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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스튜디오 Z(Studio Z)는 197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한 흑인 전위예술가들의 비공식적인 예술 공동체다. 데이비드 해먼스, 센가 넨구디, 마렌 해싱어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조각, 설치미술, 행위예술, 무용, 음악, 영상미술 등 다양한 예술 분야를 결합한 실험적인 작업을 진행했다.

일반적인 미술단체처럼 정해진 회원 명단이나 엄격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서로 비슷한 예술적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함께 작품을 만들거나 즉흥적인 공연을 진행하는 모임에 가까웠다.

모임의 중심지는 로스앤젤레스의 슬로슨 애비뉴(Slauson Avenue)에 있던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업실이었다.

해당 건물은 원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던 공간이었으며, 넓은 나무 바닥과 무대가 있어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작품을 실험하기에 적합했다.

그냥 미술가들이 작업실에 모여 이것저것 만들고, 춤추고, 악기를 연주하고, 즉흥적으로 공연을 벌이던 모임이었는데 나중에 미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예술가 집단으로 평가받게 된 것이다.

물론 당시 이들의 활동이 단순한 취미 모임이었던 것은 아니다.

1960~1970년대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으며, 기존의 주류 미술계에서 충분한 전시 기회를 얻기 어려웠던 흑인 예술가들이 자신들만의 활동 공간과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스튜디오 Z 역시 이러한 사회적·문화적 환경 속에서 발전했다.

특히 참여 예술가들은 주류 미술계의 인정을 받기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의 활동을 지원하고, 기존의 미술 형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작업을 실험했다.

또한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는 것뿐 아니라 작품의 제작 과정과 인간의 움직임, 공동체의 참여 등을 중요한 예술적 요소로 생각했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스튜디오 Z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행위예술, 미국의 흑인 전위예술운동 등과 관련하여 중요한 모임으로 평가받는다.[1]

대표적인 활동으로는 1977년 롱비치 미술관에서 개최한 《Studio Z: Individual Collective》 전시와 1978년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 아래에서 진행한 《Ceremony for Freeway Fets》 퍼포먼스가 있다.

명칭

스튜디오 Z라는 명칭은 데이비드 해먼스가 사용하던 작업공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 해먼스는 로스앤젤레스의 슬로슨 애비뉴에 위치한 옛 무도회장을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곳에 여러 예술가들이 모여 작업을 진행하면서 스튜디오 Z라는 이름이 자연스럽게 예술가 모임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다.[2]

다만 이름에 있는 알파벳 Z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널리 알려진 자료에서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Z가 특정한 철학적 개념이나 정치적 구호를 의미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또한 스튜디오 Z는 처음부터 법인이나 정식 단체로 설립된 조직이 아니었다.

참여 예술가들의 관계와 활동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형성된 공동체였기 때문에 정확한 설립일이나 해산일을 지정하기 어렵다.

일부 미술관 자료에서는 1970년대 초반에 형성된 것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1975년 무렵에는 이미 공동 작업을 진행하는 모임으로 활동하고 있었다.[3]

역사

196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미술계

스튜디오 Z가 등장한 배경에는 1960~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당시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 운동,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 등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특히 1965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와츠 지역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발생했다.

이 사건은 경찰의 과잉 대응과 인종차별, 빈곤과 사회적 불평등 등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은 당시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하던 흑인 예술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흑인 예술가들은 기존의 미술관과 상업적인 갤러리에서 충분한 전시 기회를 확보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공간을 직접 구축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브록먼 갤러리(Brockman Gallery)와 갤러리 32(Gallery 32) 등이 있었다.

브록먼 갤러리는 1967년 알론조 데이비스와 데일 브록먼 데이비스 형제가 설립한 공간으로,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갤러리 32는 수잔 잭슨이 1968년부터 1970년까지 운영한 전시공간으로, 신진 흑인 예술가들의 전시와 토론, 공연 등이 이루어졌다.

특히 갤러리 32는 상업적인 작품 판매만을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는 공동체적인 공간의 역할을 했다.

시카고 현대미술관은 이러한 예술적 환경이 스튜디오 Z의 형성과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한다.[4]

데이비드 해먼스와 센가 넨구디

스튜디오 Z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사람은 데이비드 해먼스와 센가 넨구디다.

두 사람은 1960년대 후반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예술가 공동체를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다.

당시 해먼스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판화와 실험적인 조각 등을 제작하고 있었다.

넨구디 역시 미술과 무용을 공부하면서 유연한 재료와 인간의 움직임을 활용한 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1972년 넨구디가 뉴욕에서 생활하던 시기에 더욱 가까워졌다.

당시 해먼스와 다른 예술가들이 뉴욕을 방문했으며, 넨구디의 집에서 함께 머물면서 교류했다.

이후 넨구디가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왔을 때 해먼스는 자신이 사용하던 작업실을 공유하도록 제안했다.

해먼스의 작업실은 슬로슨 애비뉴에 위치한 옛 무도회장이었다.

이곳은 넓은 공간과 나무 바닥, 무대 등을 갖추고 있어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작품을 제작하거나 공연을 연습하기에 적합했다.

넨구디와 해먼스를 중심으로 다른 예술가들이 이곳에 모이면서 스튜디오 Z라는 비공식적인 공동체가 형성되었다.[4]

넨구디는 훗날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었으며, 반드시 회원으로 등록하거나 일정한 의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했다.[5]

미술단체를 만든다고 정관을 작성하고 회장과 부회장을 선출한 것이 아니라, 그냥 서로 친한 예술가들이 작업실에 모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단이 형성된 것이다.

활동의 확대

1970년대 중반 스튜디오 Z에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조각가와 화가뿐 아니라 무용가와 음악가, 영화제작자 등도 함께 활동했다.

참여자들은 해먼스의 작업실에서 만나 새로운 작품을 실험하거나 즉흥적인 공연을 진행했다.

일부 활동은 로스앤젤레스의 거리와 공공장소에서도 이루어졌다.

특히 기존의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 완성된 작품을 전시하는 방식에만 의존하지 않았다.

오히려 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공연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움직임, 관객과의 관계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한 일정한 작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보다 여러 예술가들이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스튜디오 Z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1977년 공동 전시

1977년에는 캘리포니아의 롱비치 미술관(Long Beach Museum of Art)에서 《Studio Z: Individual Collective》라는 전시가 개최되었다.

전시 제목은 직역하면 '스튜디오 Z: 개인들의 집합체' 정도의 의미다.

개별 예술가들이 독립적인 작품 세계를 유지하면서도 서로 협력하는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표현이었다.

이 전시는 데이비드 해먼스와 센가 넨구디, 마렌 해싱어 등 여러 스튜디오 Z 참여자들이 함께 활동했다는 중요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3]

특히 전시에 사용된 공동 선언문에서는 회화와 문학, 음악과 연극, 무용과 공예 등 여러 예술 분야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협업할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취지가 강조되었다.[6]

이러한 내용은 스튜디오 Z가 단순히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던 조각가들의 모임이 아니라 여러 예술 장르를 연결하려는 실험적인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978년 고속도로 아래 퍼포먼스

1978년에는 스튜디오 Z의 대표적인 공동 활동인 《Ceremony for Freeway Fets》가 진행되었다.

이 작품은 센가 넨구디가 기획했으며, 데이비드 해먼스와 마렌 해싱어를 비롯한 여러 스튜디오 Z 참여자들이 공연에 참여했다.

공연은 로스앤젤레스의 피코 대로(Pico Boulevard) 인근 고속도로 아래에서 진행되었다.

당시 넨구디는 공공미술 작품을 제작하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고속도로 아래 공간에 작품을 설치했다.

그는 작품 설치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예술가들과 함께 의식적인 성격의 퍼포먼스를 기획했다.

공연에는 춤과 음악, 의상과 가면 등이 사용되었으며, 일본의 공연문화와 서아프리카의 의례적 표현에서 영향을 받은 요소들도 나타났다.

이 작품은 스튜디오 Z의 협업 방식과 예술적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된다.[7]

이후 활동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에 걸쳐 스튜디오 Z에 참여했던 예술가들은 각자의 작품활동을 이어 갔다.

특히 센가 넨구디와 마렌 해싱어는 이후에도 다양한 조각과 퍼포먼스 작업에서 협업했다.

데이비드 해먼스 역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키면서 미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예술가로 평가받게 되었다.

다만 스튜디오 Z는 처음부터 엄격한 조직 구조를 가진 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에 공식적인 해산일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는 않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날짜를 기준으로 스튜디오 Z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1970년대에 형성된 예술가들의 관계와 협업 방식이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로 이어졌다고 볼 수 있다.

주요 참여자

스튜디오 Z에는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지만 정확한 회원 명단은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특히 처음부터 정식으로 등록된 회원들이 활동하던 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센가 넨구디의 회고와 여러 미술관의 연구에 따르면 데이비드 해먼스, 센가 넨구디, 마렌 해싱어 등이 중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그 밖에도 다양한 예술가들이 시기에 따라 함께 활동했다.

인물 주요 분야 및 활동
데이비드 해먼스 조각, 개념미술, 설치미술, 행위예술
센가 넨구디 조각, 설치미술, 무용, 행위예술
마렌 해싱어 조각, 설치미술, 무용, 행위예술
율리시스 젱킨스 영상미술, 영화, 퍼포먼스
휴스턴 콘윌 설치미술, 퍼포먼스, 무용
프랭클린 파커 음악 및 공연 협업
로호(RoHo) 시각예술 및 공연 협업
바버라 매컬러프 영화, 영상, 다큐멘터리
존 아우터브리지 조각, 아상블라주, 예술 공동체 활동

위의 인물들은 여러 자료에서 스튜디오 Z와 관련된 예술가들로 언급되지만, 모두가 동일한 시기에 활동하거나 동일한 수준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또한 일부 인물은 모임의 정식 회원이라기보다 특정한 프로젝트에서 협력한 사람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스튜디오 Z의 특성상 회원과 협업자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1][4]

데이비드 해먼스

데이비드 해먼스(David Hammons, 1943년 ~ )는 스튜디오 Z의 형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의 예술가다.

1960년대부터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했으며,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판화와 조각, 설치미술 등을 제작했다.

특히 일상적인 재료와 흑인 사회의 역사와 문화를 연결하는 작업들로 유명하다.

그는 슬로슨 애비뉴에 위치한 작업실을 여러 예술가들에게 개방했으며, 이곳이 스튜디오 Z의 중심지가 되었다.

해먼스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기보다 재료와 환경, 관객의 반응을 활용하는 실험적인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도시의 거리나 공공공간을 작품의 중요한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특징은 스튜디오 Z에서 진행된 즉흥적인 퍼포먼스와도 연결된다.

다만 해먼스는 특정한 예술단체의 정식 회원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넨구디 역시 인터뷰에서 해먼스가 모임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지만 공식적인 회원이라는 개념에는 잘 맞지 않는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8]

이러한 태도는 스튜디오 Z가 엄격한 조직 구조를 가진 단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센가 넨구디

센가 넨구디(Senga Nengudi, 1943년 ~ )는 스튜디오 Z를 대표하는 예술가 가운데 하나다.

특히 여성용 스타킹과 모래 등을 활용한 조각 작품인 《R.S.V.P.》 연작으로 유명하다.

넨구디는 조각과 무용을 결합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졌으며, 여러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과 상호작용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또한 스튜디오 Z의 활동에서 다른 예술가들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1978년 《Ceremony for Freeway Fets》의 기획과 제작을 주도했다.

이 작품에서 넨구디는 의상과 소품 등을 제작하고 여러 예술가들의 참여를 조직했다.

그는 훗날 스튜디오 Z가 주류 미술계의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던 예술가들에게 서로를 지원할 수 있는 중요한 공동체였다고 회고했다.[4]

마렌 해싱어

마렌 해싱어(Maren Hassinger, 1947년 ~ )는 미국의 조각가이자 행위예술가다.

특히 산업용 철사와 밧줄, 섬유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넨구디와 마찬가지로 조각과 인간의 움직임, 신체와 공간의 관계에 관심을 가졌다.

두 사람은 1970년대부터 오랫동안 협업했으며, 스튜디오 Z에서도 여러 공연과 작품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넨구디의 《R.S.V.P.》 작품과 결합된 퍼포먼스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1977년에는 《Ten Minutes》라는 퍼포먼스를 기획해 스튜디오 Z에서 공연했다.[6]

해싱어의 작업은 넨구디의 작품과 비슷한 점도 있지만, 자연환경과 인간의 관계, 산업적인 재료의 유기적인 형태 등을 탐구했다는 점에서 독자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율리시스 젱킨스

율리시스 젱킨스(Ulysses Jenkins, 1946년 ~ )는 미국의 영상미술가이자 영화제작자다.

1970년대부터 비디오와 퍼포먼스를 결합한 작품을 제작했으며, 미국의 흑인 영상미술 발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특히 당시 보급되기 시작한 휴대용 비디오 기술을 활용하여 기존의 상업적인 방송과 영화와는 다른 형태의 영상을 제작했다.

젱킨스는 스튜디오 Z와 관련된 예술가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며, 이후 오더비전스 스튜디오(Othervisions Studio)를 통해 독자적인 영상 제작 활동을 진행했다.

그는 영상과 음악, 퍼포먼스를 결합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에서 스튜디오 Z의 활동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휴스턴 콘윌

휴스턴 콘윌(Houston Conwill, 1947년 ~ 2016년)은 미국의 예술가로, 설치미술과 퍼포먼스, 공간과 공동체의 기억 등을 다루는 작품을 제작했다.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역사와 문화, 음악과 의례 등을 시각예술과 연결하는 작업에 관심을 가졌다.

스튜디오 Z의 활동에 참여했으며, 여러 예술가들과 공연과 설치미술 작업을 진행했다.

이후에는 공공미술과 기념공간 등을 제작하면서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켰다.

프랭클린 파커와 로호

프랭클린 파커(Franklin Parker)는 스튜디오 Z의 여러 공연과 협업에 참여한 예술가다.

자료에 따라 프랭크 파커(Frank Parker)라는 이름으로도 등장한다.

센가 넨구디의 구술 인터뷰에서는 프랭클린 파커가 마렌 해싱어와 함께 여러 협업 작업에 참여했던 인물로 언급된다.

로호(RoHo) 역시 스튜디오 Z와 관계를 맺었던 예술가 가운데 하나다.

특히 해먼스의 작업실이 있던 건물에서 함께 작업공간을 사용했으며, 다른 예술가들과 협업했다.

다만 두 인물에 관한 상세한 전기적 정보는 널리 알려진 주요 미술관 자료에서 제한적으로 확인된다.

따라서 확인되지 않은 출생연도나 활동 이력 등을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바버라 매컬러프

바버라 매컬러프(Barbara McCullough)는 미국의 영화감독이자 영상미술가다.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전위예술가 공동체와 관계를 맺고 활동했다.

특히 스튜디오 Z 참여자들과 협업하거나 그들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했다.

1979년에는 《Shopping Bag Spirits and Freeway Fetishes: Reflections on Ritual and Space》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이 작품에는 센가 넨구디의 《Ceremony for Freeway Fets》와 관련된 영상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매컬러프는 스튜디오 Z의 예술활동을 후대에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영화인 가운데 하나다.

주요 활동

작업실에서의 즉흥적인 실험

스튜디오 Z의 대표적인 활동은 여러 예술가들이 작업실에 모여 즉흥적으로 작품을 실험하는 것이었다.

당시 해먼스의 작업실은 원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기 때문에 넓은 바닥과 무대 등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공간은 조각 작품을 제작하는 것뿐 아니라 무용과 음악, 퍼포먼스 등을 진행하기에도 적합했다.

참여자들은 어떤 재료를 사용하거나 새로운 동작을 실험하면서 서로의 반응을 관찰했다.

특히 특정한 예술 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조각가가 무용수와 협업하고, 영화제작자가 퍼포먼스를 촬영하며, 음악가가 즉흥적인 연주를 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활동에서는 반드시 한 사람이 모든 과정을 지휘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아이디어를 제시하거나 상황에 따라 공연의 형태가 변화할 수 있었다.

이는 스튜디오 Z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였다.

보통 미술가는 그림을 그리고 음악가는 악기를 연주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사람들은 미술가가 악기를 연주하고 무용수가 조각을 움직이고 영화감독이 그걸 촬영하는 식으로 활동한 것이다.

Ten Minutes

《Ten Minutes》는 1977년 스튜디오 Z에서 공연된 퍼포먼스 작품이다.

마렌 해싱어가 구상했으며, 여러 참가자들이 함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참가자들은 비슷한 복장을 착용하고 서로의 움직임에 반응하면서 즉흥적인 신체 표현을 진행했다.

특히 서로의 움직임을 따라 하거나 과장하는 방식으로 집단적인 동작을 만들어 냈다.

공연에는 해싱어를 비롯한 여섯 명의 참가자가 참여했으며, 복숭아나무 가지 등을 소품으로 사용했다.[6]

이 작품은 스튜디오 Z가 특정한 물체를 제작하는 미술뿐 아니라 인간의 몸과 움직임 자체를 예술적인 표현으로 활용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Studio Z: Individual Collective

1977년 롱비치 미술관에서 개최된 공동 전시다.

이 전시는 스튜디오 Z가 비공식적인 모임이었음에도 실제 미술관에서 집단적인 활동을 선보였다는 중요한 사례다.

특히 전시 제목에 사용된 'Individual Collective'라는 표현이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개인과 집단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스튜디오 Z에서는 각자가 독립적인 작품 세계를 유지하면서도 협업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따라서 개인적인 창작과 집단적인 활동을 반드시 서로 반대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참여 작가들의 작품과 공연이 함께 소개되었으며, 여러 예술 분야 사이의 연결을 강조했다.

이 전시는 스튜디오 Z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공식 전시 기록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Ceremony for Freeway Fets

《Ceremony for Freeway Fets》는 1978년 진행된 스튜디오 Z의 대표적인 공동 퍼포먼스다.

센가 넨구디가 기획했으며, 데이비드 해먼스와 마렌 해싱어, 다른 스튜디오 Z 참여자들이 함께했다.

공연은 로스앤젤레스의 피코 대로에 위치한 고속도로 아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 인근의 공공장소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독특한 작품이었다.

제작 배경

당시 넨구디는 미국의 공공 일자리 지원사업인 종합고용훈련법(Comprehensive Employment and Training Act, CETA)에 따른 예술가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은 예술가들이 공공공간에 작품을 제작하는 활동을 지원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는 브록먼 갤러리 프로덕션스가 관련 사업을 운영했으며, 캘리포니아 교통국(Caltrans)도 지원에 참여했다.

넨구디는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고속도로 아래 공간에 공공미술 작품인 《Freeway Fets》를 설치했다.

이후 작품의 설치를 기념하기 위해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9]

공연 내용

공연에는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으며, 넨구디가 제작한 의상과 가면, 머리 장식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스타킹을 활용하여 제작한 소품들이 등장했다.

해먼스와 해싱어는 각각 남성과 여성의 에너지를 상징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넨구디는 그 사이를 연결하는 의식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공연에는 즉흥적인 음악과 무용이 함께 사용되었다.

특히 프리 재즈와 일본의 공연예술, 요루바족의 의례에서 영향을 받은 표현들이 결합되었다.

공연자들은 고속도로를 지탱하는 콘크리트 기둥과 주변의 공간을 활용하여 움직였다.

이러한 구성은 공공공간 자체가 하나의 예술적 무대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7]

의미

《Ceremony for Freeway Fets》는 스튜디오 Z의 예술적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우선 전통적인 미술관이 아니라 고속도로 아래의 공공공간에서 진행되었다.

또한 조각과 무용, 음악과 의식이 하나의 공연으로 결합되었다.

특히 특정한 개인이 모든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참여자들이 함께 움직이면서 하나의 예술적 경험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스튜디오 Z가 추구했던 협업과 즉흥성, 여러 예술 장르의 결합을 보여준다.

고속도로 아래에서 스타킹으로 만든 의상을 입은 예술가들이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했을 법하다.

그러나 이 공연은 단순히 기이한 행동을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었다.

평소 사람들이 예술적인 공간으로 생각하지 않는 장소를 공동체적인 경험의 공간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였다.

기록과 보존

공연은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되었다.

특히 사진가 로더릭 콰쿠 영(Roderick "Quaku" Young)이 공연 장면을 촬영했다.

이 사진들은 이후 넨구디의 대표적인 작업을 소개하는 여러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또한 바버라 매컬러프의 1979년 다큐멘터리 《Shopping Bag Spirits and Freeway Fetishes》에도 관련 장면이 기록되었다.

이러한 기록들은 공연이라는 일시적인 예술행위가 수십 년 뒤에도 연구되고 전시될 수 있게 만드는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9]

예술적 특징

장르의 경계를 넘는 협업

스튜디오 Z의 가장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는 다양한 예술 분야를 결합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미술단체는 회화와 조각, 사진 등 특정한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스튜디오 Z에는 조각가와 무용가, 음악가와 영화제작자 등이 함께 참여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전문 분야를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의 작품이나 공연을 위해 협력했다.

예를 들어 조각가가 공연에 필요한 구조물을 제작하고, 무용수가 자신의 몸을 통해 작품과 상호작용하며, 음악가는 즉흥적으로 연주할 수 있었다.

또한 영상미술가는 이러한 과정을 촬영하면서 별도의 작품으로 발전시킬 수도 있었다.

따라서 스튜디오 Z에서 예술적 협업은 단순히 여러 사람이 같은 공간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서로의 작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관계였다.

즉흥성

스튜디오 Z의 여러 작업에서는 즉흥적인 행위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참가자들이 서로의 움직임과 음악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방식은 재즈의 즉흥연주와 비교되기도 한다.

재즈에서는 연주자들이 기본적인 음악적 구조를 공유하면서도 공연 도중 서로의 연주에 반응하여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스튜디오 Z의 퍼포먼스 역시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다만 모든 활동이 사전 계획 없이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작품의 장소와 재료, 의상과 전체적인 개념 등은 미리 준비되기도 했다.

따라서 즉흥성은 아무런 준비 없이 행동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계획된 구조 안에서 새로운 결과가 발생하도록 허용하는 태도라고 이해할 수 있다.

공동체와 상호 지원

스튜디오 Z는 예술적인 실험을 위한 공간이면서 동시에 예술가들이 서로를 지원하는 공동체였다.

당시 미국의 주류 미술계에서 흑인 예술가들이 충분한 인정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특히 실험적인 작품을 제작하는 신진 예술가들은 전시와 제작비, 작품 판매 등의 기회를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가들 사이의 협업과 상호 지원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스튜디오 Z의 참가자들은 작업공간을 공유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면서 서로의 활동을 도왔다.

또한 자신들의 작품을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관객이자 동료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넨구디는 훗날 주류 미술계에서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서로를 지원해야 했다고 설명했다.[4]

이러한 경험은 스튜디오 Z를 단순한 예술단체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를 가진 공동체로 평가하는 중요한 이유다.

정치성과 예술성

스튜디오 Z는 흑인 민권운동과 사회적인 변화가 활발했던 시기에 등장했다.

따라서 인종차별과 사회적 불평등, 흑인 공동체의 역사 등이 예술가들의 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스튜디오 Z의 모든 작품이 직접적인 정치적 구호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제작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부 작품은 추상적인 조각이나 신체의 움직임, 재료의 물리적인 특성 등을 탐구했다.

예를 들어 넨구디의 《R.S.V.P.》 연작은 여성의 신체와 사회적인 경험을 연상시키지만, 특정한 정치적 사건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작품은 아니다.

따라서 스튜디오 Z의 정치성과 예술성을 서로 대립되는 요소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회적인 환경에서 경험한 문제를 추상적인 형태와 실험적인 작업으로 표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미술공간에서 벗어남

스튜디오 Z의 작품과 공연은 반드시 미술관에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참여 예술가들은 작업실과 거리, 공공공간 등 다양한 장소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Ceremony for Freeway Fets》는 고속도로 아래라는 일상적인 도시공간을 예술적인 공연 장소로 활용했다.

이러한 방식은 예술작품을 반드시 미술관이나 갤러리에 전시해야 한다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예술적인 경험이 특정한 물체에 한정되지 않고 사람들의 참여와 공간, 시간의 변화 속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관련 미술 사조

포스트미니멀리즘

스튜디오 Z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은 기존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기하학적 구조에서 벗어나 재료의 물리적인 특성과 제작 과정, 우연적인 변화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 미술적 경향이다.

스튜디오 Z에 참여한 넨구디와 해싱어, 해먼스 등은 이러한 특징을 공유했다.

특히 넨구디는 스타킹과 모래, 물 등을 활용하여 쉽게 변형되는 조각을 제작했다.

해싱어 역시 산업용 밧줄과 섬유 등을 이용하여 유기적인 형태를 탐구했다.

또한 이들은 조각과 무용, 퍼포먼스를 결합하면서 완성된 물체뿐 아니라 인간의 움직임과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다만 스튜디오 Z 전체를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사조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참여 작가들은 각자 서로 다른 예술적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작품의 주제와 형식도 다양했기 때문이다.

행위예술

스튜디오 Z의 활동에서 행위예술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것뿐 아니라 사람의 몸과 움직임, 음악과 의식 등을 결합한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러한 공연에서는 작품을 만드는 행위 자체가 예술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또한 공연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들의 행동과 반응이 작품의 형태를 결정하기도 했다.

이는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에서 완성된 물체를 감상하는 방식과 차이가 있다.

특히 《Ceremony for Freeway Fets》는 스튜디오 Z의 행위예술적 특징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흑인 예술운동

스튜디오 Z는 미국 흑인 예술가들의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특히 흑인 민권운동과 블랙 파워 운동이 활발했던 시대에 등장했으며, 흑인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환경을 구축하려는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

다만 스튜디오 Z를 1960~1970년대 미국의 블랙 아츠 무브먼트(Black Arts Movement)와 완전히 동일한 조직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블랙 아츠 무브먼트는 문학과 음악, 연극과 미술 등 여러 분야에서 발전한 광범위한 문화운동이었다.

반면 스튜디오 Z는 로스앤젤레스의 특정 예술가들이 형성한 비공식적인 협업 공동체였다.

또한 참가자들의 작품은 반드시 직접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았으며, 추상적인 형식과 실험적인 재료를 탐구하는 경우도 많았다.

L.A. 리벨리언과의 차이

스튜디오 Z는 같은 시기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전한 흑인 영화운동인 L.A. 리벨리언(L.A. Rebellion)과 혼동되기도 한다.

그러나 두 집단은 완전히 같은 조직이 아니다.

L.A. 리벨리언은 주로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UCLA에서 영화 제작을 공부한 아프리카계 및 아프리카 출신 영화인들을 중심으로 발전한 영화운동이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찰스 버넷, 줄리 대시, 하일레 게리마 등이 있다.

반면 스튜디오 Z는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업실을 중심으로 발전한 예술가들의 협업 모임이었다.

특히 조각과 행위예술, 무용과 음악 등을 결합한 작업이 중심이었다.

물론 두 흐름 모두 당시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예술가들이 주류 문화산업과는 다른 형태의 예술을 발전시키려 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바버라 매컬러프처럼 두 흐름과 관련된 예술가들도 있었다.

그러나 스튜디오 Z와 L.A. 리벨리언을 동일한 집단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10]

현대미술사에서의 의의

로스앤젤레스 미술사의 다양성

스튜디오 Z는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현대미술이 단순히 유명한 백인 남성 예술가들의 활동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현대미술사는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의 유명 미술관과 갤러리, 상업적인 미술시장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예술가들 역시 실험적인 조각과 설치미술, 행위예술 등을 활발하게 제작하고 있었다.

특히 스튜디오 Z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협업과 공동체적인 활동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

또한 기존의 전시제도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했던 예술가들이 서로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작업을 발전시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예술 장르 사이의 경계 확장

스튜디오 Z의 활동은 조각과 음악, 무용과 영화 사이의 전통적인 구분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여러 예술가들이 함께 공연을 진행하면서 작품의 제작과 전시, 공연이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특징은 이후 설치미술과 행위예술, 영상미술 등 여러 분야의 발전과 관련하여 논의된다.

다만 스튜디오 Z가 이러한 예술 장르들을 처음 발명한 것은 아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유사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스튜디오 Z는 그 흐름 가운데 독자적인 특징을 가진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공동체 중심적인 예술활동

스튜디오 Z의 중요한 의의 가운데 하나는 예술가 개인의 명성과 작품 판매에만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여러 예술가들이 서로의 작품을 지원하고 협업하면서 새로운 예술적 경험을 만들어 내려고 했다.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에도 예술가 공동체와 협업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중요한 사례로 언급된다.

특히 미술사에서 한 명의 유명한 작가만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방식과 달리, 여러 사람들의 관계와 협업을 통해 예술적 성과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재평가

Now Dig This!

2011년 UCLA의 해머 미술관에서는 《Now Dig This!: Art and Black Los Angeles, 1960–1980》이라는 전시가 개최되었다.

전시는 1960~1980년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했던 흑인 예술가들의 작품과 활동을 소개했다.

특히 데이비드 해먼스와 센가 넨구디, 마렌 해싱어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주요 인물로 등장했다.

또한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예술가들이 기존 미술사에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던 점을 재조명했다.

전시는 2011년 10월 2일부터 2012년 1월 8일까지 해머 미술관에서 개최되었으며, 이후 뉴욕과 다른 지역으로 순회했다.

특히 해머 미술관은 이후 관련 작품과 예술가들의 활동을 정리한 디지털 아카이브를 공개했다.[11]

이러한 자료들은 스튜디오 Z의 역사와 참여 예술가들의 활동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스튜디오 Z의 재조명

2018년에는 시카고 현대미술관에서 《West by Midwest》라는 전시가 개최되었다.

이 전시와 관련된 연구자료에서는 스튜디오 Z의 활동과 로스앤젤레스 흑인 예술가들의 관계가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특히 《Studio Z's Constellation》이라는 글에서는 데이비드 해먼스와 센가 넨구디의 관계, 스튜디오 Z의 형성과 활동 등이 설명되었다.[4]

또한 게티 연구소에서도 로스앤젤레스의 흑인 전위예술운동을 연구하고 관련 예술가들의 구술 기록과 공연 자료를 소개했다.

2008년에는 센가 넨구디와 마렌 해싱어, 율리시스 젱킨스, 바버라 매컬러프 등이 참여한 대담이 개최되기도 했다.[12]

이러한 활동은 스튜디오 Z가 단순히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의 작은 모임이 아니라 미국 현대미술의 중요한 공동체로 재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담

  • 스튜디오 Z는 1970년대 로스앤젤레스에서 활동한 흑인 전위예술가들의 비공식적인 모임이다. 정식 회원 명단과 엄격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던 단체는 아니었다.
  • 이름은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업공간에서 유래했다. 다만 알파벳 Z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널리 알려진 자료에서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는다.
  • 모임의 중심이 되었던 해먼스의 작업실은 원래 무도회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넓은 공간과 나무 바닥, 무대 등이 있어 공연과 즉흥적인 작업을 진행하기에 적합했다.
  • 센가 넨구디와 해먼스의 관계는 1970년대 초반에 더욱 가까워졌으며, 이후 작업공간을 공유하면서 여러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되었다.
  • 스튜디오 Z는 미술가들만의 모임이 아니었다. 조각가와 무용가, 음악가와 영화제작자 등이 함께 활동했다.
  • 참가자들은 반드시 매주 같은 시간에 모이거나 정해진 의무를 수행해야 했던 것은 아니다. 참여자는 시기에 따라 달라졌으며, 특정한 프로젝트에만 참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 마렌 해싱어와 센가 넨구디는 스튜디오 Z를 통해 오랫동안 협업한 대표적인 예술가들이다.
  • 프랭클린 파커와 로호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예술가들도 스튜디오 Z의 활동에 참여했다. 따라서 이 모임의 역사를 유명한 작가 몇 명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 데이비드 해먼스는 스튜디오 Z의 중심인물이었지만 정식 회원이라는 개념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애초에 정식 회원제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스튜디오 Z의 활동은 재즈의 즉흥연주와 비교되기도 한다. 여러 예술가들이 서로의 행동과 음악에 반응하면서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 내는 방식이었다.
  • 1977년에는 롱비치 미술관에서 《Studio Z: Individual Collective》라는 전시를 개최했다. 개인과 집단이라는 개념을 함께 사용한 제목이 이들의 활동 방식을 잘 보여준다.
  • 같은 해 마렌 해싱어는 《Ten Minutes》라는 퍼포먼스를 기획해 스튜디오 Z에서 공연했다.
  • 1978년에는 로스앤젤레스의 고속도로 아래에서 《Ceremony for Freeway Fets》라는 공연을 진행했다. 센가 넨구디가 기획했으며, 해먼스와 해싱어를 비롯한 여러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 《Ceremony for Freeway Fets》는 정부의 공공미술 지원사업과 관련하여 제작된 작품이다. 따라서 스튜디오 Z가 순수하게 개인 자금으로만 활동했다고 설명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 공연에는 스타킹으로 만든 의상과 가면, 음악과 춤 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일본의 공연문화와 서아프리카의 의례에서 영향을 받은 요소들이 등장했다.
  • 공연 장소는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니라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고속도로 아래였다. 예술적인 공연 장소로는 상당히 특이한 선택이었다.
  • 로더릭 콰쿠 영은 공연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이러한 사진들은 오늘날 여러 미술관에서 스튜디오 Z의 활동을 소개하는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 바버라 매컬러프의 1979년 다큐멘터리 《Shopping Bag Spirits and Freeway Fetishes》에도 관련 공연 자료가 등장한다.
  • 스튜디오 Z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참여 예술가들이 모두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하나의 사조에 속했던 것은 아니다.
  • 행위예술과 설치미술, 개념미술 등 여러 분야와 연결되어 있으며, 특히 예술 장르 사이의 경계를 넘는 협업을 강조했다.
  • 같은 시기 로스앤젤레스에서 발전한 영화운동인 L.A. 리벨리언과는 구분해야 한다. 두 흐름은 사회적인 배경과 일부 참여 예술가가 겹치지만 동일한 조직은 아니다.
  • 스튜디오 Z는 별도의 정식 해산일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처음부터 엄격한 조직 구조를 가진 단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 2011년 해머 미술관의 《Now Dig This!》 전시와 이후 연구를 통해 스튜디오 Z의 활동이 다시 주목받았다.
  • 2018년 시카고 현대미술관은 스튜디오 Z의 역사를 소개하는 연구자료를 공개했다.
  • 넨구디와 해싱어 등 참여 예술가들은 스튜디오 Z의 활동 이후에도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발전시켰다.
  • 스튜디오 Z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예술가들이 개인적인 창작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예술가들과 협력했다는 점이다.
  • 일반적으로 예술가 집단이라고 하면 통일된 선언문이나 작품 양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스튜디오 Z는 그러한 방식으로만 설명할 수 없는 모임이다.
  • 미술관에서 작품을 전시할 기회가 부족하니 자기들끼리 작업실에 모여 작품을 만들고 공연을 진행했는데, 수십 년 뒤에는 그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미술관들이 전시와 학술자료를 만들게 된 것이다.
  • 특히 스튜디오 Z의 활동은 예술가들이 반드시 유명 미술관이나 상업적인 갤러리의 인정을 받아야만 의미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그렇다고 스튜디오 Z의 모든 작품이나 공연이 무조건 훌륭한 예술적인 성과였다고 평가할 이유는 없다. 개별 작품의 완성도와 역사적인 의미는 구분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 다만 여러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공간을 공유하고 서로의 활동을 지원하면서 새로운 예술적 실험을 진행했다는 점에서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
  • 결국 스튜디오 Z는 거창한 조직과 막대한 제작비가 없어도 뜻이 맞는 예술가들이 모이면 하나의 중요한 예술적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