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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IV. 동아시아의 근대화 운동과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 5단원
개항
삼각 무역 · 아편 · 아편전쟁 · 임칙서 · 난징 조약 · 최혜국 대우 · 영사 재판권 · 애로호 사건 · 톈진 조약 · 베이징 조약
에도 막부 일본
쇄국 · 흑선내항 · 미일화친조약(최혜국 대우) · 미일수호통상조약(영사 재판권)
조선
흥선대원군(병인양요 · 신미양요) ·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영사 재판권)
베트남
제1차 사이공 조약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근대화
태평천국 운동 홍수전 · 신사(이홍장 · 한인 의용군)
양무운동 증국번 · 이홍장 · 중체서용 · 금릉 기기국 · 청일전쟁
일본 제국
메이지 유신 존왕양이 · 시모노세키 전쟁 · 대정봉환 · 폐번치현 · 사민평등 · 소학교령 · 청일수호조규 · 이와쿠라 사절단 · 정한론 · 류큐 병합
조선
개화 정책 통리기무아문 · 별기군 · 임오군란 · 온건 개화파 · 급진 개화파 · 갑신정변(청프전쟁 · 김옥균)
갑오개혁을미개혁 청일전쟁 · 태양력 · 단발령
국민 국가 일본 제국
자유민권운동 · 대일본제국 헌법
대한제국
을미사변 · 아관파천 · 광무개혁 · 대한국 국제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변법자강운동(캉유웨이 · 량치차오) · 무술정변 · 광서신정(흠정헌법대강) · 신해혁명(중국동맹회 · 중화민국 · 쑨원 · 위안스카이) · 중화제국
서구적 세계관 만국 공법(강화도 조약 · 거문도 사건) · 사회진화론(후쿠자와 유키치 · 변법자강운동 · 옌푸 · 천연론 · 유길준 · 윤치호 · 애국계몽운동)
신문
신보
일본 제국
마이니치 신문 · 요미우리 신문 · 아사히 신문
조선대한제국
한성순보 · 독립신문 · 황성신문 · 대한매일신보
근대 교육
경사대학당
일본 제국
소학교령 · 도쿄대학 · 교육칙어
조선대한제국
육영공원 · 교육입국조서
여성 인권 일본 제국
부인 교풍회
조선대한제국
여권통문
근대적 생활 방식
조계 · 상하이
일본 제국
요코하마 · 도쿄
조선대한제국
부산 · 인천 · 한성 · 경인선 · 경부선 · 경의선
제국주의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 시모노세키 조약 · 삼국간섭
의화단 운동 백련교 · 의화단 · 신축조약
러일전쟁 발트함대 · 포츠머스 조약 · 을사조약 · 한일합방 · 을사의병 · 애국계몽운동
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영일동맹 · 21개조 요구 · 파리 강화 회의 · 베르사유 조약 · 5.4 운동 ·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한국 독립운동
민족자결주의 · 3.1 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봉오동 전투 · 의열단(김원봉) · 신간회
중국 민족운동
신문화 운동(천두슈 · 후스 · 5.4 운동 · 중국국민당 · 중국공산당 · 국공합작 · 5.30 운동 · 국민혁명군 · 북벌 · 4.12 상하이 쿠데타 · 북벌 완수
제2차 세계 대전 만주사변 및 한중 연대 세계대공황 · 만주국(푸이) · 리튼 조사단 · 국제 연맹 · 조선혁명군 · 한국독립군 · 동북항일연군 · 한인 애국단(김구 · 윤봉길) · 한중 민족 항일 대동맹
중일전쟁 전후 홍군대장정 · 시안 사건 · 루거우차오 사건 · 국공합작 · 난징 대학살 · 장제스 · 조선의용대(김원봉 · 조선의용군) · 한국 광복군(임팔 전투 · 국내 진공 작전)
태평양 전쟁 추축국 · 진주만 공습 · 미드웨이 해전 ·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무조건 항복
각종 전쟁범죄 국가총동원법 · 난징 대학살 · 삼광 작전 · 일본군 위안부 · 공출
반제·반전·평화 연대 아주 화친회(고토쿠 슈스이 · 판보이쩌우) · 안중근(동양평화론) · 박열 · 가네코 후미코 · 후세 다쓰지 ·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 일본 반제 동맹 · 일본 병사 반전 동맹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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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간이 나라를 잘 다스리면 좋겠지만 그런 경우는 개뿔도 없고 대부분은 림종suck , 조순Siri처럼 나라를 씹창내고 다닐 겁니다.
당신의 나라의 지도자에게 이런 인간들이 꼬이지 않기를 빕니다.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디시위키에서는 용납할 수 있지만 사회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거나 그 반대인 경우, 또는 공과 과가 너무나도 극명하여 무조건 빨기만 할 수도, 그렇다고 까기만 할 수도 없는 인물입니다.
고인드립은 되도록 하지 않는 게 나으니 괜히 드립 쳤다가 디시위키에서 평생 까임권을 얻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것에 대해서 디시위키는 책임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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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니 친구야?으잉?", "선배랑 후배가 같냐?으잉?", "선생님이 학생이랑 같아?으잉?", "선임이랑 후임이 같냐?으잉?", "내가 선배님이니까.으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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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나라를 살리는 데 앞서고 반대로 나라를 망치는 데 앞서기도 하는 등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그 과정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ㄴㄴ경복궁 재건만 아니었어도

소개

흥흥흐흥~ 흐응흥흥~ 흥선대원군~

한반도 최고의 인간불도저. 본명은 이하응이다. 자는 시백, 호는 석파. 조선 26대 임금 고종의 아버지이며, 줄여서 그냥 대원군이라고도 부른다.

조선의 대원군은 여러 명이 있지만, 자기 아들이 진짜 왕으로 즉위하는 걸 살아서 보고 직접 권력을 잡은 대원군은 흥선대원군이 유일하다. 그래서 한국사에서 “대원군”이라고 하면 거의 자동으로 이 사람을 뜻한다.

장담하는데 리얼 한국 근현대사 입구에서 등장한 1세대 틀딱충 겸 개혁 독재자다. 다만 공이라고는 일절 없는 잡놈들과 달리 공도 크고 과도 크다. 문제는 그 과 중 하나가 조선을 파워 멸망 루트로 몰고 갔다는 것이다.

조선을 진짜배기 헬조선으로 만든 세도정치를 끊어버리고, 백성의 피를 빨아먹던 서원을 거의 다 뿌수고, 삼정의 폐단을 정리하면서 양반에게도 세금 걷겠다고 포고해 당시 민중으로부터 슈퍼스타가 됐다.

그리고 나서 어차피 뭘 해도 몰락 확정인 구왕조의 모든 부를 긁어모아 후손들을 위한 관광업 투자에 몰빵하셨다. 게다가 이 부를 긁어모으겠다고 당백전을 찍어내 슈퍼 인플레이션을 일으켜 살만해질 것 같던 백성들을 다시 배고프게 만들었다.

한마디로 조선 후기판 “개혁은 잘했는데 재정은 말아먹은 권력자”다. 서원 철폐, 비변사 폐지, 호포제 같은 건 진짜 미친 듯이 잘했다. 그런데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은 조선 경제에 석유를 붓고 성냥을 던진 꼴이었다.

기본 정보

흥선대원군 이하응
본명 이하응
생몰 1820년 ~ 1898년
석파
지위 조선의 왕족, 고종의 생부, 섭정자
아버지 남연군
아들 고종
주요 정책 비변사 폐지, 서원 철폐, 호포제, 경복궁 중건, 통상수교 거부정책
주요 사건 병인박해, 병인양요, 오페르트 도굴 사건,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오개혁
평가 개혁가와 쇄국 꼰대 사이에서 영원히 싸움나는 인물

한줄요약


세도정치라는 썩은 암덩어리는 잘라냈는데, 경복궁과 당백전으로 나라 체력도 같이 잘라낸 인간 불도저.

집권 배경

주의! 이 글은 헬-조선의 현실을 다룹니다.
K- !!!
이러한 헬조선의 암울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한국인들에게 전세계와 우주가 경이로움을 느낍니다.
이런 것들과 당신에게 탈조선을 권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야...
엣헴! 이 문서에 선비가 왔다 갔습니다.
이 문서는 선비님의 등장으로 인해 노잼이 되어가고 있는 문서입니다. 진지한 문서를 원하시면 위키백과로 가주십시오.

흥선대원군이 등장하기 전 조선은 이미 상태가 영 좋지 않았다. 순조, 헌종, 철종 시기를 거치면서 왕권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안동김씨 같은 세도 가문들이 사실상 나라를 잡고 흔들었다.

왕은 궁궐에 앉아 있는 도장 찍는 기계가 되고, 지방에서는 아전과 수령들이 백성 등골을 뽑아먹고, 서원은 유교 간판 단 지역 카르텔이 되어버렸다. 중앙은 썩고 지방은 곪고 민생은 터졌다. 이쯤 되면 국가는 국가인데 운영 방식은 거의 봉건형 다단계 사기다.

이런 판에 철종이 후사 없이 죽자,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이 왕위에 올랐다. 그가 바로 고종이다. 고종이 어렸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은 왕의 아버지라는 지위를 이용해 정권을 장악했다.

물론 정식 왕은 아니었다. 하지만 실권은 이 양반에게 있었다. 즉 조선 후기판 “직함은 아버지인데 실무는 회장님” 상태였다.

권력 장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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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상쾌합니다!!!
이 문서는 참교육에 관련된 것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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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헤이, 영쑤!! 돈 두 댓!"

흥선대원군은 초반 권력 장악을 꽤 잘했다. 괜히 인간불도저 소리 듣는 게 아니다.

그는 세도정치의 핵심이던 안동김씨 세력을 눌렀고, 왕권을 다시 세우려 했다. 조선이 이미 망해가는 집이었다면, 대원군은 일단 집 안에 들어와서 바퀴벌레부터 때려잡은 셈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집 안 청소는 잘했는데, 갑자기 “이제 궁궐 리모델링 간다”면서 집문서까지 끌어다 쓴 느낌이 됐다.

개혁

주의. 이 문서는 눈부실 정도로 매우 밝습니다.
이 문서를 읽다가 부디 너의 눈이 실명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이미....... 늦은 것 같네요...이미 이 글을 보는 너는 실명이 되었습니다. 아니 이 글도 보지 못합니다......
정의가 구현되었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구현한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비변사 폐지

비변사는 원래 중종 때 왜구 침입에 대비하려고 만든 임시 기구였다. 그런데 을묘왜변 이후 상설화되고, 임진왜란을 거치며 국정을 총괄하는 괴물 조직이 되었다.

처음엔 안보 회의체였는데 나중엔 국정 운영 전반을 다 쥐락펴락했다. 현대식으로 비유하면 임시 태스크포스가 어느 날 국무회의, 국방부, 행정안전부를 다 잡아먹은 꼴이다.

세도정치 시기에는 비변사가 부패 권력의 핵심 통로가 되었고, 흥선대원군은 이를 폐지한 뒤 의정부와 삼군부의 기능을 되살렸다. 이건 확실히 잘한 일이다. 조선 후기 행정 시스템을 정상화하려는 시도였고, 왕권 회복의 상징적인 조치였다.

안동김씨 척결

수십 년 동안 조선을 쥐락펴락하던 세도 가문들을 누르고 왕권을 회복했다. 세도정치 시기의 조선은 왕이 왕이라기보다는 유교 제사장 겸 바지사장에 가까웠고, 실제 권력은 외척 가문이 쥐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은 이 구도를 박살냈다. 여기까지는 진짜 사이다다. 문제는 새로 들여온 며느리 쪽 외척인 여흥 민씨 세력이 훗날 다시 나라를 흔들게 된다는 것. 세도정치 몰아냈더니 다른 세도정치가 예약되어 있던 셈이다. 조선은 버그 고치면 다른 버그가 튀어나오는 레거시 시스템 그 자체였다.

양반들 군포 납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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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참교육을 거부할 시 성적은 개좆망행이니 순순히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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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들은 오랫동안 군포 부담에서 빠져 있었다. 그런데 조선 후기로 갈수록 돈 주고 족보 사고, 양반 행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세금 부담은 평민에게만 몰렸다.

흥선대원군은 호포제를 실시해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게 했다. 이건 당시 기준으로 꽤 급진적인 정책이었다. 양반 입장에서는 “아니 우리가 왜 세금을 냄?”이었겠지만, 백성 입장에서는 “드디어 저 인간들도 돈 내네”였다.

물론 호포제가 모든 조세 문제를 해결한 건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 조선 후기의 말도 안 되는 신분 특권을 건드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서원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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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을 괴롭히는 자라면 공자가 다시 살아난다고 해도 용서하지 않겠다.

서원은 원래 유학자를 기리고 양반 자제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면세 특권, 토지 소유, 지역 여론 장악, 백성 수탈이 한 세트로 붙은 지방 카르텔이 되었다.

쉽게 말해 유교 간판 달고 운영하는 지역 토호 사무실이었다.

흥선대원군은 전국 서원 대부분을 철폐하고 47개소만 남겼다. 이건 당시 유생들에게 엄청난 반발을 불렀지만, 민생 관점에서는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백성을 괴롭히는 유교 기득권을 박살낸 것만으로도 대원군이 단순 꼰대가 아니라는 증거다.

삼정 개혁과 사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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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민생 문제는 전정, 군정, 환곡의 문란이었다. 이른바 삼정의 문란이다.

전정은 토지세 문제, 군정은 군포 문제, 환곡은 곡식 대여 제도 문제였다. 취지는 그럴싸했지만 현실은 수령과 아전들의 무한 과금 BM이었다. 백성 입장에서는 나라가 아니라 악성 모바일 게임이었다.

흥선대원군은 환곡의 폐단을 줄이기 위해 사창제를 실시했다. 국가와 관청이 직접 곡식을 관리하다가 부패가 터지니, 마을 단위로 운영하게 하려는 시도였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문제를 알고 손을 댔다는 점에서는 평가할 만하다.

왕권 강화

흥선대원군의 모든 개혁은 결국 왕권 강화로 이어진다.

비변사 폐지, 세도 가문 견제, 서원 철폐, 호포제 실시 모두 “왕과 중앙정부가 다시 나라를 잡겠다”는 선언이었다. 조선 후기의 난장판을 생각하면 방향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문제는 흥선대원군의 왕권 강화가 근대적 국가 개조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중앙집권은 했는데 산업화, 군제 개편, 재정 개혁, 외교 전략까지 일관되게 묶어내지는 못했다. 쉽게 말해 운영체제는 다시 깔았는데 하드웨어가 조선 후기 감자 서버였다.

대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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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정책

역사 교과서에서는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이 조선을 후퇴시켰다고 적는다. 맞는 말이긴 한데, 이걸 너무 단순하게 보면 또 곤란하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했을 때 조선과 서구 열강의 격차는 이미 하늘과 땅 수준이었다. 산업혁명을 거친 서양은 증기선, 대포, 근대 금융, 대량생산 체제를 들고 오고 있었고, 조선은 아직도 성리학 명분론과 농업 중심 경제에 갇혀 있었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문을 확 열었다면 “와 신문물 들어온다!”가 아니라 “와 불평등조약 들어온다!”가 될 가능성이 컸다. 청나라는 이미 아편전쟁으로 박살났고, 일본도 흑선 내항 이후 엄청난 혼란을 겪었다.

즉 쇄국은 완전히 멍청한 선택이라기보다는, 약소국 지도자가 할 수 있는 방어적 선택지 중 하나였다. 문제는 그 방어적 시간을 벌었으면 내부 산업, 군제, 재정, 외교 라인을 동시에 개조했어야 하는데, 조선은 그걸 못했다. 문만 닫고 체력 단련을 안 하면 그냥 방 안에서 늙어 죽는 거다.

병인박해

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이 문서에서는 인간을 대량으로 도살해버린 쓰레기 새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인간은 자리를 피하십시오.
Ah! Fresh Meat!!!!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매우 Deep♂Dark 합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다 읽기 위해선 플래시와 태양권이 필요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흥선대원군의 큰 실책 중 하나는 가톨릭 탄압이다. 병인박해로 수많은 천주교 신자와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형되었다.

물론 당시 조선 지배층 입장에서 천주교는 단순 종교가 아니었다. 제사를 거부하고, 기존 성리학 질서를 흔들고, 서양 세력과 연결될 수 있는 위험 요소로 보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규모 처형으로 밀어버린 건 명백한 폭압이었다.

게다가 이 탄압은 프랑스에게 조선 침공 명분을 제공했다. 그 결과가 병인양요다. 쇄국을 하겠다는 사람이 외세에게 명분을 던져준 셈이니, 외교 감각 면에서는 좋은 점수를 주기 어렵다.

병인양요

병인박해 이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공했다. 조선은 프랑스군을 막아냈고, 이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척화 노선을 더 강화했다.

다만 “프랑스를 이겼다”는 식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프랑스가 조선을 완전히 정복하려고 국가 총력전을 건 게 아니었다. 제한적 보복 원정에 가까웠다. 물론 조선 입장에서 막아낸 건 맞지만, 이것을 근거로 “서양 별거 아니네?”라고 판단했다면 그건 매우 위험한 착각이었다.

오페르트 도굴 사건

💢주의!! 이 문서가 다루는 대상은 엄청난 분노를 일으킵니다.💢
눈 앞에 보이면 일단 도망가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눈이 썩고 귀도 멀고 손발도 오그라들며, 다리도 와들와들 떨리고 두통도 옵니다.
나 정말로 화났다! 프리저!!!-!!!!!

독일 상인 오페르트는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 묘를 도굴하려 했다. 이건 조선 입장에서는 그냥 미친 짓이었다. 조선은 성리학 국가였고, 조상 묘를 파헤치는 건 단순 범죄가 아니라 문명 전체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졌다.

이 사건은 대원군이 서양에 대해 완전히 마음을 닫게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서양인들이 문명과 통상을 말하면서 남의 조상 무덤이나 파는 걸 보면, “아 저놈들하고 상종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다.

문제는 외교란 감정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빡치는 건 이해되는데, 나라의 생존 전략은 그 다음 단계에서 짰어야 했다.

신미양요

1871년에는 미국과 충돌한 신미양요가 일어났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 이후 미국이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며 군사 행동을 벌인 것이다.

조선은 어재연 등이 광성보에서 격렬히 저항했지만 군사력 차이는 분명했다. 전투 하나하나의 용맹과 별개로, 세계사의 흐름은 이미 조선의 성벽 밖에서 대포를 장전하고 있었다.

이후 대원군은 척화비를 세웠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말은 간지나는데, 국제정치 난이도는 간지로 뚫리지 않는다.

대원군이 불쌍한 이유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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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놈들 틈바구니에서 참 고생 많다.

아들래미란 인간이 고종이고 며느리란 사람이 명성황후였으니, 집안 복은 정말 없었다.

하지만 흥선대원군 자신은 그 콩가루집안에서 그나마 현실을 본 인물이었다. 적어도 세도정치를 박살내고, 서원 철폐와 호포제 같은 걸 밀어붙인 걸 보면 조선의 병폐가 뭔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대원군이 단순 유교탈레반이라고만 알려져 있는데, 사실 당시 기준으로는 상황 판단을 꽤 잘한 너구리였다.

쇄국? 무조건 잘못이라고만 하기에는 당시 국제정세가 너무 살벌했다. 청나라는 아편전쟁으로 뚫렸고, 일본도 강제 개항 후 내전급 혼란을 겪었다. 조선 같은 농업 중심 약소국이 아무 준비 없이 문을 열었다면 그대로 열강의 경제 놀이터가 되었을 가능성도 컸다.

과연 대원군이 외국 선진문물의 가치를 몰랐을까? 전혀 아니다. 흥선대원군의 사진이 남아있다는 점만 봐도 그는 서양 문물을 무조건 악마 취급한 사람은 아니었다. 문제는 받아들이는 속도와 방식, 그리고 국내 정치 기반이었다.

지금 당장 통일하면 나라가 감당 못 할 수 있듯, 당시 조선도 완전 개방을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그렇다고 영원히 닫아놓는 것도 답이 아니었다. 결국 대원군의 한계는 “문 닫기”까지는 했는데 “문 닫고 안에서 체력 키우기”를 충분히 못했다는 데 있다.

좆본의 개방과 비교하는 경우도 있는데, 당시 조선과 일본의 토종 상공업 수준은 차이가 컸다. 일본은 에도시대 동안 도시경제, 상업, 수공업, 해상 교류가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반면 조선은 농업 중심 질서와 성리학적 신분 체제에 훨씬 강하게 묶여 있었다.

조선이 외국에 팔아먹을 게 뭐가 있었냐고 하면 난감하다. 국궁? 나전칠기? 백자? 갓? 물론 문화재적 가치는 있지만, 산업화 시대 세계시장과 맞짱 뜰 만한 수출산업은 아니었다. 갓 팔아서 증기기관차 사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결국 진짜 문호개방을 할 거였으면 진작에 했어야 했다. 영조, 정조 때부터라도 군제 개혁, 상공업 진흥, 기술 수용, 해양 교류를 했어야 했다. 철종 이후 대원군 시점에는 이미 타이밍이 많이 늦었다.

한마디로, 대원군은 당시 조선의 문제를 상당 부분 알고 있었고 나라를 살려보려 했다. 그런데 그 나라가 하필 조선이고, 시대가 하필 구한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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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 타파

흥선대원군의 최대 업적 중 하나다. 세도 가문들이 나라를 사유화하던 구조를 깨고 왕권을 회복했다.

물론 왕권 회복이 곧 근대화는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조선 후기의 썩은 권력 구조를 한 번 갈아엎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한다. 아무도 못 건드리던 기득권을 실제로 때린 인간은 드물다.

비변사 폐지

비변사는 중종 때 왜구가 침략한 삼포왜란 때 처음 만들어진 임시기구였다. 그런데 이게 을묘왜변 때 상설화되더니 임진왜란 때는 아예 여기서 나라를 쥐락펴락하게 되었다.

문제는 이 비변사가 너무 비대화되었고 세도정치 이후엔 온갖 부정부패가 판치는 사고뭉치가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흥선대원군이 총대를 매고 비변사를 폐지한 후 다시 의정부와 삼군부를 두어 국방과 정치를 분리시켰다.

현대로 치면 비정상적으로 커진 비선 권력기구를 해체한 급의 대개혁이다.

안동김씨 척결

수십 년 동안 조선을 쥐락펴락하던 세도정치 세력들을 누르고 왕권을 가져왔다. 세도정치 기간의 조선은 대강 무신정권기의 고려왕, 막부시기의 덴노처럼 상징 권위와 실제 권력이 분리된 상태였다고 보면 된다.

흥선대원군은 이 구조를 박살냈다. 이건 확실히 공이다.

양반들 군포 납부

양반들은 세금 면제 특권을 가지고 있었는데 조선 후기로 다다르면 온갖 이상한 방법으로 양반들이 많아져 버려서 세금이 쪼달리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때 흥선대원군은 양반한테도 군포를 걷는 호포제를 시행하였다. 조선식 특권층 과세라고 보면 된다.

서원 철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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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옛 유교의 성현들을 모시고 양반 자제들을 가르치는 학원인데, 조선 후기로 가면 면세혜택부터 시작해서 온갖 패악질을 벌이고 있었다.

유교탈레반들이 합법적으로 백성들 돈 뜯어가기 위해 만든 지역 카르텔이 된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소수의 서원만 남기고 나머지 서원을 싹 갈아엎어버리고 유교탈레반들에게 참교육을 시켜줬다.

사실 이것만 해도 흥선대원군은 ㅆㅅㅌㅊ 개혁가가 맞다. 지금으로 치면 세금만 축내는 쓸모없는 기관들 정리하고 지역 토호 권력을 박살낸 수준의 개혁이었다.

경복궁 재건의 장기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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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원래 어둠 항목에 있어야 맞지만, 아주 길게 보면 애매하게 빛도 있다.

당시에는 경제를 박살낸 대형 삽질이었지만, 훗날 경복궁은 한국의 대표 문화유산이자 관광자원이 되었다. 물론 “후손 관광자원 됐으니 당시 백성들 고생은 괜찮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건 너무 잔인한 계산이다.

다만 결과만 놓고 보면, 흥선대원군이 복원한 경복궁은 오늘날 한국 역사문화 이미지의 핵심 자산 중 하나가 되었다. 조선 말기에는 재정 폭탄, 현대에는 관광 자산. 이 얼마나 이상한 역사 회계인가.

을미사변 관련 떡밥

을미사변의 실제 흑막이 흥선대원군이라는 말이 있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흥선대원군이 명성황후와 극심하게 대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을미사변의 주도권은 일본 측에 있었다는 점도 봐야 한다. 이 부분은 음모론과 역사적 책임이 섞여 있기 때문에 단정하면 곤란하다.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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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백전

지역화폐 인플레이션 생쇼의 조선말기 매운맛.

쇄국정책이야 그렇다 쳐도 아무리 생각해도 당백전 발행은 너무 쓰레기 짓이었다.

너네가 이해하기 쉽게 현재 버전으로 설명하자면, 정부가 초대형 궁궐 신축공사를 할 돈이 필요하다고 갑자기 1천만원짜리 지폐를 찍어낸 것이다. 이거 한 장이면 오만원권 200장이다. 당백전과 단위는 다르지만 느낌은 대충 이렇다.

여튼 고액 화폐가 시중에 쏟아지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냐 하면, 화폐 신뢰가 박살나고 물가가 튀어오른다. 사람들은 액면가를 믿지 않고, 시장에서는 실제 가치보다 낮게 거래된다. 돈이 돈 노릇을 못 하면 나라는 바로 피곤해진다.

이런 식으로 나라가 점점 베네수엘라화 되어갔다.

일제강점기가 조선이 힘이 없어서 도래한 건데, 그 힘을 더 뺀 게 당백전이었다. 흥선대원군 최대의 실책을 하나만 꼽으라면 당백전이다.

정치를 하려면 경제부터 알아야 한다. 개혁 의지가 아무리 좋아도 재정과 통화가 터지면 백성은 밥상에서 바로 체감한다. 백성 입장에서는 “세도정치 끝났다며? 근데 왜 쌀값이 이럼?”이 되는 것이다.

참고로 이때 흥선과 함께 당백전 발행을 주도한 영의정 이름이 조두순이다. 이름 때문에 검색하면 다른 조두순이 튀어나와서 더 빡치는 역사적 함정카드다.

경복궁 재건

사실상 당백전 발행의 큰 이유다.

우선 경복궁 재건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임진왜란 이후 방치된 조선의 법궁을 복원해 왕권을 세우겠다는 명분은 있었다. 왕권 회복을 추진하던 흥선대원군 입장에서는 상징정치가 필요했다.

문제는 자기 주머니에 돈이 얼마가 들어있는지 알고 거기에 맞춰 국가정책을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경복궁 재건은 당시 조선의 경제 사정상 상당한 무리수였다. 세도정치로 인한 관리들의 부패 때문에 국가 재정은 이미 약했고, 농민들의 삶은 힘들었다.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재건을 하기 전에 상업을 장려하고 재정을 정상화했어야 했다. 그런데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형 국책사업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당백전과 강제 부역 문제가 터졌다.

무엇보다 가장 문제였던 건 경제가 흔들릴 걸 알면서도 사업을 강행한 고집이다. 유독 흥선대원군은 경복궁 재건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왕권의 상징을 복원하려는 마음은 알겠는데, 상징을 세우려다 실제 국가 체력이 빠졌다.

아니면 그 돈으로 차라리 군대나 키웠으면 나라가 약소국일지언정 조금 더 버텼을지도 모른다. 물론 조선 시스템 자체가 워낙 노답이라 장담은 못 한다.

경복궁 재건과 비슷한 사례로 루트비히 2세라는 바이에른 왕이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짓다가 쿠데타로 쫓겨났는데, 훗날 이 성은 관광명소가 되었다. 즉 당대에는 재정파탄, 후대에는 관광자원. 역사는 가끔 회계처리를 진짜 이상하게 한다.

가톨릭 신자 학살

경고! 이 새끼는 인간을 밥 먹듯이 죽여댄 인간도살자입니다!!
이 문서에서는 인간을 대량으로 도살해버린 쓰레기 새끼들에 관해 설명하고 있으니 정상적인 인간은 자리를 피하십시오.
Ah! Fresh Meat!!!!

비판점 하나 더 있다. 바로 가톨릭 탄압이다.

흥선대원군은 병인박해 시기 천주교 신자와 프랑스 선교사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했다. 당시 조선 지배층 입장에서 천주교가 체제 위협으로 보였던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해와 정당화는 다르다.

탄압은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침공 명분이 되었고, 조선은 병인양요를 겪게 된다. 쇄국정책을 유지하려면 오히려 외세가 개입할 명분을 최소화해야 하는데, 대원군은 반대로 명분을 던져줬다.

안 해도 되는 전투를 치르게 만든 지도자는 비판받아야 한다. 국가지도자는 분노를 푸는 사람이 아니라 위험을 줄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척화비와 현실 인식의 한계

척화비 문구는 간지나지만, 국제정치는 간지로 하는 게 아니다.

서양 오랑캐와 화친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라는 논리는 내부 결속에는 효과가 있었다. 유생과 보수층을 묶고, 백성들에게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외교 선택지를 줄였다. 열강과 무조건 싸울 수 있는 군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통상과 외교를 능숙하게 다룰 관료 집단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최소한 정보라도 모으고, 제한적 교류라도 설계했어야 했다.

그런데 조선은 문을 닫은 채 세계가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문 닫고 수련한 게 아니라 문 닫고 성리학 토론만 한 셈이다.

정치적 고집

흥선대원군은 추진력이 강했다. 그런데 추진력은 방향이 맞을 때 장점이고, 방향이 틀리면 재앙이다.

서원 철폐와 호포제에서는 강한 추진력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경복궁 중건과 당백전에서는 그 추진력이 폭주기관차가 됐다.

또한 실각 이후에도 흥선대원군은 고종과 명성황후 세력에 계속 맞섰고, 임오군란과 갑오개혁 시기에 다시 정치 무대에 등장했다. 말년까지 권력에서 완전히 손을 떼지 못했다. 이쯤 되면 조선 왕실판 막장 드라마다.

고종을 낳음

주의! 이 대상은 개좆병신 정자/난자를 가졌습니다.
이 대상은 자식농사를 망쳤습니다.

사실 이게 제일 큰 실책인 듯.

ㄴ 두 번째 실책이다.

자기보다 세상 돌아가는 꼴을 더 못 보는 놈을 자식이라고 낳았고 왕으로 만들어서 나라를 망국으로 만들었다. 물론 고종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다. 조선 말기의 구조 자체가 이미 심각했다.

그래도 고종이 이도저도 아니게 외세 사이에서 흔들리고, 내부 개혁도 제대로 못 하고, 왕권 유지에만 집착한 것은 사실이다. 흥선대원군이 그렇게 강한 사람이었는데 왜 아들은 그렇게 우유부단했는지 참 아이러니하다.

흥친왕 이재면

주의! 이 대상은 개좆병신 정자/난자를 가졌습니다.
이 대상은 자식농사를 망쳤습니다.

흥친왕 이재면. 고종의 형이다. 이 사람도 평가가 좋지 않다. 왕의 친형이라는 위치였지만 구한말 정치판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고, 친일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흥선대원군 집안은 아버지는 인간불도저인데 자식 세대는 나라 말아먹는 구한말 버그 패치 실패판 같았다.

며느리로 명성황후를 받아들임

아들 고종이 깡따구도 없고 우유부단한데, 며느리까지 정치적으로 만만치 않은 인물을 들였다.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의 대립은 단순 고부갈등이 아니라 조선 말기 권력투쟁 그 자체였다. 흥선대원군은 왕권 중심의 보수 개혁 노선이었고, 명성황후와 민씨 세력은 외세를 끌어들여 권력을 유지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 결과 조선 조정은 하나의 전략으로 움직이지 못하고 청,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계속 흔들렸다. 이 집안싸움은 그냥 집안싸움이 아니라 나라 전체를 흔든 내전성 권력투쟁이었다.

실각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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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년 최익현의 상소를 계기로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흥선대원군은 물러났다. 표면상으로는 고종이 직접 나라를 다스리겠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명성황후와 민씨 세력의 부상이기도 했다.

이후 1882년 임오군란 때 흥선대원군은 다시 권력을 잡는 듯했으나, 청나라에 의해 납치되어 톈진으로 끌려갔다. 그리고 3년간 청나라에 억류되었다가 1885년 귀국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의 혼란 속에서 다시 정치 무대에 등장했고, 제1차 갑오개혁 때 잠시 얼굴마담처럼 활용되었다. 하지만 일본과 개화파가 주도하는 개혁 흐름에서 대원군은 오래 버티지 못했다.

말년에는 정치적 영향력이 줄어든 상태로 지내다가 1898년 사망했다.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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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까는 쪽에서는 그를 쇄국정책, 천주교 탄압, 당백전, 경복궁 중건으로 조선의 근대화를 늦춘 원흉으로 본다. 특히 병인박해와 당백전은 실드치기 어렵다. 사람을 죽였고, 경제를 망쳤다. 이건 말장난으로 덮을 수 없다.

빠는 쪽에서는 그를 조선 말기에서 그나마 제정신이었던 개혁가로 본다. 세도정치 타파, 비변사 폐지, 서원 철폐, 호포제는 확실히 시대를 앞선 개혁이었다. 당시 조선의 상태를 보면 흥선대원군만 욕하는 건 좀 억울한 측면도 있다.

정확히 말하면 흥선대원군은 “망해가는 조선에서 할 수 있는 개혁은 꽤 잘했지만, 근대국가로 넘어가는 설계는 끝내 못 한 인물”이다.

조선이라는 낡은 배에서 썩은 선원들을 쫓아내고 갑판 청소는 했다. 그런데 엔진을 증기기관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심지어 배의 외관을 꾸미겠다고 돈을 너무 써서 연료까지 부족해졌다. 그러니 결국 파도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연표

연도 사건
1820년 이하응 출생
1863년 아들 고종 즉위, 흥선대원군 집권
1864년 이후 세도정치 척결, 비변사 폐지, 왕권 강화
1865년 경복궁 중건 시작
1866년 병인박해, 병인양요
1868년 오페르트 남연군 묘 도굴 사건
1871년 신미양요, 척화비 건립
1873년 고종 친정 선포, 흥선대원군 실각
1882년 임오군란으로 재집권 시도, 청나라에 납치
1885년 귀국
1894년 갑오개혁기 잠시 정치 복귀
1898년 사망

관련 인물

관련 사건

기타

조선의 대원군은 4명이 있는데 그 중 아들의 즉위를 지켜본 대원군, 즉 살아서 대원군이 된 이는 흥선대원군이 유일하다. 그래서 존재감이 있는 대원군은 사실상 흥선대원군 뿐이며, 대원군 자체가 흥선대원군을 일컫는 말로도 쓰인다.

2010년대 이후 명성황후와 고종에 대한 미화가 많이 벗겨지면서 흥선대원군의 평가도 조금씩 올라가는 추세다. 물론 그렇다고 흥선대원군이 무조건 억울한 성군이었다는 건 아니다. 당백전과 병인박해는 그냥 거대한 감점이다.

다만 조선이 망한 걸 전부 흥선대원군 한 명 탓으로 돌리는 것도 너무 단순하다. 조선은 이미 수백 년간 성리학 명분론, 신분제, 농업 중심 경제, 상공업 천시, 세도정치, 부패한 지방행정으로 누적 디버프를 먹고 있었다. 대원군은 그 말기 증상을 수술하려 한 의사였지만, 수술 도중 환자 피를 너무 많이 뽑은 의사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흥선대원군은 조선 후기 최고의 개혁가 중 하나이자, 동시에 조선 말기 최대의 삽질러 중 하나다. 빛과 어둠이 너무 선명해서 역사 교과서가 좋아하는 단순 선악 구도로는 설명이 안 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