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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역사서)에서 넘어옴)
이 문서는 三國志에 관련된 것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삼국지는 역사가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와 역사적 사실에 각종 구전 민담, 전설 등을 섞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로 구분됩니다.
三國志演義는 단지 재미를 위한 진실과 거짓이 섞여있는 中國 소설로 받아들이면 빛이 되지만 역사서 正史三國志처럼 받아들이면 어둠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삼국지 시대의 中國人과 현재 中共人은 종족, 언어만 빼면 엄연히 다른 사람들이니 삼국지에 심취해 中뽕으로 흑화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문서는 마음의 양식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망가나 라노벨, 인터넷만 읽지 말고 이런 거나 좀 읽어라 시발.
삼국지 (三國志)
저자 진수
주석 배송지
작성 시기 3세기 후반
작성된 국가 서진
언어 한문(고전 중국어)
분량 65권(위서 30권·촉서 15권·오서 20권)
시기 후한 말기 ~ 280년(주요 삼국시대 220~280년)
형식 기전체 역사서
배송지 주석 완성 429년(유송)

개요

《삼국지》(三國志)는 서진의 역사가 진수가 3세기 후반에 편찬한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서다. 이십사사의 하나이며, 흔히 소설 《삼국지연의》와 구별하기 위해 정사 삼국지라고 부른다.

정사 삼국지는 진(晉) 나라의 진수가 지은 역사서로, 우리가 흔히 아는 소설 삼국지의 원작이자 유래다. 이 정사 삼국지가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그것이 다시 민담이나 연극처럼 변하고 나중에 나관중이가 그걸 꿀잼 소설로 만든 게 우리가 읽는 삼국지 (삼국지연의) 다.

다만 《삼국지연의》가 《삼국지》 한 권만을 소설로 바꾼 것은 아니다. 진수의 정사와 배송지의 주석뿐 아니라 《자치통감》, 《삼국지평화》, 민간 설화와 희곡 등 여러 자료와 이야기가 결합되어 형성되었다. 《삼국지연의》의 성립과 내용은 별도의 삼국지 문서에서 자세히 다룬다.

전문가들도 정사와 연의 장면의 차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으니 이런걸로 시비걸지 말자.

실제로 삼국지에 관한 대중적인 이야기는 정사와 연의,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야사, 후대의 창작물이 뒤섞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모든 기록이 똑같이 신뢰할 만한 것은 아니며,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때에는 어느 문헌에서 나온 이야기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참고로 정사라는 표현은 책에 기록된 내용이 전부 사실이라는 뜻이 아니다. 중국의 정통 역사서로 인정받는 역사서라는 의미에 가깝다. 정사에도 편찬자의 정치적 입장과 사료의 부족, 오류와 전승의 문제가 존재한다.

상세

진수의 생애와 편찬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 존나 똑똑합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호구가 되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진수(陳壽, 233~297)는 촉한의 파서군 안한현 출신으로, 촉한에서 관직을 지내다가 263년 촉한이 멸망한 뒤 서진에서 관리와 역사가로 활동한 인물이다.

233년생이므로 삼국시대의 후반부는 직접 경험했으며, 책의 앞부분에 해당하는 후한 말기와 조조·유비·손권의 초기 활동은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사건이었다.

진수는 촉나라 출신이면서도 촉을 멸망시킨 위나라를 이어받은 서진에서 역사서를 집필했다. 이 때문에 《삼국지》는 당시 존재했던 세 나라의 기록을 종합하면서도 서진 왕조의 정통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위·촉·오의 역사를 편찬할 수 있는 상당수 기록과 증언이 남아 있었지만, 전쟁으로 인해 사라진 자료도 있었고 세 나라의 기록 보존 상태 역시 동일하지 않았다.

완성된 《삼국지》는 모두 65권이며, 별도의 표나 제도사에 해당하는 지(志)를 편성하지 않고 제왕의 본기와 여러 인물의 열전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역사서의 형식 자체는 기전체에 속하지만 《사기》나 《한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간결한 편이다.

배송지의 주석

책이 워낙에 간략했던지라 이후 송나라의 배송지가 주석을 존나게 많이 추가했다. 배송지가 주석을 하도 많이 넣어 거의 새로 책을 만든 수준이라 정사 삼국지의 저자 서명을 표기할때는 '저자 진수, 주석 배송지' 이렇게는 꼭 들어간다. 연의충과 정사충의 병림픽을 위해 이용당하는 불쌍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송나라는 조광윤이 건국한 10세기의 송나라가 아니라, 5세기 남북조시대의 유송(劉宋)이다.

배송지(裴松之, 372~451)는 남조 유송의 역사가로, 유송 문제의 명령에 따라 《삼국지》에 주석을 달았으며 429년에 이를 완성했다.[1]

그런데 이 양반이 단순히 어려운 한자를 설명하는 수준에서 주석을 단 게 아니었다.

진수가 생략한 인물과 사건을 보충하고, 여러 문헌에 기록된 동일한 사건의 서로 다른 내용을 소개했으며, 역사적 기록의 모순과 오류도 지적했다. 자신이 판단하기에 문제가 있는 기록에 대해서는 직접 비판적인 의견을 남기기도 했다.

배송지 주석에는 《위략》, 《영웅기》, 《헌제춘추》, 《강표전》, 《한진춘추》 등 수많은 문헌이 인용되어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원본이 사라져 현재는 배송지가 인용한 문장으로만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배송지가 자료를 인용해 두지 않았다면 후세 사람들은 해당 기록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알기 어려웠을 것이다.

ㄴ 진수는 간결하게 쓰고 배송지는 그 옆에서 말이 존나 많았다.

ㄴ 현대 인터넷으로 치면 진수가 본문 쓰고 배송지가 댓글과 추가 자료를 잔뜩 단 셈이다.

다만 배송지가 인용한 기록을 모두 진실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곤란하다.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비교하기 위해 일부러 둘 이상의 기록을 함께 실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삼국지》를 읽을 때에는 진수가 쓴 본문인지, 배송지가 인용한 다른 문헌인지, 배송지 자신의 판단인지를 구분해야 한다.

자료의 부족과 전승

그리고 진수가 삼국지시대의 말기인 233년생인지라, 자료를 구하는데 어려움을 구했을 듯 하다. 이유는 뭐.....당연하겠지만, 틈만나면 쿠데타에 전쟁이 터져서 기록이란 기록은 많이 사라졌거든....

진수가 233년에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가 자료 부족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그는 당시 인물들의 기록에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살았고, 위나라와 서진의 관찬 기록을 열람할 기회도 있었다.

문제는 세 나라에서 보존한 기록의 양과 종류가 서로 달랐다는 점이다. 위나라는 국가 규모가 크고 관료 조직도 발달해 상대적으로 기록이 풍부했지만, 촉한은 짧은 존속 기간과 상대적으로 작은 국가 규모 등으로 인해 기록의 전승이 제한적이었다.

오나라에서도 《오서》 등 여러 역사 기록이 편찬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상당수가 전하지 않는다. 배송지 주석이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이러한 소실 문헌의 내용을 일부 보존했기 때문이다.

촉나라의 사관 논란

근데 촉나라에 사관이 없었다고 기록을 하는 병크를 저질렀다. 이건 후대에 존나게 까인다. 어떻게 촉나라의 관료였던 애가 그런짓을 저질렀냐고...대체적으로는 제갈첨에게 원한이 있어서 제갈량이나 제갈첨이나 조금식 깎아내린거 아니냐는 의견인데 그런거 치곤 또 제갈량의 저작을 모아 문집을 만들기도 한 희한한 인간이 진수라...

실제로 진수는 《삼국지》 촉서 「후주전」의 논평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又國不置史,注記無官,是以行事多遺,災異靡書。

”
 
— 《삼국지》 촉서 「후주전」

촉나라는 역사를 기록하는 관직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건이 빠지고 재난이나 이상현상에 관한 기록도 제대로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다.[2]

이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촉한에는 사관이라는 직책이나 제도가 아예 없었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당나라의 역사가 유지기는 《사통》에서 이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삼국지》 자체에도 촉한에서 일어난 천문현상과 이상징후가 기록되어 있으며, 문헌을 정리하고 기록을 관리하는 관료가 있었다는 것이다.

후대 학자들 역시 촉한에서 역사 기록을 담당하는 활동이 전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3]

따라서 진수의 표현은 촉한에 체계적인 공식 역사 편찬 조직이나 충분한 기록 관리 체제가 마련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실제로 어느 수준까지 관련 관직과 기록이 존재했는지는 연구가 필요한 문제다.

진수가 제갈량이나 제갈첨에게 개인적인 원한을 품고 일부러 평가를 낮췄다는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이 역시 확정적인 사실은 아니다.

오히려 진수는 제갈량의 문집을 정리해 바쳤으며, 《삼국지》에서 제갈량을 뛰어난 정치가로 높이 평가했다. 다만 군사적 상황에 즉각 대응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신중한 평가를 남겼다.

그렇다고 촉나라 인물을 무조건 좋게 쓰거나 무조건 나쁘게 쓴 것도 아니었다. 한 역사서 안에서도 공적은 인정하면서 단점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

ㄴ 촉나라 신하 출신인데 촉나라 기록이 부실하다고 까고, 제갈량을 높이 평가하면서 군사적 한계도 지적한다.

ㄴ 그러니까 위빠인지 촉빠인지 논쟁이 생기는 것이다.

세 나라의 기록 분량

암튼 통일은 위나라를 이어받은 진나라가 했기에, 위나라의 기록이 30권으로 존나게 많고, 그담으로 오서의 기록 20권, 촉서가 15권으로 가장 내용이 적은데 본인이 촉나라의 신하였기에 그나마 많이 쓰긴 했으나 어쨌거나 촉서의 기록은 종범이다. 이 새끼가 촉한의 신하였으면서 촉한 신하 출신 인간들 열전을 꽤 많이 안 쓰는 바람에 촉한의 역사는 삼국지 촉서 외에도 파촉의 역사지리서인 화양국지에 의존 많이하고 오나라 역사의 경우는 연구한답시고 건강실록, 고고학이나, 비문같은데 의지를 많이 한다고.

그리고 위서가 양이 많은건 사실인데 위나라에 속하지 않은 후한 군벌들을 죄다 위서에 처박아서 내용이 더 많아진 탓도 있다.

실제로 《삼국지》는 위서 30권, 촉서 15권, 오서 20권으로 구성되며, 위서의 분량이 가장 많다. 하지만 위나라가 가장 강대했기 때문에 무조건 두 배의 분량을 배정했다고 해석할 수는 없다.

위서는 후한 말기 군벌들의 행적과 조조의 세력 확장, 위나라의 중앙정치 및 주변 민족에 관한 내용까지 다루고 있어 기록할 대상 자체가 광범위하다.

반면 촉서는 기록이 상대적으로 적고, 위나라나 오나라에 비해 국가 차원의 자료가 부족했을 가능성도 크다.

촉한의 역사와 인물을 연구할 때에는 상거가 편찬한 《화양국지》와 배송지가 인용한 여러 기록도 함께 활용한다.

오나라의 경우에는 《삼국지》뿐 아니라 배송지 주석에 인용된 《오서》와 《강표전》 등의 기록, 그리고 고고학과 금석문 자료 등을 연구에 활용한다. 《건강실록》 역시 오나라의 수도였던 건업을 포함한 육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참고할 수 있는 후대 역사서다.

다만 어느 한 자료의 분량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정확하다는 뜻은 아니다. 또한 사료가 부족한 나라의 역사라고 해서 남아 있는 기록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도 아니다.

위나라의 정통성 문제

위서의 동이열전은 한국고대사덕후들이 필독해야하는 중요한 자료인데, 이유는 이해 좆반도에 대해 역사를 적는다고 한반도를 자주 왔다리갔다리한 요동군이나, 낙랑군의 사람들에게서 자료를 찾았다. 이중에는 관구검도 있었다. 그래서 신뢰성하나는 존나게 높으며, 이책과 삼국사기을 비교하며 한국 고대사학계가 논쟁중이고, 좆반도에서 헬조선인들과 북괴애들의 노오력으로 이 책의 내용이 점점 리얼팩트 반박불가가 되고 있다.

동이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한국 문단에서 다룬다.

《삼국지》에서 정치적으로 중요한 특징은 세 나라의 군주를 동등하게 취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위나라의 조비와 조예 등에게는 본기(本紀)를 두었지만, 촉한의 유비와 유선, 오나라의 손권 등은 전(傳)으로 수록했다.

이는 위나라가 후한의 황위를 정식으로 계승했고, 서진이 다시 위나라의 황위를 계승했다는 당시의 정통론과 연결된다.

진수 자신은 촉한 출신이지만, 《삼국지》를 편찬할 때에는 서진의 정치적 입장에서 위나라의 계승 관계를 인정하는 서술 체계를 채택한 것이다.

그렇다고 위나라 인물들을 모두 좋게 서술하거나 촉한 인물들을 비하한 것도 아니다. 진수는 촉서 「선주전」에서 유비를 영웅적인 자질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고, 제갈량의 정치적 능력도 높이 평가했다.

따라서 《삼국지》 전체를 위나라 찬양서나 촉나라 비판서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당시의 왕조 정통론과 진수 개인의 역사적 판단이 함께 반영된 책으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판본

역사스페셜에 따르면, 현재남아있는 판본중 가장 오래된 판본은 남송대의 판본이며, 현재 유통되는 것은 명나라시기의 판본이라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삼국지》는 사마천의 《사기》 등 다른 고대 역사서와 마찬가지로 여러 시대의 필사와 간행을 거쳐 전승되었다.

남송 시대의 목판본은 《삼국지》의 초기 인쇄본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며, 명나라와 청나라 시기의 여러 간행본도 전해진다.

현대의 대표적인 통행본 가운데 하나는 중화서국에서 간행한 점교본이다. 이는 이전의 다양한 판본을 대조하고 구두점과 주석 등을 정리한 현대 교감본이므로, 현대인이 읽는 모든 《삼국지》가 단순히 명나라 판본 하나를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원래 이름이 《삼국지》였지만, 소설 《삼국지연의》가 널리 알려지면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정사라는 표현이 통용되었다.

이름이 원래 그냥 《삼국지》(三國志) 였는데 나중에 연의가 존나 유명해지면서 정사/연의 이렇게 나누게 된거다. 좋든 싫든 간에 연의의 근본은 정사인데, 그 때문에 괜히 연의 읽고서 싸우다가 쫄리면 정사 들고와서 다른 애 패는 용도로 쓰는 새끼들이 많다. 특히 촉빠새끼들은 여기서도 자위질을 하는데, 막 정사에 나오는 유비가 더 멋있고 정사 제갈량에 반했다고 그러고...근데 개 좆같이 망한 건 정사나 연의나 똑같다 ㅋㅋ

이걸 잘못 읽으면 주화입마해서 말끝마다 정사는 정사는 하면서 소설에 진지싸는 ㅂㅅ이 된다고 한다. 다만 인터넷에서 정사드립 치는 새끼 중에 진짜 정사를 제대로 다 읽은 새끼가 몇이나 될지 생각해보면, 확실히 정사의 위험성이 아니라 그냥 병신은 어디에나 있는 게 아닐까.

구성

원래는 각각 「위지」, 「오지」, 「촉지」였는데 송(宋) 대 이래로 지(志)가 아니라 서(書)라고 부르게 되었고 지금도 서라고 부른다. 물론 엄밀하게 보자면 사실 형식이 지도 아니고 서도 아닌 방식이지만 진수가 사료 부족으로 이렇게밖에 못 썼으니 감안해서 이해해야한다.

《삼국지》의 세 부분은 원문과 후대의 서지 기록에서 위지·촉지·오지 또는 위서·촉서·오서 등으로 불린다. 여기서 '지'(志)는 책의 명칭을 이루는 말이지, 《한서》의 율력지나 지리지처럼 별도의 제도사 편목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65권 체계는 다음과 같다.

  • 위서 - 1~30권, 총 30권
  • 촉서 - 31~45권, 총 15권
  • 오서 - 46~65권, 총 20권

이 구분은 여러 고서의 목록과 판본에서도 확인된다.[4]

위서

위서는 총 30권으로 되어 있는데, 뒷부분에 소수민족이나 한국 얘기도 나오는지라 위나라하고만 관련된 내용은 아니다. 아마 진수가 위나라 개쩔게 보이도록 편 좀 늘려준 듯.

다만 진수가 위빠인지 촉빠인지에 대해서는 확실히 판단하기가 어렵긴 하다. 전반적으로 위나라 입장에서 좋게 써주려고 한 것 같기는 한데, 위 무제(조조) 의 아버지가 그 근본이 분명하지 않다면서 무슨 해축갤식 근본론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유비의 혈통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기록한 걸 보면 나름 객관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모두까기를 시전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다.

위서의 첫 4권은 본기이며, 5~30권은 열전이다. 위나라의 황실과 관료뿐 아니라 후한 말기의 군벌, 주변 민족의 역사 등을 함께 다룬다.

본기

  • 1권 - 무제본기
    • 후한을 장악한 위 무제 조조에 대해 기록했다.
    • 시기: 190년 1월~220년 1월
    • 조조는 생전에 황제로 즉위하지 않았고 사후에 아들 조비가 황제에 오르면서 무제라는 황제의 시호를 받았다. 따라서 무제본기라는 제목 자체가 서진의 위나라 정통론을 반영한다.
  • 2권 - 문제본기
    • 위 문제 조비에 대해 기록했다.
    • 시기: 220년 1월~226년 5월
    • 조비가 220년 후한 헌제로부터 선양받고 위나라를 건국한 과정과 재위 기간의 정치를 다룬다.
  • 3권 - 명제본기
    • 위 명제 조예에 대해 기록했다.
    • 시기: 226년 5월~239년 1월
    • 조예의 통치와 위나라의 군사·정치적 상황을 다룬다.
  • 4권 - 삼소제본기
    • 위 소릉공 조방, 고귀향공 조모, 원제 조환에 대해 기록했다.
    • 시기: 239년 1월~265년 12월
    • 사마씨가 위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결국 서진으로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편목이다.

열전

  • 5권 - 후비전
    • 위나라의 황후들에 관한 열전이다.
  • 6권 - 동이원유전
    • 동탁, 이곽, 곽사, 원소, 원술, 유표, 유종의 열전이다.
    • 정식 편명은 동이원유전(董二袁劉傳)이며, 동탁과 원소·원술·유표 등 후한 말 주요 군벌들의 행적을 다룬다. 이곽과 곽사, 유종 관련 기록도 해당 본문에 등장한다.
  • 7권 - 여포장홍전
  • 8권 - 이공손도사장전
  • 9권 - 제하후조전
    • 하후씨와 조씨들의 열전이다.
  • 10권 - 순욱순유가후전

사실 순욱과 순유, 가후를 같은 열전에 넣어도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오래전에 있었다. 주석을 한 배송지 왈:아니 명문 영천 순씨 가문의 우두머리들이랑 한미한 가문 출신이 같이?!

    • 순욱·순유와 가후는 모두 조조 정권에서 활동한 책사이지만, 경력과 정치적 행적에는 차이가 있었다. 배송지가 이들의 편목 배치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남겼다는 사실은 후대 역사가 역시 진수의 편찬 방식에 이견을 제시했음을 보여준다.
  • 11권 - 원장양국전왕병관전
    • 원환(袁渙), 원패(袁霸), 장범(張範), 장승(張承), 양무(涼茂), 국연(國淵), 전주(田疇), 왕수(王脩), 왕포(王褒), 병원(邴原), 관녕(管寧), 왕열(王烈), 장천(張臶), 호소(胡昭)의 열전.
    • 주요 인물의 독립적인 전기 외에도 본문과 주석에 등장하는 가족과 관련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 12권 - 최모서하형포사마전
    • 최염(崔琰), 손융(孔融), 모개(毛玠), 서혁(徐奕), 하기(何夔), 하증(何曾), 형옹(邢顒), 포훈(鮑勛), 사마지(司馬芝), 사마기(司馬岐)의 열전.
    • 원문의 '손융(孔融)'은 오기로, 정확한 이름은 공융(孔融)이다. 진수의 본문에서는 여러 위나라 관료의 행적을 다루며, 일부 관련 인물은 독립적인 열전이 아니라 본문·주석에서 언급된다.
  • 13권 - 종요화흠왕랑전
  • 14권 - 정곽동유장유전
    • 정욱(程昱), 정효(程曉), 곽가(郭嘉), 동소(董昭), 유엽(劉曄), 유도(劉陶), 장제(蔣濟), 유방(劉放), 손자(孫資)의 열전.
  • 15권 - 유사마양장온가전
    • 유복(劉馥), 유정(劉靖), 사마랑(司馬朗), 양습(梁習), 왕사(王思), 장기(張旣), 유초(游楚), 장집(張緝), 온회(溫恢), 맹건(孟建), 가규(賈逵), 가충(賈充)의 열전.
  • 16권 - 임소두정창전
    • 임준(任峻), 소칙(蘇則), 두기(杜畿), 두서(杜恕), 악상(樂詳), 정혼(鄭渾), 창자(倉慈)의 열전.
  • 17권 - 장악우장서전
    • 장료(張遼), 악진(樂進), 우금(于禁), 장합(張郃), 서황(徐晃), 주령(朱靈)의 열전.
    • 장료, 악진, 우금, 장합, 서황은 이른바 조조 휘하의 오자양장으로 자주 묶이는 인물들이다. 주령 관련 기록은 본문과 주석을 구분해 확인할 필요가 있다.
  • 18권 - 이이장문여허전이방염전
    • 이전(李典), 이통(李通), 장패(臧覇), 손관(孫觀), 문빙(文聘), 여건(呂虔), 왕상(王祥), 허저(許褚), 전위(典韋), 방덕(龐德), 방육(龐淯), 염온(閻溫), 장공(張恭)의 열전.
  • 19권 - 임성진소왕전
  • 20권 - 무문세왕공전
  • 21권 - 왕위이유부전
  • 22권 - 환이진서위노전
    • 환계(桓階), 진군(陳羣), 진태(陳泰), 진교(陳矯), 서선(徐宣), 위진(衛臻), 노육(盧毓)의 열전.
    • 진군은 구품관인법과 관련된 인물로, 삼국시대의 제도사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 23권 - 화상양두조배전
    • 화흡(和洽), 허초(許劭), 상림(常林), 양준(楊俊), 두습(杜襲), 조엄(趙儼), 배잠(裴潜), 배수(裴秀)의 열전.
  • 24권 - 한최고손왕전
    • 한기(韓暨), 최림(崔林), 고유(高柔), 손례(孫禮), 왕관(王觀)의 열전.
  • 25권 - 신비양부고당융전
    • 신비(辛毗), 양부(楊阜), 고당융(高堂隆), 잔잠(棧潛)의 열전.
  • 26권 - 만전견곽전
    • 만총(滿寵), 전예(田豫), 견초(牽招), 곽회(郭淮)의 열전.
  • 27권 - 서호이왕전
    • 서막(徐邈), 호질(胡質), 왕창(王昶), 왕기(王基)의 열전.
  • 28권 - 왕관구제갈등종전
  • 29권 - 방기전
    • 화타(華佗), 두기(杜夔), 마균(馬鈞), 주건평(朱建平), 주선(周宣), 관로(管輅)의 열전.
    • 여기서 두기(杜夔)는 16권의 두기(杜畿)와 서로 다른 인물이다. 《방기전》에는 의술·음악·기술·점술 등 여러 전문 분야의 인물들이 등장하며, 마균의 행적은 두기 등의 기록과 연결되어 전한다.
  • 30권 - 오환선비동이전
    • 오환족, 선비족, 가비능, 부여, 고구려, 옥저, 읍루, 예, 삼한, 왜에 관한 정보.
    • 한국 고대사와 일본 고대사 연구에서 모두 중요한 편목이다. 한반도의 국가와 정치체뿐 아니라 왜의 여러 나라에 관한 기록도 포함되어 있다.

촉서

촉서는 총 15권인데, 실제 역사에서 일찍 좆되어서 그런지 위서나 오서에 비해 길이가 짧다. 진수가 촉한 출신이여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촉서에 나오는 유비와 제갈량은 오히려 연의보다 더 멋있다는 평도 받는다. 정사의 유비는 깡패새끼같은 놈이고 정사의 제갈량은 정치 천재이지만 용병술이나 인재 기용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 연의처럼 사기캐가 아니다보니 촉이 좆되는 과정이 나름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길이가 짧은지라 파촉지방 역사서인 화양국지도 같이 참조한다.

촉서에서는 유비와 유선의 전기도 본기라고 부르지 않고 각각 선주전과 후주전으로 표기했다. 위나라의 정통성을 인정한 역사 서술 방식이 반영된 결과다.

진수는 유비의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과 포용력을 높이 평가했고, 제갈량에 대해서도 뛰어난 통치 능력을 인정했다. 다만 전쟁 수행과 전략적 대응에 대해서는 별도로 평가했으므로, 제갈량을 완전무결한 천재로 묘사하는 연의와 차이가 있다.

목록

  • 31권 - 유이목전
  • 32권 - 선주전
    • 유비의 열전.
    • 유비의 출신과 군벌 생활, 익주 장악, 촉한 건국 등을 다룬다.
  • 33권 - 후주전
    • 유선의 열전.
    • 촉한 후반의 정치와 멸망을 다룬다. 진수의 '촉한에는 사관이 없었다'는 취지의 논평이 수록된 편목이다.
  • 34권 - 이주비자전
    • 촉나라의 황후들의 열전.
    • 선주 유비와 후주 유선의 황후 및 관련 인물들을 다룬다.
  • 35권 - 제갈량전
    • 제갈량의 열전.
    • 제갈량의 정치적 활동과 북벌, 사후 평가가 포함되어 있다.
  • 36권 - 관장마황조전
    • 관우, 관흥, 장비, 마초, 마대, 황충, 조운의 열전.
    • 다섯 명의 주요 인물은 관우·장비·마초·황충·조운이며, 관흥과 마대 등은 관련 기록에서 등장한다. 소설의 오호대장군이라는 명칭과는 구분해야 한다.
  • 37권 - 방통법정전
  • 38권 - 허미손간이진전
  • 39권 - 동유마진동여전
    • 동화(董和), 유파(劉巴), 마량(馬良), 마속(馬謖), 진진(陳震), 동윤(董允), 진지(陳祗), 여예(呂乂)의 열전.
  • 40권 - 유팽요이유위양전
    • 유봉(劉封), 자달(孟達), 팽양(彭羕), 요립(廖立), 이엄(李嚴), 유염(劉琰), 위연(魏延), 양의(楊儀)의 열전.
    • 원문의 '자달(孟達)'은 맹달(孟達)의 오기다. 자달은 맹달의 자(字)로 전해지는 표현과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 41권 - 곽왕상장양비전
    • 곽준(霍峻), 곽익(霍弋), 왕련(王連), 상랑(向朗), 상총(向寵), 장예(張裔), 양홍(楊洪), 비시(費詩)의 열전.
  • 42권 - 두주두허맹내윤이초극전
    • 두미(杜微), 주군(周羣), 두경(杜瓊), 허자(許慈), 맹광(孟光), 내민(來敏), 윤묵(尹默), 이선(李譔), 진술(陳術), 초주(譙周), 초수(譙秀), 극정(郤正)의 열전.
  • 43권 - 황이여마왕장전
    • 황권(黃權), 이회(李恢), 여개(呂凱), 마충(馬忠), 왕평(王平), 구부(句扶), 장억(張嶷)의 열전.
  • 44권 - 장완비의강유전
    • 장완, 비의, 강유의 열전.
    • 제갈량 사후 촉한의 정치와 군사 활동을 담당한 장완, 비의, 강유의 행적을 다룬다.
  • 45권 - 등장종양전
    • 등지(鄧芝), 장익(張翼), 종예(宗預), 요화(廖化), 양희(楊戲)의 열전.

오서

오서는 총 20권으로 되어 있다. 연의에서 존재감 없는 편인 거에 비해 정사에선 촉서보다 길이가 길고 내용도 좀 풍부한 편이다. 그래도 내용이 창렬한건 변함없어서 오나라 연구에 이후 난징을 수도로한 육조만 몰빵해서 다룬 건강실록, 금석문, 고고학발굴자료를 많이 쓰고있다.

오서에는 손견·손책·손권의 활동과 오나라 황실의 정치, 강동 지역의 명문가와 주요 장군들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후대에 편찬된 《건강실록》은 육조의 수도였던 건강의 역사를 다룬 사료로, 오나라의 역사적 사건을 연구할 때도 참고할 수 있다. 다만 오나라의 직접적인 당대 기록과 후대에 편찬된 역사서를 구분해서 활용해야 한다.

목록

  • 46권 - 손파로토역전
    • 손견과 손책의 열전.
    • 손권의 아버지와 형으로, 오나라의 기반을 형성한 두 인물의 활동을 다룬다.
  • 47권 - 오주전
    • 손권의 열전.
    • 손권의 통치와 외교, 전쟁 및 오나라의 황제 즉위 과정을 다룬다.
  • 48권 - 삼사주전
    • 손량, 손휴, 손호의 열전.
    • 손권 이후 오나라 황제들의 통치와 280년 멸망 과정을 다룬다.
  • 49권 - 유요태사자사섭전
  • 50권 - 비빈전
    • 오나라의 황후들과 부인들의 열전.
  • 51권 - 종실전
    • 오나라 황족들의 열전.
  • 52권 - 장고제갈보전
  • 53권 - 장엄정감설전
    • 장굉(張紘), 장현(張玄), 엄준(嚴畯), 배현(裴玄), 정병(程秉), 징숭(徵崇), 감택(闞澤), 당고(唐固), 설종(薛綜), 설영(薛瑩)의 열전.
  • 54권 - 주유노숙여몽전
    • 주유, 노숙, 여몽의 열전.
    • 적벽대전과 손유동맹, 형주 문제 등 오나라의 대외정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편목이다.
  • 55권 - 정황한장주진동감능서반정전
    • 정보(程普), 황개(黃蓋), 한당(韓當), 장흠(蔣欽), 주태(周泰), 진무(陳武), 진표(陳表), 동습(董襲), 감녕(甘寧), 능통(凌統), 서성(徐盛), 반장(潘璋), 정봉(丁奉)의 열전.
  • 56권 - 주치주연여범주환전
  • 57권 - 우육장낙육오주전
    • 우번(虞翻), 우사등(虞汜等), 육적(陸績), 장온(張溫), 낙통(駱統), 육모(陸瑁), 오찬(吾粲), 주거(朱據)의 열전.
  • 58권 - 육손전
    • 육손과 육항의 열전.
    • 오나라 중후반의 정치와 군사 활동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편목이다.
  • 59권 - 오주오자전
  • 60권 - 하전여주종리전
    • 하제(賀齊), 전종(全琮), 여대(呂岱), 주방(周魴), 종리목(鍾離牧)의 열전.
  • 61권 - 반준육개전
  • 62권 - 시의호종전
  • 63권 - 오범유돈조달전
    • 오범, 유돈, 조달의 열전.
  • 64권 - 제갈등이손복양전
  • 65권 - 왕누하위화전
    • 왕번, 누현, 하소, 위소, 화핵의 열전.
    • 이 편목의 위소(韋昭)는 진나라 황제 사마소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 위요(韋曜)라고도 불리는 인물이다. 이름의 표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한국

우리가 배우는 고구려, 부여, 옥저, 예, 삼한 등의 한국 고대사 국가 대한 내용은 대부분 정사 삼국지의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 나오는 내용에서 유래하였다.

굳이 여기에서 가져오는 이유는 이 시기의 문헌 자료가 희박해서 그렇다. 흔히들 아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는 확실히 후대에 재편집된 기록이다보니 오히려 정사 삼국지가 더 신빙성이 있다고 여겨져서 한국 고대사 연구에 이게 많이 쓰였던 것이다.

정확히는 한국 고대사의 내용 전체가 《삼국지》에서 유래한 것은 아니다. 《삼국지》는 3세기 전후 한반도의 여러 정치체와 사회상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기록한 중요한 중국 측 사료 가운데 하나다.

당대 또는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편찬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장점이 있지만, 한나라와 위나라의 대외관계 및 주변 지역에 관한 관찰과 인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으므로 중국 측의 시각과 정보의 한계 역시 존재한다.

위서 동이전

이 글은 전잘알과 관련된 글입니다.
이 글은 전쟁과 군사를 존나 잘알거나 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잘하는 사람에 대해 다룹니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대비하라."
이 문서는 마음의 양식과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책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망가나 라노벨, 인터넷만 읽지 말고 이런 거나 좀 읽어라 시발.

《삼국지》 30권 「오환선비동이전」은 크게 오환, 선비, 동이 관련 기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동이전은 다음과 같은 정치체와 집단을 다룬다.

이들 지역에 관한 정치체제와 지리, 풍속, 언어와 생활환경, 대외관계 등이 기록되어 있다.[5]

또한 관구검의 고구려 공격 등 위나라와 동방 지역의 군사적 충돌에 관한 내용도 전한다. 이러한 군사활동과 지역에 관한 정보는 동이전의 편찬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관구검이 동이전의 모든 내용을 직접 조사했거나 진수에게 직접 제공했다고 확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해당 기록에는 위나라 관료와 군사 관계자들의 보고, 앞선 문헌의 내용, 당시 전승되던 정보 등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

고구려에 대한 기록은 고구려의 영역과 관직, 왕실의 계보와 주민의 풍속 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예를 들어 동이전의 고구려 관련 기록에서는 고구려가 요동의 동쪽에 위치하며, 산이 많고 계곡을 따라 사람이 거주한다는 식의 설명이 등장한다.

“

高句麗在遼東之東千里,南與朝鮮濊貊,東與沃沮,北與夫餘接。

”
 
— 《삼국지》 위서 「고구려전」

이는 당시 위나라 측이 이해하고 있던 고구려의 지리적 위치를 보여준다.[6]

고구려 연구에서는 《삼국지》의 기록을 《삼국사기》, 광개토대왕릉비, 중원고구려비 등 다른 기록과 고고학적 유적을 함께 비교한다.

일부 기록은 서로 일치하거나 보완되는 관계에 있지만, 왕계와 관직, 영토에 관한 서술 등에서는 사료마다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따라서 《삼국지》가 《삼국사기》보다 먼저 편찬되었다고 해서 언제나 더 정확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삼한

마한, 진한, 변한의 역사와 사회상을 연구하는 데에도 위서 동이전은 중요한 자료다.

동이전에는 당시 삼한의 여러 소국에 관한 명칭과 정치체제, 풍속 등이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마한 54국, 진한 12국, 변한 12국 등 삼한의 여러 소국을 다룬 기록은 원삼국시대의 정치체를 이해하는 데 자주 활용된다.

다만 《삼국지》에 수록된 소국의 명칭과 현재 발굴된 유적을 1대1로 대응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고대 지명과 정치체의 위치를 비정할 때에는 문헌과 고고학적 자료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7]

삼한에 관한 기록 중에서는 진한 지역의 편두 풍습과 해안 지역의 문신 문화 등이 자주 인용된다.[8]

왜와 일본 고대사

동이전의 왜인 관련 기록은 한국 고대사뿐 아니라 일본의 고대사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특히 3세기 왜의 여러 정치체와 히미코에 관한 기록은 일본의 야마타이국 논쟁과 연결된다.

왜의 지리와 정치체제, 중국 왕조와의 교류가 기록되어 있으나, 야마타이국이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따라서 위서 동이전은 동아시아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 폭넓게 활용되는 자료라고 볼 수 있다.

한국어 번역

애초에 정사 삼국지가 한국어로 처음 번역되었던 것도 위서의 동이전만 번역했던 것이 최초였다. 지금은 김원중이라는 분이 전체를 다 한국어로 번역했다. 이분이 정말 이상한 게, 자기가 임의로 단 주석과 배송지가 단 주석을 구별하지 않아 독자들을 무척 헷갈리게 한다. 이 김원중씨의 번역된 정사는 번역 오류등 각종 오류가 많아 사는 걸 굳이 추천하지는 않는다.

《삼국지》는 한국 고대사와의 관련성 때문에 위서 동이전을 중심으로 한 발췌 번역과 해설이 일찍부터 이루어졌다. 이후 중국사와 삼국지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면서 전체 65권을 번역한 한국어 번역본도 출간되었다.

다만 '한국어로 처음 번역되었던 것이 위서 동이전뿐이었다'는 설명을 확정하려면 번역본의 출간 연혁과 이전 연구 자료를 구체적으로 대조할 필요가 있다.

김원중의 《정사 삼국지》 번역은 국내의 대표적인 번역본 가운데 하나다. 번역의 정확성과 주석 처리에 관한 비판은 개별 구절이나 사례를 제시하여 평가하는 편이 적절하다.

《삼국지》 번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다.

  • 진수의 원문을 어떤 의미로 옮겼는가.
  • 배송지가 인용한 다른 문헌의 기록을 원문과 명확하게 구별했는가.
  • 번역자가 직접 붙인 설명과 고대·중세 주석을 독자가 구분할 수 있는가.

같은 사건의 다른 기록이 배송지의 주석에 실린 경우, 이를 진수의 원문과 구분하지 않고 읽으면 서로 모순되는 내용이 한 사람의 서술처럼 보일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한 경우 중국어 원문과 배송지의 주석, 역자 주석을 구분하여 읽는 편이 좋다.

사료적 가치와 한계

역사적 가치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삼국지》는 삼국시대의 정치·군사·사회사를 연구하는 데 가장 중요한 문헌자료 가운데 하나다.

진수는 삼국시대의 후반부를 직접 경험한 인물이며, 촉한이 멸망한 이후 서진에서 역사서를 편찬했다. 따라서 후대의 소설가나 역사가보다 사건과 시대적으로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또한 《삼국지》에는 조조·유비·손권 등 주요 군주의 행적뿐 아니라 수많은 관료와 장군, 주변 민족에 대한 기록도 담겨 있다.

배송지의 주석은 오늘날 원본이 소실된 문헌의 내용을 일부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독립적인 사료적 가치가 크다.

특히 중국의 역사뿐 아니라 고구려와 삼한, 부여, 왜 등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에도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한계

반면 진수는 서진의 관료였기 때문에 위나라의 정통성을 인정하는 왕조 중심적인 서술 방식을 채택했다.

위서가 촉서와 오서보다 분량이 많은 데에는 정치적 요인뿐 아니라 기록의 보존 상태, 사건의 범위와 편찬 자료의 차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또한 짧은 열전 가운데에는 인물의 생애를 충분히 복원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배송지가 추가한 기록 역시 서로 모순되거나 신뢰성이 낮은 자료를 포함할 수 있다.

따라서 정사라고 해서 무조건 사실이라고 믿는 태도와, 소설과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재미없는 책이라고 취급하는 태도는 모두 적절하지 않다.

정사와 연의

《삼국지연의》는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하되 인물의 성격과 사건의 전개를 극적으로 각색한 소설이다.

예를 들어 도원결의와 초선의 이야기, 적벽대전에서의 제갈량의 활약 등은 실제 역사 기록과 소설의 묘사에 차이가 있다.

반대로 소설에서 묘사되는 모든 사건이 허구인 것도 아니다. 실제 인물과 역사적 사건을 기반으로 작성되었기 때문에 양쪽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중국 삼국시대의 역사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다만 이 문서는 역사서인 《삼국지》 자체를 다루므로, 소설의 각색과 인물 묘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삼국지 및 삼국지연의 문서를 참고하는 것이 좋다.

여담

이 책을 읽고 생기는 부작용

주의. 이 문서는 심히 진지하여 노잼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놀랍게도 디시위키에서 진지를 빨고 있습니다. 노잼이다 싶으시면 여기를 클릭하시어 이 문서를 탈출할 수 있습니다.

정사와 연의를 모두 접한 삼국지 팬덤에서는 진수의 기록과 배송지의 주석, 나관중의 소설 중 어느 것을 기준으로 인물을 평가해야 하는지를 놓고 끝없는 논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배송지의 주석에 수록된 다른 문헌의 기록을 가져와 놓고 이를 '정사에 나온 내용'이라고 주장하는 일도 있으므로, 실제 원문과 주석의 출처를 확인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길 수 있다.

ㄴ 정사에는 없는데 배송지 주석에는 있다.

ㄴ 배송지 주석에 있다고 다 진짜냐?

ㄴ 연의충은 소설을 역사로 믿고 정사충은 배송지 주석을 진수의 본문으로 믿는다.

원문의 표현대로 결국 정사의 위험성이라기보다는, 책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단편적인 이야기만 가져오는 태도가 문제일 수 있다.

조조와 유비의 평가

《삼국지》는 위나라를 정통 왕조로 취급하지만 조조의 출신에 관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점도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촉한의 유비에 대해서는 제왕의 재능과 인재를 대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이 때문에 진수가 위나라를 찬양하기 위해서만 책을 썼다거나 촉나라를 비하하려 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진수는 왕조의 정통성과 개별 인물의 정치적 능력 및 인품을 서로 다른 기준으로 평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촉한 멸망 이후의 기록

《삼국지》는 촉한과 위나라가 멸망한 뒤에도 오나라가 280년까지 존속했으므로 오나라의 역사를 계속 기록한다.

따라서 265년 위나라가 멸망한 시점에서 《삼국지》 전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나라의 마지막 황제 손호가 서진에 항복하면서 삼국시대가 끝나는 과정까지 다룬다.

이는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 사후의 이야기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개되는 것과 비교할 때 중요한 차이점이다.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