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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IV. 동아시아의 근대화 운동과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 5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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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흥선대원군(병인양요 · 신미양요) ·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영사 재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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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주의! 이 문서는으잉? 꼰대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이 문서는으잉? 카스트급 위계질서 조장하고으잉? 윗사람에겐 고개도 못 들면서으잉? 약자나 아랫사람한테는 훈장질하고으잉? 불합리에 항의하면으잉? 싸가지 없다 드립치는으잉? 개씨발새끼들에 대해으잉? 다룹니다.
"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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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통상수교 거부정책흥선대원군 집권기 조선이 서양 열강과의 통상 및 외교 관계 수립을 거부한 정책이다.

쉽게 말하면 “서양 놈들아 꺼져라, 문 안 연다” 정책이다. 교과서에서는 보통 조선의 근대화를 늦춘 대표적인 삽질처럼 배우지만, 막상 뜯어보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당시 세계는 제국주의 열강들이 대포 들고 장사하러 다니던 시대였다. “우리랑 무역하자”는 말이 진짜 평화로운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라, “문 안 열면 항구에 포탄 박는다”에 가까웠다.

물론 그렇다고 조선이 잘했다는 뜻도 아니다. 문을 닫았으면 그 사이에 군대도 키우고, 산업도 키우고, 기술도 훔쳐오고, 외교 정보망도 만들어야 했는데 조선은 그걸 제대로 못 했다. 그냥 문 닫고 성리학 토론하다가 나중에 일본한테 강제로 뚫렸다.

한마디로 이 정책은 당시에는 어느 정도 이해 가능한 방어적 선택이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조선의 시간표를 더 꼬이게 만든 정책이다.

한줄요약


열강한테 바로 따먹히지 않으려고 문을 닫았는데, 문 닫은 동안 몸을 키우지 못해서 결국 더 처참하게 따먹힌 정책.

배경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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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다 읽기 위해선 플래시와 태양권이 필요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19세기 중반 동아시아는 개판이었다.

청나라아편전쟁에서 영국에게 털리고, 난징 조약 같은 불평등조약을 맺으며 반식민지 루트를 타기 시작했다. 일본도 쿠로후네 사건 이후 미국의 압박을 받고 개항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개항 후 메이지 유신으로 떡상한 일본”이지만, 실제로는 개항 직후 일본도 엄청난 물가 상승과 사회 혼란을 겪었다.

조선 입장에서는 옆집 청나라가 얻어맞고, 건너편 일본이 문 열고 난리나는 걸 본 셈이다. 이걸 보고 “우리도 문 열면 발전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당시 열강은 스타트업 투자자가 아니라 제국주의 채권추심단이었다.

게다가 조선은 상공업 기반도 약했고, 군사력도 낡았고, 재정도 빈약했다. 세도정치로 국가 시스템은 이미 썩어 있었고, 지방 행정은 백성 등골 빼먹는 기계가 되어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문을 활짝 열면 신문물보다 먼저 들어오는 건 불평등조약, 외국 상인, 외교 압박, 군함이었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일단 문을 닫는 쪽을 택했다.

정책의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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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수교 거부정책은 단순히 “외국 싫어!” 수준이 아니었다. 대략 다음과 같은 방향이었다.

  • 서양 열강과의 공식 통상 거부
  • 외국 선박의 조선 연안 접근 경계
  • 천주교와 서양 세력의 연결 가능성 차단
  • 강화도 등 군사 요충지 방어 강화
  • 외세와 화친하는 주장을 매국으로 보는 척화론 강화
  • 척화비 건립을 통한 대외 방침 선전

즉 외교, 군사, 사상 통제를 묶은 패키지 정책이었다. 조선식 국가방화벽이라고 보면 된다. 문제는 방화벽은 세웠는데 내부 서버 보안 업데이트를 안 했다.

주요 사건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병인박해

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이 문서에서는 인간을 대량으로 도살해버린 쓰레기 새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인간은 자리를 피하십시오.
Ah! Fresh M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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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다 읽기 위해선 플래시와 태양권이 필요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1866년, 흥선대원군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프랑스 선교사들과 조선인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었고, 이것이 병인양요의 직접적인 명분이 되었다.

조선 지배층 입장에서 천주교는 단순 종교가 아니었다. 제사를 거부하고, 성리학 질서를 흔들고, 외국 세력과 연결될 수 있는 위험한 사상으로 보였다. 그 우려 자체는 당시 기준으로 완전히 뜬금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대규모 학살은 명백한 폭압이었다. 그리고 외세 개입을 막겠다는 사람이 외세 개입 명분을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외교적으로도 병크였다. “우리 집에 들어오지 마라”고 하면서 상대에게 초대장을 던진 꼴이다.

병인양요

병인양요는 병인박해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

조선은 프랑스군을 상대로 버텼고, 프랑스군은 철수했다. 이 때문에 흥선대원군과 조선 조정은 “서양 놈들 별거 아니네?”라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 문제는 프랑스가 조선을 진심으로 정복하려고 국가 총력전을 건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제한전에서 버텼다고 열강 전체를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면 곤란하다. 동네 복싱장에서 한 판 버텼다고 UFC 챔피언과 맞짱 뜰 수 있는 건 아니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다가 평양 군민과 충돌했고, 결국 불타버렸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국 선박과 선원이 공격당한 사건이었다. 조선 입장에서는 허락 없이 강을 거슬러 올라온 수상한 외국 배를 처리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훗날 신미양요의 명분이 되었다. 조선은 외국 선박을 강경하게 막았고, 미국은 이를 문제 삼았다. 서로 입장 차이가 컸지만, 결과적으로 조선은 또 하나의 외교 리스크를 떠안게 되었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

💢주의!!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엄청난 분노를 일으킵니다.💢
눈 앞에 보이면 일단 도망가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눈이 썩고 귀도 멀고 손발도 오그라들며, 다리도 와들와들 떨리고 두통도 옵니다.
나 정말로 화났다! 프리저!!!-!!!!!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한 사건이다.

이건 조선 입장에서는 그냥 미친 짓이었다. 성리학 국가에서 조상 묘를 파헤친다는 건 단순 절도나 무덤 훼손이 아니라, 문명적 선전포고급 모욕이었다. 이 사건은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에 대해 더 강경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솔직히 이건 대원군이 빡칠 만했다. 아무리 서양 문물이고 통상이고 나발이고, 와서 남의 아버지 무덤 파는 놈을 보고 “아 저들과 문명적으로 교류해야겠구나”라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신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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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디시위키에서는 용납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거나 그 반대인 경우, 또는 공과 과가 너무나도 극명하여 무조건 빨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까기만 할 수도 없는 인물입니다.
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디시위키에서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 디시위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1871년, 미국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구실로 조선에 접근했고, 결국 신미양요가 터졌다.

미군은 강화도를 공격했고, 어재연이 지키던 광성보가 격전지가 되었다. 조선군은 끝까지 싸웠지만 근대식 화력과 상륙작전을 갖춘 미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전투 자체는 조선의 패배였다. 하지만 미국도 조선과의 조약 체결에는 실패하고 철수했다. 그래서 조선은 또다시 “우리가 막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문제는 이게 전략적 승리라기보다는 외교적 교착이었다는 점이다. 조선은 시간을 벌었지만, 그 시간을 잘 쓰지는 못했다.

척화비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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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좆까 애미뒤진 꼰대새끼들아

신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은 전국에 척화비를 세웠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문구는 강렬하다. 내부 결속용으로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니까.

하지만 외교정책으로 보면 너무 선택지가 좁다. 싸우거나 매국하거나 둘 중 하나라는 식의 구도는 정치 선동에는 좋지만, 국제정치에는 별로다. 약소국일수록 싸울 때 싸우고, 협상할 때 협상하고, 시간 벌 때 시간 벌어야 하는데 조선은 이걸 잘 못 했다.

주의. 이 문서는 눈부실 정도로 매우 밝습니다.
이 문서를 읽다가 부디 너의 눈이 실명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것 같네요...이미 이 글을 보는 너는 실명이 되었습니다. 아니 이 글도 보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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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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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침략을 경계한 현실감각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무조건 “무식한 쇄국”이라고만 보기에는 당시 국제정세가 너무 살벌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으로 박살났고, 일본은 강제 개항 후 사회 혼란을 겪었다. 동남아와 인도 등 여러 지역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이 “아 서양 친구들 반갑습니다” 하고 문을 열었다면, 그 결과가 아름다운 자유무역이었을 가능성은 낮다.

흥선대원군은 최소한 제국주의의 위험성을 감지했다. 이건 인정해야 한다.

조선의 체급을 알고 있었다

조선은 산업 기반이 약했다. 상공업은 빈약했고, 군사력은 구식이었고, 재정은 부실했다. 이런 상태에서 무리하게 개방하면 나라 경제가 외국 상품과 자본에 털릴 가능성이 컸다.

즉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약소국의 방어 본능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준비 안 된 시장을 갑자기 전면 개방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물론 조선은 그 준비를 끝내 못 했다는 게 문제지만, 최소한 “준비가 안 됐다”는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내부 개혁과 연결되어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단순히 문만 닫은 사람이 아니었다. 비변사를 폐지하고, 서원을 철폐하고, 호포제를 실시하며 내부 개혁도 추진했다.

즉 대원군의 구상은 대충 “외세는 일단 막고, 안에서는 왕권과 재정을 정리한다”에 가까웠다. 이 방향 자체는 말이 된다. 문제는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 때문에 재정 정리가 아니라 재정 폭발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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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화 지연

통상수교 거부정책의 가장 큰 비판점은 근대화 지연이다.

서양 문물을 무조건 받아들이는 게 답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문을 닫고 아무것도 안 하면 더 망한다. 조선은 서양의 군사기술, 산업기술, 국제법, 외교 체계, 금융 구조를 배워야 했다.

그런데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이런 학습 경로를 크게 막았다. 조선은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계속 늦게 알았고, 늦게 알았을 때는 이미 판이 기울어 있었다.

시간 벌기에 실패함

쇄국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을 벌고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도 처음부터 서양을 좋아해서 개항한 게 아니다. 강제로 문이 열린 뒤 미친 듯이 따라잡으려고 했다. 물론 일본의 성공은 지리, 상공업 기반, 사무라이 계층, 국제정세의 운 같은 여러 요소가 섞인 결과였지만, 어쨌든 문이 열린 뒤 국가를 갈아엎었다.

조선은 문을 닫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문 닫은 동안 국가를 갈아엎지는 못했다. 이것이 핵심이다. “문 닫기”는 전략의 시작이지 끝이 아니다.

천주교 탄압이라는 흑역사

천주교를 외세 침투의 통로로 본 것은 당시 지배층 시각에서는 이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을 대량으로 잡아 죽인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병인박해는 인권 문제이기도 하고, 외교 문제이기도 했다. 프랑스에게 침공 명분을 줬고, 조선이 야만적 국가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 외세를 막겠다는 정책이 외세의 명분을 키운 셈이다.

일본에는 결국 뚫림

흥선대원군이 실각한 뒤 조선은 1876년 강화도 조약으로 일본에 문을 열게 된다.

여기서 아이러니가 터진다. 서양 열강에게는 문을 닫았는데, 결국 조선을 뚫은 건 일본이었다. 그리고 그 일본은 서양식 제국주의를 학습한 뒤 조선에 그대로 써먹었다.

즉 조선은 서양 제국주의를 막으려다, 서양 제국주의를 카피한 일본 제국주의에게 당한 셈이다. 역사 억까가 아니라 전략 실패다.

옹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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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수교 거부정책 옹호론의 핵심은 이렇다.

그때 문 열었으면 조선은 더 빨리 망했을 수도 있다.

실제로 당시 조선의 경제력과 군사력은 너무 약했다. 국가 재정은 부실했고, 군대는 낡았고, 상공업은 일본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었다. 조선이 무방비 상태로 개항했다면 외국 상품이 밀려오고, 은과 곡물이 빠져나가고, 불평등조약으로 주권이 박살났을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당시 서양 열강들이 도덕적으로 훌륭한 국제사회 선생님이었던 것도 아니다. 아편 팔고, 항구 뜯고, 치외법권 요구하고, 식민지 만드는 시대였다. 이런 놈들에게 경계심을 갖는 건 정상이다.

그러니까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완전한 무지”라기보다 “약소국의 방어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비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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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론의 핵심은 이렇다.

막을 거면 막는 동안 준비라도 했어야지, 그냥 막기만 하면 뭐하냐?

조선은 통상수교를 거부하면서도 근대 군대 양성, 산업 육성, 기술 도입, 외교관 양성, 정보 수집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서양 문물을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구하는 시스템도 약했다.

일본은 네덜란드와의 제한 교류를 통해 난학을 발전시켰고, 서양 지식을 일부나마 축적했다. 조선도 실학자들이 있었지만 국가 정책으로 연결되지 못했다. 결국 조선은 세계를 모르는 상태로 세계의 폭풍 속에 던져졌다.

즉 비판론자 입장에서 이 정책은 “현실적인 방어”가 아니라 “현실도피”다.

교과서식 설명의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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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보통 이렇게 배운다.

  • 흥선대원군이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펼쳤다.
  • 그래서 근대화가 늦어졌다.
  • 이후 강화도 조약으로 강제 개항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이 설명만 들으면 대원군이 그냥 “서양 싫어하는 꼰대”라서 나라를 망친 것처럼 보인다.

현실은 더 복잡하다. 당시 조선은 개항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동시에 개항을 거부하면서 준비할 능력도 부족했다. 즉 문제는 “문을 열었냐 닫았냐”가 아니라, 조선이 어느 쪽을 선택해도 버틸 체력이 부족했다는 데 있다.

만약 조선이 일찍 개항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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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때 조선이 일본처럼 개항하고 근대화했으면 됐잖아”라는 말이 나온다.

말은 쉽다. 그런데 조선은 일본과 조건이 달랐다.

일본은 에도 시대부터 도시경제와 상공업이 발달했고, 제한적이나마 서양과 교류했다. 사무라이 계층은 근대 관료와 군인으로 전환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되었다. 반면 조선은 양반 지배층이 상공업을 천시했고, 성리학 질서가 훨씬 강하게 사회를 묶고 있었다.

물론 조선도 가능성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대원군 시기쯤 되면 이미 늦었다는 평가도 가능하다. 진짜 근대화를 하려면 영조, 정조 때부터 상공업 육성, 군제 개혁, 서양 기술 수용을 했어야 했다.

구한말에 와서 갑자기 “자 이제 근대화 하자!”라고 해봤자, 레벨 1 캐릭터로 최종보스 방 들어가는 꼴이다.

강화도 조약과 정책의 종말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흥선대원군은 1873년 실각했다. 이후 고종이 친정을 시작하고, 민씨 세력이 부상했다.

그리고 1875년 운요호 사건이 벌어졌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조선을 압박했고, 1876년 강화도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조선이 근대 국제질서로 끌려나오는 계기였지만, 동시에 불평등조약이었다.

결국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서양에게는 어느 정도 버텼지만, 일본에게는 뚫렸다. 더 골때리는 건 일본이 조선을 개항시킬 때 서양 열강이 자기들에게 했던 방식을 그대로 따라 했다는 점이다.

맞고 배운 놈이 남을 때리는 역사적 악순환이다.

평가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단순히 좋다 나쁘다로 끝낼 문제가 아니다.

좋게 보면 약소국 조선이 제국주의 시대에 살아남으려 한 방어 전략이었다. 당시 무작정 개항했다면 조선은 더 빨리 경제적·정치적으로 예속되었을 수 있다.

나쁘게 보면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잡을 마지막 기회를 놓친 정책이었다. 외세를 막는 데만 집중하고, 그 사이 내부 체질 개선과 근대화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결국 조선은 더 불리한 조건에서 일본에게 문을 열었다.

결론적으로 이 정책은 이해는 되지만 성공하지 못한 정책이다.

쇄국은 죄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쇄국한 채로 아무 준비도 안 한 건 죄다. 문을 닫았으면 안에서 칼을 갈았어야 하는데, 조선은 칼 대신 붓 들고 예송논쟁 후속편 찍고 있었다.

관련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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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이 문서(은)는 너무 병신같아서 정리되었습니다.

통상수교 거부정책은 조선이 세계사의 폭풍 앞에서 선택한 방어막이었다.

그 방어막은 완전히 멍청한 선택은 아니었다. 당시 서양 열강은 진짜 위험했고, 조선은 개항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하지만 방어막을 세웠으면 그 안에서 총도 만들고, 배도 만들고, 돈도 모으고, 외교관도 키웠어야 했다.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이 정책은 “나라를 지키려 한 정책”이면서 동시에 “나라가 뒤처지는 걸 막지 못한 정책”이 되었다. 흥선대원군이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맞았다고 하기에도 결과가 너무 처참했다.

한마디로 조선 후기답다. 선택지는 전부 구렸고, 그중 고른 선택도 결국 구렸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