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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하여장은 청나라 말기의 외교관이다. 한자로는 何如璋이고, 중국어 발음으로는 허루장에 가깝다.
한국사에서는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간 김홍집을 만난 주일 청국공사로 등장한다. 그의 참찬관이 바로 조선책략을 쓴 황준헌이다.
즉 하여장은 조선책략 자체의 저자는 아니지만, 김홍집과 황준헌이 연결되는 외교적 무대를 만든 인물이다. 김홍집이 일본에서 황준헌의 사의조선책략을 받아오고, 그것이 조선 조정에 들어가 위정척사운동, 영남만인소, 조미수호통상조약 같은 사건으로 이어지는 데 중요한 배경 인물이었다.
쉽게 말하면 하여장은 구한말 조선 정치판에 폭탄처럼 떨어진 조선책략의 전달 과정에서 배후 조율자 비슷한 위치에 있던 청나라 외교관이다.
생애
하여장은 1838년 태어났고 1891년 사망했다. 광둥성 출신의 청나라 관료이자 외교관이었다.
그는 청나라가 근대 외교 제도를 조금씩 받아들이던 시기에 활동했다. 청나라는 서양 열강과 일본의 압박 속에서 전통적인 조공질서만으로는 동아시아를 관리하기 어려워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여장은 일본 주재 청국공사로 파견되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빠르게 근대국가로 변하고 있었고, 청나라 입장에서도 직접 관찰하고 견제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여장은 청나라의 첫 주일공사로도 언급된다. 그러니까 청나라가 일본을 그냥 전통적인 이웃 정도가 아니라 근대 외교의 상대이자 잠재적 경쟁자로 보기 시작한 시기의 외교관이었다.
주일 청국공사
하여장은 일본 주재 청국공사로 활동했다.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군사, 행정, 교육, 산업을 빠르게 개혁하고 있었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일본이 더 이상 예전의 일본이 아니었다. 게다가 일본은 류큐, 타이완, 조선 문제를 놓고 점점 청나라와 충돌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었다.
하여장은 이런 일본의 움직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다. 그는 일본이 류큐 문제를 통해 청나라의 전통적 영향권을 흔들고 있다고 보았고, 일본의 팽창 가능성을 경계했다.
이 점에서 하여장은 일본의 변화를 꽤 민감하게 파악한 인물이었다. 훗날 일본이 실제로 청나라와 조선을 상대로 팽창해 나간 것을 보면, 그의 경계심은 그냥 헛소리가 아니었다.
다만 청나라 외교의 한계도 분명했다. 하여장이 일본의 위험을 본 것과 별개로, 청나라 조정은 근대 국제정치의 속도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외교관이 현장에서 위험하다고 외쳐도 본국 시스템이 느리면 답이 없는 법이다.
김홍집과의 만남
하여장이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장면은 1880년 김홍집과의 만남이다.
김홍집은 제2차 수신사로 일본에 파견되었다. 조선은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과의 외교 문제를 처리하고, 일본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김홍집은 일본 외무성과의 교섭에서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때 주일 청국공사관의 참찬관 황준헌이 김홍집에게 접근했고, 국제정세에 밝은 하여장과의 만남을 주선했다.
김홍집은 하여장과 만나 조선의 외교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여장과 황준헌은 당시 조선이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러시아를 막기 위해 미국과 수교하고, 청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며, 일본과도 일정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흐름 속에서 황준헌이 김홍집에게 전달한 책이 바로 사의조선책략이다.
황준헌과의 관계
하여장과 황준헌은 주일 청국공사관에서 함께 활동했다.
하여장은 공사였고, 황준헌은 참찬관이었다. 즉 하여장이 상관이고 황준헌이 참모에 가까운 위치였다.
황준헌은 일본의 근대화와 국제정세에 밝은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의 외교 전략을 정리해 사의조선책략을 썼고, 이를 김홍집에게 전달했다.
물론 조선책략의 직접 저자는 황준헌이다. 하지만 이 문서가 김홍집에게 전달되고, 조선 외교 노선에 영향을 주는 과정에서 하여장의 존재도 중요하다. 황준헌이 혼자 개인 취미로 책 써서 조선 사절에게 건넨 수준이라기보다는, 주일 청국공사관 차원에서 조선에 비공식 외교 지침을 전달한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여장은 조선책략의 공식 저자는 아니지만, 그 외교적 맥락을 이해할 때 빼놓기 어려운 인물이다.
한마디로 황준헌이 문서를 쓴 실무자라면, 하여장은 그 문서가 나올 수 있었던 외교 라인의 상급자라고 볼 수 있다.
조선책략과의 관계
조선책략은 하여장의 이름이 한국사에 남게 된 가장 큰 이유다.
조선책략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이 청나라와 친하고, 일본과 맺고, 미국과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명한 표현으로는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다.
이 문서는 황준헌이 썼지만, 하여장과 황준헌이 김홍집에게 제시한 청나라 측 조선 외교 구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조선책략은 겉으로는 조선의 생존전략을 제시했다. 하지만 속을 보면 청나라의 이해관계도 강하게 들어 있었다. 조선이 러시아나 일본 쪽으로 기울지 않고, 청나라의 영향권 안에서 움직이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다.
하여장은 바로 이런 청나라의 조선 정책을 현장에서 전달한 외교관이었다.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도록 권하고, 일본과 적당히 관계를 맺게 하되, 청나라와의 관계는 계속 유지하게 하려는 구상이었다.
좋게 말하면 현실주의 외교 컨설팅이고, 나쁘게 말하면 청나라식 조선 관리 플랜이었다.
청나라의 조선 정책
하여장을 이해하려면 당시 청나라의 조선 정책을 봐야 한다.
청나라는 전통적으로 조선을 사대관계 속의 속방처럼 다루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 근대 국제질서가 들어오면서 이 관계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은 강화도 조약을 통해 조선을 개항시켰고, 러시아는 동아시아로 남하하고 있었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조선이 일본이나 러시아의 영향권으로 넘어가는 것이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청나라는 조선을 자기 영향권 안에 묶어두면서도, 필요하면 서양과의 조약을 이용해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다. 조선책략의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노선은 이런 청나라의 고민을 잘 보여준다.
하여장은 이 정책을 일본 현장에서 구현한 인물이었다. 조선 사절 김홍집에게 국제정세를 설명하고, 황준헌의 조선책략을 통해 청나라의 외교 구상을 전달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조선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청나라가 조선을 도와준 측면도 있지만, 동시에 조선을 자기 관리망 안에 묶으려 했다.
그러니까 하여장의 조언은 조선 입장에서는 도움이면서도 목줄이었다. 구한말 외교는 늘 이 모양이다. 손 잡아주는 놈이 있으면, 그 손에 줄이 묶여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
러시아 견제론
하여장과 황준헌이 김홍집에게 강조한 핵심은 러시아 견제였다.
당시 러시아는 연해주를 확보하고 동아시아로 남하하고 있었다. 청나라와 일본 모두 러시아의 움직임을 경계했다. 조선은 러시아가 남하할 경우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조선이 러시아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 조선이 흔들리면 만주와 베이징 방어선까지 불안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여장은 조선이 러시아를 막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맺고, 일본과도 일정하게 협력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 논리는 당시 기준으로는 꽤 현실적이었다. 조선 혼자 러시아를 막을 힘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러시아를 막겠다고 일본과 미국을 끌어들이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낳았다. 일본은 훗날 조선을 병합했고, 미국도 조선의 독립을 끝까지 지켜주지 않았다. 결국 강대국을 이용해 강대국을 막는 전략은 약소국에게 늘 위험한 도박이었다.
류큐 문제와 일본 경계
하여장은 일본의 팽창성을 경계한 외교관이었다.
특히 류큐 문제는 중요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류큐를 자기 영향권으로 완전히 끌어들이려 했고, 결국 류큐를 병합해 오키나와현으로 만들었다.
청나라 입장에서 류큐는 전통적인 조공질서 안에 있던 지역이었다. 그런데 일본이 류큐를 병합하자, 이는 청나라의 동아시아 질서가 무너지는 상징적 사건이 되었다.
하여장은 일본이 류큐에 그치지 않고 조선으로도 영향력을 확대할 가능성을 경계했다. 실제로 훗날 일본은 조선을 상대로 더 강한 압박을 가했고, 결국 병합까지 갔다.
이런 점에서 하여장의 일본 경계는 상당히 선견지명이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가 그 경계에 맞게 충분히 강하고 빠르게 대응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청나라 외교관들은 위험을 봤지만, 청나라 체제는 그 위험을 이겨낼 만큼 민첩하지 못했다. 늦은 제국의 전형적인 비극이다.
의의
하여장의 의의는 조선책략이 등장한 외교적 맥락을 보여주는 데 있다.
조선책략은 단순히 황준헌 개인의 글이 아니었다. 주일 청국공사관이라는 외교 현장에서, 청나라가 조선을 어떻게 움직이게 할 것인지 고민한 결과물이었다.
하여장은 그 외교 라인의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김홍집을 만나 조선의 외교 방향에 대해 조언했고, 황준헌의 사의조선책략이 조선에 전달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하여장은 일본의 부상과 러시아의 남하를 모두 경계한 청나라 외교관이었다. 그는 조선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국사에서 그의 이름은 짧게 지나가지만, 실제로는 조선이 미국과 수교하고, 개화파와 위정척사파가 충돌하고, 조선책략이 파장을 일으키는 배경에 있는 인물이다.
한계
하여장의 한계는 청나라 외교관이라는 위치에서 나온다.
그의 조언은 조선에게 국제정세를 알려주는 역할을 했지만, 어디까지나 청나라의 이해관계가 우선이었다. 조선이 완전한 자주독립국으로 성장하는 것보다, 청나라의 영향권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중요했다.
또한 일본을 경계하면서도 일본과 관계를 맺으라고 조언하는 모순도 있었다. 러시아를 막기 위해 일본을 활용하자는 구상은 단기적으로는 현실적일 수 있었지만, 장기적으로는 일본의 조선 침투를 더 열어줄 위험이 있었다.
미국에 대한 기대도 한계가 있었다. 미국과 수교한다고 해서 미국이 조선을 끝까지 지켜주는 것은 아니었다. 강대국은 자기 이익을 따라 움직인다.
결국 하여장의 외교 구상은 당대 국제정세를 꽤 잘 읽은 것이었지만, 조선의 독자적 생존전략이라기보다는 청나라 중심의 조선 관리 전략에 가까웠다.
평가
하여장은 조선 근대 외교사에서 조연이지만, 꽤 중요한 조연이다.
그는 김홍집, 황준헌, 조선책략을 연결하는 인물이다. 조선이 일본에 보낸 제2차 수신사가 청나라 외교관들과 접촉하고, 그 결과 조선책략이라는 문서가 조선에 들어오는 흐름에서 하여장의 역할은 작지 않았다.
긍정적으로 보면 하여장은 조선에게 국제정세를 알려준 청나라 외교관이다. 러시아의 남하, 일본의 부상, 미국과의 수교 필요성 같은 문제를 조선에 전달했다.
부정적으로 보면 그는 청나라의 조선 관리 전략을 전달한 인물이다. 조선이 스스로 전략을 짜기보다는 청나라가 제안한 틀 안에서 움직이도록 유도했다.
그래서 하여장은 조선에게 도움을 준 사람도, 조선을 통제하려 한 사람도 된다. 둘 중 하나만 보면 구한말 외교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한마디로 하여장은 조선에게 세계정세라는 지도를 보여준 사람이지만, 그 지도 위의 길은 청나라 쪽으로 나 있었다.
여담
- 한국사에서는 주로 제2차 수신사, 김홍집, 조선책략과 함께 등장한다.
- 한자는 何如璋이다.
- 중국어식으로는 허루장에 가깝다.
- 황준헌의 상관격 인물로 볼 수 있다.
- 황준헌은 하여장의 참찬관이었다.
- 하여장은 조선책략의 직접 저자는 아니지만, 그 전달 배경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 청나라의 주일공사로서 일본의 근대화와 팽창을 가까이에서 보았다.
- 류큐 문제를 통해 일본의 팽창성을 경계한 인물로도 언급된다.
- 조선 입장에서는 하여장의 조언이 도움이면서도 동시에 청나라의 목줄이었다.
- 구한말 외교는 늘 이랬다. 조언인지 관리인지, 보호인지 간섭인지 구분이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