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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th Century / 12世紀 / 1101년~12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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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수호지 · 무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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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간흉기
냉병기 활 해전 사이비 테러 드럼통
척준경 이성계 이순신 이만희 할카스 찢재명
첩보전 고자샷 발터 나이프 글록 정의봉
모전구렴야 상하이 조 재규어 지라툴 제너럴 조 박기서
盧래 K2소총 코 쌍권총 백린탄 야구빠따
MC무현 임 레이너 코서인 김상옥 박정인 死호성


소개

“

척준경(拓俊京, ? ~ 1144년 음력 2월)은 고려 중기의 무신, 정치인, 군인이며, 황해도 곡주(谷州: 황해북도 곡산군) 출신이다. 1104년(숙종 9)부터 1109년까지 윤관, 오연총, 왕자지 등과 함께 함경도에 침입한 여진족을 몰아내고 동북 9성을 쌓는데 기여하였다. 뛰어난 용맹으로 여진족 정벌에 종군하여 많은 공을 세웠으나, 이자겸(李資謙)과 함께 전횡을 일삼아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곡산 척씨(谷山拓氏) 가문의 시조이며,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척위공(拓謂恭)의 아들이다.

”

위키피디아 펌, 드립력이 부족하니 다른사람들이 수정해주기 바란다.

ㄴ 니말대로 노잼 씹뜨억 드립 삭제해줬다^^

캐릭터 만들 때 가문 지능 등은 스텟을 죄다 빼고 육체능력에 캐릭터 스텟 몰빵해서 나오신 분이다. 배트맨과 어쌔신 크리드를 홀로 찍어댄 인물이다. 물론 출생관해서는 기록이 없을 정도로 미천한 신분. 부모가 사냥꾼이나 가축 도살자라도 되었나.... 저렇게 피지컬이 좋을수가. 적진에 단신으로 들어가 적장 목따고 귀환. 혼자서 적진에 들어가 적 NPC를 쓸어버리고 춤추고 노래하고 쌈바춤추면서 공중제비로 귀환 가능한 인물.

ㄴ 출생연도는 기록이 없지만 가문 자체가 완전히 천민급이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사》에는 아버지 척위공이 검교대장군이었다고 나오고, 현대 연구에서는 지방의 주리(州吏) 집안 출신으로 본다. 다만 집안이 가난해 학문을 배우지 못했고 서리가 되려다 실패해 무뢰배들과 어울렸다고 기록돼 있으니 당시 중앙 문벌귀족 기준으로 한미한 출신이었던 것은 맞다.[1]

더군다나 이 때 여진족이 그냥 미개한 놈들도 아니었고, 9성 반환하고 얼마 안돼서 금나라 세우고 거란을 멸망시켰을 정도로 무섭게 성장하던 시기다. 내가 볼 땐 신이 심심해서 고려란 나라에 캐릭터 하나 만들고 어쌔신크리드 한판 하시고 간 것같다. 신님은 새드엔딩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인생사 새드엔딩이 많은 것을 보면. 너충으로 너를 봐라. 새드엔딩아니더냐?

ㄴ씹새꺄 닌 일부러 똥캐 만들어서 새드엔딩만드는 게임하고 그럼? 신마저 개새끼로만드네 ㅡㅡ

실제로 척준경이 싸우던 시기의 완안부 여진은 이미 여러 부족을 통합하며 세력을 급격히 키우던 중이었고, 불과 몇 년 뒤인 1115년 금나라를 세웠다. 이후 금나라는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1127년에는 북송의 수도 개봉까지 털어버린다.

그러니까 척준경이 두들겨 패던 애들이 몇 년 뒤 동아시아 최강국을 만든 애들이다.

그의 먼 후손으로 2차대전 미군의 에이스 척 예거와 짱쌘 척 노리스가 있다.

ㄴ 당연히 드립이다. 척 예거의 Chuck은 이름이고 척 노리스 역시 곡산 척씨와 아무 관계 없다.

다 좋은데 머가리가 댕청해서 말년이 비참했던 인간의 표본이라 할 수 있겠다. 이자겸을 왜 따라가. 이래서 현실은 올 힘캐보다 적절한 배분. 쩌리 스텟이 좋다. 현실은 실전이다. 게임과는 다르다.

ㄴ그래도 척준경은 막판에 인종쪽으로 돌아서서 이자겸처럼 벌집피자꼴은 면했다.

ㄴ 더 정확히는 척준경의 딸이 이자겸의 아들 이지원과 혼인하면서 둘이 사돈이 됐다. 이 관계가 척준경이 문벌귀족 최고 권력자인 이자겸과 결탁하고 초고속 승진하는 중요한 배경이 됐다.[2]

여진 전쟁 당시의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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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준경 성님 기록보면 지림 ㄷㄷ. 아래 기록들은 모두 《고려사》 예종 세가, 《고려사》 윤관 열전, 척준경 열전, 《고려사절요》에 수록된 기록을 축약한 것이다. 인터넷 보면 키가 180이고 80근짜리 칼을 쓰고 이따위 소설을 사실 마냥 써놓은 거 있는데 그거 다 구라다. 솔직히 그런 구라 안쳐도 정사(正史)에 기록된 것만 봐도 괴물인 수준이다.

ㄴ다만 저때까진 내가 알기론 역사는 이긴사람의 것이였다. 기록 자체가 과장하는 게 아니냐는 소리도 있긴 있다. 내 말이 틀렸다면 ㄴ으로 개소리지르지 말라고 해주길 바람.

ㄴ 고려사에는 딱 "고려군이 발린다. 척준경이 나갔다. 여진새끼들 개쳐발랐다. 이겼다."라는 식으로만 나온다. 키등의 신체적인 특징이나 들고 있던 무기는 고려사, 고려사절요엔 언급 X.

ㄴ 《고려사》는 조선 태조때, 《고려사절요》는 조선 문종때 편찬된 사서이다. 지들손으로 보내버린 국가의 기록을 굳이 뻥튀기 시킬일은 없을테니 실화일 가능성이 높다 ㄷㄷ (실제로 척준경 열전은 '반역열전'에 포함되어 있다. '충'과 '예'를 강조한 조선에서 얘를 띄울 필요가 더더욱 없다는 걸 생각하면 뻥이 들어갔을 여지는 없음.)

ㄴ 다만 《고려사》가 조선시대에 완전히 새로 창작된 건 아니고 고려시대의 실록·사초와 여러 기록을 바탕으로 편찬됐다. 따라서 세부 숫자까지 무조건 100% 사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조선 편찬자들이 척준경 띄워주려고 일부러 만든 영웅담으로 보기도 어렵다. 현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역시 그의 여진정벌 전공 자체는 정사 기록에 따라 사실로 서술한다.[3]

  • ① 1104년 2월, 고려군이 정주성을 침공한 여진을 상대하려 가는데 총사령관이었던 임간이란 놈이 자기의 공을 세우고 싶어서 무리하게 공격당하다가 고려군이 전멸 위기를 맞이 했다. 이때 별가(別駕)라는 하위 공무원 중에서도 최하위 공무원이던 척준경이 다짜고짜 임간에게 달려가 "칼이랑 개마를 달라."고 요구. 평소였으면 "듣보새끼가 어디서 건방지게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야!"라며 척준경의 귓방망이를 때렸겠지만 하늘로 승천하기 직전이었던 임간은 군말 안하고 칼과 갑옷을 입힌 말을 한마리 내준다. 그리고 척준경은 적진을 달려가 적장 1명의 모가지를 따고 포로 2명을 되찾았으며, 좆될뻔한 고려군이 모두 정주성으로 퇴각할때 추격해오던 여진족 기마대 100명을 인점(仁占)이라는 무관과 단 둘이서 막아선다. 그리고 달려오던 여진족 지휘관 2명의 머리통에 화살을 박아넣는데 성공하며 여진을 물리친다. 이 전투 이후 한동안 기록이 없는데 죄를 지어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뒤질뻔한거 윤관이 구해준거 같다. 아마 임간이라는 놈이 헬고려인 답게 전투 끝나고 하극상등을 이유로 잡아 처넣은거 같다. 다음 기록은 3년후인 2차 여진 정벌때다.

ㄴ 이건 정사 기록이 거의 그대로 맞다. 《고려사절요》에는 임간이 훈련되지 않은 병력을 무리하게 투입해 패전하자 척준경이 무기와 갑옷 입힌 말을 받아 적장 1명을 죽이고 포로 2명을 구출했으며, 퇴각 중 100기의 여진 기병이 추격하자 인점과 함께 적장 2명을 활로 쏴 죽였다고 적혀 있다.[4]

ㄴ 다만 이후 척준경이 죄를 지은 이유가 임간에게 하극상해서였다는 기록은 없다. 《고려사절요》에는 훗날 척준경 본인이 "장주에서 종사관으로 있을 때 잘못을 저질러 죄를 범했는데 윤관이 살려줬다"고만 나온다.[5]

  • ② 1107년 고려의 최종병기 17만에 달하는 별무반이 여진족들 모가지를 따러 출격하고, 석성[6] 에서 난항을 겪게 되는데 이때 윤관이 척준경을 불러 "니가 좀 힘좀 서야겠다."라고 하니 "죄를 지어 죽을뻔한 저를 살려주셨으니 그 은혜를 죽음으로서라도 보답하겠습니다."라는 씹간지폭풍스런 말과 함께 칼을 들쳐매고 갑옷을 둘러맨채 석성으로 돌격, 성을 기어올라 여진의 모가지를 따자 여진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기 시작했고[7] 결국 윤관이 성을 함락하는데 성공한다.

ㄴ 여기서 성을 기어올랐다는 부분은 정사 기록에는 없다. 《고려사절요》에는 척준경이 갑옷을 입고 방패를 든 채 적진으로 돌입해 추장 몇 명을 죽였고, 이후 고려군이 합세해 공격하면서 여진군을 대패시켰다고 적혀 있다.[8]

ㄴ 대신 대사는 진짜다. "오늘날이 척준경이 목숨을 버리고 은덕에 보답할 때입니다."에 해당하는 말을 실제로 했다. 이새끼 대사까지 사극이다.

  • ③ 1108년 1월, 윤관이 이끌던 병력이 가한촌(加漢村) 인근의 병목[9] 에서 여진군에게 두들겨 터져 8천의 병력이 붕괴되고 총 사령관인 윤관 근처에 단 10명뿐인 상황을 맞이했다. 이때 척준경이 칼을 뽑아들고 적진을 돌파해 10여명의 여진 모가지를 따고 전황을 역전시켜 결국 지원군이 올때까지 시간을 버는데 성공한다.

ㄴ 이것도 거의 맞는데 혼자는 아니었다. 척준경이 용맹한 병사 10여 명을 이끌고 구원하러 갔다. 동생 척준신이 "적진이 너무 견고해서 들어가면 헛죽음이다"라고 말리자 척준경은 "너는 돌아가 늙으신 아버지를 모셔라. 나는 몸을 나라에 바쳤으니 의리상 그만둘 수 없다."고 하고 그대로 돌격했다.[10]

ㄴ 척준경 일행이 10여 명을 죽인 뒤 최홍정·이관진의 지원군이 도착했고 여진이 포위를 풀고 달아났다. 추격전에서 다시 36명을 베었다. 윤관은 살아 돌아온 뒤 울면서 척준경의 손을 붙잡고 "이제부터 나는 너를 자식처럼 여길 테니 너도 나를 아버지처럼 여겨라."라고 했다. 이 대사도 정사다.[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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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전기톱! 훌륭한 대화 수단이지!"
  • ④ 가한촌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윤관은 영주성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곧이어 여진군 2만이 영주성을 포위한다. 다른 지휘관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지키자는 주장을 하는데 "짱박혀 있으면 우리 성안 곡식이 떨어지기 전에 지원군이 안오면 굶어 죽는데요? 다들 내가 날라다니는거 지켜나 보세요."[12] 라는 말과 함께 성문을 뛰쳐나가 여진족 19명의 모가지를 따서 2만명의 병력을 물리친다. 씨발 이게 사람이냐?

ㄴ 여기도 척준경 혼자 나간 건 아니다. 정사에는 "결사대를 이끌고 성을 나가 싸워 19명의 목을 베니 적이 패전하여 달아났다"고 적혀 있다. 다만 상대 병력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이었다는 것도 진짜 기록이다.[13]

그러니까 정확히 쓰면

척준경 + 결사대 → 여진 19명 참수 → 2만 여진군 퇴각

이다.

혼자 2만 명을 잡은 건 아닌데 이렇게 고쳐놔도 별로 인간 같지 않다.

더 웃긴 건 전투가 끝나자 북과 피리를 울리면서 개선했고, 윤관 등이 망루에서 내려와 척준경 손을 잡고 서로 절했다는 기록까지 있다.[14]

  • ⑤ 1108년 1월, 윤관의 지시로 왕자지는 고려군을 이끌고 영주성으로 이동중이었다. 이때 여진족 추장이던 사현(史現)이 "우리 고려 꼬추나 한번 볼까!"라며 달려들었고 기습을 당한 고려군은 좆망 직전까지 가게 된다. 왕자지는 말에서 떨어져 조리돌림 당할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데 때마침 척준경이 등장, 고려군과 여진군이 엉켜있는 전장으로 달려들어 여진족의 목을 따고 심지어 여진족 부락까지 쳐들어가 거기 있는 말 한필을 도둑질해 자기 친구였던 왕자지에게 건네주기까지 한다.

ㄴ 이 부분은 인터넷에서 살이 좀 많이 붙었다. 정사에는 왕자지가 사현의 군대를 만나 패하고 타던 말을 잃자 척준경이 강한 병사들을 거느리고 구원하러 가서 적을 패퇴시키고 여진의 갑옷 입힌 말을 노획해 돌아왔다고 되어 있다.[15]

ㄴ 여진 부락에 혼자 쳐들어가 말을 훔쳤다거나 그 말을 왕자지에게 직접 건네줬다는 내용은 《고려사절요》 기록에는 없다. 그래도 친구 말 잃었다고 적진에 재돌격해서 장갑마 하나 뜯어온 것 자체가 이미 충분히 미친 짓이다.

  • ⑥ 1108년 2월 11일, 여진의 대군이 웅주성을 둘러싸고 공격을 퍼부었다. 이때 성을 지키던 지휘관 최홍정은 척준경을 불러 "우리 다 좆되게 생겼다. 힘좀 쓰는 니가 구원군을 데려와라."라며 적진을 뚫고 정주성까지 가라고 지시했는데 우리의 척준경은 까라면 까는 진짜 군인이셨는지 이 말을 듣고 "예썰!" 한마디와 함께 여행 준비를 하신다. 그리고 그날 밤에 성벽을 타고 내려와 여진의 포위망을 혈혈 단신으로 뚫고 지나가[16]정주성에 도착하는데 성공한다. 이후 정주성의 구원군과 함께 웅주성 근처에 도달한 고려군은 길주에서 여진군을 격파하는데 성공한다.

ㄴ 실제 기록도 상당히 비슷하다. 정확히는 척준경이 일반 병사의 해진 옷으로 갈아입고 밤에 줄을 타고 성벽을 내려가 정주로 돌아가 병력을 정돈한 뒤 통태진·야등포를 지나 길주에서 여진군을 만나 대파했다.[17]

ㄴ 다만 기록에는 "적 수십 명을 썰면서 포위망을 돌파했다" 같은 전투 장면까지는 없다. 동행자에 대한 언급도 없어서 사실상 단독 잠입으로 읽히지만, 정확히는 적에게 들키지 않고 포위망을 빠져나간 것에 가깝다.

웅주성 사람들은 척준경이 병력을 끌고 돌아오자 감격해서 울었다고 한다.[18]

배트맨 맞다.

  • ⑦ 이후에는 큰 전투가 아니라 자잘한 전투에서 짤막한 기록으로만 등장한다. 고려사에 따르면 왕자지와 함께 별동대를 이끌었던 것으로 추정하며 여진의 침공이 있는 지역으로 달려가 그들을 막아서는 역할을 했다.

ㄴ 1108년 8월에도 왕자지와 척준경이 함주·영주에서 여진과 싸워 33명의 목을 베었다는 기록이 실제로 남아 있다.[19]

여진전쟁이 끝난 뒤에도 군인으로만 끝난 게 아니다. 1117년 서북면병마부사, 1119년 동북면병마사를 거쳐 인종대에는 이부상서·참지정사까지 올라갔다. 한미한 지방 아전 집안 출신으로 시작해 사실상 재상급까지 올라간 셈이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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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캐릭터 스텟을 힘에만 찍은 줄 알았더니 관직 레벨도 만렙 가까이 찍었다.

이자겸과 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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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전쟁 끝난 뒤부터 캐릭터 운영을 존나 잘못한다.

척준경의 딸이 이자겸의 아들 이지원과 혼인하면서 이자겸과 사돈 관계가 됐고, 이자겸이 인종 초 권력을 장악하자 척준경도 함께 정권의 핵심으로 올라갔다.[21]

1123년에는 이부상서 참지정사, 1124년에는 중서시랑평장사급까지 올라가 사실상 무신 출신 최고위 권력자가 됐다.

무력으로 여진 썰어서 출세했는데 정치에서도 최종보스 방에 들어갔다.

문제는 같이 들어간 놈이 이자겸이었다.

1126년 인종의 측근 김찬·안보린과 최탁·오탁 등이 이자겸과 척준경 제거를 시도하면서 이자겸의 난이 터졌다.

거사 과정에서 척준경의 동생 척준신과 아들 척순이 살해됐고, 빡친 척준경은 이자겸 측 병력을 이끌고 궁궐을 공격했다.

결국 궁궐까지 불타버렸다.

주의! 이 문서에서 다루는 대상은 병신입니다.
그냥 개좆병신 그 자체입니다.

여진족 상대로 나라를 구해놓고 자기 손으로 고려 왕궁을 태웠다.

이때부터 척준경 인생의 장르가 영웅전에서 반역열전으로 바뀐다.

하지만 인종과 최사전이 척준경을 설득하면서 상황이 또 뒤집혔다. 결국 척준경은 이자겸을 배신하고 군사를 동원해 이자겸을 체포했으며, 이자겸은 영광으로 유배됐다.[22]

ㄴ그래도 척준경은 막판에 인종쪽으로 돌아서서 이자겸처럼 벌집피자꼴은 면했다.

이 말이 진짜다.

인종은 이자겸 제거 공로를 인정해 척준경에게 추충정국협모동덕위사공신이라는 존나 긴 공신호를 내리고 다시 최고위 관직을 줬다.[23]

근데 오래 못 갔다.

1127년 정지상이 척준경을 탄핵하면서

이자겸을 제거한 것은 한때의 공이지만 궁궐을 침범하고 불태운 것은 만세의 죄다.

라고 깠다.[24]

이건 반박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척준경은 암타도로 유배되고 이듬해 고향 곡주로 옮겨졌다.

1130년 인종은 죄가 무겁지만 공도 적지 않다며 가족에게 직전을 돌려줬고, 1144년에는 과거 전공을 인정해 조봉대부 검교호부상서로 다시 기용했다.[25]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죽었다.

죽은 뒤인 1146년에는 문하시랑평장사로 다시 추복됐다.

결국 고려 조정도 마지막까지

이 새끼 반역자 맞는데 여진전쟁 때 한 게 너무 많음

상태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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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족 상대로는 고려 최고의 인간흉기.

정치에서는 이자겸 따라갔다가 왕궁에 불지른 미친놈.

그러다가 마지막에는 또 이자겸을 직접 잡아서 왕을 구함.

진짜 인생이 왜 이러냐.

여담

근데 동북9성을 개척한지 약 반년이 지난후 길주성을 구원하러 가던 고려 주력군이 여진족 장수 사묘아리에게 개박살나고 이 때문에 윤관과 오연총이 실각하는 사태가 발생하는데 정황상 당시 고려군에 척준경도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더라.

ㄴ근데 별다른 기록이 없다는 걸로 보아 없을수도 있다. 척준경이 참여한 전투는 거진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데[26] 고려군 7만이 개박살난 공험진 전투에는 주요 지휘관으로 오연총만 언급되고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정도 규모의 병력이 출병했다면 척준경 이름이 나와있었을 텐데 안나와 있다는 건 흠.

ㄴ 이건 현재도 척준경이 참가했다고 단정할 직접 사료는 없다 정도로 보는 게 안전하다. 다른 소규모 전투에서도 왕자지와 함께 척준경 이름이 따로 기록되는데 해당 패전 기사에는 이름이 없기 때문이다.

사묘아리가 누구냐면 여진족판 척준경으로 이때 고려군 개박살내고 나중엔 요나라, 북송, 남송까지 죄다 탈탈 털어먹었으니 전공으로 따진다면 척준경보다 몇 수는 위라고 볼 수 있다. 또 비슷한 시기 송나라에는 한세충이라는 장수가 있었는데 이 인간은 기록된 내용만 보면 척준경도 한수 접어줘야 할 정도로 괴물같은 용맹을 뽐낸 장수로 세운 전공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수준인지 짬찌때는 자기 상관도 보고를 받고 믿지 못해 별다른 포상을 받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당대 동아시아에서 초인대전이 벌어진게 분명하다.

ㄴ 사묘아리(斜卯阿里)는 실제로 금나라의 명장으로 이후 요·송과의 전쟁에서도 활동했다. 다만 개인 무용을 척준경처럼 단순 비교해 누가 몇 수 위라고 정하기보다는 지휘관으로서 훨씬 큰 규모의 전쟁에 참여한 인물이라고 보는 게 맞다.

존나 사극하나 만들면 졸잼일거 같은데 사극화가 안되는 이유는 절친 이름이 왕자지라서 그런듯하다. 초명은 소중이고 자는 아주 길다고 원장이다. 절친도 어지간히 흙수저 출신+거시기가 흑형같이 많이 컸는듯. 그리고 적당한 연기력+액션배우 부족. 그리고 가장 중요한 대중의 관심 부족 정도로 볼 수 있다. 요즘 판타지가 대센대 대충 가명으로 퉁쳐서 안나오는걸 보면 그냥 관심 없는 듯.

판타지 사극 보는 사람들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들인데 대부분 존나 잘생긴 왕자랑 눈맞는 판타지라던가 잘생긴 왕자들 병풍으로 세우고 다 여주인공을 좋아하는 역하렘 같은거 좋아하니 척준경 같이 찢고 죽인다! 캐릭터를 소재로 삼을 이유가 없지...

사실 서사만 보면 사극 소재로는 존나 좋다.

가난한 지방 아전 집안 → 여진전쟁 인간흉기 → 윤관 구함 → 국가영웅 → 최고위 권력자 → 이자겸과 결탁 → 왕궁 방화 → 이자겸 제거 → 유배 → 복권 직후 사망

웬만한 작가가 각색해도 이 정도로 롤러코스터 만들기 어렵다.

참고로 척준경 뒤지고 한세충도 뒤질 때 쯤에 영국에서 사자심왕 리처드 1세가 태어났다. ㅎㄷㄷ

척준경은 1144년에 죽었고 리처드 1세는 1157년생이라 정확히는 약 13년 차이다.

그리고 척준경의 기록에서 가장 웃긴 점은 인터넷 전설을 걷어내도 별로 약해지지 않는다는 거다.

키 180cm였다는 기록 없음.

80근짜리 칼 없음.

혼자 2만 명을 죽인 것도 아님.

그런 거 다 빼고 《고려사절요》에 적힌 내용만 남겨도

패전한 군대에서 적장 참수 → 100기 추격 저지 → 석성 돌격 → 윤관 구출 → 결사대 이끌고 2만 여진군 격퇴 → 왕자지 구출 → 포위된 성에서 밤에 탈출해 구원군 데려옴

이다.


한국의 인간흉기
냉병기 활 해전 사이비 테러 드럼통
척준경 이성계 이순신 이만희 할카스 찢재명
첩보전 고자샷 발터 나이프 글록 정의봉
모전구렴야 상하이 조 재규어 지라툴 제너럴 조 박기서
盧래 K2소총 코 쌍권총 백린탄 야구빠따
MC무현 임 레이너 코서인 김상옥 박정인 死호성


구라를 추가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다.

각주

  1.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4. ↑ 임간이 여진과 싸워 패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5. ↑ 고려군이 승리를 거두며 축성을 시작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6. ↑ 말 그대로 돌로만든 성이라는 뜻으로 고려사에는 성의 이름은 안나오고 그냥 석성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다.
  7. ↑ 고려사에는 이때 성벽에서 뛰어내리는 여진들도 많았다고 나와있다.
  8. ↑ 고려군이 승리를 거두며 축성을 시작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9. ↑ 병목(甁項)은 좁은 길목을 말한다.
  10. ↑ 척준경이 윤관과 오연총을 구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1. ↑ 척준경이 윤관과 오연총을 구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2. ↑ 고려사 원문은 다음과 같다. “만약 나가 싸우지 않았다가 적의 병력이 갈수록 증가하고 성 안의 양식이 떨어지며 외부의 원병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는 고스란히 죽을 것입니다. 전날 싸움에 이긴 것을 공이 이미 보셨으나 오늘 또한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테니 공들께서는 성에 올라가 구경하시오.”
  13. ↑ 척준경이 여진군을 격퇴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4. ↑ 척준경이 여진군을 격퇴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5. ↑ 척준경이 여진군을 격퇴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6. ↑ 이거 뻥튀기 아니다 고려사 기록에 진짜 성벽타고 내려와 뚫었다고 나온다
  17. ↑ 웅주성에서 여진군을 물리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8. ↑ 웅주성에서 여진군을 물리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19. ↑ 왕자지 등이 여진군을 격파하다, 국사편찬위원회 고려시대사료 DB.
  20.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1.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2.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3.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4.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5. ↑ 척준경,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6. ↑ 예를 들어 1108년 8월과 9월의 전투처럼 자세하진 않지만 작은 전투에 참여했다는 것도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