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 르윗 | |
| 생년월일 | 1928년 9월 9일 ~ 2007년 4월 8일 |
|---|---|
| 국적 | 미국 |
| 출생지 |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 |
| 학력 | 시러큐스 대학교 |
| 직업 | 미술가 |
| 활동기간 | 1950년대 ~ 2007년 |
| 장르 |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드로잉, 조각, 설치미술 |
| 영문 | Sol LeWitt |
솔 르윗(Sol LeWitt, 본명 Solomon LeWitt, 1928년 9월 9일 ~ 2007년 4월 8일)은 미국의 미술가로, 개념미술과 미니멀리즘을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특히 1960년대 후반부터 작품의 실제 제작보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아이디어와 규칙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자신이 직접 그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지시문을 따라 제작하는 벽 드로잉(Wall Drawings)으로 유명하다.[1][2]
르윗의 작업을 아주 단순하게 설명하면 미술가가 완성된 그림을 직접 만드는 대신 작품 제작법을 설계한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벽을 일정한 격자로 나누고 어느 지점에서 어느 지점까지 빨간색·파란색·노란색 선을 그으라는 규칙을 정해놓으면 실제 벽에 선을 긋는 사람은 르윗이 아니어도 된다. 심지어 르윗이 죽은 뒤에도 그의 지시문이 남아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계속 같은 작품을 다시 설치할 수 있다. 작가가 없어도 작품 제작이 돌아가는 구조라서 미술가라기보다 작업지시서 잘 쓰는 설계자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르윗이 미술사에 던진 핵심 문제였다.[3]
1967년 그는 《Artforum》에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Paragraphs on Conceptual Art)을 발표했고, 1969년에는 「개념미술에 관한 문장들」(Sentences on Conceptual Art)을 발표했다. 이 글들에서 르윗은 개념미술에서는 계획과 결정이 미리 이루어지고 실제 제작은 그 계획을 실행하는 단계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때 제시한 아이디어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된다는 생각은 이후 개념미술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문장 가운데 하나가 됐다.[4]
생애
솔 르윗은 1928년 미국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동유럽계 유대인 이민자였으며, 르윗은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해 학사학위를 받았다.[4]
대학 졸업 후에는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 복무했으며 군에서 그래픽 아티스트로 일했다. 복무를 마친 뒤 1953년 뉴욕으로 옮겨 여러 일을 하면서 미술활동을 이어갔다. 한때 건축가 I. M. 페이의 사무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근무했는데, 이 경험은 나중에 르윗이 작품과 설계의 관계를 생각하는 데 영향을 줬다. 건축가는 직접 벽돌을 하나하나 쌓지 않아도 설계를 통해 건물을 만든다는 사실이 르윗에게 꽤 중요한 모델이 됐다.[4]
1950년대 후반에는 MoMA에서 야간 근무직으로 일하기도 했다. 당시 함께 근무하거나 교류한 인물 중에는 이후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의 주요 작가가 되는 댄 플래빈, 로버트 라이먼 등이 있었다. 전후 뉴욕 미술계에서는 추상표현주의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르윗과 동료 세대는 작가의 감정과 몸짓이 화면에 직접 드러나는 추상표현주의 방식에 점점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르윗은 처음부터 개념미술가였던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회화와 드로잉을 제작했고 1960년대 초에는 기하학적인 형태와 반복구조를 이용한 입체작업으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정육면체와 격자, 직선 같은 단순한 요소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하거나 조합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미니멀리즘
르윗은 도널드 저드, 댄 플래빈, 로버트 모리스, 칼 안드레 등과 함께 1960년대 미니멀리즘과 연결되는 작가로 자주 분류된다. 당시 이들은 복잡한 조형이나 작가의 감정을 앞세우는 대신 정육면체, 직선, 반복되는 모듈 같은 단순한 형태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르윗의 초기 입체작업에서 특히 중요한 형태가 정육면체였다. 다만 꽉 찬 큐브보다는 모서리만 남긴 열린 정육면체를 반복적으로 사용했다. 이를 여러 개 연결하거나 일정한 수학적 규칙에 따라 배열하면서 하나의 기본형태에서 얼마나 많은 변형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 탐구했다.[1]
1966년의 《Serial Project, I (ABCD)》 같은 작품에서는 정육면체 구조를 여러 방식으로 반복해 배열했다. 이런 작품은 처음 보면 철제 선반 골조를 조립하다 중간에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각각의 모양을 예쁘게 만드는 데 있다기보다 하나의 규칙에서 가능한 조합을 체계적으로 펼쳐놓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르윗은 미니멀리즘과 연결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심은 점차 완성된 입체물 자체에서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아이디어로 이동했다.
개념미술
아이디어가 작품을 만든다
르윗은 1967년 《Artforum》에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을 발표하면서 개념미술의 원리를 비교적 명확하게 정리했다. 르윗에 따르면 개념적 형태의 미술에서는 작품을 실행하기 전에 계획과 결정이 이루어지며 실제 제작은 이미 결정된 개념을 실행하는 과정이 된다.[4]
이 접근에서는 작품을 직접 손으로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가 핵심이 아니다. 먼저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에 따라 작품이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미술가의 역할은 목수나 화가처럼 직접 모든 결과물을 제작하는 사람이라기보다 하나의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에 가까워진다.
르윗은 이러한 생각을 통해 작품 제작에서 작가의 손맛이나 즉흥적인 감정을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물이 전부 기계적으로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동일한 지시를 여러 사람이 실행하면 작은 차이가 생길 수 있고, 전시장 벽의 크기와 형태에 따라서도 작품이 달라진다. 르윗은 이런 차이를 오류라고 보기보다 작품이 실제 공간에서 구현되는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였다.[5]
Paragraphs on Conceptual Art
1967년 발표된 「Paragraphs on Conceptual Art」는 개념미술의 형성 과정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글 가운데 하나다. 르윗은 이 글에서 작품의 아이디어와 실제 제작과정을 분리했으며, 개념미술에서는 작품을 실행하기 전에 대부분의 중요한 결정이 이미 내려져 있다고 설명했다.[4]
르윗의 입장은 이후 개념미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조셉 코수스가 언어와 정의를 이용해 예술의 의미 자체를 분석하고, 로렌스 위너가 작품이 실제로 제작되지 않아도 언어적 명제만으로 성립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면, 르윗은 작품을 만드는 규칙 자체가 독립적인 미술적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방향을 가장 체계적으로 밀어붙였다.
다만 르윗 자신은 개념미술을 철학논문처럼 지나치게 이론적인 작업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번 규칙을 정한 뒤에는 예술가가 결과를 완전히 통제하려 하지 않고 그 시스템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지켜보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엄격한 계산과 함께 우연이나 실행자의 판단이 동시에 들어가는 경우도 많다.
Sentences on Conceptual Art
1969년에는 「Sentences on Conceptual Art」를 발표했다. 짧은 문장들로 개념미술의 성격을 정리한 글로, 아이디어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으며 모든 아이디어가 반드시 물질적인 형태로 만들어질 필요는 없다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6]
이 글은 개념미술이 단순히 미니멀리즘보다 더 단순한 미술이 아니라 작품의 존재방식 자체를 다시 정의하려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림을 완성해서 벽에 걸어놓는 것이 미술의 최종단계라는 기존 상식 대신 계획, 아이디어, 지시, 실행이라는 과정 전체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벽 드로잉
르윗의 가장 유명한 작업은 벽 드로잉(Wall Drawings)이다. 첫 벽 드로잉은 1968년에 제작됐으며 이후 르윗은 평생 1,200점이 넘는 벽 드로잉을 구상했다.[1][7]
일반적인 그림은 종이나 캔버스 위에 제작한 뒤 미술관으로 운송한다. 르윗의 벽 드로잉은 반대로 전시장 벽 자체가 작품의 바탕이 된다. 르윗은 작품마다 어떤 선을 어디에 그리고 어떤 색을 사용할지 등을 지시문과 도면으로 남겼고, 실제 전시에서는 미술관 직원이나 전문 드래프터, 때로는 학생과 자원봉사자까지 그 지시를 따라 벽에 작품을 제작했다.[3]
전시가 끝나면 벽에 페인트를 칠해 그림을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작품이 없어졌다고 보지는 않는다. 작품의 핵심인 지시문과 인증서가 남아 있으므로 나중에 다른 공간에서 다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르윗의 벽 드로잉은 악보와 자주 비교된다. 베토벤의 교향곡이 어느 특정 공연 한 번만을 의미하지 않고 악보를 기반으로 계속 새롭게 연주될 수 있는 것처럼, 르윗의 작품도 하나의 설계를 여러 장소에서 반복해서 실행할 수 있다.[3]
이 방식은 작품의 원본이라는 개념도 묘하게 만든다. 첫 번째로 그려진 벽이 반드시 영원한 원본이 되는 것은 아니며 그 벽을 철거해도 작품은 계속 존재할 수 있다. 미술품 수집가가 작품을 구입할 때도 벽 자체를 뜯어가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작품을 설치할 권리와 지시문, 인증서를 소유하는 구조가 된다.
Wall Drawing #273
1975년 제작된 《Wall Drawing #273》은 르윗의 벽 드로잉 작업방식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품은 일곱 개의 벽에 일정한 격자를 만들고 빨간색·파란색·노란색 선을 벽의 모서리와 중심, 각 변의 중간지점 등에서 격자의 임의 지점으로 연결하도록 지시한다.[5]
재미있는 점은 지시가 꽤 구체적이면서도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각 벽에는 동일한 개수의 선이 있어야 하지만 정확히 몇 개를 그릴지와 각각의 길이는 실제 작품을 그리는 사람이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작품을 다시 설치해도 이전 전시와 완전히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는 않는다.
르윗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한 완성 그림을 복제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규칙이 새로운 공간과 새로운 실행자에게 적용됐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보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시문은 엄격하지만 결과는 일정 범위 안에서 계속 달라질 수 있다.
제작 지시문
르윗의 벽 드로잉 제목은 종종 작품의 제작설명서 자체처럼 생겼다. 예를 들어 어떤 작품은 검은 벽 위에 네 귀퉁이와 변에서 출발하는 흰색 곡선과 직선의 모든 조합을 그리라는 식으로 제목이 붙는다.[7]
미술작품 제목이라기보다는 현장 작업반에 보내는 작업지시서에 가까운 경우도 있지만, 바로 그 점이 르윗의 의도였다. 작품 이름과 작품을 만드는 규칙 사이의 경계를 줄이고, 관람객이 완성된 이미지뿐 아니라 그 이미지가 어떻게 생성됐는지를 함께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르윗은 실제 벽 드로잉 작업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긴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그려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작품별로 세부적인 지침이 있었고 이를 지키면서 제작해야 했다. 르윗은 계획을 위반하지 않는 한 실행자가 만든 벽 드로잉도 자신의 작품으로 보았다.[8]
정육면체
벽 드로잉과 함께 르윗을 상징하는 형태가 정육면체다. 1960년대 작품에서는 열린 정육면체를 기본 단위로 삼아 수많은 구조와 조합을 만들었다. 완성된 정육면체 자체보다 정육면체라는 하나의 기본 단위에서 어떤 체계적인 변형이 가능한지를 탐구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1]
이런 작업에서 르윗은 입체물을 sculpture보다는 structure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했다. 전통적인 조각이 한 덩어리의 재료를 깎거나 형태를 만들어내는 이미지와 연결된다면 르윗의 작품은 일정한 모듈을 규칙에 따라 조립한 구조물이라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정육면체는 르윗에게 일종의 기본 알파벳처럼 사용됐다. 단순한 형태 하나를 반복하고 회전시키고 일부를 빼거나 추가하면서 복잡한 시스템을 만들 수 있었고, 이후 벽 드로잉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직선·곡선·색상 같은 간단한 요소를 체계적으로 조합했다.
Serial Project
1960년대 르윗은 Serial Project라는 연작을 제작했다. 동일한 기본 형태를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반복하고 가능한 조합을 순서대로 보여주는 작업이다.
이런 방식은 작가가 순간적인 감정에 따라 다음 형태를 결정하는 것을 줄여준다. 한번 규칙을 정하면 그 다음 작품의 형태는 상당 부분 규칙에 의해 자동으로 결정된다. 르윗이 말한 아이디어가 작품을 만드는 기계가 된다는 표현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그러나 수학적 시스템을 이용한다고 해서 르윗이 실제 수학 문제를 풀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규칙은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한 도구였으며, 규칙을 적용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시각적 결과가 나타나는 과정에도 관심을 가졌다.
조셉 코수스와의 차이
조셉 코수스와 솔 르윗은 모두 초기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인물이지만 작업의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코수스는 언어와 사전적 정의, 철학을 이용해 미술과 의미의 관계를 분석하는 작업이 많았고, 르윗은 규칙과 시스템을 설계한 뒤 그 규칙이 실제 형태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방법에 집중했다.
| 조셉 코수스 | 솔 르윗 | |
|---|---|---|
| 주요 관심 | 언어, 의미, 정의, 미술의 개념 | 규칙, 시스템, 반복, 실행 |
| 대표적인 형태 | 사전 정의, 텍스트, 대상과 이미지 | 벽 드로잉, 정육면체 구조, 지시문 |
| 대표작 |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 Wall Drawings, Serial Projects |
| 실행 | 작품 자체의 의미분석을 중시 | 다른 사람이 지시에 따라 실제 제작 가능 |
둘 다 작품의 물질적인 외형보다 아이디어를 중요하게 봤지만 코수스 작품을 보다 보면 언어철학 수업 쪽으로 가고, 르윗 작품을 보다 보면 도형 문제와 시공 매뉴얼 사이 어딘가로 흘러간다.
로렌스 위너와의 차이
로렌스 위너 역시 르윗과 함께 초기 개념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다. 두 사람 모두 작품을 작가가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받아들였지만 실제 작업방식에서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위너는 어떤 행위나 물질관계를 설명하는 문장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었고 실제로 그 행위를 실행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반면 르윗의 지시문은 일반적으로 최종적인 벽 드로잉이나 구조를 만들어내기 위한 계획으로 기능했다.
따라서 아주 단순하게 정리하면 르윗은 지시문을 작품 제작의 설계도로 사용한 경우가 많고, 위너는 지시문이나 문장 자체를 작품으로 취급한 경우가 많다. 물론 실제 작업에서는 이 구분보다 복잡하지만 두 작가의 차이를 이해하는 출발점으로는 꽤 유용하다.
작가의 손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작가가 직접 그렸는지 여부가 작품의 진위와 가치에서 매우 중요하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을 다른 사람이 똑같이 따라 그리면 복제품일 뿐이다.
르윗의 벽 드로잉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 정상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 르윗 자신이 살아 있을 때부터 전문 드래프터와 조수들이 실제 작업을 수행했으며, 그가 2007년 사망한 뒤에도 지시문을 따라 새로운 전시공간에 작품을 계속 설치하고 있다.[8]
그렇다고 복사 가능한 공짜 도안이라는 뜻은 아니다. 각각의 공식 벽 드로잉에는 작품 소유와 설치를 증명하는 인증체계가 있으며, 공식적인 지침에 따라 설치되어야 한다. 즉 작가의 손은 제거했는데 미술시장과 소유권까지 제거한 것은 아니다.
건축과의 관계
르윗의 벽 드로잉은 전시장 벽에 직접 제작되기 때문에 건축공간과 밀접하게 연결된다. 같은 작품이라도 좁고 높은 벽과 넓고 낮은 벽에서 실행하면 형태가 달라질 수 있으며, 모서리나 출입구 같은 공간의 조건도 결과에 영향을 준다.[2]
르윗은 1970년대부터 이탈리아를 자주 방문하면서 대형 프레스코화를 가까이 접했고, 벽 전체를 작품공간으로 사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직접 설명했다.[9]
초기 벽 드로잉은 주로 연필로 제작돼 매우 절제된 모습이었지만 이후 크레용과 잉크,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면서 규모와 시각적 효과가 훨씬 커졌다. 후기 작품 중에는 벽 전체를 강한 색과 굽은 띠 형태로 채운 작업도 있어 초기의 차갑고 회색빛 나는 미니멀리즘 이미지와 상당히 다르다.
색채
르윗은 초기에는 흑백과 제한된 색을 많이 사용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색채 사용이 크게 늘어났다. 특히 1980년대 이후 벽 드로잉에서는 빨강·노랑·파랑 같은 기본색뿐 아니라 여러 색이 겹쳐지는 대규모 작업을 제작했다.
그의 작업이 항상 계산적이고 건조하게만 보이는 것은 아니다. 후기 작품은 같은 규칙과 시스템을 사용하면서도 상당히 화려하고 장식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MoMA 역시 르윗의 판화작업이 초기의 엄격한 직선과 기본색 연구에서 점차 굽은 형태와 겹쳐지는 풍부한 색조로 변화했다고 설명한다.[10]
따라서 르윗을 단순히 검은 선과 흰 정육면체만 만드는 미니멀리스트로 기억하면 그의 후기 작업 상당 부분을 놓치게 된다.
작가책과 판화
르윗은 벽 드로잉과 구조물 외에도 판화와 작가책을 매우 많이 제작했다. MoMA 자료에 따르면 수백 개의 판화 프로젝트와 50권이 넘는 작가책을 만들었다.[11]
책 역시 단순한 작품 소개용 도록으로만 사용하지 않았다. 반복되는 사진이나 형태, 일정한 규칙으로 배열된 이미지 자체를 책이라는 형식 안에서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했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서가 시간적 진행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르윗의 연속성과 반복에 대한 관심과 잘 맞는 매체였다.
판화에서도 하나의 선이나 정육면체를 여러 규칙으로 변형하면서 다양한 결과를 만들었다. 작품마다 소재는 달라도 하나의 기본요소를 정하고 가능한 변형을 체계적으로 탐색한다는 방식은 상당히 일관되어 있다.
에바 헤세
르윗은 독일계 미국인 미술가 에바 헤세와 가까운 친구였다. 두 사람은 1960년대 뉴욕 미술계에서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고받았으며 개인적인 고민과 작업에 관한 편지도 주고받았다.
헤세가 작업에 자신감을 잃고 고민할 때 르윗이 보낸 편지는 후대에도 유명해졌다. 르윗은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고 그냥 작업하라는 취지로 상당히 거친 표현까지 섞어 격려했다. 헤세가 1970년 뇌종양으로 34세에 일찍 사망한 뒤에도 르윗은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다.
두 사람의 작업방식은 상당히 달랐다. 르윗은 규칙·기하학·시스템을 중시한 반면 헤세는 라텍스와 섬유유리 같은 재료를 사용해 유기적이고 불안정한 형태를 만들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당시 미니멀리즘의 형식을 이용하면서도 그것을 각자 다른 방향으로 확장했다.
월 드로잉의 재설치
르윗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은 전시할 때마다 작품을 새로 제작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이전 전시가 끝난 뒤 벽을 다시 칠해 작품을 없앴다면 새로운 전시에서는 작품 지침을 보고 처음부터 다시 그린다.
이 과정에는 르윗 재단이나 작품 경험이 있는 전문 드래프터가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현지의 미술가와 학생들도 함께 작업할 수 있다. 같은 번호의 작품이라도 전시공간과 제작자에 따라 세부적인 모습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규칙이 유지되는 한 동일한 작품으로 인정된다.[5]
이 때문에 르윗의 벽 드로잉은 보존이라는 개념도 일반 회화와 다르다. 오래된 물감을 최대한 원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기존 그림을 완전히 지운 뒤 다시 제작할 수 있다. 일반 그림에 이 짓을 하면 보존팀이 기절하겠지만 르윗 작품에서는 애초에 정상적인 생애주기다.
주요 작품
| 연도 | 작품 | 특징 |
|---|---|---|
| 1964 | 《Floor Structure》 | 초기 기하학 구조 작업 |
| 1966 | 《Serial Project, I (ABCD)》 | 정육면체 모듈을 규칙적으로 조합 |
| 1968 | 최초의 Wall Drawing | 벽에 직접 제작하는 드로잉 작업 시작 |
| 1972 | 《Wall Drawing #146》 | 곡선과 직선을 규칙에 따라 조합 |
| 1975 | 《Wall Drawing #260》 | 검은 벽 위에 흰색 선과 곡선을 조합 |
| 1975 | 《Wall Drawing #273》 | 일곱 개의 벽에 빨강·파랑·노랑 선을 규칙적으로 배치 |
| 1975 | 《Wall Drawing #264》 | 네 방향과 네 색의 선 조합 |
| 2004 | 《Wall Drawing #1144》 | 강한 색상의 굽은 띠를 사용한 후기 작업 |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 사이
르윗은 미니멀리즘 작가이면서 개념미술가로도 분류된다. 초기 정육면체 구조와 반복적인 기하학 형태는 미니멀리즘과 밀접하지만, 작품이 진행될수록 실제 형태보다 그것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 중요해지면서 개념미술의 핵심 인물로 자리잡았다.
따라서 르윗을 어느 한쪽에만 넣으면 조금 애매하다. 작품 외형만 보면 미니멀리즘의 대표적인 언어를 사용하지만 이론적으로는 그런 외형이 어떻게 생성되는지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바로 이 지점 때문에 1960년대 미니멀리즘에서 개념미술로 넘어가는 흐름을 설명할 때 르윗이 자주 등장한다.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
르윗 이후 미술에서 작품을 만드는 방법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거나 지시문과 알고리즘에 따라 결과를 생성하는 방식은 훨씬 흔해졌다. 설치미술, 생성미술, 디지털아트 등에서도 작가가 최종 결과를 하나하나 직접 만드는 대신 규칙이나 시스템을 먼저 만드는 방식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생성미술과 비교하면 르윗의 작업이 상당히 익숙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코드를 직접 실행하면 컴퓨터가 이미지나 형태를 만드는 것처럼 르윗은 미리 정의한 규칙을 사람이 실행해 작품을 만들었다. 물론 르윗이 컴퓨터 아트를 하려던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최종형태보다 그것을 생산하는 알고리즘 같은 규칙을 중요하게 본다는 점에서 연결해 설명되기도 한다.
비판
르윗의 작품은 개념미술 전반이 받는 비판을 그대로 받기도 한다. 작가 본인이 그리지도 않은 그림을 왜 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야 하는지, 단순한 선과 도형을 그리는 것이 과연 대단한 미술인지, 지시문과 인증서만 남은 작품이 실제 그림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지나치게 제도적인 발상 아니냐는 질문이 따라온다.
반대로 르윗의 작업이 중요하게 평가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질문을 강제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르윗 이전에도 조수가 작품 제작에 참여하는 일은 흔했지만, 르윗은 아예 다른 사람이 실행하는 것을 정상적인 작품 제작방식으로 체계화했고 작가의 핵심 역할을 직접 제작에서 계획과 규칙 설계로 이동시켰다.
다만 르윗의 방식을 흉내 내 지시문 하나 쓰면 자동으로 좋은 개념미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규칙 자체가 어떤 시각적·개념적 문제를 만드는지, 실제 실행 과정에서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가 중요하다. 아무 생각 없이 "벽에 선 세 개 그으시오"라고 써놓는다고 르윗 후계자가 되는 건 아니고 그냥 벽에 선 세 개 긋게 시킨 사람이다.
말년과 죽음
르윗은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활동했고 특히 이탈리아에서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이탈리아의 르네상스 프레스코와 건축공간에 관심을 가지면서 후기 벽 드로잉의 규모와 색채도 크게 확대됐다.[12]
2000년대까지 작품활동을 계속했으며 말년에도 새로운 벽 드로잉과 판화, 구조작품을 제작했다. 2007년 4월 8일 뉴욕에서 암으로 사망했으며 향년 78세였다.[2]
그가 사망했다고 벽 드로잉 제작이 끝난 것은 아니다. 지시문에 따라 작품을 새로 설치하는 방식 자체가 르윗 작품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현재도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작품이 새로 그려졌다가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고 다시 다른 장소에서 제작된다.
이름
본명은 Solomon LeWitt이며 일반적으로 Sol LeWit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한국어로는 솔 르윗이라는 표기가 가장 흔하고 자료에 따라 솔 레윗, 솔 르위트 등의 표기가 보이기도 한다.
검색할 때는 솔 르윗, Sol LeWitt, 솔 르윗 개념미술, Sol LeWitt Wall Drawing, Paragraphs on Conceptual Art, Sentences on Conceptual Art 등의 검색어가 주로 사용된다.
여담
- 1928년 코네티컷주 하트퍼드에서 태어났다.
- 시러큐스 대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 한국전쟁 시기 미군에서 그래픽 아티스트로 복무했다.
- 뉴욕으로 이주한 뒤 건축가 I. M. 페이의 사무실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한 경험이 있다.
- MoMA에서 야간 근무를 한 적도 있다.
- 초기에는 회화와 입체작업을 했으며 처음부터 벽 드로잉만 만든 작가는 아니다.
- 정육면체와 직선, 격자를 매우 자주 사용했다.
- 조각이라는 말보다 structure라는 표현을 선호했다.
- 1967년 「개념미술에 관한 단락들」, 1969년 「개념미술에 관한 문장들」을 발표했다.
- 첫 벽 드로잉은 1968년에 만들었다.
- 이후 1,200점이 넘는 벽 드로잉을 구상했다.[1]
- 벽 드로잉은 르윗 본인이 직접 그리지 않은 경우가 많다.
- 전시가 끝나면 작품을 페인트로 덮어 없애고 나중에 다른 장소에서 다시 만들 수 있다.
- 지시문을 악보, 실제 벽 드로잉을 연주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 작품 번호가 엄청나게 많아서 제목만 보면 미술작품이라기보다 도면 관리번호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 초기 벽 드로잉은 연필선 위주라 상당히 절제되어 있지만 후기 작품은 색이 매우 화려하다.
- 판화와 작가책도 대량으로 제작했다.
- 에바 헤세와 가까운 친구였다.
- 조셉 코수스, 로렌스 위너와 함께 초기 개념미술을 설명할 때 거의 빠지지 않는 인물이다.
- 르윗 작품을 소장한다는 것은 벽 하나를 영구적으로 보존한다는 것보다 그 작품을 다시 실행할 권리와 지침을 갖는다는 의미에 더 가깝다.
- 작가가 2007년에 죽었는데도 새로 만들어지는 작품이 계속 있다는 점만 봐도 이 사람의 미술관이 얼마나 특이했는지 알 수 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 Museum of Modern Art - Sol LeWitt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Sol LeWitt
- Guggenheim Museum - Sol LeWitt, Wall Drawing #264
- SFMOMA - Drawing with Instructions
- SFMOMA - Follow the Lines
- SFMOMA - Wall Drawing 273
- ↑ 1.0 1.1 1.2 1.3 1.4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Sol LeWitt
- ↑ 2.0 2.1 2.2 Guggenheim Museum - Sol LeWitt, Wall Drawing #264
- ↑ 3.0 3.1 3.2 SFMOMA - Drawing with Instructions
- ↑ 4.0 4.1 4.2 4.3 4.4 Guggenheim Museum - Sol LeWitt teaching materials
- ↑ 5.0 5.1 5.2 SFMOMA - Wall Drawing 273
- ↑ Artforum Artguide - Sol LeWitt, Sentences on Conceptual Art 관련 자료
- ↑ 7.0 7.1 Museum of Modern Art - Focus: Sol LeWitt
- ↑ 8.0 8.1 SFMOMA - Follow the Lines
- ↑ SFMOMA - Sol LeWitt interview and wall drawings
- ↑ Museum of Modern Art - Squares with a Different Line Direction in Each Half Square
- ↑ Museum of Modern Art - Sol LeWitt, Distorted Cubes
- ↑ SFMOMA - Sol LeWitt on conceptual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