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인물
정책 및 사건
문화
인물
문화
인물
문화
인물
정책 및 문화
사건
국가
아스투리아스 왕국 · 후우마이야 왕조 · 웨섹스 왕국 · 프랑크 왕국(메로베우스 왕조 · 카롤루스 왕조) · 교황령 · 베네치아 공화국 · 아바르 · 비잔티움 제국 · 우마이야 왕조 · 아바스 왕조 · 수당시대(당나라) · 제3차 북속시기 · 신라 · 발해 · 일본(아스카 시대 · 나라 시대 · 헤이안 시대) · 롬바르드 왕국 · 불가리아 제1제국 · 티베트 제국 · 돌궐 제2제국 · 위구르 제국 · 하자르 칸국 · 튀르기시 · 스리위자야 제국 · 팔라 왕조 · 라슈트라쿠타 왕조 · 찰루키아 왕조 · 촐라 왕조 · 남조 · 이베리아 반도의 여러 기독교 왕국 · 베네벤토 공국
사건
세계사
다이호 율령 (701년) · 무주 당나라로 환원 (705년) · 일본 나라 시대 개막 (710년) · 우마이야 왕조의 이베리아 반도 진출 (711년) · 고사기 편찬 (712년) · 일본서기 편찬 (720년) · 성상 파괴령 (726년) ·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년) · 돌궐 제2제국 붕괴와 위구르 제국의 성립 (744년) · 아바스 왕조 성립 (750년) ·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 성립 (751년) · 탈라스 전투 (751년) · 교황령 건국 (754년) · 안사의 난 (755년) · 후우마이야 왕조 건국 (756년) · 안사의 난 진압 (763년) · 바그다드 건설 (768년) · 샤를마뉴의 롬바르드 왕국 정복 (774년) · 당나라 양세법 실시 (780년) · 바이킹의 린디스판 습격 (793년) · 일본 헤이안 시대 개막 (794년) · 샤를마뉴의 대관식 (800년) · 비잔티움 제국의 성상파괴 논쟁 · 이슬람 황금기의 전개 · 아바스 왕조의 학문과 문화 발전 · 당나라의 중앙집권체제 약화와 절도사 세력 성장 ·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 문화 교류 · 프랑크 왕국의 서유럽 지배 확대
한국사
성덕왕 즉위 (702년) · 발해의 대외관계 정비와 국가체제 발전 · 대조영 사망 및 무왕 즉위 (719년) · 신라 정전 지급 (722년) · 혜초의 인도 및 서역 순례 (8세기 전반) · 발해 무왕의 당나라 등주 공격 (732년) · 신라와 당나라의 협력에 의한 발해 공격 시도 (733년) · 경덕왕 즉위 (742년) · 불국사 석굴암 중창 (751년) · 경덕왕의 지방 행정구역 명칭 개편 (757년) · 혜공왕 즉위 (765년) · 성덕대왕신종 주조 (771년) · 김지정의 난 (780년) · 선덕왕 즉위 (780년) · 원성왕 즉위 (785년) · 독서삼품과 실시 (788년) · 발해 문왕의 중앙집권체제 정비 · 발해의 상경 용천부 천도와 대외교류 발전 · 강왕 즉위 (794년) · 소성왕 즉위 (798년) · 애장왕 즉위 (800년) · 통일신라의 불교문화 발전 · 불국사와 석굴암을 비롯한 불교 건축과 조각의 발전 · 신라 왕권과 귀족 세력 사이의 갈등 심화 ·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체제 지속
대표 인물
펠라요 · 아브드 알 라흐만 1세 · 카롤루스 마르텔 · 피핀 3세 · 샤를마뉴 · 측천무후 · 현종(당) · 감진 · 경덕왕 · 혜공왕 · 애장왕 · 대조영 · 무왕 · 문왕 · 알 사파흐 · 알 만수르 · 하룬 알 라시드 · 아부 무슬림 · 레오 3세 · 레오 3세 · 콘스탄티노스 5세 · 이리니 · 이사우리아 왕조 · 안록산 · 사사명 · 곽자의 · 양귀비 · 이백 · 두보 · 왕유 · 덕종(당) · 성덕왕 · 효성왕 · 김대성 · 혜초 · 선덕왕 · 원성왕 · 소성왕 · 정혜공주 · 정효공주 · 강왕 · 쇼무 덴노 · 고켄 덴노 · 간무 덴노 · 후지와라노 나카마로 · 아베노 나카마로 · 자야바르만 2세
알다시피 신라는 엄격한 골품제 사회였다. 그래서 아무리 무능한 병신들이라도 진골이기만 하면 높은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유교가 국가의 학문 중 하나였던 만큼 유교 경전으로 시험을 봤다. 그리고 등급은 상품, 중품, 하품으로 나뉘었다.
이런 사회적 문제를 막기 위해 독서삼품과가 실시되었다. 신라의 서울대라고 볼 수 있는 국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독서삼품과를 보았다.
'그래도 진골만이 진출할 수 있는 관직에는 6두품 따리들이 진출할 수 없었으니 유명무실했다!'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6두품들이 올라갈 수 없는 자리가 있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독서삼품과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실패했다는 식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
이론상으로는 6두품들이 올라갈 수 있는 자리라도 무능한 진골들이 독점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런 걸 어느 정도 완화해 준 것도 사실이다. 여하튼 골품제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했으나 독서삼품과는 훗날 고려에서 실시될 과거 제도의 프로토타입이 되었다. 후고구려와 고려에서도 이름만 바뀌어 비슷하게 실시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