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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황준헌은 청나라 말기의 외교관, 관료, 시인이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황쭌셴 또는 황준셴에 가깝고, 한자로는 黃遵憲이다.
한국사에서는 주로 조선책략의 저자로 등장한다. 1880년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홍집에게 자신이 쓴 『사의조선책략』을 전달했고, 이 책이 조선 조정에 소개되면서 조선의 개화정책과 외교 노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쉽게 말하면 황준헌은 조선에 "러시아 조심해라. 그러려면 청나라랑 친하게 지내고, 일본이랑도 엮고, 미국이랑도 손잡아라"라고 조언한 인물이다. 문제는 이 조언이 순수한 조선 구원 플랜이라기보다는 청나라의 한반도 관리 전략이기도 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황준헌은 조선에게 세계정세를 알려준 친절한 외교 선생님이면서, 동시에 청나라 입장에서 조선을 자기 영향권 안에 묶어두려 한 전략가이기도 하다. 구한말 외교판이 원래 이렇게 착한 사람 찾기 힘든 서버였다.
생애
황준헌은 1848년 청나라 광둥성 일대에서 태어났다. 청말의 지식인이자 관료였고, 외교관으로 활동하면서 일본, 미국, 영국, 싱가포르 등 여러 지역과 관련을 맺었다.
그는 전통적인 중국식 지식인이었지만, 동시에 서양과 일본의 변화를 직접 본 인물이었다. 당시 청나라는 아편전쟁, 태평천국의 난, 서양 열강의 압박, 일본의 부상 등으로 정신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황준헌도 이런 시대 분위기 속에서 중국과 동아시아가 더 이상 옛 질서만으로 버틸 수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특히 일본 체류 경험은 황준헌의 인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은 이미 메이지 유신 이후 근대국가로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청나라 외교관 입장에서도 꽤 신경 쓰이는 존재였다. 전통적으로 중국 중심 질서에서 일본은 주변국 정도였는데, 어느새 근대식 군대와 제도를 갖춘 경쟁자로 튀어나온 것이다.
황준헌은 이런 국제정세를 관찰하며 조선 문제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조선은 청나라의 동쪽 방어선이자, 러시아와 일본이 노리는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청나라 입장에서 조선이 흔들리면 만주와 베이징 방어까지 불안해질 수 있었다.
주일 청국공사관 활동
황준헌이 한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무대는 일본이다. 그는 일본 주재 청국공사관에서 참찬관으로 근무했다.
이 시기 조선은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과 외교 현안을 처리해야 했고, 1880년 김홍집을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했다. 김홍집은 일본에서 청나라 외교관들과 접촉했고, 이 과정에서 황준헌과 만나게 된다.
당시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과 황준헌은 조선이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서양 여러 나라와 조약을 맺어야 한다고 보았다. 몇 차례 말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는지, 황준헌은 조선의 외교전략을 정리한 글을 김홍집에게 전달했다.
이 글이 바로 사의조선책략이다.
요즘으로 치면 외교 브리핑 자료 겸 전략 보고서다. 그런데 이 보고서 하나가 조선 조정에 들어가자마자 개화파와 위정척사파를 뒤흔드는 폭탄이 되었다. 황준헌 입장에서는 "전략 참고자료 드림"이었겠지만, 조선 안에서는 거의 이념전쟁 스타터팩이 되어버린 셈이다.
조선책략
황준헌의 대표작으로 한국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조선책략이다. 원래 이름은 사의조선책략이다.
조선책략의 핵심 내용은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고,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이 다음과 같은 외교 노선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장 유명한 표현은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다.
이 말은 당시 기준으로 꽤 현실적인 조언이었다. 조선 혼자 러시아를 막을 수는 없었고, 이미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청나라 하나만 보고 살 수 없는 구조로 바뀌고 있었다. 미국과 수교하자는 주장은 조선 외교 인식에 큰 충격을 주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구상은 철저히 청나라 중심이었다. 황준헌은 조선이 완전히 독립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청나라의 영향권 안에서 일본과 미국을 활용해 러시아를 막는 그림을 그렸다.
즉 조선책략은 조선의 생존전략이면서 동시에 청나라의 조선 관리전략이었다. 좋은 말로는 현실주의 외교전략이고, 나쁜 말로는 "청나라가 짜준 조선용 안전벨트"였다. 문제는 그 안전벨트가 조선을 보호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청나라 좌석에 묶어두는 장치였다는 점이다.
조선에 끼친 영향
조선책략은 조선 조정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먼저 고종과 개화파는 이 책의 내용을 주목했다. 특히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는 연미론은 훗날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에 영향을 주었다. 조선이 서양 국가와 본격적으로 외교 관계를 맺는 데 조선책략이 하나의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김홍집, 김윤식, 어윤중 같은 온건개화파에게도 조선책략은 중요한 참고자료였다. 이들은 청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과 외교제도를 받아들이려 했기 때문에, 황준헌의 노선과 비교적 잘 맞았다.
반면 위정척사파에게 조선책략은 거의 사문난적 문서였다. 서양 오랑캐와 손잡고 미국과 수교하자는 내용은 유교적 세계관을 가진 유생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이 책이 알려지자 영남만인소 같은 강한 반발이 일어났고, 개화파와 위정척사파의 갈등도 커졌다.
결국 황준헌은 조선 정치판에 직접 들어온 적은 없지만, 그가 쓴 책 하나가 조선 내부의 이념 대결을 크게 흔들었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펜으로 조선 조정에 폭탄을 던진 셈이다.
사상과 외교관
황준헌은 단순히 조선책략 하나만 쓴 인물은 아니다. 그는 청말의 지식인이자 외교관으로서 서양과 일본의 변화를 직접 보고, 중국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통적 시문에 능한 문인이면서도, 국제정세와 근대 제도에 관심이 많았다. 청나라 말기의 일부 개혁 성향 지식인들처럼, 황준헌도 중국이 옛 질서에만 갇혀 있으면 서양과 일본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다만 황준헌의 개혁 인식은 어디까지나 청나라의 생존과 부강을 위한 것이었다. 조선을 위한 조언도 결국 청나라의 안보 전략과 연결되어 있었다. 조선이 러시아에 넘어가면 청나라 동북부가 위험해지고, 일본이 조선을 독점해도 청나라에 위협이 된다. 그래서 조선을 적당히 개방시키되, 청나라 영향권 안에 두려 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황준헌은 현실주의자였다. 감상적으로 조선을 도운 사람도 아니고, 조선을 무시한 단순한 제국주의자라고만 보기도 어렵다. 그는 청나라의 이익을 기준으로 조선의 생존전략을 설계한 외교관이었다.
한계
황준헌의 가장 큰 한계는 청나라 중심의 시각이다. 그는 조선이 자강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자강은 청나라 질서를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조선책략의 핵심은 러시아를 막기 위한 세력균형이었지만, 그 균형의 중심에는 청나라가 있었다. 조선이 독자적으로 근대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구상보다는, 조선이 청나라의 동쪽 완충지대로 안정되어야 한다는 사고가 강했다.
또 일본에 대한 인식도 결과적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당시 일본은 아직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이후의 완성형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었지만, 이미 조선에 대한 야심을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조선책략은 일본과 손잡으라고 조언했다. 단기적으로 러시아 견제에는 그럴듯했지만,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늑대를 문 안으로 부르는 일이었다.
미국에 대한 기대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수교하면 러시아 견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보았지만, 강대국은 약소국의 보험회사가 아니다. 나중에 가쓰라-태프트 밀약 같은 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도 조선의 독립을 끝까지 보장해줄 의리 따위는 없었다.
결국 황준헌의 전략은 당시로서는 꽤 날카로운 현실 인식이었지만, 조선의 완전한 자주와 장기 생존을 보장하는 해답은 아니었다. 외교판에서 남이 짜준 전략은 대체로 남의 이익이 먼저 들어간다. 이건 예나 지금이나 별로 안 변한다.
평가
한국사에서 황준헌은 조선책략의 저자로 기억된다. 그가 조선에 직접 와서 정치를 한 것은 아니지만, 그가 쓴 책은 조선 후기 개화정책과 외교 노선에 큰 영향을 주었다.
긍정적으로 보면 황준헌은 조선이 국제정세를 보게 만든 인물이다. 당시 조선은 러시아, 일본, 미국, 청나라가 얽힌 복잡한 세계질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조선책략은 조선 조정에 "세상이 이미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 현실을 알려준 충격요법이었다.
부정적으로 보면 황준헌은 청나라의 이해관계에 따라 조선의 외교 노선을 설계한 인물이다. 조선책략은 조선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세우는 전략이라기보다, 청나라의 안보와 대한간섭정책을 뒷받침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황준헌은 고마운 선생님이자 불편한 컨설턴트다. 조선에게 세계지도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 지도 위에서 조선이 자유롭게 움직이게 하려 한 것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황준헌은 조선에게 "문 열고 세상을 봐라"라고 말한 사람이다. 다만 그 문 앞에는 청나라가 서 있었고, 옆문에는 일본이 웃고 있었으며, 멀리서는 러시아가 내려오고 있었다. 구한말의 답 없는 외교 환경이 그대로 드러난다.
여담
- 한국사에서는 거의 조선책략 때문에 외운다.
- 이름은 한국 한자음으로 황준헌, 중국어로는 황쭌셴 또는 황준셴에 가깝다.
- 조선책략의 원래 제목은 사의조선책략이다.
- 조선책략의 핵심 구호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다.
- 김홍집이 일본에서 황준헌에게 조선책략을 받아와 고종에게 바쳤다.
- 조선책략은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에 영향을 준 책으로 자주 언급된다.
- 위정척사파 입장에서는 황준헌이 거의 오랑캐 문물 홍보대사처럼 보였을 것이다.
- 중국사에서는 외교관이자 시인, 개혁 성향 지식인으로도 평가된다.
- 황준헌 본인은 조선 정치판에 직접 뛰어든 적이 없지만, 책 한 권으로 조선 조정에 엄청난 후폭풍을 일으켰다.
- 따지고 보면 황준헌은 조선책략이라는 이름으로 조선의 전략을 써줬지만, 정작 그 전략의 최종 목적지는 조선 독립 만세가 아니라 청나라 안보 안정에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