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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8·48대 국무총리
한덕수
韓悳洙 | Han Deok-soo
출생일 1949년 6월 18일(1949-06-18) (77세)
출생지 전라북도 전주시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가족관계 배우자 최아영
소속 정당 무소속
신체 180cm
학력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 학사
하버드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박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주요 경력 제38·48대 국무총리
대통령 권한대행
주미대사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현직 없음
종교 개신교

개요

전북 전주출신의 공무원으로 제38·48대 국무총리를 역임하였다.

경제관료 출신으로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윤석열 정부를 두루 거친 대한민국 관료계의 대표적인 실무형 테크노크라트였다.

한때는

정권 바뀌어도 살아남는 관료의 끝판왕

취급을 받았다.

진보정부에서는 경제수석과 총리를 했고 보수정부에서는 주미대사와 총리를 했다.

그러다가 2024년 12월 윤석열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 복귀, 대통령선거 출마, 내란특검 기소까지 인생 후반부가 갑자기 한국 정치사 교과서급으로 꼬였다.

2026년 현재는 12·3 비상계엄 관련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은 상태이며 대법원 상고심이 진행 중이다.

영어를 잘한다고 한다.

ㄴ 그냥 "잘한다" 수준이 아니다. 하버드 경제학 박사 출신이고 통상·외교 분야 경력이 길어 영어회의와 협상에 매우 능숙한 관료로 유명했다.

생애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다닐때 행정고시를 통과해서 경제공무원으로 일했다. 처음에는 관세청에서 일하다가 미국으로 유학가서 하버드대학교 경제학 석사와 박사를 따면서 서기관에서 상공부 중소기업국 국장까지 승진했다.

정확히는 1970년 제8회 행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 만 21세였다.

관세청을 거쳐 경제기획원, 상공부 등 경제부처에서 경력을 쌓았고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학위까지 가진 고위경제관료라는 점 때문에 이후 통상·산업·경제정책 분야에서 계속 중용됐다.

그러던중 1990년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의 실무단으로 임명되어 1992년 이사관까지 승진했다.

노태우 정부에서는 통상 분야에서 일하며 냉전 종식 이후 한국이 소련·동유럽·중국 등과 경제관계를 확대하는 과정에 관여했다.

김영삼 정부

이후 김영삼이 부임하자 대통령비서실로 발령받아 경제수석 및 산업담당비서관직을 역임했고 대한민국의 OECD 가입의 실무를 담당했다.

1996년에는 차관급인 특허청장에 임명됐고 1997년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이동했다.

대한민국은 1996년 OECD에 가입했다.

당시 정부는 이를 선진국 진입의 상징처럼 홍보했다.

그리고 1년 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1996년에는 차관으로 승진해서 특허청장으로 일하다가 1997년 통상산업부 차관으로 옮겼는데 땡삼이가 IMF를 터트려서 똥을 치우는 일을 했다.

ㄴ 외환위기를 김영삼 혼자 버튼 눌러서 터뜨린 건 아니고 기업 과잉부채, 금융시장 부실, 단기외채, 금융감독 실패, 동아시아 외환위기 등이 복합적으로 터진 것이다.

그래도 한덕수는 외환위기 전후 경제관료로서 실제 수습과 구조개혁 과정에 관여했다.

김대중 정부

이후 슨상님 정권에서는 외교부로 옮겨서 한미FTA를 최초로 추진하였으며 칠레와의 FTA 체결, APEC 정상회의를 추진하는데 실무진으로 일했다.

1998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됐다.

한국이 본격적으로 FTA를 추진하기 시작한 시기에 통상정책의 핵심에 있었다.

한·칠레 FTA는 대한민국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으로 1999년 협상이 시작돼 2003년 정식 서명됐고 2004년 발효됐다.

따라서 "한덕수가 혼자 체결했다"기보다는 초기 한국 FTA 정책을 설계하고 추진한 핵심 관료 중 하나라고 보는 게 맞다.

2001년부터는 OECD 한국대사로 임명되었고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으나 한중마늘협상 파문으로 경질되었다.

중국과의 마늘 분쟁 당시 정부가 중국산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사실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터졌다.

농민 반발이 거세지면서 경제라인 문책으로 이어졌고 한덕수도 경제수석에서 물러났다.

노무현 정부

노무현 관련 문서 목록 🐨🦉⌚🙃🌄
관련인

이후 노짱정권에서는 이라크 파병과 행정수도 이전의 실무단으로 일했고 경제부장관으로 일하다가 해골찬이 3.1절 골프사건으로 국무총리를 사퇴하자 한명숙청이 임명되기 전까지 국무총리 대행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등을 지냈다.

정치인이라기보다 정부가 시키는 어려운 경제정책 실무를 처리하는 관료 이미지가 강했다.

한미 FTA

이때 한미FTA를 체결했다.

정확히는 한미 FTA 협상은 2006년 공식 시작돼 2007년 4월 타결됐으며 최종 발효는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2년이다.

한덕수는 협상 추진을 총괄한 핵심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원래 통상관료 출신이라 당시 정부 내부에서도 대표적인 FTA 찬성론자였다.

농업·서비스 시장개방 때문에 반대여론이 상당했지만 한덕수는 장기적으로 한국경제에 이익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제38대 국무총리

그리고 2007년 정식으로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는데 이때 노짱이 남북정상회담을 하면서 남북총리회담도 같이 했다.

2007년 4월 3일 제38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다.

2007년 10월 2007 남북정상회담 이후 같은 해 11월 평양에서 북한의 김영일 내각총리와 남북총리회담을 열었다.

당시 총리회담에서는 철도·도로, 경제협력,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등 남북정상회담 후속조치가 논의됐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퇴임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 이명박 정부때는 초대 주미대사로 임명되어 실무형 인사로 임명되었다.

ㄴ 정확히는 이명박 정부의 두 번째 주미대사다. 초대 주미대사는 이태식이 이명박 정부 초반까지 유임됐다.

한덕수는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주미대한민국대사를 지냈다.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가 정권교체 뒤 보수정부에서 주미대사를 맡았다는 점에서 당시에도 꽤 특이한 인사로 평가됐다.

이 시기 한미 FTA 미국 의회 비준 문제 등을 다뤘다.

공직 퇴임 이후

주미대사에서 물러난 뒤 한국무역협회 회장을 지냈다.

이후 민간 분야에서도 활동했다.

대표적으로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지냈는데, 2022년 국무총리 인사청문회 당시 고액고문료 논란이 제기됐다.

김앤장에서 받은 보수와 배우자 부동산 거래, 재산 형성과정 등이 검증대에 올랐다.

한덕수 측은 전문성과 경력을 활용한 정상적인 자문활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석열 정부

틀:윤석열

그러던 중 2022년 윤석열 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되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022년 4월 한덕수를 초대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노무현 정부 총리를 했던 인물을 보수정부 초대 총리로 다시 데려오면서 경제·외교 경험이 풍부한 통합형 인사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국회 인준 과정에서는 민주당이 다수당이었기 때문에 통과 여부가 불투명했으나 결국 2022년 5월 20일 국회 임명동의안이 통과됐다.

2022년 5월 21일 제48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제38대 총리에서 48대 총리로 돌아왔으니 무려 15년 만의 재취임이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서로 다른 정권에서 두 차례 국무총리를 맡은 희귀한 사례다.

제48대 국무총리

윤석열 정부에서는 경제·규제개혁·통상 분야를 주로 담당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외순방이나 정치현안에서 직접 전면에 서는 경우가 많아 한덕수 본인은 전형적인 책임총리라기보다는 실무형 총리 이미지가 유지됐다.

물가, 의대정원, 잼버리, 부산 엑스포, 노동·연금·교육개혁 등 굵직한 현안에서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역할을 맡았다.

2030 부산 엑스포

2023년에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각국을 돌아다니며 유치전을 벌였다.

결과는 2023년 11월 BIE 총회 1차 투표에서

리야드 119표 / 부산 29표 / 로마 17표

로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가 압승했다.

정부가 막판까지 박빙이다/뒤집을 수 있다는 분위기를 내세웠기 때문에 실제 투표결과가 나오자 정부의 정보력과 판세판단에 대한 비판이 상당했다.

12·3 비상계엄

틀:비상계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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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 인생의 모든 커리어를 뒤집어버린 사건.

2024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한덕수는 당시 국무총리였고 계엄 선포 직전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했다.

초기에는

계엄에 반대했고 막으려고 했다

는 취지로 알려졌다.

실제로 2025년 3월 한덕수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계엄 선포 과정에서 한덕수가 적극적인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후 내란특검 수사와 형사재판에서 대통령실 CCTV, 회의 정황, 관계자 진술 등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법원의 평가는 크게 달라졌다.

당시 국무회의

특검과 법원은 한덕수가 윤석열에게 국무회의 개최를 건의하고 국무위원들을 불러 모으는 등 비상계엄 선포에 필요한 절차적 외관을 만들어주는 데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또 계엄 선포 뒤 관련 문서에 국무위원들의 서명을 받으려 했다는 점도 문제됐다.

한덕수 측은 계엄을 찬성해서가 아니라 막기 위해 국무회의 형식을 갖추도록 요구했다는 취지로 항변했다.

하지만 2026년 1·2심 법원은 주요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통령 권한대행 1차

틀:대통령

2024년 12월 14일 국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가결하면서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헌법에 따라 국무총리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대한민국에서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것 자체는 처음이 아니지만, 대통령 탄핵과 계엄사태 한복판에서 권한대행이 된 만큼 정치적 부담이 엄청났다.

당시 한덕수는 국정안정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헌법재판관 임명 문제

국회는 공석이던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 마은혁
  • 정계선
  • 조한창

3명을 선출했다.

야당은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가 즉시 임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덕수는 여야 합의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임명을 보류했다.

윤석열 탄핵심판을 앞두고 헌법재판관 구성이 핵심 쟁점이던 시기라 민주당이 강하게 반발했다.

한덕수 탄핵소추

틀:탄핵

2024년 12월 27일 국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탄핵소추된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 사례다.

탄핵안은 국무총리 기준 정족수인 재적의원 과반수로 가결됐다.

국민의힘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고 있었으므로 대통령 탄핵 기준인 재적 3분의 2가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한덕수 직무가 정지되면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을 맡는 존나 복잡한 상황이 됐다.

헌법재판소 결정

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탄핵심판을 기각했다.

재판관 8명 가운데

  • 기각 5명
  • 각하 2명
  • 인용 1명

이었다.

헌재 다수의견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았다고 해서 국무총리가 새로운 대통령직을 얻는 것이 아니므로 탄핵소추 정족수도 국무총리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을 보류한 행위에 대해서는 상당수 재판관이 헌법·법률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파면할 정도로 중대한 위반은 아니라고 봐 최종적으로 기각했다.[1]

직무정지 87일 만에 복귀했다.

대통령 권한대행 2차

2025년 3월 24일 탄핵심판 기각과 동시에 다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다.

그리고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대통령 궐위 상황에서도 권한대행을 계속 수행했다.

따라서 한덕수는

윤석열 직무정지 시 권한대행 → 본인 탄핵으로 직무정지 → 복귀 → 윤석열 파면 뒤 다시 권한대행

이라는 한국 헌정사에서도 보기 드문 코스를 밟았다.

제21대 대통령선거 출마

틀:대통령선거

그러다가 갑자기 본인이 대통령을 하겠다고 나왔다.

2025년 5월 1일 대선 출마를 위해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직에서 사퇴했다.

공식 임기는 5월 2일 0시에 종료됐다.[2]

1970년 공직에 들어간 뒤 55년 넘게 이어진 관료생활이 끝났다.

5월 2일 무소속으로 제21대 대통령선거 예비후보에 등록했다.

출마 선언에서는

  • 극단정치 청산
  • 국민통합
  • 경제회복
  • 개헌
  • 임기단축 가능성

등을 내세웠다.

국민의힘과 단일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선출된 김문수와 단일화가 추진됐다.

당시 국민의힘 지도부 상당수는 한덕수가 중도확장성이 더 높다고 보고 김문수에게 단일화를 압박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도 보수 단일후보 적합도에서 한덕수가 김문수를 앞섰다.[3]

한덕수는 단일화 방식을 국민의힘 측에 사실상 맡기겠다고 했다.

그런데 일이 존나 이상하게 돌아갔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김문수 후보를 한덕수로 교체하려는 절차까지 진행했지만 당원투표에서 후보교체 안건이 부결됐다.

결국 김문수가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살아남았다.

한덕수는 출마 선언 8일 만에 사실상 대선레이스에서 낙마했다.[4]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사퇴하고 나온 사람 입장에서는 상당히 허무한 결과였다.

내란특검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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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재판

2025년 이재명 정부 출범 뒤 12·3 비상계엄 관련 특별검사 수사가 본격화됐다.

한덕수도 핵심 수사대상이 됐다.

특검은 여러 차례 한덕수를 소환조사했고 2025년 8월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8월 27일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8월 29일 특검은 한덕수를

  • 내란 우두머리 방조
  • 내란 중요임무 종사
  • 위증
  • 허위공문서작성
  • 허위작성공문서행사
  • 공용서류손상
  •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5]

CCTV 공개

재판 과정에서 2024년 12월 3일 대통령실 CCTV가 공개됐다.

이 영상과 국무위원들의 진술 등을 바탕으로 검찰과 특검은 한덕수가 단순히 계엄을 반대한 수동적인 국무총리가 아니라 계엄 선포 과정에 일정 부분 적극적으로 관여했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측은 끝까지 계엄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취지로 무죄를 주장했다.

1심 징역 23년

틀:감옥

2026년 1월 2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한덕수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6]

특검 구형량은 징역 15년이었는데 법원이 그것보다 8년이나 더 많이 때렸다.

재판부는 12·3 비상계엄을 국헌문란 목적의 폭동을 수반한 내란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한덕수가 비상계엄의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계엄 선포와 관련된 절차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덕수에게 적용된 주요 혐의 대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징역 23년은 과거 노태우가 12·12 및 5·18 사건 1심에서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으로 선고받았던 징역 22년 6개월보다도 무거웠다.

75세가 넘은 전직 총리가 내란죄 계열 사건으로 법정구속되는 그림이 나왔다.

2심 징역 15년

한덕수 측은 항소했다.

2026년 5월 7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 징역 23년을 깨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7]

형량은 크게 줄었지만 핵심인 내란 중요임무 종사혐의는 그대로 유죄로 인정됐다.

항소심은 대통령의 잘못된 권한행사를 통제할 책임이 국무총리에게 있는데 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계엄의 절차적 외관 형성에 관여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1심이 인정한 일부 부작위 책임 등은 무죄 취지로 판단하면서 형량을 낮췄다.

한덕수 측과 내란특검 모두 판결에 불복해 상고했다.

대법원 상고심

틀:대법원

2026년 8월 현재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처음에는 대법원 2부에 배당됐으나 2026년 8월 5일 대법원은 한덕수와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장관의 내란 관련 상고심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8]

대법원은 국민적 관심도가 높고 역사적·사법적 평가가 필요하다는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따라서 2026년 현재 한덕수의 징역 15년은 확정판결이 아니다.

항소심 유죄판결 상태에서 대법원 최종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헌법재판관 미임명 사건

틀:재판

내란사건과 별개로 또 재판을 받고 있다.

한덕수는 대통령 권한대행이던 2024년 12월 국회가 선출한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을 임명하지 않은 혐의와, 퇴임 직전 별도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들을 충분한 검증 없이 지명하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앞서 2025년 헌법재판소 역시 한덕수가 국회 선출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한 것은 헌법상 의무 위반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2026년 8월 28일 결심공판에서 내란특검은 한덕수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9]

이 사건은 아직 1심 판결 전이다.

즉 현재 한덕수에게는 내란 사건 대법원 상고심과 헌법재판관 미임명·지명 관련 별도 형사재판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평가

경제관료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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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평가와 별개로 경제관료 경력 하나는 한국에서 최상위권이다.

  • 행정고시
  • 하버드 경제학 박사
  • 통상산업부 차관
  •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 OECD 대사
  • 대통령 경제수석
  • 국무조정실장
  • 경제부총리
  • 국무총리
  • 주미대사
  • 무역협회장

을 다 해봤다.

한국 관료 중에서도 경제·통상·외교·국정조정 분야를 이 정도로 다 돌아본 인물은 찾기 어렵다.

특히 FTA와 국제통상 분야에서는 한국 정부 내에서 손꼽히는 전문가였다.

정권을 안 가림

한덕수를 상징했던 가장 유명한 특징.

김영삼 정부에서 차관급으로 올라갔고 김대중 정부에서 통상교섭본부장과 경제수석을 맡았고 노무현 정부에서 경제부총리와 국무총리를 했다.

보수정권으로 바뀐 뒤 이명박 정부에서는 주미대사를 했다.

그리고 10여 년 뒤 윤석열 정부에서 또 총리를 했다.

이 정도면 정치성향보다 관료능력으로 채용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했다.

반대로 비판하는 쪽에서는 어느 정권에서도 살아남는 전형적인 고위관료 엘리트라고 평가했다.

12·3 계엄 이후

2024년까지는 대체로 정치색 옅은 경제관료라는 이미지가 가장 강했다.

12·3 비상계엄 이후 이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졌다.

초기에는 계엄을 반대한 국무총리라는 평가도 있었지만 특검 수사와 형사재판 이후 법원은 한덕수가 계엄 과정에서 내란 중요임무를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2026년 현재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 전이므로 법적으로 최종 유죄가 확정됐다고 표현하면 안 된다.

정치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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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특정 정당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전문관료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았지만 민주당 정치인으로 활동한 적은 없고, 이명박·윤석열 정부에서도 고위직을 맡았다.

2025년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면서 사실상 보수진영 후보 단일화에 참여했다.

따라서 말년에는 보수진영 정치인에 가까운 위치로 이동했다고 볼 수 있다.

나이

1949년생.

2022년 윤석열 정부 총리로 취임했을 당시 이미 72세였다.

2024년 말 대통령 권한대행이 됐을 때 75세.

2025년 대통령선거 출마 당시에도 만 75세였다.

만약 당선됐다면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령 대통령 취임자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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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프로필상 180cm.

1949년생 한국 남성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편이다.

공식석상에서 윤석열이나 다른 정치인들과 서 있을 때도 키가 꽤 큰 것이 보인다.

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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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존나게 잘한다.

하버드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했으며

  • 통상교섭본부장
  • OECD 대사
  • 주미대사
  • 한미 FTA
  • 국제회의

를 수십 년 동안 담당했다.

영어 인터뷰나 국제회의에서도 통역 없이 직접 이야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한국 총리 가운데 국제경제·통상 실무 경험은 매우 강한 편이었다.

주요 경력

시기 직책
1970 제8회 행정고시 합격
1996~1997 특허청장
1997~1998 통상산업부 차관
1998~2001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2001 주OECD 대한민국 대표부 대사
2002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2004~2005 국무조정실장
2005~2006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2006 국무총리 권한대행
2007~2008 제38대 국무총리
2009~2012 주미대한민국대사
2012~2015 한국무역협회장
2022~2025 제48대 국무총리
2024.12.14~2024.12.27 대통령 권한대행
2025.03.24~2025.05.01 대통령 권한대행
2025.05 제21대 대통령선거 무소속 예비후보

여담

  • 제38대와 제48대 국무총리를 모두 역임했다.
  • 두 총리 재임 사이의 간격이 약 14년으로 상당히 길다.
  • 노무현 정부 총리와 윤석열 정부 총리를 모두 해본 인물이다.
  • 김대중 정부 경제수석, 노무현 정부 경제부총리·총리, 이명박 정부 주미대사, 윤석열 정부 총리를 맡았다.
  • 한미 FTA 추진의 대표적인 정부 인사 가운데 하나였다.
  • 대통령 권한대행을 두 차례 수행했다.
  • 대한민국 헌정사상 대통령 권한대행 상태에서 국회 탄핵소추를 당한 최초의 인물이다.
  • 탄핵으로 87일 동안 직무정지됐다가 2025년 3월 24일 헌법재판소 기각 결정으로 복귀했다.
  • 2025년 5월 대통령선거 출마를 위해 총리직과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사퇴했다.
  • 무소속 대선 예비후보가 됐으나 국민의힘 후보교체 시도가 실패하면서 출마 8일 만에 사실상 낙마했다.
  • 2026년 1월 내란 중요임무 종사 등 혐의 1심에서 징역 2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 2026년 5월 항소심에서는 징역 15년으로 감형됐지만 핵심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는 유죄로 유지됐다.
  • 2026년 8월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상고심을 심리 중이다.
  • 별도로 헌법재판관 미임명·지명 사건도 재판 중이며 2026년 8월 특검이 징역 5년을 구형했다.
  • 2026년 현재 항소심 유죄판결 상태지만 대법원 확정판결 전이므로 형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다.

같이 보기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