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디시위키에서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 디시위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분쟁들에 대해 Be폭력만으로 저항하신 평화주의자 성님들을 욕보이게 하는 짓은 하지 맙시다.
하지만 평화주의자가 금이 필요할 때 순순히 금을 넘기지 않는다면 유혈사태를 일으켜서라도 평화구현을 할 수도 있으니 각별히 주의하세요!!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희망을 잃지 마십시오! (이봐 머대리, 머리 좀 기르세, //네 과장님 ㅠㅠ)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이♩♪♬~
으따 바람이 구멍을 통해 솔솔 들어오구마잉~
모한다스 카람찬드 간디 Mohandas Karamchand Gan D. hi | |
| 국적 | |
|---|---|
| 출생지 | 포르반다르, 카티아와르 |
| 직업 | 독립운동가 |
| 정당 | 인도 국민 회의 |
| 표방이념 | 간디주의, 사티아그라하, 비폭력주의, 인도 민족주의, 종교 화합 |
개요
1869년 10월 2일 출생.
정확히는 당시 카티아와르의 포르반다르 번왕국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카람찬드 간디는 포르반다르의 디완, 즉 재상에 해당하는 고위 관료였으므로 밑에 나오는 것처럼 출신 자체는 흙수저와 거리가 멀었다.[1]
1948년 1월 30일에 뉴델리의 비를라 하우스에서 열린 저녁 기도회에 참석하던 중 힌두 민족주의자 나투람 고드세에게 근거리에서 세 발을 맞아 암살당했다.[2]
ㄴ 원문에는 고드세를 RSS 소속 무장단체원이라고 단정했는데 정확히는 좀 복잡하다. 고드세가 젊은 시절 RSS에 가입했던 것은 확실하고 이후 힌두 마하사바 푸네 지부 간부가 됐다. RSS 측은 그가 암살 이전 이미 탈퇴했다고 주장하지만 고드세의 동생 고팔 고드세는 훗날 형이 RSS를 떠난 적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RSS라는 조직이 간디 암살을 지시했다는 것은 당시 수사에서 입증되지 않았다.[3][4]
세계에서 이순신 외에 성웅으로 불리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ㄴ 이건 그냥 한국식 드립에 가깝고 국제적으로는 보통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 간디라고 불린다. 인도에서는 흔히 국부로 대우받지만 법률상 공식 국가 칭호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카레새끼의 헛소리
정상인들은 한시라도 빨리 이 문서를 정리하여 주십시오.
아래 간디의 결점은 2010년대 기준 윤리를 적용해서 그런 거다. 간디는 1869년 생으로 19c 사람인데 100년이 넘는 동안 새롭게 바뀐 21c 기준 윤리로 재단하면 병신이 될 수밖에 없다. 틀딱들 예의없다고 ㅈㄹㅈㄹ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 틀딱의 틀딱 세대인 다른 사람들은 간디에 비하면 얼마나 윤리적인 삶을 살았을까?
미국의 지식인들도 20c 중반까지 흑인차별 안하면 병신이었다.
한국 1950년대에는 국회의원(김두한)이 정부 관료를 패고 다녀도 사나이들이 싸움좀 할수있지 하는 미개한 분위기였고
70년대까지도 남편이 처자식들 조금씩 패는 거는 집안 사정이니 터치할 수 없는 일이었고 80년대에는 폭력은 좀 아니지만 언어폭력을 일삼아도 터치 할 수 없었다.
90년대마저도 좁은 버스나 엘리베이터 안에서 신생아가 있건말건 담배를 뻑뻑 피워대던 미-개한 시기였던 것이다.
1900년대 초 인도는 과연 얼마나 더 나았을까.
참고로 인도는 지금까지도 강간범보다 당한놈이 더 잘못한 국가이다...
는 지랄이고 위에새낀 무슨 간디가 천년 전 사람인줄 아나 보다. 간디가 언제 죽었는 줄 아냐? 1948년에 죽었다.
1940년대면 이미 인종 간 평등같은 현대적인 인권사상이 출현한지 오래고 이것들이 구시대적인 사고관들과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던 시대였다.
지금처럼 인류 보편적인 윤리는 아니었을지라도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논리에 입각해서 생각해보면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있던 시대였다는 말이다.
1940년대에 죽은 인물들 중 아직까지 위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서 간디새끼 정도로 사생활이 더러웠던 놈은 없다.
심지어 이새끼는 지가 유색인종 식민지인이라서 차별받는 걸 불쾌해했고 그게 좆같은 짓거리라는 걸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간디가 무슨 문화 예술인이나 과학자도 아니고, 인권 운동가로써 위인 소리 듣는 새끼가 남아공 흑인차별이나 옹호하는 좆같이 위선적인 모습을 보여줬으니 까이는거다.
20세기 인도가 아무리 좆같았다고 한들 어디 깡촌의 소수민족도 아니고 배울 만큼 배운 새끼가 그지랄하는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ㄴ 다만 한 가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남아공 초창기 간디가 흑인에 대해 인종차별적 표현과 태도를 보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평생 똑같은 생각만 한 것도 아니다. 1890~1900년대 초 글에서는 흑인을 당시 남아공의 멸칭으로 부르고 인도인이 흑인과 동일하게 취급되는 것에 불만을 표시한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2018년 가나대학교에서는 간디 동상까지 철거됐다.[5][6]
ㄴ 반대로 1908년 무렵에는 공개 연설에서 아프리카인과 아시아인 모두 제국에 기여하고 있으며 남아공을 아프리카인 없이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관점이 변화한 기록도 있다. 그래서 학계에서도 초기에는 분명 인종적 편견이 있었지만 이후 변화했다는 해석과, 그 변화도 불완전했다는 해석이 같이 존재한다.[7]
오늘날 수많은 평화적 시민운동의 창시자
간디는 영국으로부터 차별받고, 영국이 1차대전 지원하면 독립시켜준다 그래서 믿고 전쟁에 참여하자 그랬더니 통수맞아서 독립운동을 시작했다.
ㄴ 정확히는 영국이 1차대전 지원 대가로 인도 독립을 공식 보장했다고 단순화하면 안 된다. 간디는 당시 인도인이 제국에 협력하면 정치적 권리와 자치 확대를 얻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실제로 전쟁 중 병력 모집까지 지원했다. 그러나 전쟁 이후에도 식민통치가 계속되고 롤럿법과 암리차르 학살까지 벌어지면서 영국에 대한 태도가 급격히 강경해졌다.
그 과정에서 단순한 퍼포먼스로 하층민들에게 엄청난 지지를 얻었다. 당시 하층민들은 문자 자체를 몰라서 그런거 아니면 그런 거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런 행위는 선비짓하며 엘리트노름하던 인도국민회의 같은 애들은 절대 해낼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지지를 바탕으로 폭력도 안 쓰면서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고 단식하고 소금 퍼포나 물레 퍼포 하면서 범접할 수 없는 정치력과 명성을 얻었고 인도 독립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요즘에야 정치인이나 사회운동가가 떠벌떠벌대면 라디오고 tv고 인터넷이고 같이 떠벌려주지만 그런 거도 없고 국민들은 멍청한데 어떡하지? 바로 간디가 '소금 규제 반대해서 직접 바다로 몇날며칠 걸어가서 소금깃기', '물레돌리면서 다들 물레돌려서 영국산 대신 국산 씁시다','나 감옥에 있고 단식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건 영국때문이에요' 등등 대중적인 서민퍼포먼스(그리고 간디는 변호사 일 했지만 당연히 독립운동하면서 변호사 일을 놓아야만 했으므로 100% 퍼포먼스는 아니다)를 만들어서 큰 임팩트를 남겼기 때문에 오늘날 정치인도 따라하는 거다.
요즘같은 21c에야 이런 방식이 좀 알려져있지만 당시는 19~20c였다.
ㄴ 특히 1930년의 소금 행진은 간디 정치의 정수를 보여준 사건이다. 영국의 소금세와 독점을 상대로 약 380km를 걸어 바닷가에서 직접 소금을 만들었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생활 문제를 식민지배 자체의 정당성 문제로 바꿔버렸다.
영국의 인도 통치의 맹점을 찌른 전략
아무튼 그래서 수적으로 엄청 딸리던 영국인들은 엘리트, 소수민족, 소수종교를 포섭해 인도를 통치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도 나오는 인도국민회의같은 영국 유학한 친영 엘리트, 시크교도, 이슬람교도, 구르카족, 싱할라족(소위 전투민족들이라 부르고 군인으로 써먹었다) 등등.
그런데 수많은 하층민들은 위의 간디의 퍼포먼스를 보고 여태껏 없던 방식에 깊게 감명받아 간디를 빨기 시작했다. 문맹에 무식한 하층민들은 간디의 실제 사상을 잘 몰랐지만 간디는 모든 소망의 대변자가 되었다.
이렇게 수많은 국민들이 간디를 따르니 간디를 죽일 수도 없고 내버려두자니 영향력은 커지고 해서 그냥 gg치고 가버렸다. 그래서 영국은 2차대전 승전국이었는데도 인도가 빨리 독립한 거다.
ㄴ 이건 간디 혼자 영국을 gg치게 만들었다고 하면 너무 단순화된다. 간디와 국민회의의 대중운동이 영국 통치의 정당성과 행정비용을 크게 흔든 것은 맞지만, 2차대전으로 영국이 재정·군사적으로 약화된 것, 노동당 집권, 인도국민군 문제, 1946년 인도 왕립해군 반란, 힌두·무슬림 간 분쟁 악화 등 여러 요인이 같이 작용했다.
ㄴ 그렇다고 간디의 공이 작다는 뜻은 아니다. 엘리트 중심이던 인도 민족운동을 대규모 대중운동으로 바꾼 인물이라는 평가는 지금도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
오늘날 인도의 아버지
인도의 역사는 오랜 분열과 각자 지역마다 나누어진 역사로, 영국이 인도 제국으로 묶은 게 인위적으로 컸다.
인도만 봐도 알겠지만 공식언어만 10개가 넘고, 인구는 13억이다.
ㄴ 2026년 현재는 인도 인구가 14억 명을 넘겼다. 헌법이 인정하는 지정 언어도 22개다.
반면 역사적으로 인도에 있었던 왕국들, 마우리아 왕국이나 굽타 왕국, 무굴 제국 등은 기껏해야 최전성기에 북인도를 점령하는데에만 그쳤다. 애초에 남인도는 북인도와 따로 놀았다. 그리고 중국황제처럼 중앙집권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외곽 지역은 그냥 황제에게 충성하기로 한 지방왕국이 다스리는 거였고(얘들은 제국이 흔들리면 독립했다).
ㄴ 마우리아 제국은 최전성기에 인도 아대륙의 대부분을 장악했으므로 기껏해야 북인도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게 잡은 표현이다. 다만 남단의 타밀계 왕국들까지 완전히 통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화를 거치며 부자연스럽게 형성된 매우 불안정한 국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디는 간디 자신이 힌두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인도의 통합과 연대를 강조함으로써 인도는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이슬람 신자 많은 땅 정도만 나눠주고 오늘날 엄청난 영토와 인구를 지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머지 반은 네루가 기여했다. 만약 인도가 분열되었다면 인도는 그냥 별볼일없는 찌질이국가로 남았을 것이다.
ㄴ 간디는 오히려 인도 분할 자체에 끝까지 반대한 쪽이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함께 사는 통일 인도를 원했고, 파키스탄 창설을 막지 못한 것을 자신의 정치적 실패 가운데 하나로 받아들였다.
ㄴ 분할 직후 힌두·무슬림 학살이 벌어지자 종교간 폭력을 멈추라고 단식했고, 파키스탄에 지급하기로 약속한 자금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태도가 고드세를 비롯한 힌두 민족주의자들의 증오를 산 핵심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8]
비폭력주의자로 명성을 떨침.
간디의 결점
이 문서를 읽을 때는 안심하셔도 되니 마음껏 편안하게 보셔도 됩니다.
하지만 만약 이 내용에 낚여서 피해를 볼 경우 원 작성자를 굴다리로 불러내서 존내 패버릴 것을 추천합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응?? 사실인가??? 시발 모르겠다."
알려진 것과 다르게 뒤가 많이 구림.
ㄴ 인도는 독립이후로 네루계열에서 정권바뀐적이 없는탓에 간디를 신성시하는건 당연하다시피 하다.
ㄴ 이건 지금 기준으로는 완전히 틀렸다. 인도 국민회의는 1977년 총선에서 처음 중앙정권을 잃었고 이후 여러 차례 정권교체가 있었다. 1998~2004년과 2014년 이후에는 BJP가 장기간 집권했다. 간디 숭배가 단순히 네루-간디 가문 독재 때문에 유지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수저 주작 논란
흙수저 코스프레하지만 사실 씹 금수저였다. 아니 위인전 읽어봐도 변호사 자격따고 외국에 막 싸돌아다니잖아. 물레를 돌리고 반라로 다니는 패션은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던 그를 위해 측근들이 준비한 이미지마케팅이라는 듯. 물론 인도인 앞에서 이딴 소리 하면 코로 카레를 먹는다. 음, 근데 이 소리를 들은게 인도인입이란 말이짘ㅋㅋ 뭐 알아서 판단 바람.
ㄴ 출신이 유복했다는 건 사실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모두 번왕국의 디완을 지냈고 간디 본인은 영국에 유학해 변호사 자격까지 땄다.[9]
ㄴ 다만 물레와 간소한 옷차림이 측근이 만들어준 가짜 흙수저 마케팅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간디는 실제로 1900년대부터 재산과 생활방식을 줄여가며 공동체 생활·채식·금욕·수공업을 실천했고 물레 역시 영국산 직물 불매와 농촌 자립경제를 상징하는 정치적 도구였다. 이미지 정치였던 것은 맞지만 단순한 코스프레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ㄴ 애초에 이새끼 독립운동 시작한 계기가 1등석 표 샀는데 인도인이라고 쫒겨난 탓이다.
ㄴㄴ그런데 자기가 정당하게 금수저석 제돈주고 샀는데 인도인이라고 쫒겨나면 당연히 어이없을 수밖에 없다.
위에 말에 조금 추가하자면 간디 입맛이 매우 까다로워서 물도 그냥 물은 안마시고 꿀을 넣은 물을 주로 마셨다함.
이중성 논란
비폭력주의를 지향한다고는 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권 침해나 다름없는 짓거리도 적지 않게 했다고 함.
그리고 서양에서는 간디가 흑인차별주의자였다는 기록도 많다함.
ㄴ 이건 위에서 설명했듯 논란 자체는 실체가 있다. 남아공 초기 간디가 흑인을 인도인보다 낮게 보는 듯한 표현을 여러 차례 쓴 것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다만 이후 그의 인종관이 변한 흔적도 있기 때문에 평생 일관된 백인우월주의자였다고 요약하는 것도 과장이다.[10]
카스트 문제
간디의 결점을 얘기하면서 이건 빼면 안 된다.
간디는 불가촉천민 차별 자체에는 강하게 반대했다. 불가촉천민 제도를 영혼을 파괴하는 죄라고까지 불렀고 사원 출입 허용과 차별 철폐 운동을 벌였다.[11]
그런데 암베드카르와는 여기서 존나게 싸웠다.
암베드카르는 달리트가 상층 카스트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않으려면 별도 선거인단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고 영국 정부도 1932년 이를 받아들이려 했다. 하지만 간디는 이것이 힌두 공동체를 영구 분열시킨다며 감옥에서 죽을 때까지 단식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암베드카르는 간디가 죽으면 달리트들이 보복당할 가능성까지 우려해 양보했고, 별도 선거인단 대신 일반 선거구 안에서 달리트 의석을 확대하는 푸나 협정이 만들어졌다.[12]
암베드카르는 이걸 존나 싫어했다.
간디는 불가촉천민 차별은 없애야 하지만 초기에는 바르나 체계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았고, 암베드카르는 카스트 자체를 박살내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간디 = 카스트차별 옹호자
라고만 쓰면 틀리고,
간디 = 불가촉천민 차별에는 반대했지만 카스트 체계 자체에 대한 태도는 암베드카르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정도가 맞다.
여성 편력 논란
또 유명한 일화로 자기가 여자한테 욕정을 품지 않는다는걸 증명하기위해 자기 조카랑 서로 알몸으로 하루밤 같은 방에서 지내기도 했다함.
ㄴ 대체로 사실인데 조카보다는 정확히는 젊은 여성 추종자와 종손녀뻘 친척들이었다. 특히 1946~1947년에는 10대 후반의 종손녀 마누 간디와 알몸으로 같은 침대에 누워 자면서 자신의 금욕이 완전한지 시험하는 이른바 브라흐마차랴 실험을 했다.[13]
밤에 오한에 시달리던 간디는 친한 집안 처녀나 색시, 심지어 조카며느리와 증손녀뻘 되는 친척에게도 체온으로 몸을 덥혀줄 것을 부탁한적도 많다고 함.
ㄴ 이 실험은 당시에도 욕먹었다. 지금 사람들이 21세기 윤리 들이대서 새로 발굴한 게 아니라 간디 측근들 중에서도 반발해서 떠난 사람들이 있었다. 현대의 대표적인 간디 전기 작가 라마찬드라 구하도 이를 "설명하기 어렵고 옹호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14]
ㄴ 다만 이들과 실제 성관계를 가졌다는 증거는 없다. 간디가 하려던 짓 자체가 여자랑 알몸으로 누워도 발기가 안 되나 시험해보겠다였던 것이 문제다.
참고로 젊었을 적 머대리가 되기 전에는 여자에게 인기가 많았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임 잘생겼지 금수저지 머리좋지 어떤 여자가 안 붙겠냐 또한 간디 역시 여자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 덕에 쎽쓰도 존나게 많이 했음 괜히 저거 섹스머신 틀 붙은게 아니다.
ㄴ 젊은 시절 아내 카스투르바에 대한 성욕이 강했다는 것은 간디 본인이 자서전에 여러 차례 적었다. 하지만 1906년부터 브라흐마차랴, 즉 금욕 서약을 하고 성관계를 끊었다.[15]
기타
처자식에 대한 처신에 대해서도 말이 많다.
ㄴ 특히 가족들에게 자신이 정한 극단적인 금욕·식생활·교육 원칙을 요구했다는 비판이 있다. 장남 하릴랄 간디와의 관계가 평생 파탄난 것도 유명하다. 따라서 공적 도덕성과 가족에게 좋은 남편·아버지였는가는 별개 문제로 보는 게 맞다.
이 외에도 좆무위키 들어가보면 열심히 써놨다.
결론
알고보면 위인전에서 나왔던 만큼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성에 대한 인식도 개차반이고 비폭력을 강조했지만 인종차별적인 행보도 보였다. 이런 간디를 무턱대고 빨아대는건 이승만과 박정희를 대한민국의 건국신화 주인공이라도 되는줄 알고 빨아대는 사람들의 수준과 동급이다.
그래도 학살자나 파시즘 속성의 우익 계열 인물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지만 걔네는 세계사에서도 반면교사로 삼는 사람들이고 간디는 독립운동의 등불도 되었지만 동시에 인종우월주의적 사상과 개차반 수준의 성의식을 가진 사람이기도 해서 평이 엇갈리는 사람이다.
ㄴ 다만 현재 역사학계의 평가는 간디가 알고보니 그냥 위선자였다 쪽도 아니다. 초기 인종관, 카스트에 대한 보수적 태도, 가족관계와 기괴한 성적 금욕 실험은 분명 비판받지만, 사티아그라하와 대규모 비폭력 저항을 정치적 무기로 발전시킨 공로 및 인도 독립운동에 미친 영향은 그대로 인정된다.
ㄴ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넬슨 만델라, 콰메 은크루마 등 후대의 반식민·민권운동가들이 간디의 비폭력 저항 전략에서 영향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간디의 인종적 편견 때문에 동상이 철거된 가나조차 독립운동 과정에서는 은크루마가 간디식 비협력 운동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16]
그러니까 가장 현실적인 평가는
성인으로 포장된 무결점 인간도 아니고, 알고 보니 아무것도 아닌 위선자도 아니다.
20세기 대중정치와 비폭력 저항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준 인물인데 개인적인 사상과 생활에는 현대 기준뿐 아니라 당시 기준에서도 까일 부분이 꽤 많았던 사람이다.
머대리 아저씨들의 정신적 지주
"국부! 운동을 좀 힌두적으로 하십시오!!"
-나투람 고드세-

돌아온 국부의 발터질
몰론 나투람 고드세는 좆노답 광신도새끼다.
문명 시리즈에서
순순히 금을 넘기댼 느그 아가리의 옥수수를 보존해주는 문덍5의 괘왕 으로다만 거품이 빠지댸 괘왕간지가 죽었다
인도의 쎆쓰킹 힌두교도에게 뒤통수맞아 죽었다
2018년인데 아직까지도 간디드립(옥수수와 금을 바꾸자, 유혈사태)을 치는 미친씨발80년대복학생 같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
만약에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자살을 추천한다
핵 선호도가 12점으로 ±2점을 적용해도 채소 10점 무조건 핵을 뽑는다.
AI 간디는 공격성향이 1인데 이념선택에서 평등찍으면 원래 공격성에서 -2가 된다고한다. 그러자 간디는 오버플로우로 공격성MAX가 된다. 평등간디는 공격성만렙에 핵선호도만렙이라 미친새끼가된다.
ㄴ 그건 문명1이고
ㄴ 문명 5거든ㅡㅡ 흥 병1신
ㄴ 문명 1이 맞거든 병1신1새1꺄
ㄴ정확히는 문명1에서 그게 윾명해져서 문명5에서 도 괘왕이 된것
ㄴ 2026년 현재는 이것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거의 정리됐다.
그 유명한
문명 1에서 간디의 공격성 수치가 1 → 민주주의 보정 -2 → 언더플로우 → 255 → 핵미친놈
이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정설처럼 퍼졌는데, 시리즈 제작자 시드 마이어와 개발진이 나중에 이를 부정했다.
초대 《문명》의 공격성 변수는 해당 전설처럼 언더플로우가 발생하는 구조가 아니었고, 민주주의를 채택했다고 공격성이 -2 되는 코드도 없었다고 한다. 개발자 브라이언 레이놀즈 역시 해당 이야기는 거의 확실히 후대에 만들어진 도시전설이라고 밝혔다.[17]
그러니까
문명 1 간디가 버그 때문에 핵쟁이가 됐다 → 도시전설
이다.
대신 이 밈이 너무 유명해져서 진짜 게임이 밈을 역수입했다.
《문명 5》에서는 간디에게 실제로 높은 핵무기 선호도가 부여됐고 이후 시리즈에서도 제작진이 핵간디 밈을 의도적으로 써먹었다.
버그 때문에 핵간디가 된 게 아니라 사람들이 핵간디가 있다고 믿어서 진짜 핵간디가 생겼다.
이 드립이 흥했는지 문명 6에서도 숨겨진 특성으로 전쟁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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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Childhood, Mani Bhavan Gandhi Sangrahalaya.
- ↑ Mahatma Gandhi assassination: Supreme Court dismisses plea for re-investigation, The Indian Express, 2018-03-28.
- ↑ Five people were convicted of killing Gandhi. One was Godse, who were the others?, The Indian Express, 2023-01-30.
- ↑ Gandhi’s wariness of RSS’ ideology is clear from his writings, historical record, The Indian Express, 2019-04-18.
- ↑ The “African Personality” Returns,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2017-03-01.
- ↑ Statue of 'racist' Gandhi removed from University of Ghana, The Guardian, 2018-12-14.
- ↑ Speech at Y.M.C.A., 18 May 1908, The Collected Works of Mahatma Gandhi.
- ↑ Whose Mahatma, The Indian Express, 2019-10-22.
- ↑ Childhood, Mani Bhavan Gandhi Sangrahalaya.
- ↑ The “African Personality” Returns,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2017-03-01.
- ↑ Caste System and Untouchability, Selected Works of Mahatma Gandhi.
- ↑ The Poona Pact, Indian National Congress and the descriptive and substantive representation of Dalits in colonial India,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3.
- ↑ How would Gandhi’s celibacy tests with naked women be seen today?, The Guardian, 2018-10-01.
- ↑ How would Gandhi’s celibacy tests with naked women be seen today?, The Guardian, 2018-10-01.
- ↑ Gandhi Before India by Ramachandra Guha – review, The Guardian, 2013-10-20.
- ↑ The “African Personality” Returns, American Historical Association, 2017-03-01.
- ↑ Civilization: It's good to take turns, Ars Technica, 201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