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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퍼시벌 로웰은 미국의 사업가, 동양학 저술가, 수학자, 천문학자이다. 영어로는 Percival Lawrence Lowell. 보빙사 일행을 미국으로 안내한 인물이며, 훗날 로웰 천문대를 세우고 화성 운하설과 명왕성 떡밥으로 유명해졌다.
한국사에서는 1883년 보빙사의 외국인 참찬관 겸 고문 역할을 한 사람으로 등장한다.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 조선 사절단이 미국에 가는 길을 도왔고, 이후 고종의 초청을 받아 조선을 방문했다.
천문학사에서는 화성에 인공 운하가 있다고 주장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지금 보면 틀린 이론이다. 화성인들이 물 끌어오려고 대운하 팠다는 소리였으니, 말하자면 19세기판 외계문명 떡밥 유튜버다. 다만 그냥 헛소리만 한 사람은 아니고, 자기 돈으로 천문대를 세우고 관측 연구를 밀어붙인 덕분에 훗날 명왕성 발견으로 이어지는 기반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조선에 카메라 들고 온 미국인 동양덕후였다가, 나중에는 화성 운하와 명왕성 떡밥으로 천문학사에 이름 박은 사람이다.
기본 정보
| 퍼시벌 로웰 | |
|---|---|
| 영어명 | Percival Lawrence Lowell |
| 생몰 | 1855년 ~ 1916년 |
| 출생지 |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
| 직업 | 사업가, 저술가, 수학자, 천문학자 |
| 학력 | 하버드 대학교 |
| 한국사 관련 활동 | 보빙사 참찬관 겸 고문, 조선 방문, 조선 사진 촬영 |
| 천문학 관련 활동 | 로웰 천문대 설립, 화성 운하설 주장, Planet X 탐색 |
| 주요 저서 |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 《Mars》, 《Mars and Its Canals》 |
| 관련 인물 |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유길준, 고종, 클라이드 톰보 |
한줄요약
조선 보빙사 안내하다가 조선 사진 찍고, 나중엔 화성 운하 찾다가 명왕성 발견 떡밥까지 깔아놓은 미국판 역사·우주 덕후.
가문과 초기 생애
퍼시벌 로웰은 1855년 미국 보스턴의 명문가에서 태어났다.
로웰 가문은 미국 동부 상류층의 대표적인 집안 중 하나였다. 돈도 있고, 학문적 전통도 있고, 사회적 영향력도 있었다. 쉽게 말해 미국판 금수저인데, 단순히 돈만 많은 게 아니라 책도 읽는 금수저였다.
그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했다. 처음부터 전문 천문학자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아니고, 젊은 시절에는 집안 사업과 동아시아 여행, 저술 활동에 더 가까웠다.
그러다가 1880년대에 일본과 조선 등 동아시아를 여행하며 동양에 대한 책을 쓰기 시작했고, 1890년대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천문학에 인생을 갈아넣었다.
보빙사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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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3년, 로웰은 일본에 머물고 있었다. 이때 조선의 보빙사 일행이 미국으로 가게 되었고, 주일 미국공사의 주선으로 로웰이 이들을 돕게 되었다.
보빙사는 조선이 미국에 처음 보낸 공식 사절단이다. 전권대신은 민영익, 전권부대신은 홍영식, 종사관은 서광범이었다. 수행원으로는 유길준 등도 있었다.
문제는 조선 입장에서 미국은 너무 낯선 나라였다는 점이다. 조선에서 미국으로 직항 항공편? 당연히 없다. 태평양 항로, 영어, 서양식 외교예법, 미국 내 이동, 국서 번역 같은 게 전부 난제였다.
이때 로웰이 참찬관 겸 고문으로 붙었다. 쉽게 말하면 보빙사 미국 출장의 현지 코디네이터 겸 외교 보좌관 겸 번역 보조 겸 길잡이였다.
조선 입장에서는 진짜 필요했다. 아무리 민영익과 홍영식이 엘리트라 해도, 조선에서 막 미국 가는 건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요즘으로 치면 영어도 애매한 조선 관료들이 미국 연방정부 미팅 잡고 대륙횡단 출장 가야 하는데, 그 옆에 미국인 컨설턴트 하나 붙은 셈이다.
보빙사의 미국 방문 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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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보빙사 일행과 함께 미국으로 향했다.
보빙사 일행은 일본에서 출발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고, 이후 대륙횡단철도를 타고 미국 동부로 이동했다. 이 과정에서 로웰은 사절단의 일정과 의전, 통역, 문서 업무를 도왔다.
보빙사 일행은 체스터 A. 아서 미국 대통령을 만났고, 미국의 여러 도시와 시설을 둘러보았다. 공장, 병원, 우체국, 철도, 군사시설, 박람회 등을 시찰했다.
조선 관료들에게 미국은 거의 외계 문명 수준이었을 것이다. 조선에서는 아직도 성리학과 관료제, 말 타고 문서 전달하는 행정이 기본이었는데, 미국은 전기, 기차, 공장, 병원, 우편제도, 대륙횡단철도를 굴리고 있었다.
로웰은 이 모든 과정을 옆에서 도운 인물이다. 조선 근대외교사의 첫 미국 공식 방문에 미국인 안내자 겸 보좌관으로 깊게 끼어든 셈이다.
조선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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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 일행 중 홍영식은 로웰의 도움을 고종에게 보고했다. 고종은 로웰을 조선에 국빈으로 초청했다.
이에 로웰은 1883년 말 조선을 방문했고, 1884년 초까지 약 몇 달 동안 한양에 머물렀다. 그는 조선의 정치, 사회, 풍속, 건축, 거리, 왕실, 사람들을 관찰했다.
특히 로웰은 사진기를 가지고 조선에 들어온 초기 외국인 중 하나로, 당시 조선의 풍경과 인물을 사진으로 남겼다. 고종의 사진, 궁궐, 거리, 인물 사진 등이 그의 이름과 연결된다.
이건 중요하다. 조선 후기 사진 자료는 많지 않다. 로웰이 남긴 사진은 단순 여행사진이 아니라, 1880년대 조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시각자료다.
물론 그가 조선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어디까지나 외국인 관찰자였고, 동양을 낯선 문명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모습을 서양에 소개한 인물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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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조선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을 출간했다.
한국어로는 흔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 정도로 번역된다. 여기서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이 유명해졌다. 지금도 한국을 “Land of the Morning Calm”이라고 부르는 표현의 대표적 출처 중 하나로 언급된다.
이 책은 조선의 지리, 사회, 문화, 풍속, 정치, 인물, 건축 등을 서양 독자에게 소개했다. 또한 로웰이 직접 찍은 사진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이 책을 무조건 좋은 기록으로만 보면 곤란하다. 19세기 서양인의 동양관은 기본적으로 오리엔탈리즘 냄새가 난다. 조선을 신비롭고 정적인 나라로 보는 시선도 있고, 서양 중심의 비교도 있다.
그래도 자료적 가치는 크다. 조선이 서양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로웰의 책은 조선을 소개하는 중요한 창구 중 하나였다.
갑신정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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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이 조선을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갑신정변이 터졌다.
그에게도 이 사건은 남 일이 아니었다. 갑신정변 핵심 인물인 홍영식, 서광범 등은 보빙사 때 함께 미국을 다녀온 사람들이었다. 민영익은 정변 과정에서 습격을 받아 죽을 뻔했다.
로웰은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졌고, 훗날 〈A Korean Coup d'État〉라는 글을 통해 갑신정변을 서양 독자들에게 소개했다.
이 기록은 당대 외국인이 바라본 갑신정변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물론 역시 외부 관찰자의 기록이므로 그대로 절대 진리처럼 읽으면 안 된다. 그래도 당시 조선 정치가 외국인 눈에는 얼마나 혼란스럽고 위험하게 보였는지 알 수 있다.
일본과 동아시아 저술
로웰은 조선뿐 아니라 일본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일본의 종교, 문화, 사회, 심리, 풍속에 대해 여러 책을 썼다. 대표적으로 《The Soul of the Far East》, 《Noto》, 《Occult Japan》 등이 있다.
이 시기의 로웰은 천문학자라기보다는 동아시아 여행가 겸 저술가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천문대 세우기 전에는 동양덕후 모드였고, 천문대 세운 뒤에는 화성덕후 모드가 된 인물이다.
다만 그의 동아시아 해석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문제도 많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동양을 분석하면서 일반화하거나, 일본과 조선을 낯선 문명처럼 묘사하는 방식이 강했다.
그래도 당시 서양 독자들에게 일본과 조선을 소개한 주요 저술가였던 것은 사실이다.
로웰 천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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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로웰은 미국 애리조나 플래그스태프에 로웰 천문대를 세웠다.
그가 이곳을 고른 이유는 맑은 하늘, 높은 고도, 적은 구름, 도시 불빛의 적은 방해 등 관측 조건이 좋았기 때문이다. 천문대 위치 선정에 돈과 정성을 쏟은 것이다.
이 천문대는 처음에는 로웰의 화성 관측을 위해 세워졌다. 그는 화성 표면의 선 같은 무늬를 관측하고, 이를 인공 운하라고 해석했다.
오늘날 로웰 천문대는 미국의 중요한 천문 연구기관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특히 훗날 명왕성 발견과 연결되면서 천문학사에 크게 남았다.
화성 운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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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 하면 가장 유명한 떡밥은 화성 운하설이다.
19세기 말, 이탈리아 천문학자 스키아파렐리는 화성 표면에 선 같은 구조를 보고 이를 이탈리아어로 “canali”라고 불렀다. 이 말은 원래 자연 수로나 통로 정도로 볼 수 있었는데, 영어권에서 “canals”로 번역되며 인공 운하 느낌이 강해졌다.
로웰은 이 아이디어에 강하게 꽂혔다. 그는 화성에 직선적인 운하들이 있고, 이것이 고등 지능 생명체가 만든 인공 구조물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상상 속 화성인은 말라가는 행성에서 극지방의 물을 적도 쪽으로 끌어오기 위해 거대한 운하망을 건설한 문명이었다.
낭만은 있다. 과학적으론 틀렸다.
오늘날 화성 운하설은 관측 착시와 해석 오류로 본다. 하지만 당시에는 대중에게 엄청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로웰은 화성 생명체 상상력을 대중문화에 폭발적으로 퍼뜨린 사람이다.
즉 과학적으로는 틀렸지만, SF와 대중천문학에는 엄청난 연료를 부은 사람이다. 맞는 말만 역사를 움직이는 건 아니다. 가끔 틀린 말도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다.
Planet X와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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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의 또 다른 집착은 Planet X였다.
그는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에 설명되지 않는 이상이 있으며, 그 바깥에 아직 발견되지 않은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웰 천문대에서 이 미지의 행성을 찾는 작업을 시작했다.
로웰 본인은 생전에 이 행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천문대와 탐색 프로그램은 계속 남았다.
그리고 1930년, 로웰 천문대의 클라이드 톰보가 명왕성을 발견했다.
여기서 로웰의 이름은 다시 살아난다. 명왕성의 영어 이름 Pluto는 첫 두 글자가 P와 L이라서 Percival Lowell의 이니셜과도 연결된다. 명왕성의 기호 ♇도 PL을 겹친 형태다.
물론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로웰이 생각한 방식의 Planet X 이론은 정확하지 않았다. 명왕성은 너무 작아서 천왕성과 해왕성의 궤도 이상을 설명할 정도의 중력을 갖지 못했다. 게다가 2006년 명왕성은 행성에서 왜행성으로 재분류되었다.
그래도 로웰이 시작한 탐색이 명왕성 발견으로 이어진 것은 사실이다. 틀린 가설이 맞는 발견으로 이어진 묘한 사례다.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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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 안내와 한미외교 연결
로웰은 보빙사의 미국 방문을 도왔다.
조선 최초의 미국 공식 사절단이 낯선 나라에서 제대로 일정과 외교 의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보좌했다. 이 점에서 그는 초기 한미외교사의 조연이다.
주연은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이었지만, 로웰은 그들이 미국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준 외국인 조력자였다.
조선 사진과 기록을 남김
로웰은 조선 체류 중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1880년대 조선의 모습은 시각자료가 많지 않다. 로웰의 사진과 책은 당시 조선의 모습, 왕실, 풍경, 사람들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외국인이 찍은 조선 초기 사진 자료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조선을 서양에 소개함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은 서양에 조선을 소개한 대표적인 초기 저술 중 하나다.
물론 오리엔탈리즘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조선이 국제사회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에, 로웰은 조선이라는 나라를 서양 독자들에게 알렸다.
로웰 천문대 설립
로웰 천문대는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다.
화성 운하설이 틀렸더라도, 천문대를 세우고 관측 기반을 만든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이 천문대는 훗날 명왕성 발견으로 천문학사에 큰 이름을 남겼다.
대중천문학에 큰 영향
로웰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대중에게 강하게 퍼뜨렸다.
과학적으로는 틀렸지만, 대중이 우주와 행성에 관심을 갖게 만든 효과는 컸다. SF, 화성인 상상력, 외계 문명 떡밥에 불을 붙인 인물 중 하나다.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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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운하설이라는 대형 오답
로웰의 화성 운하설은 틀렸다.
그는 관측된 선형 무늬를 인공 운하로 해석했고, 화성 문명까지 상상했다. 그러나 후대 관측 결과 그런 인공 운하는 존재하지 않았다.
과학자는 틀릴 수 있다. 문제는 로웰이 꽤 강하게 자기 해석을 밀어붙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천문학계에서는 회의적인 시선도 많았다.
동양관의 한계
로웰의 조선·일본 관련 저술은 자료적 가치는 있지만, 19세기 서양인의 동양관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는 동양을 낯설고 정적인 세계로 묘사했고, 서양 중심의 비교와 일반화를 자주 했다. 특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도 아름답게 들리지만, 한편으로는 조선을 정체되고 조용한 대상으로 보는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다.
즉 조선을 소개한 공은 있지만, 그 소개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 천문학자라기보다 부자 아마추어 출신
로웰은 대단한 열정과 자금을 가진 인물이었지만, 처음부터 엄격한 전문 천문학 훈련을 받은 학자는 아니었다.
그는 자기 재산과 영향력으로 천문대를 만들고 연구를 추진했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기 확신이 너무 강해지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쉽게 말하면 돈 많은 덕후가 관측 장비 풀세팅하고 자기 이론을 밀어붙인 것이다. 좋게 가면 천문대 설립자, 나쁘게 가면 화성 운하 빌런이다.
로웰과 보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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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보빙사 문서와 반드시 연결된다.
보빙사는 조선 최초의 미국 공식 사절단이었다. 그런데 조선인만으로 미국 방문을 처리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았다. 언어, 의전, 이동, 일정, 외교 문서 번역이 모두 문제였다.
로웰은 이 빈틈을 메웠다. 그는 미국인으로서 보빙사 일행을 안내했고, 사절단이 미국에서 대통령을 만나고 여러 시설을 시찰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후 그는 조선에 초청되어 머물렀고, 조선 사진과 기록을 남겼다. 즉 로웰은 보빙사의 외국인 조력자에서 조선 기록자로 이어지는 인물이다.
로웰과 홍영식
로웰은 홍영식과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홍영식은 보빙사의 전권부대신이었고, 미국 방문 후 로웰의 도움을 고종에게 보고했다. 이 보고가 로웰의 조선 초청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얼마 뒤 홍영식은 갑신정변에 참여했고, 정변 실패 후 살해되었다. 로웰은 이 사건에 큰 관심을 가졌고, 갑신정변에 대한 글을 남겼다.
로웰 입장에서 홍영식은 단순 조선 관료가 아니라, 함께 미국을 여행한 지인이었다. 그래서 갑신정변은 그에게도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로웰과 민영익
민영익은 보빙사의 전권대신이었다.
로웰은 민영익 일행을 미국에서 보좌했고, 민영익은 미국과 유럽을 거쳐 귀국했다. 이후 민영익은 갑신정변 때 급진개화파의 습격을 받아 죽을 뻔했고, 미국인 의사 알렌에게 치료받아 살아났다.
로웰이 보빙사에서 만난 조선 인물들이 이후 갑신정변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가 되었다는 점은 구한말의 혼란을 잘 보여준다.
로웰과 조선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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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조선 체류 중 사진을 찍었다.
그의 사진은 고종, 궁궐, 거리, 인물, 건축물 등 당시 조선의 모습을 담고 있다. 오늘날에는 1880년대 조선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특히 조선이 아직 사진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로웰의 사진은 상당히 이른 시기의 자료다.
물론 사진은 중립적인 진실 그 자체가 아니다. 무엇을 찍고, 어떻게 배치하고, 어떤 설명을 붙이느냐에 따라 해석이 달라진다. 그래도 그가 남긴 시각자료는 조선 말기를 이해하는 데 귀중하다.
로웰과 화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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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 하면 화성인 떡밥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화성의 선형 구조를 인공 운하로 보고, 고등 문명이 건설한 시설이라고 생각했다. 말라가는 화성에서 생존하기 위해 극지방의 물을 운하로 끌어온다는 상상은 대중에게 엄청난 자극을 주었다.
지금 보면 틀린 이야기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꽤 그럴듯한 과학적 상상이었다. 망원경 관측은 제한적이었고, 화성은 지구와 비슷한 계절 변화를 보이는 행성처럼 보였다.
로웰의 화성 운하설은 훗날 SF에 큰 영향을 주었다. 화성인, 외계문명, 죽어가는 행성 같은 테마는 여기서 엄청난 연료를 얻었다.
즉 로웰은 과학적으로는 틀렸지만, 상상력 시장에서는 대박을 친 사람이다.
로웰과 명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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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웰은 생전에 명왕성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해왕성 바깥에 미지의 행성, 즉 Planet X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찾기 위한 탐색을 추진했다. 그가 세운 로웰 천문대는 이 탐색을 계속 이어갔다.
1930년 클라이드 톰보가 로웰 천문대에서 명왕성을 발견했다. 그래서 명왕성 발견은 로웰의 사후 업적처럼 연결된다.
물론 나중에 보니 로웰의 계산과 가설은 정확하지 않았다. 명왕성은 로웰이 기대한 거대한 행성이 아니었고, 2006년에는 왜행성으로 재분류되었다.
그래도 로웰이 뿌린 씨앗이 명왕성 발견으로 이어졌다는 건 부정하기 어렵다. 틀린 지도 들고 가다가 우연히 보물을 찾은 느낌이다.
평가
퍼시벌 로웰은 평가가 꽤 복잡한 인물이다.
한국사에서는 보빙사와 조선 방문, 조선 사진,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으로 의미가 있다. 그는 조선이 미국과 처음 공식적으로 접촉하는 과정에 참여했고, 조선을 서양에 소개했다.
천문학사에서는 더 복잡하다. 화성 운하설은 틀렸다. 하지만 로웰 천문대를 세우고 행성 관측에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Planet X 탐색은 훗날 명왕성 발견으로 이어졌다.
즉 그는 틀린 사람인 동시에 남긴 게 많은 사람이다. 오답을 냈는데 풀이 과정에서 새로운 연구소와 대중 관심과 발견의 기반이 생긴 셈이다.
정확히 말하면 로웰은 과학적 엄밀함보다 상상력과 추진력이 강했던 인물이다. 그 추진력은 때로 오류를 만들었고, 때로 천문학사의 유산을 만들었다.
관련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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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 로웰은 보빙사 일행과 함께 찍힌 사진으로도 유명하다. 보빙사 사진 앞줄에 앉아 있는 서양인이 바로 로웰이다.
- 로웰은 고종의 사진을 찍은 인물로도 알려져 있다. 당시 조선 왕의 사진은 매우 귀한 자료다.
- 《Chosö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의 “Land of the Morning Calm” 표현은 훗날 한국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영어식 별칭이 되었다. 다만 이 표현은 아름답지만, 조선을 너무 정적인 나라로 박제하는 느낌도 있어서 마냥 좋게만 볼 수는 없다.
- 로웰은 조선과 일본을 기록한 동양 저술가였다가, 이후 미국으로 돌아가 천문학자로 변신했다. 인생 커리어가 “동아시아 여행작가 → 화성 운하 빌런 → 명왕성 떡밥 창시자”라서 꽤 특이하다.
- 명왕성의 영어 이름 Pluto는 앞 두 글자가 P와 L이라 Percival Lowell의 이니셜과 연결된다. 물론 명왕성 이름이 오직 로웰 때문에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그의 영향이 반영된 것은 맞다.
- 로웰이 화성 운하설로 틀린 주장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중에게 우주를 상상하게 만든 힘은 컸다. 과학에서 틀린 가설도 가끔 문화사에서는 살아남는다. 골때리지만 현실이다.
결론
퍼시벌 로웰은 한국사와 천문학사를 이상하게 동시에 연결하는 인물이다.
한국사에서는 보빙사를 도운 미국인 고문이자, 조선을 방문해 사진과 기록을 남긴 초기 외국인 관찰자다. 그의 책은 조선을 서양에 소개했고,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는 표현을 널리 퍼뜨리는 데 기여했다.
천문학사에서는 로웰 천문대를 세우고 화성 운하설과 Planet X 탐색을 밀어붙인 사람이다. 화성 운하설은 틀렸지만, 로웰 천문대와 명왕성 발견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분명한 유산이다.
그래서 로웰은 그냥 “헛소리한 화성인 아저씨”라고만 하면 부족하고, “조선을 기록한 외국인”이라고만 해도 부족하다.
조선의 마지막 왕조 세계와 근대 미국 천문학 세계를 한 사람 안에서 이상하게 이어버린 인물.
그게 퍼시벌 로웰이다.