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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진주박물관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 진주성 안에 위치한 국립박물관이다. 1984년 11월 2일 개관했으며, 처음에는 가야 문화를 중심으로 한 지역박물관으로 출발했다가 1998년부터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으로 전면 재편됐다.[1][2]

현재도 공식적으로 임진왜란과 관련된 동아시아의 사회와 역사, 경남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전시·교육하는 것을 핵심 역할로 삼고 있다.[3]

무엇보다 위치가 존나 적절하다.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바로 진주성 전투 현장이다.

김시민이 일본군을 막아낸 진주대첩이 벌어진 성 안에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을 박아놨다. 다른 지역 박물관이 유물 나온 곳 근처에 있는 정도라면 여기는 아예 전쟁터 안에서 전쟁사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래서 대충

국립김해박물관:

가야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국립진주박물관:

임진왜란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역사

국립진주박물관 건립계획은 1978년 확정됐고 1980년 10월 공사를 시작해 1984년 11월 2일 개관했다.[1]

경상남도에서는 최초의 국립박물관이었다.[2]

처음에는 경남지역에서 성장한 가야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대표 박물관으로 출발했다. 당시에는 아직 국립김해박물관이 없었기 때문에 경남권 가야문화를 국립진주박물관이 상당부분 담당했다.

그러다가 1998년 김해에 국립김해박물관이 개관하면서 역할을 나눴다.

김해:

"가야는 내가 함."

진주:

"그럼 나는 뭐 함?"

그리고 답이

임진왜란

이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1998년 1월 15일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으로 재개관했고 이후 전쟁사 자료 수집과 연구, 전시를 꾸준히 확대했다.[1]

2001년에는 전시·수장고를 증축하고 두암관을 개관했으며, 2003년에는 진주대첩을 다룬 3D 입체영상관을 설치했다. 2008년과 2018년에는 상설전시를 대규모로 다시 개편했다.[1]

2026년 현재 상설전시는 크게

  • 임진왜란실
  • 역사문화홀
  • 두암실
  • 야외전시장

으로 구성돼 있다.[4]

임진왜란

국립진주박물관의 존재 이유.

임진왜란실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약 7년에 걸쳐 벌어진 전쟁을 단순히

조선 vs 일본

으로 설명하지 않고 조선·일본·명나라가 모두 얽힌 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 다룬다.[5]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약 15만8천 명 규모의 병력을 동원해 조선을 침공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일본군은 부산에 상륙한 뒤 불과 20일 정도 만에 한양까지 올라갈 정도로 빠르게 진격했다.[5]

조선군:

"왜놈들 내려온다!"

조정:

"얼마나?"

현실:

이미 한양 근처임.

초기 대응은 그냥 개박살났다.

하지만 이후 이순신이 해상보급로를 공격하고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났으며, 조선 정규군도 재정비되고 명나라까지 참전하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바뀌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이 전쟁의 전개과정뿐 아니라 당시 조선과 일본의 무기, 군사제도, 외교, 사회변화까지 함께 보여준다.[5]

특히 최근에는 조선 화약무기 연구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2026년 박물관 업무에는 조선시대 화약무기 복원과 조총 조사연구, 관련 영상 아카이브 구축이 별도 연구사업으로 들어가 있다.[6]

전쟁박물관답게 진짜 무기 연구한다.

진주대첩

국립진주박물관이 다른 임진왜란 전시기관과 결정적으로 다른 이유다.

박물관이 바로 진주성 안에 있다.

1592년 10월 김시민이 지휘한 조선군과 진주 백성들은 약 3,800명 정도의 병력으로 훨씬 많은 일본군을 상대로 성을 방어했다.

이 전투가 진주대첩이다.

진주대첩은 한산도 대첩, 행주대첩과 함께 흔히 임진왜란 3대 대첩으로 꼽힌다.

일본군 입장에서 진주는 경상도 서부를 장악하고 전라도로 진격하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었다. 당시 전라도는 조선의 핵심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진주를 뚫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했다.

김시민은 성벽과 화약무기, 활, 돌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일본군을 막아냈다.

당시 전투에서 김시민 역시 총상을 입었고 며칠 뒤 사망했다.

진주성 안에는 현재도 김시민 장군 동상과 관련 유적이 있으며, 국립진주박물관을 보고 바로 밖에서 실제 전장 위치를 걸어볼 수 있다.

전시실:

"여기에서 이런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관람객:

"어디요?"

박물관:

"밖."

존나 직관적이다.

제2차 진주성 전투

문제는 1년 뒤다.

일본군은 1592년 진주성에서 쳐맞은 것을 존나 기억하고 있었다.

1593년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다시 진주성을 공격했고 이번에는 조선군이 패배했다.

일본군 병력규모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수만 명 규모였으며, 성 안에도 군인뿐 아니라 주변 지역에서 피난 온 백성들이 대거 들어와 있었다.

며칠간의 치열한 전투 끝에 진주성이 함락됐고 수많은 조선군과 백성이 희생됐다.

이 전투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인물이 논개다.

전승에 따르면 진주성이 함락된 뒤 논개는 촉석루 아래 남강가에서 일본 장수를 껴안고 강으로 뛰어들었다.

현재 진주성 안 촉석루 아래에는 의암의기사 등이 남아 있다.

그래서 진주성 관광은 자연스럽게

국립진주박물관
→
촉석루
→
의암
→
김시민 관련 유적

으로 이어진다.

1차 전투:

조선 승리

2차 전투:

일본 승리 + 진주성 개박살

한 장소에서 1년 간격으로 극과 극의 결과가 나왔다.

임진왜란실

국립진주박물관의 메인 전시실이다.

현재 임진왜란실에서는 전쟁의 원인과 일본의 침공, 조선군의 대응, 명나라 참전, 수군과 의병의 활동, 강화교섭, 정유재란, 전쟁 이후 동아시아 변화 등을 다룬다.[5]

전시 도입부에는 3면 대형화면을 이용해 임진왜란 전체를 보여주는 영상도 설치돼 있다.[5]

특히 임진왜란을

"이순신이 일본 물리침"

정도로만 배우고 온 사람이라면 전쟁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내부에서는 전국시대를 끝낸 도요토미 정권의 정치적 목표가 있었고, 명나라는 조선에서 일본군을 막지 못하면 직접 중국 본토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일본
↓
조선 침공
↓
명 참전
↓
조선·명 연합군 vs 일본
↓
일본과 명 사이 강화협상
↓
협상 깨짐
↓
정유재란

이라는 존나 복잡한 국제전이 된다.

중간에 조선 빼놓고 명나라와 일본이 서로 협상하다가 둘 다 상대가 자기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착각하는 개판도 벌어졌다.

외교도 전쟁만큼 난장판이었다.

무기와 화약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재미있는 부분 가운데 하나다.

임진왜란은 동아시아에서 화약무기의 중요성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전쟁이었다.

일본군은 조총을 대규모로 운용했다. 조총 자체가 무조건 활보다 모든 면에서 우월했던 것은 아니지만 훈련이 상대적으로 쉽고 집단사격에 적합해 일본군 보병의 중요한 무기가 됐다.

조선도 화약무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화차, 승자총통, 각종 총통과 화포 등 상당히 다양한 화약무기를 사용했다.

조선 수군은 함선에 대형 화포를 싣고 원거리에서 일본선을 공격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이는 이순신의 해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임진왜란 전문박물관답게 조선 화약무기 자체를 별도의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2026년에도 조총과 조선시대 화약무기의 제작·운용방식을 연구하고 있다.[6]

박물관 유튜브 콘텐츠 이름도 《화력조선》이다.

조선:

"우린 유교국가입니다."

박물관:

"대포도 존나 쐈습니다."

둘 다 맞다.

역사문화홀

임진왜란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역사문화홀에서는 경남지역 문화유산을 소개한다.[7]

경남 서부지역에는 진주·사천·산청·하동·거창·함양·합천 등 여러 지역이 있고 선사시대부터 가야·통일신라·고려·조선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현재 박물관 2층에는 서부경남 관련 전시공간과 체험시설도 함께 운영된다.[8]

애초에 국립진주박물관이 개관 당시에는 가야박물관 성격이었기 때문에 경남지역 고대문화에 대한 소장품과 연구기반도 여전히 가지고 있다.[2]

다만 1998년 이후 메인 캐릭터가 너무 명확해졌다.

가야유물:

"나도 있는데."

임진왜란:

"비켜."

같은 상황이다.

두암실

국립진주박물관의 또 하나 독특한 전시공간이다.

두암실은 경남 사천 출신의 재일교포 사업가 두암 김용두가 기증한 문화유산을 전시한다.[9]

김용두는 일제강점기와 그 이후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문화재를 수집했고 1997년, 2000년, 2001년 세 차례에 걸쳐 총 190점을 국립진주박물관에 기증했다.[9]

기증품은 토기, 도자기, 회화, 서예, 공예품 등 고대부터 근대까지 매우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조선 전기의 소상팔경도 등이 있으며 보물급 문화재도 포함돼 있다.[9]

김용두는 기증 당시 자신도 기쁘지만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던 문화재가 고국에 돌아가게 된 것이 더 기쁠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남겼다.[9]

이쪽은 드립 치기가 좀 미안할 정도로 진짜 좋은 일 했다.

2026년 9월 22일부터는 기증 30주년을 앞두고 두암 김용두 컬렉션 특별전 《나의 인생 박물관》도 열린다.[10]

야외전시장

박물관 밖에도 중요한 문화재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보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다.[11]

9세기 통일신라 석탑으로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구조다. 기단에는 무기를 든 신장상이, 1층 탑신에는 보살상이 조각돼 있다.[11]

이 탑은 역사도 존나 기구하다.

원래 산청군 범학리 절터에 있었는데 1941년 일본인의 사주로 대구로 불법 반출됐다. 이후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옮겨졌다가 광복 뒤 경복궁에 세워졌고, 다시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로 들어갔다.[11]

그리고 2018년이 돼서야 국립진주박물관에 다시 세워졌다.

고향 떠난 지 77년 만이었다.[11]

석탑 하나가

산청
→
대구
→
서울
→
창고
→
진주

를 여행했다.

문화재 강제 전국투어다.

이외에도 함안 구양리 출토 석탑 부재와 합천 죽죽리 출토 석탑 몸돌 등 서부경남 지역 석조문화재가 야외에 전시돼 있다.[11]

진주성과 함께 보기

국립진주박물관은 그냥 진주성 관광코스 일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별도로 차 타고 이동할 필요도 없다.

박물관 보고 나오면 이미 진주성이다.

추천동선은 대략

국립진주박물관
→
김시민 장군 관련 유적
→
촉석루의암의기사
→
남강

정도다.

특히 박물관에서 진주대첩과 제2차 진주성 전투를 먼저 알고 촉석루에 가면 그냥

"경치 좋은 누각"

으로 보이지 않는다.

1592년에는 이 주변에서 대규모 공성전이 벌어졌고 1593년에는 성 전체가 함락되면서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현재는 남강 내려다보면서 관광객들이 사진 찍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400년 차이다.

이전 건립

국립진주박물관에는 매우 중요한 변화가 예정돼 있다.

진주성을 떠날 예정이다.

현재 박물관은 국가사적 진주성 내부에 있기 때문에 역사적 입지는 존나 좋지만 현실적인 문제가 많다.

박물관을 더 확장하기 어렵고 차량 접근과 관람객 편의, 대형 소장품 반입, 수장공간 확보 등에 한계가 있다.[12]

그래서 진주시는 옛 진주역 철도부지 일대에 국립진주박물관을 새로 짓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당초에는 2026년 개관을 목표로 했는데 역시 박물관도 한국 건설사업답게 일정이 밀렸다.

2026년 국립진주박물관 공식 업무계획에 따르면 새 박물관은 2028년 개관 예정이며, 2026년 4월까지 실시설계를 마치고 같은 해 9월 착공하는 계획으로 진행되고 있다.[13]

2026년 1월에는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이전 예정지를 직접 방문해 사업 추진상황을 점검했다.[14]

현재 계획대로라면 기존 진주성 안 박물관보다 규모와 기능이 크게 확장되며 상설전시도

  • 전쟁·외교
  • 경남 역사문화
  • 두암 컬렉션

등으로 새롭게 구성될 예정이다.[6]

어린이박물관도 별도로 구축한다.[13]

또한 현재 임진왜란 하나에 강하게 집중된 정체성을 새 박물관에서는 동아시아 전쟁과 외교까지 확대하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13]

쉽게 말하면

현재:

임진왜란 전문박물관

미래:

동아시아 전쟁·외교 전문박물관 + 서부경남 역사박물관

정도로 체급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사하면 지금처럼

"전시 보고 밖에 나오니까 진주대첩 현장"

이라는 미친 입지는 사라진다.

편의성과 공간을 얻고 현장감은 잃는 셈이다.

관람

2026년 현재 관람시간은 09:00~18:00이며 관람료는 무료다.[15]

휴관일은

  • 매주 월요일
  • 1월 1일
  • 설날 당일
  • 추석 당일

이다.[15]

주소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35다.[16]

상설전시 외에도 전시해설을 운영하며 2026년에는 10시, 13시, 15시 등의 정기해설 예약도 받고 있다.[17]

진주성 입장과 연계해 관람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박물관 자체만 보면 규모가 엄청 거대한 편은 아니지만 진주성 전체와 함께 보면 볼거리가 상당히 많다.

특히 역사 좋아하는 사람이면

박물관 1시간
+
진주성 1~2시간

정도 생각하고 들어가는 편이 낫다.

촉석루에서 남강 보다가 시간 다 간다.

평가

국립진주박물관은 전국 국립박물관 가운데 전문분야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곳 중 하나다.

임진왜란.

끝.

물론 실제로는 경남 지역사와 두암 컬렉션도 다루지만 박물관의 정체성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임진왜란이다.

그리고 위치가 사기다.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무령왕릉 유물 보고 실제 왕릉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도 더 직관적이다.

국립진주박물관은 애초에 진주성 안에 있으니까.

임진왜란실에서

"1592년 일본군이 진주성을 공격했습니다."

를 보고 5분 뒤 밖에 나오면 그 성벽을 직접 걷는다.

전쟁사 박물관 입지로 이보다 설명하기 쉬운 곳도 드물다.

또 임진왜란을 단순한 민족영웅 이야기로만 보여주지 않고 조선·명·일본이 얽힌 동아시아 국제전쟁으로 접근한다는 점도 좋다.[5]

다만 박물관 건물이 오래됐고 사적지 내부라 확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오랫동안 문제였다. 그래서 새 박물관 이전이 추진되는 것이다.[12]

2028년 이전이 계획대로 진행되면 현재 진주성 박물관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13]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건물에서 전시를 보고 실제 진주성으로 바로 나오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면 시간이 무한정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임진왜란 공부하고 진주대첩 현장까지 바로 걸어갈 수 있는 박물관.

전쟁사 좋아하면 존나 좋은 곳이다.

여담

  • 1978년 건립계획이 확정됐다.[1]
  • 1980년 10월 착공했다.
  • 1984년 11월 2일 개관했다.[1]
  • 경상남도 최초의 국립박물관이다.[2]
  • 처음에는 가야문화 중심 박물관이었다.
  • 1998년 1월 15일 임진왜란 전문박물관으로 재개관했다.[1]
  • 현재도 공식적인 핵심 전문분야가 임진왜란이다.[3]
  • 상설전시는 임진왜란실·역사문화홀·두암실·야외전시장으로 구성돼 있다.[4]
  • 박물관이 진주성 안에 있다.
  • 진주대첩 현장이다.
  • 김시민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했다.
  • 이듬해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진주성이 함락됐다.
  • 논개 전승 역시 이때의 진주성 함락과 연결된다.
  • 임진왜란실에서는 조선·명·일본의 국제전쟁이라는 관점으로 전쟁을 다룬다.[5]
  • 조선 화약무기와 조총도 연구한다.[6]
  • 유튜브 전쟁사 콘텐츠 이름이 화력조선이다.
  • 두암 김용두가 일본에서 수집한 우리 문화재 190점을 기증했다.[9]
  • 야외에 국보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이 있다.[11]
  • 이 석탑은 일본인에게 불법 반출됐다가 77년 만인 2018년 서부경남으로 돌아왔다.[11]
  • 2026년 9월부터 두암 김용두 기증 특별전이 열린다.[10]
  • 현재 박물관은 2028년 옛 진주역 일대로 이전 개관할 계획이다.[13]
  • 옛 계획에는 2026년 이전이라고 돼 있는 자료도 있지만 이미 일정이 밀렸다.
  • 2026년 공식 계획은 2026년 9월 착공, 2028년 개관이다.[13]
  • 새 박물관에서는 임진왜란에서 더 확장해 동아시아 전쟁·외교를 주요 전문분야로 삼을 예정이다.[13]
  • 이전하면 공간은 좋아지는데 진주성 안이라는 존나 좋은 현장입지는 잃게 된다.
  • 지금 박물관에서 전쟁 설명 듣고 밖에 나오자마자 실제 성벽 보는 경험은 꽤 독특하다.
  • 임진왜란 좋아하면 전쟁기념관보다 오히려 여기 임진왜란 전시가 더 집중돼 있어서 재미있을 수 있다.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