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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예술 사조

시대 구분은 둘러보기 편의를 위한 대략적인 분류이며, 여러 예술 사조의 활동 시기와 영향 관계는 서로 겹칠 수 있다.

미래주의(未來主義, Futurism, 이탈리아어: Futurismo)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아방가르드 예술·문학·사상 운동이다. 1909년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가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에 발표한 미래주의 선언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등장했으며, 과거의 전통과 고전문화에 대한 숭배를 걷어차고 속도, 기계, 자동차, 도시, 공장, 전기, 비행기, 전쟁, 젊음, 폭력적인 변화 같은 당시 근대문명의 요소를 새로운 미학으로 찬양했다.[1][2]

쉽게 말하면

“르네상스? 고대 로마? 박물관? 아 씨발 좀 그만 보고 자동차 엔진이나 보라고.”

를 예술운동으로 만든 것에 가깝다.

당시 이탈리아는 르네상스와 고대 로마의 유산으로 유명했지만 미래주의자들은 오히려 그것 때문에 나라 전체가 과거에 처박혀 있다고 봤다. 박물관, 고전, 전통, 학문적 권위를 죄다 낡은 짐짝 취급하고 산업화된 현대도시와 기계문명이 인간의 감각과 예술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2]

대표 인물로는 창시자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를 비롯해 움베르토 보초니, 자코모 발라, 카를로 카라, 지노 세베리니, 루이지 루솔로, 안토니오 산텔리아, 포르투나토 데페로 등이 있다.

미래주의는 처음에는 문학운동으로 시작됐지만 순식간에 회화·조각·음악·건축·연극·사진·그래픽디자인·광고·타이포그래피·정치까지 손을 뻗었다.

한마디로 “새로운 건 다 우리 거임” 모드에 들어갔다.

율리우스 에볼라 역시 젊은 시절 미래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화가로 활동했다. 특히 자코모 발라와 가까웠고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의 미래주의 환경에 참여했으며 1919년 밀라노의 미래주의 전시에도 참가했다. 다만 에볼라는 미래주의의 이론을 지나치게 물질적이고 거칠다고 보았고 1920년대 초에는 트리스탕 차라와 접촉하면서 다다이즘으로 넘어갔다.[3]

시작

이탈리아의 미래 콤플렉스

20세기 초 이탈리아는 정치적으로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였고 북부를 중심으로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밀라노, 토리노, 제노바 같은 북부도시에는 공장과 자동차, 철도, 전기시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유산이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압도하고 있었다.

외국인 입장에서 이탈리아 하면

콜로세움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다 빈치

성당

박물관

이런 것부터 떠올리는 건 지금도 비슷한데, 당시 젊은 예술가들 중 일부는 이 상황에 진절머리를 냈다.

이들이 보기에는 이탈리아가 과거에 너무 잘나갔던 나머지

“우리 조상 개쩔었음”

만 반복하면서 현재와 미래를 못 만들고 있었다.

미래주의는 바로 이 불만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운동이었다.

조상이 천재였으면 뭐하냐 지금 공장 굴뚝은 프랑스랑 독일보다 적은데

라는 식의 심리가 깔려 있었다.

마리네티

미래주의를 만든 중심인물은 시인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였다.

마리네티는 1876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작가로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 모두를 사용하며 활동했다.

그는 문학에서 기존 문법과 형식, 감상주의를 박살내야 한다고 생각했고 산업화·도시화·기계문명에서 새로운 미학을 찾으려 했다.

1909년 2월 20일 프랑스 신문 《르 피가로》 1면에 자신의 미래주의 선언을 발표하면서 미래주의라는 이름이 국제적으로 알려졌다.[1]

굳이 이탈리아 국내신문이 아니라 프랑스의 유명 신문에 먼저 대문짝만하게 박은 것부터 홍보감각이 미친 인간이었다.

예술운동 창립을 신문 어그로로 시작했다.

미래주의 선언

1909년의 미래주의 선언(Manifesto del Futurismo)은 미래주의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선언에서 마리네티는 과거의 전통과 박물관 중심 문화에 대한 혐오를 드러내며 속도, 위험, 공격성, 기술문명, 전쟁 등을 찬양했다.[1]

특히 자동차와 기계의 움직임을 기존의 고전조각보다 아름다운 것으로 취급하며 속도를 새로운 시대의 미학으로 제시했다.

미래주의자들이 사랑했던 것을 대충 모아보면

  • 자동차
  • 열차
  • 공장
  • 기계
  • 비행기
  • 전기
  • 소음
  • 대도시
  • 군중
  • 젊음
  • 속도
  • 위험
  • 전쟁

같은 것들이었다.

반대로 싫어했던 것은

  • 박물관
  • 도서관
  • 고전주의
  • 전통주의
  • 과거에 대한 향수
  • 미적 권위
  • 아카데미즘
  • 느림
  • 얌전한 부르주아 문화

같은 것들이었다.

미술사조인데 취향이 거의 레이싱게임 중학생이다.

문제는 이들의 공격성이 단순한 예술적 수사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초기 미래주의 선언에는 전쟁을 사회를 정화하는 수단처럼 묘사하거나 여성에 대한 경멸을 드러내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런 요소들은 이후 미래주의와 제1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파시즘의 관계를 둘러싼 논쟁에서 계속 문제가 된다.[2]

회화

미래주의 화가들

1909년 미래주의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사실 회화 스타일이 명확하게 정립돼 있지 않았다.

마리네티가 일단

“과거 좆까 미래 만세”

라고 선언을 던졌고, 그 다음 화가들이

“좋은데 그래서 그림은 어떻게 그리냐?”

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 움베르토 보초니, 카를로 카라, 루이지 루솔로 등이 마리네티와 결합했고 여기에 자코모 발라, 지노 세베리니가 합류하면서 미래주의 회화의 핵심그룹이 만들어졌다.[4]

이들은 1910년 미래주의 화가 선언과 미래주의 회화 기술선언을 발표했다.

그들의 관심은 단순했다.

움직이는 걸 어떻게 정지된 그림 안에서 존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것인가?

였다.

움직임

미래주의 회화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동시성과 역동성이다.

기존 회화에서는 특정한 한 순간을 포착해 그린다면 미래주의자들은 움직임이 일어나기 전과 후의 여러 순간을 한 화면 안에 동시에 표현하려 했다.

예를 들어 사람이 걷는다면 다리 하나를 정확하게 그리는 게 아니라 다리의 위치가 여러 번 중첩된 것처럼 표현한다.

사진으로 치면

셔터속도 잘못 맞춰서 잔상 존나 생긴 사진

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걸 일부러 한 것이다.

자코모 발라의 1912년 작품 《목줄에 묶인 개의 역동성》(Dynamism of a Dog on a Leash)은 대표적인 사례다. 작은 개의 다리와 꼬리, 주인의 발, 목줄이 여러 번 반복되어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처럼 표현된다.[5]

개 산책시키는 그림에 프레임 드랍을 구현했다.

당시에는 영화와 연속사진 같은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이 움직임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변화하고 있었다.

미래주의 화가들은 이런 새로운 시각경험을 그림으로 가져왔다.

입체주의와의 관계

미래주의 회화는 입체주의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특히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대상을 여러 시점에서 분해하고 다시 조립하는 방식은 미래주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줬다.

그래서 미래주의 작품만 처음 보면

“이거 입체주의 아니냐?”

싶을 때가 많다.

둘 다 물체를 조각내고 형태를 뒤틀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심사가 조금 달랐다.

입체주의 미래주의
주요 관심 사물을 여러 시점에서 분석 운동·속도·시간·에너지
대표 이미지 정물, 인물, 악기 자동차, 도시, 군중, 기계
분위기 분석적·정적인 경우가 많음 공격적·역동적
핵심 공간의 분해 움직임의 분해

입체주의가

“컵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보면 어떻게 보일까?”

를 고민했다면,

미래주의는

“그 컵을 시속 200km로 던지면 어떻게 보일까?”

쪽이었다.

움베르토 보초니

움베르토 보초니는 미래주의 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하나다.

보초니는 회화뿐 아니라 조각에서도 미래주의의 속도와 역동성을 구현하려 했다.

대표작으로 《도시가 일어난다》, 《마음의 상태》 연작, 《공간 속에서 연속하는 독특한 형태》 등이 있다.

특히 1913년 제작한 조각 《공간 속에서 연속하는 독특한 형태》(Unique Forms of Continuity in Space)는 미래주의 조각의 상징과 같은 작품이다.

앞으로 걷는 인간의 몸을 그대로 묘사하지 않고 몸이 공기와 충돌하며 퍼져나가는 힘과 운동의 궤적을 하나의 형태로 만든 작품이다.[6]

사람 모양인데 사람 같지도 않고 갑옷 입은 로봇 같기도 하다.

1913년에 이미 건담 실루엣 비슷한 걸 만들었다.

이 작품은 현재 이탈리아 20센트 유로 주화에도 사용될 정도로 미래주의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됐다.

보초니는 1916년 제1차 세계 대전 중 군복무를 하다가 낙마사고로 사망했다.

나이가 겨우 33세였다.

미래주의 핵심 화가가 전쟁과 속도를 그렇게 빨아대다가 군복 입고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점 때문에 결과적으로 엄청나게 아이러니한 최후가 됐다.

자코모 발라

자코모 발라는 보초니보다 나이가 많았으며 초기에는 분할주의 계열 화가였다.

그는 빛과 움직임을 반복되는 형태와 선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목줄에 묶인 개의 역동성》, 《자동차의 속도》 계열 작품, 《가로등》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자동차가 지나갈 때 보이는 빛과 소리, 진동을 추상화하면서 점차 구체적인 사물 자체보다 속도라는 현상을 그리려 했다.[7]

발라는 이후 의복·가구·인테리어·디자인까지 미래주의를 확장시켰다.

그림 좀 그리다가 결국 "집안 전체를 미래주의로 만들자"까지 갔다.

젊은 율리우스 에볼라가 미래주의에 접근했을 때 특히 가까이 교류한 인물도 발라였다.[3]

루이지 루솔로와 소음음악

미래주의자들은 그림만 시끄럽게 만든 게 아니다.

아예 음악도 시끄럽게 만들었다.

화가이자 음악이론가였던 루이지 루솔로는 1913년 소음의 예술(L'arte dei rumori)이라는 선언을 발표했다.[1]

루솔로는 산업사회에서는 인간의 귀가 엔진, 기계, 기차, 공장, 자동차 같은 새로운 소리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전통적인 오케스트라 악기만으로는 현대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직접 인토나루모리(Intonarumori)라는 소음악기를 제작했다.

이 장치는

  • 윙윙거리는 소리
  • 폭발음
  • 덜컹거리는 소리
  • 마찰음
  • 기계음
  • 굉음

같은 것을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오케스트라 들으러 갔는데 누가 공사장 소리를 틀어버린 셈이다.

현대의 산업음악, 노이즈 음악, 전자음악 등과 연결해서 언급되기도 한다.

문학

미래주의는 애초에 문학운동에서 시작됐다.

마리네티는 전통적인 시의 문법과 구두점, 문장구조까지 낡은 것으로 보고 해체하려 했다.

그가 제시한 대표적인 형식이 자유어(parole in libertà, words-in-freedom)다.

단어를 문법적으로 연결된 문장으로 배열하는 대신 페이지 전체에 단어와 글자를 크기·방향·폰트를 다르게 배치해 시각적인 에너지까지 표현했다.

어떤 작품은 시라기보다

파워포인트에서 텍스트박스 50개를 회전시켜놓은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실험은 이후 구체시, 실험 타이포그래피, 그래픽디자인 등에 영향을 미쳤다.[1]

의성어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총소리, 폭발음, 엔진음 등을 문자 자체로 표현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용을 읽는 건지 효과음을 읽는 건지 모르게 만든다.

건축

미래주의 건축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안토니오 산텔리아다.

산텔리아는 1910년대에 미래도시를 묘사한 대규모 드로잉 시리즈 《신도시》(La Città Nuova)를 제작했다.

그가 상상한 도시는

  • 초고층 건물
  • 다층 교통망
  • 엘리베이터
  • 철도
  • 거대한 발전소
  • 콘크리트
  • 유리
  • 철강
  • 고속교통

등으로 구성됐다.

오늘날 보면 SF 영화의 미래도시 콘셉트 아트처럼 보인다.

1914년에 사이버펑크 도시 스케치하고 있었다.

산텔리아 역시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고 1916년 전사했다.

실제로 지어진 미래주의 건축물보다 도면과 아이디어의 영향력이 더 컸으며 이후 근대건축과 SF적 도시 이미지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줬다.[8]

전쟁

미래주의의 가장 골때리는 부분 중 하나가 전쟁 찬양이다.

미래주의자들은 전쟁을 오래된 사회질서를 때려부수고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폭력적인 힘으로 보는 경우가 많았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자 마리네티와 보초니 등 여러 미래주의자들은 이탈리아의 참전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당시 이탈리아는 처음에는 중립을 유지했지만 미래주의자들은 거리시위와 선전활동까지 벌이며 참전을 요구했다.

1915년 이탈리아가 결국 협상국 측으로 참전하자 미래주의자들 상당수가 실제 군에 들어갔다.

그런데

전쟁 존나 멋있음

하고 외치던 인간들이 실제 전쟁터에 가자 미래주의 초기 핵심그룹 자체가 박살났다.

보초니는 1916년 군복무 중 사고로 사망했고 산텔리아 역시 전선에서 전사했다.

카를로 카라와 지노 세베리니 등은 이후 미래주의에서 멀어졌고 제1세대 미래주의 그룹은 전쟁 전후로 급속히 흩어졌다.

전쟁을 예술로 빨다가 전쟁이 진짜 와서 예술운동 멤버가 증발했다.

파시즘과의 관계

미래주의와 이탈리아 파시즘의 관계는 복잡하지만 아무 관계 없었다고 하면 틀리고, 미래주의 = 파시즘 미술이라고 해도 너무 단순하다.

마리네티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1918년에는 미래주의 정치당을 만들었고 이후 베니토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운동과 협력했다.[1]

미래주의와 초기 파시즘은

  • 반자유주의적 급진성
  • 민족주의
  • 전쟁 경험의 미화
  • 새로운 인간과 새로운 국가에 대한 집착
  • 기존 의회정치에 대한 혐오
  • 젊음과 행동주의 강조

등 여러 부분에서 겹쳤다.

마리네티는 무솔리니를 지지했고 파시스트 체제에서도 문화계 인물로 활동했다.

1929년에는 파시스트 정권이 만든 이탈리아 왕립 아카데미 회원으로 임명됐다.

여기서 웃기는 점은 미래주의가 처음에

아카데미 좆까

박물관 좆까

권위 좆까

하고 시작했는데 수장이 나중에 국가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는 것이다.

반항아로 데뷔해서 국가 원로원 비슷한 데 들어가는 완벽한 인간 인생곡선.

다만 무솔리니 정권이 미래주의를 유일한 국가 공식미술로 지정한 것은 아니다.

파시스트 이탈리아 내부에는 미래주의뿐 아니라 신고전주의·합리주의·전통주의 등 서로 다른 예술경향이 동시에 존재했다.[1][2]

그리고 모든 미래주의자가 파시스트였던 것도 아니다.

운동 내부에서도 정치적 성향은 다양했고 일부 인물은 파시즘과 거리를 두거나 이후 결별했다.

따라서

미래주의 = 파시즘

이라고 1:1로 등치시키기보다는

미래주의 일부, 특히 마리네티 중심의 정치적 미래주의가 파시즘과 매우 깊게 결합했다

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제1세대와 제2세대

미래주의는 흔히 두 시기로 나눠 설명한다.

제1세대

1909년부터 제1차 세계 대전 전후까지의 초기 미래주의다.

주요 인물은

등이다.

이 시기의 미래주의는 속도와 도시, 군중, 기계의 움직임을 분해해 표현하는 회화와 조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미술사에서 사람들이 보통 미래주의 그림이라고 하면 이 시기를 떠올린다.

제2세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마리네티와 발라 등을 중심으로 미래주의 운동이 재편됐다.

1920~30년대에는 포르투나토 데페로, 엔리코 프람폴리니 등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했고 미래주의는 산업디자인·광고·무대미술·건축·패션 등으로 확장됐다.

1930년대에는 항공기의 비행감각을 표현하는 항공회화(Aeropittura)가 중요해졌다.[2]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지형과 도시, 급강하·회전하면서 느끼는 공간감각을 회화로 표현한 것이다.

차가 빨라서 좋아하던 놈들이 비행기 나오니까 바로 갈아탔다.

기계문명 덕후답게 업그레이드가 빠르다.

미래주의와 율리우스 에볼라

율리우스 에볼라도 초기 예술활동 시기에 미래주의와 접촉했다.

에볼라는 1910년대 중반부터 그림을 그렸고 로마 미래주의자들과 교류했다.

특히 자코모 발라의 작업실을 드나들며 엔리코 프람폴리니, 포르투나토 데페로 등과도 접촉했다.[3]

1919년에는 마리네티가 조직한 밀라노 미래주의 전국전에 참가했다.

다만 에볼라는 미래주의의 기계·물질 중심적인 역동성에 완전히 만족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물리적인 속도보다 의식과 정신을 초월하는 문제가 더 중요해졌다.

결국 1920년부터 트리스탕 차라와 본격적으로 교류하면서 다다이즘으로 이동했고, 이후에는 자신만의 신비적 추상주의와 철학으로 넘어갔다.[3]

그래서 에볼라 인생 초반을 보면

미래주의 → 다다이즘 → 오컬트 → 형이상학 → 전통주의

라는 정신나간 장르변경이 나온다.

더 웃긴 것은 미래주의가

미래와 기계문명 만세

를 외친 반면, 훗날 에볼라는

근대문명 자체가 망한 거임

이라는 철학을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청년 에볼라와 중년 에볼라를 같은 방에 넣으면 첫 5분 안에 싸움 날 가능성이 높다.

러시아 미래주의

미래주의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됐지만 곧 여러 나라로 퍼졌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1910년대에 독자적인 러시아 미래주의가 형성됐다.

대표적인 인물로

등이 있다.

러시아 미래주의자들은 마리네티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탈리아 미래주의를 그대로 복제하지 않았다.

언어실험과 시각시, 민속예술, 원시주의, 입체주의 등을 결합하면서 상당히 독자적인 방향으로 발전했다.

일부는 이른바 입체미래주의(Cubo-Futurism)로 불리는 흐름을 만들었다.

특히 마야콥스키는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혁명문화와 결합하면서 전혀 다른 정치적 경로를 걸었다.

즉

이탈리아 미래주의 → 파시즘과 결합

러시아 미래주의 → 일부가 혁명 공산주의와 결합

이라는 희한한 그림이 나온다.

똑같이 미래를 외쳤는데 한쪽은 검은 셔츠 입고 한쪽은 빨간 깃발 들었다.

그래서 미래주의를 하나의 통일된 정치이념으로 보는 것은 어렵다.

다다이즘과의 관계

다다이즘은 미래주의보다 조금 뒤인 제1차 세계 대전 중 등장했다.

둘 다 기존 미술과 문화에 대한 파괴적 태도를 공유했다.

미래주의자가

옛날 예술 다 버려

라고 했다면 다다이스트는

예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병신 같은데?

에 가까웠다.

미래주의는 현대문명과 기술의 미래에 상당히 낙관적이었다.

반면 다다이즘은 세계대전을 만들어낸 근대문명과 합리성 자체를 조롱하고 부정했다.

미래주의 다다이즘
등장 1909년 이탈리아 1916년 취리히
기본 태도 미래와 현대문명 찬양 기존 문화와 의미 자체 조롱
기계문명 대체로 긍정적 냉소적·부정적 경우가 많음
전쟁 초기 이탈리아 미래주의는 찬양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이 중요한 배경
표현 속도·동력·기계·도시 우연·부조리·콜라주·반예술

율리우스 에볼라가 미래주의에서 다다이즘으로 넘어간 것도 이런 차이와 관련된다.

미래주의의 물질적인 기계숭배보다 다다이즘의 절대적인 해체와 자유에 더 큰 가능성을 본 것이다.[3]

영향

미래주의는 운동 자체보다 이후 문화에 남긴 영향이 상당히 크다.

특히

  • 현대 그래픽디자인
  • 타이포그래피
  • 산업디자인
  • 광고
  • 전자음악
  • 노이즈 음악
  • 영화
  • SF 비주얼
  • 현대건축
  • 자동차 디자인
  • 키네틱 아트

등에서 미래주의와 연결되는 요소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미래주의자들이 단어를 페이지 위에서 자유롭게 배치한 실험은 이후 현대 타이포그래피와 그래픽디자인에 영향을 미쳤다.

루솔로의 소음음악 실험은 산업음악과 실험음악의 선구적 사례로 언급된다.

산텔리아가 그린 다층 미래도시는 후대 SF 영화와 게임에 나오는 거대도시 이미지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그리고 보초니가 시도한 운동과 공간의 결합은 현대 조각에서도 중요한 선례로 평가된다.

100년 전에 자동차랑 공장 보고 흥분해서 낙서하던 사람들이 사이버펑크 미술의 증조할아버지가 된 셈이다.

한계와 비판

미래주의는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답 없는 부분도 엄청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 전쟁 찬양
  • 공격적인 민족주의
  • 여성혐오적 표현
  • 폭력미화
  • 파시즘과의 협력

이다.

특히 초기 선언의 전쟁 찬양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엄청난 아이러니를 남겼다.

미래주의자들이 상상한 전쟁은 낡은 세계를 날려버리는 멋있는 폭발과 속도의 축제에 가까웠지만 현실은 참호 속에서 포탄과 기관총으로 인간이 대량으로 갈려나가는 산업화된 살육이었다.

기계문명 만세 외쳤더니 기계문명이 기관총부터 풀업해서 돌아왔다.

게다가 초기 미래주의의 여성혐오적 언어 역시 현대에는 강하게 비판받는다.

다만 이후 미래주의 운동에는 베네데타 카파 마리네티 등 여성 예술가들도 실제로 참여했다.[2]

따라서 미래주의 자체를 단순히 남성 예술가들만의 운동이라고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다.

쇠퇴

초기 미래주의는 제1차 세계 대전을 거치면서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

보초니와 산텔리아가 죽었고 카라와 세베리니 등 주요 화가들이 다른 사조로 이동했다.

그러나 마리네티는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1920~30년대에도 새로운 선언을 계속 발표했고 미래주의는 항공회화, 디자인, 광고, 건축 등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그래서 미래주의의 끝을 1916년이나 1차대전 종전으로 잡기도 하지만, 마리네티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미래주의 운동 자체는 1944년까지 이어졌다고 보는 경우도 많다.[2]

1944년 마리네티가 사망하면서 조직적인 미래주의 운동은 사실상 끝났다.

창업자가 죽을 때까지 브랜드를 안 접었다.

1909년부터 따지면 35년이나 간 셈이다.

대표 인물

인물 분야 특징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 문학·정치 미래주의 창시자, 미래주의 선언
움베르토 보초니 회화·조각 미래주의 조형이론의 핵심 인물
자코모 발라 회화 빛과 속도, 운동의 반복 표현
카를로 카라 회화 초기 미래주의 화가, 이후 형이상학적 회화로 이동
지노 세베리니 회화 파리와 이탈리아 미래주의를 연결
루이지 루솔로 회화·음악 《소음의 예술》, 인토나루모리
안토니오 산텔리아 건축 미래도시 《신도시》
포르투나토 데페로 회화·디자인 제2세대 미래주의, 광고와 산업디자인
율리우스 에볼라 회화 초기에 미래주의 참여, 이후 다다이즘으로 이동

대표 작품

연도 작가 작품
1910 움베르토 보초니 《도시가 일어난다》
1911 카를로 카라 《무정부주의자 갈리의 장례식》
1912 자코모 발라 《목줄에 묶인 개의 역동성》
1913 움베르토 보초니 《공간 속에서 연속하는 독특한 형태》
1913~1914 자코모 발라 《추상적 속도 + 소리》
1913 루이지 루솔로 《소음의 예술》
1914 안토니오 산텔리아 《신도시》 연작

이름

한국어로는 일반적으로 미래주의라고 번역한다.

영어로는 Futurism, 이탈리아어로는 Futurismo다.

문맥에 따라

  • 이탈리아 미래주의
  • 미래파
  • 미래파 운동
  • 미래주의 미술
  • 미래주의 예술
  • 미래주의 문학

등으로도 불린다.

주의할 점은 현대의 미래학이나 미래예측을 의미하는 futurism과는 별개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미술사에서 대문자 Futurism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마리네티가 1909년 시작한 이 아방가르드 운동을 뜻한다.

“AI가 미래에 어떻게 될까” 고민하는 미래학자가 자동차 그림 겹쳐 그리는 사람은 아니다.

여담

  • 시작 연도는 일반적으로 1909년으로 본다.
  • 창시자는 필리포 톰마소 마리네티다.
  • 시작부터 선언문을 신문 1면에 때려박은 상당히 미디어 친화적인 운동이었다.
  • 속도와 자동차를 미친 듯이 좋아했다.
  • 비행기가 대중화되자 1930년대에는 바로 항공회화까지 만들었다.
  • 기계를 좋아했지만 사진이나 영화보다 회화라는 전통적인 매체에 상당히 집착했다는 모순도 있었다.[2]
  • 박물관과 아카데미를 욕했지만 마리네티는 나중에 이탈리아 왕립 아카데미 회원이 됐다.
  • 전쟁을 찬양했는데 핵심 멤버 여러 명이 실제 1차대전에서 죽거나 운동을 떠났다.
  • 움베르토 보초니의 《공간 속에서 연속하는 독특한 형태》는 현재 이탈리아 20센트 유로 동전에 들어가 있다.
  • 자코모 발라의 《목줄에 묶인 개의 역동성》은 미래주의를 설명할 때 교과서급으로 자주 등장한다.
  • 루이지 루솔로는 기계소음을 음악으로 만들겠다고 진짜 소음악기까지 제작했다.
  • 안토니오 산텔리아가 그린 미래도시는 실제 건물보다 후대 SF 디자인에 더 큰 영향을 남겼다.
  • 율리우스 에볼라가 철학자 되기 전에 몸담았던 예술운동이기도 하다.
  • 에볼라는 이후 미래주의와 거의 정반대에 가까운 반근대적 전통주의 철학자가 됐다.
  • 러시아에서도 별도의 미래주의 운동이 생겼지만 이탈리아 미래주의와 정치적·문화적 발전과정은 상당히 달랐다.
  • 20세기 초 미술사조 치고 선언문이 존나 많다. 그림 그리기 전에 일단 선언부터 하나 쓰고 시작하는 수준이다.
  • 실제로 미래주의자들은 회화, 조각, 음악, 건축, 요리, 패션 등 별별 주제에 선언문을 만들었다.
  • 예술가 집단이라기보다 선언문 스타트업 같을 때가 있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