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새끼들과 같이 있다간 당신도 좆될 수 있으니 도망가든가 경찰에 신고하십시오.
이놈들을 본다면 하루빨리 정의의 사도들을 호출하여 주십시오.
당신에게 어떤 범죄를 저지를까 하는 궁리만 하고 있거나 잘못 건드렸다가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일단 피하시기 바랍니다!
너 인성 문제 있어?
???: (똑똑똑) 나랑께, 빨리 문 좀 열어 보랑께.
Ah! Fresh Meat!!!!

아무쪼록 이 흉악범에게 살해당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십시오.
1955~1982
키: 173~174㎝, O형 또는 B형
경찰관의 탈을 쓴 추악한 마귀새끼이자 모 인간폐기물 새끼와 함께 헬조선이 싸지른 최악의 묻지마 범죄자 새끼
김일성, 모택동, 전두환 로컬버전(킬 비율만 따지면 모택동 수준이다)
62킬 1데스(자살), 세계 FPS 랭킹 2위, 1위는 노르웨이의 극우 찐따가 가져갔다.
참고로 사망자 수는 자료마다 집계가 다르다. 이 문서에서 오래전부터 쓰이던 숫자는 62명이지만 현재 의령군이 공식 추모사업에서 사용하는 집계는 사망 56명, 부상 34명이다.[1] 사건 직후부터 사망자 숫자가 여러 방식으로 집계되면서 자료마다 50명대 후반~60명대의 숫자가 혼재해왔다.
그리고 위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가 죽인 사람은 정확히는 77명이다. 오슬로 정부청사 폭탄 테러로 8명, 우퇴위아섬 총기난사로 69명을 살해했다.
1982년 의령군에서 순경으로 일하다가 원래 씹혐성 + 술 존나 쳐마시고 취함이라는 조합이 발생되는 바람에 M1 카빈을 들고 야밤중에 마을을 싸돌아다니며 62명을 쏴 죽여버리고 수류탄으로 자살했다.
정확히는 1982년 4월 26일 밤부터 27일 새벽까지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현재 의령군에서는 이 사건을 우순경 사건, 우범곤 순경 총기난사 사건, 궁류사건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2]
머한민국 헌정 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마이자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사례로 기록되었던 인물.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라는 낮짝 두꺼운 노답 정치충 개씨발 쓰레기새끼가 77명을 죽이면서 갱신됐는데 이후로 기네스북이 기록 깨겠다고 사고치는 새끼 나올까봐 범죄 관련 기록은 안 넣기로 해서 그냥 싹 다 내려감 ^오^
경찰의 직무유기와 우범곤 본인도 경찰 신분이라 피해자들이 경계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통신 시설 파괴로 지역간 통신이 안됐던 점 때문에 커진 초대형 참사였다.
특히 통신시설 파괴는 실제 범행 초기에 벌어졌다. 우범곤은 우체국에서 전화교환원을 살해하면서 외부와의 통신을 두절시킨 다음 여러 마을을 돌아다니며 범행을 계속했다.[3] 요즘처럼 휴대폰으로 바로 112에 전화할 수도 없는 1982년 농촌이라 이게 상당히 치명적이었다.
이 새끼 동료 경찰들과 상관은 범행 당시 술 마시러 가서 무단이탈 상태였고, 사건 발생 직후 주민 한 명이 목숨걸고 옆동네 경찰서로 도망쳐와서 빨리 우범곤 잡으라고 했는데 서장이란 새낀 쫄아서 뻐기다가 뒤늦게 전경을 투입했다. 하지만 이 전경들도 쫄아서 마을에 진입도 못하고 숨어있느라 우범곤의 학살을 방치했다. 결과적으로 우범곤은 학살을 할 만큼 다 하고 자살할 때까지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았다.
당연하지만 사건 이후 이 동네 경찰서들 상부는 싹 다 갈려나갔고 직무유기 한 새끼들도 전부 구속됐다.
이 새끼는 한 명이라도 더 죽이기 위해 전화선을 절단하는 등 사전 작업으로 통신시설을 파괴해버렸고 카빈 챙길 때 200발이 넘는 실탄과 수십개의 수류탄을 지참했다. 통신시설 부수자고 한 리석기는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지 이 놈은 리석기가 하려던 걸 직접 했다.
이 새끼가 동네 사람들을 죽이는 과정이 마치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정말 전문가 수준의 솜씨로 사람을 사각으로 몰아넣고 죽여대며 종횡무진했다. 진짜 무장공비가 그랬다고 해도 믿겨질 정도였다.
이 좆같은새끼는 실컷 다 죽이다가 마지막에 죄없는 다른 가족들이랑 폭사했는데 병신 경찰새끼들은 자살하고 한참 뒤에나 쳐 왔다. 즉 저 애미터진십새끼가 계속 학살했으면 백명 이백명이 죽어도 경찰이 안왔을거라는거임.
뒤늦은 추모
사건 자체는 한국 현대사의 손꼽히는 대량살인으로 기억됐지만 정작 희생자들을 위한 공식 추모는 존나게 늦었다.
2024년 4월 26일 사건 발생 42년 만에 의령군 주최로 첫 공식 위령제가 열렸다. 궁류면에 조성된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위령탑 제막식과 함께 진행됐으며 유족과 지역 주민 등 약 1,500명이 참석했다.[4]
범인 이름인 우범곤은 수십 년 동안 온갖 범죄 문서와 인터넷에서 유명했는데 정작 죽은 주민들은 42년이 지나서야 지방자치단체 주최 공식 위령제를 받은 셈이다. 가해자는 유명인 됐는데 피해자는 뒤늦게 이름을 찾는 대한민국 범죄사의 씁쓸한 클리셰.
2025년에는 추모공원 조성까지 완료돼 제2회 위령제와 추모공원 준공식이 열렸다.[5]
부정적 재조명
여경 항목에서 알 수 있듯 2021년 11월 경찰이 인천에서 피해자를 지키지 못하여 피해자 측의 용서할 수 없다는 분노를 일으킬 지경이라 경찰 무용론과 우범곤 사건을 재조명시켰다.
4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었고 경찰이 우범곤과 다를 바 없다는 의식이 국민들한테 부정적으로 확산된 거다.
물론 우범곤 사건은 현직 경찰관이 직접 대량살인을 벌인 사건이고 2021년 인천 사건은 출동 경찰이 범죄 현장에서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은 사건이라 사건의 성격 자체는 전혀 다르다. 당시 인터넷에서 다시 우범곤 사건까지 끌려나온 것은 경찰의 현장 대응 능력에 대한 불신이라는 공통점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
여담
우범곤 사건은 1982년 당시에도 워낙 규모가 컸던 탓에 해외에까지 알려졌다. 한동안 단일 범인이 짧은 시간에 저지른 대량살인의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됐다.
다만 이 사건의 사망자 수는 앞에서 말했듯 자료마다 다르다. 현재 노바위키에서 기존의 62킬 드립을 보존하더라도, 실제 사건 정보를 찾는 사람은 의령군이 현재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56명 사망·34명 부상 집계를 같이 참고하면 된다.
2024년에 첫 위령제가 열린 뒤에는 우범곤이라는 범인의 이름보다 피해자들과 4·26이라는 날짜를 중심으로 사건을 기억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애초에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살인마 FPS 랭킹보다 죽은 사람들을 기억하는 게 맞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