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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표현주의(抽象表現主義, Abstract Expressionism)는 1940년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은 현대미술 운동이다. 구체적인 사물과 인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대신 색채와 선, 형태, 붓질과 물감의 질감을 통해 감정과 정신적 경험을 표현하려 했으며, 커다란 캔버스와 자유로운 제작방식이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대표적인 작가로는 잭슨 폴록, 윌럼 데 쿠닝,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 리 크래스너 등이 있다.

추상표현주의는 흔히 물감을 캔버스에 마구 뿌리거나 커다란 색면 몇 개만 그려놓은 미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모든 작가가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던 것은 아니다. 폴록은 바닥에 펼친 캔버스에 물감을 흘리고 뿌리는 작업으로 유명했고, 데 쿠닝은 거친 붓질과 인체의 형태를 결합했으며, 로스코는 화면에 커다란 색면을 배치해 색채 자체가 관람객의 감정에 작용하도록 만들었다. 서로 작품의 형태는 상당히 다르지만, 기존의 재현 중심 회화에서 벗어나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색채·형태 자체를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하나의 미술사적 흐름으로 묶인다.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계 미술의 중심이 유럽, 특히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이동하는 과정과도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20세기 전반까지 현대미술의 주요 운동은 프랑스를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전쟁 이후 뉴욕에서는 미국 출신 예술가와 유럽에서 망명한 예술가들이 교류하면서 새로운 미술운동이 형성됐다. 추상표현주의는 이러한 환경에서 등장한 미국의 대표적인 현대미술 운동 가운데 하나였으며, 이후 팝 아트미니멀리즘, 색면추상 등 여러 미술 흐름에 영향을 줬다.

쉽게 말하면 “세상에 있는 물건을 잘 그리는 게 아니라, 캔버스와 물감만으로도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표현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미술이다. 다만 그 방법을 두고 어떤 작가는 온몸을 움직이며 물감을 뿌렸고, 다른 작가는 거대한 캔버스에 색면 두세 개를 그렸으니 결과물은 상당히 다르게 생겼다.

역사

유럽 현대미술과 뉴욕의 전위예술

추상표현주의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갑자기 등장한 운동이 아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는 입체주의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 기존의 사실적 재현에서 벗어나려는 여러 예술운동이 발전하고 있었다. 특히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은 꿈과 무의식, 우연한 연상을 작품의 중요한 요소로 다뤘으며, 이러한 실험은 훗날 미국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줬다.

1930년대부터 1940년대 초반에는 유럽의 정치적 불안과 전쟁을 피해 여러 예술가가 미국으로 이주했다. 막스 에른스트앙드레 브르통, 마르셀 뒤샹, 피에트 몬드리안 등은 미국에서 활동하거나 체류하면서 현지 예술가들과 교류했으며, 뉴욕은 유럽의 전위예술과 미국 미술이 만나는 중요한 장소가 됐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은 작가가 모든 형태를 사전에 계획하지 않고 작업 과정에서 나타나는 우연한 결과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폴록과 여러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실험과 연결됐다.

미국 내부에서도 새로운 미술에 대한 탐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1930년대 대공황 시기에는 연방정부의 미술지원사업을 통해 여러 예술가가 벽화와 공공미술을 제작했고, 미국 원주민의 미술과 멕시코 벽화운동, 유럽의 추상미술 등 다양한 표현방식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추상표현주의는 이처럼 여러 문화와 예술적 경험이 뉴욕에서 교류하는 과정에서 발전한 운동으로, 유럽 미술의 영향을 단순히 복제한 결과라고 보기는 어렵다.

초기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에는 신화와 고대문화, 인간과 동물을 연상시키는 형태가 자주 등장했다. 이들은 구체적인 사건이나 인물을 묘사하는 대신 인간의 보편적인 경험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언어를 찾으려 했고, 점차 기존의 사물과 형태를 줄이거나 해체하면서 순수한 색채와 선, 물감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제2차 세계 대전과 추상표현주의의 형성

제2차 세계 대전은 추상표현주의가 형성되는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었다. 유럽의 대규모 전쟁과 민간인 학살, 원자폭탄의 등장 등은 기존의 문명과 인간에 대한 믿음을 흔들었고, 전쟁을 경험한 예술가들 사이에서는 전통적인 인물화와 풍경화만으로 당시의 불안과 인간의 경험을 표현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이 나타났다.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재현하는 대신 거대한 화면과 색채, 비정형적인 형태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존재에 관한 질문을 다루려 했다.

1940년대 후반부터 폴록과 데 쿠닝, 로스코, 뉴먼 등은 각자의 독자적인 화풍을 발전시켰다. 폴록은 1947년 무렵부터 바닥에 놓은 캔버스에 물감을 흘리고 뿌리는 기법을 본격적으로 활용했고, 로스코는 여러 형태를 배치하던 초기 그림에서 점차 커다란 색면을 중심으로 한 작품으로 이동했다. 뉴먼은 넓은 단색 화면에 수직선을 배치한 작품을 제작했으며, 데 쿠닝은 거친 붓질과 인체의 형태를 자유롭게 결합했다.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은 1946년 미술평론가 로버트 코츠가 미국의 화가 한스 호프만 등의 작품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 명칭에 포함된 모든 작가가 스스로를 추상표현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며, 화풍과 예술적 목표 역시 상당히 달랐다. 오늘날에도 추상표현주의는 하나의 통일된 제작기법이나 엄격한 규칙을 가진 단체라기보다, 1940~1950년대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추상적인 표현의 가능성을 확장한 여러 예술가를 묶는 미술사적 용어로 사용된다.

1950년대의 전성기

1950년대에는 추상표현주의가 미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흐름으로 성장했다. 뉴욕의 갤러리와 미술관에서는 대규모 추상회화 전시가 열렸고, 미술평론가와 수집가들의 관심도 커졌다. 특히 잭슨 폴록은 기존의 이젤과 붓 중심 회화에서 벗어난 새로운 제작방식으로 대중매체의 주목을 받았으며, 로스코와 데 쿠닝, 뉴먼 등도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기 미국 현대미술의 국제적 위상도 크게 달라졌다. 20세기 전반까지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중심지는 파리였지만 전쟁 이후 뉴욕은 새로운 미술시장의 중심지이자 예술가들의 주요 활동무대로 성장했다. 추상표현주의는 뉴욕이 국제 현대미술의 중심지로 자리 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미국 미술이 유럽의 새로운 예술운동을 받아들이는 위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처음부터 대중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커다란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거나 색면 몇 개만 배치한 그림은 전통적인 회화에 익숙한 관람객에게 낯설게 느껴졌고, 작품의 의미와 완성도를 둘러싼 논쟁도 계속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폴록과 로스코 등이 현대미술의 대표적인 거장으로 인정받게 됐지만, 그들의 작품이 등장했을 당시에는 기존의 그림과 상당히 다른 표현방식 때문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1960년대 들어 팝 아트와 미니멀리즘 등 새로운 미술운동이 등장하면서 추상표현주의가 현대미술 전체를 주도하던 시기는 점차 지나갔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가 발전시킨 대형 캔버스와 색채의 표현력, 작품 제작과정에 대한 관심은 이후에도 계속 영향을 미쳤으며, 새로운 미술운동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유산을 받아들이거나 이에 반발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표현방식을 발전시켰다.

주요 특징

액션 페인팅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신체의 움직임을 중요한 표현요소로 다루는 방식이다. 미술평론가 해럴드 로젠버그가 1952년 발표한 글 〈미국의 액션 페인터들〉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개념으로, 그림을 미리 완성된 이미지를 실현하는 결과물이라기보다 캔버스 위에서 예술가의 행동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이해하는 관점과 연결된다.

대표적인 작가는 잭슨 폴록이다. 폴록은 캔버스를 이젤에 세워놓고 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바닥에 펼쳐놓고 그 주변을 움직이면서 물감을 흘리거나 뿌렸다. 막대와 굳은 붓 등을 이용해 물감을 떨어뜨리고, 물감의 양과 점성, 손과 몸의 움직임을 조절해 화면 전체에 복잡한 선과 흔적을 남겼다. 결과적으로 화면에는 전통적인 회화에서 나타나는 명확한 중심인물이나 배경이 없고, 서로 얽힌 선과 색채가 캔버스 전체에 퍼지는 구성이 나타났다.

이런 작품을 처음 보면 “물감통 엎지른 거 아님?”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폴록의 작업은 아무런 통제 없이 물감을 무작위로 뿌리는 행위와는 차이가 있다. 그는 물감의 움직임과 화면 전체의 균형, 선의 밀도와 리듬을 살피며 작업했고, 실제 제작과정에서는 우연성과 작가의 판단이 함께 작용했다. 물감이 떨어지는 모든 순간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는 없지만, 어느 위치에서 얼마나 많은 물감을 흘릴지 결정하고 작업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한 것이다.

액션 페인팅에는 폴록과 달리 붓을 이용한 강한 움직임을 강조하는 작품도 포함된다. 윌럼 데 쿠닝과 프란츠 클라인은 거칠고 역동적인 붓질을 활용했으며, 화면 위에 남은 획과 물감의 두께를 통해 제작과정의 움직임을 드러냈다. 따라서 액션 페인팅을 물감을 뿌리는 드리핑 기법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드리핑은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방식 가운데 하나지만, 액션 페인팅 전체가 드리핑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색면회화

색면회화(Color Field Painting)는 넓은 색채 영역을 화면의 주요 구성요소로 사용하는 회화 경향이다. 액션 페인팅이 선과 붓질, 신체의 움직임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색면회화에서는 커다란 색면과 색채 사이의 관계, 색이 만들어내는 공간감과 감정적 경험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작가는 마크 로스코와 바넷 뉴먼, 클리퍼드 스틸이다. 로스코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번지는 직사각형의 색면을 배치했으며, 뉴먼은 넓은 단색 화면에 수직으로 이어지는 선을 배치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스틸은 거칠고 불규칙한 경계를 가진 거대한 색채 영역을 이용해 강한 시각적 긴장감을 표현했다.

색면회화는 형태가 단순하기 때문에 실제로 작품 앞에 서보지 않으면 그 특징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 특히 로스코는 커다란 캔버스에 얇은 물감층을 여러 번 겹쳐 색채의 깊이와 미묘한 변화를 만들었고, 화면 가까이에서 작품을 볼 때 관람객이 색채에 둘러싸이는 듯한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작은 화면이나 인쇄물로 보면 직사각형 몇 개로 이루어진 평범한 그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 작품에서는 색면의 크기와 물감층, 주변 공간과 조명이 함께 작용한다.

물론 작품을 실제로 본다고 모든 사람이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는 로스코의 색면에서 평온함과 깊이를 느낄 수 있고, 다른 사람은 아무런 감흥 없이 “그래서 이게 뭘 그린 건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만 색면회화는 특정한 사물을 알아보게 만드는 대신 색채 자체가 관람객에게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탐구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대형 캔버스와 화면 전체의 구성

추상표현주의 작품 가운데에는 사람의 키보다 높거나 전시장 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회화가 많다. 이러한 크기는 단순히 화가가 자신의 그림을 더 비싸게 팔기 위해 캔버스를 크게 만든 것과는 다른 문제다. 화면이 커지면 관람객은 그림을 작은 창문처럼 멀리서 바라보는 대신 자신의 시야 대부분을 차지하는 색채와 형태를 직접 경험하게 되며, 작품 속의 선과 색면도 신체적인 규모로 느껴질 수 있다.

폴록의 드리핑 회화에서는 이러한 대형 화면이 제작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는 바닥에 펼친 캔버스 주위를 움직이고 때로는 화면 안쪽까지 접근하면서 물감을 흘렸기 때문에 작업에는 팔과 손뿐 아니라 몸 전체의 움직임이 개입됐다. 로스코와 뉴먼 역시 커다란 캔버스를 활용했지만 그들의 목적은 폴록처럼 역동적인 제작과정을 드러내는 것보다 관람객이 넓은 색채와 공간을 직접 경험하도록 만드는 데 가까웠다.

또한 추상표현주의에서는 화면의 특정한 중앙에 주요 사물을 배치하는 대신 캔버스 전체에 비교적 고르게 시각적 요소를 분산시키는 올오버 구성(All-over composition)이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난다. 폴록의 작품에서는 서로 얽힌 선이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면서 뚜렷한 중심과 주변의 구분이 약해지고, 관람객의 시선은 특정한 인물이나 물체에 고정되지 않은 채 그림 전체를 이동하게 된다.

다만 모든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대형 캔버스와 올오버 구성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소규모 드로잉과 판화, 조각도 존재했고, 작가마다 화면을 구성하는 방식도 달랐다. 추상표현주의는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하나의 정해진 화면 구성법에 따라 제작된 미술운동은 아니었다.

주요 작가

잭슨 폴록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56)은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화가다. 초기에는 구체적인 인물과 동물, 신화적인 형태를 표현했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바닥에 캔버스를 펼치고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드리핑 기법을 본격적으로 발전시켰다. 폴록의 작품에서는 선과 물감의 흔적이 화면 전체에 퍼져 있으며, 전통적인 원근법이나 중심인물 없이도 강한 움직임과 시각적 리듬이 나타난다.

대표작으로는 《넘버 1A, 1948》과 《하나: 넘버 31, 1950》, 《가을 리듬: 넘버 30, 1950》 등이 있다. 특히 《하나: 넘버 31, 1950》은 가로가 5m를 넘는 대형 작품으로,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복잡한 물감의 선과 흔적이 특징이다. 폴록은 작품 제목에 특정한 대상이나 이야기를 제시하기보다 번호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를 통해 관람객이 그림 속에서 구체적인 사물을 찾는 대신 화면 자체에 집중하도록 했다.

폴록의 작업은 흔히 우연한 행위의 결과로만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제작과정에 상당한 신체적 조절과 구성적 판단이 개입됐다. 또한 그는 드리핑 기법만 사용한 작가가 아니었으며, 작품활동 전반에 걸쳐 구체적인 형상과 추상적 표현을 오가며 여러 실험을 진행했다. 1956년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으며, 이후 추상표현주의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됐다.

윌럼 데 쿠닝

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다. 폴록과 함께 액션 페인팅의 대표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지만, 폴록과 달리 인체의 형태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추상적인 붓질과 구체적인 인물 표현을 결합했다는 특징이 있다.

대표작인 《여자 I》(Woman I, 1950~1952)에서는 여성의 신체와 얼굴을 거칠고 강렬한 붓질로 표현했다. 그림 속 인물은 전통적인 인물화처럼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지 않으며, 형태가 반복해서 덧칠되고 지워진 흔적이 화면에 남아 있다. 데 쿠닝은 작품을 제작하면서 형태를 계속 수정하고 물감을 긁어내거나 다시 칠하는 방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최종 화면에는 완성된 이미지뿐 아니라 그림을 만드는 과정의 흔적도 나타난다.

그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가 반드시 현실의 형상을 완전히 없애야만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인물과 풍경을 연상시키는 형태를 남겨두면서도 색채와 붓질, 화면의 움직임을 통해 추상적인 표현을 발전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크 로스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라트비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한 화가로, 색면회화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초기에는 인물과 신화적인 형태를 그렸지만 1940년대 후반부터 점차 형태를 단순화했고, 1950년대에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여러 개의 직사각형 색면을 배치하는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했다.

로스코의 그림에서는 색면의 가장자리가 부드럽게 번지고, 서로 다른 물감층이 겹치면서 색채의 깊이와 미묘한 변화가 나타난다. 작품을 작은 사진으로 보면 단순한 색깔 블록 몇 개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물감의 투명도와 층, 화면의 크기와 주변 조명 등이 함께 작용한다. 로스코는 관람객이 그림을 멀리서 객관적인 대상으로 관찰하기보다 가까이 다가가 색채가 만드는 공간과 감정을 경험하기를 원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주황, 빨강, 노랑》과 여러 번호가 붙은 색면회화가 있으며, 텍사스주 휴스턴의 로스코 채플에는 명상과 사색을 위해 제작된 대형 회화들이 설치되어 있다. 로스코의 작품은 화려한 색채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년에는 어둡고 절제된 색채를 활용한 작업도 많아졌으며, 단순한 화면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존재에 관한 문제를 다루려 했다.

바넷 뉴먼과 프란츠 클라인

바넷 뉴먼(Barnett Newman, 1905~1970)은 넓은 단색 화면에 수직선을 배치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그는 이러한 수직선을 집(zip)이라고 불렀으며, 선을 이용해 커다란 색면을 구분하고 관람객이 색채와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탐구했다. 대표작인 《비르 헤로이쿠스 수블리미스》(Vir Heroicus Sublimis, 1950~1951)는 거대한 붉은 화면에 여러 개의 수직선이 배치된 작품으로, 관람객이 화면 가까이에서 작품의 규모와 색채를 경험하도록 구성됐다.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1910~1962)은 흰색과 검은색의 강한 대비를 활용한 대형 추상회화로 유명하다. 그의 작품에서는 넓은 붓으로 그린 듯한 검은색 획이 화면을 가로지르며 강렬한 움직임과 구조적인 형태를 만들어낸다. 다만 클라인의 작품이 즉흥적인 붓질처럼 보인다고 해서 항상 별다른 준비 없이 제작된 것은 아니다. 그는 작은 드로잉과 구상을 확대하는 작업도 진행했으며, 검은색뿐 아니라 다른 색채를 활용한 작품도 제작했다.

뉴먼과 클라인은 화면 구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지만, 구체적인 사물을 묘사하지 않고도 선과 색채의 배치만으로 강한 시각적 경험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추상표현주의의 다양성을 보여준다.

여성 작가와 다른 주요 인물

추상표현주의를 소개할 때 폴록과 데 쿠닝, 로스코 등 남성 작가들이 주로 언급되지만 여성 작가들 역시 이 운동의 형성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리 크래스너(Lee Krasner, 1908~1984)는 콜라주와 추상회화, 역동적인 붓질을 활용해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발전시킨 화가다. 폴록의 아내로도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은 남편의 활동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았으며, 추상표현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참여한 독립적인 예술가로 연구된다.

헬렌 프랭컨탈러(Helen Frankenthaler, 1928~2011)는 희석한 물감을 바탕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흡수시키는 소크 스테인(Soak-stain) 기법을 발전시켰다. 대표작 《산과 바다》(Mountains and Sea, 1952)는 물감이 캔버스의 표면에 두껍게 쌓이기보다 천에 스며드는 특성을 활용한 작품으로, 이후 색면회화의 새로운 발전에도 영향을 줬다.

조앤 미첼(Joan Mitchell, 1925~1992)은 강한 붓질과 색채를 통해 풍경과 기억, 감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했으며, 노먼 루이스(Norman Lewis, 1909~1979)는 뉴욕 추상표현주의와 관련된 주요 아프리카계 미국인 화가로 활동했다. 이 밖에도 클리퍼드 스틸, 로버트 머더웰, 애돌프 고틀리브, 아실 고르키, 한스 호프만 등 여러 작가가 추상표현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참여했다.

이처럼 추상표현주의는 서로 다른 출신과 표현방식을 가진 예술가들의 활동을 포함한다. 대표적인 몇몇 작가의 작품만 보고 추상표현주의 전체가 물감을 뿌리는 그림이나 색면 몇 개로 이루어진 그림이라고 생각하면 실제 운동의 다양성을 놓치기 쉽다.

추상표현주의와 다른 미술운동

추상표현주의는 이름에 추상표현주의가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미술운동과 혼동하기 쉽다. 우선 표현주의는 20세기 초 독일 등을 중심으로 발전한 예술운동으로, 현실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하기보다 작가의 감정과 주관적인 경험을 강조했다. 표현주의 작품에서는 실제 인물과 풍경이 등장하더라도 색채와 형태가 강하게 변형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추상표현주의는 이러한 감정적 표현을 더욱 추상적인 형태로 발전시킨 운동이지만, 독일 표현주의가 그대로 미국에서 이름만 바뀌어 등장한 것은 아니다.

초현실주의와도 밀접하게 연결된다. 초현실주의는 꿈과 무의식, 우연한 연상을 중요한 표현수단으로 다뤘으며,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은 특히 자동기술법과 우연성을 활용하는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초현실주의에서는 현실에서는 존재하기 어려운 기괴한 인물과 사물, 꿈속 같은 장면이 주요한 이미지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추상표현주의에서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거의 사라지고 물감의 움직임과 색채 자체가 화면의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두 운동 모두 내부적으로 다양한 작품을 포함하므로 이런 구분이 모든 작품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미니멀리즘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1960년대에 발전한 주요 미술운동 가운데 하나다.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추상표현주의에서 강조되던 개인적인 감정과 즉흥적인 붓질을 줄이고,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와 반복, 재료와 공간의 관계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였다. 추상표현주의가 캔버스 위에서 예술가의 흔적과 색채의 감정적 효과를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미니멀리즘에서는 작가의 손길이 두드러지지 않는 규칙적인 형태와 물체 자체의 존재를 강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팝 아트 역시 추상표현주의 이후 등장한 흐름이지만 방향은 상당히 달랐다. 추상표현주의가 개인의 내면과 추상적 표현을 탐구했다면 팝 아트는 광고와 만화, 대중상품과 유명인의 이미지처럼 현대 소비사회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상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했다. 앤디 워홀로이 리히텐슈타인 등은 대량생산된 이미지와 대중문화의 표현방식을 활용했으며, 이러한 작업은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표현과 대비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실제 현대미술의 역사는 한 운동이 완전히 사라진 뒤 다음 운동이 등장하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추상표현주의와 팝 아트, 미니멀리즘은 일정 기간 서로 겹쳐 활동했고, 예술가들 역시 하나의 양식만 평생 유지한 것은 아니다. 미술운동의 명칭은 복잡한 작품과 활동을 이해하기 위한 분류이지 모든 예술가가 반드시 따라야 했던 규칙은 아니다.

영향과 평가

추상표현주의는 미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인 주목을 받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는 유럽의 여러 도시가 현대미술의 주요 중심지였지만, 전후 뉴욕에서는 미국 출신 작가와 유럽 망명 예술가들이 교류하면서 새로운 미술운동이 성장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미술관과 갤러리가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전시하고 소장했으며, 뉴욕은 세계 현대미술의 주요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미술의 제작방식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폴록과 데 쿠닝 등은 캔버스 위에 남은 붓질과 물감의 흔적, 작품 제작과정 자체를 중요한 표현요소로 다뤘고, 로스코와 뉴먼 등은 거대한 색면과 단순한 형태를 통해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경험하는 공간과 감각을 강조했다. 이러한 실험은 이후 색면추상과 설치미술, 행위예술 등에서 화면과 공간, 신체와 관람객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과 연결됐다.

반면 추상표현주의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작품에 구체적인 사물이나 이야기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관람객이 그림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으며, 물감을 뿌리거나 단순한 색면을 배치하는 작업이 어느 정도의 기술과 구성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되어 왔다. 또한 미술사에서 추상표현주의를 소개할 때 일부 남성 화가에게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면서 여성 작가와 비백인 작가들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됐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추상표현주의의 대형 회화가 고가에 거래되는 현상 역시 대중의 관심과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작품의 제작방식을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아 보여도 실제 미술시장에서 평가되는 작품의 가격에는 작가의 역사적 위치와 희소성, 소장 이력, 미술관과 수집가들의 수요 등 여러 요인이 함께 반영된다. 따라서 “나도 물감 뿌릴 수 있는데 왜 이건 비쌈?”이라는 질문에 단순히 그림을 따라 그리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작품이 등장한 시대에 어떤 표현방식을 제시했고 이후 미술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미술시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거래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추상표현주의의 의미는 그림 속에서 구체적인 사물을 찾아내는 것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어떤 작품에서는 물감이 화면에 남긴 흔적과 제작과정이 중요하고, 다른 작품에서는 색채가 관람객에게 만들어내는 감각과 공간적 경험이 중요하다. 그림이 반드시 무엇인가를 닮아야 할 필요는 없으며, 선과 색채·형태 자체로도 표현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대형 회화와 다양한 제작방식으로 발전시킨 운동이라는 점에서 추상표현주의는 현대미술의 주요한 전환점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여담

  • 추상표현주의는 영어로 Abstract Expressionism이라고 한다.
  • 1940년대 미국 뉴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1950년대에 전성기를 맞았다.
  •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 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 1946년 미술평론가 로버트 코츠가 미국의 추상회화를 설명하면서 추상표현주의라는 명칭을 사용했다.
  •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술가들이 많아 뉴욕 스쿨(New York School)이라는 명칭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다만 두 용어가 항상 완전히 같은 범위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 대표적인 작가로는 잭슨 폴록, 윌럼 데 쿠닝, 마크 로스코, 바넷 뉴먼, 프란츠 클라인 등이 있다.
  • 리 크래스너와 헬렌 프랭컨탈러, 조앤 미첼 등 여러 여성 작가도 추상표현주의의 발전에 참여했다.
  • 액션 페인팅과 색면회화는 추상표현주의를 설명할 때 자주 구분하는 대표적인 경향이다.
  • 액션 페인팅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신체의 움직임을 중요한 표현요소로 다룬다.
  • 색면회화는 넓은 색채 영역과 색채 사이의 관계를 강조한다.
  • 잭슨 폴록은 캔버스를 바닥에 펼쳐놓고 물감을 흘리거나 뿌리는 드리핑 기법으로 유명하다.
  • 모든 추상표현주의 화가가 폴록처럼 물감을 뿌린 것은 아니다.
  • 마크 로스코는 커다란 캔버스 위에 직사각형의 색면을 배치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 바넷 뉴먼은 넓은 색면을 가로지르는 수직선을 사용했다.
  • 윌럼 데 쿠닝은 인체의 형태와 거친 붓질을 결합한 작품을 제작했다.
  • 추상표현주의 작품 가운데에는 사람의 키보다 높거나 전시장 벽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대형 회화가 많다.
  • 다만 모든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대형 회화인 것은 아니며, 작은 드로잉과 조각 등도 존재한다.
  • 화면 전체에 색채와 선을 분산시키는 올오버 구성도 주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 추상표현주의는 초현실주의의 자동기술법과 우연성을 활용하는 작업에서 영향을 받았다.
  • 그러나 모든 추상표현주의 작품이 무작위로 제작된 것은 아니다. 작품의 구성과 제작과정에는 예술가의 판단이 개입된다.
  • 팝 아트미니멀리즘은 추상표현주의 이후 등장한 주요 미술 흐름 가운데 하나다.
  • 실제 작품의 크기와 물감의 질감, 색채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작은 사진이나 스마트폰 화면으로 볼 때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 추상표현주의는 화면에 구체적인 사물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뭘 그린 거임?”이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알아볼 수 있게 그리는 것 자체가 작품의 주요 목표가 아닌 경우도 많다.
  • 폴록의 그림을 흉내 내려고 물감을 아무렇게나 뿌리면 비슷한 분위기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물감의 밀도와 움직임, 화면 전체의 구성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작업이 끝난 뒤 청소해야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주요 작가

  • 잭슨 폴록
  • 윌럼 데 쿠닝
  • 마크 로스코
  • 바넷 뉴먼
  • 프란츠 클라인
  • 리 크래스너
  • 헬렌 프랭컨탈러
  • 조앤 미첼
  • 클리퍼드 스틸
  • 로버트 머더웰
  • 애돌프 고틀리브
  • 아실 고르키
  • 한스 호프만
  • 노먼 루이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