게 만드는지가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 결국 데이비드 해먼스는 세상 사람들이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물건들을 이용해 세상 사람들이 쉽게 무시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