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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저드
생년월일1928년 6월 3일 ~ 1994년 2월 12일
국적미국
출생지미국 미주리주 엑셀시어스프링스
학력컬럼비아 대학교
직업미술가, 미술평론가, 디자이너
활동기간1950년대 ~ 1994년
장르미니멀리즘, 현대미술, 조각, 설치미술
영문Donald Judd

도널드 저드(Donald Judd, 1928년 6월 3일 ~ 1994년 2월 12일)는 미국의 미술가·미술평론가·디자이너로, 1960년대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알루미늄·강철·황동·플렉시글라스 같은 산업재료로 만든 단순한 직육면체를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 배치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며, 특히 벽면에 같은 형태의 상자를 수직으로 쌓아 올린 이른바 스택(stack) 연작이 그의 상징처럼 됐다.[1]

저드는 흔히 미니멀리스트라고 불리지만 정작 본인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분류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전통적인 의미의 회화나 조각 가운데 하나로 규정하는 것에도 회의적이었고, 1965년 발표한 유명한 글 「Specific Objects」에서 당시 등장하던 새로운 3차원 작업들을 회화도 조각도 아닌 독립적인 대상으로 설명했다.[2]

처음에는 화가였다. 그런데 평면 캔버스가 현실의 공간을 흉내 내는 방식 자체에 점점 질려버렸고, 1960년대 초부터 실제 3차원 공간에 존재하는 물체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저드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묘사하느냐가 아니라 실제 물체가 얼마나 크고, 무슨 재료로 되어 있고, 벽이나 바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변의 빈 공간을 어떻게 바꾸는가였다.[3]

그래서 도널드 저드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금속상자 여러 개 벽에 붙여놨는데 이게 뭐임?"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게 정상이다. 저드도 그 상자를 뭔가의 상징처럼 해석해달라고 만든 게 아니었다. 그냥 그 물체와 실제 공간을 보라는 쪽에 가까웠다. 현대미술의 골치 아픈 점은 설명을 읽으면 쉬워지기도 하지만, 설명을 읽고 나면 "그래서 진짜 상자였네"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생애

초기 생애와 미술평론

도널드 저드는 1928년 미주리주 엑셀시어스프링스에서 태어났다. 이후 여러 지역을 거쳐 성장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에 복무했다. 군복무를 마친 뒤 뉴욕으로 이동해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고, 동시에 Art Students League에서 미술교육을 받았다.[1]

1950년대에는 주로 화가로 활동했다. 초기에는 풍경과 인물 같은 전통적인 소재를 그리기도 했지만 점차 추상회화로 옮겨갔다. 동시에 미술평론가로도 활동해 1959년부터 1965년까지 《Arts》 등의 잡지에 뉴욕 전시 리뷰와 비평을 꾸준히 기고했다.[1]

이 시기의 글쓰기는 저드의 작품세계와 상당히 밀접했다.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비평하면서 자신이 미술에서 무엇을 싫어하고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정리했고, 특히 당시 미국 미술계를 지배하던 추상표현주의의 작가 중심적 감정표현과 화면 속 환영에 점차 반감을 가지게 됐다.

잭슨 폴록이나 윌럼 데 쿠닝 같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붓질과 몸의 움직임, 작가의 감정을 화면에 강하게 남겼다. 저드는 이와 반대로 작품에서 작가의 손맛과 감정적인 흔적을 최대한 줄이고 싶어했다. 누가 얼마나 격렬하게 붓을 휘둘렀는지를 보여주는 대신 작품 자체가 실제 공간에서 하나의 명확한 물체로 존재하도록 만들려 했다.

회화에서 3차원 작업으로

1960년대 초 저드는 회화의 구조적 한계에 점점 불만을 느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회화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결국 벽에 붙어 있는 평평한 직사각형이라는 점이었다.[4]

회화는 2차원 평면 위에서 입체감이나 공간감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실제 조각이나 물체는 처음부터 실제 공간을 차지한다. 저드는 후자를 더 직접적이고 명확한 것으로 봤다.

1962년 무렵부터 목재와 금속을 이용한 3차원 작업을 본격적으로 제작했고 1963년 뉴욕 Green Gallery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작품에서는 직육면체, 상자, 반복되는 모듈 같은 단순한 형태가 중심이 됐다.

1960년대 중반에는 직접 손으로 모든 작품을 만드는 방식에서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금속가공업체에 정확한 치수와 재료를 지정하고 제작을 맡겼으며, 자동차 도장용 래커나 산업용 아연도금 철판 등 기존 미술재료와 거리가 먼 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4]

작가가 작품에 손도 안 댔다고 욕할 수도 있지만 저드 입장에서는 그게 오히려 중요했다. 망치질을 얼마나 잘했느냐가 아니라 형태와 크기, 재료와 공간 사이의 관계가 작품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말년

1970년대 이후 저드는 뉴욕 미술계의 중심에서 점차 거리를 두고 텍사스주 마르파에 여러 건물과 토지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1973년부터 마르파의 건물들을 매입했고,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특정 공간에 영구적으로 설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5]

그에게 미술관의 임시전시는 상당히 불만스러운 것이었다. 어렵게 작품을 공간에 맞게 설치해놓아도 전시가 끝나면 철거되고 다음 전시에 맞춰 다시 아무렇게나 배치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저드는 작품과 공간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 제대로 설치된 상태를 오래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1986년에는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치나티 재단(Chinati Foundation)을 설립했다. 마르파의 옛 군사시설을 개조해 자신의 작품과 댄 플래빈, 존 체임벌린 등의 작품을 영구적으로 설치했다.[6]

저드는 1994년 2월 12일 뉴욕에서 사망했다. 향년 65세였다.

작품세계

Specific Objects

도널드 저드의 미술이론을 이해할 때 빠지지 않는 글이 1965년 《Arts Yearbook 8》에 발표된 「Specific Objects」다. 글 자체는 1964년에 작성됐다.[2]

저드는 당시 미국과 유럽에서 등장하던 여러 새로운 작품들이 기존의 회화와 조각이라는 두 범주에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프랭크 스텔라, 댄 플래빈, 클라스 올덴버그, 리 본테쿠 등 서로 상당히 다른 작가들을 함께 논하면서 실제 공간을 사용하는 새로운 작업의 가능성을 설명했다.[3]

중요한 것은 이 글이 도널드 저드 작품 사용설명서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드 자신도 나중에 「Specific Objects」가 자신의 작품만을 위한 선언문이나 교리처럼 작성된 글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2]

그럼에도 이 글은 이후 미니멀리즘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미술이론으로 자리잡았다. 저드는 평면 위에서 공간을 환영처럼 표현하는 대신 작품이 실제 공간 속에서 구체적인 크기와 재료를 가진 물체로 존재해야 한다고 봤다.

스택

저드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형식은 이른바 스택(stack)이다. 동일한 직육면체 상자 여러 개를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수직 배치하는 작품이다.

1967년 MoMA 소장 《Untitled》의 경우 아연도금 철판으로 만든 직육면체 12개에 녹색 래커를 칠하고 각각의 유닛 사이에 동일한 간격을 두어 벽에 설치한다.[4]

상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상자 사이의 빈 공간도 상자와 같은 크기로 반복되면서 작품 전체를 구성한다. 즉 물체-공간-물체-공간의 반복이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스택의 전체 높이는 전시장 천장 높이에 따라 조정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정해진 규칙을 유지하면서 공간 조건에 맞게 유닛 수를 바꾸는 방식이다.[4]

형태만 보면 산업용 선반을 벽에 수직으로 잘못 설치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저드는 실제로 건축과 공간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반응이 아주 엉뚱한 것도 아니다.

반복과 연속성

저드 작품에서는 동일한 형태의 반복이 매우 중요하다. 상자 하나를 특별한 중심으로 만들기보다 동일한 단위를 일정한 간격으로 반복해 어느 한 부분도 나머지보다 우월하지 않도록 했다.

이런 방식을 흔히 seriality, 즉 연속성 또는 계열성이라고 설명한다.[7]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화면 중앙에 주요 인물을 놓고 주변 요소들이 이를 보조하는 식의 위계적인 구성이 흔했다. 저드 작품에서는 이런 중심이 없다. 첫 번째 상자나 마지막 상자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도 아니고 모든 유닛이 같은 중요도를 가진다.

이러한 반복구조는 솔 르윗이나 칼 안드레 같은 동시대 작가들과도 연결된다. 다만 르윗이 규칙 자체를 작품 생산의 핵심으로 보고 안드레가 벽돌과 금속판의 물질성과 바닥 공간을 중시했다면, 저드는 하나의 통일된 물체가 실제 건축공간과 맺는 관계에 특히 민감했다.

산업재료와 외주제작

저드는 전통적인 조각재료인 청동과 대리석보다 알루미늄·철·황동·구리·플렉시글라스·합판 같은 산업재료를 자주 사용했다.

작품 제작을 전문 금속가공업체에 맡긴 것도 중요한 특징이다. 작가는 정확한 형태와 치수, 재료를 결정하고 실제 용접과 절단은 기술자가 수행했다.[4]

이는 르네상스 조각가처럼 작가가 직접 돌을 깎아야 진짜 작품이라는 전통적인 생각과 거리가 멀다. 저드에게 기술자의 손은 작품을 구현하는 수단이었으며 작품의 핵심은 작가가 결정한 형태와 재료의 관계에 있었다.

다만 산업생산품을 그대로 가져다가 놓는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도 차이가 있다. 저드 작품은 공업적인 방식으로 제작되지만 대부분 작품을 위해 특정한 치수와 구조로 새로 만들어진다. 변기 하나 주워다 전시장에 놓는 식이 아니라 금속공장에 존나 정확한 주문서를 보내는 방식에 가깝다.

색

미니멀리즘이라고 하면 흰색·검은색·금속색만 떠올리기 쉽지만 저드는 색을 상당히 중요하게 사용했다.

특히 투명하거나 반투명한 플렉시글라스를 금속과 결합해 빛이 작품 내부와 주변 공간에 영향을 주도록 했다. 1973년 구겐하임 소장 《Untitled》에서는 황동과 붉은 형광 플렉시글라스를 함께 사용했는데, 플렉시글라스를 통과한 빛 때문에 금속 표면과 내부 공간이 붉게 보인다.[3]

후기 작품에서는 여러 색의 알루미늄 패널을 조합한 작업도 제작했다. 따라서 저드의 작품을 단순히 회색 금속상자로만 생각하면 실제 작업의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이름

도널드 저드는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로 분류되지만 본인은 이 용어를 좋아하지 않았다.[8]

'최소한으로 줄인다'는 말은 그의 작업을 지나치게 단순화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저드가 목표로 한 것은 물건을 무조건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부분이나 위계적 구성을 없애고 작품을 하나의 명확한 전체로 만드는 것이었다.

작품이 단순해 보이는 것은 결과이지 목표 자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미술사에서는 이미 이름이 굳어버렸기 때문에 본인이 싫다고 해도 결국 도널드 저드를 검색하면 미니멀리즘이 제일 먼저 나온다.

다른 미니멀리스트들과의 차이

도널드 저드, 칼 안드레, 댄 플래빈, 로버트 모리스, 솔 르윗은 흔히 한꺼번에 미니멀리즘 작가로 묶이지만 실제 작업은 꽤 다르다.

작가 주요 특징
도널드 저드 반복되는 3차원 물체, 실제 공간, 산업재료
칼 안드레 벽돌·금속판을 바닥에 배열해 장소 자체를 조각으로 만듦
댄 플래빈 형광등과 빛을 이용해 공간을 변화시킴
솔 르윗 규칙과 시스템을 설계하고 다른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작업
로버트 모리스 물체와 관람자의 신체·공간 경험을 강조

특히 솔 르윗은 이후 개념미술로 강하게 이동했지만 저드는 예술작품을 순수한 아이디어로 환원하는 데 비판적이었다. 저드에게 작품은 결국 실제 크기와 재료를 가지고 현실 공간에 존재해야 했다.

마르파와 공간

왜 텍사스로 갔는가

1970년대 초 저드는 뉴욕의 미술환경에 점점 불만을 느꼈다. 작품을 제작해도 미술관이나 갤러리에서는 일정 기간 전시한 뒤 철거했고, 다른 공간에 옮길 때 작품의 위치와 관계가 완전히 바뀌었다.

저드는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설치되는 장소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작품만 떼어내 흰 벽의 아무 자리나 비어 있는 곳에 집어넣는 방식에 반대했다.

1973년 그는 서부 텍사스의 작은 도시 마르파에 건물을 구입하기 시작했다.[5] 당시 마르파는 대도시 미술계와는 거리가 먼 인구가 적은 지역이었으며, 넓은 사막과 버려진 건물, 옛 군사시설이 남아 있었다.

저드는 이 공간을 이용해 작품을 주변 건축과 자연환경에 맞춰 영구적으로 설치하려 했다.

치나티 재단

1978년 Dia Art Foundation의 지원을 받아 옛 Fort D. A. Russell 군사기지의 건물을 수리하고 대규모 작품 설치를 시작했다.[6]

이후 프로젝트의 운영방향을 둘러싼 문제 등을 거쳐 1986년 독립적인 비영리기관인 치나티 재단(Chinati Foundation)을 설립했다. 재단은 1987년 공식적으로 대중에게 문을 열었다.[6]

치나티 재단에는 저드 자신의 작품뿐 아니라 댄 플래빈, 존 체임벌린, 칼 안드레, 리처드 롱, 일리야 카바코프 등 여러 작가의 작품이 영구 설치돼 있다.

저드가 원한 것은 작품을 수백 점 모아놓은 일반적인 미술관이 아니었다. 소수 작가의 작품을 충분한 공간에 제대로 설치하고 건축과 주변 자연까지 함께 경험하게 하는 곳이었다.

100개의 알루미늄 작품

마르파의 대표적인 저드 작품 가운데 하나가 옛 포병창고 두 동에 설치된 100개의 밀 알루미늄 작품이다.

외형의 기본 크기는 동일하지만 각각의 상자 내부 구조는 서로 다르다. 어떤 것은 칸막이가 있고 어떤 것은 사선으로 나뉘며, 열린 방향과 내부의 반사도 달라진다.

창고 벽에는 커다란 창문이 있어 텍사스의 강한 자연광이 알루미늄 표면에 반사되고 시간에 따라 작품의 모습이 달라진다.[6]

사진으로 보면 은색 금속상자 100개인데 실제 공간에서는 상자 사이의 거리와 빛, 건물 전체의 길이, 주변 사막까지 같이 작품 경험에 포함된다. 저드가 작품을 인터넷 이미지 한 장으로 보는 것보다 실제 공간에 가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던 이유가 이런 데 있다.

15개의 콘크리트 작품

치나티 재단 부지 야외에는 저드의 대형 콘크리트 작품 15개도 설치돼 있다.[6]

거대한 직육면체 콘크리트 구조물을 사막의 넓은 공간에 일정한 관계로 배치한 작업이다. 각각의 구조는 일부가 열려 있거나 닫혀 있고 방향이 다르다.

작품 자체만 보면 건설현장에 쌓아놓은 대형 콘크리트 구조물처럼 보이지만 주변의 지평선과 햇빛, 그림자가 끊임없이 바뀌면서 같은 형태가 계속 다르게 보인다.

이런 작품에서는 조각과 건축의 구분도 상당히 애매해진다. 저드는 실제로 미술뿐 아니라 건축과 가구 디자인에도 깊이 관여했다.

건축과 가구

저드는 마르파의 여러 기존 건물을 직접 개조했으며 건축공간과 가구를 자신의 미술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책상, 의자, 침대, 선반 같은 가구도 직접 설계했다. 형태는 그의 작품처럼 직선과 단순한 구조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생활을 위해 기능적으로 제작했다.

Judd Foundation이 관리하는 마르파의 거주공간과 작업실에는 저드가 설계한 가구뿐 아니라 13,000권이 넘는 개인 장서와 자신이 수집한 다른 작가들의 작품도 남아 있다.[9]

저드에게 공간은 작품 걸어놓는 빈 상자가 아니었다. 어떤 의자를 놓고 어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며 작품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까지 전체 환경의 일부였다.

평가와 영향

미니멀리즘의 대표 인물

도널드 저드는 전후 미국 미술에서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1960년대 초 회화와 전통조각에서 벗어나 산업재료와 반복구조, 실제 공간을 이용하는 새로운 3차원 작업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1]

저드의 영향 이후 현대미술에서 작가가 직접 작품을 제작하지 않고 전문업체에 제작을 맡기는 방식도 훨씬 자연스러워졌다. 작품의 제작기술보다 디자인과 구조, 공간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생각 역시 현대조각과 설치미술에 광범위하게 퍼졌다.

그렇다고 저드가 단순히 손으로 작품 만들기 싫어서 업체에 외주 준 사람은 아니다. 그의 경우 산업적인 제작방식 자체가 작품의 정확성과 익명성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사람이 손으로 철판을 두들겨 감성적인 흔적을 만드는 대신 금속가공업체가 정해진 치수대로 정확하게 제작하는 것이 작업의 성격과 맞았다.

Specific Objects의 영향

「Specific Objects」는 전후 현대미술 비평에서 중요한 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저드는 이 글에서 특정한 하나의 운동 이름을 만들어내려 했다기보다 당시 등장하던 다양한 새로운 작업을 설명하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미니멀리즘과 설치미술,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벗어난 3차원 작업을 이해하는 핵심 텍스트가 됐다.[2]

특히 실제 공간(real space)을 강조한 저드의 생각은 작품을 독립적인 물체로만 보지 않고 전시장과 건축, 관람자의 위치까지 함께 고려하는 이후 미술에 큰 영향을 줬다.

개념미술과의 차이

저드는 같은 시대에 활동한 조셉 코수스, 로렌스 위너, 솔 르윗 등 개념미술 작가들과 여러 문제의식을 공유했지만 작품의 물질적 존재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했다.

코수스는 사전 정의와 언어를 작품으로 사용했고 위너는 문장으로 작품이 성립할 수 있다고 봤으며 르윗은 제작규칙과 아이디어를 작품의 핵심으로 삼았다.

반면 저드는 실제 금속의 색과 두께, 플렉시글라스의 투명성, 상자의 크기, 상자 사이의 거리처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물리적 조건을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저드 작품 사진만 보고 "직육면체네"라고 끝내면 작품에서 꽤 중요한 부분을 놓친다. 물론 직접 보러 텍사스 사막까지 비행기 타고 가야 제대로 이해된다는 구조도 관람객 입장에서는 상당히 빡센 미술이긴 하다.

마르파에 남긴 영향

저드가 마르파로 이주했을 당시 이곳은 텍사스 서부의 작은 도시였지만 이후 치나티 재단과 Judd Foundation을 중심으로 국제적인 현대미술 방문지가 됐다.[6]

현재 마르파에는 미술관과 갤러리, 작가 레지던시, 관광시설 등이 생겨났으며 전 세계 현대미술 관람객들이 찾아오는 도시로 알려져 있다.

반면 관광과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기존 지역사회가 변했다는 지적도 있다. 저드가 처음 마르파에 정착했을 때와 현재의 마르파는 경제적·문화적으로 상당히 다른 도시가 됐다.

비판

저드의 작업 역시 미니멀리즘 전반과 함께 "공장에서 만든 상자가 왜 미술이냐"는 비판을 오랫동안 받아왔다.

실제로 제작기술만 놓고 보면 저드가 직접 용접하지 않은 작품도 많고 형태 역시 상자와 직선이 대부분이다.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의 숙련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람객에게는 상당히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저드의 역사적 중요성은 금속상자 그 자체보다 작품의 존재방식을 바꾼 데 있다. 실제 공간과 재료를 그대로 작품의 핵심으로 삼고, 작가의 손기술과 표현적 붓질을 제거하고, 공업생산과 반복구조를 미술에 도입했으며, 나중에는 작품과 건축공간을 영구적으로 결합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렇다고 철판상자 아무거나 주문해서 벽에 붙이면 저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이케아 물류창고가 세계 최대 미니멀리즘 미술관이 된다.

주요 작품

연도 작품 특징
1963 《Untitled》 목재와 금속 등을 사용한 초기 3차원 작업
1965 《Untitled》 progression 계열 반복되는 직육면체와 수학적 간격
1967 《Untitled》 stack 동일한 상자 유닛을 벽에 수직 반복
1968 《Untitled》 대형 강철 구조를 이용한 바닥 작품
1969 《Untitled》 구리로 제작된 대표적인 stack 계열
1973 《Untitled》 황동과 붉은 형광 플렉시글라스를 결합
1980~1984 마르파 콘크리트 작품 15점 사막의 건축·자연환경과 결합된 야외 설치
1982~1986 밀 알루미늄 작품 100점 치나티 재단 포병창고에 영구 설치

이름

본명은 Donald Clarence Judd이며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도널드 저드라고 표기한다. 영어 이름은 Donald Judd다.

검색할 때는 도널드 저드, Donald Judd, 도널드 저드 미니멀리즘, Donald Judd Specific Objects, Donald Judd stack, 도널드 저드 마르파, Donald Judd Marfa, Chinati Foundation 등의 검색어가 주로 사용된다.

여담

  • 1928년 미주리주 엑셀시어스프링스에서 태어났다.
  •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했다.
  • 처음에는 화가였다.
  • 미술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상당한 양의 전시 리뷰를 작성했다.
  • 1965년 「Specific Objects」를 발표했다.
  • 흔히 미니멀리즘의 대표작가라고 하지만 본인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명칭을 선호하지 않았다.
  • 작품 대부분에 구체적인 제목을 붙이지 않고 《Untitled》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작품목록 보면 진짜 죄다 Untitled라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매우 불친절하다.
  • 직육면체 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 작품 제작을 전문 금속가공업체에 맡긴 경우가 많다.
  • 자동차용 래커와 공업용 금속 등 산업재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 금속과 플렉시글라스를 결합한 작업도 많이 제작했다.
  • 동일한 상자를 벽에 수직으로 반복 설치하는 작품은 일반적으로 stack이라고 불린다.
  • 텍사스주 마르파에 1973년부터 여러 건물을 구입했다.
  • 1986년 치나티 재단을 설립했다.
  • 마르파에는 저드의 대형 콘크리트 작품 15점과 알루미늄 작품 100점이 영구 설치돼 있다.
  • 가구와 건축 디자인도 직접 했다.
  • Judd Foundation은 현재 뉴욕과 마르파의 저드 관련 건물과 작품, 기록물을 관리하고 있다.
  • 1994년 65세로 사망했다.
  • 현대미술에서 금속상자 하면 일단 이 사람부터 생각날 정도로 이미지가 강하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