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위너 | |
| 생년월일 | 1942년 2월 10일 ~ 2021년 12월 2일 |
|---|---|
| 국적 | 미국 |
| 출생지 | 미국 뉴욕 |
| 직업 | 미술가 |
| 활동기간 | 1960년대 ~ 2021년 |
| 장르 | 개념미술, 설치미술, 텍스트 아트 |
| 영문 | Lawrence Weiner |
로렌스 위너(Lawrence Weiner, 1942년 2월 10일 ~ 2021년 12월 2일)는 미국의 개념미술가이다. 1960년대 후반 미국 개념미술 형성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작가 가운데 하나로, 특히 언어 자체를 조각의 재료처럼 사용한 작업으로 유명하다. 전통적인 회화나 조각처럼 반드시 물질적인 작품을 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 어떤 행위나 물질적 관계를 설명하는 문장만으로도 작품이 성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1][2]
조셉 코수스가 사전 펼쳐놓고 “의자라는 개념이 대체 뭐냐”고 철학시험을 냈다면, 위너는 한술 더 떠서 “벽에 구멍 뚫으라고 문장 하나 써놨는데 굳이 진짜 뚫어야 함?”이라고 물어본 인간이다.
1968년 출간한 작가책 《Statements》를 전후해 위너는 작품을 물질적인 오브젝트가 아니라 실행될 수도 있고 실행되지 않을 수도 있는 언어적 명제로 제시하기 시작했다. 이후 벽, 건물 외벽, 바닥, 책, 포스터, 영화, 음반, 공공장소 등에 짧은 영어 문장을 배치하는 작업을 수십 년간 이어갔다.[3]
현대미술관 벽에 대문자로 영어 문장 하나 존나 크게 써 있으면 일단 이 양반 계보를 의심해도 된다.
생애
로렌스 위너는 1942년 2월 10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뉴욕에서 성장했으며 젊은 시절부터 미국 곳곳을 여행하고 여러 종류의 노동을 경험했다. 이후 뉴욕 미술계에 들어가 1960년대 초부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1]
초기에는 지금처럼 문장만 쓰던 사람이 아니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회화와 조각적 작업을 했으며, 특히 일정한 형태를 반복한 회화작품도 제작했다. MoMA 소장품에도 1963~1967년 제작한 회화·드로잉이 다수 남아 있다.[2]
그러다가 1960년대 후반 들어 작품을 실제 물건으로 제작하는 행위 자체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당시 미국 미술계에서는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프로세스 아트 등이 등장하면서 예술가가 반드시 손으로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크게 떠오르고 있었다.
위너는 이 문제를 상당히 극단적으로 밀어붙였다.
작품의 아이디어가 이미 문장으로 완전히 전달된다면 굳이 재료 사다가 실제로 만들 필요가 있냐? 라는 것이다.
이 발상이 이후 그의 거의 모든 작업을 결정했다.
개념미술
개념미술은 작품의 물질적 형태보다 작품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와 개념을 중요하게 보는 미술 경향이다.
1960년대 후반 조셉 코수스, 솔 르윗, 로버트 배리, 더글러스 휴블러, 로렌스 위너 등 여러 작가들이 비슷한 문제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다뤘다.
이들 가운데 위너의 특징은 특히 언어를 조각으로 취급했다는 점이다.
그는 작품을 단순히 문학이나 시라고 보지 않았다. 문장이 어떤 물질과 행위, 공간적 관계를 가리킨다면 그 언어 자체가 조각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MoMA는 위너의 작업을 실제로 언어로 만들어진 조각으로 설명하며, 그의 작품이 언어만으로 전달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4]
조각가인데 대리석도 안 사고 용접기도 안 산다. 워드프로세서면 된다.
1968년
1968년은 로렌스 위너 작업에서 결정적인 해였다.
그 이전에도 회화와 조각을 제작했지만 이 무렵부터 작품의 물질적인 실행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초기 작품 가운데 하나가 《A 36" X 36" REMOVAL TO THE LATHING OR SUPPORT WALL OF PLASTER OR WALLBOARD FROM A WALL》이다.[5]
한국어로 대충 옮기면 벽의 석고 또는 벽판에서 내부 지지구조가 드러날 때까지 가로세로 36인치 부분을 제거하라는 내용이다.
말 그대로 벽을 정사각형으로 뜯어내는 작품이다.
그런데 위너에게 중요한 것은 실제로 벽을 뜯었느냐가 아니었다.
문장만 존재해도 작품은 성립할 수 있었다.
미술관 벽 뚫기 싫으면 안 뚫어도 됨. 이미 작품임.
이때부터 위너는 미술품의 존재방식 자체를 완전히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Statement of Intent
1968년 위너는 자신의 작업원칙을 설명하는 유명한 Statement of Intent를 정리했다.
내용의 핵심은 대략 세 가지다.
- 작가가 작품을 직접 제작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이 대신 제작할 수도 있다.
- 아예 제작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가능성은 위너에게 기본적으로 동등했다.
작품을 실제로 구현할 것인지 여부는 작품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기관의 상황에 따라 결정될 수 있었다. MoMA가 위너의 초기 작업을 설명할 때도 이 원칙을 핵심적인 전환점으로 소개한다.[6]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작가가 작품 제작 → 완성품 존재 → 미술관이 구입이라는 구조가 당연했다.
위너는 이걸 작가가 문장 하나 냄 → 니가 만들고 싶으면 만들든가 → 안 만들어도 작품임으로 바꿨다.
하지만 단순히 일을 하기 싫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위너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물건 하나가 아니라 그 작품이 제시하는 물질과 행위의 관계였다. 실제로 작품을 구현하는 것은 그 관계가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다.
Statements
1968년 위너는 미술기획자 세스 시겔라우브와 함께 작가책 《Statements》를 출간했다.[7]
책에는 위너가 작성한 여러 개의 짧은 작품 문장이 실렸다.
이 작품들은 어떤 물질에 무엇을 한다거나, 특정한 위치로 옮긴다거나, 제거하거나 배치하는 행위를 설명한다.
즉 일반적인 책처럼 작품 사진을 모아놓은 카탈로그가 아니라 책 안의 문장 자체가 작품이었다.
이 방식은 당시 미술시장의 구조에도 꽤 큰 의미가 있었다.
전통적인 미술품은 원본이 하나뿐인 경우가 많고 소유자가 작품을 독점할 수 있다.
반면 문장으로 존재하는 작품은 책으로 수백 부 인쇄해 세계 어디든 보낼 수 있다.
유화 한 점은 부자 한 명이 처먹을 수 있는데 문장은 복사하면 끝이다.
위너는 언어가 가진 이런 전달성과 접근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4]
언어가 조각이다
위너는 자신을 단순한 시인이나 문학가로 보지 않았다.
그의 문장은 대부분 물질과 공간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 무엇을 제거한다.
- 어떤 것을 다른 것 위에 놓는다.
- 물체를 이동시킨다.
- 어떤 재료가 다른 재료와 접촉한다.
- 무엇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인다.
같은 식이다.
따라서 문장을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실제 물질적인 상황이 만들어진다.
위너에게는 바로 그 과정이 조각이었다.
MoMA는 위너가 자신의 작업에서 언어의 전달성과 접근성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작품이 읽히는 과정에서 조각적인 성질을 획득한다고 설명한다.[4]
대리석을 깎는 대신 관객 뇌에서 가상의 대리석을 깎는다.
이 때문에 그의 작품 재료는 종종 LANGUAGE + THE MATERIALS REFERRED TO 처럼 설명된다.
즉 언어 + 그 언어가 가리키는 물질이 작품이라는 것이다.
벽 글씨
위너의 가장 유명한 작업형태는 건물이나 미술관 벽에 대문자로 문장을 설치하는 방식이다.
문자는 일반적으로 크고 선명하며 그래픽디자인처럼 배치된다.
하지만 특정한 글꼴이나 색상, 정확한 위치가 항상 작품의 절대적인 원본은 아니다.
같은 작품이 다른 미술관에 설치될 경우 공간에 맞게 크기·색상·배치가 달라질 수 있다.
Whitney Museum 소장작 《HERE THERE & EVERYWHERE》도 설치공간에 따라 하나의 벽이나 여러 벽, 유리창, 회전문 등 다양한 방식으로 배치될 수 있다.[8]
즉 중요한 것은 문장이지 1994년 Whitney 벽에 붙어 있던 특정 글자 조각이 아니다.
MOVED FROM UP FRONT
1970년 작품 《MOVED FROM UP FRONT》은 위너의 언어작업을 이해하기 좋은 사례다.
작품은 제목과 동일한 문장으로 구성되며 전시장 벽에 다양한 방식으로 설치할 수 있다.[4]
어떤 물건이 앞쪽에서 이동되었다는 의미를 암시하지만 무엇이 움직였는지, 누가 움직였는지, 어디로 갔는지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문장을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사건과 공간관계를 만들어낸다.
즉 실제 조각이 없어도 무언가가 앞에 있었다 → 이동했다 → 공간이 변했다라는 조각적 상황이 형성된다.
글 여섯 단어 읽었는데 머릿속에서 가구배치가 바뀐다.
HERE THERE & EVERYWHERE
1989년 작품 《HERE THERE & EVERYWHERE》는 위너의 대표적인 후기 언어작업 가운데 하나다.
Whitney Museum 설명에 따르면 방향이나 위치를 암시하는 여러 문장과 HERE THERE & EVERYWHERE라는 반복되는 구절로 구성돼 있다.[8]
이 작품 역시 설치방식이 하나로 고정되지 않는다.
전시공간에 따라 문장을 여러 벽에 나눠 설치하거나 한 공간에 집중적으로 배치할 수 있다.
위너에게 이런 유연성은 작품의 불완전함이 아니라 애초에 작품의 일부였다.
공간이 바뀌고 관객이 바뀌면 문장이 작동하는 방식도 바뀐다.
작품이 벽에 맞추는 게 아니라 문장이 그때그때 새 집에 적응한다.
조셉 코수스와의 차이
조셉 코수스와 로렌스 위너는 둘 다 1960년대 후반 미국 개념미술의 대표작가이고 언어를 적극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자주 함께 언급된다.
실제로 둘은 1968년 유명한 《Xerox Book》에도 함께 참여했다.[2]
하지만 둘의 접근방식은 꽤 다르다.
| 조셉 코수스 | 로렌스 위너 | |
|---|---|---|
| 주요 관심 | 언어·정의·의미·예술 개념 | 언어·물질·행위·공간 |
| 대표적인 형태 | 사전 정의, 대상과 이미지 비교 | 행위나 물질관계를 설명하는 문장 |
| 대표작 |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 《Statements》, 언어 조각 |
| 철학적 성격 | 분석철학·언어철학과 밀접 | 조각과 물질의 존재방식을 언어로 전환 |
| 분위기 | “의자가 무엇인가?” | “이 벽을 뜯는 행위가 반드시 실제로 일어나야 하는가?” |
코수스가 단어가 의미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파고드는 느낌이라면 위너는 문장으로 물질적인 사건을 만들 수 있는가쪽에 더 가깝다.
코수스는 철학과 대학원생이고 위너는 공사 지시서 쓰다가 미술관 점령한 사람 같다.
솔 르윗과의 관계
솔 르윗 역시 로렌스 위너와 함께 초기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꼽힌다.
르윗은 작품에서 아이디어가 작품을 만들어내는 기계와 같다고 보고, 벽화 등의 제작지침을 다른 사람이 실행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르윗의 작품에서도 반드시 작가가 직접 벽에 그림을 그릴 필요가 없다.
미술관 직원이나 전문 설치팀이 지침에 따라 작품을 제작할 수 있다.
위너와 상당히 비슷해 보이지만 차이도 있다.
르윗의 지침은 대개 최종적으로 시각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규칙이다.
반면 위너는 문장 자체가 이미 작품이기 때문에 결과물을 제작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다고 봤다.
르윗: 설명서 보고 그려주세요.
위너: 설명서가 작품인데요.
정도의 차이다.
세스 시겔라우브
로렌스 위너의 초기 활동에서 빼놓기 어려운 인물이 미술기획자 세스 시겔라우브다.
시겔라우브는 1960년대 후반 기존 갤러리 전시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개념미술 전시방식을 실험했다.
작품을 실제 전시장에 모아놓는 대신 책이나 카탈로그 자체를 전시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위너의 《Statements》 역시 시겔라우브와의 협력을 통해 출판됐다.[7]
이런 방식은 물리적인 미술품이 반드시 한 장소에 존재해야 한다는 기존 미술제도의 전제를 흔들었다.
전시장을 없애고 책자를 전시장으로 만들어버렸다. 코로나 온라인 전시보다 50년 빨랐다.
Xerox Book
1968년 시겔라우브가 기획한 《Xerox Book》 역시 개념미술사에서 유명한 프로젝트다.
여기에는
등이 참여했다.[2]
각 작가는 책의 일정한 페이지를 작품공간으로 사용했다.
즉 갤러리 벽 대신 복사된 종이가 전시장이 된 것이다.
오늘날 PDF 하나 보내는 것처럼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미술품은 실제 원본을 전시장에 운송하고 설치하는 것이 당연했다.
1968년에 이미 작품 배송비가 아까웠던 것 같다.
물론 실제 목적은 배송비 절약보다 작품의 생산·유통방식 자체를 바꾸는 데 있었다.
작품을 꼭 만들 필요가 있는가
위너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일반적인 미술에서는 작품이 실제로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없는 그림은 감상할 수 없고, 존재하지 않는 조각은 전시장에 놓을 수 없다.
위너는 이 상식을 거부했다.
만약 작품이 바닥에서 돌 하나를 제거한다라는 문장으로 충분히 설명된다면 실제 돌을 제거하지 않아도 그 작품의 아이디어는 존재한다.
관객은 문장을 읽고 상황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 실행은 작품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가?
위너의 답은 아니 였다.
이 지점에서 그의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 개념과 완전히 갈라진다.
미술계에 "안 해도 됨"을 정식 제작방식으로 도입했다.
작품과 소유
위너의 방식은 미술품 소유라는 문제도 복잡하게 만들었다.
유화나 조각은 누가 원본을 가지고 있는지 비교적 명확하다.
하지만 A WALL CRATERED BY A SINGLE SHOTGUN BLAST 같은 문장 자체가 작품이라면 누구나 그 문장을 읽거나 다시 쓸 수 있다.[3]
그렇다고 아무 사람이 벽에 같은 문장을 써놓으면 그 사람이 위너 작품을 소유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실제 미술시장에서는 작품의 인증과 소유권, 설치권 등이 문서화되어 거래된다.
즉 물리적인 오브젝트는 없어졌는데 미술시장은 또 알아서 그걸 거래할 방법을 만들어냈다.
자본주의: 물건이 없다고? 괜찮아. 권리를 팔면 됨.
개념미술이 미술시장을 벗어나려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결과적으로 개념미술 역시 고가의 미술작품으로 거래된다는 점은 이후 반복적으로 논쟁이 됐다.
공공미술
위너는 미술관 내부뿐 아니라 건물 외벽이나 도시공간에서도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언어는 다른 재료보다 대규모 공간에 적용하기 쉽고 번역을 통해 여러 언어권에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위너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으며 특히 네덜란드 미술계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1969년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의 중요한 개념미술 전시 《Op Losse Schroeven》에 참여했고 이후 네덜란드의 Art & Project 갤러리와 장기간 협력했다.[3]
그의 텍스트 작품은 미술관 벽뿐 아니라 건물 파사드, 도로 주변 시설, 공공기관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됐다.
도시 돌아다니다 건물에 뜬금없이 영어 대문자 문장이 박혀 있으면 누가 그래피티한 게 아니라 미술관이 돈 주고 시킨 걸 수도 있다.
책
위너에게 책은 단순한 작품 도록이 아니라 중요한 작품매체였다.
《Statements》 이후 수많은 작가책을 제작했다.
책은 기존 미술품보다 생산비가 낮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유할 수 있으며 전시장에 직접 가지 않아도 작품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위너는 이런 방식으로 작품이 미술관과 갤러리에만 갇히는 것을 피하려 했다.
포스터, 음반, 영화, 비디오 등 다양한 대중매체도 사용했다.[1]
벽에 쓰든 책에 찍든 CD에 넣든 말이 전달되면 일단 됨.
영화와 영상
위너는 텍스트 설치만 제작한 것이 아니라 영화와 비디오 작업도 꾸준히 했다.
Whitney는 그의 작품형식이 회화, 조각, 영화, 비디오, 음반, CD, 포스터, 책, 웹사이트 등 매우 광범위했다고 설명한다.[1]
MoMA에도 《Some Things History Don't Support》(2000) 등 여러 영상작품이 소장돼 있다.[9]
하지만 영상작업에서도 언어와 의미가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한 관심은 그대로 유지됐다.
즉 글자 쓰는 아저씨가 가끔 카메라도 들었다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체가 달라져도 기본적인 철학은 일관됐다.
그래픽 디자인
위너 작품에서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은 상당히 독특한 그래픽디자인이다.
굵은 대문자, 기하학적 기호, 괄호, 사선, 화살표 같은 요소가 자주 사용된다.
문장 자체는 간단하지만 전시장 벽 전체를 차지할 정도로 크게 설치하면서 강한 시각적 효과를 만든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미술은 아이디어가 중요하고 외형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 개념미술가의 작품이 한눈에 봐도 로렌스 위너 작품처럼 보이는 디자인을 갖게 됐다.
시각성 탈출하려다 자기만의 폰트 감성 만들어버렸다.
다만 같은 작품도 설치환경에 따라 글자 크기와 색상, 배치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특정 디자인 하나가 작품의 절대적인 원형은 아니다.
관객
위너에게 관객은 작품을 완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는 누군가 읽고 의미를 이해해야 작동하기 때문이다.
Whitney는 위너가 관객이 작품의 의미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봤다고 설명한다.[8]
같은 문장도 사람마다 다른 상황을 떠올릴 수 있다.
예를 들어 MOVED FROM UP FRONT 이라는 문장을 읽으면 어떤 사람은 물건을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사람의 이동을 떠올리고, 또 다른 사람은 정치적인 의미를 상상할 수도 있다.
작품이 특정한 해석 하나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가 설명 덜 하고 관객한테 숙제 던지는 방식이다.
국제적 활동
위너는 뉴욕 개념미술계의 핵심 인물이었지만 활동범위는 미국에만 머물지 않았다.
1960년대부터 유럽을 자주 여행했고 특히 네덜란드·독일 등 유럽 개념미술계와 긴밀하게 교류했다.[3]
1970년대 이후에는 뉴욕과 암스테르담을 오가며 작업했고 유럽 여러 도시에서 공공미술과 전시를 진행했다.
이런 국제적인 활동에는 언어를 주요재료로 사용한다는 점이 도움이 됐다.
문장은 번역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번역 과정에서 의미가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데 위너에게는 이런 변화 역시 언어가 실제 사회에서 작동하는 방식의 일부였다.
대리석 조각은 통관해야 하지만 문장은 번역하면 된다.
회고전
2007년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는 《Lawrence Weiner: AS FAR AS THE EYE CAN SEE》라는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했다.[10]
이는 미국에서 열린 위너의 첫 대규모 회고전이었다.
전시는 이후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등으로 이어지며 약 40년에 걸친 작품세계를 정리했다.
이 시점에는 위너가 더 이상 1960년대의 실험적인 신인작가가 아니라 현대미술사에 완전히 들어간 원로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벽에 글자 쓰니까 미술 아니라고 욕먹었는데 수십 년 지나니까 미술관이 벽 전체를 비워주고 글자 써달라고 했다.
말년과 죽음
위너는 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계속 작품활동과 전시를 이어갔다.
2021년 12월 2일 사망했으며 향년 79세였다. MoMA와 Whitney를 비롯한 여러 미술기관이 그의 사망 이후 추모자료를 발표했다.[11]
1960년대 후반부터 반세기 넘게 언어를 미술의 주요재료로 사용하는 작업을 지속했으며, 이후 텍스트 기반 현대미술과 설치미술에 큰 영향을 남겼다.
개념미술에서의 위치
로렌스 위너는 조셉 코수스, 솔 르윗, 로버트 배리, 더글러스 휴블러 등과 함께 1960년대 미국 개념미술의 핵심작가로 평가된다.
이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문제 삼았던 것은 작품이 꼭 물건이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답은 달랐다.
| 작가 | 특징 |
|---|---|
| 조셉 코수스 | 언어·정의·철학을 통해 예술 개념 자체를 분석 |
| 솔 르윗 | 작품의 아이디어와 실행규칙을 분리 |
| 로렌스 위너 | 언어 자체를 조각으로 사용하며 실제 실행 여부를 선택사항으로 봄 |
| 로버트 배리 | 보이지 않는 물질·공간·정보 등을 작품으로 사용 |
| 더글러스 휴블러 | 지도·사진·문서 등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기록 |
이 가운데 위너는 언어도 물질만큼 실제적인 조각재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장 장기간 일관되게 밀어붙인 작가 가운데 하나였다.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
오늘날 현대미술 전시에서 텍스트 작업은 너무 흔해서 별로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벽에 문장을 쓰거나, 건물에 문구를 설치하거나, 작품 자체를 지시문으로 만들거나, 제작하지 않은 아이디어만 작품으로 제시하는 방식도 익숙하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이런 방식이 기존의 회화·조각 중심 미술관 시스템을 상당히 급진적으로 흔들었다.
위너는 특히
- 작품의 물질적 제작 여부
- 예술가의 직접 제작
- 원본의 개념
- 작품 소유
- 미술품 유통
- 전시공간
- 관객의 역할
을 한꺼번에 문제 삼았다.
현대미술의 "작품 어디 있음?"이라는 질문에 "지금 읽은 그 문장이 작품인데요"라는 답변을 정상화한 인간 중 하나다.
비판
위너의 작업 역시 개념미술 전반과 마찬가지로 많은 비판을 받는다.
대표적으로는
- 문장 몇 줄이 왜 미술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 시나 철학과 미술의 차이가 불명확하다.
- 시각적 즐거움이 부족하다.
- 설명을 읽어야 작품을 이해할 수 있다.
- 실제 제작이 필요 없다면 미술가의 기술은 무엇인가.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실제로 위너 작품을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보면 벽에 영어 써놨네하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것 역시 완전히 틀린 감상은 아니다.
위너 작업은 전통회화처럼 색채나 붓질 자체를 감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문장이 작품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개념미술이라는 이름만 붙으면 아무 문장이나 자동으로 좋은 작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벽에 "치킨 먹고 싶다" 써놓고 로렌스 위너 따라했다고 하면 그냥 치킨 먹고 싶은 새끼다.
작품이 기존 미술의 어떤 문제를 건드리고 어떤 맥락에서 작동하는지가 중요하다.
주요 작품
| 연도 | 작품 | 특징 |
|---|---|---|
| 1968 | 《A 36" X 36" REMOVAL TO THE LATHING OR SUPPORT WALL OF PLASTER OR WALLBOARD FROM A WALL》 | 벽 일부를 제거하는 행위를 언어로 제시 |
| 1968 | 《Statements》 | 여러 언어적 작품을 수록한 작가책 |
| 1968 | 《One Standard Air Force Dye Marker Thrown into the Sea》 | 물질과 행위를 문장으로 제시 |
| 1970 | 《MOVED FROM UP FRONT》 | 이동이라는 공간적 관계를 언어로 제시 |
| 1989 | 《HERE THERE & EVERYWHERE》 | 장소와 방향에 관한 텍스트 설치 |
이름
한국어로는 일반적으로 로렌스 위너라고 표기한다. 영문 이름은 Lawrence Weiner이며 본명은 Lawrence Charles Weiner다.[1]
검색자료에서는
- 로렌스 위너
- Lawrence Weiner
- 로렌스 위너 개념미술
- Lawrence Weiner Statements
- Lawrence Weiner Statement of Intent
- 로렌스 위너 언어 조각
- Lawrence Weiner Conceptual Art
등의 표현이 자주 사용된다.
영어 성 Weiner 때문에 가끔 발음을 이상하게 읽는 사람이 있는데 독일 소시지 위너 얘기하는 문서는 아니다.
여담
- 1942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 1960년대 초반에는 실제로 회화작업도 했다.
- 1968년 이후 언어가 작품의 핵심 재료가 됐다.
- 작품을 작가가 직접 제작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 다른 사람이 제작해도 되고 아예 실제로 제작하지 않아도 작품이 성립한다고 생각했다.
- 《Statements》는 개념미술사에서 중요한 초기 작가책 가운데 하나다.
- 조셉 코수스, 솔 르윗, 로버트 배리, 더글러스 휴블러 등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 세스 시겔라우브가 기획한 여러 개념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 1968년 《Xerox Book》에도 참여했다.
- 네덜란드와 깊은 인연이 있어 뉴욕뿐 아니라 암스테르담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했다.
- 영화, 책, 음반, 비디오, 포스터 등 작품매체가 상당히 다양했다.
- 대문자 문장과 그래픽 기호를 활용한 특유의 디자인이 유명하다.
- 작품의 실제 크기나 색상, 설치위치가 장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언어를 작품의 설명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로 사용했다.
- 자기 작품을 조각으로 취급했다.
- 벽에 글 몇 줄 적어놓은 것 같지만 미술사적으로는 조각의 물질성과 원본개념을 박살내는 데 상당한 역할을 했다.
- 2021년 사망했다.
- 조각가인데 작품 운송할 때 지게차보다 이메일이 더 유용한 인간이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 Museum of Modern Art - Lawrence Weiner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Lawrence Wei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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