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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ia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5월 27일 (수) 05:28 판 (새 문서: {{한국통사}}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4단원}} {{개화파}} {{심플/빛과어둠}} {{재평가}} {{토론}} {{수정전쟁}} {{선비}} {{정리}} {{빛}} {{어둠}} == 소개 == '''서광범'''은 조선 말기의 문신, 정치인, 개화파 인물이다. 한자로는 徐光範. 자는 서구, 호는 위산이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등과 함께 급진개화파로 활동했고, 갑신정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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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IV. 동아시아의 근대화 운동과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 5단원
개항
삼각 무역 · 아편 · 아편전쟁 · 임칙서 · 난징 조약 · 최혜국 대우 · 영사 재판권 · 애로호 사건 · 톈진 조약 · 베이징 조약
에도 막부 일본
쇄국 · 흑선내항 · 미일화친조약(최혜국 대우) · 미일수호통상조약(영사 재판권)
조선
흥선대원군(병인양요 · 신미양요) ·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영사 재판권)
베트남
제1차 사이공 조약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근대화
태평천국 운동 홍수전 · 신사(이홍장 · 한인 의용군)
양무운동 증국번 · 이홍장 · 중체서용 · 금릉 기기국 · 청일전쟁
일본 제국
메이지 유신 존왕양이 · 시모노세키 전쟁 · 대정봉환 · 폐번치현 · 사민평등 · 소학교령 · 청일수호조규 · 이와쿠라 사절단 · 정한론 · 류큐 병합
조선
개화 정책 통리기무아문 · 별기군 · 임오군란 · 온건 개화파 · 급진 개화파 · 갑신정변(청프전쟁 · 김옥균)
갑오개혁을미개혁 청일전쟁 · 태양력 · 단발령
국민 국가 일본 제국
자유민권운동 · 대일본제국 헌법
대한제국
을미사변 · 아관파천 · 광무개혁 · 대한국 국제 · 독립협회(만민공동회)
변법자강운동(캉유웨이 · 량치차오) · 무술정변 · 광서신정(흠정헌법대강) · 신해혁명(중국동맹회 · 중화민국 · 쑨원 · 위안스카이) · 중화제국
서구적 세계관 만국 공법(강화도 조약 · 거문도 사건) · 사회진화론(후쿠자와 유키치 · 변법자강운동 · 옌푸 · 천연론 · 유길준 · 윤치호 · 애국계몽운동)
신문
신보
일본 제국
마이니치 신문 · 요미우리 신문 · 아사히 신문
조선대한제국
한성순보 · 독립신문 · 황성신문 · 대한매일신보
근대 교육
경사대학당
일본 제국
소학교령 · 도쿄대학 · 교육칙어
조선대한제국
육영공원 · 교육입국조서
여성 인권 일본 제국
부인 교풍회
조선대한제국
여권통문
근대적 생활 방식
조계 · 상하이
일본 제국
요코하마 · 도쿄
조선대한제국
부산 · 인천 · 한성 · 경인선 · 경부선 · 경의선
제국주의 청일전쟁 동학농민운동 · 시모노세키 조약 · 삼국간섭
의화단 운동 백련교 · 의화단 · 신축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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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직후 영일동맹 · 21개조 요구 · 파리 강화 회의 · 베르사유 조약 · 5.4 운동 ·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한국 독립운동
민족자결주의 · 3.1 운동 · 대한민국 임시정부 · 봉오동 전투 · 의열단(김원봉) · 신간회
중국 민족운동
신문화 운동(천두슈 · 후스 · 5.4 운동 · 중국국민당 · 중국공산당 · 국공합작 · 5.30 운동 · 국민혁명군 · 북벌 · 4.12 상하이 쿠데타 · 북벌 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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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전후 홍군대장정 · 시안 사건 · 루거우차오 사건 · 국공합작 · 난징 대학살 · 장제스 · 조선의용대(김원봉 · 조선의용군) · 한국 광복군(임팔 전투 · 국내 진공 작전)
태평양 전쟁 추축국 · 진주만 공습 · 미드웨이 해전 ·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 무조건 항복
각종 전쟁범죄 국가총동원법 · 난징 대학살 · 삼광 작전 · 일본군 위안부 · 공출
반제·반전·평화 연대 아주 화친회(고토쿠 슈스이 · 판보이쩌우) · 안중근(동양평화론) · 박열 · 가네코 후미코 · 후세 다쓰지 · 동방 무정부주의자 연맹 · 일본 반제 동맹 · 일본 병사 반전 동맹
조선 말기의 개화파
사상·노선 개화파 · 개화사상 · 온건개화파 · 급진개화파 · 동도서기론 · 위정척사파 · 통상수교 거부정책
주요 인물 김옥균 · 박영효 · 서광범 · 홍영식 · 서재필 · 유길준 · 민영익 · 김윤식 · 어윤중 · 박규수 · 오경석 · 유홍기
관련 사건 강화도 조약 · 수신사 · 영선사 · 조사시찰단 · 보빙사 · 별기군 · 임오군란 · 갑신정변 · 갑오개혁 · 을미사변 · 아관파천
관련 국가·세력 조선 · 청나라 · 일본 제국 · 미국 · 러시아 제국 · 민씨 척족 · 흥선대원군 · 명성황후
관련 개념 개항 · 근대화 · 제국주의 · 불평등조약 · 친청파 · 친일파 · 친러파 · 대한제국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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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서광범조선 말기의 문신, 정치인, 개화파 인물이다. 한자로는 徐光範. 자는 서구, 호는 위산이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등과 함께 급진개화파로 활동했고, 갑신정변에 참여했다. 정변이 실패하자 일본으로 도망갔다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고, 훗날 갑오개혁 시기에 귀국해 법부대신으로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쉽게 말하면 구한말 개화파 중에서도 “조선은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걸 비교적 일찍 깨달은 인간이다. 문제는 이 양반이 활동하던 조선이 워낙 막장 서버라서, 패치 파일은 있는데 관리자 권한이 없고, 배포하려는 순간 청나라·일본·러시아가 옆에서 랜선 뽑는 상태였다.

김옥균처럼 화려하게 터진 인물은 아니고, 박영효처럼 후대에 욕을 많이 먹는 인물도 아니지만,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을 모두 연결하는 꽤 중요한 개화파 인물이다.

기본 정보

서광범
한자 徐光範
생몰 1859년 ~ 1897년
본관 대구 서씨
서구
위산
시호 익헌
시대 조선 후기, 대한제국 직전
성향 급진개화파
주요 사건 갑신정변, 갑오개혁, 을미사변, 아관파천
주요 관직 법부대신, 학부대신, 주미특명전권공사
관련 인물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민영익, 고종

한줄요약


조선판 해외파 개혁 엘리트였지만, 시대가 구한말이라 뭘 해도 정치 지뢰밭을 밟은 인물.

생애

서광범은 1859년에 태어났다. 본관은 대구이며,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서상익이다. 집안 자체는 조선 후기 기준으로 꽤 괜찮은 양반가였다.

일찍부터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의 영향을 받아 개화사상을 접했다. 이 라인은 조선 말기 개화파의 뿌리 같은 존재들이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조선이 바깥세상 돌아가는 꼴을 좀 봐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었다.

1880년 문과에 급제한 뒤 규장각, 홍문관, 승정원 등 여러 관직을 거쳤다. 그러니까 서광범은 그냥 거리에서 “개혁하자!” 외치던 운동권형 인물이 아니라, 조선 관료제 내부로 들어간 엘리트였다.

문제는 조선 관료제가 이미 썩을 대로 썩었다는 것. 좋은 머리로 들어갔는데 조직문화가 조선 후기였으니 숨이 턱 막혔을 것이다.

개화사상 형성

조선 말기의 개화파
사상·노선 개화파 · 개화사상 · 온건개화파 · 급진개화파 · 동도서기론 · 위정척사파 · 통상수교 거부정책
주요 인물 김옥균 · 박영효 · 서광범 · 홍영식 · 서재필 · 유길준 · 민영익 · 김윤식 · 어윤중 · 박규수 · 오경석 · 유홍기
관련 사건 강화도 조약 · 수신사 · 영선사 · 조사시찰단 · 보빙사 · 별기군 · 임오군란 · 갑신정변 · 갑오개혁 · 을미사변 · 아관파천
관련 국가·세력 조선 · 청나라 · 일본 제국 · 미국 · 러시아 제국 · 민씨 척족 · 흥선대원군 · 명성황후
관련 개념 개항 · 근대화 · 제국주의 · 불평등조약 · 친청파 · 친일파 · 친러파 · 대한제국


이 문서에서는 재평가를 받아야 하는 영웅이나 그런 대상을 다룹니다.
이 사람은 재평가되어야 하는 영웅입니다. 모두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위해 잠시 묵념합시다.
대표적으로 한국의 16강 진출을 두팔걷고 도와주신 한반두가 있습니다.

서광범은 여러 차례 해외를 다녀오며 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1882년에는 김옥균을 따라 일본을 시찰했고, 같은 해 박영효가 수신사로 일본에 갈 때 종사관으로 다시 일본에 갔다. 1883년에는 민영익이 이끄는 보빙사의 종사관으로 미국을 방문했고, 이후 유럽 각국도 둘러보았다.

이쯤 되면 당시 조선 사람 중에서는 세계 구경을 꽤 많이 한 축이다. 대부분의 조선 지배층이 성리학 책상머리에서 우주를 해석하고 있을 때, 서광범은 일본, 미국, 유럽을 직접 보고 온 것이다.

당연히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조선은 아직도 신분제, 성리학, 낡은 군대, 부패한 관료제에 묶여 있는데, 바깥세상은 철도, 전신, 근대 군대, 근대 학교, 공장, 의회, 법률 제도를 굴리고 있었다.

이걸 보고도 “역시 공자님 말씀이 최고다”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다.

갑신정변

주의. 수정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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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서광범은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홍영식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갑신정변은 급진개화파가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조선을 근대국가로 개혁하려 한 쿠데타였다. 개혁안만 놓고 보면 꽤 선진적인 내용이 있었다. 문벌 폐지, 신분제 개혁, 재정 일원화, 청에 대한 사대관계 청산 등은 당시 조선 기준으로는 거의 정치 핵폭탄이었다.

서광범은 정변으로 세워진 혁신내각에서 좌우영사 겸 우포장, 대리외무독판 등을 맡았다. 쉽게 말하면 군사·경찰·외교 쪽 실권을 쥔 핵심 인물이었다.

하지만 정변은 청나라 군대의 개입으로 3일 만에 끝났다. 그래서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라고 불린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힘이었다. 급진개화파는 조선을 바꾸고 싶었지만, 백성 기반도 약했고 군사력도 약했고 정치적 우군도 부족했다. 결국 일본 공사관 병력에 기대는 무리수를 뒀고, 청군이 들어오자 바로 무너졌다.

즉 서광범은 시대를 읽었지만, 판을 장악하지는 못했다.

망명 생활

이 문서에서 설명하는 대상이 존나 불쌍합니다...ㅠㅠ
광광 우럭따 8ㅅ8

갑신정변 실패 후 서광범은 일본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일본도 이들을 끝까지 책임져줄 생각은 별로 없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갑신정변이 실패하자 개화파 망명객들이 외교적 짐덩어리가 된 것이다.

결국 서광범은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갔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그가 미국에서 그냥 놀고먹은 게 아니라 실제로 현지 사회에 적응했다는 점이다.

그는 미국 동부의 뉴욕, 뉴저지, 워싱턴 등지에서 생활했고, 1892년에는 미국 시민권도 얻었다. 미국 정부 교육국에서 번역관으로 일했으며, 조선 교육과 조선 민담에 관한 글도 썼다.

구한말 개화파 중에서도 진짜 해외 생활을 해본 케이스다. 요즘 말로 치면 조선 왕조 출신 엘리트가 미국 망명 후 현지 취업까지 한 것이다. 다만 시대가 시대라 LinkedIn에 “Former Joseon reformist, currently Bureau of Education translator”라고 쓸 수는 없었다.

갑오개혁과 귀국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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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동학농민운동청일전쟁이 터지면서 조선 정국은 다시 뒤집혔다. 이 과정에서 서광범은 10년 만에 귀국했다.

그의 귀국은 순수한 환영 복귀라기보다는 복잡한 정치 계산의 결과였다. 일본은 조선에서 자기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갑신정변 출신 개화파를 활용하려 했고, 고종 역시 흥선대원군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이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서광범은 제2차 김홍집 내각에서 법부대신이 되었다. 여기서 그는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특히 재판소구성법을 제정해 사법을 행정에서 분리하려 했고, 법관양성소를 설치해 근대적 법관 양성 체계를 만들려 했다. 조선식으로 말하면 “수령이 행정도 하고 재판도 하고 세금도 걷고 다 해먹는 구조”를 깨려 한 것이다.

이건 꽤 중요한 개혁이다. 근대국가에서 사법 독립은 기본 중의 기본인데, 조선에는 그런 개념이 약했다. 서광범은 적어도 이 부분에서 근대국가의 방향을 알고 있었다.

동학농민운동 관련 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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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범은 법부대신이자 고등재판소 재판장으로 활동하면서 동학농민운동 관련 인물들의 재판에도 관여했다.

그는 탐관오리였던 조병갑 등을 처벌했다. 조병갑은 고부민란의 원인을 제공한 인물로, 쉽게 말하면 “동학농민운동 트리거를 당긴 부패 관리”다. 이런 놈을 처벌한 것은 분명히 개혁적 조치였다.

하지만 동시에 서광범은 전봉준, 손화중, 최경선, 김덕명 등 동학농민운동의 주요 지도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 부분에서 평가가 복잡해진다. 탐관오리를 처벌한 것은 빛이다. 그런데 농민군 지도자도 처형했다. 개화파가 민중혁명 세력이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개혁하려던 엘리트 관료 세력이었다는 점이 여기서 드러난다.

서광범에게 동학농민군은 부패한 조선을 뒤엎으려 한 민중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국가 질서를 흔든 반란 세력이기도 했다. 구한말은 진짜 누구 편 들기도 피곤한 시대다.

을미사변 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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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났다. 일본 세력이 궁궐에 난입해 명성황후를 살해한 사건이다.

서광범이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했다는 확실한 증거는 약하다. 하지만 문제는 사건 이후에도 그가 내각에 남아 있었고, 명성황후를 폐위하는 조칙에 서명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서광범은 을미사변 관련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직접 칼 들고 들어간 사람은 아니더라도, 사건 이후 정치적으로 책임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여기서 서광범의 평가가 많이 깎인다. 사법제도를 근대화하려 한 개혁가가 왕비 폐위 조칙에 서명했다? 이건 그냥 “시대가 혼란스러웠다”로만 넘어가기 어렵다.

물론 당시 정국은 일본, 고종, 개화파, 친러파, 대원군 세력이 뒤엉킨 난장판이었다. 그래도 정치인은 혼란 속에서 한 선택으로 평가받는 법이다.

주미공사와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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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광 우럭따 8ㅅ8

1895년 말 서광범은 주미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어 미국으로 갔다.

이걸 두고 해석이 갈린다. 하나는 그가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사실상 밀려났다는 해석이다. 또 하나는 본인이 미국행을 원했다는 해석이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그는 조선 정치의 중심에서 멀어졌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친일 개화파 내각이 무너지자 서광범도 공사직에서 해임되었다. 귀국하면 안전을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그는 미국에 남았다.

그리고 1897년, 폐병이 악화되어 미국에서 사망했다. 아직 마흔도 되지 않은 나이였다.

인생 전체를 보면 꽤 씁쓸하다. 조선을 바꾸려 했고, 실패해서 망명했고, 미국에서 살다가 다시 조선에 돌아와 개혁을 했지만, 또 정쟁에 휘말리고 다시 미국에서 죽었다. 구한말 엘리트 개혁가의 비극적 표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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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직접 본 개화파

서광범은 일본, 미국, 유럽을 직접 보고 온 인물이었다.

당시 조선에서 이 정도로 세계를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조선 지배층이 책상머리 성리학과 중국 중심 세계관에 갇혀 있을 때, 서광범은 실제 국제질서를 눈으로 확인했다.

그래서 그의 개화론은 단순한 상상이 아니라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법제도 개혁

서광범의 가장 큰 업적은 갑오개혁 시기 사법제도 개혁이다.

재판소구성법 제정, 법관양성소 설치 등은 근대적 사법 체계를 만들려는 시도였다. 조선의 낡은 행정·사법 혼합 구조를 깨고, 법에 따른 재판 시스템을 만들려 한 것이다.

이건 진짜 중요하다. 나라가 근대국가가 되려면 군대와 공장만 필요한 게 아니다. 법원, 법관, 절차, 권리, 행정 분리가 있어야 한다. 서광범은 이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탐관오리 처벌

동학농민운동의 원인을 제공한 탐관오리들을 처벌한 점도 평가할 만하다.

조선 후기 백성들이 왜 들고일어났는지 생각하면, 부패 관리 처벌은 너무 늦었지만 필요한 일이었다. 조병갑 같은 인간들이 멀쩡히 살아남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이미 신뢰가 끝난 것이다.

미국 망명 생활에서의 적응력

서광범은 미국 망명 중에도 현지 사회에 적응했다.

미국 시민권을 얻고, 미국 정부 기관에서 번역관으로 일하고, 조선 관련 글을 발표했다. 이건 단순 도피객이 아니라 국제 감각을 가진 지식인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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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신정변의 한계

서광범은 갑신정변의 핵심 인물이었다. 갑신정변의 개혁안은 선진적이었지만, 방식은 쿠데타였다.

문제는 쿠데타를 할 만큼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백성 기반도 없고, 군사력도 부족하고, 일본 지원도 불안정했다. 결국 청군이 개입하자 3일 만에 무너졌다.

방향은 맞았지만 방법은 무모했다. 조선을 바꾸려 했는데, 결과적으로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 명분만 더 키웠다.

일본 의존 문제

급진개화파 전체의 약점이지만, 서광범도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청나라 간섭에서 벗어나려고 일본을 활용하려 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일본이 조선의 자주독립을 도와줄 순수한 친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일본은 자기 이익을 위해 조선을 이용하려 했다.

개화파는 이걸 너무 낭만적으로 봤거나,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좋지 않았다.

동학농민군 지도자 사형 판결

서광범은 탐관오리를 처벌했지만, 동시에 동학농민군 지도자들에게도 사형을 선고했다.

법과 국가질서 관점에서는 반란 지도자 처벌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중사 관점에서는 부패한 국가에 맞선 농민 지도자들을 처형한 것이기도 하다.

이 지점에서 서광범은 “민중 편의 혁명가”가 아니라 “국가를 근대화하려 한 엘리트 관료”였음이 드러난다.

을미사변 이후 행적

을미사변에 직접 가담했다는 단정은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사건 이후 내각에 남아 있었고, 명성황후 폐위 조칙에 서명했다는 점은 분명히 비판받을 부분이다. 개혁가라 해도 권력의 더러운 결정에 서명하면 책임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 부분 때문에 서광범의 평가는 깔끔하게 “좋은 개화파”로 정리되지 않는다.

서광범과 김옥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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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범은 김옥균과 함께 급진개화파의 핵심이었다.

김옥균이 갑신정변의 얼굴마담 겸 주도자 이미지가 강하다면, 서광범은 외교·군사·법제 쪽에서 실무 감각을 가진 인물에 가깝다. 둘 다 일본을 모델로 삼았고, 청나라 간섭을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김옥균은 갑신정변 실패 후 결국 암살당했고, 서광범은 미국 망명과 갑오개혁 참여를 거쳐 다시 정치 무대에 섰다. 즉 김옥균이 “실패한 혁명가” 이미지라면, 서광범은 “망명 후 돌아온 개혁 관료” 이미지가 강하다.

서광범과 박영효

박영효와 서광범은 갑신정변과 갑오개혁에서 모두 연결된다.

둘 다 급진개화파였고, 둘 다 일본과 가까운 노선을 탔다. 갑오개혁 시기에는 박영효가 내부대신으로 행정개혁을, 서광범이 법부대신으로 사법개혁을 추진했다.

다만 박영효는 훗날 친일 행적으로 평가가 크게 나빠졌다. 서광범은 박영효만큼 길게 살아 정치적 흑화 루트를 밟지는 않았지만, 을미사변 이후 행적 때문에 논란이 있다.

서광범과 서재필

서재필과 서광범은 둘 다 갑신정변 실패 후 미국으로 건너간 개화파 인물이다.

서재필은 미국에서 의사가 되었고, 훗날 귀국해 독립신문독립협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반면 서광범은 미국 시민권을 얻고 정부기관에서 일하다가 갑오개혁 시기 귀국해 내각에서 활동했다.

둘 다 미국 경험을 가진 개화파였지만, 귀국 후 활동 방식은 달랐다. 서재필은 언론과 시민운동 쪽에 가까웠고, 서광범은 내각 관료로서 제도 개혁에 가까웠다.

평가


서광범은 단순히 빨기도, 까기도 애매한 인물이다.

개화파로서 세계 정세를 읽고 조선의 근대화를 추진한 점은 분명히 평가할 만하다. 특히 사법제도 개혁은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시도였다.

하지만 갑신정변의 무모함, 일본 의존, 동학농민군 지도자 처형, 을미사변 이후 행적은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서광범은 근대화의 필요성을 알았지만, 구한말의 더러운 정치판에서 완전히 깨끗하게 움직이지는 못한 개화파 관료라고 볼 수 있다.

조선이 멀쩡한 나라였다면 유능한 개혁 관료로 남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하필 그가 활동한 곳은 조선 말기였다. 거기는 개혁을 하려면 외세를 끌어들여야 하고, 외세를 끌어들이면 매국 논란이 생기고, 가만히 있으면 나라가 망하는 지옥 난이도 서버였다.

관련 사건

관련 인물

관련 문서

여담

서광범은 미국 시민권을 얻은 초기 한국계 인물 중 하나로도 언급된다. 그래서 단순 조선 관료라기보다 초기 한인 디아스포라 역사와도 약간 연결된다.

또한 그의 삶은 개화파의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다. 세계를 봤고, 조선을 바꾸려 했고, 제도 개혁에도 참여했다. 그런데 쿠데타, 망명, 외세 의존, 정쟁, 을미사변 논란까지 전부 밟았다.

말 그대로 구한말 풀코스다. 이런 시대에 정치하면 멘탈이 남아나는 게 이상하다.

결론

이 문서(은)는 너무 병신같아서 정리되었습니다.

서광범은 조선 말기 급진개화파의 핵심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해외 경험을 통해 근대화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갑신정변에 참여했으며, 미국 망명 후 다시 귀국해 갑오개혁에서 사법제도 개혁을 추진했다. 이 점에서는 분명히 근대적 감각을 가진 개혁가였다.

하지만 그의 행적은 깨끗하지만은 않다. 갑신정변은 무모했고, 일본 의존은 위험했고, 동학농민군 처형과 을미사변 이후 행적은 비판의 여지가 크다.

그래서 서광범은 영웅도 매국노도 아닌, 구한말이라는 최악의 시대가 만들어낸 복잡한 개화파 인물이다.

조선을 고치려 했지만, 조선이라는 환자가 이미 너무 늦게 병원에 온 상태였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