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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2015 개정 교육과정 동아시아사
3단원 IV. 동아시아의 근대화 운동과 반제국주의 민족 운동 5단원
개항
삼각 무역 · 아편 · 아편전쟁 · 임칙서 · 난징 조약 · 최혜국 대우 · 영사 재판권 · 애로호 사건 · 톈진 조약 · 베이징 조약
에도 막부 일본
쇄국 · 흑선내항 · 미일화친조약(최혜국 대우) · 미일수호통상조약(영사 재판권)
조선
흥선대원군(병인양요 · 신미양요) · 운요호 사건 · 강화도 조약(영사 재판권)
베트남
제1차 사이공 조약 ·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근대화
태평천국 운동 홍수전 · 신사(이홍장 · 한인 의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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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 존왕양이 · 시모노세키 전쟁 · 대정봉환 · 폐번치현 · 사민평등 · 소학교령 · 청일수호조규 · 이와쿠라 사절단 · 정한론 · 류큐 병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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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권운동 · 대일본제국 헌법
대한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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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개화파조선 말기 서양 문물과 근대 제도를 받아들여 나라를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한 정치·사상 세력이다.

쉽게 말하면 “야, 우리 이대로 가면 진짜 뒤진다. 서양 기술이든 일본 제도든 뭐든 배워서 나라 뜯어고치자”라고 외친 사람들이다.

반대편에는 위정척사파가 있었다. 위정척사파가 “서양 오랑캐 꺼져라, 성리학 질서 지켜라” 쪽이었다면, 개화파는 “성리학으로 대포 못 막는다. 일단 기술부터 배워라” 쪽이었다.

물론 개화파라고 다 같은 놈들은 아니었다. 청나라식 점진 개혁을 참고하자는 온건개화파도 있었고, 일본의 메이지 유신처럼 확 갈아엎자는 급진개화파도 있었다. 그리고 이 중 일부는 나중에 일본과 너무 가까워지면서 친일파 루트로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개화파는 “선각자”라고 빨기에도 애매하고, “친일 매국노”라고 한 방에 묶어 까기에도 애매하다. 조선이 망해가던 시기에 뭘 해보려 한 사람들도 있었고, 자기 출세길 찾다가 외세에 기대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한줄요약


조선을 근대국가로 고쳐보려던 사람들인데, 방법은 서툴렀고, 기반은 약했고, 일부는 일본 냄새가 너무 났다.

배경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매우 Deep♂Dark 합니다.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너무나도 어두워서 다 읽기 위해선 플래시와 태양권이 필요합니다. 행운을 빕니다.

19세기 조선은 이미 상태가 많이 안 좋았다.

세도정치로 중앙 권력은 썩었고, 지방에서는 수령과 아전들이 백성 등골을 뽑아먹었다. 군대는 낡았고, 상공업은 약했고, 국가 재정은 빈약했다. 밖에서는 청나라아편전쟁으로 털리고, 일본쿠로후네 사건 이후 개항해 메이지 유신으로 국가를 갈아엎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은 아직도 성리학 명분론에 매달렸다. 나라 꼴은 불타는 집인데, 집 안에서는 “공자님 말씀에 따르면 불을 예의 있게 꺼야 한다”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지식인과 관료들은 위기감을 느꼈다. 이들은 서양의 군사기술, 과학, 산업, 외교 제도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봤다. 이들이 바로 개화파다.

개화파의 기본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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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의 주장은 대략 이랬다.

  • 서양 과학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
  • 군대를 근대식으로 개편해야 한다.
  • 상공업을 육성해야 한다.
  • 근대식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 신분제와 낡은 제도를 고쳐야 한다.
  • 외국과 외교·통상을 하며 국제질서를 배워야 한다.
  • 청나라에만 기대지 말고 자주적인 근대국가를 만들어야 한다.

말만 보면 맞는 말 대잔치다. 문제는 조선이라는 시스템이 이걸 감당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는 것. 더 큰 문제는 개화파 본인들도 대중적 기반, 군사력, 정치력, 외교 감각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즉 방향은 맞았는데 실행력이 부족했다. 지도는 들고 있었는데 차가 똥차였고 운전도 서툴렀다.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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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건개화파

온건개화파는 청나라의 양무운동을 참고해 점진적으로 개혁하자는 세력이었다.

대표적으로 김윤식, 어윤중 등이 있다. 이들은 “동도서기”를 내세웠다. 동양의 도덕과 질서는 지키되, 서양의 기술은 받아들이자는 입장이다.

말 자체는 그럴싸하다. “정신은 조선, 기술은 서양” 같은 느낌이다. 문제는 조선의 정신이라는 게 이미 성리학 명분론에 너무 절어 있었다는 점이다.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기술만 얹으면 근대화가 되냐는 의문이 있다.

그래도 온건개화파는 현실 정치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었다. 급진개화파처럼 쿠데타 한 방으로 나라를 갈아엎겠다는 식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급진개화파

급진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본받아 조선을 빠르게 근대화하자고 주장한 세력이다.

대표 인물은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있다.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신분제와 낡은 정치제도를 뜯어고치려 했다.

방향만 보면 꽤 선명했다. 문제는 방법이 너무 급했다. 이들은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켜 정권을 잡으려 했지만, 3일 만에 실패했다. 그래서 갑신정변은 흔히 “삼일천하”라고 불린다.

급진개화파는 조선의 낡은 구조를 잘 봤지만, 조선 사회를 움직일 힘이 없었다. 백성 기반도 약했고, 군사력도 부족했고, 일본 공사관에 너무 기대었다. 그러니 명분은 근대화였는데 현실은 외세 의존 쿠데타가 되어버렸다.

주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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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

급진개화파의 대표주자.

조선이 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고 일본식 근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봤다. 머리는 좋았고 위기의식도 강했다. 하지만 일본을 너무 믿었다. 이게 치명적이었다.

갑신정변 실패 후 일본으로 망명했고, 이후 상하이에서 암살당했다. 그의 시신은 조선으로 돌아와 능지처참당했다. 조선 후기 정치판은 진짜 살벌했다. 패배하면 그냥 정치적 은퇴가 아니라 신체 분해 서비스까지 들어갔다.

박영효

급진개화파 인물. 갑신정변에 참여했고, 태극기를 처음 사용한 인물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다.

하지만 훗날 친일 행적 때문에 평가가 많이 깎인다. 개화파가 무조건 친일파는 아니지만, 박영효 같은 인물 때문에 “개화파 = 친일파 아니냐?”라는 인식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초반에는 개혁가였고, 후반에는 일본과 너무 가까워진 인물. 말 그대로 구한말식 흑화 루트다.

서광범

급진개화파의 핵심 인물 중 하나. 갑신정변에 참여했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다른 급진개화파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근대적 제도 개혁에 관심이 많았다. 다만 조선 정치의 현실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한계는 공유한다.

홍영식

우정총국 설립과 관련된 인물로, 갑신정변 때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갑신정변이 실패하면서 살해되었다. 급진개화파 중에서도 비교적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물이다.

김윤식

온건개화파 인물. 청나라와의 관계 속에서 점진적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급진개화파처럼 일본에 확 기대는 방식은 아니었고, 청나라식 양무운동에 가까운 개혁을 생각했다. 그래서 현실적이긴 했지만, 청나라 의존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어윤중

온건개화파 계열 인물. 재정 개혁과 경제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구한말 인물 중에서 비교적 실무 감각이 있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몇 명 있다고 조선이라는 거대한 낡은 기계가 바로 돌아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개화파와 관련된 사건


구한말 발생했던 사건/사고
1864년 흥선대원군 집권, 고종 즉위
1865년 경복궁 중건
1866년 병인박해 · 명성황후 간택 · 제너럴 셔먼호 사건 · 당백전 발행 · 병인양요
1868년 일본 제국 선포 · 메이지 유신 · 오페르트 도굴사건
1871년 서원 철폐 · 신미양요 · 척화비 설립
1874년 흥선대원군 실각 · 순종 탄생
1875년 운요호 사건
1876년 강화도 조약 · 쇄국정책 종료 · 개항 · 제1차 수신사 파견(김기수)
1880년 제2차 수신사 파견(김홍집) · 통리기무아문 설치
1881년 조사 시찰단 파견 · 별기군 설치 · 영선사 파견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 태극기 제작 · 임오군란 ·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 · 흥선대원군 납치 · 제물포 조약
1883년 태극기 국기 지정 · 보빙사 파견 · 조일통상장정 · 서기 최초 소개
1884년 조로수호통상조약 · 갑신정변
1885년 한성조약 · 거문도 사건 · 배재학당 설립 · 이토 히로부미 취임
1886년 이화학당 설립 · 조불수호통상조약 · 가톨릭 허용 · 육영공원 설립
1887년 경복궁 전등 설치
1889년 조병식, 방곡령 시행
1892년 교조신원운동
1893년 보은집회 · 조병갑 취임
1894년 동학농민운동 · 일본군 경복궁 점령 · 청일전쟁 · 갑오개혁
1895년 을미사변 · 을미개혁 · 태양력 도입 · 춘생문 사건
1896년 건양 연호 개원 · 아관파천 · 독립협회 창설 · 덕수궁에 최초의 전화기 설치
1897년 고종 환궁 · 숭실학당 설립 · 광무개혁 · 대한제국 선포
1898년 황국협회 설립 · 관민공동회 · 만민공동회(헌의 6조) · 독립협회 강제해산
1899년 경인선 개통 · 대한국 국제 반포
1900년 만국우편연합 가입 · 서울-인천 전화 개통
1901년 신축민란
1902년 제1차 영일동맹 · 최초의 미국 이민
1904년 러일전쟁 · 한일의정서 · 제1차 한일 협약 · 일진회 설립
1905년 보성전문학교 개교 · 가쓰라 태프트 밀약 · 제2차 영일동맹 · 포츠머스 조약 · 경의선 개통 · 을사늑약
1906년 조선통감부 설치
1907년 국채보상운동 · 이완용 취임 · 헤이그 특사 · 고종 강제폐위 · 순종 즉위 · 정미조약(군대해산)
1908년 더럼 스티븐스 암살
1909년 기유각서 · 남한 대토벌 · 이토 히로부미 사살 · 이완용 암살미수
1910년 한일합방(경술국치) · 조선총독부 설치

강화도 조약

1876년 운요호 사건 이후 조선은 일본과 강화도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조선이 근대 국제질서에 끌려나온 사건이지만, 동시에 불평등조약이었다. 일본은 서양에게 당한 방식을 그대로 조선에게 써먹었다. 맞고 배운 놈이 더 악랄하게 때린 케이스다.

강화도 조약 이후 조선 내부에서는 외국 문물과 제도를 배워야 한다는 분위기가 일부 생겼고, 개화파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수신사 파견

조선은 일본에 수신사를 파견해 일본의 근대화 상황을 살펴보게 했다.

여기서 일부 조선 지식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일본이 예전의 일본이 아니었던 것이다. 조선 입장에서 일본은 임진왜란의 기억 속 야만적인 왜놈 이미지가 강했는데, 막상 가보니 철도, 군대, 공장, 근대 제도를 갖춘 국가로 바뀌고 있었다.

이 충격이 개화파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영선사 파견

조선은 청나라에도 영선사를 파견해 근대 무기 제조와 군사기술을 배우려 했다.

이건 온건개화파의 노선과 연결된다. 일본만 볼 게 아니라 청나라의 양무운동도 참고하자는 것이다. 다만 청나라 자체도 이미 서양 열강에게 얻어맞고 있던 상태라, 조선이 배울 수 있는 모델로는 한계가 있었다.

별기군 창설

개화 정책의 하나로 근대식 군대인 별기군이 만들어졌다.

문제는 기존 구식 군대가 차별받는다고 느꼈다는 점이다. 신식 군대에는 월급과 장비를 챙겨주면서, 구식 군대는 밀린 급료도 제대로 안 줬다. 그러니 분노가 쌓였다.

이게 훗날 임오군란의 원인 중 하나가 된다. 근대화도 돈과 인사관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신식이니까 좋은 거임” 하고 기존 조직을 방치하면 바로 터진다. 회사에서도 똑같다. 신사업부만 챙기고 기존 운영팀 굶기면 사내 쿠데타 난다.

임오군란

1882년 구식 군인들의 불만이 폭발한 사건이다.

임오군란으로 개화 정책은 큰 타격을 받았고, 흥선대원군이 잠시 재등장했다. 그러나 청나라가 개입해 대원군을 납치하면서 조선에 대한 청의 영향력은 더 강해졌다.

이 사건은 조선이 얼마나 허약했는지 보여준다. 내부 군사 반란 하나를 스스로 수습하지 못하고 외국 군대가 들어와 정리했다. 이쯤 되면 자주독립국이라기보다는 국제정치 샌드백이다.

갑신정변

주의. 수정전쟁이 자주 일어나는 문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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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정변이다.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은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이용해 정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들은 청나라의 간섭을 배제하고, 신분제 개혁과 근대적 제도 개혁을 추진하려 했다.

하지만 일본의 지원은 애매했고, 청나라 군대가 개입하면서 정변은 3일 만에 실패했다. 그래서 갑신정변은 “삼일천하”라고 불린다.

갑신정변은 평가가 복잡하다. 개혁안만 보면 꽤 근대적이었다. 하지만 방식은 쿠데타였고, 일본에 의존했다. 그리고 백성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방향은 미래였는데 실행은 너무 조급했다.

갑오개혁

1894년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을 배경으로 추진된 개혁이다.

갑오개혁은 신분제 폐지, 과거제 폐지, 근대적 행정제도 도입 등 조선 사회를 크게 바꾼 개혁이었다. 개화파의 문제의식이 상당 부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갑오개혁도 일본의 영향 아래 진행되었다는 한계가 있다. 조선이 스스로 개혁을 밀어붙였다기보다는, 외세 압박 속에서 떠밀려 한 측면이 컸다.

개화파의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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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가 원한 개혁은 대략 이런 방향이었다.

  •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 축소 또는 폐지
  • 왕권 중심의 근대 정부 수립
  • 신분제 개혁
  • 문벌 폐지
  • 근대식 군대 양성
  • 근대식 학교 설립
  • 근대 산업과 상공업 육성
  • 근대적 조세제도 확립
  • 외국과의 통상 확대
  • 우편, 교통, 통신 제도 도입

일부 개혁안은 지금 보면 당연한 내용이다. 그런데 당시 조선에서는 당연하지 않았다. “양반 특권 줄이자”는 말만 해도 기득권 입장에서는 빨갱이보다 더 위험한 소리였다. 물론 그 시대에 빨갱이는 아직 없었지만 느낌은 대충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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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읽었다

개화파의 가장 큰 장점은 세계가 바뀌고 있다는 걸 봤다는 점이다.

서양 열강은 이미 산업화와 근대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찢고 있었고, 일본은 빠르게 근대국가로 변신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조선이 계속 성리학 명분론만 붙잡고 있으면 망한다는 걸 개화파는 알았다.

이건 맞았다. 너무 맞아서 문제였다. 맞는 말을 너무 약한 힘으로 했다.

근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개화파는 군대, 산업, 교육, 행정, 외교 전반의 개혁을 주장했다.

조선이 진짜 살아남으려면 이런 개혁이 필요했다. 특히 신분제와 문벌 중심 구조를 깨고, 실무형 관료와 근대식 군대를 키웠어야 했다.

늦었지만 방향은 맞았다.

청나라 의존에서 벗어나려 했다

급진개화파는 조선이 청나라의 속국처럼 취급받는 현실을 싫어했다.

이들은 조선이 자주독립국이 되어야 한다고 봤다. 실제로 갑신정변 개혁안에도 청에 대한 사대관계 청산 의식이 들어 있었다.

물론 일본에 기대서 청을 벗어나려 한 건 문제였다. 청나라 늪에서 나오려고 일본 악어 등에 올라탄 셈이다.

근대 제도 도입의 씨앗을 뿌렸다

우정총국, 신식 군대, 근대식 교육, 해외 시찰 등은 모두 개화파와 연결된다.

비록 성과는 제한적이었지만, 조선 내부에 “이대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퍼뜨렸다. 조선이 너무 늦게 움직였을 뿐, 개화파의 문제의식 자체는 구한말 개혁의 출발점이었다.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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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기반이 약했다

개화파의 가장 큰 약점은 백성 기반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양반 출신 엘리트였고, 개혁도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방식이었다. 백성들에게 “우리가 왜 개화해야 하는가”를 설득하지 못했다.

그러니 갑신정변 같은 일이 벌어져도 백성들이 “우리 개혁 정부를 지키자!” 하고 나서지 않았다. 그냥 궁궐 안 높은 양반들끼리 또 뭔가 싸우는구나 했을 가능성이 크다.

외세 의존

급진개화파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일본 의존이었다.

당시 청나라의 간섭을 벗어나려면 외부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일본은 자선단체가 아니었다. 일본은 자기 이익을 위해 조선을 이용할 생각이었지, 조선의 자주독립을 순수하게 도와줄 생각이 없었다.

개화파 일부는 이걸 너무 늦게 알았거나, 알고도 무시했다. 그래서 평가가 꼬인다.

쿠데타 방식

갑신정변은 개혁적 목표를 내세웠지만 방식은 쿠데타였다.

물론 당시 조선 정치 구조에서 정상적인 절차로 개혁하기 어려웠다는 반론도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쿠데타를 하려면 성공할 힘이라도 있어야 한다. 힘도 없는데 쿠데타를 하면 그냥 나라만 더 혼란스러워진다.

갑신정변은 조선의 낡은 질서를 흔들었지만, 동시에 청나라와 일본의 개입 명분을 키웠다.

일부 인물의 친일화

개화파 전체를 친일파라고 하는 건 부정확하다.

하지만 일부 개화파 인물이 훗날 일본과 너무 가까워졌고, 친일 행적을 보인 것도 사실이다. 특히 박영효 같은 인물은 평가가 매우 복잡하다.

이 때문에 개화파는 “근대화의 선각자”와 “친일의 씨앗”이라는 두 이미지가 동시에 붙어 있다. 사실 둘 다 어느 정도 맞다. 구한말은 원래 깔끔하게 분류가 안 되는 시대다.

개화파 vs 위정척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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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와 위정척사파는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노선 대립이다.

구분 개화파 위정척사파
기본 입장 서양 문물 수용 서양 문물 배척
목표 근대화, 부국강병 성리학 질서 수호
대외관 통상과 외교 필요 외세와 화친 반대
장점 시대 변화 인식 외세 침략 경계
단점 외세 의존, 대중 기반 약함 현실 인식 부족, 근대화 지연

개화파가 무조건 맞고 위정척사파가 무조건 틀렸다고 보기도 어렵다. 위정척사파는 서양 제국주의의 위험을 봤다. 그건 맞았다. 그런데 대안이 너무 성리학이었다. 대포 앞에서 예법 들고 나간 셈이다.

개화파는 근대화의 필요성을 봤다. 그건 맞았다. 그런데 외세를 너무 쉽게 믿었고, 백성 기반이 약했다. 엔진 바꾸자고 했는데 정작 차키는 일본에게 맡긴 꼴이다.

둘 다 일부는 맞았고, 둘 다 크게 틀렸다. 그래서 조선이 망했다.

개화파와 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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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은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펼쳤고, 서양 세력과의 통상을 거부했다. 그래서 개화파와 반대편에 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하지만 흥선대원군도 단순히 서양 문물을 전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문제는 외세를 막는 쪽에 훨씬 무게를 둔 것이다. 대원군은 “일단 문 닫고 내부 정리”였고, 개화파는 “문 열고 배우면서 바꾸자”였다.

둘 다 조선을 살리려 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방법이 달랐다. 그리고 둘 다 완전히 성공하지 못했다.

개화파와 명성황후 세력

개화파와 명성황후 세력의 관계도 복잡하다.

명성황후와 민씨 세력은 흥선대원군을 견제하기 위해 개화 정책을 일부 활용했다. 하지만 이들이 진짜 근대국가 건설을 일관되게 추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청나라, 일본, 러시아 사이에서 권력 유지를 위해 외세를 끌어들인 측면이 강했다.

개화파 입장에서는 민씨 정권이 답답했을 것이다. 그런데 개화파 역시 일본에 기대는 한계를 보였다. 결국 구한말 조선 정치판은 “외세 안 끌어들이면 권력 유지가 안 되고, 외세 끌어들이면 나라가 털리는” 지옥의 선택지였다.

개화파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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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 특히 급진개화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강하게 참고했다.

당시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근대화에 성공한 사례처럼 보였다. 조선 지식인 입장에서 일본은 충격적인 모델이었다. “쟤네도 동양인데 저렇게 바뀌었네?”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본이 조선의 선생님으로만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점점 제국주의 국가가 되었고, 조선을 자기 영향권에 넣으려 했다. 그래서 일본을 모델로 삼은 개화파 일부는 나중에 역사적 평가가 매우 나빠졌다.

일본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일본에게 기대야 한다는 것은 다르다. 개화파의 일부는 이 선을 제대로 못 지켰다.

개화파는 친일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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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게 말하면 아니다.

조금 길게 말하면 일부는 맞고, 전체는 아니다.

개화파는 조선의 근대화를 주장한 세력이다. 이들 중 일부는 일본을 모델로 삼았고, 일부는 실제로 일본에 의존했다. 나중에 친일 행적을 보인 인물도 있다. 그래서 친일 논란이 생긴다.

하지만 개화파 전체를 친일파라고 하면 너무 거칠다. 당시 조선에서 근대화 모델로 참고할 만한 가까운 나라가 일본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일본을 배운다는 것 자체가 곧 매국은 아니다.

문제는 일본을 배우는 선에서 멈추지 못하고, 일본의 힘으로 조선 정치를 뒤집으려 하거나, 훗날 일본 제국주의에 협력한 경우다. 그때부터는 비판받아야 한다.

즉 개화파는 “친일파 집단”이 아니라, “근대화를 추구했지만 일본과의 거리 조절에 실패한 인물이 섞인 집단”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

평가


개화파는 조선 말기의 비극을 그대로 보여주는 세력이다.

이들은 조선이 망해간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바뀌어야 한다고 외쳤다. 이 점에서는 선각자였다.

하지만 개화파는 조선을 실제로 바꿀 힘이 없었다. 백성 기반은 약했고, 정치 기반도 약했고, 군사력도 약했다. 그래서 외세에 기대려 했고, 그 외세가 일본이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개화파를 너무 빨면 “조선을 살릴 뻔한 천재들”이 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깔끔하지 않다. 반대로 너무 까면 “친일 매국노들”이 되지만, 그것도 너무 단순하다.

정확히 말하면 개화파는 방향은 대체로 맞았지만, 방법과 기반이 처참하게 부족했던 조선 말기의 엘리트 개혁세력이다.

관련 인물

관련 사건

관련 문서

여담

개화파는 현대 정치로 치면 “개혁파 엘리트”에 가깝다. 문제는 엘리트인데 대중 기반이 없었고, 개혁파인데 실행 전략이 빈약했고, 국제정세를 읽었지만 외세의 속셈은 충분히 못 읽었다.

그래서 개화파 문서를 읽을 때는 “누가 옳았냐”보다 “왜 조선은 어떤 선택을 해도 망하는 방향으로 흘렀냐”를 보는 게 더 중요하다.

조선 말기는 그냥 선악 구도로 보면 재미는 있는데 이해는 안 된다. 대원군도 일부 맞았고, 개화파도 일부 맞았고, 위정척사파도 일부 맞았다. 그런데 각각 틀린 부분이 너무 치명적이었다.

결국 조선은 문 닫아도 못 살고, 문 열어도 못 사는 상태였다. 개화파는 그 막장 서버에 패치를 넣으려 한 개발자들이었는데, 권한도 없고 테스트 환경도 없고 배포하다가 외부 해커에게 서버를 뺏긴 꼴이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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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파는 조선을 살릴 가능성을 본 사람들이다.

근대화의 필요성을 알았고, 군대·교육·산업·외교·행정 개혁을 주장했다. 이 점에서는 분명히 시대를 앞서갔다.

하지만 이들은 조선 사회를 움직일 힘이 부족했다. 대중을 설득하지 못했고, 기득권을 제압하지 못했고, 외세와의 거리 조절에도 실패했다. 특히 급진개화파의 일본 의존은 두고두고 비판받을 부분이다.

그래서 개화파는 영웅도 아니고 매국노 집단도 아니다.

망해가는 조선에서 정답 비슷한 걸 봤지만, 정답을 실행할 힘은 없었던 사람들이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