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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포스트미니멀리즘(Postminimalism, Post-Minimalism)은 196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한 현대미술의 경향으로, 기존의 미니멀리즘을 계승하면서도 그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와 규칙적인 구조에서 벗어나려 했던 예술적 움직임이다. 한국어로는 후기 최소주의라고도 한다.

미니멀리즘이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반복적인 구조, 산업적으로 제작된 재료 등을 강조했다면,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유연한 재료와 우연적인 변화, 중력과 시간의 작용,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쉽게 말해 미니멀리즘이 금속 상자를 반듯하게 만들어 놓는 미술이었다면, 포스트미니멀리즘은 그 상자를 만드는 대신 천이나 고무를 대충 늘어뜨리고 중력이 알아서 형태를 만들도록 하는 미술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물론 실제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들이 모두 천이나 고무를 이용하거나 우연에 의존하는 것은 아니다. 기존 미니멀리즘의 형식적인 엄격함을 벗어나려는 다양한 실험을 포괄하는 개념에 가깝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에바 헤세, 로버트 모리스, 리처드 세라, 린다 벵글리스, 브루스 나우먼 등이 있다.

이들은 작품의 완성된 형태뿐 아니라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물질의 변화와 작가의 행동, 주변 공간과의 관계 등을 중요한 예술적 요소로 생각했다.

특히 기존 미니멀리즘이 작품의 형태를 미리 계획하고 정확하게 제작하는 데 관심을 가졌다면, 포스트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재료가 가진 물리적인 특성에 따라 작품의 형태가 변화하도록 허용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일정한 길이의 천을 자른 뒤 벽에 걸었을 때 어떤 모양으로 늘어질지는 중력과 재료의 특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이러한 결과를 반드시 수정해야 할 결함으로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이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통제해서 작품을 만드는 대신 재료가 제멋대로 행동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 로버트 핀커스위튼(Robert Pincus-Witten)이 이러한 경향을 설명하기 위해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으며, 이후 미술사에서 널리 정착했다.[1]

다만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명확한 규칙과 선언문을 공유한 하나의 조직적인 학파라기보다 여러 작가들에게서 나타난 공통적인 예술적 경향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특히 과정미술, 반형태, 소프트 조각, 개념미술, 설치미술 등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명칭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명칭은 '이후'라는 의미의 접두사인 포스트(Post-)와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결합한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미니멀리즘 이후에 나타난 미술적 경향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포스트미니멀리즘이 단순히 미니멀리즘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미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기존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계승하면서도 그 한계를 비판하거나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려 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러한 명칭은 미술평론가 로버트 핀커스위튼이 1971년 에바 헤세의 작품을 논의하면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당시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에서 벗어나 유기적이고 개방적인 형태를 실험하던 작가들의 작품에 주목했다.[1]

다만 당시 작가들이 모두 자신을 포스트미니멀리즘 작가라고 불렀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과정미술과 반형태, 소프트 조각 등 여러 표현이 함께 사용되었다.

또한 포스트라는 접두사가 붙었다고 해서 미니멀리즘이 완전히 사라지고 새로운 사조로 교체되었다는 의미도 아니다.

두 경향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동시에 발전했다.

역사

미니멀리즘의 등장

포스트미니멀리즘을 이해하려면 먼저 미니멀리즘의 특징을 알아야 한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추상표현주의의 감정적인 표현과 자유로운 붓질에서 벗어나려는 예술가들이 등장했다.

이들은 작가 개인의 감정과 개성이 지나치게 강조되는 기존 미술에 의문을 제기했다.

특히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 댄 플래빈, 프랭크 스텔라 등은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반복적인 구조, 산업적으로 생산된 재료 등을 활용했다.

작품에 복잡한 이야기를 담거나 작가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물체의 형태와 공간, 재료의 관계를 강조했다.

예를 들어 미술관에 여러 개의 금속 상자를 동일한 간격으로 배치하거나, 단순한 구조의 형광등을 설치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작품들은 기존의 회화와 조각에 대한 관념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작가들은 미니멀리즘의 엄격하고 규칙적인 형태 자체가 또 다른 관습이 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추상표현주의의 자유로운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니멀리즘이 등장했는데, 이번에는 미니멀리즘의 기하학적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나타난 것이다.

예술가라는 양반들이 기존 미술이 마음에 안 든다고 새로운 미술을 만들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새로운 미술도 마음에 안 든다고 또 다른 미술을 만들기 시작한 셈이다.

1960년대 후반의 변화

1960년대 후반에는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형태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었다.

특히 작가들은 고무와 펠트, 라텍스, 섬유, 밀랍 등 기존 조각에서 상대적으로 덜 사용되던 재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재료들은 철강이나 석재처럼 단단하고 안정적인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천은 중력에 따라 늘어지고, 고무는 늘어나거나 변형되며, 액체 상태의 재료는 바닥에 흘러내리면서 예상하지 못한 형태를 만들 수도 있다.

작가들은 이러한 물리적인 특성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다.

또한 작품이 완성된 뒤의 형태보다 어떤 행위와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술사가와 평론가들에 의해 반형태, 과정미술, 포스트미니멀리즘 등으로 설명되었다.

특히 1960년대 말에는 이러한 예술적 경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시와 비평 활동이 이어졌다.

기이한 추상

1966년 미술평론가 루시 리파드(Lucy Lippard)는 뉴욕의 피시바흐 갤러리에서 《기이한 추상》(Eccentric Abstraction)이라는 전시를 기획했다.

이 전시에는 에바 헤세, 루이즈 부르주아, 앨리스 애덤스 등 여러 작가들이 참여했다.

작가들은 기존의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와 달리 유연한 재료와 유기적인 구조를 활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특히 미니멀리즘의 형식적인 질서에서 벗어나 신체와 감각, 재료의 성질 등을 연상시키는 작품들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명칭이 아직 일반적으로 정착하기 이전이었지만, 이 전시는 이후 포스트미니멀리즘과 소프트 조각의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사례로 평가된다.[2]

반형태의 등장

1968년 로버트 모리스는 《아트포럼》(Artforum)에 《반형태》(Anti Form)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은 포스트미니멀리즘의 발전에서 중요한 이론적인 계기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모리스는 기존 미니멀리즘이 사전에 계획된 형태와 구조를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재료 자체의 물리적인 특성과 우연적인 결과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천이나 펠트를 잘라 벽에 걸어 놓으면 중력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진다.

작가가 그 늘어진 형태를 정확하게 계산하거나 통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모리스는 이러한 방식으로 작품의 형태를 미리 완전히 결정하지 않고, 재료와 제작 과정에 일정한 자율성을 부여하려고 했다.[3]

이러한 접근은 이후 과정미술과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Anti-Illusion 전시

1969년에는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에서 《Anti-Illusion: Procedures/Materials》라는 전시가 개최되었다.

전시는 1969년 5월 19일부터 7월 6일까지 열렸으며, 마샤 터커(Marcia Tucker)와 제임스 몬테(James Monte)가 기획했다.[4]

이 전시에서는 완성된 예술작품의 형태보다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사용된 재료의 특성이 강조되었다.

참여 작가들은 조각과 회화뿐 아니라 음악과 영상,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작품 등 다양한 형식을 활용했다.

특히 작품들이 모두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 다른 형태의 작품들이 제작 과정과 재료에 대한 관심이라는 공통점을 통해 연결되었다.

이 전시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과정미술이 하나의 고정된 시각적 양식이 아니라 다양한 제작 태도를 포괄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5]

1970년대 이후

1970년대에는 이러한 실험들이 더욱 다양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특히 설치미술, 행위예술, 대지미술, 페미니즘 미술 등과 연결되면서 작품의 재료와 공간, 신체와 시간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또한 회화와 조각의 전통적인 구분을 벗어나는 작품들이 증가했다.

다만 모든 설치미술이나 대지미술, 페미니즘 미술이 포스트미니멀리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조들은 역사적인 배경과 예술적 목표가 서로 다르며, 일부 작가와 작품에서 공통적인 특징이 나타나는 관계에 가깝다.

오늘날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표현은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나타난 중요한 미술적 경향을 설명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제작 과정과 재료의 물성, 공간과 시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다양한 작품들을 설명할 때도 활용된다.

미니멀리즘과의 차이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에서 출발했지만 여러 측면에서 차이를 보인다.

구분 미니멀리즘 포스트미니멀리즘
주요 시기 1960년대 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전 1960년대 후반부터 등장
형태 단순하고 규칙적인 기하학적 구조 강조 불규칙하고 유기적인 형태도 적극적으로 활용
재료 금속, 합판, 유리 등 산업적 재료의 정밀한 구조 강조 라텍스, 펠트, 고무, 밀랍, 금속 등 다양한 재료의 물성 강조
제작 방식 사전에 계획된 형태와 반복적 구조 과정과 우연, 재료의 변형을 허용
작가의 통제 계획한 형태를 정확하게 구현하려는 경향 재료와 외부 조건이 형태에 영향을 주도록 허용
시간 완성된 작품의 안정적인 구조 강조 작품의 변화와 일시성, 제작 과정도 중요
관객의 경험 물체와 공간의 관계를 강조 물체와 공간뿐 아니라 신체와 시간, 변화의 경험까지 확장

다만 이러한 비교는 두 예술적 경향의 일반적인 특징을 요약한 것이다.

모든 미니멀리즘 작품이 반드시 금속으로 만들어지거나 엄격하게 대칭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또한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에서도 기하학적 구조와 반복적인 형태가 사용될 수 있다.

특히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을 완전히 부정하기보다는 그 특징을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시키려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어 에바 헤세의 작품에서는 반복적인 구조가 등장하지만, 이를 구성하는 재료는 유연하고 불규칙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따라서 두 사조를 단순히 반듯한 미술과 흐트러진 미술로만 구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주요 특징

반형태

반형태(Anti-Form)는 작품의 형태를 미리 완벽하게 계획하고 고정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개념이다.

특히 1968년 로버트 모리스의 글을 통해 미술사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전통적인 조각에서는 작가가 원하는 형태를 먼저 결정하고 재료를 가공하여 그 형태를 구현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각가가 사람의 모습을 만들려고 한다면 대리석을 깎아 계획한 형상을 완성한다.

반면 반형태에서는 재료의 특성과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천을 걸었을 때 늘어지는 모습이나 액체가 흘러내리면서 만들어지는 형태가 작품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을 완성하기 전에 최종적인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할 수도 있다.

물론 반형태가 형태 자체를 완전히 거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모든 물체는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반형태의 핵심은 작품의 형태를 고정된 목표로 삼는 대신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있다.

작가가 작품을 만들려고 했는데 어느 순간 재료가 알아서 작품을 만들어 버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과정미술

과정미술(Process Art)은 작품의 완성된 결과뿐 아니라 제작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술이다.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두 표현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이 미니멀리즘 이후에 등장한 광범위한 예술적 경향을 가리킨다면, 과정미술은 작품을 만들어 내는 행위와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 액체 상태의 재료를 바닥에 붓는 행위를 생각할 수 있다.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재료가 굳은 뒤 완성된 형태를 중요한 작품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반면 과정미술에서는 재료를 붓고 흘러내리게 하며 굳어 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작품의 제작 행위와 시간의 흐름, 재료의 변화 등이 예술적 의미를 가지게 된다.

재료의 물성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재료의 물리적인 성질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재료가 얼마나 무겁고 유연한지, 어떤 힘을 받으면 형태가 어떻게 변하는지 등을 작품에 활용한다.

대표적인 재료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펠트: 중력에 따라 늘어지거나 접히는 성질을 활용한다.
  • 라텍스: 유연하고 늘어나는 성질을 이용하며, 시간이 지나면 변색하거나 손상될 수 있다.
  • 고무: 휘거나 구부러지고 압력에 따라 변형되는 성질을 활용한다.
  • 밀랍: 녹거나 굳는 과정과 재료의 질감 등을 이용한다.
  • 납: 무게와 유연성, 용융 상태에서의 흐름 등을 활용한다.
  • 섬유와 천: 중력과 긴장, 늘어짐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를 형성한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미니멀리즘에서 중요하게 사용되던 산업적인 재료가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재료를 어떤 방식으로 활용하는가에 있다.

미니멀리즘에서는 금속을 정밀한 기하학적 형태로 가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금속이 가지고 있는 무게와 휘어지는 성질, 압력에 따른 변화 등을 작품에 활용하기도 했다.

똑같은 철판을 가지고도 한쪽은 완벽한 사각형을 만들려고 하고, 다른 한쪽은 그 철판이 얼마나 휘어지는지 실험하는 것이다.

중력과 우연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중력과 우연적인 변화가 작품의 형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천을 벽에 걸어 놓으면 천의 무게와 길이, 부착된 위치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가 만들어진다.

액체 상태의 재료를 바닥에 부으면 바닥의 상태와 재료의 점도에 따라 예상하지 못한 형태가 나타날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완전히 통제하지 않고 일정 부분 받아들인다.

그러나 작품에 우연이 사용되었다고 해서 작가가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어떤 공간에서 작업할지, 어느 정도까지 변형을 허용할지 등을 결정한다.

따라서 우연과 작가의 의도가 함께 작용한다고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

시간과 변화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 가운데는 시간이 지나면서 형태나 상태가 변화하는 작품들도 있다.

특히 라텍스와 고무, 일부 유기적인 재료 등은 시간이 지나면 변색하거나 손상될 수 있다.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예술작품을 오랫동안 변하지 않는 상태로 보존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로 여겨졌다.

그러나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재료의 변화와 불안정성이 작품의 중요한 성격이 될 수 있다.

물론 작가가 작품의 손상을 원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작품이 영원히 동일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미술적 의미와 연결되기도 한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 미술관의 작품 보존과 복원에도 여러 문제를 제기했다.

신체와 감각

일부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에서는 인간의 신체를 연상시키는 형태와 재료가 사용된다.

특히 유연한 고무와 라텍스, 천 등은 인간의 피부나 근육, 신체조직 등을 연상시킬 수 있다.

또한 늘어지고 처지는 형태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인간의 몸과도 연결된다.

이러한 특징은 페미니즘 미술과 신체미술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에바 헤세와 린다 벵글리스, 센가 넨구디 등의 작품에서는 신체와 물질의 관계가 중요한 요소로 나타난다.

다만 이 작가들의 모든 작품을 여성의 신체나 성별에 관한 표현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재료의 물리적인 특성과 작품의 제작 과정, 예술적 관습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의미를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주요 작가

에바 헤세

에바 헤세(Eva Hesse, 1936년 ~ 1970년)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예술가 가운데 하나다.

독일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 나치의 박해를 피해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미술을 공부한 뒤 회화와 조각 작업을 진행했으며, 1960년대 중반부터 다양한 비전통적인 재료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라텍스와 유리섬유, 고무, 밧줄 등을 이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헤세의 작품에서는 반복적인 구조와 불규칙한 형태가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즉,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치된 요소들이 각각 미묘하게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미니멀리즘의 반복적인 구조를 계승하면서도 엄격하고 균일한 형태에서 벗어나려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의 경향을 보여준다.

대표작으로는 《Expanded Expansion》(1969), 《Contingent》(1969), 《Right After》(1969) 등이 있다.

Expanded Expansion

1969년 제작된 작품으로, 유리섬유와 폴리에스터 수지, 라텍스, 천 등을 사용했다.

단단한 지지대 사이에 유연한 재료가 연결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작품의 너비가 전시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반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니멀리즘과 비슷하지만, 재료의 유연성과 형태의 불안정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6]

Contingent

1969년 제작된 작품으로, 라텍스와 천, 유리섬유 등을 사용했다.

여러 개의 얇고 긴 구조물이 천장에서 아래로 늘어지는 형태다.

각각의 구조물은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다.

특히 유연한 재료가 중력에 의해 아래로 늘어지면서 독특한 형태를 만들어 낸다.

회화처럼 평평한 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공간 속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에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흐리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7]

헤세는 1970년 불과 3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짧은 활동 기간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현대 조각의 발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로버트 모리스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1931년 ~ 2018년)는 미니멀리즘과 포스트미니멀리즘 모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미국의 예술가다.

그는 1960년대 초반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를 활용한 작품들을 제작하면서 미니멀리즘의 발전에 기여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에는 유연한 재료와 우연적인 형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특히 펠트를 활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모리스는 산업용 펠트를 자르거나 접은 뒤 벽에 걸거나 바닥에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 과정에서 펠트는 중력과 자체 무게에 따라 자연스럽게 늘어지고 접히면서 형태를 만든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1968년과 1969년에 제작한 여러 《무제》 작품과 《Untitled (Pink Felt)》(1970) 등이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모리스가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에서 벗어나 유연한 재료의 성질과 우연을 활용함으로써 포스트미니멀리즘의 형성에 기여했다고 설명한다.[8]

흥미로운 점은 모리스 자신이 미니멀리즘의 이론을 발전시킨 인물이면서 동시에 그 한계를 비판하는 움직임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자기가 발전시킨 예술운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스스로 새로운 방향을 찾아 나선 것이다.

리처드 세라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 1938년 ~ 2024년)는 미국의 조각가로, 산업적인 재료와 중력, 물리적인 힘을 활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특히 납과 강철 등을 이용한 조각을 제작했다.

초기에는 고무와 납 같은 재료를 구부리거나 찢고, 굴리고,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세라는 1967~1968년경 작품 제작에 사용되는 행위들을 나열한 《동사 목록》(Verb List)을 작성했다.

여기에는 굴리다, 접다, 구부리다, 자르다, 떨어뜨리다 등의 동작이 포함되었다.

그는 이러한 행위를 실제 재료에 적용하면서 어떤 형태가 발생하는지 탐구했다.

대표작으로는 《Prop》(1968)과 《Splashing》(1968) 등이 있다.

Prop

1968년 제작된 작품으로, 납으로 만들어진 판과 기둥 형태의 구조물을 사용했다.

금속판을 벽에 세우고 기둥 형태로 말아 놓은 납을 지지대로 활용하여 구조를 유지한다.

이 작품은 중력과 무게, 지지하는 힘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특히 구조물을 용접하거나 고정하는 대신 재료들이 서로 지지하는 힘을 활용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9]

Splashing

1968년 제작한 작품으로, 녹인 납을 벽과 바닥이 만나는 부분에 던지거나 흘려 넣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납은 식으면서 굳어지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형태가 작품이 된다.

일반적인 조각처럼 먼저 완성된 형상을 설계하고 재료를 가공하는 방식과는 차이가 있다.

금속을 녹여서 벽과 바닥 사이에 던졌더니 그게 현대미술 작품이 된 것이다.

물론 실제로는 재료의 특성과 제작 행위, 중력 등을 활용한 계획적인 실험이었다.

세라는 이후 거대한 강철판과 구조물을 활용하는 조각으로도 유명해졌다.

다만 후기의 대형 강철조각 전체를 초기 포스트미니멀리즘의 한 양식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린다 벵글리스

린다 벵글리스(Lynda Benglis, 1941년 ~ )는 미국의 예술가로, 액체 상태의 재료와 유연한 형태를 활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1960년대 후반부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라텍스와 폴리우레탄 등 유동적인 재료를 바닥에 붓거나 흘려 보내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했다.

이러한 재료들은 액체 상태에서는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지만 시간이 지나 굳으면서 독특한 구조를 만든다.

벵글리스는 이러한 과정을 작품 제작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재료를 붓거나 흘리는 행위 자체가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과정미술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또한 기존 회화의 틀에서 벗어나 평면과 입체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진행했다.

뉴욕 현대미술관은 벵글리스가 액체 재료의 움직임과 제작 과정에서 발생하는 형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가라고 설명한다.[10]

그의 작품들은 포스트미니멀리즘뿐 아니라 페미니즘 미술과도 연결되어 논의된다.

브루스 나우먼

브루스 나우먼(Bruce Nauman, 1941년 ~ )은 미국의 예술가로, 조각과 설치미술, 영상, 행위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그는 작품의 완성된 형태뿐 아니라 인간의 행동과 신체, 관객이 경험하는 공간 등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자신의 몸을 활용한 퍼포먼스와 영상작업을 진행했으며, 공간과 관객 사이의 관계를 탐구했다.

대표적으로 《Performance Corridor》(1969)에서는 관객이 좁은 통로를 통과하는 경험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활용했다.

이러한 작업은 작품이 반드시 고정된 물체로 존재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나우먼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밀접하게 관련된 작가로 평가되지만, 그의 전체 작품 세계는 개념미술과 행위예술, 영상미술 등 여러 분야를 포괄한다.

센가 넨구디

센가 넨구디(Senga Nengudi, 1943년 ~ )는 미국의 예술가로, 섬유와 신체, 행위예술을 결합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특히 여성용 스타킹과 모래 등을 사용하여 인간의 신체를 연상시키는 형태의 작품을 제작했다.

대표적인 작품은 1970년대부터 제작한 《R.S.V.P.》 시리즈다.

넨구디는 스타킹에 모래를 넣고 여러 방향으로 늘어뜨리거나 벽에 부착하여 독특한 구조를 만들었다.

이러한 작품은 인간의 피부와 신체의 탄력, 노화와 출산 등 여러 경험을 연상시키도록 구성되었다.

또한 일부 작품은 무용수들의 움직임과 결합한 퍼포먼스로도 활용되었다.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은 《R.S.V.P.》가 유연한 재료를 통해 인간의 신체와 물리적인 긴장, 움직임 등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설명한다.[11]

이러한 작업은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재료 실험이 신체와 성별, 사회적 경험에 대한 탐구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 작품

연도 작가 작품 특징
1968 로버트 모리스 Untitled 펠트 등 유연한 재료의 성질과 중력을 활용
1968 리처드 세라 Prop 납의 무게와 물리적 지지 관계 강조
1968 리처드 세라 Splashing 용융된 납을 던지는 제작 과정 활용
1969 에바 헤세 Expanded Expansion 단단한 지지대와 유연한 재료의 대비
1969 에바 헤세 Contingent 늘어뜨린 라텍스와 천을 통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 탐구
1969 로버트 모리스 Untitled 펠트의 늘어짐과 유동적인 형태
1970 로버트 모리스 Untitled (Pink Felt) 잘라 놓은 펠트의 불규칙한 배열
1975 센가 넨구디 R.S.V.P. 스타킹과 모래를 이용한 신체적 형태

이 작품들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주요 사례들이며, 모든 작품이 동일한 형식이나 제작 방식을 따르는 것은 아니다.

다른 미술 사조와의 관계

과정미술

과정미술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두 경향 모두 작품의 완성된 형태만큼 제작 과정과 재료의 특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로버트 모리스와 리처드 세라, 린다 벵글리스 등의 작품은 두 개념으로 함께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표현은 미니멀리즘 이후의 폭넓은 예술적 변화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며, 과정미술은 제작 행위와 물질적 변화라는 특징에 보다 집중한다.

개념미술

개념미술은 작품의 물질적인 형태보다 작품에 담긴 아이디어와 개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미술이다.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비슷한 시기에 발전했으며, 기존의 회화와 조각에 대한 관념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두 경향 사이에는 차이도 존재한다.

개념미술은 작품의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실제 재료의 물리적인 특성과 제작 과정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개념미술에서는 작품의 제작 지시문이나 아이디어 자체가 중요한 작품이 될 수 있다.

반면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그 지시를 실행했을 때 실제 재료가 어떤 형태로 변화하는지가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물론 개별 작품에서는 두 특징이 함께 나타날 수도 있다.

대지미술

대지미술(Land Art)은 자연환경과 토지, 지형 등을 작품의 재료와 공간으로 활용하는 미술이다.

1960년대 후반부터 발전했으며, 포스트미니멀리즘과 시기적으로 겹친다.

특히 작품이 전통적인 미술관이나 전시장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또한 자연환경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이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로버트 스미스슨, 월터 드 마리아, 리처드 롱 등이 있다.

다만 대지미술 전체가 포스트미니멀리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대지미술은 자연환경 자체를 작품의 재료와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점에서 별도의 특징을 가진다.

소프트 조각

소프트 조각(Soft Sculpture)은 천과 고무, 섬유 등 유연한 재료를 활용하는 조각을 가리킨다.

전통적인 조각이 석재와 금속, 목재 등 단단한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소프트 조각은 재료의 유연성과 변형 가능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특징은 포스트미니멀리즘과 상당히 밀접하게 연결된다.

특히 에바 헤세와 로버트 모리스의 작품들은 소프트 조각의 중요한 사례로 언급된다.

그러나 유연한 재료를 사용했다고 해서 모든 작품이 반드시 포스트미니멀리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작품이 제작된 시대와 작가의 의도, 예술적 배경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페미니즘 미술

포스트미니멀리즘은 페미니즘 미술의 발전과도 일부 연결된다.

특히 여성 작가들이 유연한 재료와 신체를 연상시키는 형태를 활용하면서 기존 미술의 남성 중심적인 가치관과 표현 방식을 비판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에바 헤세와 린다 벵글리스, 센가 넨구디 등의 작품들이 관련하여 논의된다.

다만 포스트미니멀리즘 자체가 여성만을 위한 미술운동이거나 모든 작품이 페미니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포스트미니멀리즘에는 남성과 여성, 서로 다른 사회적 배경을 가진 여러 작가들이 참여했다.

아르테 포베라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는 1960년대 후반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미술운동이다.

이탈리아어로 '가난한 예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상적인 재료와 자연물 등을 활용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미술재료와 제작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아르테 포베라는 이탈리아의 사회적·문화적 환경에서 발전한 독자적인 미술운동이다.

따라서 두 사조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음악에서의 포스트미니멀리즘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표현은 음악에서도 사용된다.

다만 음악에서의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시각예술의 포스트미니멀리즘과는 별도의 역사적인 맥락에서 발전한 개념이다.

특히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이후 미니멀 음악의 반복적인 구조와 리듬을 계승하면서 새로운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작곡 경향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윌리엄 덕워스와 존 애덤스 등의 음악이 관련하여 논의된다.

미니멀 음악은 제한된 음형과 반복적인 구조, 점진적인 변화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스티브 라이히, 필립 글래스, 테리 라일리, 라 몬테 영 등이 있다.

반면 음악에서의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이러한 특징을 계승하면서 선율과 화성, 다양한 음악적 구조 등을 보다 자유롭게 결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음악가이자 평론가 카일 간(Kyle Gann)은 포스트미니멀리즘을 단순히 미니멀 음악보다 나중에 등장한 음악이 아니라, 미니멀 음악의 특징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작곡 방식을 발전시킨 경향으로 설명했다.[12]

다만 음악에서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명칭의 범위와 특징에 대해서는 음악학자마다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특히 시각예술에서의 포스트미니멀리즘과 단순히 같은 사상이나 제작 방식을 공유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작품 보존의 문제

포스트미니멀리즘은 현대 미술관의 작품 보존과 복원에 새로운 문제를 제기했다.

전통적인 조각에서는 작품이 제작된 뒤 원래의 형태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 목표였다.

그러나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 가운데는 시간이 지나면서 변색하거나 손상되는 재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대표적으로 에바 헤세는 라텍스와 유리섬유 같은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재료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이 변하거나 약해질 수 있다.

작품을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 위해 재료를 교체한다면 작가가 직접 사용했던 원래의 물질이 사라질 수도 있다.

반대로 원래의 재료를 그대로 보존하면 작품이 계속 손상될 수도 있다.

따라서 미술관에서는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물질적인 특성, 보존 방법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에바 헤세의 작품은 이러한 보존 문제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국립미술관은 헤세의 《Contingent》 관련 작품에 사용된 재료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손상될 수 있다는 점과, 작가가 이러한 재료의 불안정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설명한다.[13]

일반적인 미술관에서는 작품이 망가지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한데,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에서는 그 망가지는 과정 자체가 작품의 성격과 연결될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이 자연적으로 손상되도록 만들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품의 보존 방식은 재료와 작가의 의도, 전시 환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평가

현대 조각의 확장

포스트미니멀리즘은 현대 조각의 개념을 확장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조각이 반드시 단단한 재료로 제작된 고정된 물체여야 한다는 관념에 도전했다.

유연한 재료와 액체, 중력과 시간, 제작 행위 등이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또한 회화와 조각, 행위예술과 설치미술 사이의 경계를 흐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미술적 실험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변화는 1970년대 이후의 설치미술과 현대 조각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예술작품에 대한 관념 변화

포스트미니멀리즘의 또 다른 의미는 작품의 완성된 형태만큼 그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조건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작가가 원하는 형상을 얼마나 정확하게 구현했는지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작가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대신 재료와 환경의 변화가 작품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했다.

그 결과 예술작품은 반드시 영원히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완성된 물체일 필요가 없다는 관점이 발전했다.

이러한 생각은 이후 설치미술과 행위예술, 개념미술 등 여러 분야와 연결되었다.

지나치게 난해하다는 비판

포스트미니멀리즘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가운데 하나는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일부 작품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재료를 단순히 늘어뜨리거나 바닥에 흩어 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가 펠트 조각을 잘라 바닥에 던져 놓았다면, 일반 관객들은 이것이 왜 예술작품인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이러한 비판은 현대미술 전반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와도 연결된다.

미술관에 작품을 설치하고 작가의 의도를 설명하는 글이 붙어 있어야만 예술적 의미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작품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사실만으로 그 작품이 예술적 가치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작가가 복잡한 철학적인 설명을 붙였다는 이유만으로 작품의 완성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바닥에 천 조각을 던져 놓은 것을 보고 관객이 왜 이게 예술이냐고 물었을 때, 설명을 세 시간이나 해야 한다면 과연 그 설명이 작품보다 중요한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오해

미니멀리즘보다 더 단순한 미술이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 때문에 미니멀리즘을 더욱 극단적으로 발전시킨 사조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반대에 가까운 특징도 나타났다.

특히 미니멀리즘의 엄격한 기하학적 형태와 구조에서 벗어나 유기적이고 불규칙적인 형태를 실험했다.

따라서 포스트미니멀리즘이 반드시 미니멀리즘보다 물건이나 요소의 수가 적은 미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아무 재료나 던져 놓으면 된다

포스트미니멀리즘에서는 재료의 우연적인 변화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아무 재료나 바닥에 던져 놓으면 자동으로 예술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어떤 재료를 사용할지, 어떤 행위를 수행할지, 작품을 어떤 공간에 설치할지 등을 결정한다.

또한 작품의 제작 과정과 결과 사이에 어떤 관계가 존재하는지도 중요한 문제다.

우연이 작품의 일부가 된다고 해서 작가의 의도와 판단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니멀리즘을 완전히 부정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의 한계에 대한 비판에서 등장했지만 그 특징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반복적인 구조와 산업적인 재료, 단순한 형태 등 미니멀리즘의 특징이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에서도 사용되었다.

다만 이러한 요소를 보다 유연하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활용했다는 차이가 있다.

모든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 망가진다

일부 작품에서 재료의 불안정성과 시간에 따른 변화가 중요한 요소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이 손상되도록 만들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강철과 납 등 비교적 안정적인 재료를 사용하는 작품들도 존재하며, 전시와 보존 방식에 따라 작품의 상태가 달라질 수 있다.

여담

  •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 이후에 등장한 예술적 경향이지만 미니멀리즘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대체한 것은 아니다.
  • 1960년대 후반 미국을 중심으로 등장했으며, 1970년대에는 과정미술과 설치미술 등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쳤다.
  • 명칭은 미술평론가 로버트 핀커스위튼이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특히 1971년 에바 헤세에 관한 비평과 연결된다.
  • 로버트 모리스는 미니멀리즘의 이론을 발전시킨 인물이면서 동시에 포스트미니멀리즘의 발전에도 기여했다. 자신이 만든 예술적 규칙을 스스로 벗어나려고 했던 양반인 셈이다.
  • 1968년 모리스가 발표한 《반형태》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의 이론적 발전에서 중요한 글로 평가된다.
  • 에바 헤세는 라텍스와 섬유, 고무 등 유연한 재료를 활용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다만 1970년 34세의 나이로 사망하면서 활동 기간은 매우 짧았다.
  • 에바 헤세의 《Contingent》는 라텍스와 천, 유리섬유 등을 이용하여 제작되었으며, 작품의 보존과 복원에 관한 논의에서도 중요한 사례로 언급된다.
  • 리처드 세라는 납과 강철 등 산업적인 재료를 활용했다. 특히 초기 작품에서는 금속을 굴리거나 구부리고 던지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 세라의 《Splashing》은 녹인 납을 벽과 바닥 사이에 던지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미술관 바닥과 벽을 이용하여 새로운 형태의 조각을 만든 것이다.
  • 린다 벵글리스는 액체 상태의 재료를 바닥에 붓는 방식으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탐구했다. 작품의 형태가 재료의 흐름과 굳어지는 과정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 특징이다.
  • 센가 넨구디는 여성용 스타킹에 모래를 넣고 늘어뜨린 작품들로 유명하다. 이 작품들은 신체의 형태와 탄력, 변화 등을 연상시킨다.
  •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유연한 재료와 불규칙적인 형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모든 작품에서 반드시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과정미술과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지만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과정미술은 제작 행위와 과정 자체를 강조하는 개념이며,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리즘 이후의 보다 폭넓은 예술적 변화를 가리킨다.
  • 개념미술 역시 비슷한 시기에 발전했지만 개념과 아이디어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 대지미술과도 연관성이 있다. 특히 자연환경과 시간의 변화, 작품이 놓인 공간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 1969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개최된 《Anti-Illusion: Procedures/Materials》 전시는 포스트미니멀리즘과 과정미술의 발전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작품의 완성된 결과보다 제작 과정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작품은 완성된 형태보다 제작 과정을 기록한 사진이나 영상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기도 한다.
  • 전통적인 조각은 오랫동안 형태가 유지되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지만, 일부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은 재료의 변화와 불안정성을 받아들였다.
  • 이러한 특징은 미술관의 작품 보존 문제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라텍스와 고무처럼 시간이 지나면 변색하거나 손상되는 재료를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가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
  • 모든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이 예술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제작 방식이나 독특한 재료 자체가 작품의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미니멀리즘에 비해 형태가 자유로워졌다는 특징은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만들어도 되는 미술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 미니멀리즘은 작품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정밀한 형태를 추구했고,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완벽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에도 예술적인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는 표현은 음악에서도 사용되지만 시각예술에서의 개념과는 별도의 역사적인 맥락을 가지고 있다.
  • 1980년대 이후 음악에서의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미니멀 음악의 반복적인 구조를 계승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결합한 작곡 경향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 현대의 미니멀 라이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이 물건을 적게 소유하다가 다시 물건을 늘리는 생활방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 맥시멀리즘과도 완전히 같은 개념은 아니다. 포스트미니멀리즘은 단순히 미니멀리즘보다 복잡하거나 화려한 작품을 만드는 사조가 아니다.
  • 현대미술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금속 상자 몇 개를 놓아둔 미니멀리즘 작품도 이해하기 어려운데, 이번에는 천이나 고무를 바닥에 늘어뜨린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까지 보면서 더욱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
  • 미니멀리즘 작품을 보고 이 정도는 나도 만들겠다고 생각했는데, 포스트미니멀리즘 작품을 보고는 이 정도는 우리 집 창고에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 물론 일상적인 물건과 예술작품의 차이는 사용된 재료 자체뿐 아니라 작가의 의도와 제작 과정, 전시 환경, 미술사적인 맥락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결국 포스트미니멀리즘은 예술작품이 반드시 작가의 계획대로 완벽하게 완성된 물체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중요한 미술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관련 문서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