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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의사나 약사에게 상담하기엔 이미 늦었군요.
故 너의 명복을 왼손으로 비비고~ 오른손으로 비비고~ 아무튼 야무지게 빕니다.
전쟁 알지도 못하는 새끼들아!
이 문서 보고 쓰레기 생각한 당신, 당장 쓰레기한테 사과해.
| 후백제의 역대 국왕 | ||||
|---|---|---|---|---|
| 1대 견훤 |
← | 2대 견신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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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신검(甄神劒)은 후백제의 제2대이자 마지막 왕이다. 후백제 건국자 견훤의 장남으로, 아버지를 몰아내고 왕위를 먹었다가 1년 남짓 만에 나라까지 말아먹은 인간이다.
지 애비가 배다른 형제인 금강에게 왕위 물려줄려고 하니까 삐져서 자기 형제랑 같이 금강의 모가지를 날려버린 후에 아빠를 왕위에서 내리고 금산사로 유배보냈다. 그리고 지는 후백제 2대 왕이 된다.
근데 견훤이 탈출해서 고려로 날른다음 왕건이랑 같이 이새끼들 족칠려고 했다.
결국엔 잡혔는데 살았다. 덕분에 견훤이 울화병이 나서 죽어버렸다. 다만 나중에 왕건이 결국 죽여버렸다는 설도 있다.
항상 진다.
또 졌어!
생애
견훤에게는 아들이 10여 명 있었는데, 기록상 신검은 장남이었다. 문제는 견훤이 장남인 신검을 제쳐두고 넷째 아들 금강을 특히 총애하며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는 점이다. 《삼국사기》와 《고려사》 모두 금강이 체격이 크고 지략이 많아 견훤의 총애를 받았으며, 견훤이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했다고 전한다.[1]
장남 입장에서 보면 왕국 건국부터 수십 년 동안 아버지 밑에서 굴렀는데 갑자기 넷째가 후계자가 된 상황이다. 신검만 열받은 것도 아니어서 동생 양검, 용검과 후백제의 중신 능환도 금강 계승에 반대했다. 당시 양검은 강주도독, 용검은 무주도독으로 지방에 나가 있었고 신검은 견훤 곁에 있었는데, 능환이 양검과 용검에게 사람을 보내 서로 모의했다.[2]
결국 935년 3월 쿠데타가 터졌다. 신검 일파는 금강을 죽이고 견훤을 전북 김제 금산사에 가둔 뒤 신검을 왕으로 세웠다.
애비 가둠, 동생 죽임, 왕위 먹음. 패륜 풀코스.
다만 모든 걸 신검 혼자 기획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삼국사기》에서는 후에 왕건이 능환을 심문하면서 "양검 등과 몰래 모의하여 대왕을 가두고 그 아들을 세우자고 한 것이 네 계책 아니냐"는 취지로 추궁한다. 즉 능환이 쿠데타의 핵심 기획자였을 가능성이 크고, 신검은 그 정변의 최대 수혜자이자 당사자였던 셈이다.[3]
문제는 애비를 가뒀으면 탈출 못하게 해야 하는데 그것도 실패했다는 것.
견훤은 약 3개월 뒤 막내아들 능예와 딸, 측근 등을 데리고 금산사에서 탈출해 나주로 도망쳤다. 그리고 평생의 숙적이던 왕건에게 귀부했다. 왕건은 이 늙은 적장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상보(尙父)라고 높여 부르고 남궁을 숙소로 주며 양주를 식읍으로 내주는 등 존나게 잘 대해줬다.[4]
신검 입장에서는 아빠 왕위 뺏었더니 그 아빠가 옆 나라 왕한테 가서 "쟤 내 아들인데 좀 죽여주시오."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게다가 견훤의 사위 박영규까지 고려에 귀부할 뜻을 보이며 후백제 내부가 흔들렸다. 이미 930년 고창 전투 이후 후백제의 군사적 우위가 꺾인 상황에서 창업군주까지 적국으로 넘어가 버렸으니 신검 정권의 정통성은 사실상 박살났다.
멸망과 최후
936년 6월 견훤은 왕건에게 후백제를 공격해 신검을 토벌해달라고 요청했다. 왕건은 태자 왕무와 박술희를 먼저 천안으로 보내 준비하게 했고, 그해 9월 직접 대군을 이끌고 후백제를 공격했다.[5]
신검도 군대를 끌고 나와 현재의 경상북도 구미 일대에서 고려군과 맞붙었다. 이게 후삼국시대의 마지막 대규모 결전인 일리천 전투다.
그리고 또 졌다.
고려군은 병력 면에서도 우세했고 후백제군 내부 사기도 이미 개판이었다. 무엇보다 적진에 자기 나라를 세운 창업군주 견훤이 서 있었다. 후백제 장수 입장에서 보면 얼마 전까지 왕이었던 인간이 고려군과 나란히 서서 자기 아들을 치러 온 상황이다.
결국 일리천에서 후백제군은 대패했고, 신검은 양검·용검 및 장수 40여 명과 함께 고려에 항복했다.[6]
이로써 900년에 견훤이 세운 후백제는 936년 멸망했다.
왕 재위기간 약 1년.
창업군주 애비 쫓아냄.
나라 멸망.
효율이 미쳤다.
다만 신검의 최후는 기록이 서로 엇갈린다. 《삼국사기》의 본문에 따르면 왕건은 신검이 능환 등의 협박을 받아 왕위에 오른 측면이 있고 스스로 항복해 죄를 청했다는 이유로 사형을 면제했다. 반면 능환은 정변의 주모자로 지목돼 처형됐다.[7]
양검과 용검은 유배된 뒤 죽임을 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런데 같은 《삼국사기》에도 신검·양검·용검 삼형제가 모두 형벌을 받아 죽었다는 다른 설이 함께 실려 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주석 역시 신검의 최후는 확실히 알 수 없다고 정리한다.[8]
그래서 왕건이 신검을 살려줬다는 기록이 주된 전승이지만 나중에 결국 처형됐다는 설도 있다는 원문의 표현은 대체로 맞다. 다만 왕건이 확실히 나중에 직접 죽였다고 단정할 정도로 기록이 명확하지는 않다.
견훤은 후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936년에 세상을 떠났다. 원문처럼 신검 때문에 울화병이 나서 죽었다는 식으로 많이 드립을 치지만, 사료에 정확한 사인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평생 만든 나라를 자기 아들이 빼앗고 동생까지 죽였으며 결국 자신이 적국 군대를 데리고 와서 자기 나라를 멸망시키는 꼴까지 봤으니 말년 멘탈이 멀쩡했을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신검은 정치적으로 보면 단순한 병신이라기보다 꽤 난감한 위치에 있던 인물이기도 했다. 장남인데도 후계구도에서 배제됐고, 지방군을 장악한 양검·용검과 중앙의 능환을 비롯한 반금강 세력이 이미 존재했다. 그래서 쿠데타 자체는 신검 혼자 홧김에 벌인 패륜극이라기보다 후백제 내부의 왕위계승전쟁에 가깝다.
문제는 결과가 존나게 안 좋았다.
견훤을 제거하지도 못하고 금산사에 가둬놨다가 탈출시켰고, 그 견훤이 고려에 붙으면서 후백제 정권의 정통성과 군사력을 동시에 박살냈다. 후계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쿠데타를 했는데 그 결과 나라 자체가 1년 만에 없어졌다.
전알못이라기보다는 정치판에서 가장 하면 안 되는 적을 만들고 안 죽이고 풀어주는 짓을 자기 아버지한테 해버린 셈이다.
태조 왕건
태조 왕건에서는 당시 오랜 무명생활을 해왔던 이광기가 분했다.
드라마의 신검은 실제 역사보다 훨씬 병신력과 개그력이 강화돼 있다. 견훤에게 허구한 날 털리고 전쟁 나가면 또 지고, 뭔가 잘못될 때마다 특유의 표정과 말투로 "으이구!"를 외치는 캐릭터가 돼버렸다.
그래서 드라마를 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실제 견신검보다
항상 진다.
또 졌어!
이미지가 훨씬 강하다.
다만 실제 신검도 전쟁 경험 자체가 없던 왕자는 아니다. 《고려사》와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수미강(須彌康·須彌强)을 신검과 동일인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한데, 그렇다면 924년부터 조물군 전투 등에 출전한 장수였고 933년에는 후백제군을 이끌고 신라 지역에서 군사작전을 벌이다 고려의 유금필에게 패한 기록도 있다.[9]
그러니까 태조 왕건에서 맨날 지는 것도 완전히 근거 없는 창작은 아니다.
실제로도 고려군 상대로 자주 졌다.
그리고 이광기가 벽진 이씨였다보니 벽진 이씨의 시조인 이총언과 교전하는 장면을 찍은 뒤로 종친 할배들에게 꾸지람을 듣고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다고 말하는등 곤혹을 겪었다고 한다.
극중에서는 신검이 이총언과 싸우는 장면이 나오는데, 배우 이광기가 하필 이총언을 시조로 하는 벽진 이씨라 문중에서 "어떻게 조상님께 칼을 들이미냐"는 식의 말을 들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배우는 후백제 왕자 역할 한 번 맡았다가 조상한테 패륜함.
실제 견신검도 패륜.
기묘하게 캐스팅이 완성됐다.
각주
- ↑ 견훤의 아들 신검이 반란을 일으키다, 고려사,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능환이 양검 등과 정변을 모의하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신검 등이 항복하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태조 왕건, 신라와 후백제를 통합하다, 우리역사넷.
- ↑ 일리천전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 신검 등이 항복하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신검 등이 항복하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능환이 양검 등과 정변을 모의하다, 삼국사기, 한국사데이터베이스.
- ↑ 수미강,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