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셉 코수스 | |
| 생년월일 | 1945년 1월 31일 |
|---|---|
| 국적 | 미국 |
| 출생지 | 미국 오하이오주 톨리도 |
| 학력 | 톨리도 미술관 디자인학교, 클리블랜드 미술학교, 뉴욕 시각예술학교 |
| 직업 | 미술가, 작가, 미술이론가 |
| 활동기간 | 1960년대 ~ 현재 |
| 장르 | 개념미술, 설치미술 |
| 영문 | Joseph Kosuth |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 1945년 1월 31일 ~ )는 미국의 개념미술가, 설치미술가, 미술이론가이다. 1960년대 후반 등장한 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하나로, 작품의 물질적인 형태나 제작기술보다 아이디어, 언어, 정의, 의미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미술의 핵심 문제로 끌어들였다.[1]
대표작은 1965년 제작한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다. 그냥 의자 하나, 그 의자를 찍은 사진 하나, 그리고 사전에서 가져온 'chair'라는 단어의 정의 하나를 나란히 세워놓은 작품이다.[2]
의자 하나 갖다놓고 사진 찍고 사전 복사해 붙였는데 현대미술사 교과서에 박혀버렸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나도 할 수 있겠다"로 끝나는 작품은 아니다. 코수스가 묻는 것은 세 개 중 어느 것이 진짜 의자인가? 혹은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실제 물건을 보는 것인가, 이미지를 보는 것인가, 아니면 언어로 정의하는 것인가? 같은 문제다. 다시 말해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보고 머릿속에서 발생하는 철학적 질문을 작품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1969년에는 「철학 이후의 미술」(Art After Philosophy)을 발표해 자신의 개념미술론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 글은 같은 해 《Studio International》에 3회에 걸쳐 연재됐으며 이후 개념미술을 설명하는 핵심 이론문 가운데 하나가 됐다.[3]
그림 그리는 사람이 그림보다 논문으로 더 유명해진 케이스다.
생애
어린 시절
조셉 코수스는 1945년 1월 31일 오하이오주 톨리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교육을 받았으며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톨리도 미술관 산하 디자인학교(Toledo Museum School of Design)에서 공부했다. 이후 1963년부터 1964년까지 클리블랜드 미술학교에서 수학했다.[1]
1965년에는 뉴욕으로 이동해 School of Visual Arts에 입학했다.
그런데 당시 미대생이면 보통
그림 잘 그려야지
조각 잘 만들어야지
하는 방향으로 갈 법한데, 코수스는 오히려
근데 씨발 미술이 뭔데?
부터 물어보기 시작했다.
회화기술을 발전시키기보다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분석하기 시작했고, 곧 그림을 그리는 전통적인 작업에서 멀어졌다.
1967년에는 뉴욕에서 개념미술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인 Museum of Normal Art를 공동 설립했으며 이후 School of Visual Arts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1]
개념미술로의 전환
코수스가 활동을 시작하던 1960년대 미국 미술계에서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미니멀리즘, 팝아트, 퍼포먼스, 설치미술 등 기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흔드는 여러 움직임이 등장하고 있었다.
특히 마르셀 뒤샹이 이미 수십 년 전에 변기를 미술관에 처박고
내가 작품이라고 했으니까 작품임
이라는 레디메이드의 지옥문을 열어놓은 상태였다.
코수스는 이 문제를 더 밀어붙였다.
뒤샹이 평범한 물건을 미술관에 가져다 놓음으로써 무엇이 작품인가라는 문제를 만들었다면 코수스는
그럼 예술이라는 게 물건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 물건을 예술이라고 이해하는 개념에 있는 거 아니냐?
라고 보기 시작했다.
1965년 제작된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는 이 생각을 가장 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이 됐다.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는 조셉 코수스의 대표작이자 개념미술을 설명할 때 거의 무조건 튀어나오는 작품이다.
구성은 존나 단순하다.
- 실제 나무 의자 하나
- 그 의자를 정면에서 촬영한 사진
- 사전에서 가져온 chair의 정의
끝이다.[2]
미술관 직원 입장에서 보면 "의자 가져오세요. 사진 찍으세요. 사전 확대복사하세요." 하면 설치 완료다.
하지만 중요한 건 물건의 제작 난이도가 아니다.
코수스는 이 세 가지를 통해 하나의 대상을 세 가지 방식으로 제시했다.
| 요소 | 의미 |
|---|---|
| 실제 의자 | 물질적인 대상 |
| 의자의 사진 | 시각적 재현 |
| 사전적 정의 | 언어적·개념적 재현 |
셋 다 같은 의자를 가리키지만 존재방식은 전혀 다르다.
실제 의자는 앉을 수 있지만 사진에는 앉을 수 없다.
사진은 특정한 의자의 모습을 정확하게 보여주지만 사전의 정의는 특정 의자가 아니라 의자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설명한다.
반대로 실제 의자는 그냥 물건 하나일 뿐 그 물건이 왜 의자인지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그래서 진짜 의자는 어느 건데? 라는 병신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바로 그 지점이 작품이다.
MoMA 역시 이 작품을 실제 물체, 이미지, 언어라는 서로 다른 세 가지 재현방식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설명한다.[2]
왜 사진을 매번 다시 찍는가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에서 재미있는 점은 특정 의자 한 개가 무조건 원본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작품을 다른 미술관에 설치할 경우 전시공간에서 사용할 의자를 놓고 그 의자를 다시 촬영한다.
따라서 전시 장소가 달라지면 실제 의자와 사진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라는 동일한 작품으로 인정한다.
즉 작품의 정체성이 특정한 나무 의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자 + 그 의자의 사진 + 의자의 정의라는 구조와 아이디어에 있다는 것이다.
의자가 바뀌어도 작품은 안 바뀐다.
이 한 줄이 사실상 개념미술의 핵심을 상당 부분 설명한다.
개념미술
아이디어가 작품이다
개념미술은 작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 재료나 기술보다 작품을 구성하는 아이디어와 개념을 우선한다.
전통적인 미술에서는 화가의 붓질이나 조각가의 기술, 색채와 형태 같은 시각적 요소가 매우 중요했다.
코수스에게는 이런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았다.
작품이 질문이나 개념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면 굳이 화가가 직접 그림을 그릴 이유가 없었다.
붓질할 시간에 생각이나 하라는 미술이다.
Whitney Museum은 코수스를 개념주의의 선구자 가운데 하나로 설명하면서 그의 작업이 미술을 순수하게 시각적인 대상에서 떼어내 그 이론적 구조 자체를 보게 만들었다고 설명한다.[4]
물질적인 작품의 해체
코수스가 활동하던 시기의 개념미술에서는 흔히 미술작품의 비물질화라는 흐름이 나타났다.
이는 그림이나 조각 같은 영구적인 물체를 반드시 제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다.
작품이
- 문장
- 지시문
- 사진
- 지도
- 문서
- 정의
- 기록
- 행위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었다.
심지어 작품 자체보다 작품을 만드는 규칙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술관에 작품 보러 갔는데 설명문이 작품이다.
이게 농담 같지만 실제로 그런 시대가 왔다.
Art as Idea as Idea
1966년부터 코수스는 Art as Idea as Idea라는 연작을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사전에서 특정 단어의 정의를 찾아 크게 확대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제시했다.
예를 들면
definition
meaning
idea
같은 단어의 사전적 정의 자체를 사진이나 패널 형태로 전시했다.
MoMA에는 1966~1968년 제작된 《Titled (Art as Idea as Idea) The Word "Definition"》 등이 소장돼 있다.[5]
전통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전 복사해서 벽에 붙임이다.
개념미술 관점에서는 작품의 핵심이 이미지가 아니라 정의하는 행위 자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미술작품을 그리는 대신 미술이 무엇인지 정의하는 걸 작품으로 만들었다.
언어
코수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재료 중 하나는 언어다.
그는 회화와 조각 대신 단어, 문장, 사전 정의, 인용문 등을 끊임없이 사용했다.
이는 단순히 작품에 설명을 붙인 것이 아니다.
글자가 작품 자체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할 때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의자'라는 물체를 봤을 때 인간은 그냥 나무와 철의 형태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머릿속에 존재하는 의자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이해한다.
즉 현실 → 눈 → 뇌로 직통하는 게 아니라 현실 → 언어와 개념 → 이해라는 과정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코수스는 이 틈을 미술로 파고들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코수스의 작업에는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영향이 크게 언급된다.
특히 언어와 의미가 어떻게 작동하는가라는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1]
비트겐슈타인은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와 세계의 관계, 단어의 의미가 실제 사용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등을 분석한 20세기의 대표적인 철학자다.
코수스 역시 미술작품을 단순한 물체라기보다 일종의 명제 또는 의미생산의 구조로 바라봤다.
그래서 코수스 작품을 공부하면 미술사 → 언어학 → 분석철학으로 갑자기 장르가 바뀌는 일이 흔하다.
이 점 때문에 코수스의 작품은 눈으로 보는 것보다 글로 읽고 생각하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다.
예쁜 그림 기대하고 왔으면 좆됐다.
마르셀 뒤샹
코수스에게 또 하나의 결정적인 선배는 마르셀 뒤샹이다.
뒤샹은 1910년대부터 공장에서 생산된 기성품을 선택해 작품으로 제시하는 레디메이드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1917년의 《샘》이다.
그냥 남성용 소변기를 가져와 서명하고 전시장에 제출했다.
뒤샹 이후 중요한 질문은 예술가가 직접 만든 게 아니어도 작품인가? 가 됐다.
코수스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갔다.
그렇다면 작품을 작품으로 만드는 건 물건이 아니라 "이것은 미술이다"라고 작동하는 개념과 맥락 아닌가? 라는 것이다.
코수스는 「철학 이후의 미술」에서도 뒤샹 이후의 미술이 본질적으로 개념적이라고 주장했다.
뒤샹이 변기로 문을 부쉈고 코수스가 그 구멍으로 철학책 들고 들어왔다.
르네 마그리트와의 비교
코수스의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를 보면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을 떠올리는 경우도 많다.
마그리트는 파이프 그림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라는 문장을 적었다.
당연히 그림 속 파이프는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코수스 역시 실제 사물·이미지·언어의 차이를 문제로 삼는다.
다만 마그리트가 회화 안에서 이미지와 언어의 관계를 뒤틀었다면 코수스는 아예
실제 물건 + 사진 + 사전
을 전시장에 직접 가져다 놓는다.
| 르네 마그리트 | 조셉 코수스 | |
|---|---|---|
| 대표작 | 《이미지의 배반》 |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
| 핵심 문제 | 이미지와 현실의 관계 | 대상·이미지·언어·개념의 관계 |
| 방식 | 회화 | 설치·사진·언어 |
| 분위기 | 초현실주의적 역설 | 분석철학 시험문제 |
마그리트가 "이건 파이프 아님" 하고 낚았다면 코수스는 의자 세 개 던져놓고 "그래서 의자가 뭐냐?"고 시험을 본다.
철학 이후의 미술
1969년 코수스는 《Studio International》에 「철학 이후의 미술」(Art After Philosophy)을 발표했다.
이 글은 같은 해 10월, 11월, 12월 세 부분으로 연재됐다.[3]
코수스는 여기서 미술의 역할을 미적인 물건을 만드는 활동으로 한정하는 것에 반대했다.
그에게 예술가가 해야 할 일은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탐구하는 것 이었다.
미술작품은 미술에 관한 하나의 명제이며 새로운 작품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가를 확장하거나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봤다.
이 관점에서 단순히 예쁜 그림을 하나 더 그리는 것은 기존의 미술 개념 안에서 물건을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반면 사전 한 페이지를 벽에 붙여놓고 이게 왜 미술인지 묻게 만드는 것은 미술이라는 개념 자체를 건드린다.
코수스한테는 후자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현대미술에서 "이딴 게 왜 예술임?"이라는 욕이 나오면 개념미술가는 오히려 계획대로라고 좋아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바로 그 질문을 만들려고 작품을 만든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분석명제
코수스는 자신의 초기 개념미술을 설명하면서 분석철학에서 사용하는 분석명제와 비슷한 구조를 미술에 적용했다.
예를 들어 모든 총각은 미혼이다라는 문장은 새로운 경험적 사실을 알려주는 문장이 아니라 '총각'이라는 단어의 정의 안에 이미 '미혼'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코수스는 미술작품도 이런 식으로 이것은 예술이며 동시에 예술이 무엇인지 설명한다는 자기지시적 구조를 가질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초기 작품 상당수가 사전 정의나 작품 자체를 설명하는 문장으로 구성돼 있다.
미술이 자기소개서를 쓰기 시작했다.
네온 작품
코수스는 텍스트를 단순히 종이에 인쇄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네온사인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대표적인 초기 작품으로 《Five Words in Green Neon》 등이 있다.
제목 그대로 Five Words in Green Neon이라는 다섯 단어를 녹색 네온으로 제작한 작품이다.[4]
그러니까 작품 제목이 녹색 네온으로 된 다섯 단어인데 실제 작품도 녹색 네온으로 된 "Five Words in Green Neon"이라는 다섯 단어다.
설명서와 제품이 합체했다.
코수스가 이런 식의 자기지시적 언어를 사용한 이유는 작품의 외형보다 작품이 어떻게 의미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네온이라는 재료 자체도 당시 상업광고와 도시환경에서 흔히 사용되던 것이어서 전통적인 회화재료와는 거리가 있었다.
Art & Language
1960년대 후반 코수스는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개념미술 그룹 Art & Language와도 관계를 맺었다.
1969년에는 이들이 발행하던 《Art-Language》의 미국 편집자로 참여했다.[1]
Art & Language는 작품 제작뿐 아니라 미술이론과 언어분석, 토론 자체를 예술활동으로 취급했다.
이쯤 되면 그림 그리는 미술 동아리가 아니라 세미나하다가 싸우는 대학원 연구실같은 분위기가 된다.
코수스는 1970년대 중반까지 이 그룹과 연관돼 활동했으나 이후 독립적인 작업을 이어갔다.
1970년대 이후
초기 코수스는 사전 정의와 짧은 텍스트처럼 매우 건조하고 분석적인 작업을 많이 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에는 언어와 의미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면서도 역사·문화·인류학·정치·심리학 등 보다 넓은 맥락을 작업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1971~1972년에는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인류학과 철학을 공부했다.[1]
이후 여러 작가와 철학자의 문장을 인용하거나 특정 장소의 역사와 연결되는 텍스트 설치작업을 제작했다.
즉 초기에는
chair = 의자
같은 언어철학 문제에 집중했다면 후기에는
이 문장이 이 장소와 역사 속에서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
까지 범위가 넓어진 셈이다.
박물관과 공공미술
코수스의 작품은 이후 여러 국제전과 미술관에 전시됐다.
도큐멘타에는 여러 차례 참여했으며 베네치아 비엔날레에도 출품했다.[1]
2009년에는 루브르 박물관의 중세 성벽 유적 공간에 《Neither Appearance Nor Illusion》이라는 대규모 텍스트 설치작업을 제작하기도 했다.[6]
이런 후기 작업에서는 특정 장소의 역사나 건축과 텍스트가 결합된다.
따라서 코수스의 작업을 단순히 사전 복사하는 아저씨라고만 이해하면 초기 작품만 보고 끝나는 셈이다.
개념미술에서의 위치
조셉 코수스는 솔 르윗, 로렌스 위너, 로버트 배리, 더글러스 휴블러, 온 카와라 등과 함께 1960~70년대 개념미술의 주요 인물로 언급된다.
다만 이들이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작업한 것은 아니다.
| 작가 | 대표적인 특징 |
|---|---|
| 조셉 코수스 | 언어·정의·철학·미술 개념 자체의 분석 |
| 솔 르윗 | 작품보다 제작 규칙과 아이디어 |
| 로렌스 위너 | 언어 자체를 작품으로 사용 |
| 온 카와라 | 날짜·시간·존재의 기록 |
| 마르셀 뒤샹 | 레디메이드, 개념미술의 선구적 기반 |
코수스의 특징은 그중에서도 특히 언어철학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념미술을 처음 공부하는 사람이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를 보고 아니 의자 세 개가 아니라 하나잖아하고 따지기 시작했다면 이미 작품에 걸린 것이다.
미술인가?
코수스 이야기를 하면 거의 반드시 나오는 반응이 있다.
“이딴 게 미술이면 나도 하겠다.”
사실 틀린 반응도 아니다.
코수스의 작품 상당수는 제작기술만 놓고 보면 일반인이 충분히 따라할 수 있다.
의자 놓고 사진 찍고 사전 정의 복사하는 게 미켈란젤로처럼 대리석 깎는 것보다 어려울 리가 없다.
하지만 개념미술이 주장하는 것은 애초에 만드는 기술의 난이도 = 작품의 가치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어떤 미술사적·철학적 질문을 제시했는가, 그 질문이 기존의 예술개념을 어떻게 바꿨는가에 있다.
예를 들어 E=mc² 나도 종이에 쓸 수 있는데 아인슈타인 별거 없네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문제가 생긴다.
수식 자체를 베끼는 건 쉽지만 그 생각을 처음 만들어내는 건 다른 문제다.
물론 이 논리가 현대미술의 모든 작품을 자동으로 훌륭하게 만들어준다는 뜻은 아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말은 반대로 말하면 아이디어가 병신이면 작품도 그냥 병신일 수 있다는 뜻이다.
개념미술이라고 면죄부가 생기는 건 아니다.
비판
코수스와 개념미술은 등장 당시부터 비판도 많이 받았다.
가장 흔한 비판은
- 지나치게 지적이고 난해하다.
- 작품 자체보다 설명문이 더 중요하다.
- 시각적인 즐거움을 무시한다.
- 철학과 미술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 관객이 미술이론을 모르면 접근하기 어렵다.
등이다.
실제로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를 아무 설명 없이 보면 의자 하나에 사진 하나랑 사전 붙여놨네하고 10초 만에 지나갈 수도 있다.
코수스 입장에서는 그 10초 뒤에 근데 왜 저게 작품이지? 라는 질문을 하는 순간부터 작업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그 질문하려고 미술관 입장료 냈냐라는 반응도 당연히 나올 수 있다.
이 긴장 자체가 개념미술이 등장한 이후 현대미술에서 계속 이어지는 논쟁이기도 하다.
영향
코수스 이후 현대미술에서는 글자와 문장 자체를 작품으로 사용하는 방식이 매우 흔해졌다.
오늘날 미술관에서
- 벽 전체를 차지하는 문장
- 네온으로 만든 텍스트
- 설명서만 존재하는 작품
- 관객이 지시문에 따라 수행하는 작품
- 기록문서와 사진으로만 남는 작품
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런 흐름의 역사에서 코수스를 빼기 어렵다.
특히 작품의 물질적인 외형보다 아이디어와 맥락을 우선한다는 생각은 이후 설치미술·퍼포먼스·사회참여미술 등 다양한 현대미술에 영향을 줬다.
현대미술관 갔는데 작품보다 벽에 써 있는 글이 더 길다면 조상 중에 이 양반이 있다고 보면 된다.
주요 작품
| 연도 | 작품 | 내용 |
|---|---|---|
| 1965 |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One and Three Chairs) | 실제 의자·사진·사전 정의를 함께 제시 |
| 1965 | 《One and Five Clocks》 | 시계와 이미지·언어를 이용한 작업 |
| 1966~1968 | 《Art as Idea as Idea》 | 사전적 정의 자체를 작품으로 제시 |
| 1968 | 《Five Words in Green Neon》 | 작품을 설명하는 다섯 단어를 녹색 네온으로 제작 |
| 1970년대 | 《Text/Context》 계열 | 공공장소와 광고공간에 텍스트를 배치 |
| 2009 | 《Neither Appearance Nor Illusion》 | 루브르 박물관에 설치한 텍스트 작업 |
이름
한국에서는 일반적으로 조셉 코수스라고 표기한다.
영문 이름은 Joseph Kosuth이다.
자료에 따라 조지프 코수스, 조셉 코수트 등의 표기가 보이기도 하지만 국내 미술 관련 자료에서는 조셉 코수스라는 표기가 널리 사용된다.
검색할 때는
- 조셉 코수스
- Joseph Kosuth
- 코수스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
- One and Three Chairs
- 조셉 코수스 개념미술
- Art After Philosophy
등으로 검색하면 관련 자료가 많이 나온다.
여담
- 1945년 오하이오주 톨리도에서 태어났다.
- 20살 무렵인 1965년에 이미 대표작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를 제작했다.
- 원래 회화를 공부했지만 곧 그림을 때려치우고 언어와 개념을 작품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개념미술의 중요한 출발점으로 평가했다.
- 《하나이면서 세 개인 의자》에서 실제 의자와 사진은 전시 장소에 따라 바뀔 수 있다.
- 즉 어느 특정한 의자가 원본 작품인 게 아니다.
- 작품 아이디어와 설치규칙이 작품의 정체성을 유지한다.
- 그래서 미술품 운송업체 입장에서는 다른 대형 조각보다 편할 것 같지만 개념미술은 설치지침을 정확히 지켜야 하므로 또 다른 의미로 존나 귀찮다.
- 사전 정의를 작품으로 많이 써서 작품 사진만 보면 영영사전 확대복사본처럼 보이는 경우가 있다.
- 네온사인을 이용한 텍스트 작업도 많이 했다.
- 1969년 「철학 이후의 미술」을 발표했을 당시 겨우 24세였다.
- 같은 해 뉴욕 레오 카스텔리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었다.[1]
- 미술가면서 동시에 미술이론가 성격이 매우 강하다.
- 작품보다 논문이 먼저 나오는 미술사 시험문제의 공포 그 자체다.
- 코수스의 대표작을 이해하고 나면 현대미술관에서 의자만 보여도 "혹시 이것도 작품인가?" 하고 의심하는 병에 걸릴 수 있다.
- 미술사에서 의자를 가장 쓸데없이 복잡하게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다.
- 가구점에서는 의자 하나면 끝나는데 코수스한테 가면 존재론이 된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
- Museum of Modern Art - Joseph Kosuth
- Museum of Modern Art - One and Three Chairs
-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Joseph Kosuth
- Toledo Museum of Art - Joseph Kosuth
- Studio International - Art after Philosophy
- MIT Press - Art After Philosophy and After
- ↑ 1.0 1.1 1.2 1.3 1.4 1.5 1.6 1.7 Toledo Museum of Art - Joseph Kosuth
- ↑ 2.0 2.1 2.2 Museum of Modern Art - Joseph Kosuth, One and Three Chairs
- ↑ 3.0 3.1 Studio International - Art after philosophy
- ↑ 4.0 4.1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 - Joseph Kosuth
- ↑ Museum of Modern Art - Joseph Kosuth
- ↑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 Joseph Kosu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